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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파, 필요하시죠?
1화
1.


15살, 마녀의 힘이 각성하는 나이. 어린 불의 마녀 크리스티네의 열병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하아― 하고 그녀가 끓는 숨을 내쉴 때마다 그녀를 사랑하는 모든 존재들이 길어지는 열병을 걱정했다.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 아무도 그 신성한 첫걸음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그녀가 멋대로 퍼지고, 어지르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힘을 스스로 누르고, 제어하고, 제압할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
“……죽어 버릴 것 같아.” 붉은 소파에 몸을 누인 채 그녀는 몇 번이고 불평했다.
“망할 마녀.” 아니, 욕을 했다.
며칠간 이어진 열로 인해 온몸이 퉁퉁 부었다. 몸에서는 열이 난다는데 춥기는 또 왜 이렇게 추운지, 보드랍고 기분 좋은 소파에 몸을 기대어 이불을 돌돌 말고 있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위안.
“너 없었으면, 벌써 죽어 버렸을 거야.”
대답이 돌아올 리 없건만, 그녀는 소파에게 감사했다. 붉은 소파의 결이 더욱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착각일까.
“―차라리, 덜어 내고 싶어. 이 힘을―”
그리 중얼거리며 눈을 감는다.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그녀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붉은 불이 더욱 크게, 선명하게 느껴진다.
잡아먹힐 것 같아. 도리어 내가 타 버릴 것 같아. 라며, 그녀는 그 불의 힘을 두려워하였다. 함부로 그것을 운용해 볼 생각 따위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무심코 힘을 싣고 내뱉은 말은 그대로 마법이 되어 버린다. 더 이상 뜨거워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몸이 더욱 뜨거워지며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불빛이 그녀로부터 발현된다. 크리스티네는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며칠이나 눈을 뜨지 않았다. 열은 사르르 내려 이제 그녀의 몸은 평소의 온도와 같아졌다. 그녀의 소파는 그녀의 이불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언제나 주의하고 있었고.
“크리스티네…….” 이따금씩 소파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흐―으음―”
대답하듯 들려오는 그녀의 잠꼬대가 좋았다. 살짝 오르내리는 눈썹이…… 무엇보다 그렇게 오물오물 이야기하는 핑크색 입술이 귀여웠다. 그 모습이, 목소리가 참을 수 없이 그리워질 때까지 소파는 참고 또 참았다.
“크리스티네…….” 참을성 없는 소파.
그것이 그녀의 휴식을 방해하는 악한 장난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스스로의 욕망을 눌러 둘 수가 없었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인다. 몸을, 뒤척인다. 소파는 이제 막 다루게 된 그의 어설픈 능력이 그녀의 잠을 더 이상 방해할 수 없도록, 가능한 모든 집중력을 더하여 벌새의 깃털보다도 더욱 가벼이 그 이불을 덮어 준다.
크리스티네는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소파는 언제나처럼 그 숨소리를 듣는다. 소파는 잠을 자지 않으니까.

*

“……이런, 미친.”
긴 잠에서 깨어난 가련한 크리스티네에게 제일 먼저 들려온 소리였다. 반갑지 않은 욕설에 반항하고 싶었으나 그럴 기운이 전혀 없었다. 먹지도 못하고 오랜 기간 앓아누운 탓이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 마리안은 그녀의 사정 따위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다.
먼지떨이로 크리스티네의 뒤통수를 향해 시원하게 휘두른다. 딱딱한 먼지떨이와 그녀의 튼튼한 뒤통수가 만나 굉장한 타격음을 만들어 내고, 그녀의 몸에 처한 위협을 알아챈 그녀의 작은 불 ‘엣시’가 달려 나와 크리스티네의 앞을 막아선다.
“엣시!”
크리스티네는 서둘러 엣시를 손바닥 위로 거둔다. 모녀지간이라고는 하나, 하급 마녀가 상급 마녀에게 불을 앞세우는 것은 불의 마녀들의 규칙에 어긋나는 짓이다. 지금 엣시의 행동은 상급 마녀에게 ‘저를 소멸시켜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기도 하다.
“크리스티네, 네가 정말 미쳤구나?”
“엣시는 저를 보호하려고 한 것뿐이에요.”
“알아. 그걸 위한 너의 불이다.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마리안은 크리스티네가 앉아 있는 소파를 먼지떨이로 꾸―욱 찌른다. 소파는 깜짝 놀란다. 소파는 저도 모르게 말이 새어 나온다.
“흐―에?”
소파에 앉아 있던 크리스티네는 똑같이 “흐―에?”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나 소파를 내려다본다. 그녀가 애용하던 붉은 소파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미친년. 소파를 사역마로 만들어서 뭐에 쓸 테냐?”
비로소 소파는 자신의 상태를 이해했다. 크리스티네의 마력이 그의 몸에 심어져 그녀에게 속하게 되었다. 그녀에게 속한다. 기분 좋은 말이었다.
“이히히히…….”
절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소파가 낄낄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크리스티네와 마리안은 그다지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미친년의 미친 소파네.”
“……어쩌죠?”
소파의 기분과는 달리 크리스티네는 곤란한 표정이다. 비로소 소파는 웃음이 잦아든다. 그녀를 곤란하게 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누구보다도 유능한 소파라고 자부하고 있었으니까.
일단 그는 그 어떤 소파보다도 푹신하여 어지간한 침대들보다 인기가 있었다. 아름다운 붉은색으로 불의 마녀와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 표면은 너무나도 부드러워 만지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기분이 든다고 모두들 입을 모아서 말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어느 불의 마녀는 그에게 말했다. 그의 푹신함과 의자의 높이 그리고 등받이의 각도는 모든 소파의 모범이자 기준이며 절대적인 이상이라고.
게다가 이번에 불의 마녀 크리스티네의 마력을 받으면서 그의 유용함은 더욱 빛나게 되었으니, 그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흘러내리는 이불을 덮어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스스로 팔걸이의 높이를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소파계에 길이 남을 만한 혁명이었다. 어린이가 잠을 청할 때는 아주 낮은 높이로, 어른이 잠을 잘 때는 그보다 높여서 베개의 역할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 저를 가지신다면 더 이상 소파에서 잠을 청할 때 베개를 들고 오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런 역사적이고도 위대한 소파를 영접하는 두 마녀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다. 소파는 불만이 올라온다. 하지만 아직 저의 위대함을 몰라 그런가 싶어 친절히 설명해 줄까 한다.
“크리스티네, 나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어!”
“……나도 알아…….”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다니, 역시 나의 주인이다.
“그리고 너의 흘러내리는 이불도 잘 덮어 줄 수 있게 되었어. 이제 감기 따위 걸리지 않아!”
어린 시절 그녀는 감기를 늘 달고 살았다. 그 콧물을 소파에 묻힌 횟수도 5,824번이나 된다. 하지만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소파는 이불을 단단히 덮어 줄 수 있으니까!
“……그것 참 고맙네.”
조금은 마음이 움직인 걸까.
“무엇보다 너에게 꼭 맞추어 팔걸이 높이를 바꾸어 줄 수 있다고! 어때 대단하지?”
소파는 쏟아져 나오는 감탄을 들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아, 뭐 이 정도야 불의 마녀의 힘을 받은 소파라면 당연히…… 아니, 다른 소파라면 이 정도까지 능력을 갖추지 못했을지도 몰라! 나를 가진 크리스티네는 행운이야! 라고 대답해 주기로 했다.
“닥쳐.”
……
“생각하는데 시끄럽잖아.”
소파의 천이 우글우글 늘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크리스티네는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미안, 사실 대단함에 너무 놀라서 그만.”
조금은 소파의 기분도 생각해 주기로 한다. 일단은 그녀의 사역마다. 비록 편지를 배달해 줄 수도 누군가로부터 보호해 줄 수도 없지만 그녀의 마력으로 깨어나 그녀에게 절대로 복종하는 존재.
우글우글하던 소파의 표면이 조금씩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소파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일단 제 모습으로 돌아간 것만 보아도 조금은 기분이 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단, 마력이 얼마나 너에게 주입되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쓸모없는 데 쏟아부은 마력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겠다는 뜻이었다. 크리스티네는 손을 뻗어 소파의 등받이 부분에 대고 눈을 감았다. 마력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어서 건드리면 반응이 오고 그 반응의 정도를 통해 힘을 세기를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아…… 살살, 살살 해 줘.”
크리스티네의 눈이 떠졌다.
불의 마녀의 상징, 붉은색 눈동자가 몇 번 깜빡거리며 등받이를 바라본다. 아주 천천히 그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다는 것을 우수한 소파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무슨 일이지? 궁금해하며 그녀의 입이 움직이길 기다린다.
“망할, 엄청 쏟아부었네?”
그렇게 하여, 이 세계 최강의 소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2.(1)


크리스티네는 소파 위에 앉았다. 모든 문제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어릴 적부터 함께해 온 소파다. 그녀의 몸은 습관적으로 그 위에 올라앉고 마는 것이다.
불의 마녀들은 탄생과 동시에 모두 자신만의 불씨를 갖는다. 보통의 인간들이 성장하면서 자신의 팔과 다리를 사용하는 법을 익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처럼. 그 불씨를 마녀들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어릴 때엔 누구나 공평하게 작은 불의 모습을 하지만, 15세의 성장통을 지나고 나면 그 크기와 화력은 각자의 마력에 따라 달라진다.
15세의 성장통을 겪고 난 크리스티네의 불씨 ‘엣시’는 여전히 형편없이 작았다. 기대했던 모습과 너무나도 달라 크리스티네는 엣시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감정에 반응한 엣시가 그녀의 손 위에서 불규칙적으로 통통 튀어 오르며, 나름의 위로를 열심히 전했다. 소용은 없었지만.
“흐아, 엣시를 내 위에서 꺼내지 말라고.”
엣시가 뛰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소파는 참다못해 기겁하는 소리를 지른다. 지금까지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엣시가 그런 식으로 크리스티네의 주변을 맴돌다가 소파에게 그을음을 선사한 적이 무려 398회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