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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치 유어 스텝!

(WATCH YOUR STEP!) 1화


살면서 이렇게 후회한 적이 또 있었을까. 그날의 경험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지만 지금은 그저 시간을 되돌리고만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은제는 몸을 수그렸다.

앞에서는 중요한 얘기가 한창이었지만 은제는 그러거나 말거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럼 이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네. 수고해 주십시오.”

끝났다! 은제는 기뻐 날아갈 것 같았다. 드디어 여기서 벗어나는구나.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과장 옆에서 보이지 않게 인사를 한 은제가 후다닥 이사실을 나섰다.

“후아.”

은제는 이사실을 나오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과장이 옆에서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서 대리. 오늘 왜 이래?”

“네?”

“보고하는데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게 다 느껴지던데?”

뜨끔. 괜히 찔린 은제가 억지로 웃었다.

“에이. 긴장해서 그렇죠.”

“뭐…. 그런 거면 다행이고.”

과장이 은제의 모습을 여상하게 훑어봤다.

“그 꼴은 또 뭐야?”

“이, 이게 어때서요? 요즘 유행하는 안경인데!”

“그게?”

과장이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은제는 꿋꿋했다. 은제는 앞도 안 보일 것 같은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얼굴의 반이 가려지는 이상한 디자인이었다.

“과장님. 우리 빨리 나가요. 네?”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은제는 피눈물을 흘리며 과장의 팔을 잡아끌었다.

정말.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바쳐서라도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



휘황찬란한 불빛에 끈적한 음악. 살짝 야릇한 분위기까지. 사람들이 신나서 몸을 흔들고 술잔을 부딪혔다. 보통의 클럽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여긴 온통 남자뿐이라는 것이다.

은제는 클럽 구석에 기대어 못마땅한 기색으로 사람들을 훑어봤다.

“하아….”

건질 만한 애가 없네. 오늘은 꽝인가?

“하나는 건져야 하는데….”

은제는 작게 한숨을 쉬며 담배를 꺼내 클럽 밖으로 나갔다. 밖을 훑어보았지만 역시 쓸 만한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은제는 씁쓸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은제는 원나잇을 하기 위해 남자를 구하는 중이었다. 원나잇을 하는 데에 무슨 이유가 있겠냐만, 은제는 자기 나름대로의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은제는 오메가였다. 보통 오메가를 떠올린다면 알파에게 정신도 못 차리고 쾌락을 이기지 못하는 음란한 사람을 상상하지만 은제는 정반대였다. 한마디로 불감증이라고 할 만큼 느끼지를 못했다.

자신은 오메가인데. 아무리 애를 써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병인가 싶어 병원에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찾아갔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오메가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검사를 해 보아도 분명 자신은 오메가였다.

그런데 왜. 왜 자신은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지 못하자 결국 은제는 최후의 가제를 떠올렸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면, 이때까지 만난 상대방이 문제였던 게 아니었을까?’

그랬다. 은제는 죽어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은제는 불감증을 극복하기 위한 계획을 실행했다. 그 계획이란 단순무식하게도 닥치는 대로 사람을 만나서 원나잇을 해 보는 거였다.

몸은 축나지만 상대에게 문제가 있는 거라면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이 중에 하나는 걸리겠지, 은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밤을 지내 왔지만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포기할까….”

슬슬 지친다. 밤을 보내는 것도 어지간히여야지. 체력만 쭉쭉 깎아 먹고 느끼는 게 없으니 이건 뭐 노동하는 기분이었다.

은제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을 돌렸다. 그때, 툭. 은제가 몸을 돌리자마자 부딪혀 오는 사람이 있었다. 술에 취했는지 잔뜩 꼴아 있는 남자가 자기보다 더 커 보이는 남자를 겨우겨우 매달고 있었다.

“이거… 곤란하게 됐네….”

술에 취한 남자는 중얼거리다가 클럽의 간판을 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은제를 보았다. 은제가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가려 하자 술에 취한 남자가 덥썩 은제를 잡았다.

“뭐예요. 이거 놔요.”

“여기, 오메가 클럽이지? 너도 오메가고.”

은제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메가 클럽이란 보통 오메가가 몸을 팔고 그걸 사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을 말한다. 여기 2층이 오메가 클럽이고 3층이 알파 클럽이니까. 맞는 얘기긴 하지.

은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술 취한 남자는 그제야 얼굴을 폈다. 은제가 의문을 느낄 새도 없이 술 취한 남자가 들고 있던 사람을 패대기치듯 은제에게 넘겼다. 은제가 가까스로 받아 내자 술 취한 남자는 잔뜩 꼬부라진 발음으로 소리쳤다.

“거. 걔 러트 왔거든? 길바닥에서… 그럴 순 없으니까 네가 좀 데리고 가라. 돈은 여기 줄게.”

뭐라고? 은제가 남자를 간신히 붙들고 있을 때, 술 취한 남자가 개소리를 지껄이며 은제의 주머니에 돈을 넣었다.

“이, 이봐요! 이 사람 데리고 가요!”

은제가 소리쳐도 술에 취한 남자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제 길을 갔다. 은제는 멍하게 그 남자를 바라보다 상황을 파악했다. 저 남자가 자신에게 폭탄을 떠넘기고 간 것이다. 러트가 온 알파를.

은제가 재빨리 남자를 살폈다. 남자는 아직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러다 갑자기 여기서 눈을 뜨기라도 하면? 큰일 났다. 은제는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끼며 남자를 이끌고 얼른 근처의 호텔로 발을 옮겼다.

“헉, 헉….”

남자는 은제보다 훨씬 키가 컸다. 은제는 그를 옮기다가 깔려 죽을 뻔했다. 남자를 호텔로 어렵사리 옮겨 놓은 은제가 바닥에 가쁜 숨을 내쉬며 주저앉았다. 호텔비는 술 취한 남자가 준 돈으로 해결했다.

“난 할 만큼 했어….”

은제는 숨을 몰아쉬다가 호텔을 나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호텔까지 옮겨 준 건 사람으로서 할 도리를 한 거지만 러트는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다. 은제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덥썩 제 팔을 잡아 오는 손에 은제는 깜짝 놀랐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깨어난 남자가 은제의 팔목을 붙잡고 있었다.

“저기, 깨, 깨셨…나요? 저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은제는 괜히 멋쩍어서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다.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이 제 앞에 있으니 저 사람도 당황했겠지. 하지만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이젠 다 됐고, 피곤하니까 그만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근데 왜 안 놔 주지?

은제는 남자를 떼어 내기 위해 반대 손으로 남자의 손을 떼어 내려 했다. 응? 아니, 뭔 힘이 이렇게 세? 은제가 아무리 손을 떼 보려고 힘을 줘도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기요…?”

남자는 표정 없이 은제를 빤히 바라보다가 팔을 잡고 당겼다.

은제가 팔을 비틀며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남자는 억센 힘으로 은제의 허리와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어느새 은제는 침대에 홀랑 누워 있었다.

은제는 제 위에 올라타 있는 남자를 보고 그제야 깨달았다. 다른 알파들처럼 헉헉대며 달려들질 않길래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 남자는 러트 중이었다.

은제는 남자의 눈을 보고 거의 체념했다. 눈이 맛이 가 있었다. 그래. 어차피 한번 뒹굴러 온 건데 원나잇 한 셈 치지 뭐. 공칠 뻔했는데 잘됐네…. 은제는 간신히 자기 합리화를 했다.

“…씻고 하면… 네. 안 되겠죠. 급하시죠? 예….”

남자가 러트 상태긴 하지만, 그래도 말은 통하지 않을까? 씻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제 의견을 피력한 은제는 남자의 눈을 보고 곧장 제 말을 철회했다. 남자는 달려들지만 않을 뿐 은제를 잡아먹을 준비가 만반이었다. 말을 하며 은제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곧바로 은제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벌린 입술 사이로 혀가 들어와 엉겼다.

“읍, 으응….”

남자가 은제의 혀를 빨아들이며 입 안을 휘저었다. 혀가 치아와 입 안쪽, 그리고 입천장을 문지르자 은제의 몸이 얕게 떨렸다.

이, 이상하다. 몸이 왜 이러지? 남자가 입천장을 문지르자 은제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을 뻔했다. 입이 맞닿아 있어 신음은 삼켜졌지만.

타액과 타액이 섞이고 질척이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한 번도 이런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기에 왠지 이상함을 느낀 은제가 그만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굳이 집요하게 은제의 입술을 탐하지는 않았다. 남자는 고개를 돌린 은제의 뺨에 쪽, 입을 맞추고 바로 제 옷을 벗고 은제의 옷을 벗겼다. 그때까지도 은제는 혼란스러움에 머리가 복잡했다.

뭐지? 설마 입천장이 성감대였던 걸까? 그런 건가? 답은 나오지 않고 의문만 늘어 갔다. 하지만 의문이 다 이어지기도 전에 은제는 나체가 되어 남자의 손에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자, 잠깐.”

놀란 은제가 상체를 일으키려고 하자 남자가 다시 입술을 물어 왔다. 남자는 은제의 입술을 빨면서 손으로 은제의 유두를 문질렀다. 한 번도 만져 본 적 없는 곳에 남의 손이 닿자 낯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은제가 몸을 붉히며 남자의 입술을 무는 동안 남자는 은제의 아래쪽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래도 오메가라고 젖기는 한다. 남자의 손가락이 아래를 쑤시면서 개수를 늘려 가자 은제는 왠지 부끄러워졌다.

이 남자는 러트인데도 이성을 잃지 않고 성기부터 들이밀지 않았다. 그게 은제를 놀라게 했다. 나름 해 봤다고 생각했는데 러트임에도 이렇게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으, 응.”

손가락이 아래를 채우자 남자는 느릿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몇 번 움직였다 나온 손가락에 액이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그리고 은제가 빠져나가는 손가락을 느끼기도 전에, 남자는 은제의 입구에 귀두를 갖다 대고…….

바로 처박았다.

“아악!!”

은제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미친 거 아냐? 몸이 두 쪽으로 쪼개지는 고통에 은제의 눈꼬리에 저절로 눈물이 맺혔다. 배려고 뭐고 다 취소야! 아무리 풀어졌다 해도 죽을 듯이 아팠다. 헐떡이는 숨이 저 먼 곳에서 들린 듯했다.

은제가 넘어가는 숨을 뱉든 말든 남자는 인상을 찡그렸다. 아직 다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미, 미친….”

은제가 그제야 제 다리 사이에 있는 것을 쳐다보았다. 저게 뭐지? 저게 성기라고? 저게? 저게 내 안에 들어와 있다고? 근데 아직 다 들어가지도 않았다. 앞으로 펼쳐질 상황에 은제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아까 크기 좀 확인해 둘걸… 남자의 입술을 물고 빠느라 아래 상황을 확인하질 못했다. 아니, 애초에 저런 게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어?

남자는 은제의 다리를 최대한 벌리면서 허리를 움직였다. 커다란 성기가 빠듯하게 안을 채우자 그렇진 않을 거란 건 알지만 왠지 배가 가득 찬 것 같았다.

“자, 잠까마아안… 빼. 빼애… 아파….”

“참아.”

남자가 은제를 만나고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참긴 뭘 참아! 참을 사이즈가 되어야 참지! 이건 흉기야!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 말을 하고 싶어도 너무 꽉 들어차서 숨이 막혔다. 은제의 숨이 넘어가든 말든 남자는 봐주지 않았다.

남자가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아까 전 같은 힘을 발휘해 남자가 한쪽 다리를 잡고 박아 넣자 은제는 정말로 죽을 것 같았다. 몸이 마구 흔들렸다. 잔뜩 벌려진 뒤가 아픈데도 이상하게 은제는 튀어나오는 신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스물스물 올라오던 쾌락은 남자가 뒤를 쑤셔 내벽을 짓이기자 스파크가 되어 은제의 몸을 두들겼다.

“아흐윽, 아-!”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뒤틀던 은제는 남자의 성기가 어딘가를 찌르자 자지러졌다. 아까는 아파서 눈물이 났는데 지금은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아, 아…아으응. 앗, 하윽. 흐읏.”

은제가 느끼는 곳을 알아챈 남자의 속도가 빨라졌다. 남자가 빨라지자 은제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그만하라는 말도 못 한 채 벌벌 떨리는 손을 들어 허우적거렸다. 제대로 말이 튀어 나가질 않았다. 머리가 엉망이 되고 몸이 발발 떨렸다.

아까 키스할 때의 질척거리는 소리가 아래에서도 났다. 야한 소리였다. 은제는 남자의 목에 팔을 휘감고 허겁지겁 남자의 입술을 물었다.

“아, 하, 좋아. 좋아아 응, 좋아… 으응, 흑.”

은제는 정신없이 신음을 내뱉으며 남자에게 매달렸다. 눈물이 얼굴을 적시고 침이 줄줄 흘러나왔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도 없었다. 너무 좋았다. 너무 좋아서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으응, 히익. 아으윽!”

순간 남자가 허리를 쳐올리며 세게 박았다. 은제가 몸을 휘면서 사정했다. 아래에서도 뭔가가 흘러넘치는 것이 느껴졌다.

“흐윽, 흐으읍….”

은제는 흘러내리는 정액을 느끼며 뻑뻑해진 눈을 감았다 떴다. 하도 울었더니 눈이 그새 땡땡 부었다. 몸에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은제는 욱신거리는 몸을 추스르며 잠시 누워 있다가 씻으려고 했다. 그때였다.

“어…?”

은제의 몸이 뒤로 뒤집혀졌다. 은제가 의아함을 느낄 찰나 아래쪽에 무언가가 느껴졌다.

“자, 잠깐….”

은제가 말릴 새도 없이 아래에 다시 성기가 쑤셔 박아졌다. 은제는 또다시 비명을 질렀고 2차전이 시작되었다.



***



은제는 번쩍 눈을 떴다. 그러나 잠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았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근데 왜 이렇게 허리가 아프지. 말 못 할 그곳도 좀…이 아니라 많이 아픈 것 같은… 잠깐.

은제가 식은땀을 흘리며 도로록 눈을 굴려 제 옆에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끼익. 끽. 마치 고장 난 로봇처럼 은제의 목이 돌아갔다. 남자의 얼굴을 보자 어제의 일이 파도처럼 머릿속으로 쳐들어왔다.

한판… 한 거다. 제 몸이 그것을 했다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몸을 제대로 움직이는 게 힘들 정도로 어제 달린 거다.

남자는 아직도 자고 있었다. 혹시 몰라 코 밑에 손가락을 대 보니 가늘게 숨결이 느껴졌다. 은제는 남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자신이 이 시간에 일어난 건 기적이었다. 당장 기절해서 병원에 실려 가도 모자를 정도의 몸 상태였다. 바닥에 발 딛자마자 허리 부서지는 거 아냐?

바깥을 살펴보니 이제 겨우 동이 트고 있었다. 은제는 허리에 손을 얹고 조심조심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 허리는 물론이고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을 정도였다. 자신은 이렇게 아픈데 저 사람은 세상모르고 잘만 자고 있다. 한 대 때려 주고 싶었다.

세수를 하고 양치라도 하기 위해 무심코 거울을 본 은제는 무언의 비명을 질렀다. 눈은 하도 울어 대서 붕어 눈이고 입술은 통통하게 부어올라서 어디 맞은 것처럼 보였다. 목덜미가 벌레 물린 것처럼 얼룩덜룩한 건 보너스였다. 은제가 슬쩍 눈을 내려 아래를 보니 몸도 목덜미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여기서 끝난 게 다행인가… 러트 온 알파를 상대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저 사람이 잠들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저 사람이 잠들었을 때 딱 자신이 깨어난 것도. 아니면 이틀, 혹은 3일 내내 붙잡혀서 저 짓을….

은제는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저 사람이 혹시나 잠에서 깬다면 아직 러트가 끝나지 않았으니 또 달려들 테고 그때는 정말로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 재빠르게 피신해야 했다. 얼음장 같은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자 눈에 고여 있던 열기가 그나마 식는 듯했다. 샤워까지 하는 건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물소리 때문에 깰 수도 있으니까.

은제는 살금살금 욕실 밖으로 나가 옷을 주워 입었다. 옷을 입고 자고 있는 남자의 눈치를 보며 문 쪽으로 다가간 은제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문손잡이가 부드럽게 돌아갔다. 은제가 후다닥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은제가 나가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남자가 뒤척이기 시작했다.

“으음….”

얼굴에 비쳐 오는 햇살이 눈부셨다. 주원은 몇 번 미간을 찡그리다가 눈을 떴다.

“…뭐야.”

여기가 어디지? 주원은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눈을 찌푸렸다. 옷가지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이불은 저 멀리 날아가 있다. 그리고 자신은… 옷을 다 벗고 있었다.

“도대체 뭐지?”

주원은 어제의 일을 생각해 내기 위해 애썼다. 어제 도욱이랑 술을 먹은 것은 기억나는데… 하도 술을 먹여 대서 진탕 취하도록 마셨었지. 근데….

“그 이후가 기억이 안 나….”

술에 취해서 잠들었나? 그래서 호텔에 도욱이 버려두고 간 건가? 근데 집에 안 데려다 놓고 호텔에 놔둔 건 또 무슨 심보지? 더 희한한 건 술을 많이 마셨는데도 이상하게 숙취가 없었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네….”

주원은 옷을 입고 주머니 안에 있던 핸드폰을 켰다. 핸드폰을 켜자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가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그때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네.”

-이사님. 어디십니까?

주원은 두리번거리다가 탁자 위에 있던 호텔 주소를 불렀다. 곧 비서가 그쪽으로 가겠다고 답했고 주원은 통화를 끊었다.

자꾸 뭔가 잊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주원은 곧 머리를 털어 버리고 호텔 방을 나섰다. 마침 비서에게 호텔 앞에 와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주원은 비서의 차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무언가를 잊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지만 그건 도욱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몸을 씻고 머리를 말리고 있는 그때, 타이밍 좋게 도욱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야. 살아 있냐?

“보다시피.”

-난 어제 네발로 들어갔어.

도욱이 낄낄대며 웃었다.

“근데 나 어제 술 마신 다음이 기억이 안 나. 네가 호텔에 두고 간 거야?”

주원의 말에 도욱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무슨 헛소리를 하냐며 주원을 다그친 도욱이 물었다.

-무슨 소리야. 너… 기억 안 나?

“뭐가.”

-너 어제 러트 왔었잖아.

“뭐?”

도욱의 말에 따르면 어제 술을 과하게 마신 후 갑자기 자신이 러트가 왔었다 했다. 주원이 의문을 표했다. 주기가 전혀 아닌데, 왜지?

-아무튼 네가 갑자기 러트 와서 얼마나 당황했는데. 나도 술에 꼴아 가지고 너 데리고 돌아다니다가 오메가 클럽 있어서 거기에 던져 넣었다. 클럽 앞에 오메가가 있더라고. 그래서 그 오메가에게 너 넘기고 집에 갔지.

그 뒤로 이어지는 도욱의 말에 주원이 소리 질렀다.

“미쳤어?”

-그럼 어떡하냐? 길에서. 오메가 구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어쩔 뻔했냐고.

도욱은 주원과 이야기를 하다 깨달았다. 주원이 몹시 평온하게 자신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러트라면 아직도 침대에서 뒹구느라 이성을 잃어버려 전화를 할 수조차 없을 텐데.

-근데 이상하다. 너 괜찮냐? 러트 벌써 끝났어?

도욱의 말을 듣고 나서야 주원은 제 몸 상태가 지극히 정상이란 것을 생각해 냈다. 전날 러트였던 것도 기억이 안 날 만큼 말이다.

“…끝난 것 같아.”

-진짜? 벌써? 이야. 너랑 잔 오메가가 완전 힘 좀 썼나 본데.

“입 다물어.”

주원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러트가 끝난 거라면 오메가랑 잔 게 분명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 내려 애써도 오메가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아예 술에 취한 뒤부터의 기억이 흐릿했다. 하, 주원이 인상을 쓰며 머리를 짚었다.

“…사실 술 취한 이후가 기억이 안 나. 러트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너 어제 어디서 잤는데?

“호텔. 근데 내가 호텔에서 일어났을 땐 아무도 없었어. 호텔비도 이미 지불되어 있었고.”

정말 러트를 보내기는 한 걸까. 그런 의심이 들 만큼 하루 만에 러트는 끝났고 자신의 러트를 끝내 준 오메가는 눈을 뜨니 환상처럼 사라져 있었다.

“나랑 밤을 보냈다는 그 오메가… 도대체 누구지?”

주원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핸드폰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