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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응?”
자신이 땅바닥에다 냅다 던진 게 장교수첩이라는 것을 깨달은 샤를 중위가 적지 않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뭐, 뭐야? 어느새 바꿔치기 했어?”
아무래도 샤를 중위는 내가 그에게 마도구를 빼앗기기 전에 장교수첩이랑 바꿔치기를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저어, 2소대장님. 혹시 랜턴이 고장이 난 건 아닙니까?”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카트린이 나를 대변해 줬다.
볼 때마다 참 괜찮은 것 같단 말이야.
카트린의 말에 샤를이 고개를 내려 들고 있던 랜턴을 쳐다봤다.
랜턴은 명백히 바닥에 떨어진 장교수첩을 향해 반응하고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샤를 중위가 말을 더듬으며 내 장교수첩을 들어 올리더니 펼쳐 안의 내용을 확인했다.
내 눈에는 여전히 PDA화 된 것처럼 보였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냥 일반적인 장교수첩처럼 보이는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마도학자라고 해도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지, 그 역시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만 지었다.
“쓰읍… 희안하네…….”
잔뜩 성을 내고 바로 앞에서 꼬장을 부렸건만, 막상 랜턴의 오작동이라는 결론으로 흘러가는 듯한 분위기가 되자, 샤를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어제 전입 온 본부중대 3소대장 아멜 소위라고 합니다.”
“아멜? 아멜 루겐바인?”
일반 병사는 몰라도 장교쯤 되니까 내 이름만 듣고도 가문명을 알아챘다.
하긴, 후작가니까 어느 정도 유명하기는 하겠지.
내가 아랫사람이기는 했지만, 샤를이 먼저 악수를 청하지 않을 것 같아 내가 먼저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흥!”
하지만 샤를은 악수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콧방귀를 뀌며 가소롭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아니꼬운 표정과 함께 살짝 턱을 들어 올려 나를 내려다봤다.
“아멜, 그거 아나?”
“뭐 말입니까?”
아무리 나보다 계급이 높다지만, 초면이기도 하고 나름 후작가의 직계인데 너무 편하게 대하는 거 아냐?
그래도 유능한 마도학자가 상대였고, 망나니라는 타이틀을 쓰고 있었기에 욱하며 올라오는 화를 누르며 그에게 존대를 했다.
“여기, 서부 순회순찰대에는 미친개가 하나 있지. 그게 누구인지 알아?”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위협적으로 말하는 샤를 중위.
스스로를 미친개라 말하다니.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그걸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것을 보니 자기애도 상당히 강해 보이고.
“샤를 중위님이십니까?”
“맞아. 왜 내가 미친개라고 불리는지 알아?”
“그건 잘 모르겠군요.”
“간단해. 난 다 물거든. 안 가려. 그러니까 귓구멍 후벼파고 잘 들어. 난 네가 검성님의 자식이든 아니든, 그딴 거 신경 하나도 안 써. 괜히 나한테 그 뭣도 없는 간판을 내밀며 횡포를 부리려다가는 큰일 날 줄 알아. 뭐가 되었든 네 신체 중 한 부분을 아주 아작을 내 줄테니까!”
“…….”
샤를 중위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나 역시 조용히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우리 둘 사이에서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먼저 적대감을 세운 것도 샤를 중위였고, 이름과 가문 가지고 시비를 건 것도 그였다.
아무리 소문이 좋지 못한 아멜이라고 하지만, 그걸 듣고도 ‘예, 알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망나니가 아니라 그냥 멍청이였다.
“와아… 이 시대 최고의 난봉꾼과 순회순찰대 역사상 최악의 미친개의 싸움이라니…….”
“기 싸움 치열한 거 봐. 진짜 살 떨린다…….”
“솔직히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는데… 왜 알고 있어도 무섭냐.”
우리 둘의 눈싸움을 보고 대기하고 주변의 다른 부대원들이 수곤거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아무리 타부대에서 파견을 나왔다 할지라도 그리 좋지 않았다.
나야 뭐, 이미 평판은 엉망이라 잃을 게 없고.
어제 조금 괜찮은 모습을 보이긴 했는데,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큰 영향은 없었다.
샤를 중위 역시 그것을 아는지 주위를 싹 흝어보고는 몸을 돌려 소환마법진 위로 걸어갔다.
나는 샤를 중위가 떠나자마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장교수첩을 다시 주웠다.
“랜턴이 고장난 것 같으니까, 그냥 진행하겠습니다! 도중에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다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샤를 중위는 허리춤에서 주머니를 꺼내 그 안에 들어 있던 파란 가루를 소환마법진 위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2소대원들이 욕 먹어가며 힘겹게 그린 대형 마법진에 빛이 모여들더니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오…….”
이미 기간트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지만, 눈앞에서 마법이 발동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판타지, 그 자체였다.
“저어, 소대장님.”
“음? 뭔가?”
“그렇게 억지로 리액션을 하실 필요 없습니다.”
“뭐?”
“다른 사람도 다 알고 있으니 굳이 그렇게 노력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조용히 계시는 편이 이미지 개선에 더 도움이 될 겁니다. 루겐바인가 출신의 귀족이 고작 이 정도 소환마법 가지고 놀라는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더 좋지 않아 보일 겁니다. 당장 저만 해도 소대장님이 ‘우와! 이딴 것도 마법인가?’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조곤조곤 친절하게 조언해 주는 듯 말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하고 싶은 말을 공손하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멜의 집안이 제국 서부의 최대 군벌이라고 했지.
생각해 보니 그런 집안 출신이 마법에 놀라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보급이 열악한 방랑 부대가 보기에 약올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마치 철저하게 현대화된 미군이 한국군의 K—2 소총 보고 ‘우와’하는 느낌이 아닐까?
“그럴 의도는 아니었네.”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 볼 생각으로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이미 카트린의 눈빛은 싸늘했다.
후우, 어제 딴 점수를 오늘 다 날려 먹게 생겼네.
분명 어제 나는 ‘아멜 루겐바인’이 아닌, ‘아멜 소위’로서 지내겠다고 선언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멜에 대한 나쁜 인식들이 계속해서 족쇄처럼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아멜 루겐바인이 아닌, 아멜 소위입니다’라고 매번 일일이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한 가지 묘수가 있었다.
흔히 군대에서 자주 쓰이는 명언이 있었다.
—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렇다.
어차피 아멜의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기면 될 일이었다.
물론, 망나니가 되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내 관심사가 다른 곳에 쏠려 있다 보니, 마법을 이리 자세히 보는 것은 처음이라 그랬네.”
아예 과거를 인정해 버리는 것.
그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곳이라…….”
아아, 카트린의 눈빛이 오히려 더 싸늘해졌다.
쿨하게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면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아무래도 그런 소문도 있고, 자신이 당한 것도 있으니 다른 곳을 여자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
그런데 갑자기 카트린이 손으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래서 그런 짓을 하신 거였습니까.”
그러더니 나만 못 알아듣는, 내가 군대로 도피해야만 했던 죄에 대해서 말하는 카트린.
아무래도 이 죄 때문에 이미지 개선에 문제가 생기는 듯했다.
“이해했습니다. 확실히 듣고 보니 모르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일을 맨정신에 저지를 리가 없겠죠. 소대장님이 하나에 빠지면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어째서 이렇게나 정중한데, 그녀의 말은 내 가슴을 후벼파는 걸까.
나는 카트린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멜이 벌인 행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일단 내 행동에 대해 개연성을 부여한 것 같아 안심이었다.
이 정도면 통한 거라고 봐도 되겠지?
그 사이, 천둥벼락이 일순간 내려치는 것처럼 마법진에 빛이 일었다.
그러고 그 빛은 마법진을 한 바퀴 돈 후에 전체를 순식간에 감싸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러자 마치 카멜레온이 보호색을 해제하는 것마냥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기간트를 비롯한 각종 대형 장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호오…….”
기대에 어긋나는 것 같으면서도 기대를 충족시키는 그 모습에 나는 작게 감탄사를 흘렸다.
뭐, 카트린의 눈총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3분 정도 지나자 마법진 위에 떠돌아다니던 고운 입자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고운 입자들의 정체는 샤를 중위가 뿌렸던 정체 모를 가루였다.
“소환, 끝났습니다!”
샤를 중위는 그렇게 말한 후 개인장비를 챙기고 갑자기 야영지 쪽으로 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남겨진 2소대원 중 녹색 견장을 단 병장 하나가 다급하게 그에게 따라가 붙었다.
“소대장님, 점심 안 드십니까?”
“안 먹어.”
여전히 화가 가득해 보이는 샤를 중위의 말투.
그래도 소리를 치지 않는 것을 보니 조금 누그러진 모양이었다.
아무리 아저씨 취급을 받는다지만, 그래도 연대장 및 과장급 간부들이 다 있는 곳에서 장교가 대놓고 결식하겠다고 선언하다니.
정말이지 미친개라는 별명이 딱 어울렸다.
“연대장님, 그러면 바로 전장비 간이 검열을 시작하겠습니다.”
소령 계급장을 단,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군인이 연대장 앞으로 나와 말을 했다.
샤프한 이미지이기는 했지만, 역시 헬창 연대의 소속답게 어깨가 아파트마냥 넓었다.
팔뚝 자체는 우락부락하지 않았으나 느낌상 흔히들 ‘실전 압축 근육’이라고 부르는, 그런 근육질의 몸매를 지니고 있을 것 같았다.
어제 만난 벨퍼트 중사와 비슷한 느낌이기는 하지만, 그와 다르게 이 사람은 철저하게 계산을 해 가면 운동을 해서 몸을 만든다는 느낌이었다.
“누구지?”
“군수과장, 세드릭 소령님이십니다.”
“아아.”
카트린 하사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후 장교수첩을 열어 도감을 확인했다.
— 세드릭.
└ 순회순찰대 서부군단 1사단 3연대 본부 소속 군수과장. 연대에서 이인자로 통한다. 항간에는 연대장 윌리엄 대령보다 실질적인 권력이 더 세다고 알려져 있다. 계급은 소령.
과장급인데 왜 이인자인지 생각을 해 봤다가, 금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순회순찰대는 일반적인 부대와 달리, 주둔지 생활을 하지 않는 방랑 부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있어 보급은 그 어떤 것보다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 보급의 정점에 위치한 군수과장이야말로 최상위 포식자인 게 당연했다.
어찌 보면 진짜 연대장보다 더한 권력을 가진 비선실세라고도 볼 수 밖에.
아니지, 비선이 아니라 그냥 대놓고 실세잖아.
군수과장이 손짓을 하자, 대기하고 있던 군수계원들이 일제히 장부를 들고 소환된 장비들을 향해 달려갔다.
“중대장님, 저희도 다녀오겠습니다.”
정비반장인 벨퍼트 중사가 짧게 경례를 하며 마리안느에게 말했다.
마리안느가 고개를 끄덕이자, 벨퍼트 중사가 정비반 애들과 함께 기간트로 걸어갔다.
“루퍼스 병장, 자네도 정비병이지 않나?”
“예, 소대장님. 저랑 로이가 정비병이긴 합니다만, 정비반 소속은 아닙니다. 저희는 엄연히 3소대 사람입니다.”
운전병처럼 혹시 이중 소속인가 싶어서 물어봤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군수계원과 정비병들이 일을 하는 동안, 전투병과들은 사주경계를 하며 무방비 상태인 그들을 지켜줘야 했다.
그렇게 한참 약식으로 전장비 검열이 약 30분 정도 진행되었을 때였다.
“어? 이건 뭐지?”
정비반원 중 하나가 거수를 하며 벨퍼트 중사를 호출했다.
“뭐, 문제라도 있어?”
어제 나에게 말할 때와는 달리, 온화한 표정과 말투로 곤란해하는 정비반원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벨퍼트 중사.
말투가 조금 거칠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기 소대원들은 잘 챙기는 사람인가 보다.
“아, 반장님. 그게……”
“어? 뭐야, 이거?”
갑자기 소동이 일어났다.
정비반원들과 연대 군수계원 및 군수장교들이 일제히 문제가 발생한 곳으로 달려가는 것을 본 우리 전투 인원들 역시 호기심에 해당 장소로 모여들었다.
거기에 있던 것은 다름 아닌 기간트였다.
옆에 나열되어 있는 다른 기간트들에 비해 월등히 큰 몸집을 자랑하는 게 누가 봐도 A급 기간트로 보였다.
우월한 것은 단순히 크기만이 아니었다.
C급 일부나 B급 이상에게만 달려 있는 안테나용 뿔이 이 녀석에게는 세 개나 달려 있었다.
다른 기간트들의 뿔은 그저 종유석 같은 모양새였지만, 이 기간트는 그것과는 전혀 다르게 마치 의식용 탈에 장식으로 달 법한 구부러진 뿔이었다.
또한 다른 기간트들의 얼굴이 무표정한 것과 다르게, 이 녀석은 명백히 화를 내고 있는 듯 눈썹같이 기다란 금속판이 눈 위에 달려 있었다.
“…미등록 기체입니다.”
군수계원들이 장부를 한참 뒤지더니 내린 결론이었다.
“어, 그럼… 이거는…….”
등록되지 않은 기체가 소환되었다는 사실은 군부대에 있어 엄청 큰 문제가 된다.
군대는 특별한 곳이었다.
이곳의 보급물품은 절대 정량보다 많아서도, 적어도 안 되었다.
무조건 정량 기준을 지켜야만 하는 게 군대.
그런 상황에서 등록되지 않은 기체가 소환되었으니, 난리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 뭐냐고, 이거!”
업무량이 늘어난 사실에 벨퍼트 중사가 짜증을 내며 기간트의 발밑을 세게 찼다.
크기가 크기인 만큼 사람이 발로 찼다고 해서 기간트에 무슨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하에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우웅—
갑자기 기간트에 보라색 안광이 이는 듯하더니 얼굴을 좌우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젠장! 적기였냐!”
미등록 기체이니 적기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대기 중이던 전투병력들이 일제히 검열 및 정비를 받고 있던 기간트를 향해 달려갔다.
일촉즉발의 상황.
주위를 둘러보던 기간트의 얼굴이 우리 소대 쪽을 향해 멈췄다.
[아멜 루겐바인.]
약간의 에코가 섞인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기간트.
모두가 잔뜩 긴장을 하며 다음 대사를 기다렸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기간트가 한 말이 부대를 흔들어 놓았다.
[사용자 등록 완료.]
…예?
“응?”
자신이 땅바닥에다 냅다 던진 게 장교수첩이라는 것을 깨달은 샤를 중위가 적지 않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뭐, 뭐야? 어느새 바꿔치기 했어?”
아무래도 샤를 중위는 내가 그에게 마도구를 빼앗기기 전에 장교수첩이랑 바꿔치기를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저어, 2소대장님. 혹시 랜턴이 고장이 난 건 아닙니까?”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카트린이 나를 대변해 줬다.
볼 때마다 참 괜찮은 것 같단 말이야.
카트린의 말에 샤를이 고개를 내려 들고 있던 랜턴을 쳐다봤다.
랜턴은 명백히 바닥에 떨어진 장교수첩을 향해 반응하고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샤를 중위가 말을 더듬으며 내 장교수첩을 들어 올리더니 펼쳐 안의 내용을 확인했다.
내 눈에는 여전히 PDA화 된 것처럼 보였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냥 일반적인 장교수첩처럼 보이는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마도학자라고 해도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지, 그 역시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만 지었다.
“쓰읍… 희안하네…….”
잔뜩 성을 내고 바로 앞에서 꼬장을 부렸건만, 막상 랜턴의 오작동이라는 결론으로 흘러가는 듯한 분위기가 되자, 샤를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어제 전입 온 본부중대 3소대장 아멜 소위라고 합니다.”
“아멜? 아멜 루겐바인?”
일반 병사는 몰라도 장교쯤 되니까 내 이름만 듣고도 가문명을 알아챘다.
하긴, 후작가니까 어느 정도 유명하기는 하겠지.
내가 아랫사람이기는 했지만, 샤를이 먼저 악수를 청하지 않을 것 같아 내가 먼저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흥!”
하지만 샤를은 악수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콧방귀를 뀌며 가소롭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아니꼬운 표정과 함께 살짝 턱을 들어 올려 나를 내려다봤다.
“아멜, 그거 아나?”
“뭐 말입니까?”
아무리 나보다 계급이 높다지만, 초면이기도 하고 나름 후작가의 직계인데 너무 편하게 대하는 거 아냐?
그래도 유능한 마도학자가 상대였고, 망나니라는 타이틀을 쓰고 있었기에 욱하며 올라오는 화를 누르며 그에게 존대를 했다.
“여기, 서부 순회순찰대에는 미친개가 하나 있지. 그게 누구인지 알아?”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위협적으로 말하는 샤를 중위.
스스로를 미친개라 말하다니.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그걸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것을 보니 자기애도 상당히 강해 보이고.
“샤를 중위님이십니까?”
“맞아. 왜 내가 미친개라고 불리는지 알아?”
“그건 잘 모르겠군요.”
“간단해. 난 다 물거든. 안 가려. 그러니까 귓구멍 후벼파고 잘 들어. 난 네가 검성님의 자식이든 아니든, 그딴 거 신경 하나도 안 써. 괜히 나한테 그 뭣도 없는 간판을 내밀며 횡포를 부리려다가는 큰일 날 줄 알아. 뭐가 되었든 네 신체 중 한 부분을 아주 아작을 내 줄테니까!”
“…….”
샤를 중위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나 역시 조용히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우리 둘 사이에서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먼저 적대감을 세운 것도 샤를 중위였고, 이름과 가문 가지고 시비를 건 것도 그였다.
아무리 소문이 좋지 못한 아멜이라고 하지만, 그걸 듣고도 ‘예, 알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망나니가 아니라 그냥 멍청이였다.
“와아… 이 시대 최고의 난봉꾼과 순회순찰대 역사상 최악의 미친개의 싸움이라니…….”
“기 싸움 치열한 거 봐. 진짜 살 떨린다…….”
“솔직히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는데… 왜 알고 있어도 무섭냐.”
우리 둘의 눈싸움을 보고 대기하고 주변의 다른 부대원들이 수곤거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아무리 타부대에서 파견을 나왔다 할지라도 그리 좋지 않았다.
나야 뭐, 이미 평판은 엉망이라 잃을 게 없고.
어제 조금 괜찮은 모습을 보이긴 했는데,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큰 영향은 없었다.
샤를 중위 역시 그것을 아는지 주위를 싹 흝어보고는 몸을 돌려 소환마법진 위로 걸어갔다.
나는 샤를 중위가 떠나자마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장교수첩을 다시 주웠다.
“랜턴이 고장난 것 같으니까, 그냥 진행하겠습니다! 도중에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다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샤를 중위는 허리춤에서 주머니를 꺼내 그 안에 들어 있던 파란 가루를 소환마법진 위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2소대원들이 욕 먹어가며 힘겹게 그린 대형 마법진에 빛이 모여들더니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오…….”
이미 기간트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지만, 눈앞에서 마법이 발동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판타지, 그 자체였다.
“저어, 소대장님.”
“음? 뭔가?”
“그렇게 억지로 리액션을 하실 필요 없습니다.”
“뭐?”
“다른 사람도 다 알고 있으니 굳이 그렇게 노력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조용히 계시는 편이 이미지 개선에 더 도움이 될 겁니다. 루겐바인가 출신의 귀족이 고작 이 정도 소환마법 가지고 놀라는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더 좋지 않아 보일 겁니다. 당장 저만 해도 소대장님이 ‘우와! 이딴 것도 마법인가?’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조곤조곤 친절하게 조언해 주는 듯 말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하고 싶은 말을 공손하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멜의 집안이 제국 서부의 최대 군벌이라고 했지.
생각해 보니 그런 집안 출신이 마법에 놀라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보급이 열악한 방랑 부대가 보기에 약올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마치 철저하게 현대화된 미군이 한국군의 K—2 소총 보고 ‘우와’하는 느낌이 아닐까?
“그럴 의도는 아니었네.”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 볼 생각으로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이미 카트린의 눈빛은 싸늘했다.
후우, 어제 딴 점수를 오늘 다 날려 먹게 생겼네.
분명 어제 나는 ‘아멜 루겐바인’이 아닌, ‘아멜 소위’로서 지내겠다고 선언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멜에 대한 나쁜 인식들이 계속해서 족쇄처럼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아멜 루겐바인이 아닌, 아멜 소위입니다’라고 매번 일일이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한 가지 묘수가 있었다.
흔히 군대에서 자주 쓰이는 명언이 있었다.
—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렇다.
어차피 아멜의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기면 될 일이었다.
물론, 망나니가 되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내 관심사가 다른 곳에 쏠려 있다 보니, 마법을 이리 자세히 보는 것은 처음이라 그랬네.”
아예 과거를 인정해 버리는 것.
그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곳이라…….”
아아, 카트린의 눈빛이 오히려 더 싸늘해졌다.
쿨하게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면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아무래도 그런 소문도 있고, 자신이 당한 것도 있으니 다른 곳을 여자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
그런데 갑자기 카트린이 손으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래서 그런 짓을 하신 거였습니까.”
그러더니 나만 못 알아듣는, 내가 군대로 도피해야만 했던 죄에 대해서 말하는 카트린.
아무래도 이 죄 때문에 이미지 개선에 문제가 생기는 듯했다.
“이해했습니다. 확실히 듣고 보니 모르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일을 맨정신에 저지를 리가 없겠죠. 소대장님이 하나에 빠지면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어째서 이렇게나 정중한데, 그녀의 말은 내 가슴을 후벼파는 걸까.
나는 카트린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멜이 벌인 행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일단 내 행동에 대해 개연성을 부여한 것 같아 안심이었다.
이 정도면 통한 거라고 봐도 되겠지?
그 사이, 천둥벼락이 일순간 내려치는 것처럼 마법진에 빛이 일었다.
그러고 그 빛은 마법진을 한 바퀴 돈 후에 전체를 순식간에 감싸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러자 마치 카멜레온이 보호색을 해제하는 것마냥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기간트를 비롯한 각종 대형 장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호오…….”
기대에 어긋나는 것 같으면서도 기대를 충족시키는 그 모습에 나는 작게 감탄사를 흘렸다.
뭐, 카트린의 눈총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3분 정도 지나자 마법진 위에 떠돌아다니던 고운 입자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고운 입자들의 정체는 샤를 중위가 뿌렸던 정체 모를 가루였다.
“소환, 끝났습니다!”
샤를 중위는 그렇게 말한 후 개인장비를 챙기고 갑자기 야영지 쪽으로 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남겨진 2소대원 중 녹색 견장을 단 병장 하나가 다급하게 그에게 따라가 붙었다.
“소대장님, 점심 안 드십니까?”
“안 먹어.”
여전히 화가 가득해 보이는 샤를 중위의 말투.
그래도 소리를 치지 않는 것을 보니 조금 누그러진 모양이었다.
아무리 아저씨 취급을 받는다지만, 그래도 연대장 및 과장급 간부들이 다 있는 곳에서 장교가 대놓고 결식하겠다고 선언하다니.
정말이지 미친개라는 별명이 딱 어울렸다.
“연대장님, 그러면 바로 전장비 간이 검열을 시작하겠습니다.”
소령 계급장을 단,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군인이 연대장 앞으로 나와 말을 했다.
샤프한 이미지이기는 했지만, 역시 헬창 연대의 소속답게 어깨가 아파트마냥 넓었다.
팔뚝 자체는 우락부락하지 않았으나 느낌상 흔히들 ‘실전 압축 근육’이라고 부르는, 그런 근육질의 몸매를 지니고 있을 것 같았다.
어제 만난 벨퍼트 중사와 비슷한 느낌이기는 하지만, 그와 다르게 이 사람은 철저하게 계산을 해 가면 운동을 해서 몸을 만든다는 느낌이었다.
“누구지?”
“군수과장, 세드릭 소령님이십니다.”
“아아.”
카트린 하사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후 장교수첩을 열어 도감을 확인했다.
— 세드릭.
└ 순회순찰대 서부군단 1사단 3연대 본부 소속 군수과장. 연대에서 이인자로 통한다. 항간에는 연대장 윌리엄 대령보다 실질적인 권력이 더 세다고 알려져 있다. 계급은 소령.
과장급인데 왜 이인자인지 생각을 해 봤다가, 금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순회순찰대는 일반적인 부대와 달리, 주둔지 생활을 하지 않는 방랑 부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있어 보급은 그 어떤 것보다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 보급의 정점에 위치한 군수과장이야말로 최상위 포식자인 게 당연했다.
어찌 보면 진짜 연대장보다 더한 권력을 가진 비선실세라고도 볼 수 밖에.
아니지, 비선이 아니라 그냥 대놓고 실세잖아.
군수과장이 손짓을 하자, 대기하고 있던 군수계원들이 일제히 장부를 들고 소환된 장비들을 향해 달려갔다.
“중대장님, 저희도 다녀오겠습니다.”
정비반장인 벨퍼트 중사가 짧게 경례를 하며 마리안느에게 말했다.
마리안느가 고개를 끄덕이자, 벨퍼트 중사가 정비반 애들과 함께 기간트로 걸어갔다.
“루퍼스 병장, 자네도 정비병이지 않나?”
“예, 소대장님. 저랑 로이가 정비병이긴 합니다만, 정비반 소속은 아닙니다. 저희는 엄연히 3소대 사람입니다.”
운전병처럼 혹시 이중 소속인가 싶어서 물어봤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군수계원과 정비병들이 일을 하는 동안, 전투병과들은 사주경계를 하며 무방비 상태인 그들을 지켜줘야 했다.
그렇게 한참 약식으로 전장비 검열이 약 30분 정도 진행되었을 때였다.
“어? 이건 뭐지?”
정비반원 중 하나가 거수를 하며 벨퍼트 중사를 호출했다.
“뭐, 문제라도 있어?”
어제 나에게 말할 때와는 달리, 온화한 표정과 말투로 곤란해하는 정비반원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벨퍼트 중사.
말투가 조금 거칠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기 소대원들은 잘 챙기는 사람인가 보다.
“아, 반장님. 그게……”
“어? 뭐야, 이거?”
갑자기 소동이 일어났다.
정비반원들과 연대 군수계원 및 군수장교들이 일제히 문제가 발생한 곳으로 달려가는 것을 본 우리 전투 인원들 역시 호기심에 해당 장소로 모여들었다.
거기에 있던 것은 다름 아닌 기간트였다.
옆에 나열되어 있는 다른 기간트들에 비해 월등히 큰 몸집을 자랑하는 게 누가 봐도 A급 기간트로 보였다.
우월한 것은 단순히 크기만이 아니었다.
C급 일부나 B급 이상에게만 달려 있는 안테나용 뿔이 이 녀석에게는 세 개나 달려 있었다.
다른 기간트들의 뿔은 그저 종유석 같은 모양새였지만, 이 기간트는 그것과는 전혀 다르게 마치 의식용 탈에 장식으로 달 법한 구부러진 뿔이었다.
또한 다른 기간트들의 얼굴이 무표정한 것과 다르게, 이 녀석은 명백히 화를 내고 있는 듯 눈썹같이 기다란 금속판이 눈 위에 달려 있었다.
“…미등록 기체입니다.”
군수계원들이 장부를 한참 뒤지더니 내린 결론이었다.
“어, 그럼… 이거는…….”
등록되지 않은 기체가 소환되었다는 사실은 군부대에 있어 엄청 큰 문제가 된다.
군대는 특별한 곳이었다.
이곳의 보급물품은 절대 정량보다 많아서도, 적어도 안 되었다.
무조건 정량 기준을 지켜야만 하는 게 군대.
그런 상황에서 등록되지 않은 기체가 소환되었으니, 난리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 뭐냐고, 이거!”
업무량이 늘어난 사실에 벨퍼트 중사가 짜증을 내며 기간트의 발밑을 세게 찼다.
크기가 크기인 만큼 사람이 발로 찼다고 해서 기간트에 무슨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하에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우웅—
갑자기 기간트에 보라색 안광이 이는 듯하더니 얼굴을 좌우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젠장! 적기였냐!”
미등록 기체이니 적기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대기 중이던 전투병력들이 일제히 검열 및 정비를 받고 있던 기간트를 향해 달려갔다.
일촉즉발의 상황.
주위를 둘러보던 기간트의 얼굴이 우리 소대 쪽을 향해 멈췄다.
[아멜 루겐바인.]
약간의 에코가 섞인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기간트.
모두가 잔뜩 긴장을 하며 다음 대사를 기다렸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기간트가 한 말이 부대를 흔들어 놓았다.
[사용자 등록 완료.]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