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햇살 피는 나무
1화
0. 해만 보면
“와, 쨍쨍하네.”
찌뿌드드한 몸을 한껏 쭉, 쭉 늘려 가며 기지개를 켜다가 화창한 날씨에 놀란 듯이 목소리를 냈다. 며칠 내내 도면과 씨름한다고 사무실에만 처박혀 있다 보니 바깥 날씨가 이렇게 좋은 줄은 모르고 지냈다.
“그러네, 쨍쨍하네.”
때문에 바로 수긍을 했다. 인정. 어, 인정. 날씨 좋아, 엄청 좋아.
“하늘 봐라. 이야.”
손가락으로 창밖 하늘을 가리키기에 똑같이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그걸 보고 가만히만 있을 수 없어 문을 열고 사무실과 연결되어 있는 테라스로 나섰다. 보다 더 상쾌한 공기가 얼얼하게 콧속으로 들어오며 폐까지 다 청정하게 해 주는 것만 같았다.
팔을 접어 난간에 기대어 평화로운, 아니, 약간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오전 출근길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여태 기지개를 켜던 녀석이 금세 따라 나와 척, 하고 어깨에 본인의 팔을 걸쳤다. 그러고 나서는 꼭 감탄이라도 하는 듯 말을 붙였다.
“이야, 차솔우의 계절이네.”
“왜?”
왜 내 계절이라고 하는 거야.
“저기 봐라. 저 소나무, 얼마나 푸르러?”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른데.”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그냥 사계절 다 네 계절이다, 이 말이지. 칭찬을 해 줘도 꼭.”
“그게 칭찬인 거였어?”
“당연.”
“난 또. 횡설수설. 잠꼬대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지 말고 십 분이라도 눈 좀 붙여. 너 그러다 버릇 나온다.”
“아…….”
그 말에 녀석이 금방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눈을 똑바로 뜨려고 애를 써도, 찌뿌드드한 몸을 제아무리 힘주어 쭉, 쭉 펴 보아도 줄지어 튀어나오는 하품을 막을 수는 없었고 쌓인 피로 때문에 몰려오는 잠을 이길 수도 없었다.
그러더니 솔우의 어깨에 걸쳤던 팔을 떼어 내고 대신에 툭, 툭 두드렸다. 그에 흘긋 옆을 쳐다보니 손을 흔들면서 먼저 들어가 보겠다는 표시를 했다. 솔우는 대답을 하는 대신 알았다는 양 눈짓으로만 끄덕였다. 그렇게 피곤한 몸으로 비척비척 안으로 다시금 들어서는 것까지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하늘로 시선을 던졌다.
“진짜 맑구나, 오늘. 간만에 미세 먼지도 없고.”
푸르고 파란 하늘에 기분 좋은 따스한 햇살. 솔우는 손바닥을 쫙 펴서 하늘 쪽으로 한 번 들어 보았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동그란 햇님이 아침부터 얼마나 밝은지 그 사이사이로 빛의 스펙트럼이 쏟아져 온화함이 퍼졌다.
햇님. 동그란 햇님.
해가 어떻게 생겼어? 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뭐라고 답을 할까. 대부분 동그랗게 생겼지, 어느 곳 하나 각진 데 없이, 라고 말을 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아는 햇님은 동그랗지가 않았다. 저렇게 밝은데 제가 아는 햇님은 항상 어두웠고 여기저기 모가 돋아 안달을 부렸다. 어쩜 이름도 꼭 저같이.
햇님이, 모햇님.
“…….”
4월의 해는 조금 쌀쌀했다. 아직 꽃샘추위가 완벽히 사라지지 않아서인지 예쁘고 얇은 봄옷을 꺼내 입기엔 감기가 들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성이던 미세 먼지가 한풀 꺾인 오늘의 아침은 참 화창하고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솔우는 난간에 기대어 있는 몸을 더욱 느른하게 기대었다. 해가 점점 밝게 떠올라 눈이 부시는데 햇살을 보고 있는 게 마냥 좋았다. 아, 그 아이 생각이 났다.
난 왜 여직도 이렇게 해만 보면 그 아이 생각이 날까, 모햇님.
아무래도 잠이 부족한 탓에 밖으로 나와 광합성을 하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금세 나른해진 기분도 한몫을 한 것 같았다. 이미 10년 하고도 그보다 1년쯤 더 된 기억 속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해만 보면 어김이 없었다. 모햇님.
언젠가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딱 이만큼인 것 같다. 10년 하고도 1년쯤 더.
“잘 살고 있으려나.”
그때도 그랬듯이 넌 여전히 예쁘겠지?
1. 누군가의 기억 속, 달동네
탕! 탕! 탕! 탕!
“안에 있지? 어? 다 알아, 다! 나와 봐!”
탕! 탕! 탕! 탕!
철문을 손도 아니고 발로 차는 소리.
“하, 저것들이 또.”
얽히고설키며 천에 전선줄을 박아 대는 부산한 재봉틀 소리도 깡패 같은 문소리에 묻힐 지경이었다. 시끄럽게 쇳소리를 내던 걸 멈추고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쥐 죽은 듯 미동을 하지 않고 없는 척하면 그뿐일 것이라고 여기겠지만 천만에. 그저 구색을 갖추기 위해 달아 놓은 문짝일 뿐이지 제 기능이라곤 조금도 하지 않아 방음이 될 리가 없었다. 한마디로 이미 골목 저만치서부터 재봉틀 소리를 듣고 신나게 달려왔을 그들이었다.
“햇님이 넌 나오지 말고 조용히 하고 있어.”
“…….”
또 왔나 보네, 또.
허구한 날 찾아오는 빚 독촉 고리대금업자들도 이제는 아주 신물이 났다. 처음. 그래, 처음은 정말 극도로 공포 가득하게 느껴졌었다. 거친 손길에 내팽개쳐진 저를 그득 끌어안으며 제 어머니는 아이는 건들지 말라며 통사정을 했었다. 지금도 여전히 제 집 하나쯤은, 저와 제 엄마쯤은 거뜬히 해치워 버릴 것 같은 공포감은 잔재했지만 그것도 몇 번을, 앞서 말했듯 신물이 날 때까지 겪다 보니 이제는 치솟는 분노도 함께였다. 저를 향해 잔뜩 굳은 표정으로 검지를 빼어 들어 엄포를 놓는 제 엄마의 모습은 별로 위엄 있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한심하기만 했다. 잠깐 손으로 빌고, 무릎으로 빈다고 저들이 눈 하나 깜짝할까? 그러게 왜. 왜. 이런 시궁창 같은 꼴을 만들어 놓고 시궁창같이 사느냐고, 왜.
구석으로 가 귀를 틀어막았다. 욕설이 섞인 고성과 물건들을 차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몇 번이고 이어지니 상황이 괴로워 속으론 언제나 그랬듯 숫자를 읊었다. 일, 이, 삼…… 삼십, 삼십일, 삼십이, 삼십삼…… 육십오, 육십육…….
“어휴, 이 양반은 또 어디서 술 마시고 퍼질러 있는 건지, 증말! 집안 꼴을 이 꼴로 만들어 놓고. 내가 속이 터져서 못 살지, 으휴, 속 터져!”
상기된 얼굴, 씨근덕거리는 가슴께. 감성팔이라고는 조금도 통하지 않을 그들에게 그래도 할 수 있는 회유란 회유는 다 동원해서 겨우겨우 돌려보냈겠지. 햇님은 그것을 보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니까 대체 왜 이러고 살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재봉틀은 다시금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기 시작했다. 웅웅거리는 그 소리가 아주 귀에 박힐 지경이었다.
“너 그렇게 놀고만 있지 말고 엄마가 한 거 백 개씩 세어서 구석에 포개어 둬.”
소리도 소리지만 좁은 공간에 실밥과 먼지들이 한데 섞여 흩날려 정신이 없었다. 해서 놀고 있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 없어 넋을 뺀 것뿐인데 꼭 제 엄마는 놀고 있다, 라고 표현했다. 정도가 심할 땐, 너도 네 아빠 닮아서 그렇게 할 일 없이 놀고만 있냐, 라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속에서 불구덩이 같은 짜증이 치밀었다. 성씨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 한심한 인간이랑 동급 취급을 한다는 게 너무 기가 차서.
“놀기는 내가 뭘 논다고 그래!”
“그럼 그게 가만히 앉아서 놀고 있는 거지, 네가 어디 연필 들고 공부라도 하고 있는 거야, 지금? 어?”
“공부? 공부우? 여기서 어떻게 공부를 해! 엄만 지금 이런 데서 공부라는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이렇게 난장판인 곳에서?”
나가서 돌아다니면 또 돌아다닌다고 뭐라고 그러고. 집구석은 이렇게 시끄러워 죽을 지경이고. 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뭐? 난장판? 얘가 진짜!”
삐져나온 잔머리 정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개수를 맞추기 위해 열심히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데 이 와중에 사납게 반응하는 딸 때문에 더욱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저 버르장머리를 언제 한번 날을 잡고 고쳐야 하는데 항상 생각으로만 그칠 뿐 그마저도 쉽지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장갑을 벗고 아까부터 눈을 찌르던 앞머리를 이제야 뒤로 넘겼다. 본디 하얗고 메말랐던 손에는 어느새 여기저기 투박한 굳은살이 생겨 예전의 그 고왔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제 어머니의 손을 보고도 햇님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아우씨, 이게 다 뭐야. 먼지 엄청 날리네. 캑캑, 아주 숨이 막힐 지경이야. 이러다 폐병 걸리겠어.”
그러는 사이 문이 열렸고 뒤엉키듯이 날리는 공기에 오만상을 일그러뜨리며 햇님의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날리는 먼지가 고역이라는 듯 어지럽게 손바닥을 펄럭이는 걸 여러 번이고 반복했다.
“당신!”
“아, 내가 이런 자질구레한 부업 같은 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 까짓것 얼마나 한다고 이런 일을 꾸역꾸역 얻어 와?”
구석에 쌓여 있는 것들을 손도 아니고 발로 툭툭 건들며 대꾸를 하는 꼬락서니에 햇님의 어머니가 기가 차다는 듯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그와 마주 섰다.
“……뭐? 까짓것 얼마? 하! 그래, 까짓것 얼마 하지도 않는 거 나는 허구한 날 돌려 대고 있는데 당신은 대체 어디 있다가 지금 들어온 거야, 어?”
“금방 나갈 거야.”
“뭐라고? 또 나간다고?”
“집구석에 무슨 돈이 이렇게 없어? 만 원 한 장 안 나오네. 어디 다른 데 숨겨 놓은 데 있어? 가지고 있는 거 좀 내놔 봐.”
며칠 만에 낯짝을 들이밀며 들이닥친 건지.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닌지라 집에 안 들어온 날을 세어 기록을 갱신하나, 안 하나, 하는 것도 관뒀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악덕 고리대금업자들이 안 그래도 있는 협박, 없는 협박 갖은 협박이란 협박은 다 동원하며 으름장을 놓고 간 후였는데, 그는 그 사달을 이미 알기라도 한 듯 뒤늦게 나타나선 쌈짓돈을 감출 수 있을 만한 집 안 곳곳을 마구마구 들쑤셨다. 기대와는 달리 돈 한 푼 제대로 나오는 게 없자 온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곧장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런 그의 행태를 가만 지켜보던 햇님의 엄마도 똑같이 미간에 주름을 만들고 불만 가득한 듯 다다다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우리한테 돈 만 원이 무슨 애 이름이야, 어? 당신 지난주에 일용직이라도 알아본다더니 여태 뭐 하고 돌아다녔어, 어? 가장이란 사람이 정신 못 차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당장 몇 시간 전만 해도 그놈들이 찾아와서 당신 찾는다고 사람 속이며 집 안이며 다 뒤집어 놓고 간 건 알아? 당신 때……”
“아이, 씨. 이 여편네가 진짜, 조용한 사람 성질 긁네. 그만 안 해? 다 알아서 해. 알아서 한다고! 내가 이놈의 집 이래서 들어오기 싫다는 거야. 들어와서 좀 마음 편하게 쉴 수가 없어, 쉴 수가! 이래 봬도 밖에서 고생한다고, 나도!”
“고생? 고새앵?”
“됐다, 됐어. 나간다, 나가.”
“또 어딜 나가? 또 찾아오면 우리더러 어떡하라고!”
“글쎄, 돈 벌어 온다고 하잖아! 벌어 온다고!”
오고 가는 고성은 일상이자 반복이었고 해가 바뀌어도 도통 변하지 않는 순리와도 같은 듯했다. 큰 눈을 깜빡이면서 이쪽으로 한 번, 저쪽으로 한 번 번갈아 시선을 주는 것도 지겨워 그가 모습을 드러낼 때면 아예 등을 돌리고 앉아 상황을 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애를 썼다.
“저 인간이 정말! 어후,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저딴 인간이랑 사나 몰라, 어? 이러다 진짜 제명에 못 살지, 제명에!”
이미 쾅! 소리와 함께 닫힌 문이었지만 이 정도 큰 소리면 밖에서도 들릴 게 분명했다. 그러니 반드시 들으라는 듯 문 쪽으로 고개까지 내밀며 목에 핏대를 더 세우는 것이었다.
“…….”
지겨웠다. 지겹기 그지없는 집구석이 틀림없었다. 하루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다. 이놈의 집구석, 벼락 맞을 동네. 가장 구실이라곤 조금도 못 하는 아빠, 그런 아빠 옆에서 허구한 날 욕이나 해 댈 줄 알지 바보같이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 몸집보다 몇 배는 더 크게 불어난 빚 때문에 돈 갚으라는 독촉으로 때마다 고요를 풍비박산 내 버리는 고리대금업자들. 모든 게 다 싫었다.
1화
0. 해만 보면
“와, 쨍쨍하네.”
찌뿌드드한 몸을 한껏 쭉, 쭉 늘려 가며 기지개를 켜다가 화창한 날씨에 놀란 듯이 목소리를 냈다. 며칠 내내 도면과 씨름한다고 사무실에만 처박혀 있다 보니 바깥 날씨가 이렇게 좋은 줄은 모르고 지냈다.
“그러네, 쨍쨍하네.”
때문에 바로 수긍을 했다. 인정. 어, 인정. 날씨 좋아, 엄청 좋아.
“하늘 봐라. 이야.”
손가락으로 창밖 하늘을 가리키기에 똑같이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그걸 보고 가만히만 있을 수 없어 문을 열고 사무실과 연결되어 있는 테라스로 나섰다. 보다 더 상쾌한 공기가 얼얼하게 콧속으로 들어오며 폐까지 다 청정하게 해 주는 것만 같았다.
팔을 접어 난간에 기대어 평화로운, 아니, 약간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오전 출근길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여태 기지개를 켜던 녀석이 금세 따라 나와 척, 하고 어깨에 본인의 팔을 걸쳤다. 그러고 나서는 꼭 감탄이라도 하는 듯 말을 붙였다.
“이야, 차솔우의 계절이네.”
“왜?”
왜 내 계절이라고 하는 거야.
“저기 봐라. 저 소나무, 얼마나 푸르러?”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른데.”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그냥 사계절 다 네 계절이다, 이 말이지. 칭찬을 해 줘도 꼭.”
“그게 칭찬인 거였어?”
“당연.”
“난 또. 횡설수설. 잠꼬대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지 말고 십 분이라도 눈 좀 붙여. 너 그러다 버릇 나온다.”
“아…….”
그 말에 녀석이 금방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눈을 똑바로 뜨려고 애를 써도, 찌뿌드드한 몸을 제아무리 힘주어 쭉, 쭉 펴 보아도 줄지어 튀어나오는 하품을 막을 수는 없었고 쌓인 피로 때문에 몰려오는 잠을 이길 수도 없었다.
그러더니 솔우의 어깨에 걸쳤던 팔을 떼어 내고 대신에 툭, 툭 두드렸다. 그에 흘긋 옆을 쳐다보니 손을 흔들면서 먼저 들어가 보겠다는 표시를 했다. 솔우는 대답을 하는 대신 알았다는 양 눈짓으로만 끄덕였다. 그렇게 피곤한 몸으로 비척비척 안으로 다시금 들어서는 것까지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하늘로 시선을 던졌다.
“진짜 맑구나, 오늘. 간만에 미세 먼지도 없고.”
푸르고 파란 하늘에 기분 좋은 따스한 햇살. 솔우는 손바닥을 쫙 펴서 하늘 쪽으로 한 번 들어 보았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동그란 햇님이 아침부터 얼마나 밝은지 그 사이사이로 빛의 스펙트럼이 쏟아져 온화함이 퍼졌다.
햇님. 동그란 햇님.
해가 어떻게 생겼어? 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뭐라고 답을 할까. 대부분 동그랗게 생겼지, 어느 곳 하나 각진 데 없이, 라고 말을 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아는 햇님은 동그랗지가 않았다. 저렇게 밝은데 제가 아는 햇님은 항상 어두웠고 여기저기 모가 돋아 안달을 부렸다. 어쩜 이름도 꼭 저같이.
햇님이, 모햇님.
“…….”
4월의 해는 조금 쌀쌀했다. 아직 꽃샘추위가 완벽히 사라지지 않아서인지 예쁘고 얇은 봄옷을 꺼내 입기엔 감기가 들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성이던 미세 먼지가 한풀 꺾인 오늘의 아침은 참 화창하고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솔우는 난간에 기대어 있는 몸을 더욱 느른하게 기대었다. 해가 점점 밝게 떠올라 눈이 부시는데 햇살을 보고 있는 게 마냥 좋았다. 아, 그 아이 생각이 났다.
난 왜 여직도 이렇게 해만 보면 그 아이 생각이 날까, 모햇님.
아무래도 잠이 부족한 탓에 밖으로 나와 광합성을 하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금세 나른해진 기분도 한몫을 한 것 같았다. 이미 10년 하고도 그보다 1년쯤 더 된 기억 속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해만 보면 어김이 없었다. 모햇님.
언젠가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딱 이만큼인 것 같다. 10년 하고도 1년쯤 더.
“잘 살고 있으려나.”
그때도 그랬듯이 넌 여전히 예쁘겠지?
1. 누군가의 기억 속, 달동네
탕! 탕! 탕! 탕!
“안에 있지? 어? 다 알아, 다! 나와 봐!”
탕! 탕! 탕! 탕!
철문을 손도 아니고 발로 차는 소리.
“하, 저것들이 또.”
얽히고설키며 천에 전선줄을 박아 대는 부산한 재봉틀 소리도 깡패 같은 문소리에 묻힐 지경이었다. 시끄럽게 쇳소리를 내던 걸 멈추고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쥐 죽은 듯 미동을 하지 않고 없는 척하면 그뿐일 것이라고 여기겠지만 천만에. 그저 구색을 갖추기 위해 달아 놓은 문짝일 뿐이지 제 기능이라곤 조금도 하지 않아 방음이 될 리가 없었다. 한마디로 이미 골목 저만치서부터 재봉틀 소리를 듣고 신나게 달려왔을 그들이었다.
“햇님이 넌 나오지 말고 조용히 하고 있어.”
“…….”
또 왔나 보네, 또.
허구한 날 찾아오는 빚 독촉 고리대금업자들도 이제는 아주 신물이 났다. 처음. 그래, 처음은 정말 극도로 공포 가득하게 느껴졌었다. 거친 손길에 내팽개쳐진 저를 그득 끌어안으며 제 어머니는 아이는 건들지 말라며 통사정을 했었다. 지금도 여전히 제 집 하나쯤은, 저와 제 엄마쯤은 거뜬히 해치워 버릴 것 같은 공포감은 잔재했지만 그것도 몇 번을, 앞서 말했듯 신물이 날 때까지 겪다 보니 이제는 치솟는 분노도 함께였다. 저를 향해 잔뜩 굳은 표정으로 검지를 빼어 들어 엄포를 놓는 제 엄마의 모습은 별로 위엄 있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한심하기만 했다. 잠깐 손으로 빌고, 무릎으로 빈다고 저들이 눈 하나 깜짝할까? 그러게 왜. 왜. 이런 시궁창 같은 꼴을 만들어 놓고 시궁창같이 사느냐고, 왜.
구석으로 가 귀를 틀어막았다. 욕설이 섞인 고성과 물건들을 차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몇 번이고 이어지니 상황이 괴로워 속으론 언제나 그랬듯 숫자를 읊었다. 일, 이, 삼…… 삼십, 삼십일, 삼십이, 삼십삼…… 육십오, 육십육…….
“어휴, 이 양반은 또 어디서 술 마시고 퍼질러 있는 건지, 증말! 집안 꼴을 이 꼴로 만들어 놓고. 내가 속이 터져서 못 살지, 으휴, 속 터져!”
상기된 얼굴, 씨근덕거리는 가슴께. 감성팔이라고는 조금도 통하지 않을 그들에게 그래도 할 수 있는 회유란 회유는 다 동원해서 겨우겨우 돌려보냈겠지. 햇님은 그것을 보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니까 대체 왜 이러고 살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재봉틀은 다시금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기 시작했다. 웅웅거리는 그 소리가 아주 귀에 박힐 지경이었다.
“너 그렇게 놀고만 있지 말고 엄마가 한 거 백 개씩 세어서 구석에 포개어 둬.”
소리도 소리지만 좁은 공간에 실밥과 먼지들이 한데 섞여 흩날려 정신이 없었다. 해서 놀고 있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 없어 넋을 뺀 것뿐인데 꼭 제 엄마는 놀고 있다, 라고 표현했다. 정도가 심할 땐, 너도 네 아빠 닮아서 그렇게 할 일 없이 놀고만 있냐, 라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속에서 불구덩이 같은 짜증이 치밀었다. 성씨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 한심한 인간이랑 동급 취급을 한다는 게 너무 기가 차서.
“놀기는 내가 뭘 논다고 그래!”
“그럼 그게 가만히 앉아서 놀고 있는 거지, 네가 어디 연필 들고 공부라도 하고 있는 거야, 지금? 어?”
“공부? 공부우? 여기서 어떻게 공부를 해! 엄만 지금 이런 데서 공부라는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이렇게 난장판인 곳에서?”
나가서 돌아다니면 또 돌아다닌다고 뭐라고 그러고. 집구석은 이렇게 시끄러워 죽을 지경이고. 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뭐? 난장판? 얘가 진짜!”
삐져나온 잔머리 정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개수를 맞추기 위해 열심히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데 이 와중에 사납게 반응하는 딸 때문에 더욱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저 버르장머리를 언제 한번 날을 잡고 고쳐야 하는데 항상 생각으로만 그칠 뿐 그마저도 쉽지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장갑을 벗고 아까부터 눈을 찌르던 앞머리를 이제야 뒤로 넘겼다. 본디 하얗고 메말랐던 손에는 어느새 여기저기 투박한 굳은살이 생겨 예전의 그 고왔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제 어머니의 손을 보고도 햇님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아우씨, 이게 다 뭐야. 먼지 엄청 날리네. 캑캑, 아주 숨이 막힐 지경이야. 이러다 폐병 걸리겠어.”
그러는 사이 문이 열렸고 뒤엉키듯이 날리는 공기에 오만상을 일그러뜨리며 햇님의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날리는 먼지가 고역이라는 듯 어지럽게 손바닥을 펄럭이는 걸 여러 번이고 반복했다.
“당신!”
“아, 내가 이런 자질구레한 부업 같은 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 까짓것 얼마나 한다고 이런 일을 꾸역꾸역 얻어 와?”
구석에 쌓여 있는 것들을 손도 아니고 발로 툭툭 건들며 대꾸를 하는 꼬락서니에 햇님의 어머니가 기가 차다는 듯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그와 마주 섰다.
“……뭐? 까짓것 얼마? 하! 그래, 까짓것 얼마 하지도 않는 거 나는 허구한 날 돌려 대고 있는데 당신은 대체 어디 있다가 지금 들어온 거야, 어?”
“금방 나갈 거야.”
“뭐라고? 또 나간다고?”
“집구석에 무슨 돈이 이렇게 없어? 만 원 한 장 안 나오네. 어디 다른 데 숨겨 놓은 데 있어? 가지고 있는 거 좀 내놔 봐.”
며칠 만에 낯짝을 들이밀며 들이닥친 건지.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닌지라 집에 안 들어온 날을 세어 기록을 갱신하나, 안 하나, 하는 것도 관뒀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악덕 고리대금업자들이 안 그래도 있는 협박, 없는 협박 갖은 협박이란 협박은 다 동원하며 으름장을 놓고 간 후였는데, 그는 그 사달을 이미 알기라도 한 듯 뒤늦게 나타나선 쌈짓돈을 감출 수 있을 만한 집 안 곳곳을 마구마구 들쑤셨다. 기대와는 달리 돈 한 푼 제대로 나오는 게 없자 온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곧장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런 그의 행태를 가만 지켜보던 햇님의 엄마도 똑같이 미간에 주름을 만들고 불만 가득한 듯 다다다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우리한테 돈 만 원이 무슨 애 이름이야, 어? 당신 지난주에 일용직이라도 알아본다더니 여태 뭐 하고 돌아다녔어, 어? 가장이란 사람이 정신 못 차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당장 몇 시간 전만 해도 그놈들이 찾아와서 당신 찾는다고 사람 속이며 집 안이며 다 뒤집어 놓고 간 건 알아? 당신 때……”
“아이, 씨. 이 여편네가 진짜, 조용한 사람 성질 긁네. 그만 안 해? 다 알아서 해. 알아서 한다고! 내가 이놈의 집 이래서 들어오기 싫다는 거야. 들어와서 좀 마음 편하게 쉴 수가 없어, 쉴 수가! 이래 봬도 밖에서 고생한다고, 나도!”
“고생? 고새앵?”
“됐다, 됐어. 나간다, 나가.”
“또 어딜 나가? 또 찾아오면 우리더러 어떡하라고!”
“글쎄, 돈 벌어 온다고 하잖아! 벌어 온다고!”
오고 가는 고성은 일상이자 반복이었고 해가 바뀌어도 도통 변하지 않는 순리와도 같은 듯했다. 큰 눈을 깜빡이면서 이쪽으로 한 번, 저쪽으로 한 번 번갈아 시선을 주는 것도 지겨워 그가 모습을 드러낼 때면 아예 등을 돌리고 앉아 상황을 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애를 썼다.
“저 인간이 정말! 어후,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저딴 인간이랑 사나 몰라, 어? 이러다 진짜 제명에 못 살지, 제명에!”
이미 쾅! 소리와 함께 닫힌 문이었지만 이 정도 큰 소리면 밖에서도 들릴 게 분명했다. 그러니 반드시 들으라는 듯 문 쪽으로 고개까지 내밀며 목에 핏대를 더 세우는 것이었다.
“…….”
지겨웠다. 지겹기 그지없는 집구석이 틀림없었다. 하루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다. 이놈의 집구석, 벼락 맞을 동네. 가장 구실이라곤 조금도 못 하는 아빠, 그런 아빠 옆에서 허구한 날 욕이나 해 댈 줄 알지 바보같이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 몸집보다 몇 배는 더 크게 불어난 빚 때문에 돈 갚으라는 독촉으로 때마다 고요를 풍비박산 내 버리는 고리대금업자들. 모든 게 다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