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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필적 고의

3화








이대로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법의관들은 아무렇지 않게 시신의 몸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장기를 떼어 내 세밀하게 살피고 그 조직들을 여러 곳에 걸쳐 도려내 용기에 담는 과정들을 거쳤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지켜보고 있기 힘들 만큼 부검 시간은 길고도 험난했다.

상체에 자상만 10곳이 넘었다. 피해자는 자상에 의한 과다 출혈로 손쓸 새도 없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탓에 분석하기 위해 채취해야 할 혈액이 부족했다.

다현의 시선은 피해자의 검붉은 혈액이 담긴 검체 용기에서 시신으로 자연스레 넘어갔다.

피가 흥건하지 않을까 했던 염려와 달리 시신의 상태는 깨끗했고 복부 안은 장기들이 또렷하게 보일 만큼 피가 바닥을 보였다.

입을 가린 마스크 너머로 다현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면서도 법의관들의 손놀림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피해자의 억울함을 밝혀내는 게 검사가 할 일이었다.

지금은 연수원 실습생이 아닌 검사로서 부검대 앞에 서 있는 거나 다름없다고 여기며 다현은 눈을 크게 떴다.

“주저흔이 전혀 없네요.”

“한 번에 찌르고 빠르게 뽑았습니다. 웬만한 힘으론 어림도 없죠.”

“용의자가 41세 남잡니다. 체격도 좋은 편이고.”

“피해자도 체격은 만만치 않은데, 아마 여기 이 부분. 급소를 찔러서 제압한 거로 보입니다.”

법의관과 이헌이 시신을 보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다현은 피해자 몸 곳곳에 나 있는 자상들을 살폈다.

표면이 깔끔했고 거칠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시신에 손을 뻗어 자상을 쓱 만진 다현이 차가운 촉감에 화들짝 놀라며 상체를 곧추세웠다.

“직무 대리님이 아주 용감하십니다.”

그런 다현을 보며 법의관이 의외라는 듯 웃었다.

며칠 전에 왔던 다른 검사님의 직무 대리 실습생은 시신을 보고 아연실색하며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갔었다.

그에 반해 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다현은 보기 드문 실습생이었다.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다현을 지켜보던 이헌 역시 마스크 너머 입꼬리가 휘어지며 설핏 웃는 것처럼 보였다.

“살펴봐도 돼.”

혹시 모를 피의자의 흔적들을 훼손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어 괜히 건드렸나 염려하고 있던 다현에게 그가 흔쾌히 괜찮다며 고갯짓했다.

지도 검사의 허락이 떨어지자 다현은 더욱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피해자 몸에 난 자상을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봤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던 낯빛은 어디로 가고 의심의 눈초리로 피해자 시신을 살펴보는 다현을 이헌은 제법이라 생각했다.

기절이라도 하지 않으면 천만다행이라 여겼는데, 생각보다 권다현은 강단 있는 검사가 될 거 같았다.



* * *



오늘로 검찰 실무 수습이 끝나고 법원과 변호사 실무 수습만이 남았다.

그 말인즉슨, 다현의 서울 중앙 지검 형사 4부의 423호 검사실 출근이 마지막이라는 뜻이었다.

“연수원 1등으로 졸업하시고 꼭! 우리 지검으로 오세요.”

실무관이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며 아이가 아파 오늘 회식에 참석할 수 없어 미안하다며 작은 선물까지 건넸다.

“감사합니다.”

퇴근 시간이 임박해서 계장님이 다른 검사실에 지원을 나가는 바람에 423호엔 찬바람이 쌩 불었다.

“밥 먹으러 가자.”

언제 옷을 챙겨 입은 건지 재킷을 걸치며 그가 다현을 재촉했다.

실무 수습 마지막 날이 돼서야 그녀는 처음으로 이헌과 밥을 먹게 됐다.

그것도 단둘이.

점심시간도 매번 엉망진창에 간단하게 빵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그것도 아니면 거르기 일쑤인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밥은 챙기면서 자신은 챙기지 않던 이상한 사람.

그래서 이헌과 밥 한 끼 먹는 게 소원이 돼 버린 다현은 출근 마지막 날 그 소원을 이루게 됐다.

오늘을 끝으로 내일이 되면 이헌을 다시 보지 못한다.

검찰청이 좁디좁아 언젠가 다시 보게 되겠지만 기약이 없었다.

평균 2년마다 인사이동이 있다. 그와 다시 만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검사의 행동 반경은 고작해야 자신의 사무실 안이니 더욱 그랬다.

퇴근 시간이지만 퇴근하는 사람이 없는 이상한 조직이 검찰이었다.

오늘도 역시 엘리베이터 안은 휑했다. 어색한 기류 속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그 짧은 시간이 유난히도 길게 느껴졌다.

“뭐 좋아해.”

심장이 터질 거 같았다. 별 뜻 없이 물어보는 단순한 질문인데도 손에 땀이 흥건할 지경이었다.

“아무거나 다 잘 먹습니다.”

상당히 사무적인 말투와 대답이었다. 조금 더 친근하게 말할 걸 그랬나 하는 찰나의 후회 속에 어느새 다현은 이헌과 함께 검찰청 건물을 빠져나왔다.

쭈뼛대면서도 그녀는 그의 뒤를 따랐다.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식당으로 그가 들어섰다. 낯설다 못해 처음 가 보는 식당 안을 둘러보던 그녀는 이헌의 맞은편에 앉아 벽에 걸린 메뉴판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생소하다 못해 처음 접해 보는 메뉴가 눈앞에 펼쳐지자 어지러웠다.

내장 국밥이라니. 순대 국밥이라니! 맙소사!

난생처음 먹는 국밥을 짝사랑하는 남자와 먹게 될 줄이야.

권다현, 넌 왜 아무거나 다 잘 먹는다고 말했니!

“뭐 먹을래.”

메뉴에 선택 사항이 있나요.

다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같은 걸 먹겠다고 대답했다.

“여기 내장 둘이랑 소주 한 병 주세요.”

내장이라니. 절망적이다.

우아하게 클래식 선율이 흐르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앉아 칼질만 할 거 같이 생긴 사람이 내장 국밥이라니.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또 이렇게 절절히 깨닫게 된다.

그도 검찰청 밥을 먹는 공무원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 두 그릇과 초록색 소주병 하나가 둥그런 테이블 위에 놓였다.

이헌이 따라 주는 술을 마시게 될 줄이야.

다현은 서둘러 잔을 받아 들고 그의 빈 잔에 소주를 따랐다.

“두 달 동안 수고했어.”

가볍게 잔을 부딪치며 그가 말했다. 다현은 고개를 돌려 잔을 비워 냈다.

“두 달 동안 가르쳐 주신 거 감사합니다. 정말 많이 배웠어요.”

다른 동기들은 뻔한 사건에 도장이나 찍고 시시한 결정문만 쓰고 소환 조사 같은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한탄했지만, 그녀는 굵직한 사건들을 제법 만질 수 있었다.

지도 검사가 유능하다 못해 신망이 두터운 탓이었다.

이헌이 자신을 가르치기 위해, 많이 배우라고 사건을 맡긴 건지 그도 아니면 워낙 배당된 사건이 많아서 나눠 준 건지 몰라도 어쨌든 덕분에 많은 사건을 짧은 시간 안에 볼 수 있었다.

“해 보니까 어때.”

잔을 비워 내며 그가 물었다.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재밌었어요.”

“잠깐이니까 재밌겠지.”

“법원 가면 재미없을 거 같아요.”

일도 재미가 없을 테고 근무 환경도 재미가 없을 게 자명했다.

법원엔 그가 없다.

그곳엔 문이헌 검사가 없다.

그 사실만으로도 벌써 재미가 없는 거 같았다.

“연수원 성적 좋다며.”

술이 들어갔다고 느슨해진 모양인지 그의 물음에 배시시 웃음으로 대답했다. 빈 잔에 또다시 술이 찼다.

사법 연수원을 수석 혹은 차석으로 수료하면 대개 대형 로펌 쪽으로 많이들 빠지는 추세였다.

등수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진로를 직접 선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수한 성적을 받은 이들이 검사로 빠지는 일은 이제 드문 일이 되어 버렸다.

“검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어?”

“네.”

단순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질문이었다. 다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고는 잔을 비웠다.

그는 국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다현을 빤히 쳐다봤다.

“어릴 때부터 검사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멋있잖아요. 원더우먼처럼.”

배시시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다현을 보며 그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원더우먼이라니. 참 어린애 같은 생각이다.

“나이가 몇인데 원더우먼 타령이야.”

“제 나이 모르세요? 두 달이나 제 지도 검사셨는데요?”

글쎄.

그는 대답을 회피했다. 나이를 정말 몰라서 그랬다. 지금 보니 나이가 제법 어려 보였다.

“제가 공부를 잘해서 사법시험도 한 번에 붙었어요. 그것도 수석으로.”

술이 들어가니 제 자랑이 멋도 모르고 튀어나왔다.

“잘했네.”

술잔을 비우며 이헌은 다현에게 가볍게 칭찬을 건넸다.

본인의 칭찬이 그녀를 곤란하게 만든다는 걸 모르는 남자의 당연한 반응이었다.

연수원 성적도 좋다고 들었는데 사법시험까지 수석이라니.

실무 수습 기간 동안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아들어서 꽤 쓸모 있는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바탕이 남달랐던 모양이다.

“검사님도 1등이었다고 계장님이 그랬어요.”

어디 그의 성적 얘기만 들었을까. 대검에서도 탐내는 인재라는 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이대로만 가면 곧 대검으로 발령이 날 거 같다는 얘기도 듣고 풍문에 아버지가 법관이라는 소리부터 시작해 할아버지가 청와대 출신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지금도 1등이야.”

잘난 사람이 잘난 척을 하니 그마저도 멋있어 보였다.

큰일이다.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다.

“저, 검사님…….”

그를 부르며 그녀는 빈 잔을 만지작거렸다. 잔 위로 술을 따르는 손이 얼핏 보였다.

다현은 찰랑거리며 채워진 잔을 바라봤다.

저 검사님 좋아해요.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그냥 얘기하고 싶었다.

짝사랑은 체질에 맞지 않으니까. 사랑은 속에 담아 둘 감정이 아니다. 속에서 들끓고 터져서 곪아 버리면 썩기 마련이다.

그렇게 끝이 좋지 않은 감정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좋은 지도 검사였고 좋은 선배였다. 좋은 사람에게 그냥 말하고 싶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다현이 찰랑거리며 가득 차 있는 잔을 바라보다 입을 떼려던 그 순간이었다.

“나랑 아예 안 볼 생각이야?”

“……네?”

자신의 빈 잔에 술을 따르던 그는 소주병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마치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하냐는 듯.

“무슨 말할지 알아. 그러니까 그 말, 하지 마.”

저기요, 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거든요?

차마 얼굴을 볼 수가 없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다현은 얼굴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지만, 미간에 옅게 드리워진 주름이 그의 불편한 심기를 대변했다.

그는 피의자의 속내를 꿰뚫어 보듯 자신의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치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어 민망함은 혼자만의 몫이 돼 버린 듯했다.

“연애 같은 거 안 해.”

단호했다. 뭐라 대꾸조차 할 수 없게 사방을 틀어막은 대답이었다. 어차피 그의 대답을 원해서 한 말이 아니었다.

속에 담아 두면 답답하니까. 그런 게 싫었을 뿐이다.

“그, 그냥 전……!”

정말이다. 그냥 자신의 마음이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조금의 술기운을 빌려.

“밥이나 먹어.”

그는 시종일관 테이블에 놓여 있던 숟가락을 다현의 손에 꼭 쥐여 주며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불어 버린 국밥을 멍하니 쳐다보며 입을 뗐다.

“저 까인 거죠?”

다현은 국물이 밥알을 모조리 삼켜 버려 죽이 된 국밥을 뒤적거렸다.

“어. 까인 거야.”

끝내 그녀는 국밥을 한 숟가락도 먹지 못했다. 빈속에 차가운 소주만 한 병 가득 채웠을 뿐이었다.

“다음엔 맛있는 거 사 줄게.”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권다현의 짝사랑은 그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고 첫사랑도 그렇게 떠나갔다.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흑역사만을 남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