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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1권(21화)
7. 바이벨로나 시티 공방전―하(3)
“……!”
마왕의 안색이 변했다.
8만 9천, 어떻게 계산해도 나올 수 없는 수치였다. 천일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뿐으로 마왕처럼 놀라지는 않았다.
“본녀는 전설이 되었느니라.”
전설, 베베가 말했다.
“진조(眞祖)입니까?”
마왕이 물었다.
끄덕.
베베가 긍정을 표했다.
진조(眞祖), 다른 표현으로 구시대의 주민, 태초의 마인, 악의 근원 등등. 설명하는 단어는 많지만 현대에 들어서 진조는 멸망한 일족일 뿐이었다. 흡혈귀 역사와 사람들의 공상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존재로 흡혈귀의 모태가 된 생물이었다.
흡혈귀의 약점이 없고 인간으로서의 약점도 없는 존재.
늙지 않고 병에 걸리지 않고 직사광선과 신성한 힘에 손상을 입지 않고 육체의 성장도 없고 변신도 할 수 없고 피를 빤다고 강해지지도 않는 등등. 따지고 보면 딱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생물이었다.
때문에 대개의 흡혈귀들은 진조라고 하면 그런 것 줘도 안 한다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전설이 되었다.
“그렇다. 본녀는 진조가 되었다.”
베베가 긍정했다.
“좋은 겁니까?”
마왕이 반어법을 사용하여 물었다. 마왕이 알고 있는 대로라면 진조가 되었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위치가 다르면 보이는 풍경도 다른 법. 하지만 저기 인간의 피를 빨지 않았다면 당황했을 터지. 게다가 본녀에게는 오랜 세월을 거쳐 쌓인 지식과 깨달음이 있느니라. 본녀는 이제부터 성장해 갈 것이야. 기대해도 좋다, 인간.”
베베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천일을 바라보았다.
“하하. 그래? 그거 좋은 일이네. 축하해. 앞으로 잘 부탁해.”
천일이 답했다.
로얄블러드 가문 데블런은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 베베의 동생 격인 남자였다. 외모는 30대 중반으로 그리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그 힘은 옛날에 베베를 능가했다. 그는 스무 명 정도의 흡혈귀를 데리고 바이벨로나 시티를 향하고 있었다. 목적은 두 가지. 하나는 베베의 봉인이고 다른 하나는 바이벨로나 시티에 존재하는 노바 스페이스 연맹 사람들의 피였다. 그들의 피를 흡수하면 더 강해질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었다.
번뜩.
데블런은 갑자기 힘이 증가하는 것을 느꼈다. 10만 갤런 정도의 전투 능력이 증가한 것 같았다. 이는 가문에 속한 누군가가 가문을 이탈했거나 죽었다는 의미였다. 어느 쪽이든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잘 감지되던 베베의 기척이 사라짐을 느꼈다. 가문의 일원으로도 어둠에 속한 존재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누님, 진영까지 이탈하셨군요. 최악의 선택을 하시다니. 누님답지 않은 판단입니다. 하지만 저에게서 도망치기 위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하지만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저에게 대항하는 대신 힘이 없는 삶을 택하다니. 버러지같이 되어서 무엇을 어쩌실 작정입니까. 상관없는 일입니다만. 흐흐.”
데블런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그렇지 않아도 생각은 해두고 있었다. 베베와 데블런은 같은 인물의 피를 빨아도 성장하는 정도가 달랐다.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로 데블런이 압도적이었다. 베베는 보통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흡혈귀로서의 자질이라는 놈 때문이었다.
“얌전히 계셨다면 관에 쳐 넣는 정도로 끝내 드릴 생각이었습니다만. 좋습니다. 고고한 소녀이신 누님을 고문하며 즐기는 일도 하나의 묘미. 끝까지 추적하여 반드시 붙잡아 드리겠습니다.”
데블런이 히죽 하고 웃었다. 벌어진 입 사이로 흉악스러운 욕망의 그림자가 비추면서 말이다.
베베를 팀으로 받아들인 천일들은 나방 인간 모스맨을 잡기 위해 이동했다. 베베는 외부에서 들어왔기에 잡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재운은 이미 잡았고 잡아야 하는 사람은 천일과 마왕뿐이었다.
그리고.
베베에게 당해 정신을 잠식당했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베베가 진조가 됨으로써 자유의 몸이 된 그들이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어떤 보상을 원하는고? 배틀 포인트라면 나누어 줄 수 있느니라.”
베베는 자신이 원인이 되어 말썽이 일어나는 것이 싫었다. 천일은 나방 인간 모스맨을 잡기 위해 자리가 없는 상태였다.
“1명 당 1만 포인트면 된다는 것이더냐? 알았다. 나누어 주도록 하마. 본녀는 그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했느니라. 기억하라, 인간들이어. 본녀는 우리를 이끄는 그의 뜻에 따라 너희들에게 보상을 지급하는 것임을.”
베베는 약간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배틀 포인트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만족했다. 1만이라는 배틀 포인트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누어 주어도 괜찮은 건가?”
마왕이 물었다.
“아직 100만이나 남았느니라.”
베베가 답했다.
“100만!”
마왕은 충격이라는 반응이었다.
“576. 577. 578.”
재운은 옆에서 근육을 혹사시키는 데 여념이 없었다.
“놀라운가? 하지만 대수로울 것도 없느니라. 본격적인 퀘스트를 수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모이는 소소한 수준의 금액이니라. 병기도 살 수 없고 차량도 살 수 없느니라. 가구를 몇 개 들여놓으면 끝이지.”
베베의 말에는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가구? 차량? 병기?”
마왕이 의문을 표했다.
“외계인들이 제공하는 생활필수품 같은 것이니라. 중앙 대륙은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넓고 다양한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느니라. 자연도 인간에게는 가혹하지. 아무것도 모르고 움직였다가는 며칠 버티지도 못하고 병원으로 이송될 것이니라. 때문에 필요한 물건들이니라.”
베베가 설명을 했다.
“너는 무엇을 가지고 있지?”
마왕이 물었다.
도리도리.
“본녀는 도망자였다. 전부 버릴 수밖에 없었느니라.”
베베가 답했다.
“…….”
마왕은 할 말을 잃었다. 베베의 처지를 슬쩍 떠올리고 만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천일이 나왔다.
“마왕. 베베. 호위를 부탁해. 명상을 좀 해야겠어.”
천일이 말했다.
끄덕.
마왕과 베베가 긍정을 표했다. 그리고 천일은 바로 가부좌를 틀었다. 천일은 햇무리 천하빛살이라는 것을 사용하여 나방 인간 모스맨을 처치했다.
햇무리 천하빛살은 달무리 지옥빛살과 대조되는 검식으로 달무리 지옥빛살보다 전단계의 검식이었다. 인간이 아닌 존재, 귀신이나 마물, 흡혈귀 등을 상대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지닌 기술로 일반적인 생명체를 상대하는 것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방 인간 모스맨을 처리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애를 먹은 것처럼 보이는구나. 나방 인간 모스맨이라는 괴물의 전투 능력은 3만이 되지 않을 터. 이해할 수가 없구나.”
베베가 의문을 표했다.
“실험을 한 것이지. 자신이 익힌 검술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고 있다고 들었다.”
마왕이 답했다.
“이상한 일이구나. 자신이 익힌 검술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니. 잘 모르는데 익혔다는 것이더냐?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본녀는 이해할 수가 없구나.”
베베는 정말로 궁금했다.
“…….”
마왕은 답을 피했다.
약 1시간 후.
천일이 눈을 떴다. 기지개를 한번 켜고는 반지를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금색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바이벨로나 시티의 보스 셋을 모두 처치했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반지를 눌러보거라. 알아두어야 할 사항이 나타날 것이야.”
베베가 조언을 했다.
“응.”
천일은 그 말에 따랐다.
스앙.
반지에서 홀로그래픽 형식으로 스크린이 떴다. 거기에는 출발 지역을 통과한 지구인에 부여되는 권한, 알고 있어야 할 상식, 다음 행선지에 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거, 친절하네.’
천일이 그 전부를 읽어보는 데 반나절이라는 시간을 소비했다. 팀을 이끄는 리더로서 알아두어야만 하는 것들이 많았다.
‘우선 정식으로 팀부터 만들까.’
띠링.
[팀을 결성하시겠습니까? 팀장이 되면 다른 팀에는 가입할 수 없으며 팀장으로서 팀원을 이끌 책임이 부여됩니다.]
허공에 글씨가 떴다.
예.
천일이 선택을 했다. 그러자 팀의 이름을 정하는 칸이 등장했다. 밑에는 컴퓨터 자판 같은 것이 등장했다.
띠디딕.
[지구를 대표하는 최강의 7인은 등록할 수 없는 팀명입니다. 다른 이름을 선택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
천일이 인상을 찌푸렸다.
“호호. 그런 멋들어진 이름은 누군가 선점한 것이 당연하질 않느냐. 다른 이름을 골라보거라.”
베베가 웃으면서 조언을 했다.
‘쳇. 하기야 그렇겠지만. 음.’
천일은 그 후로 몇 개의 이름을 넣어보았지만 전부 등록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아틀란티스 월드가 시작되고 1년이 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끙.”
하다 못한 천일이 반쯤 나뒹굴었다. 자신의 이상에 부합하는 이름들 중 등록되지 않은 이름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간단하게 지구인이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마왕이 의견을 냈다.
“응? 있을 것 같은데. 해볼게.”
천일은 마왕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지구인으로 등록하시겠습니까?]
지구인은 아무도 선점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천일은 예를 선택하려다가 아니요를 눌렀다.
“차라리 어떤 의미도 두지 않으면 어떻겠느냐. 이름은 이름일 뿐이니라. 거기에 속박될 이유가 없느니라.”
베베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럼.”
천일이 결심을 굳혔는지 손가락을 움직였다.
영웅과 마왕 그리고 지구인.
띠링.
선택할 수 있는 이름이었다. 이에 마왕과 베베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떻게 읽어도 천일과 마왕의 관계를 강조한 걸로 보였다.
“좋아. 바로 이거야.”
천일 혼자 신나서 예를 눌렀다.
[팀 영웅과 마왕 그리고 지구인이 결성되었습니다. 팀원은 합당한 이유가 아니고서는 퇴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신중히 선택하여 주십시오.]
메시지가 떴다.
“그럼, 마왕 너부터다.”
천일이 팀원 신청을 눌러 마왕의 이름을 적었다.
띠링.
마왕이 팀원이 되었다.
띠링.
재운이 팀원이 되었다.
띠링.
베베가 팀원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팀 영웅과 마왕과 지구인이 결성되었다. 아직 3명을 더 받을 수 있었다. 천일은 7명으로 구성되는 팀이 지구인 모두를 대표할 수 있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그럼 이제부터 팀과 팀원, 팀장에게 지원되는 서포트 시스템의 추가 기능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매우 중요한 부분이니 반드시 숙지하길 바랍니다.]
천일은 이후 팀에 관한 서포트 시스템 기능을 공부했다. 이해해야 할 개념과 기억해야 할 사항이 많아서 마왕이 나방 인간 모스맨를 처리하고 나온 뒤에도 한동안은 자리를 뜨지 못했다.
바이벨로나 시티 세이프 존.
시작 지점답게 병원, 상점, 여관, 주점, 식당 등이 존재하는 구역으로 노바 스페이스 연맹 사람들에 의해 보호되고 있었다.
천일과 마왕은 먼저 경비 책임자를 만났다. 바이벨로나 시티를 나갈 권한을 받기 위해서였다. 베베는 다른 출발 지역에서 시작하여 여기까지 왔기에 권한을 얻지 않아도 되었고 재운은 예전에 획득해 두었다.
그리고 천일은 마왕을 데리고 여행용품 상점으로 향했다.
재운과 베베는 일반 지역에서 대련을 하고 있었다. 베베는 진조라는 상태에 아직 익숙하질 않았고 재운은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기 위해 무엇이든 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손님.”
가게 주인은 외출 중인지 오토로봇이 천일과 마왕을 맞았다.
오토로봇은 노바 스페이스 연맹 사람들이 자리를 비워야 할 때 대리역으로 세워두는 것으로 전투 능력은 10만 정도 되었다. 지구인이 힘을 합하면 부순 다음 물건을 훔치는 것도 가능했지만 그랬다가는 지명수배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지명수배 명단은 뭐긴 뭐겠는가? 지명수배 명단이지. 이 명단에 적힌 사람은 나쁜 사람이니 병원으로 보내면 배틀 포인트와 상품을 지급하겠습니다, 라는 거다. 정도가 심해지면 노바 스페이스 연맹에서 추적자를 보낸다.
추적자 역할은 주로 영웅들이 맡았다. 잡히면 옥쇄의 탑에 간다. 감옥 같은 것으로 과거 지구에 존재했다던 어떤 감옥보다 지독하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아직 들어간 사람은 없어 진위 여부를 아는 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