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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슨 일 있으신가요, 이사님?”

루크는 창밖을 보던 시선을 거두고 앞을 보았다. 파일을 들고 있는 그의 비서, 제드가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답을 돌려주는 대신, 루크는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손목의 시계가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즉, 동생인 크리스의 러트가 시작한 지 다섯 시간이 지났다는 소리다.

오전 11시에 연락이 왔다. 집안의 주치의인 섀넌에게서였다. 섀넌은 알파 여성으로, 오래전부터 크리스를 담당해 온 알파 전문의였다. 그런 섀넌을 비롯해, 집안의 모두가 크리스의 러트에 관심이 많았다.

크리스는 다른 알파에 비해 러트가 굉장히 늦었다. 열아홉, 이제 성인으로 넘어가는 나이가 되어서야 드디어 러트가 찾아온 것이다. 대개 열여섯으로 넘어가며 러트를 맞이하는 다른 알파들보다 시기가 늦은 탓에, 1년 내내 면밀한 관찰과 검사가 이어졌다. 대를 이을 중요한 알파에게 혹시라도 문제가 있으면 안 되니까.

그리고 마침내 오늘 아침부터 징조가 보였다. 어젯밤에 크게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크리스의 방을 페로몬이 가득 채웠다. 오래간 묵혔던 것을 터트리듯 향은 진하고 강렬했다. 루크는 크리스의 방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방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 오는 페로몬에 등줄기가 서늘해졌기 때문이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살면서 그런 감각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오늘이 오기까지 루크는 다른 알파의 페로몬을 제대로 맡아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었다.

루크 칼슨은 유서 깊은 칼슨 가의 장남이자, 오메가였다. 그러나 남들과는 달랐다. 어쩌면 그의 대에 이어진 유전적 결함일지도 모른다. 루크는 불감증이었다. 히트 사이클이 와도 성욕이 이는 대신 괴로울 정도의 열이 오를 뿐, 어떠한 성적 긴장이나 흥분감도 느끼지 못했다. 외형을 따른 결과일지도 모른다. 오메가답지 않은 장신의 키, 차가운 얼굴, 그리고 날카로운 이목구비는 루크를 아무리 봐도 알파로 보이게 했으니까.

그러나 루크는 명백한 오메가였다. 향이 없는 꽃처럼 그에게선 어떠한 오메가의 향도 나지 않았으나, 사실이 그랬다. 이 탓에 사람들은 그를 베타로 인식했다. 루크는 그 오해를 정정하지 않았다. 그에게 베타라는 오해는 오히려 이로운 역할을 했다. 알파만이 득실거리는 최상위 계층의 세계에서, 오메가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나머지 일정은 내일로 조정하세요.”

“네?”

“부탁합니다.”

의자에 걸린 정장 겉옷을 챙겨 들고, 루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녀석이 오늘 회사에 꼭 가야 하냐며 저를 붙잡던 게 아른거렸다. 보통의 형제 사이에 있을 법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크리스는 태어난 순간부터 유독 루크를 따랐으니까.

여덟 살 터울의 장미처럼 화사한 그의 동생은, 한 몸에서 나왔을 텐데도 루크와는 많은 것이 달랐다. 창백한 편인 루크와 달리 눈처럼 화사한 얼굴이나, 색조가 옅은 루크의 잿빛 머리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카만 머리카락 같은 것이 그랬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크리스가 아주 아름답고 영특한 존재라는 것이다. 아이는 외양만큼이나 사랑스럽게도 항상 루크를 위했다.

크리스는 언제나 루크의 옆에 있고 싶어 했다.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던 부모의 부재 속에서 동생은 제 형을 부모보다 더 가까이 여겼다. 루크는 크리스의 보호자였다. 그 덕에 스물일곱이 된 지금까지도 루크는 크리스와 아주 깊은 유대를 유지했다.

루크는 동생이 부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찾아갔다. 학교에 마중을 가거나, 크리스가 혼자 있는 밤이 싫다며 제 침실로 들어올 때도 루크는 그를 침대 안으로 들였다. 하얗고 연약해 보이는 크리스는, 그때마다 제자리를 찾듯이 루크의 품에 파고들었다.

바로 엊그제도 그들은 침대 위에서 같이 잠이 들었다. 최근 들어 부쩍 자라나 키가 엇비슷해진 동생인데도 루크에게는 여전히 여리게만 느껴졌다. 이런 녀석이 울상을 하고 아프다며 루크를 붙들었다. 지금이라도 얼른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오후 회의는 미루기가 조금 까다로운…….”

“그걸 하는 게 제드의 일 아닙니까.”

루크는 조바심이 난 탓에 다소 날카로운 말투로 답했다. 그러자 제드는 입을 다물었다. 단호한 결정과 함께 이사실을 빠져나가는 루크의 뒤를, 제드가 이번에는 말없이 따라왔다. 회사를 빠져나가자 앞에 세워진 까만 벤츠가 그를 맞이했다. 그의 비서가 문을 열었고 루크는 차에 올라탔다.

기사는 목적지를 알고 있다는 듯 조용히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좌석에 등을 파묻으며 창밖을 보았다. 크리스의 페로몬에 노출된 뒤부터, 이상하게 속이 불편했다. 마치 크리스의 페로몬에 루크의 안에 있던 무언가가 반응한 것처럼.

심장이 따끔거리는 감각이 온종일 그를 성가시게 괴롭혔다. 아마 불안감으로부터 야기된 긴장 증세일 것이다. 그러니 어서 크리스를 봐야 했다. 루크는 무표정 속에 초조함을 감추며, 다시 차창 밖으로 눈길을 주었다.






“크리스는 어디 있습니까.”

“도련님은 방에 계세요. 워낙 페로몬이 독해서 다들 물러난 상태에요. 섀넌 씨가 억제제를 주고 가셨는데, 괴로우신지 신음이 자꾸 들리네요……. 저녁에 섀넌 씨를 다시 부를까요?”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루크는 샬롯에게서 상황을 확인했다. 샬롯은 크리스의 유모이자 집안의 오랜 가정부였다. 겉옷을 받아 드는 그녀에게 가방과 옷을 넘기며 루크는 말했다.

“일단 제가 살펴보고 판단하겠습니다.”

“네.”

현재 그들의 아버지인 로저 칼슨은 저택을 비운 상태였다. 가문의 주인이 부재한 이상, 일의 결정권은 루크에게 있었다. 루크는 넥타이를 끄르며 저택의 3층으로 올라갔다. 질 좋은 원목들로 이루어진 나무 계단을 밟고 복도에 들어섰다.

그러자 곧장 복도를 가득 채운 짙은 향이 느껴졌다. 마른 장미꽃, 나무, 그리고 알싸한 바람 냄새가 섞인 복합적인 향이었다. 몸에 열이 확 올랐다. 입안이 바싹 말라 왔다. 무의식중에 입술을 축이며 루크는 크리스의 방 앞에 멈춰 섰다. 노크를 하려 손을 올리는 순간, 문 너머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루크……? 루크야?

꺼져 가는 듯한 희미한 목소리였다. 절 찾는 목소리에 가슴이 아파져 루크는 곧장 문을 열었다. 다급하게 문을 열자마자 무형의 기운이 그를 확 덮쳤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애써 힘을 주고 앞을 보자 커다란 침대에 쓰러지듯 엎드린 크리스가 보였다. 크리스는 나신이었다. 벗어 던진 옷가지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방 안은 열기로도 가득 차 있었다. 한 사람의 몸에서 나온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밀도 있는 열기였다.

땀에 젖은 머리칼을 침대에 비비던 크리스가 느리게 고개를 틀었다. 엉망이 된 시트를 움켜쥐던 손이 펴지고, 이내 크리스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열에 들떠 멍해진 파란 눈이 보였다.

“……형?”

“크리스.”

루크가 크리스에게로 다가섰다. 동생의 나신을 보는 건 어릴 적 이후로 오늘이 처음이다. 그 탓에 잠시 주저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괴로워 보이는 얼굴에 속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로 인해 루크는 몸을 점점 잠식하는 정체 모를 감각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크리스가 멍하니 눈을 들어 제 앞에 다가온 루크를 쳐다보았다. 울었던 모양인지, 그가 불그스름한 눈으로 루크를 빤히 응시했다.

“왜 이제 왔어…….”

억울한 듯한, 그리고 서러운 듯한 목소리로 크리스가 말했다. 아름답고 순해 보이는 푸른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루크는 손을 뻗어 크리스의 양팔을 문지르며 사죄했다.

“미안하다. 조금 늦었어. 빨리 오려고 했는데…….”

루크의 사죄에도 크리스는 평소와 달리 서운한 기색을 쉬이 지우지 않았다. 대신 고통을 토로했다.

“아파…….”

“아파? 섀넌을 부를까?”

크리스가 고집스레 고개를 저었다. 힘없는 얼굴로, 불규칙적인 뜨거운 숨을 내쉬던 크리스가 루크의 허리를 꽉 안았다. 허리를 잡아당기는 갑작스러운 힘에 루크가 크리스에게로 끌려갔다. 무너지는 몸이 침대에 눕혀졌다. 크리스가 아주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루크의 몸 위에 올라탔다. 옷 너머로 닿는 맨살이 뜨거웠다.

이상한 느낌이 올라왔다. 점차 하체가 묵직해졌다. 슬그머니 허리가 저릿해지더니 이내 등줄기를 타고 오싹한 감각이 지나갔다. 처음 겪는 느낌이었다.

“……크리스?”

“형…… 나…… 괴로워.”

크리스의 뺨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딘갈 맞은 사람처럼 아파하는 표정에, 루크는 상황이 이상한 것도 잊고 손을 뻗었다. 손가락으로 뺨을 적시는 눈물을 닦아 내자 크리스가 얼굴을 비벼 왔다. 강아지 같았다. 가엾고도 처량해 보이는 모습에 마음이 찢어졌다. 제가 다 괴로워 뭐라도 해 주고 싶었다.

“어떻게 해 줄까, 응? 섀넌을 부르는 건 싫어?”

“……싫어. 약은 이제 지겨워.”

루크를 누르는 크리스의 힘이 점차 강해졌다. 조용히 뻗어 온 손이 루크의 옷 안을 자연스레 파고들었다. 얇은 와이셔츠가 벌어졌다. 차가운 살에 뜨거운 손이 닿았다. 뭔가 이상했다.

“크리스? 뭘 하려는 거야?”

“루크한테서 좋은 향이 나.”

그제야 아차 싶었다. 루크는 일단 오메가다. 크리스는 알파니 그런 향을 맡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곧 의문이 뒤따랐다. 근 평생 동안, 누구도 루크의 향을 제대로 맡은 적이 없었다. 그런 탓에 크리스가 이런 식으로 느끼는 게 이상했다.

더군다나 루크는 그의 사랑스러운 동생에게 그가 오메가라는 것을 설명했던 적이 없었다. 혹시 그랬던 적이 있는지를 떠올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크리스는 자라며 루크의 형질에 관해서는 한 번도 질문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본능인 걸까. 크리스가 그의 향을 맡은 것은 이상하지만, 말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크리스, 그건 내가 오메가라서 그런 거야. 오메가를 원한다면 사람을 시켜서―.”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