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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나이츠 1권 (17화)
Episode 06 채플 백작의 방문(2)
“자, 이제 출발하지.”
채플 백작이 말했다. 곧바로 로이 남작이 마부에게 일렀다.
“출발하게.”
“네.”
마부는 대답을 하고는 힘차게 채찍을 휘둘렀다. 여섯 마리의 백마가 동시에 힘찬 울음을 터뜨리며 마차를 끌었다. 마차는 서서히 채플 백작가를 벗어났다.
채플 백작이 탄 마차는 곧바로 외각 성을 빠져나가며 에페로 자작가의 영지로 향했다. 좀처럼 성 밖 출입을 하지 않는 그가 움직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오늘이 에페로 자작가에 통보한 열흘째 되는 날이며, 이자 받는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자 받는 날에 그가 직접 움직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부분 로이 남작이 직접 움직이며 이자를 받아 왔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이자 대신 그가 원하는 성을 받는 날이기도 했다.
채플 백작은 와인 한 잔을 받고는 입에 가져가 마셨다. 곧바로 하녀 한 명이 과일을 들어 채플 백작 입으로 가져갔다.
우걱!
채플 백작이 한 입 베어 물며 씹었다. 그의 입 옆으로 과일즙이 새어 나왔다. 곧바로 하녀 한 명이 손수건으로 그의 입을 닦아 주었다.
“으음, 오늘 확실히 성을 받을 수 있겠지?”
과일을 씹으며 말했다. 그러자 로이 남작이 답했다.
“이자 대신 성을 내놓으라고 넌지시 말을 해 놓았습니다. 게다가 돌아가는 정황으로 봐서는 이자 줄 돈도 구하지 못한 듯합니다. 그러니 성을 받는 것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로이 남작의 말에 채플 백작은 두툼한 뱃살을 손으로 만지며 기분 좋은지 웃었다.
“껄껄껄. 그래, 그래야지. 암. 내가 직접 움직이는 것도 다 그 이유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 이렇듯 직접 움직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성을 빼앗는데 다른 사람을 시킬 순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을 빼앗길 때 우는 아이린의 얼굴도 직접 보고 싶기도 하고 말이야.
“크크크, 재미있겠어. 그래 내가 어떻게 말하면 되지?”
채플 백작이 물었다.
“우선 가셔서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이자를 마련하지 못했다면 곧바로 북쪽 숲 지대도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아울러 멈춰 버린 광산 개발권도 완전히 단념하라고 말하셔도 되고요.”
“호오, 광산 개발권까지?”
“후후후, 당연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북쪽 숲지대가 우리 것이 되는데 그들이 광산 개발권을 가져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로이 남작이 자신 있게 말하자 채플 백작은 더욱 웃음소리를 크게 냈다.
“하하핫, 맞아. 아무 필요도 없지. 북쪽 숲 지대가 우리 손에 들어오면 그들에게는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하니 말이야. 좋아, 아주 좋아.”
로이 남작의 말을 듣는 채플 백작은 벌써 보일란 성과 함께 북쪽 숲지대를 얻은 듯 매우 기뻐했다. 사실 이렇게 그가 직접 움직이는 것도 그런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만 다른 경우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다른 경우?”
로이 남작의 말에 채플 백작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이린이 과연 성을 순순히 내줄 것인지 말입니다.”
“자네가 확실히 통보하지 않았나.”
“네, 통보는 했습니다만 억지를 부릴 경우도 있습니다.”
“크크크, 억지라……. 그것이 과연 내게 통할 것이라 보는가?”
채플 백작이 비릿한 미소를 지며 말했다. 그러자 로이 남작이 바로 받았다.
“물론 통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만약에 경우라는 것입니다.”
“안 내놓으면 어쩌려고? 어차피 모든 것은 내 손에 쥐고 있는데 말이야.”
“그래도 아비를 닮아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로이 남작의 말에 채플 백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맞아, 그놈의 딸년이지.”
채플 백작이 인상을 쓰며 잠시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이내 인상을 풀었다.
“흥, 아무리 그놈의 딸이라도 해도 이번 일은 어쩔 수 없지. 원금을 내놓으라고 하면 제깟 것이 어쩔 텐가?”
채플 백작은 더욱 자신만만하게 대답을 했다. 로이 남작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그렇군요. 원금을 내놓으라고 하면 꼼짝을 못하겠군요.”
“바로 그거지. 그보다, 계약서는 잘 챙겼겠지?”
“네, 여기 있습니다.”
로이 남작이 자신의 품에 꼭 안은 가방을 가리켰다. 그것을 본 채플 백작이 껄껄껄 웃었다.
“됐어, 이제 오늘 중으로 보일란 성은 내 차지가 되는 것이구나.”
체플 백작이 다시 한 번 크게 웃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은데…….
2
채플 백작이 탄 마차가 에페로 자작가에 들어섰다. 입구에 선 마차는 마부가 내려 문을 열었다. 먼저 로이 남작이 나오고 곧이어 힘겹게 몸을 움직여 나오는 채플 백작이 보였다.
그의 얼굴은 몹시도 밝아 있었다. 마중 나온 네빌 집사가 곧바로 그의 곁에 다가갔다.
“백작님께서 직접 행차하시다니 영광입니다.”
“껄껄껄, 내 일찍이 오려고 했지만 워낙에 바빠서 말이야. 어쨌든 이렇게라도 찾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네.”
채플 백작이 웃을 때마다 그의 육중한 배와 함께 턱살이 춤을 췄다. 그 모습을 보며 네빌 집사가 속으로 웃었다.
‘후후후, 그래 지금 실컷 웃으시오. 나중에 이곳을 나갈 때는 그리 웃지는 못할 테니 말이오.’
“아이린 님은 어디 계시오?”
로이 남작이 물었다. 그러자 네빌 집사가 바로 말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 지금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네빌 집사가 앞장서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채플 백작은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그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그러면서 주위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느새 응접실에 도착한 네빌 집사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가씨, 채플 백작님께서 오셨습니다.”
“어서 모시세요.”
그녀의 말이 들려오고 네빌 집사는 문을 열며 한쪽으로 비켜섰다.
“들어가시지요.”
“그래.”
채플 백작이 대답을 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안에서 대기하던 아이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채플 백작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백작님. 먼 길 오시느라 많이 불편하지는 않으셨습니까?”
“껄껄껄, 불편은 무슨. 언젠가 자네를 한 번 만나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영 시간이 나지 않아 이제야 왔네. 이해해 주시게.”
채플 백작은 웃으며 여유롭게 대답을 했다.
“이렇게 왕림해 주시니 오히려 제가 영광이죠. 어서 이리로 와서 앉으시지요.”
아이린이 자리를 권했다. 채플 백작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자리로 가서 앉았다. 아이린도 곧바로 맞은편에 자리했다. 로이 남작도 채플 백작 옆에 자리를 함께했다. 그들이 앉자 네빌 집사가 말했다.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응접실을 나갔다. 응접실에는 채플 백작, 로이 남작, 아이린만 남게 되었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채플 백작이었다.
“그래, 잘 지냈는가?”
“염려해 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잘 지내고 있다니 말이야.”
“감사합니다.”
채플 백작과 아이린은 간단히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채플 백작이 말을 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자네의 아버지와 난 친분을 가지고 있었네. 그래서 광산 개발에도 참여를 했고 말이야. 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 때문에 광산 개발이 무용지물로 돌아갔네. 그런데 어찌하겠는가. 내가 투자한 돈은 그래도 돌려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도 요즘 상당히 어려워 돈이 궁하다네. 그러니 어찌하겠는가. 빌려 준 것을 받아 나도 먹고 살아야지. 그렇지 않은가?”
“맞는 말씀이에요.”
채플 백작은 능청스럽게 말을 했다. 아이린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해 주었다.
“그러니 내가 이러는 것을 너무 섭섭하게 생각을 하지 말게나.”
“전혀 그리 생각지 않아요. 오히려 여태까지 저희들 사정을 봐 준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죠.”
아이린도 채플 백작의 기분을 맞춰 주었다.
“껄껄껄, 그리 생각해 주면 나야 고맙지.”
채플 백작이 크게 웃음을 지었다. 그때 응접실 문이 열리며 네빌 집사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은 쟁반 위에 찻잔이 놓여 있었다.
네빌 집사는 가져온 차를 각자 앞에 내려놓았다. 아이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드셔 보세요. 예전 아버지께서 상단 운영을 하실 때 구해 놓은 것입니다. 향이 좋고, 맛도 달콤하실 거예요.”
채플 백작이 살짝 놀란 얼굴로 찻잔을 들었다.
“호오, 그런가?”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은은한 향기가 입안을 감돌았고, 달콤한 맛이 혀끝을 자극했다.
“으음, 고급 홍차군. 내 입에 딱 맞아.”
“입에 맞다니 다행이네요.”
아이린도 한 모금을 마신 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백작님,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실까요?”
아이린의 말에 살짝 당황한 채플 백작이 입을 열었다.
“허허, 급하게 서둘지 않아도 되는데…….”
“아뇨, 일은 빨리 처리하는 것이 좋아요.”
아이린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채플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자네가 정 그렇다면야.”
아이린이 네빌 집사를 보며 말했다.
“네빌 집사님, 준비한 것을 가져오세요.”
“네, 아가씨.”
아이린의 지시를 받은 네빌이 응접실의 또 다른 문을 통해 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는 아이린이 채플 백작을 보며 말했다.
“혹시 계약서는 가지고 오셨나요?”
“가, 가져왔네만.”
“그럼 보여 주세요. 저도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야 해서요.”
“그러지.”
채플 백작이 옆에 있는 로이 남작에게 눈짓을 보냈다. 로이 남작은 가방을 열어 계약서를 꺼냈다.
“여기 있네.”
아이린이 그것을 받아 들고는 확인을 했다. 확인을 마친 그녀가 계약서를 내려놓았다.
“네, 확실하네요.”
“다, 당연하지 않는가. 내가 어찌 거짓으로 말하겠는가.”
채플 백작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오늘 따라 아이린의 행동이 너무나도 당당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로이 남작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응접실을 나갔던 네빌 집사가 두 명의 하인과 함께 들어왔다.
하인들 손에는 제법 큼직한 상자가 들려져 있었다. 네빌 집사는 하인들을 향해 말했다.
“상자를 여기에다 두게.”
하인들은 그 상자를 채플 백작 옆에 두었다. 하인 두 명이 들고 오는 것으로 보아 제법 무게가 나가는 것 같았다. 로이 남작이 채플 백작 옆에 놓인 커다란 상자를 보며 대신 물었다.
“이게 뭔가?”
“보면 모르시겠어요?”
아이린이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로이 남작이 의문스런 얼굴로 말했다.
“혹시 이자인가?”
로이 남작의 물음에 아이린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이자를 저렇게 큰 상자에 넣어 드릴 필요가 있겠어요?”
“그럼 성의 권리 문서인가?”
다시 묻자 아이린은 아리송한 얼굴로 말했다.
“글쎄요. 제게 자꾸 묻지 마시고 열어서 확인해시는 게 낫지 않겠어요?”
자신만만한 아이린의 말에 왠지 불안해진 로이 남작이 채플 백작을 보았다. 그도 약간 심기가 불쾌했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이 남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 상자로 향했다. 그리고 상자의 뚜껑을 연 순간 채플 백작을 포함해 로이 남작이 놀란 눈이 되었다.
“헛!”
“이, 이건.”
채플 백작은 깜짝 놀라 헛바람을 삼켰다. 로이 남작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라고 있었다.
사실 큰 상자 안에는 황금빛을 품어내고 있는 돈이 들어 있었다. 어림잡아도 엄청난 양이었다. 로이 남작이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채플 백작이 물었다.
“이것은 돈이 아닌가?”
“네, 20만 골드예요. 거기다가 이번에 낼 이자 1,000골드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 말에 다시 한 번 놀라는 채플 백작과 로이 남작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절대 그럴 리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이게 정말 20만 골드인가?”
흥분을 가라앉힌 채플 백작이 다시 묻고, 아이린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네, 정확히 20만 골드예요.”
“믿지 못하겠다면 세어 보셔도 됩니다.”
네빌 집사가 짓궂게 말했다. 그러자 로이 남작이 곧바로 대답을 했다.
Episode 06 채플 백작의 방문(2)
“자, 이제 출발하지.”
채플 백작이 말했다. 곧바로 로이 남작이 마부에게 일렀다.
“출발하게.”
“네.”
마부는 대답을 하고는 힘차게 채찍을 휘둘렀다. 여섯 마리의 백마가 동시에 힘찬 울음을 터뜨리며 마차를 끌었다. 마차는 서서히 채플 백작가를 벗어났다.
채플 백작이 탄 마차는 곧바로 외각 성을 빠져나가며 에페로 자작가의 영지로 향했다. 좀처럼 성 밖 출입을 하지 않는 그가 움직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오늘이 에페로 자작가에 통보한 열흘째 되는 날이며, 이자 받는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자 받는 날에 그가 직접 움직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부분 로이 남작이 직접 움직이며 이자를 받아 왔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이자 대신 그가 원하는 성을 받는 날이기도 했다.
채플 백작은 와인 한 잔을 받고는 입에 가져가 마셨다. 곧바로 하녀 한 명이 과일을 들어 채플 백작 입으로 가져갔다.
우걱!
채플 백작이 한 입 베어 물며 씹었다. 그의 입 옆으로 과일즙이 새어 나왔다. 곧바로 하녀 한 명이 손수건으로 그의 입을 닦아 주었다.
“으음, 오늘 확실히 성을 받을 수 있겠지?”
과일을 씹으며 말했다. 그러자 로이 남작이 답했다.
“이자 대신 성을 내놓으라고 넌지시 말을 해 놓았습니다. 게다가 돌아가는 정황으로 봐서는 이자 줄 돈도 구하지 못한 듯합니다. 그러니 성을 받는 것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로이 남작의 말에 채플 백작은 두툼한 뱃살을 손으로 만지며 기분 좋은지 웃었다.
“껄껄껄. 그래, 그래야지. 암. 내가 직접 움직이는 것도 다 그 이유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 이렇듯 직접 움직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성을 빼앗는데 다른 사람을 시킬 순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을 빼앗길 때 우는 아이린의 얼굴도 직접 보고 싶기도 하고 말이야.
“크크크, 재미있겠어. 그래 내가 어떻게 말하면 되지?”
채플 백작이 물었다.
“우선 가셔서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이자를 마련하지 못했다면 곧바로 북쪽 숲 지대도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아울러 멈춰 버린 광산 개발권도 완전히 단념하라고 말하셔도 되고요.”
“호오, 광산 개발권까지?”
“후후후, 당연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북쪽 숲지대가 우리 것이 되는데 그들이 광산 개발권을 가져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로이 남작이 자신 있게 말하자 채플 백작은 더욱 웃음소리를 크게 냈다.
“하하핫, 맞아. 아무 필요도 없지. 북쪽 숲 지대가 우리 손에 들어오면 그들에게는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하니 말이야. 좋아, 아주 좋아.”
로이 남작의 말을 듣는 채플 백작은 벌써 보일란 성과 함께 북쪽 숲지대를 얻은 듯 매우 기뻐했다. 사실 이렇게 그가 직접 움직이는 것도 그런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만 다른 경우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다른 경우?”
로이 남작의 말에 채플 백작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이린이 과연 성을 순순히 내줄 것인지 말입니다.”
“자네가 확실히 통보하지 않았나.”
“네, 통보는 했습니다만 억지를 부릴 경우도 있습니다.”
“크크크, 억지라……. 그것이 과연 내게 통할 것이라 보는가?”
채플 백작이 비릿한 미소를 지며 말했다. 그러자 로이 남작이 바로 받았다.
“물론 통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만약에 경우라는 것입니다.”
“안 내놓으면 어쩌려고? 어차피 모든 것은 내 손에 쥐고 있는데 말이야.”
“그래도 아비를 닮아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로이 남작의 말에 채플 백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맞아, 그놈의 딸년이지.”
채플 백작이 인상을 쓰며 잠시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이내 인상을 풀었다.
“흥, 아무리 그놈의 딸이라도 해도 이번 일은 어쩔 수 없지. 원금을 내놓으라고 하면 제깟 것이 어쩔 텐가?”
채플 백작은 더욱 자신만만하게 대답을 했다. 로이 남작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그렇군요. 원금을 내놓으라고 하면 꼼짝을 못하겠군요.”
“바로 그거지. 그보다, 계약서는 잘 챙겼겠지?”
“네, 여기 있습니다.”
로이 남작이 자신의 품에 꼭 안은 가방을 가리켰다. 그것을 본 채플 백작이 껄껄껄 웃었다.
“됐어, 이제 오늘 중으로 보일란 성은 내 차지가 되는 것이구나.”
체플 백작이 다시 한 번 크게 웃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은데…….
2
채플 백작이 탄 마차가 에페로 자작가에 들어섰다. 입구에 선 마차는 마부가 내려 문을 열었다. 먼저 로이 남작이 나오고 곧이어 힘겹게 몸을 움직여 나오는 채플 백작이 보였다.
그의 얼굴은 몹시도 밝아 있었다. 마중 나온 네빌 집사가 곧바로 그의 곁에 다가갔다.
“백작님께서 직접 행차하시다니 영광입니다.”
“껄껄껄, 내 일찍이 오려고 했지만 워낙에 바빠서 말이야. 어쨌든 이렇게라도 찾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네.”
채플 백작이 웃을 때마다 그의 육중한 배와 함께 턱살이 춤을 췄다. 그 모습을 보며 네빌 집사가 속으로 웃었다.
‘후후후, 그래 지금 실컷 웃으시오. 나중에 이곳을 나갈 때는 그리 웃지는 못할 테니 말이오.’
“아이린 님은 어디 계시오?”
로이 남작이 물었다. 그러자 네빌 집사가 바로 말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 지금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네빌 집사가 앞장서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채플 백작은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그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그러면서 주위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느새 응접실에 도착한 네빌 집사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가씨, 채플 백작님께서 오셨습니다.”
“어서 모시세요.”
그녀의 말이 들려오고 네빌 집사는 문을 열며 한쪽으로 비켜섰다.
“들어가시지요.”
“그래.”
채플 백작이 대답을 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안에서 대기하던 아이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채플 백작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백작님. 먼 길 오시느라 많이 불편하지는 않으셨습니까?”
“껄껄껄, 불편은 무슨. 언젠가 자네를 한 번 만나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영 시간이 나지 않아 이제야 왔네. 이해해 주시게.”
채플 백작은 웃으며 여유롭게 대답을 했다.
“이렇게 왕림해 주시니 오히려 제가 영광이죠. 어서 이리로 와서 앉으시지요.”
아이린이 자리를 권했다. 채플 백작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자리로 가서 앉았다. 아이린도 곧바로 맞은편에 자리했다. 로이 남작도 채플 백작 옆에 자리를 함께했다. 그들이 앉자 네빌 집사가 말했다.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응접실을 나갔다. 응접실에는 채플 백작, 로이 남작, 아이린만 남게 되었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채플 백작이었다.
“그래, 잘 지냈는가?”
“염려해 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잘 지내고 있다니 말이야.”
“감사합니다.”
채플 백작과 아이린은 간단히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채플 백작이 말을 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자네의 아버지와 난 친분을 가지고 있었네. 그래서 광산 개발에도 참여를 했고 말이야. 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 때문에 광산 개발이 무용지물로 돌아갔네. 그런데 어찌하겠는가. 내가 투자한 돈은 그래도 돌려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도 요즘 상당히 어려워 돈이 궁하다네. 그러니 어찌하겠는가. 빌려 준 것을 받아 나도 먹고 살아야지. 그렇지 않은가?”
“맞는 말씀이에요.”
채플 백작은 능청스럽게 말을 했다. 아이린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해 주었다.
“그러니 내가 이러는 것을 너무 섭섭하게 생각을 하지 말게나.”
“전혀 그리 생각지 않아요. 오히려 여태까지 저희들 사정을 봐 준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죠.”
아이린도 채플 백작의 기분을 맞춰 주었다.
“껄껄껄, 그리 생각해 주면 나야 고맙지.”
채플 백작이 크게 웃음을 지었다. 그때 응접실 문이 열리며 네빌 집사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은 쟁반 위에 찻잔이 놓여 있었다.
네빌 집사는 가져온 차를 각자 앞에 내려놓았다. 아이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드셔 보세요. 예전 아버지께서 상단 운영을 하실 때 구해 놓은 것입니다. 향이 좋고, 맛도 달콤하실 거예요.”
채플 백작이 살짝 놀란 얼굴로 찻잔을 들었다.
“호오, 그런가?”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은은한 향기가 입안을 감돌았고, 달콤한 맛이 혀끝을 자극했다.
“으음, 고급 홍차군. 내 입에 딱 맞아.”
“입에 맞다니 다행이네요.”
아이린도 한 모금을 마신 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백작님,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실까요?”
아이린의 말에 살짝 당황한 채플 백작이 입을 열었다.
“허허, 급하게 서둘지 않아도 되는데…….”
“아뇨, 일은 빨리 처리하는 것이 좋아요.”
아이린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채플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자네가 정 그렇다면야.”
아이린이 네빌 집사를 보며 말했다.
“네빌 집사님, 준비한 것을 가져오세요.”
“네, 아가씨.”
아이린의 지시를 받은 네빌이 응접실의 또 다른 문을 통해 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는 아이린이 채플 백작을 보며 말했다.
“혹시 계약서는 가지고 오셨나요?”
“가, 가져왔네만.”
“그럼 보여 주세요. 저도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야 해서요.”
“그러지.”
채플 백작이 옆에 있는 로이 남작에게 눈짓을 보냈다. 로이 남작은 가방을 열어 계약서를 꺼냈다.
“여기 있네.”
아이린이 그것을 받아 들고는 확인을 했다. 확인을 마친 그녀가 계약서를 내려놓았다.
“네, 확실하네요.”
“다, 당연하지 않는가. 내가 어찌 거짓으로 말하겠는가.”
채플 백작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오늘 따라 아이린의 행동이 너무나도 당당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로이 남작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응접실을 나갔던 네빌 집사가 두 명의 하인과 함께 들어왔다.
하인들 손에는 제법 큼직한 상자가 들려져 있었다. 네빌 집사는 하인들을 향해 말했다.
“상자를 여기에다 두게.”
하인들은 그 상자를 채플 백작 옆에 두었다. 하인 두 명이 들고 오는 것으로 보아 제법 무게가 나가는 것 같았다. 로이 남작이 채플 백작 옆에 놓인 커다란 상자를 보며 대신 물었다.
“이게 뭔가?”
“보면 모르시겠어요?”
아이린이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로이 남작이 의문스런 얼굴로 말했다.
“혹시 이자인가?”
로이 남작의 물음에 아이린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이자를 저렇게 큰 상자에 넣어 드릴 필요가 있겠어요?”
“그럼 성의 권리 문서인가?”
다시 묻자 아이린은 아리송한 얼굴로 말했다.
“글쎄요. 제게 자꾸 묻지 마시고 열어서 확인해시는 게 낫지 않겠어요?”
자신만만한 아이린의 말에 왠지 불안해진 로이 남작이 채플 백작을 보았다. 그도 약간 심기가 불쾌했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이 남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 상자로 향했다. 그리고 상자의 뚜껑을 연 순간 채플 백작을 포함해 로이 남작이 놀란 눈이 되었다.
“헛!”
“이, 이건.”
채플 백작은 깜짝 놀라 헛바람을 삼켰다. 로이 남작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라고 있었다.
사실 큰 상자 안에는 황금빛을 품어내고 있는 돈이 들어 있었다. 어림잡아도 엄청난 양이었다. 로이 남작이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채플 백작이 물었다.
“이것은 돈이 아닌가?”
“네, 20만 골드예요. 거기다가 이번에 낼 이자 1,000골드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 말에 다시 한 번 놀라는 채플 백작과 로이 남작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절대 그럴 리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이게 정말 20만 골드인가?”
흥분을 가라앉힌 채플 백작이 다시 묻고, 아이린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네, 정확히 20만 골드예요.”
“믿지 못하겠다면 세어 보셔도 됩니다.”
네빌 집사가 짓궂게 말했다. 그러자 로이 남작이 곧바로 대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