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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나이츠 1권 (8화)
Episode 02 벽에서 나온 사람들 (3)
아이린은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처음부터 말해야 할까? 아님 그냥 모르쇠로 일관할까? 솔직히 그가 받을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과연 자신이 관여해도 될 문제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사실을 말해 줘도 될까?
아이린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얘기를 해 줘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때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제이크가 조용히 물었다.
“당신 이름이 뭐지?”
“네에? 저, 저요?”
“그래 너!”
“전 아이린 에페로예요. 에페로 자작가의 막내딸이에요. 부득이하게 현재는 이곳을 책임지고 있어요.”
“에페로 자작가?”
제이크가 나직이 되뇌며 중얼거렸다.
“네, 에페로 자작가문요.”
“왜 너희들이 남의 성에 있지? 아니,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거야?”
제이크는 조금 전 장난기 많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진중하면서 목소리마저 쫙 가라앉은 것이 몹시도 무거워 보였다.
“주, 주인 행사라니요. 당연히 이곳의 주인이니까…….”
“거짓말 마!”
제이크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서며 고함을 질렀다. 이미 그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다. 그의 모습에 아이린은 깜짝 놀랐다.
“거, 거짓말 아니에요.”
제이크의 기운에 몸을 떨었다. 아이린은 앞에 서 있는 남자가 갑자기 무서워졌다. 조금 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 마치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악마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이곳은 분명 프라인 백작가문의 성이야. 그런데 어째서 에페로 자작가가…… 아니 네가 있는 거냐고.”
제이크는 으르렁거리며 아이린을 노려보았다. 아이린은 무서움에 몸을 떨며 말했다.
“다, 당연히 우리가 이 성을 사서 그렇죠.”
“이 성을 사? 내가 그것을 믿을 것 같아?”
제이크는 더욱 노기를 띠며 말했다. 아이린은 그의 눈빛을 대하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선뜩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린은 이곳의 엄연한 주인이다. 아버지가 죽고, 큰 오라버니는 병으로 누워 있다. 작은 오라버니는 실종되었고, 남은 사람은 바로 아이린 본인이었다.
그전에는 앞에 있는 제이크의 프라인 백작가가 주인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엄연히 자기가 주인이다. 아이린은 마음을 굳게 먹고 당당히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아이린의 눈빛이 바뀌었다. 제이크의 매서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강하게 말했다.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 성을 아버지께서 사셨고, 지금 난 이 성의 엄연한 주인이에요. 10년 동안 사라졌다가 다짜고짜 나타나서는 거짓말이라고 말하며 윽박지르는 겁니까? 아니면 이제 와서 당신이 이 성의 주인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아이린이 지지 않고 당당히 말하자 제이크는 순간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네가 이 성의 주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 증명해 봐!”
“좋아요. 증명해 드리죠.”
아이린이 당당히 말하고는 몸을 돌려 책상으로 걸어갔다. 책상의 세 번째 서랍을 열던 그녀는 그곳에서 하나의 서류를 꺼내들고는 제이크에게 다가갔다.
“자! 이것을 보세요. 저희가 이 성을 샀다는 증명서이니까.”
제이크는 증명서를 받아서 확인했다. 정말 그곳에는 에페로 자작가의 성을 증명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게다가 예전 카론 왕국의 프라인 백작가의 성이였다는 글도 함께 말이다.
제이크의 몸이 휘청거렸다. 믿으려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거짓이라 여겼다. 물론 10년 만에 돌아온 집이지만 아버지께서 괘씸하게 생각해서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지금 처한 것이 꿈인지 의심이 들었다. 그럼 아버지는? 형과 누나들은? 제이크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증명서를 보고 있는데도 이것마저 거짓으로 느껴졌다.
그때 제이크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아이린이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해요. 당신이 사라진 지 10년이 지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
“아니야, 이건 아니야.”
아이린이 말을 하고 있는 와중에 제이크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는 증명서를 집어 던지고는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가려 했다. 아이린이 급히 제이크를 불렀다.
“이봐요!”
하지만 제이크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폴과 필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0년 만에 돌아왔지만 이 성의 주인이 바뀌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빠르게 이해를 했다.
“도, 도련님!”
“도련님!”
폴과 필이 집무실 문으로 향하는 제이크를 불렀다. 제이크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문을 벌컥 열자 그 앞에 베일 기사단장이 막아섰다.
“어딜 가시는가?”
제이크의 고개가 천천히 들리며 베일 기사단장을 보았다. 제이크는 눈빛을 날카롭게 바뀌며 나직이 말했다.
“비켜!”
“그냥 얌전히 들어가라.”
베일 기사단장이 경계를 하며 말했다. 제이크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비키지 않으면 죽는다!”
그 말속에 섬뜩한 기운을 느낀 베일 기사단장이 살짝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도 베일 기사단장은 이 성을 책임지고 있는 기사단장이었다. 함부로 길을 열어 줄 수 없었다.
“나도 다시 한 번 말하지. 얌전히 들어가…….”
“비키란 말이다!”
파팟!
제이크의 눈이 반짝였고, 갑자기 폭사된 기운이 베일 기사단장의 가슴을 강타했다.
“욱!”
베일 기사단장은 가슴에 전해지는 강한 충격에 몸이 붕 떠지며 뒤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
철퍼덕!
제이크는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사라지자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복도를 뛰어가며 외쳤다.
“아버지! 제롬! 누나!”
바닥에 쓰러진 베일 기사단장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자신의 가슴을 보았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갑옷이 움푹 파여 있었다. 마치 해머로 가슴을 가격한 느낌이다.
그때 아이린이 급히 달려와 베일 기사단장을 부축했다.
“베일 경, 베일 경!”
“괘, 괜찮습니다. 아가씨!”
베일 기사단장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앉았다. 그는 재빨리 기사들을 부르려 했다. 하지만 아이린이 막아섰다.
“제가 처리할게요.”
“위험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그는 충격을 받은 것뿐이에요.”
“그러니 더욱 위험합니다, 아가씨.”
“제가 할 수 있어요.”
아이린이 강한 눈빛으로 말했다. 베일 기사단장은 차마 그녀를 막지 못했다. 아이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일단은 만일을 대비해 기사들을 준비시켜 주세요.”
그 말을 하고는 제이크가 사라진 방향으로 뛰어갔다. 베일 기사단장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그때 그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이 좋은 녀석이군.”
“그러게 말이야.”
베일 기사단장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그곳에는 폴과 필이 걸어오고 있었다.
“무, 무슨 말이냐.”
그러자 폴이 다가왔다. 뚱뚱한 덩치의 폴은 앉아 있는 베일 기사단장 앞에 마주 앉았다.
“뭔 말이긴. 당신에게 하는 말이지.”
“뭐, 뭣이?”
베일 기사단장이 눈을 부라리며 쳐다봤다. 폴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충고하는데 말이야. 다시는 도련님 앞을 가로막지 마라. 이번은 운이 좋게 목숨을 건졌지만 다음번은 없으니 말이야.”
폴이 그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에 서 있던 필도 한마디 던졌다.
“방금 한 말 꼭 명심해! 살고 싶다면.”
그 말을 끝으로 폴과 필은 아이린이 사라진 방향으로 뛰어갔다. 베일 기사단장은 그 자리에 앉아 멍한 상태가 되었다. 저 두 사람이 한 말을 되뇌며 말이다.
제이크는 정신없이 복도를 뛰어다녔다. 지나가던 하녀들이 소리를 지르며 옆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제이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문이란 문은 다 열고 다니며 소리쳤다.
“아버지! 제롬! 누나!”
하지만 그 어디에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장난치지 말고 나오세요! 막내 제이크가 돌아왔습니다! 제발 숨어 있지 말고 나오시라니까요!”
제이크가 강하게 외치고 다녔다. 그때 예전 형님이 쓰시던 방문 앞에 도착한 제이크가 그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제롬!”
문을 열자 큰 침대에 누군가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를 간호하는 하녀가 깜짝 놀란 얼굴이 된 채 벌벌 떨고 있었다.
“누, 누구세요?”
제이크는 대답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자 하녀는 무서움에 몸을 피했다. 그리고 밖으로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아크 영주님이 위험해요!”
하녀는 필사적으로 외치며 복도를 뛰어갔다. 그 순간 달려오던 아이린과 마주쳤다. 하녀는 급히 아이린을 붙잡으며 말했다.
“아가씨, 영주님이 위험해요. 낯선 남자가 들어와서는…….”
하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아이린은 그녀를 진정시켰다.
“알았어. 진정해. 내가 처리할 테니, 넌 어서 네 방으로 가 있어.”
아이린은 그녀를 달랜 후 방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녀는 아크가 있는 방으로 뛰어갔다.
“오라버니.”
제이크는 침대에 누워 있는 아크에게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는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제, 제롬?”
제이크의 형님인 제롬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갔다. 그리고 침대에 시름시름 앓고 있는 아크의 얼굴을 확인한 제이크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제롬이 아니잖아.”
제이크가 잔뜩 실망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곧바로 방문 입구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네, 당신 형님이 아니에요. 그분은 저의 큰 오라버니인 아크 에페로예요. 원인 모를 병에 걸려 몇 달째 혼수 상태세요.”
말을 하며 들어온 인물은 바로 아이린이었다. 제이크는 힘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의 곁으로 아이린이 다가왔다.
“힘든 것 알아요. 아니, 믿기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지금 이것이 현실이에요. 당신이 없어진 지난 10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게요.”
아이린의 말에 제이크의 고개가 천천히 들려졌다.
“내가 없어진 10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얘기를 하자면 길어요. 우선 차라도 마시면서 들으실래요?”
아이린이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제이크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아니, 독한 술로 하지.”
“알겠어요. 준비하도록 하겠어요.”
“고맙군.”
제이크가 나직이 속삭였다.
Episode 03 승냥이 떼 (1)
1
에페로 자작가의 영지 옆에는 채플 백작가와 베이런 후작가가 있다. 그들은 에페로 영지에서 북서쪽과 북동쪽에 위치한 가문이다.
두 가문 역시 에페로 자작가에 돈을 빌려 준 가문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두 가문 다 에페로 자작가의 영지를 노리고 있는 가문이기도 했다.
다만 채플 백작가는 보일란 성을 원했고, 베이런 후작은 에페로 자작가의 성을 원했다. 하지만 돈은 채플 백작가에 더 많이 빌렸다. 그리고 베이런 후작가에서 빌린 돈은 채플 백작가에 비해 그리 큰 금액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두 가문의 압박으로 에페로 자작가의 아이린은 거의 매일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북서쪽에 위치한 채플 백작가의 영지.
중심 도시인 컬린은 채플 백작이 있는 곳인 만큼 화려했으며 발전도 잘되어 있다. 낮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들로 북적댔고, 특히 날이 어두워지면 진정한 밤의 도시인 컬린의 진면목을 보여 주었다.
여기저기 붉은 불빛을 매단 홍등가들이 즐비했고, 그 앞에는 거의 보일락 말락 한 옷을 입은 여자들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내들을 먹잇감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