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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후작가 입성
집으로 돌아와 면접 날짜를 정리했다. 후작가가 2일 뒤로 날짜가 잡혀 제일 먼저 면접을 보고 두 백작가는 일주일 뒤에 면접을 보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후작가에서 나를 탈락시키지 않는 한 나는 반드시 후작가의 가정 교사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후작가에서 뽑지 않으면 두 백작가 중 어느 한 곳에서 나를 뽑아 주기를 바라야만 했다.
두 백작가가 모두 나를 뽑으면 두 백작 부인이 상의하여 나의 거취가 결정되는데 이는 무척 단순한 원리였다. 나는 뽑히기만 할 뿐 어디서 일할지 선택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우선 가장 먼저 있을 후작가의 면접에 대비해 첼사 연주를 조금 더 연습하고 자수를 정리했다.
나는 주어진 시간을 면접 준비로 채웠다. 변변한 옷이 없어 내 성인식이며 데뷔탕트 때 입었던 드레스를 조금 수선하여 면접 때 입고 가기로 했다. 자수를 소매 끝에 넣어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단정하게 보이도록 목 근처에도 작은 꽃무늬를 넣었다.
보통의 영애들은 데뷔탕트 드레스를 옷장에 고이 모셔 두었다. 귀족 영애들의 인생에서 사교계 데뷔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영애들과는 처지가 확연하게 달랐다.
‘사교계는 무슨……. 나는 먹고살기가 고달프다…….’
데뷔탕트 드레스를 평상복처럼 입어야 하는 것이 아깝긴 했으나, 다른 드레스는 너무 노후했고 단순했다. 솔직히 말해 가난함이 묻어 있달까. 그래도 면접인데 깔끔하고 단정한 이미지도 중요하다 마음을 다잡고 더 많은 잡생각이 들기 전에 드레스를 정리하여 면접을 위해 옷장에 걸어 두었다.
*
제국력 895년 7월 15일.
후작가에서 보는 면접을 위해 준비를 마쳤다. 미리 정리해 옷장에 걸어 두었던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틀어 올려 아카시아 꽃무늬의 머리핀으로 마무리했다. 정리해 둔 자수와 추천서, 그리고 첼사 악보를 챙겨 집을 나섰다. 후작가와는 오후 2시 약속이라 부지런히 걸어가야 했다.
후작가의 문지기 기사들에게 면접 약속을 알리고, 그들 중 한 명의 안내에 따라 저택으로 향해 길게 뻗은 길을 걸었다. 천천히 로비로 들어서자 전에 만났던 집사가 마중 나와 인사를 하고 응접실로 나를 안내했다. 응접실에는 첼사와 피아노, 하프 등의 악기들이 마치 전시하듯 널찍한 간격을 두고 놓여 있었고, 곳곳에 비싼 비단으로 커버가 씌워진 소파와 의자들이 있었다.
시출러 후작 부인은 가운데 긴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하녀들은 벽에 붙어 서서 언제 불릴지 몰라 후작 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로인 남작의 조카 제스나 로인, 시출러 후작 부인께 인사 올립니다.”
치마를 펼치며 최대한의 예를 보여 인사했다.
“어서 와요, 로인 영애. 우선 추천서부터 볼까요?”
추천서를 꺼내 옆에 선 집사에게 건네자 집사는 이를 받아 들고 후작 부인께 공손히 드렸다. 후작 부인이 추천서를 꼼꼼히 읽고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이리저리 살폈다. 침을 티 안 나게 삼킨 나는 고개를 들고 눈을 살짝 내린 채 후작 부인의 말을 기다렸다.
“가져온 자수를 좀 볼까요?”
자수를 집사에게 건넸다. 집사에게서 자수 몇 장을 받아 든 후작 부인이 살펴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자수 솜씨가 아주 훌륭하군요. 그럼 첼사 연주도 좀 볼까요? 기론의 ‘애달픈 마음’을 연주해 주세요.”
준비해 간 악보 말고 다른 곡을 연주해 달라는 말에 잠시 당황했지만 내가 아는 곡이었기에 곧 첼사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첼사는 피아노와 비슷한 악기로 제국 두 번째 대의 왕후께서 직접 만들어 보급하게 된 악기였으니, 그 역사가 깊었다. 요즘 시대엔 첼사가 제국 귀족 영애의 필수 연주 악기로 피아노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천천히 건반 위에 두 손을 올리고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애달픈 마음’은 남작위의 남자와 공작가 영애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곡으로, 남작의 애타는 마음을 표현한 애절한 곡이었다. 많은 영애들과 부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는데, 애절한 멜로디와 극적 반전이 있어 고통과 사랑의 감정을 격정적이면서도 간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리하여 나는 애절한 부분에서는 가늘고 느리게 표현하고, 격정적인 부분에서는 폭발하듯 첼사를 연주했다. 연주가 모두 끝나고 연주 내내 감고 있던 눈을 뜨고 후작 부인을 바라보았다. 후작 부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하녀 중 유일하게 후작 부인의 곁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던 나이 많은 하녀―후작 부인의 오래된 몸종이거나 후작 자제들의 유모로 보였다―가 벌떡 일어나 박수를 열렬하게 치다 주위를 보고 놀라 조용히 다시 앉았다.
다른 가문이라면 벌을 줄 만한 일이었으나, 후작 부인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했다. 다른 하녀들도 하나같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 첼사 옆에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서서 후작 부인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작은 박수 소리가 응접실 입구에서 들렸다.
테일스 시출러 영식이었다.
모든 하녀가 그에게 인사를 올리는 가운데, 그는 응접실로 바로 걸어 들어와 어머니인 후작 부인께 인사하고는 그녀의 어깨에 한 손을 부드럽게 올리며 옆에 섰다.
“언제 온 거니?”
“첼사 연주가 시작될 때요.”
후작 부인의 말에 테일스 영식이 대답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나는 표정을 굳히고 무심히 눈을 내렸다. 마침내, 후작 부인이 입을 열었다.
“혹시, 우리 펠리체에 대해 들어 봤나요?”
“송구합니다만 들은 것이 많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우리 펠리체는 대대로 아들만 있던 시출러가에서 태어난 귀한 딸이에요. 어려서부터 가문의 어른들이 예뻐하여 고집도 세고 제멋대로이지요. 말타기나 나무 타기 같은 남자애들이 하는 놀이만 좋아하다 여인이 갖출 덕목인 첼사 연주나 자수 놓기를 배우게 하니 선생들을 몇 번이나 바꾸고도 아직 초보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우리 펠리체를 맡게 되면 부디 인내심을 갖고 가르쳐 주길 바라요. 입주를 원한다던데……. 언제를 원하나요?”
“빠를수록 좋습니다. 후작 부인.”
“그렇다면 3일 뒤에 들어오도록 하세요. 2층에 있는 방 중에 하나를 준비시켜 놓도록 하죠. 어디 또 면접 보았거나 볼 곳이 있나요?”
“백작가 두 곳의 면접이 5일 뒤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는 길에 집사에게 들러 백작가의 이름을 써 주고 가세요. 내가 고용했다 서찰을 보내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부인.”
고용이 되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후작 부인과 영식에게 예를 다해 깊게 인사했다. 테일스 영식의 유독 시린 빛의 푸른 눈도 따뜻하게 보일 만큼 나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가 나를 말없이 응시하며 할 말이 있는 듯 멈칫했으나 별 관심이 없는 나는 그의 눈빛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집사를 따라 응접실 밖으로 나왔다.
*
제국력 895년 7월 18일.
후작가로 들어가는 날의 아침이 밝았다. 외출 드레스를 일찍부터 차려입은 나는 아침 식사 중인 데시 로인 남작의 가족 식당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보며 놀란 남작의 가족들이 식사를 멈추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그곳에 발을 들인 것이 몇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저는 오늘 남작가를 나가려고 합니다. 시출러 후작가의 가정 교사로 채용되어 오늘 입주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할 말을 간결하게 마쳤다. 데시 남작과 남작 부인이 무슨 소리냐며 소리치는 와중에도 예를 갖춰 그들에게 인사했다. 곧 남작 부부는 키워 준 은혜를 갚으려면 급여는 우리 쪽으로 붙이라는 둥, 이렇게 된 이상 기사를 꽤서 지참금 없이 혼인할 방도나 찾으라는 둥의 교양 없는 말들을 정신없이 뱉어 냈다.
예전의 나라면 주눅 든 채로 고개만 숙이며 실제로 급여를 이 집안으로 보내는 미련한 짓을 했을지 몰랐다. 그러나 전생에서의 삶을 이미 한 번 겪어 본 나로서는 이들의 말이 얼마나 가치 없고 의미 없는 으름장인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제멋대로 지껄이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나는 집 현관에 둔 단출한 짐을 들고 남작가를 떠났다.
*
오전 약속된 시간에 후작저를 방문하였다. 처리할 일이 있는 집사 대신 하녀장이 나를 안내했다.
“저는 메르네입니다. 후작가의 하녀장을 맡고 있습니다. 우선 짐을 여기 두시고 저를 따라오시지요.”
짐을 현관에 내려 두니 풍채 좋은 하인이 나의 짐을 갖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녀장은 나를 데리고 내가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을 설명하였다. 내가 식사할 작은 식당과 수업할 작은 응접실, 끝으로 나의 방을 안내받았다. 점심 식사 시간을 알려 주고 시간에 맞춰 늦지 않게 와 달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녀에게 모든 안내를 받은 나는 묵을 방을 살펴봤다. 침대, 책상, 옷장과 의자, 테이블이 있는 작고 아담한 방으로 정원이 보이는 꽤 안락한 곳이었다. 재력이 상당한 고위 귀족만이 갖고 있다는 상하수도 시설과 따뜻한 물을 겸비하고 있는 최고의 설비가 갖춰진 욕실도 방에 붙어 있었다. 맞은편 저쪽으로 3층에 창문이 몇 개 더 보였으나 누구의 방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가지 말아야 할 3층에 대해 생각하면서 후작저의 구조를 다시 상기했다. 후작저는 총 3층 구조로, 후작 부부의 침실과 응접실, 서재, 그리고 별도로 분리된 집무실과 귀빈을 위한 게스트 룸이 있었고, 테일스 후작 영식과 펠리체 후작 영애의 침실, 영식이 따로 쓰고 있는 집무실까지 모두 3층에 자리해 있었다.
2층은 집사와 하녀장의 집무실과 침실, 후작 가족의 다이닝 룸, 작은 식당 두어 곳, 기사의 집무실과 보좌관실, 후작가의 가신들을 위한 게스트 룸, 서재로 되어 있었다. 내 방이 있는 곳도 2층이었다. 1층과 2층이 모두 실내 통로로 연결된 별관은 후작저 양옆에 붙은 건물로 하녀, 하인 숙소가 저택의 변두리에 위치하고 식당, 빨래방 등의 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나에겐 중요한 장소는 아니었다.
1층 중앙과 전면 공간은 외빈들이나 기사 등을 위한 소규모 응접실 6곳과 예술 작품이 함께 있는 대규모 살롱, 그리고 주 식당이 자리 잡았다.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저택이었다.
나는 옷을 평상복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조금 낡긴 했어도 내가 자수도 넣고 몇 번 손보아 꽤 예쁜 연둣빛 슈미즈 드레스였다. 점심시간에 늦을세라 복도를 따라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돌아와 면접 날짜를 정리했다. 후작가가 2일 뒤로 날짜가 잡혀 제일 먼저 면접을 보고 두 백작가는 일주일 뒤에 면접을 보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후작가에서 나를 탈락시키지 않는 한 나는 반드시 후작가의 가정 교사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후작가에서 뽑지 않으면 두 백작가 중 어느 한 곳에서 나를 뽑아 주기를 바라야만 했다.
두 백작가가 모두 나를 뽑으면 두 백작 부인이 상의하여 나의 거취가 결정되는데 이는 무척 단순한 원리였다. 나는 뽑히기만 할 뿐 어디서 일할지 선택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우선 가장 먼저 있을 후작가의 면접에 대비해 첼사 연주를 조금 더 연습하고 자수를 정리했다.
나는 주어진 시간을 면접 준비로 채웠다. 변변한 옷이 없어 내 성인식이며 데뷔탕트 때 입었던 드레스를 조금 수선하여 면접 때 입고 가기로 했다. 자수를 소매 끝에 넣어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단정하게 보이도록 목 근처에도 작은 꽃무늬를 넣었다.
보통의 영애들은 데뷔탕트 드레스를 옷장에 고이 모셔 두었다. 귀족 영애들의 인생에서 사교계 데뷔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영애들과는 처지가 확연하게 달랐다.
‘사교계는 무슨……. 나는 먹고살기가 고달프다…….’
데뷔탕트 드레스를 평상복처럼 입어야 하는 것이 아깝긴 했으나, 다른 드레스는 너무 노후했고 단순했다. 솔직히 말해 가난함이 묻어 있달까. 그래도 면접인데 깔끔하고 단정한 이미지도 중요하다 마음을 다잡고 더 많은 잡생각이 들기 전에 드레스를 정리하여 면접을 위해 옷장에 걸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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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895년 7월 15일.
후작가에서 보는 면접을 위해 준비를 마쳤다. 미리 정리해 옷장에 걸어 두었던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틀어 올려 아카시아 꽃무늬의 머리핀으로 마무리했다. 정리해 둔 자수와 추천서, 그리고 첼사 악보를 챙겨 집을 나섰다. 후작가와는 오후 2시 약속이라 부지런히 걸어가야 했다.
후작가의 문지기 기사들에게 면접 약속을 알리고, 그들 중 한 명의 안내에 따라 저택으로 향해 길게 뻗은 길을 걸었다. 천천히 로비로 들어서자 전에 만났던 집사가 마중 나와 인사를 하고 응접실로 나를 안내했다. 응접실에는 첼사와 피아노, 하프 등의 악기들이 마치 전시하듯 널찍한 간격을 두고 놓여 있었고, 곳곳에 비싼 비단으로 커버가 씌워진 소파와 의자들이 있었다.
시출러 후작 부인은 가운데 긴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하녀들은 벽에 붙어 서서 언제 불릴지 몰라 후작 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로인 남작의 조카 제스나 로인, 시출러 후작 부인께 인사 올립니다.”
치마를 펼치며 최대한의 예를 보여 인사했다.
“어서 와요, 로인 영애. 우선 추천서부터 볼까요?”
추천서를 꺼내 옆에 선 집사에게 건네자 집사는 이를 받아 들고 후작 부인께 공손히 드렸다. 후작 부인이 추천서를 꼼꼼히 읽고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이리저리 살폈다. 침을 티 안 나게 삼킨 나는 고개를 들고 눈을 살짝 내린 채 후작 부인의 말을 기다렸다.
“가져온 자수를 좀 볼까요?”
자수를 집사에게 건넸다. 집사에게서 자수 몇 장을 받아 든 후작 부인이 살펴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자수 솜씨가 아주 훌륭하군요. 그럼 첼사 연주도 좀 볼까요? 기론의 ‘애달픈 마음’을 연주해 주세요.”
준비해 간 악보 말고 다른 곡을 연주해 달라는 말에 잠시 당황했지만 내가 아는 곡이었기에 곧 첼사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첼사는 피아노와 비슷한 악기로 제국 두 번째 대의 왕후께서 직접 만들어 보급하게 된 악기였으니, 그 역사가 깊었다. 요즘 시대엔 첼사가 제국 귀족 영애의 필수 연주 악기로 피아노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천천히 건반 위에 두 손을 올리고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애달픈 마음’은 남작위의 남자와 공작가 영애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곡으로, 남작의 애타는 마음을 표현한 애절한 곡이었다. 많은 영애들과 부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는데, 애절한 멜로디와 극적 반전이 있어 고통과 사랑의 감정을 격정적이면서도 간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리하여 나는 애절한 부분에서는 가늘고 느리게 표현하고, 격정적인 부분에서는 폭발하듯 첼사를 연주했다. 연주가 모두 끝나고 연주 내내 감고 있던 눈을 뜨고 후작 부인을 바라보았다. 후작 부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하녀 중 유일하게 후작 부인의 곁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던 나이 많은 하녀―후작 부인의 오래된 몸종이거나 후작 자제들의 유모로 보였다―가 벌떡 일어나 박수를 열렬하게 치다 주위를 보고 놀라 조용히 다시 앉았다.
다른 가문이라면 벌을 줄 만한 일이었으나, 후작 부인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했다. 다른 하녀들도 하나같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 첼사 옆에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서서 후작 부인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작은 박수 소리가 응접실 입구에서 들렸다.
테일스 시출러 영식이었다.
모든 하녀가 그에게 인사를 올리는 가운데, 그는 응접실로 바로 걸어 들어와 어머니인 후작 부인께 인사하고는 그녀의 어깨에 한 손을 부드럽게 올리며 옆에 섰다.
“언제 온 거니?”
“첼사 연주가 시작될 때요.”
후작 부인의 말에 테일스 영식이 대답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나는 표정을 굳히고 무심히 눈을 내렸다. 마침내, 후작 부인이 입을 열었다.
“혹시, 우리 펠리체에 대해 들어 봤나요?”
“송구합니다만 들은 것이 많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우리 펠리체는 대대로 아들만 있던 시출러가에서 태어난 귀한 딸이에요. 어려서부터 가문의 어른들이 예뻐하여 고집도 세고 제멋대로이지요. 말타기나 나무 타기 같은 남자애들이 하는 놀이만 좋아하다 여인이 갖출 덕목인 첼사 연주나 자수 놓기를 배우게 하니 선생들을 몇 번이나 바꾸고도 아직 초보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우리 펠리체를 맡게 되면 부디 인내심을 갖고 가르쳐 주길 바라요. 입주를 원한다던데……. 언제를 원하나요?”
“빠를수록 좋습니다. 후작 부인.”
“그렇다면 3일 뒤에 들어오도록 하세요. 2층에 있는 방 중에 하나를 준비시켜 놓도록 하죠. 어디 또 면접 보았거나 볼 곳이 있나요?”
“백작가 두 곳의 면접이 5일 뒤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는 길에 집사에게 들러 백작가의 이름을 써 주고 가세요. 내가 고용했다 서찰을 보내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부인.”
고용이 되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후작 부인과 영식에게 예를 다해 깊게 인사했다. 테일스 영식의 유독 시린 빛의 푸른 눈도 따뜻하게 보일 만큼 나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가 나를 말없이 응시하며 할 말이 있는 듯 멈칫했으나 별 관심이 없는 나는 그의 눈빛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집사를 따라 응접실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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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력 895년 7월 18일.
후작가로 들어가는 날의 아침이 밝았다. 외출 드레스를 일찍부터 차려입은 나는 아침 식사 중인 데시 로인 남작의 가족 식당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보며 놀란 남작의 가족들이 식사를 멈추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그곳에 발을 들인 것이 몇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저는 오늘 남작가를 나가려고 합니다. 시출러 후작가의 가정 교사로 채용되어 오늘 입주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할 말을 간결하게 마쳤다. 데시 남작과 남작 부인이 무슨 소리냐며 소리치는 와중에도 예를 갖춰 그들에게 인사했다. 곧 남작 부부는 키워 준 은혜를 갚으려면 급여는 우리 쪽으로 붙이라는 둥, 이렇게 된 이상 기사를 꽤서 지참금 없이 혼인할 방도나 찾으라는 둥의 교양 없는 말들을 정신없이 뱉어 냈다.
예전의 나라면 주눅 든 채로 고개만 숙이며 실제로 급여를 이 집안으로 보내는 미련한 짓을 했을지 몰랐다. 그러나 전생에서의 삶을 이미 한 번 겪어 본 나로서는 이들의 말이 얼마나 가치 없고 의미 없는 으름장인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제멋대로 지껄이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나는 집 현관에 둔 단출한 짐을 들고 남작가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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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약속된 시간에 후작저를 방문하였다. 처리할 일이 있는 집사 대신 하녀장이 나를 안내했다.
“저는 메르네입니다. 후작가의 하녀장을 맡고 있습니다. 우선 짐을 여기 두시고 저를 따라오시지요.”
짐을 현관에 내려 두니 풍채 좋은 하인이 나의 짐을 갖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녀장은 나를 데리고 내가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을 설명하였다. 내가 식사할 작은 식당과 수업할 작은 응접실, 끝으로 나의 방을 안내받았다. 점심 식사 시간을 알려 주고 시간에 맞춰 늦지 않게 와 달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녀에게 모든 안내를 받은 나는 묵을 방을 살펴봤다. 침대, 책상, 옷장과 의자, 테이블이 있는 작고 아담한 방으로 정원이 보이는 꽤 안락한 곳이었다. 재력이 상당한 고위 귀족만이 갖고 있다는 상하수도 시설과 따뜻한 물을 겸비하고 있는 최고의 설비가 갖춰진 욕실도 방에 붙어 있었다. 맞은편 저쪽으로 3층에 창문이 몇 개 더 보였으나 누구의 방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가지 말아야 할 3층에 대해 생각하면서 후작저의 구조를 다시 상기했다. 후작저는 총 3층 구조로, 후작 부부의 침실과 응접실, 서재, 그리고 별도로 분리된 집무실과 귀빈을 위한 게스트 룸이 있었고, 테일스 후작 영식과 펠리체 후작 영애의 침실, 영식이 따로 쓰고 있는 집무실까지 모두 3층에 자리해 있었다.
2층은 집사와 하녀장의 집무실과 침실, 후작 가족의 다이닝 룸, 작은 식당 두어 곳, 기사의 집무실과 보좌관실, 후작가의 가신들을 위한 게스트 룸, 서재로 되어 있었다. 내 방이 있는 곳도 2층이었다. 1층과 2층이 모두 실내 통로로 연결된 별관은 후작저 양옆에 붙은 건물로 하녀, 하인 숙소가 저택의 변두리에 위치하고 식당, 빨래방 등의 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나에겐 중요한 장소는 아니었다.
1층 중앙과 전면 공간은 외빈들이나 기사 등을 위한 소규모 응접실 6곳과 예술 작품이 함께 있는 대규모 살롱, 그리고 주 식당이 자리 잡았다.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저택이었다.
나는 옷을 평상복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조금 낡긴 했어도 내가 자수도 넣고 몇 번 손보아 꽤 예쁜 연둣빛 슈미즈 드레스였다. 점심시간에 늦을세라 복도를 따라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