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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Pro.
매일 밤 죽은 언니가 찾아온다.
빼앗긴 삶을 되찾으려는 사람처럼.
내가 아직 스물두 살이었을 때, 그러니까 5년 전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비가 유독 거세 걷기조차 어려운 날이었다. 바닥에 떨어지는 빗줄기가 후드득후드득 둔탁한 소리를 냈다.
“왜 하필 너야?”
언니는 화를 내고 있었고,
“하…….”
나는 지쳐 있었다.
“왜 하필 너냐니까? 정유주!”
계속 같은 소리만 하는 언니가 지겨워 나는 조금 귀찮은 얼굴을 했다. 무시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빗소리가 거센 탓에 언니의 목소리는 선명하지 않았다.
“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아악!”
머리채를 잡혔다. 언니는 얼굴만 곱지 잔인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자매간의 싸움이라 하기엔 조금 살벌했다.
“이거 안 놔?”
“내가 거길 얼마나 가고 싶어 했는지 알면서! 그걸 알면서 네가 어떻게 그래!”
언니는 거의 울면서 화를 냈고 잡은 머리채를 휘둘렀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작고 마른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바닥에 쓸린 무릎이 아팠다.
“내가 뭘! 내가 뭘 어쨌는데!”
몇 번을 그냥 휩쓸리다 참을 수가 없어 내지르자 언니는 당황한 낯빛을 했다. 나는 언니의 그런 얼굴이 통쾌했던 것 같다.
“그렇게 궁금하면 교수님한테 물어봐!”
“너……!”
언니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지만 떨리는 손끝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언니와 나의 사이가 개판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같은 날, 같은 배에서 나고 자란 우리는 얼굴과 체형, 목소리까지 같은 일란성 쌍둥이였다. 덕분에 언니와 나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싫어하는 것과 끔찍해하는 것들이 비슷했다. 소위 취향이라 불리는 것들.
중학생이 되었을 즈음, 나는 미술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피아노 학원에 재미를 붙이지 못한 언니도 함께였다. 다행히 둘 다 재능이 있었다.
문제는 나이가 조금 들면서 생겨났다. 그저 취미 생활 정도로 그칠 줄 알았던 미술에 대한 애정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커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애정과 재능이 함께 자라지는 않았다. 특히나 언니의 재능이 그랬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던 부모님은 그것을 큰 문제라 생각하지 않았다.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미래에 대한 부담도 주지 않았다.
언니는 첫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 생활을 했다. 아마 그때 언니는 큰 정신적 타격을 받은 듯했다. 매일 눈이 벌게진 채로 그림을 그렸다. 곱게 자란 탓에 언제 어디서나 공주님 역할을 맡아 하는 언니에게 재수 생활은 그렇게나 지옥인 듯했다.
그래서인지 틈만 나면 내게 화를 냈다. 말은 안 했지만 먼저 대학에 붙은 나를 시기해서 그런 것임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더욱 극성이 되었다. 안 그래도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금쪽같은 내 새끼였던 언니가 안쓰러웠던 것인지 어디서든 어화둥둥 내 새끼를 실천했다. 덕분에 나는 조금 외로웠지만 그것이 억울하지는 않았다. 언니에게 밀려서 사는 것쯤이야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겪은 일인지라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언니는 나와 같은 대학에 붙었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기에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아마 그때부터이지 않았을까. 언니가 나를 연적 대하듯 미워하기 시작한 것이.
“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언니는 조금 전과 달리 한참이나 낮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도 알잖아!”
나는 악을 지르듯 대답했다.
언니와 내가 다니는 대학에는 학생 지원 프로그램이 꽤 많았다. 그중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매년 여름, 학교의 지원으로 미국과 유럽 미술관의 전시를 관람하고 각종 아트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추천은 전적으로 교수의 권한이었다. 보통 성적이 좋고 학과 생활에 열심인 사람들이 뽑혔다. 매년 다섯 명의 학생이 선택되었는데 그중 한 명은 나였고, 언니의 이름은 없었다.
“내가 언니보다 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날아온 언니 손이 빨랐다. 돌아간 고개가 아프고, 붉어졌을 뺨이 아렸다.
때리기는 자기가 때렸으면서 나보다 더 상처받은 얼굴을 한 언니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다.
“언니가 나보다 못하니까.”
그런 말을 한 이유는.
“언니 실력이 형편없으니까.”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려 가는 걸 보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언니 그림보다 내 그림이 더 나으니까!”
퍼붓고 나니 조금 개운했다
한참 전에 놓친 우산 탓에 빗물이 눈을 가려 언니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거리는 조용했다. 사람은 없었고 자동차 소리만 간간히 들렸다.
언니는 내가 몸을 일으키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딱히 소리를 지르지도, 한 대 더 때리려는 모습을 취하지도 않았다. 그저 멍하니 자리를 지켰다.
그러다 조용히―
“맞아.”
속삭였을 뿐이다. 그리고 순식간이었다.
“…….”
언니는 차도를 향해 힘껏 뛰어들었다.
쾅.
무거운 것이 결코 가볍지 않은 생명을 들이받았다. 아니다. 가볍지 않은 생명이 무거운 것을 향해 뛰어들었다. 언니는 너무 쉽게 밀려났고 차들은 너무 쉽게 달렸으며 언니는 너무 쉽게 쓰러졌다.
“언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온통 붉어진 뒤였다.
그날부터였다. 딱 그날부터 언니는 매일 밤 나의 꿈속을 거닐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한 것은 다 언니 덕분이었다.
땀으로 흥건한 목을 닦아 내며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반.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신경 안정제를 삼켰다.
9월의 시작이었다.
#1. 비상구
따뜻한 물로 몸을 푼 유주가 느릿한 몸짓으로 출근 준비를 했다. 하얀색 블라우스를 꺼내고 그에 어울리는 검은색 치마까지 익숙한 듯 능숙했다.
그때 울리는 전화벨. 이른 시간에 전화할 사람이 한정적이라 유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응, 엄마.”
기계적으로 미소를 지은 유주가 전화를 받았다.
― 어디 안 좋니?
엄마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응?”
― 목소리가 안 좋네.
걱정이 깃든 목소리는 제법 상냥하다.
“아니야. 아침이라 목이 가라앉아서 그래.”
― 일이 많이 힘드니?
“힘들기는. 괜찮아.”
― 요즘 너희 미술관 바쁘다며. 뉴스에도 나오더라.
유주가 일하는 곳은 ‘리연’이라는 이름의 미술관이었다. 배꽃이 흐른다는 뜻의 리연 미술관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립 미술관이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그 아들에서 다시 아들로 이어지는 세습 경영 방식이 문제라고 떠드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표를 맡았던 이들 모두가 훌륭한 수장이었음을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때문에 유주는 아주 어릴 적부터 리연에 대한 열망을 품었다. 화가로서의 열망이 기획자로서의 열망으로 조금 수정되기는 했지만 딱히 나쁘지 않았다.
그런 리연 미술관이 최근 자국보다 해외에서 더욱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근래 기획한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대박을 터트린 데다 얼마 전 취임한 대표의 스타성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리연의 이전 수장이자 현 대표의 아버지였던 남자는 온건한 성품과 안정적인 경영 능력을 지녔던 이였다. 하지만 그는 몸이 약해 툭하면 병마에 시달리기 일쑤였고 5년 전, 끝내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를 대신해 취임한 그의 아들은 젊었고 공격적이었으며 본능적이었다. 본격적인 대표직을 맡은 지는 이제 겨우 5년인데 눈길 한 번에 천재를 찾아내고, 손짓 한 번에 돈방석을 가리킨다나―
그런 그가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기획했다는 전시가 조만간 열릴 예정이었다. 소문은 또 얼마나 자극적인지. 그 전시가 대한민국은 물론 전 미술계를 뒤흔들 거란 이야기가 파다했다. 미술관이 북새통을 이루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괜찮아.”
물론 유주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 그래?
의심이 깃든 질문에 으레 그렇듯 정해진 대사를 내뱉었다.
“내가 화가인 건 아니잖아.”
엄마가 무얼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엄마는 제가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 화가가 아닌 기획자로의 삶을 사는 것도 다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에게 그림은 언니의 못다 이룬 꿈이었으니.
“신입이라 하는 일도 없어. 기획팀은 사람도 많아서 나 같은 신입은 가만히 있는 게 일하는 거야.”
그렇게 엄마를 다독였다. 5년 동안 해 온 일이라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언니가 죽고 엄마도 지옥을 헤맨 걸 모르지 않았다.
넉넉한 집안에서 고생 한번 하지 않고 자란 엄마는 딸을 잃은 상실감으로 반쯤 미쳐 지냈다. 하루는 종일 웃다가 또 하루는 자지러지듯 울다가 또 하루는 집 안에 있는 것들을 죄 부술 듯 화를 냈다. 그녀를 사랑하던 남편도 결국 지칠 만큼의 광기였다.
어린 나이에 죽은 언니, 미쳐 버린 엄마, 떠난 아빠. 유주는 죄책감과 억울함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걸으며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미술도 포기했다. 이젤 앞에 앉기만 하면 불같이 화를 내는 엄마 때문에 배움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죽은 언니의 소망이었던 그림을 살아남은 동생이 계속 영위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라고 어렴풋이 이해할 뿐이었다.
― 기획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진 것이 느껴졌다. 미술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도 지금과 비슷한 태도였다. 그런 엄마 밑에서 유주는 전공을 서양화에서 미학으로 변경했고 작가의 삶 대신 기획자의 삶을 선택했다. 차마 그림 곁을 떠나는 것은 자신이 없던 터라 그것이 최선이었다.
“별로.”
― 얘는.
책망하는 듯 감췄으나 엄마의 목소리는 만족스러움을 띠었다.
― 오늘 집으로 퇴근할 거지?
“응? 왜?”
3년 전 독립을 한 뒤로 웬만하면 본가를 찾지 않는 유주였다.
― 왜라니. 내일 유하 기일이잖아.
아, 하는 탄식과 함께 달력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하는 날. 빨간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9월의 어느 날이었다.
“오늘 회식이라 늦을 거야. 아침 일찍 갈게.”
― 다른 날도 아니고 네 언니 기일인데……. 늦더라도 여기로 퇴근해.
“아침 일찍 간다니까…….”
곤란한 듯 말을 늘이자,
― 언니가 서운해해.
단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유주가 입술을 씹었다. 그래, 언니는 저에게 서운할 것이 많았다.
― 알겠지?
엄마가 재촉했다.
“알았어. 늦게라도 갈 테니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 그래. 언니가 너 보고 싶어 할 거야.
그래? 이미 오늘 새벽에도 봤는걸. 속으로 생각하며 새벽에도 삼킨 안정제 두 알을 또 한 번 씹었다.
― 아 참, 수국 사 오는 거 잊지 마.
매년 언니의 기일에는 수국이 필요했다. 작은 꽃망울 여러 개가 한곳에 모여 핀 크고 화려한 꽃을 언니는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하얀색이 제일이라 했다. 화려할수록 얌전해야 예쁘다고 했던가. 언니만의 미학이 있었다. 화려하고 수려하나 튀지 않고 정갈한 것.
“걱정 마. 점심시간에 미리 사 둘게.”
― 그래. 우리 딸. 오늘 하루도 파이팅.
힘이 하나도 나지 않는 파이팅이었다. 종료 버튼을 누르려는데,
― 아 참, 유하야.
엄마가 불렀다. 제가 아닌 유하를. 제가 아닌 언니를.
― 감기 조심하렴.
엄마는 언니가 죽은 지 5년이 되도록 미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