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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3. 재회





잠에서 깬 유주가 시간을 살폈다.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오래도 잤네.”

잘 먹지 않던 수면제를 삼킨 탓이었다. 덕분에 잠은 오래 잤는데 그만큼 꿈도 오래 꾸었다.

늘 잠이 부족하면서도 수면제를 잘 먹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수면제를 먹으면 꿈에서 도망치려 해도 깰 수가 없었다. 그걸 모르지 않으면서 수면제를 먹은 건 근 5년 만에 경험한 단잠 때문이었다.

“아앗―”

몸을 일으키려 움직이자 신음이 샜다. 발목의 통증이 어젯밤의 이야기를 되살렸다.

비상구, 수국, 계단, 그리고 최도현.

모든 기억이 몽롱한데 발목은 아파 현실감이 느껴졌다.

어젯밤의 평화가 욕심에 불씨를 당겼다. 차라리 포기하고 살 때는 괜찮았는데, 영원히 악몽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는 괜찮았는데,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자 욕심이 생겼다. 수면제 또한 그것의 결과였다. 어쩌면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뭐, 역시나 착각이었지만.

도현과 저는 밤 9시가 넘은 시각이 되어서야 미술관을 나섰다. 그는 저를 데려다주겠다고 했고 저는 그런 그에게 엄마 집이 아닌 혼자 사는 집 주소를 말했다. 단잠의 여파였을까. 이성보다 본능이 앞섰다. 그냥 쉬고 싶었다. 엄마고, 언니고 그냥 쉬고 싶었다.

운전하는 내내 조용하던 그는 집 앞에 도착하기까지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행동은 다정해서 차 문을 열어 주고, 저를 일으키고, 또 현관문 앞까지 부축했다. 집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내일 어디 가지 말고 쉬어.’



당부 같은 명령을 하기는 했다. 그래서 그냥 ‘그럴게요.’ 대답했다.

꺼 둔 핸드폰이 생각났다. 전원 버튼을 길게 누르고 기다리자 불이 들어왔다. 단발적인 진동이 화를 내듯 계속됐다.

“무슨 전화를 이렇게나…….”

부재중 전화만 32통이 와 있었다. 그중 31통이 모두 엄마에게서 온 전화였다. 집착의 무게가 상당했다. 그제야 흐린 정신이 맑아지고 현실이 두려워졌다.

왜 그랬을까. 왜 그런 미친 짓을 했을까. 핸드폰의 전원을 끄는 것도 모자라 집으로 퇴근하겠다는 약속을 왜 어겼을까. 온 신경이 그에게 쏠려 벌벌 떠는 동안 다른 것들은 생각도 않고 무시했다. 제정신이 아닌 어제였다.

엄마는 어젯밤 내내 잠을 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내 화가 났을 것이다. 아니, 언니를 생각했다면 그저 슬퍼했을 것이다.

엄마는 혼자서라도 언니에게 다녀왔을까 궁금해졌다. 원래대로라면 납골당에 다녀오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때, 쿵쿵쿵―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쿵쿵쿵―

문밖의 사람은 대답이 없었다.

“누구세요?”

다시 한번 묻자 ‘엄마야.’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엄마가 눈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절로 뒷걸음질이 쳐졌다.

“유주야, 문 열어.”

목소리는 차분했다. 영영 피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빨리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후에 홀로 납골당에 다녀온 후 엄마에게 전화로 사과해야지 생각했는데.

“아, 엄마구나. 잠깐만.”

침대 위 이불을 대강 정리한 후 그리 넓지도 않은 집 안을 대강 훑어보았다. 그러다 다시 쿵쿵쿵― 소리가 들려 무언가 해 보려던 것들을 포기하고 문을 열었다. 엄마가 보였다.

검은색 원피스에 진주 목걸이까지 한 것을 보니 이미 납골당에 다녀온 것 같았다. 눈이 벌겠다. 어떤 몸짓으로 울었을지, 어떤 표정으로 흐느꼈을지 보지 않아도 그릴 수 있다.

“집에 있었니?”

엄마는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내가 미안……!”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고개가 돌아갔다. 엄마는 손이 맵다.

“엄마…….”

덜컥 겁에 질린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너,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몰랐니?”

엄마는 붉어진 눈으로 매섭게 노려보았다. 딸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엄마, 내가…….”

“너한테 언니는 아무것도 아니야?”

“엄마…….”

“네 불쌍한 언니는 안중에도 없어?”

차분하던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지더니 이내 쩌렁쩌렁해졌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너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거야?”

“엄마…….”

“너만, 너만 살면 되는 거냐고!”

증오가 가득한 목소리였다.

엄마는 사고 현장에 제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무쳐 했다. 사고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사고를 막지 못한 저를 원망했다. 매 순간 사랑스럽고 명랑하던 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엄마가 저를 밀치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구두를 벗지도 않은 채 바닥을 밟으며 더럽히는 것이 아주 의도적이었다. 거실을 지나쳐 방 안으로 향한 엄마는 옷장을 열더니 잘 걸린 옷들을 바라보며 조소했다.

엄마는 장례식 날 하얗고 소박한 수의를 입은 언니를 늘 안타까워했다. 한평생 공주님처럼 자라 밝고 어여쁜 것만 입고 두르던 언니가 그리 얌전하게 떠난 것이 한인 듯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유독 화가 나는 날이면 저의 옷들을 헤집어 품에 안고는 엉엉 울었다.

“이기적인 것!”

오늘은 그 정도로는 화가 풀리지 않는지 옷들을 끌어내 바닥으로 내던졌다.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예쁘고 고운 옷일수록 더 화가 나는 듯했다.

“엄마!”

“졸업하고 취업하니 눈에 뵈는 게 없지!”

“엄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런 거 아니야. 응?”

“저리 비켜, 이 나쁜 것!”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아무리 말리려고 매달려도 엄마는 멈추지 않았다.

“너 같은 걸 동생이라고 둔 유하가 불쌍해. 알아?”

더 이상 헤집을 옷이 없어지자 엄마는 화장대 위에 놓인 물건들을 바닥으로 쓸었다.

“너는 언니한테 미안하지도 않니?”

“엄마…….”

“혼자 살아 있는 게 미안하지도 않아?”

제가 마지막으로 언니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엄마는 화를 냈다. 만약 엄마가 알게 된다면 자지러질 것이다. 아마 저를 죽이려고 하지 않을까.

결국 유주는 흐느끼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빌었다.

“엄마, 미안해. 응?”

한때는 다정했던 엄마의 무릎에 매달려 빌었다. 내가 언니를 죽였어. 영원히 혼자만 알고 있을 사실을 목 끝에 매단 채.

“그만해. 내가 잘못했어. 이제 그만해. 응?”

“저리 비켜!”

“아앗!”

밀어 내는 힘에 균형을 잃은 순간, 어제 다친 발목이 욱신거렸다. 아아―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줄곧 화를 내던 엄마가 조용해진다.

“아파?”

실수였다.

“엄마…….”

“겨우 그 정도로 아파?”

엄마는 제가 ‘엄살’ 부리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다.

“유하는 죽었는데 너는 겨우 그 정도로 아파? 아프다는 소리가 나와?”

그 어떤 통증도 죽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탓이었다. 덕분에 5년간 아프단 소리 한번을 제대로 못 하고 살았다.

“네 언니가 너를 얼마나 아꼈는데.”

죽음은 많은 것을 미화한다.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엄마…….”

“죽어서 언니 얼굴을 어떻게 보려고 그래!”

엄마는 소리치며 통곡했다. 억울하다는 듯 가슴을 치다가, 하늘을 보며 울기를 반복하다 종국에는 언니 이름을 부르며 흐느꼈다.

“유하야…….”

그러고는 구석에 웅크린 저에게 다가와 세상 따뜻한 손길로 얼굴을 어루만졌다. 증오로 가득했던 눈은 연민과 그리움이 대신 자리하고 있었다. 엄마는 저를 보며 언니를 보고 있었다.

“보고 싶어. 보고 싶어, 우리 딸.”

이런 순간이 올 때마다 죽는 기분이 들었다. 언니가 엄마의 눈과 입을 통해 살아나는 만큼 저는 딱 그만큼 죽었다.

“네가 살았으면 좋았을걸…….”

“흐으…….”

살아 있는 것이 죄였다.

“네가……. 네가 살았으면…….”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언니가 아닌 제가 죽었어도 엄마는 지금처럼 미쳤을까. 제가 아닌 언니가 살았어도 이렇게 슬퍼할까. 언니에게도 네가 아닌 유주가 살았어야 했다고, 제가 살았어야 했다고 말했을까.



* * *



엄마의 광기는 천둥처럼 요란하고 짧았다. 늘 그렇듯 끝은 있었고 서로를 향한 미움과 미안함만이 바닥에 남았다.

“납골당 다녀와. 언니가 기다려.”

마지막은 차분했다. 오늘이 가기 전에 언니에게 다녀오라는 말이 전부였다. 엄마는 조용히 떠났다.

엄마가 떠나고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더니 창밖이 금방 어두워졌다.

납골당엔 가지 않았다. 언니 사진을 바라볼 자신이 없기도 했고 움직이기엔 발목이 너무 아프기도 했다. 주말의 반이 지났다는 게 조금 슬플 뿐이었다.

진동 소리가 울렸다. 전화가 온 것 같았다. 납골당에 다녀왔는지 묻는 엄마의 전화일 것 같았다. 받지 않으면 금방 끊길 거라 생각한 전화가 길어졌다.

“하, 진짜…….”

어제보다 더 아픈 발목을 절뚝이며 핸드폰을 찾았다. 소리를 따라 뒤지는 것도 한참이었다. 이불 아래에 있는 핸드폰이 보였다.

“뭐야…….”

화면을 보니 엄마가 아니었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다. 광고 전화일까 싶어 거절 버튼을 눌렀더니 같은 번호로 다시 전화가 왔다. 뭐지 싶었다.

“여보세요.”

― …….

기껏 받았더니 상대는 조용했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 …….

재촉해도 침묵은 계속되었다. 전화를 끊으려는데 그제야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들렸다.

― 나야.

흘러나오는 소리에 몸이 굳었다.

― 정유주.

상대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불렀다.

― 듣고 있어?

“최수현…….”

이름을 부르면서도 꿈을 꾸는 것 같아 아픈 발목을 주물렀다. 아프게 욱신거리는 것을 보아 분명한 현실이었다.

― 오랜만이야.

그 말에 온갖 기억이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