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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의 두부 4화
1. 열일곱 봄 (4)
화요일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수요일도 목요일도 똑같은 시비가 붙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연두는 자길 괴롭히는 무리를 ‘쥬라기 공원’의 나쁜 공룡들에 가져다 붙이곤 했다. 그중 티라노사우루스는 당연히 김혁이었다. 가장 오래, 많이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이프가 다 늘어져 버린 쥬라기 공원 속에는 티라노만 있는 게 아니었다. 김혁의 친구 이평화는 벨로시랩터였고, 4반의 서진오는 딜로포사우루스였다. 중학교 때도 우르르 몰려다니며 일진 행세를 하더니 공룡 무리 중 제일 포악했던 셋은 연두를 고등학교까지 쫓아와 괴롭혔다. 정확히 말하면 저번 주까지 그랬다. 이번 주는 시도에 그쳤다.
수호의 별명은 진짜 대치동 간디였던 모양이다. 이제는 마고 간디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잘생기고 착한 전학생은 어디서 나타난 일진이 자기 짝꿍을 때리려고만 하면 뒤통수를 감싸고, 등을 감싸고, 어깨를 감쌌다. 손이 얼마나 큰지 뒤통수가 반절 넘게 손에 감겼다.
어쩌다 타이밍이 안 맞으면 수호가 대신 손등을 얻어맞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초라한 짝꿍과는 달리 수호는 누군가에게 맞을 때 사과를 받았다.
연두와 반응이 달랐던 이유는 이번에도 역시 돈 때문이었다. 수호가 화장실 갔을 때 들은 건데, 집이 부자인 모양이었다. 가지고 다니는 물건 중 비싸지 않은 게 없다고 했다. 들고 다니는 샤프 한 자루조차 고급이라고 했다.
“야, 최수호 허버 부잔가 봐. 나 아침에 걔 등교하는 거 봤는디 벤츠 타고 오드라.”
“진짜? 대박. 존나 엄친아네.”
“운동화도 구찌만 신자네. 아, 졸라 부럽다! 나도 최수호처럼 부자면 쌍욕 안 하고 간디 소리 들을 자신 있다. 진짜, 찍고.”
“구라 치고 있네. 입에 걸레나 뱉고 말해라잉.”
“짓궂군요, 김혁 씨!”
“와…… 씨바. 유세윤인 줄.”
연두도 구찌는 알았다. 얼만지는 몰라도 김혁이 입만 열면 구찌를 찾아서 컴퓨터실에서 엠파스에 검색해 봤었다. ‘G’ 두 개 붙여 놓은 모양만 있는 건 줄 알고 저렇게 촌스러운 거에 왜 환장을 하나 싶었는데, 수호의 운동화에 있는 초록, 빨강, 초록도 구찌라는 걸 수호 덕분에 알았다. ‘G’ 두 개, 혹은 초록 두 개와 빨강 하나. 애들한테 있어서 그건 일종의 신분 계급 같은 거였다.
***
수호가 자신의 가림막이 된 지 사흘째 되던 날, 연두는 PC방에 갔다. 다모임도 아이디만 만들고 안 했던 연두가 짝꿍의 미니 홈피가 궁금하단 이유로 싸이월드에 가입을 했다.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손님이 준 팁으로 PC방까지 찾아가면서.
최수호는 흔한 이름이라 찾기 어려울 것 같았는데 투데이가 높아서 바로 찾았다. 홈피를 켜자마자 BGM으로 깔아 놓은 프리스타일의 Y가 흘러나왔다. 소리가 좀 커서 급하게 스피커 소리를 줄였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조심조심 미니 홈피를 둘러봤다. 이미 일촌 평부터 수두룩했다. 최수호를 보고 진짜 대치동 간디라고 부르는 애도 있었다. 홈피의 메인 사진은 증명사진이었다. 연두는 잘생긴 애는 증명사진도 잘생겼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진첩과 방명록도 궁금했는데 일촌 공개라 못 봤다. 연두가 볼 수 있던 건 일촌평과 다이어리뿐이었다.
[2006.03.06.]
목포 옴ㅋ 반에 되게 예쁜 애 있음. 나 걔랑 짝꿍임. 부럽지?
김범수: 남고잖아
윤지민: 남고잖아22
↳ 최수호: 여자애들한테 한 말인데
↳↳ 양예림 : ㅋㅋㅋㅋㅋㅋㅋㅋ
[2006. 03.07]
목포 애들 넘 무서워...ㅠㅠ 오늘 일찐한테 맞음ㅠ.ㅠ 간디 살려~
백승찬: 어느 놈이?? 돌았나? 형 내려갈까?
↳ 최수호: ㅋㅋㅋㅋㅋ형도 얻어맞을걸요?
↳↳ 김 혁: 죄송합니다. 다신 안 때리겠습니다. 간디님.
↳↳ 최수호: 일찐 왔다ㅋㅋㅋ
최수호는 싸이월드에서도 똑같이 최수호였다. 다이어리는 몇 년 치나 있었는데, 다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욕 한 마디가 안 쓰여 있었다. 다이어리마다 댓글이 적어도 열 개는 달려 있었다. 별로 재미도 없는 개콘 개그를 써 놔도 다들 키읔으로 도배를 했다.
연두는 새삼 신기했다. 수호는 분명히 같은 반 친구고 옆자리 짝꿍이었는데 꼭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자신과 달리 가족 관계도 화목한 것 같았다. 형이 아파 병문안을 갔다는 일기가 여럿 보였다. 작년 10월까지의 다이어리를 보던 연두는 거기까지만 보고 수호의 미니 홈피를 닫았다.
그리고 집으로 바로 돌아갈까 하다 방금 만든 자신의 홈피에 들어가 봤다. 무료로 주는 미니미는 너무 촌스러웠다. 수호처럼 BGM도 나오게 하고, 바탕화면도 멋있게 꾸미고 싶었다. 하지만 뭘 누르기만 하면 도토리를 내놓으라고 했다. 연두는 결국 미니미는 속옷 차림 그대로 두고 상태창만 우울함으로 바꿨다.
미니 홈피를 아예 끄고 좀 아쉬운 마음에 다모임에도 들어가 봤다. 초등학교 동창들 글은 2004년이 마지막이었다. 연두를 찾는 사람은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혹시나 싶어 버디 버디도 들어가 봤다. 마찬 가지였다. 이어서 타키도 들어가 봤다. 쪽지 함에 쪽지가 하나 와 있긴 했다.
2002년에 김혁이 보낸 쪽지였다.
[두부 새끼 엄마 하리수~~ 아빠 슈렉~~ 니 동생 옥동자~~~]
기분만 나빴다. 결국 1시간 중에서 30분만 채우고 PC방에서 빠져나왔다. 괜히 교복에 담배냄새만 뱄다.
최수호의 싸이를 알면 뭐 한다고 돈까지 주고 PC방에 갔을까. 일촌도 못 될 게 뻔한데.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수호가 부럽고, 질투 나고, 한편으로 조금 미웠다. 수호가 자기 대신 맞아 주기까지 했는데 미운 마음이 드는 게 이상했다. 연두는 자조하며 달동네의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수호는 연두가 자기 홈피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죽어도 모를 거다. 저런 애는 머릿속이 꽃밭이겠거니 했다. 그래서 그렇게 잘해 주지 싶었다.
***
연두는 김혁이 말한 것처럼 저 같은 두부 새끼랑은 같이 앉고 싶지 않아 수호가 자리를 옮길 줄 알았다. 그런데 안 옮겼다. 처음이었다.
선생님이 쪽지 추첨으로 자리 배정을 할 때까지 수호는 계속 연두의 짝꿍이었다. 다정하고 나긋한 말투도 그대로였다. 수호가 옆에 있으면 애들이 연두를 때리지 않았다. 욕 한마디 섞이지 않은 순한 말투에도 뭔가 모르게 위압감 같은 게 있었다. 연두는 수호가 평생 짝꿍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어느새 금요일이었다. 짝이 바뀌는 날이었다. 자리 바꾸는 게 이렇게 아쉬울 일인가 싶었다.
번호대로 선생님이 이름을 호명했다. 연두가 제일 첫 타자였다. 이름도 마음에 안 드는데 성까지 강 씨다. 쪽지를 뽑으면서 눈을 질끈 감고 하나님께 빌었다.
‘수호랑 같은 자리 되게 해 주세요. 제발요.’
“강연두, 29번.”
일단 뒷자리는 성공이었다. 운 좋게도 창가의 끝 안쪽 자리였다. 시작이 좋았다. 이 정도면 짝꿍으로 최수호까지는 안 바랐다. 그냥 반의 조용한 애 아무나 앉아도 괜찮았다. 짐을 싸서 옮기는데 수호가 눈을 가늘게 하고 손을 흔들었다. 연두는 아쉬웠는데, 수호는 시원한 모양이었다. 일주일 그게 뭐라고 빨리도 섭섭했다.
“이평화, 28번.”
“아, 씨!”
“이 새끼가 선생님 앞에서, 쯧! 가서 얼른 짐 옮겨라잉.”
……옆자리는 대실패였다.
김혁이나 이평화나 최악이냐 차악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르지 않았다.
평화가 “씨발, 씨발.” 하며 창가 자리로 다가왔다. 연두는 그 모습을 보며 역시 저 애는 벨로시랩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작고, 촐싹거리고, 사나운 벨로시랩터. 벨로시랩터가 짧은 팔을 들고 듣기 싫은 울음소리를 냈다.
“아오, 씨바. 두부 새끼 옆이냐 하필. 벌써 토 냄새 난다. 뭘 꼬라봐. 눈깔 갖다 뽑아 분다.”
연두는 평화가 자신을 때릴까 봐 얼른 시선을 돌렸다.
“최수호, 9번.”
수호는 아홉 번째 자리였다. 연두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세상 요란한 소리는 혼자 다 내며 의자에 앉은 평화는 앉자마자 스카이 핸드폰을 열어 빠른 속도로 문자를 쳐 내려갔다. 톡, 톡 하는 자판 소리가 눈 돌아가게 빨랐다. 아마 김혁이나 누구에게 제 욕을 하나 보다 했다.
자리를 바꾼 후 1교시는 음악이었다. 음악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젖은 솜이불처럼 무거웠다. 걸음을 뗄 떼마다 젖은 발자국이 찍힐 것만 같았다.
“연두야. 나 옆에 앉아도 돼?”
“어?”
연두는 화들짝 놀라 의자에서 나가떨어질 뻔했다. 옆자리에 평화가 호명될 때보다 눈을 두 배는 더 동그랗게 떴다. 날씨는 아직 썰렁해도 봄은 봄이라고 햇살이 창문을 통해 부서져 들어왔다.
평화가 말한 ‘눈깔’이 햇빛을 받아 선명한 호박색으로 반짝였다. 자기 입술에 고정된 눈을 보더니 수호는 또 진짜 신기하다, 했다.
“어. 앉, 앉아도 돼. 당근이지…….”
허락하기도 전에 이미 반쯤 앉아 있던 수호였지만, 연두의 목소리를 듣자 마저 앉아 몸을 연두에게로 돌렸다. 쌍꺼풀이 없는 쪽의 눈매가 조금 더 날카로워 보였다.
분명히 그가 앉기 전만 해도 평화가 혁에게 두부 어쩌고 하며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수호가 제 옆에 앉고 나자 무슨 막이라도 씌운 것처럼 주변이 조용해졌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연두의 주변을 둥둥 떠다녔다.
1. 열일곱 봄 (4)
화요일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수요일도 목요일도 똑같은 시비가 붙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연두는 자길 괴롭히는 무리를 ‘쥬라기 공원’의 나쁜 공룡들에 가져다 붙이곤 했다. 그중 티라노사우루스는 당연히 김혁이었다. 가장 오래, 많이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이프가 다 늘어져 버린 쥬라기 공원 속에는 티라노만 있는 게 아니었다. 김혁의 친구 이평화는 벨로시랩터였고, 4반의 서진오는 딜로포사우루스였다. 중학교 때도 우르르 몰려다니며 일진 행세를 하더니 공룡 무리 중 제일 포악했던 셋은 연두를 고등학교까지 쫓아와 괴롭혔다. 정확히 말하면 저번 주까지 그랬다. 이번 주는 시도에 그쳤다.
수호의 별명은 진짜 대치동 간디였던 모양이다. 이제는 마고 간디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잘생기고 착한 전학생은 어디서 나타난 일진이 자기 짝꿍을 때리려고만 하면 뒤통수를 감싸고, 등을 감싸고, 어깨를 감쌌다. 손이 얼마나 큰지 뒤통수가 반절 넘게 손에 감겼다.
어쩌다 타이밍이 안 맞으면 수호가 대신 손등을 얻어맞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초라한 짝꿍과는 달리 수호는 누군가에게 맞을 때 사과를 받았다.
연두와 반응이 달랐던 이유는 이번에도 역시 돈 때문이었다. 수호가 화장실 갔을 때 들은 건데, 집이 부자인 모양이었다. 가지고 다니는 물건 중 비싸지 않은 게 없다고 했다. 들고 다니는 샤프 한 자루조차 고급이라고 했다.
“야, 최수호 허버 부잔가 봐. 나 아침에 걔 등교하는 거 봤는디 벤츠 타고 오드라.”
“진짜? 대박. 존나 엄친아네.”
“운동화도 구찌만 신자네. 아, 졸라 부럽다! 나도 최수호처럼 부자면 쌍욕 안 하고 간디 소리 들을 자신 있다. 진짜, 찍고.”
“구라 치고 있네. 입에 걸레나 뱉고 말해라잉.”
“짓궂군요, 김혁 씨!”
“와…… 씨바. 유세윤인 줄.”
연두도 구찌는 알았다. 얼만지는 몰라도 김혁이 입만 열면 구찌를 찾아서 컴퓨터실에서 엠파스에 검색해 봤었다. ‘G’ 두 개 붙여 놓은 모양만 있는 건 줄 알고 저렇게 촌스러운 거에 왜 환장을 하나 싶었는데, 수호의 운동화에 있는 초록, 빨강, 초록도 구찌라는 걸 수호 덕분에 알았다. ‘G’ 두 개, 혹은 초록 두 개와 빨강 하나. 애들한테 있어서 그건 일종의 신분 계급 같은 거였다.
***
수호가 자신의 가림막이 된 지 사흘째 되던 날, 연두는 PC방에 갔다. 다모임도 아이디만 만들고 안 했던 연두가 짝꿍의 미니 홈피가 궁금하단 이유로 싸이월드에 가입을 했다.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손님이 준 팁으로 PC방까지 찾아가면서.
최수호는 흔한 이름이라 찾기 어려울 것 같았는데 투데이가 높아서 바로 찾았다. 홈피를 켜자마자 BGM으로 깔아 놓은 프리스타일의 Y가 흘러나왔다. 소리가 좀 커서 급하게 스피커 소리를 줄였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조심조심 미니 홈피를 둘러봤다. 이미 일촌 평부터 수두룩했다. 최수호를 보고 진짜 대치동 간디라고 부르는 애도 있었다. 홈피의 메인 사진은 증명사진이었다. 연두는 잘생긴 애는 증명사진도 잘생겼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진첩과 방명록도 궁금했는데 일촌 공개라 못 봤다. 연두가 볼 수 있던 건 일촌평과 다이어리뿐이었다.
[2006.03.06.]
목포 옴ㅋ 반에 되게 예쁜 애 있음. 나 걔랑 짝꿍임. 부럽지?
김범수: 남고잖아
윤지민: 남고잖아22
↳ 최수호: 여자애들한테 한 말인데
↳↳ 양예림 : ㅋㅋㅋㅋㅋㅋㅋㅋ
[2006. 03.07]
목포 애들 넘 무서워...ㅠㅠ 오늘 일찐한테 맞음ㅠ.ㅠ 간디 살려~
백승찬: 어느 놈이?? 돌았나? 형 내려갈까?
↳ 최수호: ㅋㅋㅋㅋㅋ형도 얻어맞을걸요?
↳↳ 김 혁: 죄송합니다. 다신 안 때리겠습니다. 간디님.
↳↳ 최수호: 일찐 왔다ㅋㅋㅋ
최수호는 싸이월드에서도 똑같이 최수호였다. 다이어리는 몇 년 치나 있었는데, 다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욕 한 마디가 안 쓰여 있었다. 다이어리마다 댓글이 적어도 열 개는 달려 있었다. 별로 재미도 없는 개콘 개그를 써 놔도 다들 키읔으로 도배를 했다.
연두는 새삼 신기했다. 수호는 분명히 같은 반 친구고 옆자리 짝꿍이었는데 꼭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자신과 달리 가족 관계도 화목한 것 같았다. 형이 아파 병문안을 갔다는 일기가 여럿 보였다. 작년 10월까지의 다이어리를 보던 연두는 거기까지만 보고 수호의 미니 홈피를 닫았다.
그리고 집으로 바로 돌아갈까 하다 방금 만든 자신의 홈피에 들어가 봤다. 무료로 주는 미니미는 너무 촌스러웠다. 수호처럼 BGM도 나오게 하고, 바탕화면도 멋있게 꾸미고 싶었다. 하지만 뭘 누르기만 하면 도토리를 내놓으라고 했다. 연두는 결국 미니미는 속옷 차림 그대로 두고 상태창만 우울함으로 바꿨다.
미니 홈피를 아예 끄고 좀 아쉬운 마음에 다모임에도 들어가 봤다. 초등학교 동창들 글은 2004년이 마지막이었다. 연두를 찾는 사람은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혹시나 싶어 버디 버디도 들어가 봤다. 마찬 가지였다. 이어서 타키도 들어가 봤다. 쪽지 함에 쪽지가 하나 와 있긴 했다.
2002년에 김혁이 보낸 쪽지였다.
[두부 새끼 엄마 하리수~~ 아빠 슈렉~~ 니 동생 옥동자~~~]
기분만 나빴다. 결국 1시간 중에서 30분만 채우고 PC방에서 빠져나왔다. 괜히 교복에 담배냄새만 뱄다.
최수호의 싸이를 알면 뭐 한다고 돈까지 주고 PC방에 갔을까. 일촌도 못 될 게 뻔한데.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수호가 부럽고, 질투 나고, 한편으로 조금 미웠다. 수호가 자기 대신 맞아 주기까지 했는데 미운 마음이 드는 게 이상했다. 연두는 자조하며 달동네의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수호는 연두가 자기 홈피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죽어도 모를 거다. 저런 애는 머릿속이 꽃밭이겠거니 했다. 그래서 그렇게 잘해 주지 싶었다.
***
연두는 김혁이 말한 것처럼 저 같은 두부 새끼랑은 같이 앉고 싶지 않아 수호가 자리를 옮길 줄 알았다. 그런데 안 옮겼다. 처음이었다.
선생님이 쪽지 추첨으로 자리 배정을 할 때까지 수호는 계속 연두의 짝꿍이었다. 다정하고 나긋한 말투도 그대로였다. 수호가 옆에 있으면 애들이 연두를 때리지 않았다. 욕 한마디 섞이지 않은 순한 말투에도 뭔가 모르게 위압감 같은 게 있었다. 연두는 수호가 평생 짝꿍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어느새 금요일이었다. 짝이 바뀌는 날이었다. 자리 바꾸는 게 이렇게 아쉬울 일인가 싶었다.
번호대로 선생님이 이름을 호명했다. 연두가 제일 첫 타자였다. 이름도 마음에 안 드는데 성까지 강 씨다. 쪽지를 뽑으면서 눈을 질끈 감고 하나님께 빌었다.
‘수호랑 같은 자리 되게 해 주세요. 제발요.’
“강연두, 29번.”
일단 뒷자리는 성공이었다. 운 좋게도 창가의 끝 안쪽 자리였다. 시작이 좋았다. 이 정도면 짝꿍으로 최수호까지는 안 바랐다. 그냥 반의 조용한 애 아무나 앉아도 괜찮았다. 짐을 싸서 옮기는데 수호가 눈을 가늘게 하고 손을 흔들었다. 연두는 아쉬웠는데, 수호는 시원한 모양이었다. 일주일 그게 뭐라고 빨리도 섭섭했다.
“이평화, 28번.”
“아, 씨!”
“이 새끼가 선생님 앞에서, 쯧! 가서 얼른 짐 옮겨라잉.”
……옆자리는 대실패였다.
김혁이나 이평화나 최악이냐 차악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르지 않았다.
평화가 “씨발, 씨발.” 하며 창가 자리로 다가왔다. 연두는 그 모습을 보며 역시 저 애는 벨로시랩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작고, 촐싹거리고, 사나운 벨로시랩터. 벨로시랩터가 짧은 팔을 들고 듣기 싫은 울음소리를 냈다.
“아오, 씨바. 두부 새끼 옆이냐 하필. 벌써 토 냄새 난다. 뭘 꼬라봐. 눈깔 갖다 뽑아 분다.”
연두는 평화가 자신을 때릴까 봐 얼른 시선을 돌렸다.
“최수호, 9번.”
수호는 아홉 번째 자리였다. 연두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세상 요란한 소리는 혼자 다 내며 의자에 앉은 평화는 앉자마자 스카이 핸드폰을 열어 빠른 속도로 문자를 쳐 내려갔다. 톡, 톡 하는 자판 소리가 눈 돌아가게 빨랐다. 아마 김혁이나 누구에게 제 욕을 하나 보다 했다.
자리를 바꾼 후 1교시는 음악이었다. 음악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젖은 솜이불처럼 무거웠다. 걸음을 뗄 떼마다 젖은 발자국이 찍힐 것만 같았다.
“연두야. 나 옆에 앉아도 돼?”
“어?”
연두는 화들짝 놀라 의자에서 나가떨어질 뻔했다. 옆자리에 평화가 호명될 때보다 눈을 두 배는 더 동그랗게 떴다. 날씨는 아직 썰렁해도 봄은 봄이라고 햇살이 창문을 통해 부서져 들어왔다.
평화가 말한 ‘눈깔’이 햇빛을 받아 선명한 호박색으로 반짝였다. 자기 입술에 고정된 눈을 보더니 수호는 또 진짜 신기하다, 했다.
“어. 앉, 앉아도 돼. 당근이지…….”
허락하기도 전에 이미 반쯤 앉아 있던 수호였지만, 연두의 목소리를 듣자 마저 앉아 몸을 연두에게로 돌렸다. 쌍꺼풀이 없는 쪽의 눈매가 조금 더 날카로워 보였다.
분명히 그가 앉기 전만 해도 평화가 혁에게 두부 어쩌고 하며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수호가 제 옆에 앉고 나자 무슨 막이라도 씌운 것처럼 주변이 조용해졌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연두의 주변을 둥둥 떠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