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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필요해 3화
초저녁 해가 지고 있었다. 가을 단풍처럼 짙붉어진 하늘이 초록색 지붕 위로 내려앉기 시작하자 여지없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투덕거리신다.
“휴가를 이 시골 구석에서 다 보낼 거여? 내일은 올라가.”
“놔둬요. 올라갈 때 되면 저가 알아서 가겠지.”
연지는 먹다 남은 미역국에 밥을 말아 마당 구석에 묶여 있는 검둥이의 밥그릇에 부어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식탐이 많은 녀석인데 아비가 누군지 모르는 새끼를 밴 후로는 뭐든 먹어 치울 기세다.
지금도 밥그릇에 밥이 다 담기기도 전에 주둥이를 들이밀더니 폭풍 흡입 중이다.
영양이 부족한가. 달걀이라도 깨서 넣어 줘야겠다.
“……몇 년 만의 휴가인데 늙은이들이랑만 있으니까 그렇재. 한창 좋을 나이에 친구들도 만나야 하고…… 할 일이 오죽 많겠어.”
평상에 널어놓았던 고추들을 커다란 바구니에 쓸어 담던 할머니가 결국엔 목소리를 높인다.
“아이고, 저 양반이 손녀 왔다고 좋아할 땐 언제고……. 오랜만에 내려와서 쉬는 애한테 뭔 잔소리를 하루도 안 빼먹고 하는지 모르겄네. 당신 말마따나 어린애도 아닌데 친구를 만나든 말든 저가 알아서 하겠지!”
“예. 내일 올라갈 거예요.”
달걀을 가져와 개밥에 넣어 준 연지가 손을 탈탈 털며 일어났다.
투덕거리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평생 함께 사셔서 눈빛까지 똑같이 닮아 버린 얼굴로 돌아보신다.
“……내일 올라갈 게야?”
지난 일주일 동안 날마다 저녁 인사처럼 ‘내일은 올라가라’ 말씀하시던 할아버지가 오히려 더 아쉬워하는 눈치시다.
실은 ‘내일도 있을 거지?’라는 뜻이었다는 걸 연지도 알고 있다.
“저 양반이 기어이 오랜만에 내려온 손녀 쫓는구먼.”
“아니에요. 휴가가 이틀 남았으니까 이젠 올라가서 밀린 빨래랑 청소 좀 해야지요.”
“그럴래? 그러믄 일찍 들어가 쉬어. 오늘 종일 고추 닦느라 고생했잖어. 것도 일이라고 안 하다 하면 힘들어, 언능.”
연지는 어서 들어가라 손짓하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닫힌 방문 밖에서 할아버지를 향한 할머니의 핀잔이 몇 마디 더 들린다.
앉은뱅이 자개 화장대에 올려놓았던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오늘도 스팸 문자 두 개뿐, 회사에서 온 문자나 부재중 전화는 없었다.
사장이 출장을 떠나면서 강제로 열흘간의 휴가를 줬다.
그동안 휴가는커녕 반차도 제대로 쓴 적 없었다. 1년에 한두 번 몸살로 심하게 앓을 때도 병원에서 링거 맞는 두세 시간조차 마음 편하게 누워 있질 못했다.
전화하지 않겠다던 사장의 말을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울리던 휴대폰이 지난 일주일 동안은 죽은 듯이 늘어져만 있다.
덕분에 배터리가 떨어졌나, 전원은 켜져 있나 수시로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다.
사장의 출장 중엔 회사 업무에 출장지 관련한 지시까지 더해져 평소보다 일이 많아지는데 다들 잘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사장의 귀국 날이다. 까다로운 클라이언트들과의 미팅은 잘 끝났으려나. 까맣게 죽은 휴대폰을 다시 흔들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미닫이 유리문이 덜덜덜 열리며 할머니가 들어오신다.
“방 불 올렸는데 따수어지냐?”
시골은 겨울이 더 빨리 찾아오는지 엊그제가 여름이었는데 어느새 밤에는 불을 때야 할 정도로 추워졌다.
방바닥 여기저기를 더듬어 따뜻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한 할머니가 엉덩이를 밀며 연지의 앞으로 다가와 앉으신다.
“더 있다 가도 괜찮어. 늬 할아버지 원래 그러시잖어.”
온종일 고추를 뒤적이며 말린 할머니에게서 매운 내가 난다.
“그렇지 않아도 내일쯤 올라가려고 했어요.”
늘어진 눈꺼풀 밑의 짠한 눈동자가 해쓱하니 핏기 하나 없는 손녀딸의 얼굴을 살핀다.
시골 살림이라는 게 눈 닿는 곳마다 잔일이라 이것저것 거들려 할 때마다 못 하게 말렸다. 가만히 앉혀만 놓고 닭도 잡아 먹이고 쇠고기도 구워 먹였다.
바깥양반은 버스를 타고 장에 나가 요즘 젊은 애들이 좋아하는 주전부리를 사다 날랐다.
착해 빠진 손녀딸은 올챙이처럼 배가 불뚝 일어날 때까지 그것들을 다 먹었다.
그래도 여전히 턱주가리가 뾰족하다. 아무래도 일주일 만에 살이 오르긴 힘들지.
“갑자기 내려와서 깜짝 놀랐잖어. 뭔 일 있는 건 아니지?”
“무슨 일은. 그동안 못 쓴 휴가 한꺼번에 낸 것뿐이에요.”
연지는 솜사탕처럼 새하얀 할머니의 파마머리에 붙어 있던 고추씨를 떼어 냈다.
“할아버지 지난번 뵀을 때보다 더 마르신 것 같던데 괜찮으신 거예요?”
올해 85세이신 할아버지는 1년 전에 췌장암 진단을 받으셨다. 살 만큼 살았다 입원 치료를 거부하시고 두 분이 고향으로 내려오신 지 8개월째다.
소일거리로 집 앞 텃밭을 가꾸시며 마을 경로당에 나가 10원짜리 화투를 치곤 하신다.
“너도 봤잖어. 암시롱 안 해. 여기 내려온 다음부턴 더 펄펄해진 것 같어. 그눔의 의사들 돈 벌어먹으려고 거짓뿌렁한 것 같다니까.”
“그래도 정기적으로 병원 다니고 약도 잘 챙겨 드셔야죠.”
“말도 말어. 벌써 다 나은 것 같다고 병원 안 가려고 해서 만날 싸워.”
“그러시면 안 되는데. 할아버지 갑자기 건강 나빠지시면 전 식장에 누구 손 붙잡고 들어가라고요.”
“……식장? 혹시…… 결혼식장 말하는 거냐?”
연지가 말없이 빙그레 웃자 순간 얼굴에 화색이 돈 할머니가 더 바짝 다가앉는다.
“너 결혼할 사람 생겼어?”
“음……. 조만간 그렇게 될 것 같아요.”
내일도 약속이 잡혀 있다. 열심히 맞선을 보고 있으니 조만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래, 잘 생각했다. 여자는 자고로 착실한 남자 만나 애기 낳고 이쁨 받으면서 알콩달콩 사는 게 젤루 큰 행복이여.”
“예. 귀에 못이 박히게 들으면서 컸잖아요. 이제 그러려고요.”
할머니는 기특하다, 장하다 손녀딸 엉덩이를 팡팡 두들기며 좋아하신다.
“아이고, 시상에. 저 양반 너 시집보내고 죽는 게 소원이라고 만날 노래를 불렀는디 인자 소원 풀게 생겼네.”
“으응, 아직 확실한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할아버지 건강관리 잘하셔야 한다고요.”
“그래도…… 머리카락 다 빠진 늙은 할아방이랑 식장에 들어가면 쪽팔리지 않겠냐?”
“쪽팔리긴. 할아버지 아니면 누가 저 식장에 데리고 들어가겠어요. 할머니도 곱게 한복 차려입으시고 혼주 노릇 하셔야지.”
평소보다 두 배쯤 더 커진 눈을 껌뻑거리던 할머니가 이내 고개를 크게 끄덕이신다.
“암만, 내가 키웠으니께 시집도 내가 보내야지. 어디 보자…… 넌, 어여 자. ……자라.”
할머니는 이 기쁜 소식을 알리러 서둘러 방을 나가셨다. 예상대로 밖에서 ‘뭐?’ 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뭐하는 남자려? 물어는 봤어?”
“아이고, 성가시게 하지 말고 자라고 냅둬요. 갸가 어떤 애요. 때 되면 어련히 알아서 델구 오겠지.”
“그렇겠지? 그나저나 어떤 놈인지 복 터진 놈이구먼.”
“손녀사위 될 사람한테 놈이 뭐여, 놈이!”
‘허허허!’ 할아버지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에 덩달아 미소 지은 연지는 서랍장 위의 이불을 꺼내 바닥에 펼쳤다.
할머니는 큰 애기는 따순 방에서 자야 한다고 할아버지를 쫓아내고 안방을 손녀에게 내주셨다. 그래서 이불에서도 가구에서도 온통 친근한 할머니 할아버지 냄새가 난다.
전깃불을 끄려는데 화장대 거울 옆으로 반듯하게 줄 맞춰 걸린 액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사진들 속엔 신기할 만큼 젊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셨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의 자라 온 모습들도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빛바랜 사진들 속에 아빠와 자신의 아기 때 모습은 없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홍연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학창 시절 때 받아 왔던 상장들로 도배된 벽을 돌아보고 다시 사진 속의 선생님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선생님은…… 아니, 새엄마는 어렸을 때도 젊었을 때도 참 예쁘다.
이렇게 곱게 키운 딸을 어떻게 떠나보내셨을까.
학사모를 쓴 새엄마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께 찍은 사진을 손끝으로 가만히 쓰다듬어 보았다.
덧없이 흐르는 세월에 자신의 몫이 아니었던 사랑마저 흘러가 버렸다. 철이 들고 세상을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그 과분한 사랑의 무게가 빚처럼 가슴을 짓누른다. 모든 것을 다 퍼 주고 이제는 주름진 껍데기만 남아 버린 할머니 할아버지께 죄송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할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다.
곱게 키운 외동딸을 애 딸린 홀아비에게 빼앗겼을 때의 심경이 어땠을지. 허락 없이 결혼해 3개월 만에 교통사고로 주검이 되어 돌아온 딸을 마주했을 때의 허망함과 사무치는 원망을 어찌 견뎌 내셨는지. 어떤 심정으로 홀로 남겨져 보육원으로 가게 된 그 남자의 열 살짜리 딸을 거둬 키우셨는지.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평생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그저 20여 년 전 딸 가진 부모라면 당연히 누렸어야 할 일들을 이제라도 누리게 해 드리려 한다.
애교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자신을 키우면서 재미도 못 느끼셨을 테니 그나마 고마움에 보답할 길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