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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프롤로그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도 역시나 사무실에 마지막까지 남아 계신 분은 최 팀장님이었다. 나는 오늘도 하루 종일 그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 8시가 다 되어서야 사무실을 나올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은 6시 정각이 되면 모두 사무실을 떠났지만, 내가 오메가여서 그런지 아니면 내 천성이 이런 것인지 상사보다 먼저 하는 퇴근이 익숙지 않았다.
“내일 보지.”
오늘도 언제나 같은 말. 최 팀장님은 늘 그렇듯 오늘도 초연한 눈빛으로 내 퇴근 인사를 받아 주셨다.
나는 회사 건물을 나서자마자 미세 먼지든 황사든 신경 쓰지 않고 공기를 폐부로 깊이 빨아들였다. 사무실에 있으면 언제나 숨이 막혔다. 언제는 한번 과호흡이 아닌가 해서 병원도 가 봤지만, 단순히 스트레스라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었다.
회사에서는 숨쉬기 힘들다는 사실을 안 뒤로 나는 그 원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오메가 전용 병원에 가 보기도 하고, 사무실 책상 위에 가습기를 두기도 했으며, 스트레스에 좋다는 디퓨저도 가져다 두었지만, 여전히 사무실은 숨 막혔다.
하지만 지난달, 난 드디어 그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다. 원인은 바로 내게 언제나 똑같은 퇴근 인사를 건네는 최 팀장. 그 알파였다.
내가 원인을 알아낸 것은 순전히 요행이었다. 최 팀장이 회사 일로 인해 중국 출장을 갔기 때문이다. 지난주, 그가 출장을 간 사흘 동안 단 한 번도 숨이 막힌 적이 없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고통의 원인을 발견한 나는 드디어 앓던 이가 빠진 듯 후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답답했다. 이제 입사한 지 3개월이 된 신입 사원인 내가 감히 몸이 조금 좋지 않다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뒤로 왜 최 팀장일까에 대한 고찰을 하기 시작했다.
「가설 1. 최 팀장의 알파 향이 남들보다 진하다. 」
이 가설은 바로 기각되었다. 사무실에는 나 외에도 많은 오메가, 알파들이 있는데 굳이 최 팀장의 향에만 반응한다는 사실이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를 다니는 모든 알파들은 향을 지우는 보조제를 먹는 것이 의무였다. 그러니 최 팀장의 향 때문에 숨이 막힌다면 그의 잘못이 아닌 순도 백 퍼센트 내 잘못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다음 가설은 어떨까?
「가설 2. 최 팀장이 일부러 나에게만 향을 흘린다. 」
페로몬 향을 특정인에게만 흘리는 것은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극우성 알파만이 하는 일이었으므로 이도 기각이었다. 극우성 알파들은 대외적으로 이미 유명해 전 세계에 모르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러니 이렇게 작은 중견 기업에 다니는 최 팀장이 극우성 알파일 확률은 없다.
게다가 굳이 팀장님이 나에게만 페로몬 향을 흘릴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본질적으로 페로몬 향이란 타인을 유혹하기 위해 내뿜는 것으로 애초에 팀장님이 날 유혹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최 팀장님 곁에만 있으면 숨이 막히는 걸까?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곰곰이 머리를 굴려 보았다.
아 설마.
「가설 3. 최 팀장님이 날 싫어하기에 무의식적으로 눈치가 보여서.」
이번 가설은 나름대로 신빙성이 있었다. 애초에 최 팀장님께 칭찬을 듣거나 격려의 한마디를 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3개월 동안 팀에서 제일 고참 상사인 그에게서 들은 말이라고는.
‘아직도 못하는 건가?’
‘설마, 아직 모르는 건가?’
‘이런 실수를 왜 하지?’
하는 질책과 꾸짖음뿐이었다. 그럴 때면 난 언제나, ‘죄송합니다. 다음엔 꼭 주의하겠습니다.’ 하는 당연한 말을 내뱉었다. 마치 초등학교 때 ‘How are you?’라고 물으면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기계적으로 배운 것처럼 최 팀장님과 나 사이에는 언제나 비슷한 대화만이 반복되었다.
물론 이렇게만 생각하면 그냥 평범한 상사와 일을 잘 못하는 신입 사원 같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주 금요일에 있었던 회식 자리가 내가 세운 이 가설 3번에 신빙성을 부여해 주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접시에 물을 받아 두고 코라도 박아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건 내 일생일대의 흑현대사와도 같았고 최 팀장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깨닫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날은 최 팀장님이 중국 출장에 가서 프로젝트를 잘 성사시킨 일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 금요일 저녁이라 다음 날 출근이 없어 부담이 없기도 했고 무려 한우 회식이었기에 직급 관계없이 ‘구워라, 먹어라, 마셔라’가 난무했다.
평소에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기도 했고, 술을 마시면 페로몬을 잘 주체 못 하는 스타일이기도 해서 최대한 소주는 마시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김 대리님이 주문한 청주가 문제였다. 청주는 애초에 맥주만큼 도수가 낮기도 했고, 청주를 따뜻하게 해서 마시면 알코올이 다 날아간다는 얼토당토않은 비과학적인 말을 믿은 내 죄가 무척이나 컸다.
한 잔 두 잔 오고 가는 사이 한 병 두 병 비는 것은 금방이었고 또 청주병이 소주병보다 월등히 큰 것도 문제였다. 어느 순간 마치 추석 차례 때나 볼 법한 크기의 청주를 나 혼자 다 비워 버렸다.
‘자! 자! 그럼 우리 다 같이 2차 갈까? 2차?’
김 대리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빙빙 울리고 나서야 나는 취했음을 깨달았다. 다행히도 모두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 쉬고 싶은 것인지 2차에 호응하는 사람들은 온전히 취한 나 단 한 명뿐이었다.
‘네―! 가요 흐응.’
나는 헤실헤실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슬슬 집에 갈 준비를 하던 사람들이 기겁하며 이미 술이 나인지 내가 술인지 모르게 취한 나와 김 대리님을 모두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그저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대답만 잘했고, 김 대리님은 한술 더 떠 최 팀장님까지 끌어들이려 했다.
‘그럼 우리 귀염둥이 신입이랑 나랑 단둘이만 갈까? 아, 맞다 맞다! 팀장님이 있어야지! 법카를 써야지! 하하하!’
‘제가 다음에 더 좋은 곳으로 자리를 마련할 테니 오늘은 이만하시죠.’
다행히 최 팀장님은 이미 취한 김 대리님을 말리며 회식이 파하는 것을 정리하려 했다. 그래. 여기서 나도 네 하고 팀장님의 말씀을 들었어야 했다. 그날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평소 같았으면 팀장님이 죽어라, 하면 죽는시늉이라도 할 나인데.
‘끄윽, 그럼 최 팀장님이 재원 씨 데려다줘요. 2차는 다음에 나한테만 쏘―기!’
그렇게 김 대리는 나를 버렸고, 다른 팀원들도 방향이 다르다며 날 극악무도한 최 팀장님 곁에 남겨 두고 떠났다.
그리고 그 시점부로 내 흑현대사가 시작되었다. 앞의 이야기는 흑현대사 축에도 끼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동안 팀장님께 들었던 꾸중이 쌓여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술에 취해 허세라도 부리고 싶었던 건지 나는 최 팀장님께 추태란 추태는 다 부리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것 그 이상이 더 있을 듯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그날의 나는…….
‘아아! 나 2차 갈 거야! 재원이 2차 갈 거야!’
‘하, 신입. 집이 어디지?’
‘신입이 아니야! 김재원! 재원이란 말이야, 으어어엉. 집에 갈래 안 놀아! 으어어어엉!’
일단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는 신입이 아닌 재원이라고 불러 달라며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던 내 모습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그 장면을 떠올리며 얼마나 이불을 찼는지는 망태 할아버지도 모를 것이다. 심지어 내 주정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걸 시작으로 계속되었지.
아무래도 술을 마셔 상황이나 앞이 잘 보이지 않던 나는 집이 아닌 이상한 골목을 따라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그것도 그냥 걸으면 괜찮겠는데, 비틀비틀 갈지자를 그려 가며 걸으니 지나가던 사람들과 부딪치기 일쑤였고, 술을 마셔 제어가 되지 않는지 페로몬 향을 줄줄 흘리기 바빴다.
알파인 최 팀장은 한숨을 쉬고 코를 틀어막은 채 내 뒤를 쫓아왔다. 그리고 내가 지나가던 사람들과 딱 세 번 정도 부딪쳤을 무렵, 어마어마한 악력으로 내 어깨를 부숴 버릴 듯 잡더니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아, 아퍼!’
내 외마디 비명이 끝나자마자 그가 내 귓가에 분명…….
‘얌전히 굴어 따…… 전에.’
라고 속삭였던 것 같다.
그렇게 알 길 없는 말을 듣고 왜인지 난 바로 기절해 버렸다. 아무래도 알코올을 일정 수치 이상 마셔서 기절한 듯했다. 그리고 하필 그가 작게 소곤거린 말이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기억나지 않았으면 하는 주정 부린 일은 전부 기억이 나는데 말이다.
그래도 난 알 수 있었다. 술에 취해 주정 부리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였겠는가? 게다가 ‘따’로 시작하는 말은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나는 그 상황을 바로 추리할 수 있었다. 분명 최 팀장님이 내게 하신 말은.
‘따귀 때리기 전에!’
이것이 분명했다. 따귀 말고 다른 경우의 수는 없었다. 게다가 다음 날, 멍이 든 어깨하며 욱신거리는 몸을 미루어 보아 따귀가 아니라 안 보이는 곳을 몰래 몇 대 친 거 같기도 했다. 뭐 어쨌든 진실은 최 팀장님만 알 터였다.
나는 일단 그의 그 숨 막히는 분위기를 어떻게 해야만 했다. 이렇게 매번 숨을 골골 쉬며 회사를 다닐 순 없었다. 게다가 내일채움공제까지 하는데, 어떻게 회사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곧 죽어도 내일채움공제 기간인 2년은 다녀야 했다.
그러니 어떻게든 최 팀장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만 했다. 분명 내가 숨쉬기 어려운 것은 그날 이후로 눈치를 너무 봐서임이 분명했으니까. 최 팀장님께 예쁨을 받는다면 그래도 고민이 해결되지 않을까?
세 번의 가설 끝에 드디어 결론을 냈음에도 난 아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대체 상사에게 어떻게 하면 예쁨을 받을 수 있는 걸까? 나는 마음속으로 일명 최 팀장님께 예쁨 받는 사원 되기 프로젝트를 짜기 시작했다. 그래, 일단 최대한 길고 가늘게 회사를 다니는 것만 생각하자.
내가 최대한 잘하면 되겠지, 게다가 속담에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일단 떡 하나 더 받아먹는 입장에서 시작해 최애 사원으로 거듭나는 날까지 파이팅이었다.
그렇게 나는 회사에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연신 파이팅을 외쳤다. 다음 주 월요일 그 파이팅이 무너지기 전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