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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무엇 때문인지 인어가 자세를 바꿔 꼬리를 물 밖으로 아예 내놓으며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피할 새 없이 그대로 떠올리고 말았다. 방 안 욕조에 물을 담을 때부터, 간간이 물소리가 울릴 때부터 간을 보며 그를 삼키려던 기억이 급기야 그를 집어삼킨다.
부그르르 얼굴 옆으로 올라가는 숨, 갈급하게 토해 내고 들이쉬지만, 기도를 지나가는 것은 갈망하는 공기가 아닌 불타는 물이다. 고개를 들어 올리려 해도 힘주어 뒤통수를 누르는 손, 평소에 그리도 나긋했지만 그때는 그리도 거칠던 손길.
부릅떠 보아도 희미해지는 시야와 윙윙거리며 멀어지던 물 밖의 소리에 가라앉던 와중 누군가 들어와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면 급하게 뒷덜미가 채어져 물 밖으로 끄집어지던 순간.
숨이 넘어갈 것 같으면 저절로 물 밖으로 머리를 빼게 된다. 그는 경험에서 비롯하여 그 사실을 알았다. 짓누르는 손이 있어도 버둥거려 보았으니까. 심지어 인어이니 물속에서도 숨을 쉬겠지만, 그럼에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을 채던 그 손길처럼 급하게 인어의 머리를 건져 올린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인어에게 다가간 탓에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의 손끝이 물에 젖어 서로 달라붙은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파고 들어가 붙잡았다. 낚시 바늘처럼 휘어진 손가락은 머리카락을 걸고 놓아 주지 않는다.
차가운 머리카락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손과 머리채를 잡았다고 표현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험한 손속에도 인어는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이를 악문다. 미련하게도 그랬다.
그는 헐떡이며 말한다. 음절 사이사이에 급하게 토해 내고 들이쉬는 숨이 섞이며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린다.
“그래도, 어차피, 못 죽어.”
“난 이렇게는 안 죽어.”
퉁명스럽게 들리기도 하는 인어의 목소리를 들은 그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를 올려다보는 인어의 얼굴을 타고 물방울이 흐른다.
인어는 그를 말간 눈으로 바라본다. 그 눈 안에서 어떤 감정이 그를 잡아채지만 인어가 눈을 내리깐 탓에 정체는 알아내지 못했다.
인어가 움직였기에 그는 손에서 힘을 풀었다. 자신도 모르게 힘을 세게 주었는지 손가락 마디가 하얗다. 검은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빈손을 괜히 쥐었다가 편다. 머리카락은 보았던 그대로 부드러웠다.
인어는 다시 욕조 벽에 몸을 기대고 꼬리 절반과 상체 절반을 수면 밖으로 뺀 상태로 앉는다. 정적이 다시 방에 스며든다. 한참이나 제 꼬리만 바라보던 인어는 생각에 잠기는지 눈을 감는다.
그는 건조한 눈가를 매만지며 생각한다. 길면 나흘이다.
03.
인어는 자신이 쉽게 죽지 않음을 안다. 설령 죽더라도 미련만은 꾸역꾸역 남아 있다. 그렇기에 인어의 죽음은 죽음이되 죽음이 아니다.
그러므로 남자의 걱정은 하등 쓸모없다. 그 걱정이 인어를 향했든, 그가 사수해야 할 상품을 향했든, 아니면 그 둘 다 아닌 다른 누군가를 향했든 말이다.
인어로서의 삶이란 죽지 못해 살아가다가 죽을 때 남기는 것이라고는 눈 깜박하면 사라지는 물거품이 전부인, 그저 물속에 내던져졌기에 태어나, 그 끝에서는 물거품 되어 사라지는 삶이다.
그런 삶에 목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있기에 살아가고, 없기에 죽는다. 파도를 가를 수 있는 지느러미를 지니고도 그저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둥둥 떠다니는 인어가 많은 이유다.
하지만 물 위로 올라온 이유는 인어에게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인어는 남자를 바라본다.
물속의 인어들에게 물 밖은 늘 갈망의 대상이다. 그 갈망은 그리움과 몸부림 사이의 어떤 마음이었다. 죽은 인어의 물거품에서부터 아주 천천히 태어나는 인어들은 늘 갈망하고 그리워하고 괴로워했다.
자신의 것이되 자신의 것이 아닌 미련이나 욕망 때문이었다. 모든 인어는 미련과 미련에서 비롯되는 욕망에서 태어난다.
인어가 태어난 그해는 바다가 유난히 뜨겁고 차던 해였다. 인어 중 절반이 죽었다. 살아남거나 새로 태어난 인어들은 바다 저 아래 숨죽이고, 죽은 채 둥둥 떠다니는 인어를 건져 가는 낚시꾼들을 바라보며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 시체로 무엇을 알아냈는지, 아니면 뭔가 더 알아내고 싶었는지, 그 후로는 잡혀가는 인어들이 훌쩍 늘기 시작했다. 인어들에게는 재앙과 다름없었다.
잡혀가고, 끌려가고, 버려지고, 떠나가며, 풍덩 수면을 뚫고 떨어지는 그 속에서 모든 인어들은 죽지 못해 살아남았다.
욕조에 머리를 기대며 인어는 어릴 적 본, 바다로 떨어지던 새를 떠올린다.
수면을 하얗게 깨뜨리며 물속으로 가라앉던 그 하얀 새는 물에 짓눌려 날갯짓 한번 못하고 그대로 가라앉았다. 인어가 아무리 수면으로 밀어 올려 주어도 이미 젖어 버린 새는 날아가지 못했다. 결국 인어는 그 새를 구하지 못했다.
그저 물속을 둥둥 떠다니던, 뽑힌 하얀 깃털을 몇 개 추슬러 모아 제 잠자리 머리맡에 돌로 눌러 고정해 놓았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금이 달라붙어 버려지리라 생각했던 그 깃털은 용케도 상하지 않고 원래 모습 그대로를 지키고 있었으나 어느 날 일어난 큰 물결에 깃털을 누르고 있던 돌이 떠올랐을 때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새는 날 수 있게 태어났으나 떨어져 짓눌리고, 인어는 짓눌린 채 태어난다. 인어는 느릿하게 시선을 굴려 남자를 몰래 바라보며 흰 새를 떠올린다. 새의 그 유리알 같은 눈알에 떠오르던 체념이나 절망을 떠올린다. 그 눈이 인어들과 남자를 닮았다.
사랑이나 필요로 인해 태어나는 생명체가 미련에서 태어나는 인어와 닮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으나, 그럼에도 그는 그렇다. 인어는 어떤 시간들이 남자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알고 있다.
눈을 깜박이지 않고 그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흔해 빠진 검은색 위로 다른 색들이 겹쳐지다가 눈을 깜박이자 다시 수면을 건드린 듯 이지러진다.
욕조 벽에는 녹지 않은 소금이 붙어 있다. 인어는 그 반짝이는 흰 결정을 손으로 쓸어 그대로 물 안에 넣고 흔들었다. 그 움직임을 따라 물결이 일며 수면이 출렁인다. 마치 파도처럼 시선이 마주쳤다가 다시 물러간다.
눈을 떴을 때 엉망인 방을 봤다. 누군가에게 맞았는지, 앉을 곳을 잃어 삐걱거리는 침대에 앉아 있는 남자의 붉은 한쪽 뺨을 봤다. 꽤 아플 텐데도 여상한 표정을 봤다. 인어가 욕조에 머리를 담근 모습을 보고 기겁하는 모습을 봤다. 인어의 머리카락을 쥔 손이 떨리는 모양을 봤다. 인어는 그 이유를 안다.
인어는 물 묻은 손을 가볍게 털어 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찬 물속의 왼팔은 열이 오르는 듯 뜨겁다. 코끝에서는 짠 물비린내가 났다. 그 짠 냄새를 따라, 마음이 마치 비 오는 날 거세게 파도치는 바닷가 부두처럼 출렁인다.
04.
생각에 잠겨 있던 인어는 약 기운이 조금 남아 있었는지 어느새 잠들었다. 숨소리가 고요하게 들려온다. 인어가 손을 움직여 물을 헤집던 탓에 들리던 물소리도 멎었다. 그는 그제야 몸에서 힘을 풀었다.
아릿하게 올라오는 복부의 통증에 입매를 굳혔다. 방 안이 엉망이지만 통증 탓에 움직이며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눕게 되면 벼르고 있던 통증들이 치고 올라올까 두려워 눕지도 못하고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욕조만 멀쩡하면 괜찮지 않은가 싶다.
남에게는 아파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 것은 그의 오래된 버릇이다. 묵묵히 감내하는 것도 어느 순간 버릇이 되었다. 이 악물고 소리 내지 않으면 흥이 식었다는 듯 금방 물러간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비롯해 알고 있다.
늘 있는 일이었는데, 왜 오늘따라 더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지 모르겠다. 그는 몸을 수그리며 손에 얼굴을 묻었다. 뜨겁고 물기 어린 숨이 새어 나와 눈시울을 건드린 탓에 눈이 뜨거워지다가 말았다.
이럴 때면 늘 옛 기억과 후회와 미련, 그리고 원망이 밀려와 그를 잠식했고, 오늘도 다르지 않다.
왜,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 네가 가장 잘 알고 있겠지. 왜냐고 묻지 않으니.
― ……그래서 네가 패배자가 된 거란다.
아, 제발.
의문 한 번 품었다고 이명처럼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는 반사적으로 옆구리를 감싸 안았다. 멍이 들었을 게 분명한 곳을 떨리는 손끝으로 부들거리며 덧그렸다.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험하고 궂은일을 하는 그네들에게 눈에 띄지 않게 방 안에 처박혀 주사기나 들고 있는 남자는 늘 눈엣가시였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험한 일 하나 하지 않으면서 온갖 죄책감은 제가 다 느낀다는 듯 우울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얼굴 하나 반반한 새끼가 그였다.
그의 목적이 돈 많고 외로운 귀부인 하나 잡아채는 것이라 생각하는 이가 절반, 그에게 관심도 없는 이가 나머지 절반이다. 그는 늘 씁쓸하게 생각한다. 귀부인이라, 그가 꼭 피해야 하는 부류의 인간 중 하나인데.
― 죽은 듯, 눈에 띄지 않게.
“……죽은 듯, 눈에 띄지 않게.”
그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말을 입 밖으로 낸다. 수시로 되뇌던 말은 사슬이 되어 그를 옥죈다. 들이쉬는 숨에 섞인 소금기가 그가 생존해 있음을 각인시킨다. 그는 살아 있다.
그렇지만, 그런데도 지금과 죽음 후가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 그에게도 모든 것을 가진 줄 알았던 날이 있었다. 모든 것을 품던 그 팔이 그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지 못하고 마냥 좋아하던 날이 있었다.
― 난 이렇게는 안 죽어.
인어가 그렇게 말할 때 들던 마음이 동경이었던가, 아니면 동정이었던가.
다시 들려오는 물소리가 그물처럼 던져져 그를 바다처럼 아득한 생각 속에서 건져 낸다. 그는 급히 고개를 들었다.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인어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말한다. 그것이 인어가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나 창밖이 보고 싶어.”
흰 팔이 욕조 밖으로 나와 검지를 쭉 펴서 창을 가리킨다. 그는 그 말을 무시했다. 시선이 느껴짐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으며 애써 머리를 비웠다. 창을 열고 싶지 않다. 빛을 받고 싶지 않다. 그는 늘 밝은 곳이 싫었다. 결국 그를 쫓아낼, 그에게 허락되지 않은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놀라서 고개를 들고 바라본 그곳에는 욕조에서 창을 가린 커튼으로 손을 뻗는 인어가 있다. 힘껏 팔을 뻗지만 손은 커튼에 닿지 않는다.
인어는 닿지 못하리란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리했다. 그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인어는 멈추지 않는다.
인어가 팔을 앞으로 뻗을 때마다 인어의 몸이 조금씩 욕조 밖으로 나온다. 처음에는 배, 비늘과 피부의 경계를 넘어 비늘. 결국 인어는 균형을 잃고 욕조 아래로 떨어진다. 쓰러질 듯 인어와 함께 기울어졌던 욕조는 큰 소음을 내며 원상태로 돌아온다. 물이 조금 쏟아졌다.
무엇 때문인지 인어가 자세를 바꿔 꼬리를 물 밖으로 아예 내놓으며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피할 새 없이 그대로 떠올리고 말았다. 방 안 욕조에 물을 담을 때부터, 간간이 물소리가 울릴 때부터 간을 보며 그를 삼키려던 기억이 급기야 그를 집어삼킨다.
부그르르 얼굴 옆으로 올라가는 숨, 갈급하게 토해 내고 들이쉬지만, 기도를 지나가는 것은 갈망하는 공기가 아닌 불타는 물이다. 고개를 들어 올리려 해도 힘주어 뒤통수를 누르는 손, 평소에 그리도 나긋했지만 그때는 그리도 거칠던 손길.
부릅떠 보아도 희미해지는 시야와 윙윙거리며 멀어지던 물 밖의 소리에 가라앉던 와중 누군가 들어와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면 급하게 뒷덜미가 채어져 물 밖으로 끄집어지던 순간.
숨이 넘어갈 것 같으면 저절로 물 밖으로 머리를 빼게 된다. 그는 경험에서 비롯하여 그 사실을 알았다. 짓누르는 손이 있어도 버둥거려 보았으니까. 심지어 인어이니 물속에서도 숨을 쉬겠지만, 그럼에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을 채던 그 손길처럼 급하게 인어의 머리를 건져 올린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인어에게 다가간 탓에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의 손끝이 물에 젖어 서로 달라붙은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파고 들어가 붙잡았다. 낚시 바늘처럼 휘어진 손가락은 머리카락을 걸고 놓아 주지 않는다.
차가운 머리카락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손과 머리채를 잡았다고 표현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험한 손속에도 인어는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이를 악문다. 미련하게도 그랬다.
그는 헐떡이며 말한다. 음절 사이사이에 급하게 토해 내고 들이쉬는 숨이 섞이며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린다.
“그래도, 어차피, 못 죽어.”
“난 이렇게는 안 죽어.”
퉁명스럽게 들리기도 하는 인어의 목소리를 들은 그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를 올려다보는 인어의 얼굴을 타고 물방울이 흐른다.
인어는 그를 말간 눈으로 바라본다. 그 눈 안에서 어떤 감정이 그를 잡아채지만 인어가 눈을 내리깐 탓에 정체는 알아내지 못했다.
인어가 움직였기에 그는 손에서 힘을 풀었다. 자신도 모르게 힘을 세게 주었는지 손가락 마디가 하얗다. 검은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빈손을 괜히 쥐었다가 편다. 머리카락은 보았던 그대로 부드러웠다.
인어는 다시 욕조 벽에 몸을 기대고 꼬리 절반과 상체 절반을 수면 밖으로 뺀 상태로 앉는다. 정적이 다시 방에 스며든다. 한참이나 제 꼬리만 바라보던 인어는 생각에 잠기는지 눈을 감는다.
그는 건조한 눈가를 매만지며 생각한다. 길면 나흘이다.
03.
인어는 자신이 쉽게 죽지 않음을 안다. 설령 죽더라도 미련만은 꾸역꾸역 남아 있다. 그렇기에 인어의 죽음은 죽음이되 죽음이 아니다.
그러므로 남자의 걱정은 하등 쓸모없다. 그 걱정이 인어를 향했든, 그가 사수해야 할 상품을 향했든, 아니면 그 둘 다 아닌 다른 누군가를 향했든 말이다.
인어로서의 삶이란 죽지 못해 살아가다가 죽을 때 남기는 것이라고는 눈 깜박하면 사라지는 물거품이 전부인, 그저 물속에 내던져졌기에 태어나, 그 끝에서는 물거품 되어 사라지는 삶이다.
그런 삶에 목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있기에 살아가고, 없기에 죽는다. 파도를 가를 수 있는 지느러미를 지니고도 그저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둥둥 떠다니는 인어가 많은 이유다.
하지만 물 위로 올라온 이유는 인어에게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인어는 남자를 바라본다.
물속의 인어들에게 물 밖은 늘 갈망의 대상이다. 그 갈망은 그리움과 몸부림 사이의 어떤 마음이었다. 죽은 인어의 물거품에서부터 아주 천천히 태어나는 인어들은 늘 갈망하고 그리워하고 괴로워했다.
자신의 것이되 자신의 것이 아닌 미련이나 욕망 때문이었다. 모든 인어는 미련과 미련에서 비롯되는 욕망에서 태어난다.
인어가 태어난 그해는 바다가 유난히 뜨겁고 차던 해였다. 인어 중 절반이 죽었다. 살아남거나 새로 태어난 인어들은 바다 저 아래 숨죽이고, 죽은 채 둥둥 떠다니는 인어를 건져 가는 낚시꾼들을 바라보며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 시체로 무엇을 알아냈는지, 아니면 뭔가 더 알아내고 싶었는지, 그 후로는 잡혀가는 인어들이 훌쩍 늘기 시작했다. 인어들에게는 재앙과 다름없었다.
잡혀가고, 끌려가고, 버려지고, 떠나가며, 풍덩 수면을 뚫고 떨어지는 그 속에서 모든 인어들은 죽지 못해 살아남았다.
욕조에 머리를 기대며 인어는 어릴 적 본, 바다로 떨어지던 새를 떠올린다.
수면을 하얗게 깨뜨리며 물속으로 가라앉던 그 하얀 새는 물에 짓눌려 날갯짓 한번 못하고 그대로 가라앉았다. 인어가 아무리 수면으로 밀어 올려 주어도 이미 젖어 버린 새는 날아가지 못했다. 결국 인어는 그 새를 구하지 못했다.
그저 물속을 둥둥 떠다니던, 뽑힌 하얀 깃털을 몇 개 추슬러 모아 제 잠자리 머리맡에 돌로 눌러 고정해 놓았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금이 달라붙어 버려지리라 생각했던 그 깃털은 용케도 상하지 않고 원래 모습 그대로를 지키고 있었으나 어느 날 일어난 큰 물결에 깃털을 누르고 있던 돌이 떠올랐을 때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새는 날 수 있게 태어났으나 떨어져 짓눌리고, 인어는 짓눌린 채 태어난다. 인어는 느릿하게 시선을 굴려 남자를 몰래 바라보며 흰 새를 떠올린다. 새의 그 유리알 같은 눈알에 떠오르던 체념이나 절망을 떠올린다. 그 눈이 인어들과 남자를 닮았다.
사랑이나 필요로 인해 태어나는 생명체가 미련에서 태어나는 인어와 닮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으나, 그럼에도 그는 그렇다. 인어는 어떤 시간들이 남자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알고 있다.
눈을 깜박이지 않고 그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흔해 빠진 검은색 위로 다른 색들이 겹쳐지다가 눈을 깜박이자 다시 수면을 건드린 듯 이지러진다.
욕조 벽에는 녹지 않은 소금이 붙어 있다. 인어는 그 반짝이는 흰 결정을 손으로 쓸어 그대로 물 안에 넣고 흔들었다. 그 움직임을 따라 물결이 일며 수면이 출렁인다. 마치 파도처럼 시선이 마주쳤다가 다시 물러간다.
눈을 떴을 때 엉망인 방을 봤다. 누군가에게 맞았는지, 앉을 곳을 잃어 삐걱거리는 침대에 앉아 있는 남자의 붉은 한쪽 뺨을 봤다. 꽤 아플 텐데도 여상한 표정을 봤다. 인어가 욕조에 머리를 담근 모습을 보고 기겁하는 모습을 봤다. 인어의 머리카락을 쥔 손이 떨리는 모양을 봤다. 인어는 그 이유를 안다.
인어는 물 묻은 손을 가볍게 털어 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찬 물속의 왼팔은 열이 오르는 듯 뜨겁다. 코끝에서는 짠 물비린내가 났다. 그 짠 냄새를 따라, 마음이 마치 비 오는 날 거세게 파도치는 바닷가 부두처럼 출렁인다.
04.
생각에 잠겨 있던 인어는 약 기운이 조금 남아 있었는지 어느새 잠들었다. 숨소리가 고요하게 들려온다. 인어가 손을 움직여 물을 헤집던 탓에 들리던 물소리도 멎었다. 그는 그제야 몸에서 힘을 풀었다.
아릿하게 올라오는 복부의 통증에 입매를 굳혔다. 방 안이 엉망이지만 통증 탓에 움직이며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눕게 되면 벼르고 있던 통증들이 치고 올라올까 두려워 눕지도 못하고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욕조만 멀쩡하면 괜찮지 않은가 싶다.
남에게는 아파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 것은 그의 오래된 버릇이다. 묵묵히 감내하는 것도 어느 순간 버릇이 되었다. 이 악물고 소리 내지 않으면 흥이 식었다는 듯 금방 물러간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비롯해 알고 있다.
늘 있는 일이었는데, 왜 오늘따라 더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지 모르겠다. 그는 몸을 수그리며 손에 얼굴을 묻었다. 뜨겁고 물기 어린 숨이 새어 나와 눈시울을 건드린 탓에 눈이 뜨거워지다가 말았다.
이럴 때면 늘 옛 기억과 후회와 미련, 그리고 원망이 밀려와 그를 잠식했고, 오늘도 다르지 않다.
왜,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 네가 가장 잘 알고 있겠지. 왜냐고 묻지 않으니.
― ……그래서 네가 패배자가 된 거란다.
아, 제발.
의문 한 번 품었다고 이명처럼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는 반사적으로 옆구리를 감싸 안았다. 멍이 들었을 게 분명한 곳을 떨리는 손끝으로 부들거리며 덧그렸다.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험하고 궂은일을 하는 그네들에게 눈에 띄지 않게 방 안에 처박혀 주사기나 들고 있는 남자는 늘 눈엣가시였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험한 일 하나 하지 않으면서 온갖 죄책감은 제가 다 느낀다는 듯 우울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얼굴 하나 반반한 새끼가 그였다.
그의 목적이 돈 많고 외로운 귀부인 하나 잡아채는 것이라 생각하는 이가 절반, 그에게 관심도 없는 이가 나머지 절반이다. 그는 늘 씁쓸하게 생각한다. 귀부인이라, 그가 꼭 피해야 하는 부류의 인간 중 하나인데.
― 죽은 듯, 눈에 띄지 않게.
“……죽은 듯, 눈에 띄지 않게.”
그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말을 입 밖으로 낸다. 수시로 되뇌던 말은 사슬이 되어 그를 옥죈다. 들이쉬는 숨에 섞인 소금기가 그가 생존해 있음을 각인시킨다. 그는 살아 있다.
그렇지만, 그런데도 지금과 죽음 후가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 그에게도 모든 것을 가진 줄 알았던 날이 있었다. 모든 것을 품던 그 팔이 그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지 못하고 마냥 좋아하던 날이 있었다.
― 난 이렇게는 안 죽어.
인어가 그렇게 말할 때 들던 마음이 동경이었던가, 아니면 동정이었던가.
다시 들려오는 물소리가 그물처럼 던져져 그를 바다처럼 아득한 생각 속에서 건져 낸다. 그는 급히 고개를 들었다.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인어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말한다. 그것이 인어가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나 창밖이 보고 싶어.”
흰 팔이 욕조 밖으로 나와 검지를 쭉 펴서 창을 가리킨다. 그는 그 말을 무시했다. 시선이 느껴짐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으며 애써 머리를 비웠다. 창을 열고 싶지 않다. 빛을 받고 싶지 않다. 그는 늘 밝은 곳이 싫었다. 결국 그를 쫓아낼, 그에게 허락되지 않은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놀라서 고개를 들고 바라본 그곳에는 욕조에서 창을 가린 커튼으로 손을 뻗는 인어가 있다. 힘껏 팔을 뻗지만 손은 커튼에 닿지 않는다.
인어는 닿지 못하리란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리했다. 그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인어는 멈추지 않는다.
인어가 팔을 앞으로 뻗을 때마다 인어의 몸이 조금씩 욕조 밖으로 나온다. 처음에는 배, 비늘과 피부의 경계를 넘어 비늘. 결국 인어는 균형을 잃고 욕조 아래로 떨어진다. 쓰러질 듯 인어와 함께 기울어졌던 욕조는 큰 소음을 내며 원상태로 돌아온다. 물이 조금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