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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1권(16화)
6. 바이벨로나 시티 공방전―상(3)


“꼬맹이들이나 도울까 해서 말이다. 100년이라는 시간은 길다. 보통 인간이라면 늙어 죽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지. 그래서 조금 생각해 둔 것이 있달까. 빛과 어둠의 싸움이 지구의 운명을 가르지 못하게 된 이상 거기에 어울릴 이유도 없고. 안 그래? 형씨.”
크라이는 마왕의 곁에 있는 천일을 보며 말했다.
“형씨?!”
재운이 놀란 반응을 보였다. 크라이는 아무리 봐도 자신이나 천일에 비해 나이가 많은 남자였다. 그런데 형씨라니…… 역시 강하니까 존중 받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이라도 만들 생각이냐?”
천일이 알 만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정답. 이야, 역시 대단하구만. 이야기한 것도 없는데 단숨에 내 계획을 꿰뚫어볼 줄이야.”
크라이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이 그런 일을 용납할까?”
천일이 의문을 표했다.
“이봐, 형씨. 마왕보다 강함을 손에 넣은 당신이라면 모를까, 돈과 명예에 낚여 이곳에 온 보통의 인간들은 중앙 대륙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늙어 죽어. 한둘 정도는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대개는 그렇게 돼. 인간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주지. 부모의 전투 능력이 10만이라면 자식은 100만이 될 수도 있는 것. 그것이 인간의 방식. 틀렸을까?”
크라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수준에서 현명한 판단을 하고 있었다. 천일은 그에 비릿한 웃음을 흘릴 뿐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았다.
“…….”
기분 나쁜 침묵.
“이봐, 형씨.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주지 않겠어?”
“별로.”
“그러지 말라구. 얼굴에 써 있잖아. 불만이.”
“별거 아냐. 그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할 뿐.”
“무슨 일?”
“당신 같은 사람의 마음이 무슨 일로 꺾여 버렸는지 조금 궁금하달까. 아무 일도 없이 패배를 인정하고 후일을 기약할 남자로는 보이지 않아서 말이야.”
천일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크하하. 이거야, 졌다. 졌어. 대단하네. 거기까지 꿰뚫어볼 줄이야. 영웅이 되겠다는 말이 허언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는걸. 좋아. 그럼 조금 이야기를 해줄까. 바이벨로나 시티 밖에 관한 이야기를, 살짝.”
크라이는 그런 말을 하고는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7층의 어느 지역.
괴물들이 바글거려야 할 장소지만 안쪽에 위치한 몇 개의 방에는 괴물이 출현하지 않기에 바리케이트를 만들고 몇 명의 사람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크라이의 동료들로 마왕을 보자 눈썹을 씰룩였다.
다들 복잡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쪽으로. 아직 조잡하지만 좀 더 편안한 곳으로 만들 생각이다. 그때가 되면 이곳에서 아이들이 태어날 수도 있겠지.”
크라이가 그런 말을 하며 천일들을 인도했다.
제법 꾸며진 방.
가구와 생활에 필요한 가전제품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괴물들이 바글거리는 곳에서 잘도 이런 공간을 만들어냈다.
“차를 끓여오지. 인스턴트커피가 전부지만 그 정도로 만족해 줘. 이것도 여기서는 귀한 물건이라서.”
크라이가 말했다.
잠시 후.
작은 차 테이블을 중심으로 크라이와 천일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크라이는 커피를 홀짝이며 자신들이 겪은 바이벨로나 시티 밖에서의 일을 털어놓았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마왕의 안색은 굳어졌고 천일은 역시라는 얼굴을 했다. 재운이야 꾸벅꾸벅 졸았고.
반나절이 지났다.
“이야기는 여기까지. 대충 그런 일이 있었다.”
크라이의 이야기에 끝을 고했다.
빠득.
마왕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렇게 화내지 마. 이빨 망가져. 예상하고 있던 일이야. 대수로울 것도 없어.”
천일이 말했다.
“예상했던 일입니까?”
마왕이 물었다.
“녀석들. 로얄블러드 가문과 흡혈귀들은 마왕의 휘하라는 것에 불만이야 가졌겠지만 오랜 시간 마왕을 따른 자들이야. 노바 스페이스 연맹이 출현하지 않았다면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을 거야. 나를 없애겠다며 날뛴 일이나 너를 압박하여 나를 남편으로 삼게 만든 일이나, 그런 일들은 마왕 가문 역사에 종종 있어 왔던 일들이지만 너의 경우는 달라. 마왕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잖아. 마지막 마왕이지. 마왕이 없으면 그들은 어둠의 축복을 받지 못해. 그건 빛의 진영과의 싸움에서 불리해지는 일을 자초하는 거지. 그걸 무시할 정도의 무언가가 없다면 말이야.”
천일이 설명했다.
“…….”
마왕의 안색이 차분해졌다. 천일의 이야기는 자신도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형씨. 영웅이 되겠다고 했지? 현재 전투 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물어도 될까?”
크라이가 화제를 돌렸다.
“28만 9천.”
천일이 답했다.
“순수한 인간이었던 게 아닌가?”
크라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아아. 전생을 기억하고 있어서 말이야. 나는 전생에 인간의 몸으로써 한계를 돌파하여 절대 강자에 도달했었거든. 그래서 아직도 성장 중이지. 내가 전생에 갔었던 그 경지에 도달하면 전투 능력은 지금의 10배 정도가 될 거야. 넘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지만. 거기서부터는 다시 깨달음을 얻어 강해져야 해. 시간은 충분히 있어. 말했듯이 100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야. 길지.”
천일이 의미심장한 태도를 보였다.
“대련을 신청한다. 부탁해. 우리에게 경지를 보여줘.”
“우리?”
“내가 10만 1천, 엘럿이 8만 6천, 그라함이 9만 3천이다. 부탁한다. 우리들 셋을 이겨다오.”
크라이의 이야기는 어딘가 이상했다. 전투 능력에 관한 것도 마왕의 발언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들도 아틀란티스 대륙에 와서 조금은 성장했던 것이다.
“이겨 달라? 희망을 보고 싶다는 거냐?”
천일이 물었다.
끄덕.
크라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은 없는데, 대신 말이야. 이 녀석부터 보스 괴물 좀 잡을 수 있게 해줄 수 있어? 용병 없이도 먼저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들어가서 잡고 있다면 할 수 없지만. 우린 바빠서 말이야.”
천일이 조건을 걸었다.
“알았다. 그렇게 하지.”
크라이는 흔쾌히 승낙하고는 마왕을 상층부 입구로 안내했다. 다행이도 도전하는 자는 없었다.
“그럼 다녀오마. 괴물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내가 다 알고 있어. 네 여자친구는 내가 지킨다. 기대하라고. 이 철권님의 솜씨를.”
재운이 말했다.
“철권? 그러고 보니. 뭐냐? 그 이상한 별명은.”
천일이 트집을 잡았다.
“도움 같은 것은 필요 없다. 다녀오지, 천일.”
마왕은 멋대로 그렇게 말하고는 혼자 걸음을 옮겼다. 그사이 재운은 천일에게 ‘이상하다니!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철권! 강철 같은 주먹! 얼마나 멋지냐! 멋진 별명 없다고 남의 멋진 별명에 트집을 잡다니! 이 비열한 녀석.’이라며 발끈했다.
“멋진 게 다 얼어 죽었다. 그리고 뭐? 네가 마왕을 보호해?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 보호받는 건 마왕이 아니라 너야. 너.”
천일이 재운에게 현실을 말해 주었다.
“크아아아! 너, 이 자식! 죽인다. 죽인다!”
재운이 으르렁거렸다.
“발악은 그만하고 구경이나 해. 이 멋진 형님의 실력을 감상하라구.”
천일이 그런 말을 하고는 재운에게서 발을 돌렸다. 거기에는 크라이들이 있었다. 셋 모두 크루세이더로 유럽에서 흡혈귀들과 대적하던 현대판 기사들이었다.
“그럼 시작할까.”
천일이 주먹을 내밀었다. 그에 크라이들도 주먹을 내밀었다. 네 명의 반지가 동시에 번쩍하더니 특수 필드 결투 존이 전개되었다.
우웅.
크라이들은 하나같이 등에 대검을 메고 있었는데, 그것을 앞으로 치켜들자 붉은 기운이 검에서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전투 능력 수치를 듣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 챔피언이로군. 거기에 특성이라는 힘도 가지고 있을 테고. 조금은 조심하는 편이 좋으려나.’
스릉.
천일은 크라이들을 판단하며 청살검을 뽑았다.
“나의 본질은 수호. 아군을 지키는 강대한 방패!”
“나의 본질은 바람. 아군의 발을 가볍게 하는 부츠!”
“나의 본질은 불. 아군을 강하게 만드는 검!”
크라이들이 각자 소리쳤다. 그러자 그들의 검이 불타오르고 반투명한 황금색 기운에 그들을 감싸고 바람이 그들의 발치를 맴돌았다.
“하아.”
짧게 한숨을 내쉰 천일은 검을 한번 휘둘렀다. 단지 그것뿐이었지만 강력해 보이는 푸른색 검강이 랜스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
크라이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콰쾅.
폭음이 울렸다. 크라이들은 천일의 기술 소드 랜스에 휘말려 제각각 사방으로 날아갔다. 검강으로 만들어진 랜스는 크라이의 특성 수호를 간단히 파괴할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천일은 일부러 빗맞혔다. 한 번 공격으로 결투를 끝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당신들 말이야. 아직 한계가 아니야. 더 강해질 수 있어. 특성에 매달리지 마. 게다가 활용법도 틀렸어.”
천일이 한심하다는 어조로 조언을 했다.
“……!”
크라이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들의 전술은 그들이 오랜 경험을 거쳐 만든 것으로 누구에게 이래라저래라 말 들을 이유가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다시 일어났다. 하나가 되어 다시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었다.
우우웅.
천일의 발치에서 푸른색의 기류가 뿜어졌다.
고오오.
푸른 기운이 청살검을 덮었다.
“잘 보라고. 이렇게 하는 거야.”
천일이 그런 말을 하며 땅을 박찼다.
검강, 나이트 차지.
“으아악.”
크라이의 몸이 날려졌다. 원래대로라면 검에 꿰뚫려 즉사했겠지만 서포트 시스템이 발동시킨 실드가 검에 꿰뚫리는 일만은 방지했다.
“소드 임팩트!”
천일이 기술명을 외쳤다. 그러자 청살검을 덥고 있는 검강이 소드 임팩트와 합쳐져서 검강의 파편을 사방으로 날렸다.
“크악.”
“허억.”
다른 두 사람도 본래라면 검강의 파편에 몸이 걸레가 되었겠지만 서포트 시스템이 발동시킨 실드가 그들의 몸을 지켰다.
“형씨, 엄청난데.”
크라이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동시에 검강 소드 임팩트에 당한 자들은 한줄기 빛이 되어 사라졌다. 서포트 시스템의 판단하에 병원으로 이송된 것이다.
“적당히 한 거야.”
천일이 답했다.
“마지막으로 멋진 걸 볼 수 있을까? 형씨가 있는 경지의 풍경을 보고 싶다.”
크라이는 천일이 가진 최강의 기술을 보고 싶었다.
“음.”
천일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소드 마스터에 불과하다지만 서포트 시스템이 충격량을 견디어낼 수 있는지 걱정이 된 것이다.
“죽어도 좋다.”
크라이는 진심이었다.
“그럼 조금만.”
천일은 그런 말을 하고는 검을 하늘로 뻗었다.
빛살검리 최후 3초식 중 두 번째, 달무리 지옥빛살.
우웅.
“……!”
크라이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고 천일만 보였다. 머리 위로 달덩이와 같은 둥근 빛의 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오오오.
대기가 운다.
“이건 내가 지구에 와서 익힌 지구의 검술이야. 내 개인적인 사정과는 상관없이 지구인이 도달한 경지의 풍경이지.”
천일이 말했다.
“이름이?”
크라이는 궁금했다.
“달무리 지옥빛살.”
천일이 그런 말을 하고는 검을 휘둘렀다. 물론 크라이를 향해서는 아니다. 그럼 분명 죽을 터이기 때문에 크라이를 크게 빗겨 나가도록 시전 했다.
콰콰콰쾅.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수히 많은 작은 폭발이 크라이의 몸 전체에서 발생하였다. 직후, 크라이는 한줄기 빛이 되었다. 서포트 시스템의 판단이었다. 때문에 천일도 조금 놀라고 말았다. 빗겨 나가게 하면 아무 이상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거 생각보다 위험한 검술이네. 역시 괴물들에게 시험해 보는 수밖에 없겠어.’
천일은 그런 생각을 하며 달무리 지옥빛살을 거두었다.
휘청.
달무리 지옥빛살은 천일이 생각했던 이상으로 강력한 만큼 마나의 소모도 큰 기술이었다. 때문에 배틀 존에서 돌아온 천일은 재운에게 호위를 부탁하고 명상에 들어갔다. 소모된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는 사이 마왕도 작업을 끝내고 돌아왔다.
“빨라!”
재운은 경악했다. 상상한 것 이상으로 천일과 마왕이 강함을 알게 되어버린 탓이었다. 그래서 어금니를 깨물고는 명상에 빠진 천일의 옆에서 스트레칭을 시작하였다. 어떻게 해서든 격차를 줄이고 싶었던 것이다.

나방 인간 모스맨은 도시 외곽 지역에 위치한 종합 운동장에 터를 잡고 있었다. 노페이스와 마찬가지로 그 입구에는 용병을 뛰는 사람들과 클리어를 위해 대기 중인 사람들이 있었다. 모스맨의 전투 능력은 2만 8천 갤런이고 노페이스와 마찬가지로 혼자 등장하지는 않는다. 전투 능력 1만 갤런 근처의 네임드 괴물 10마리 정도와 전투 능력이 2천 갤런 수준의 아주 약한 괴물을 100마리 정도가 함께였다. 그리고 녀석들은 날아다녔다. 노페이스보다 공략이 까다로운 녀석이다.
대신 5명까지 동시 입장이 가능했다.
5명까지 동시 입장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지구인들이 가장 먼저 찾는 보스 괴물이었다. 그래서 사람들도 노페이스 입구보다 많았다.
털썩.
모여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쓰러졌다.
“훗. 여전히 가소로운 것들이구나. 인간이라는 종족은.”
소녀 하나가 나타났다.
분홍색 레이스가 잔뜩 달린 화려한 드레스.
그저 예쁜 양산.
인형 같은 얼굴.
태양 아래를 걸을 수 있는 흡혈귀,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였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3명의 청년과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