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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나이츠 1권 (23화)
Episode 09 불순한 움직임(1)
1
채플 백작은 자신의 집무실에 올라온 보고서를 하나하나 검토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맺혀 있었다.
“제길, 소식을 전하러 간 놈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것이야.”
보고서를 한 곳에 내려놓고는 잔뜩 인상을 찡그린다. 그의 신경은 온통 광산에 집중되어 있다. 보고서를 몇 번 확인하고는 도저히 앉아 있지 못하겠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곧바로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밖은 의외로 평온했다. 경비병들이 돌아다니고, 하인과 하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에이, 답답하군.”
밖을 내다보던 채플 백작이 이내 고개를 돌렸다. 초조함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였다.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채플 백작의 눈빛이 바뀌며 급히 말했다.
“어서 들어오너라.”
문이 열리며 로이 남작이 들어섰다. 그의 표정은 매우 다급해 보였다.
“백작님.”
“그래, 어떻게 되었나? 소식은 전했나?”
“네, 소식은 전했습니다. 그런데…….”
로이 남작은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자기 입으로 어떻게 그 같은 사실을 전할 수 있겠나. 분명 채플 백작이 펄쩍펄쩍 뛸 것이 분명했다.
채플 백작도 로이 남작의 표정을 살핀 후 뭔가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재차 언성을 높이며 물었다.
“어서 말하라! 광산에 일이 생긴 것이냐?”
채플 백작의 닦달에 로이 남작이 입을 열었다.
“그, 그것이 소식을 전하고 난 후에 광산에 일이 터졌습니다. 부상을 입은 기사가 와서는… 광산을 지키고 있던 기사단 모두 전멸당했다고 합니다.”
“뭣이? 저, 전멸!”
채플 백작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혹시라도 잘못 듣지는 않았는지 다시 물었다.
“바, 방금 뭐라 했느냐. 전멸이라고?”
“네… 네에, 백작님.”
로이 남작은 거의 기어들어 가는 말투로 대답했다. 채플 백작은 순간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그 모습에 로이 남작이 급히 달려가 부축했다.
“백작님!”
채플 백작은 로이 남작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는 애써 진정을 하며 물었다.
“확실한 것이냐?”
“네, 제가 직접 확인을 했습니다.”
“으윽!”
채플 백작은 뒷목을 짚으며 눈을 감았다. 갑자기 솟아오르는 혈압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로이 남작은 그런 채플 백작의 모습을 보며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한참 동안 눈을 감으며 애써 감정을 추스른 채플 백작이 눈을 떴다.
“로이 남작.”
“말씀하십시오, 백작님.”
“지금 당장, 광산으로 사람을 보내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라.”
“아, 알겠습니다. 백작님.”
로이 남작은 급히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갔다. 홀로 남은 채플 백작은 아직까지 머리가 아파 왔다. 어떻게 준비한 것인데, 거기에 전력의 상당수를 쏟아 부었는데 일이 이대로 틀어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야. 어떻게 나의 기사단이 모두 전멸당할 수 있단 말인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채플 백작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부르르 떨었다.
2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로이 남작이 다시 집무실을 찾았다. 그때까지 채플 백작은 자리에 앉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되도록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여기서 이대로 무너질 수 없기 때문이다. 광산에 거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 그곳이 놈들 손에 넘어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집무실로 들어선 로이 남작은 곧바로 채플 백작에게 다가가 보고를 했다.
“광산에서 살아남은 광부 한 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정말이냐?”
“네, 지금 밖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어서 들라 해. 어서!”
채플 백작은 다급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상세히 알아야 했다. 로이 남작이 재빨리 움직여 광부를 데리고 들어왔다. 광부는 아직까지 충격의 여파가 남았는지 몹시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채플 백작은 그 광부를 보며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소상히 말하라.”
광부는 공포에 찌든 눈동자로 그날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처음에 기사단이 두 명의 사내를 잡아와 광산 뒤쪽의 낭떠러지로 데리고 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딱 봐도 어딘가 모자라고 멍청해 보이는 녀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광산 뒤쪽으로 갔던 기사들이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엄청난 비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광부는 설명을 하면서도 그때의 상황이 뇌리에 각인되었는지 몹시도 무서워하고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인 후 다시 말을 이어 갔다.
“비명 소리가 끝이 나고 잠시 후 광산으로 모습을 드러낸 자들은 두 명이었습니다. 바로 끌려갔던 그 녀석들 말이죠. 그런데 끌려갔을 때와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괴물? 아니, 인간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무시무시한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기사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렸습니다. 그, 그것은 절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광부는 얘기를 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채플 백작은 광부의 얘기를 들으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 두 명이었다. 두 명이 정예 기사단을 전멸시켰다는 소리이다. 어쨌거나 계속해서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두 사내 다 녹색의 눈빛을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한 사내는 뚱뚱했는데 그 몸이 마치 돌덩이처럼 단단했습니다. 기사들이 휘두르는 검을 몸으로 막아도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내는 팔이 쭉 늘어나더니 기사들을 갈기갈기 찢어발겼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악귀와도 같았습니다. 그 어떤 기사들도 두 사내를 막지 못했습니다. 살아 있는 심장을 꺼내서 그곳에서 솟구쳐 흐르는 피를 온몸에 적시며 흥분을 하였고, 다른 한 손으로 기사의 머리통을 으깨는 것까지 봤습니다. 아니, 둘 다 미쳐 있었습니다. 광분했고, 그들이 싸울 때 내는 목소리는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괴물과도 같았습니다. 저, 저는 너무나도 무서워 광산 안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기사들이 죽고 난 후 몰래 빠져나온 것입니다.”
광부의 얘기는 여기서 끝이 났다. 채플 백작과 로이 남작은 이야기를 듣는 내내 얼굴이 계속해서 변했다. 눈빛마저 심하게 흔들리며 요동쳤다.
“로이 남작, 지금 이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는가?”
채플 백작은 이런 황당한 얘기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로이 남작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인간이 그런 식의 능력을 보여 줄 수 있단 말인가. 팔이 늘어나고 몸이 돌덩어리처럼 단단해진다는 것은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두려움에 떨며 잔뜩 겁을 먹은 광부를 보니 한편으로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때 채플 백작의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급히 로이 남작을 보며 말했다.
“혹시 흑마법이 아닐까?”
“흐, 흑마법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그렇지 않고야 어찌 인간이 그런 능력을 보일 수 있단 말이냐.”
채플 백작의 얘기를 듣고는 로이 남작도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았다.
“흑마법이라면 아마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로이 남작이 동조를 하며 말했다. 그러자 채플 백작이 급히 말했다.
“지금 당장 라예키르를 불러라. 그자라면 혹시 알고 있을 것이다.”
“네, 백작님. 지금 당장 부르겠습니다.”
힘차게 대답을 하고는 몸을 돌린 그때 구석에서 음침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럴 필요 없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로이 남작이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 채플 백작은 그 소리가 누군지 이미 짐작이 되는지 소리가 들린 어두운 구석에다가 말했다.
“벌써 와 있었는가? 어서 모습을 드러내시게.”
채플 백작의 말에 어둠에 잠긴 구석에서 검은 그림자가 길쭉하게 나오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로브와 후드를 쓴 라예키르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곧바로 광부에게로 다가갔다. 광부는 깜짝 놀라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는 앞에서 다가온 라예키르도 무척이나 무서웠다. 그의 행동을 보던 채플 백작이 물었다.
“언제 오신 것이오?”
“조금 되었소.”
“그럼 방금 광부가 하는 말을 들어겠구려.”
“…….”
라예키르가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얘기를 들은 것은 확실한 모양이었다. 그는 광부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들어 광부의 머리를 짚었다.
광부는 두려움에 몸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처럼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라예키르가 내미는 손을 고스란히 받았다.
라예키르는 광부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주위에 있는 채플 백작이나 로이 남작도 침만 꿀꺽 삼키며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라예키르는 자신의 손끝으로 전해지는 마기를 느꼈다. 아마도 광부도 마기에 감염되었다는 걸 확인한 것이다. 후드 속에 감춰진 라예키르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광부를 향해 물었다.
“어디서 감염된 것이냐? 그들의 정체가 무엇이냐? 어서 말하라.”
라예키르의 말에 광부는 잔뜩 두려운 눈길로 말했다.
“뭐, 뭘 말입니까? 조금 전에 다 말했는데요.”
“죽고 싶으냐? 바른 대로 말 못할까?”
라예키르가 윽박지르며 말했지만 광부는 더욱더 움츠러들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잔뜩 겁에 질린 채 두려움에 몸까지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자 라예키르의 손이 올라갔다. 그의 손에서 검음 마기가 흘러나오며 광부의 목을 옥죄었다.
광부는 갑자기 목이 막히자 숨을 헐떡이며 발버둥을 쳤다.
“켁, 케케켁! 사, 살려 주십시… 켁!”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이 남작이 급히 나섰다.
“그, 그만하십시오. 정녕 모르는 것 같습니다.”
로이 남작의 말에 라예키르의 손에 서서히 내려갔다. 그러자 광부의 목을 옥죄던 기운도 사라졌다. 광부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헥, 헥, 헥.”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라예키르가 물었다.
“정녕 네가 본 것이 그것이 다인가?”
“헥, 네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광부는 자신의 목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울먹였다. 라예키르를 잠시 그를 쳐다보더니 이내 몸을 돌렸다.
“꺼져라!”
“가, 감사합니다.”
광부는 재빨리 인사를 하고는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가 나가고 이제 방에는 채플 백작, 로이 남작, 흑마법사 라예키르 세 사람뿐이었다.
라예키르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채플 백작을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또 다른 자가 끼어든 것 같소.”
“에엥? 다, 다른 자라고 했소?”
채플 백작이 깜짝 놀라며 묻자, 라예키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자라니? 도대체 어떤 놈이란 말이오.”
“아마도 다른 흑마법사인 것 같소.”
“헉! 흑마법사라니.”
채플 백작과 로이 남작의 눈동자가 커졌다. 채플 백작이 라예키르를 보며 말했다.
“다, 당신 말고 또 다른 흑마법사가 있단 말이오?”
“아직 확실치는 않소. 다만 광부는 이미 마기에 감염된 것 같소. 그리고 무엇보다 광부가 말했던 그 녀석들이 마음에 걸린단 말이오.”
“그렇다면 그 두 녀석이 흑마법사?”
채플 백작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러자 라예키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오. 그보다 다른 흑마법사가 조정하는 그 무엇인 것 같은데…….”
라예키르도 확실치가 않는지 확실한 답변을 해 주지 않았다. 그러자 채플 백작이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소?”
“우선 내가 그리로 가야겠소. 직접 확인을 해야 확실할 것 같소.”
“그, 그렇게 하시오.”
“걱정 마시오. 이 일은 내게 맡겨 두시오. 누가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으니까 말이오.”
라예키르의 말에 채플 백작의 얼굴이 풀어졌다.
“부탁하오. 다시 광산을 찾게 도와주시오.”
“내게 맡기시오.”
라예키르는 대답을 마치고는 다시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사라지고 채플 백작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이제 됐어. 라예키르가 나서 준다고 했으니 말이야.”
“네, 정말 다행입니다.”
로이 남작도 동조를 했다. 채플 백작의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가져올 좋은 소식만 기다리며 되었다.
Episode 09 불순한 움직임(1)
1
채플 백작은 자신의 집무실에 올라온 보고서를 하나하나 검토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맺혀 있었다.
“제길, 소식을 전하러 간 놈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것이야.”
보고서를 한 곳에 내려놓고는 잔뜩 인상을 찡그린다. 그의 신경은 온통 광산에 집중되어 있다. 보고서를 몇 번 확인하고는 도저히 앉아 있지 못하겠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곧바로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밖은 의외로 평온했다. 경비병들이 돌아다니고, 하인과 하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에이, 답답하군.”
밖을 내다보던 채플 백작이 이내 고개를 돌렸다. 초조함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였다.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채플 백작의 눈빛이 바뀌며 급히 말했다.
“어서 들어오너라.”
문이 열리며 로이 남작이 들어섰다. 그의 표정은 매우 다급해 보였다.
“백작님.”
“그래, 어떻게 되었나? 소식은 전했나?”
“네, 소식은 전했습니다. 그런데…….”
로이 남작은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자기 입으로 어떻게 그 같은 사실을 전할 수 있겠나. 분명 채플 백작이 펄쩍펄쩍 뛸 것이 분명했다.
채플 백작도 로이 남작의 표정을 살핀 후 뭔가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재차 언성을 높이며 물었다.
“어서 말하라! 광산에 일이 생긴 것이냐?”
채플 백작의 닦달에 로이 남작이 입을 열었다.
“그, 그것이 소식을 전하고 난 후에 광산에 일이 터졌습니다. 부상을 입은 기사가 와서는… 광산을 지키고 있던 기사단 모두 전멸당했다고 합니다.”
“뭣이? 저, 전멸!”
채플 백작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혹시라도 잘못 듣지는 않았는지 다시 물었다.
“바, 방금 뭐라 했느냐. 전멸이라고?”
“네… 네에, 백작님.”
로이 남작은 거의 기어들어 가는 말투로 대답했다. 채플 백작은 순간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그 모습에 로이 남작이 급히 달려가 부축했다.
“백작님!”
채플 백작은 로이 남작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는 애써 진정을 하며 물었다.
“확실한 것이냐?”
“네, 제가 직접 확인을 했습니다.”
“으윽!”
채플 백작은 뒷목을 짚으며 눈을 감았다. 갑자기 솟아오르는 혈압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로이 남작은 그런 채플 백작의 모습을 보며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한참 동안 눈을 감으며 애써 감정을 추스른 채플 백작이 눈을 떴다.
“로이 남작.”
“말씀하십시오, 백작님.”
“지금 당장, 광산으로 사람을 보내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라.”
“아, 알겠습니다. 백작님.”
로이 남작은 급히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갔다. 홀로 남은 채플 백작은 아직까지 머리가 아파 왔다. 어떻게 준비한 것인데, 거기에 전력의 상당수를 쏟아 부었는데 일이 이대로 틀어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야. 어떻게 나의 기사단이 모두 전멸당할 수 있단 말인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채플 백작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부르르 떨었다.
2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로이 남작이 다시 집무실을 찾았다. 그때까지 채플 백작은 자리에 앉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되도록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여기서 이대로 무너질 수 없기 때문이다. 광산에 거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 그곳이 놈들 손에 넘어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집무실로 들어선 로이 남작은 곧바로 채플 백작에게 다가가 보고를 했다.
“광산에서 살아남은 광부 한 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정말이냐?”
“네, 지금 밖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어서 들라 해. 어서!”
채플 백작은 다급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상세히 알아야 했다. 로이 남작이 재빨리 움직여 광부를 데리고 들어왔다. 광부는 아직까지 충격의 여파가 남았는지 몹시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채플 백작은 그 광부를 보며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소상히 말하라.”
광부는 공포에 찌든 눈동자로 그날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처음에 기사단이 두 명의 사내를 잡아와 광산 뒤쪽의 낭떠러지로 데리고 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딱 봐도 어딘가 모자라고 멍청해 보이는 녀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광산 뒤쪽으로 갔던 기사들이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엄청난 비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광부는 설명을 하면서도 그때의 상황이 뇌리에 각인되었는지 몹시도 무서워하고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인 후 다시 말을 이어 갔다.
“비명 소리가 끝이 나고 잠시 후 광산으로 모습을 드러낸 자들은 두 명이었습니다. 바로 끌려갔던 그 녀석들 말이죠. 그런데 끌려갔을 때와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괴물? 아니, 인간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무시무시한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기사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렸습니다. 그, 그것은 절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광부는 얘기를 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채플 백작은 광부의 얘기를 들으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 두 명이었다. 두 명이 정예 기사단을 전멸시켰다는 소리이다. 어쨌거나 계속해서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두 사내 다 녹색의 눈빛을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한 사내는 뚱뚱했는데 그 몸이 마치 돌덩이처럼 단단했습니다. 기사들이 휘두르는 검을 몸으로 막아도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내는 팔이 쭉 늘어나더니 기사들을 갈기갈기 찢어발겼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악귀와도 같았습니다. 그 어떤 기사들도 두 사내를 막지 못했습니다. 살아 있는 심장을 꺼내서 그곳에서 솟구쳐 흐르는 피를 온몸에 적시며 흥분을 하였고, 다른 한 손으로 기사의 머리통을 으깨는 것까지 봤습니다. 아니, 둘 다 미쳐 있었습니다. 광분했고, 그들이 싸울 때 내는 목소리는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괴물과도 같았습니다. 저, 저는 너무나도 무서워 광산 안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기사들이 죽고 난 후 몰래 빠져나온 것입니다.”
광부의 얘기는 여기서 끝이 났다. 채플 백작과 로이 남작은 이야기를 듣는 내내 얼굴이 계속해서 변했다. 눈빛마저 심하게 흔들리며 요동쳤다.
“로이 남작, 지금 이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는가?”
채플 백작은 이런 황당한 얘기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로이 남작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인간이 그런 식의 능력을 보여 줄 수 있단 말인가. 팔이 늘어나고 몸이 돌덩어리처럼 단단해진다는 것은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두려움에 떨며 잔뜩 겁을 먹은 광부를 보니 한편으로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때 채플 백작의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급히 로이 남작을 보며 말했다.
“혹시 흑마법이 아닐까?”
“흐, 흑마법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그렇지 않고야 어찌 인간이 그런 능력을 보일 수 있단 말이냐.”
채플 백작의 얘기를 듣고는 로이 남작도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았다.
“흑마법이라면 아마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로이 남작이 동조를 하며 말했다. 그러자 채플 백작이 급히 말했다.
“지금 당장 라예키르를 불러라. 그자라면 혹시 알고 있을 것이다.”
“네, 백작님. 지금 당장 부르겠습니다.”
힘차게 대답을 하고는 몸을 돌린 그때 구석에서 음침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럴 필요 없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로이 남작이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 채플 백작은 그 소리가 누군지 이미 짐작이 되는지 소리가 들린 어두운 구석에다가 말했다.
“벌써 와 있었는가? 어서 모습을 드러내시게.”
채플 백작의 말에 어둠에 잠긴 구석에서 검은 그림자가 길쭉하게 나오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로브와 후드를 쓴 라예키르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곧바로 광부에게로 다가갔다. 광부는 깜짝 놀라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는 앞에서 다가온 라예키르도 무척이나 무서웠다. 그의 행동을 보던 채플 백작이 물었다.
“언제 오신 것이오?”
“조금 되었소.”
“그럼 방금 광부가 하는 말을 들어겠구려.”
“…….”
라예키르가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얘기를 들은 것은 확실한 모양이었다. 그는 광부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들어 광부의 머리를 짚었다.
광부는 두려움에 몸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처럼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라예키르가 내미는 손을 고스란히 받았다.
라예키르는 광부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주위에 있는 채플 백작이나 로이 남작도 침만 꿀꺽 삼키며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라예키르는 자신의 손끝으로 전해지는 마기를 느꼈다. 아마도 광부도 마기에 감염되었다는 걸 확인한 것이다. 후드 속에 감춰진 라예키르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광부를 향해 물었다.
“어디서 감염된 것이냐? 그들의 정체가 무엇이냐? 어서 말하라.”
라예키르의 말에 광부는 잔뜩 두려운 눈길로 말했다.
“뭐, 뭘 말입니까? 조금 전에 다 말했는데요.”
“죽고 싶으냐? 바른 대로 말 못할까?”
라예키르가 윽박지르며 말했지만 광부는 더욱더 움츠러들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잔뜩 겁에 질린 채 두려움에 몸까지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자 라예키르의 손이 올라갔다. 그의 손에서 검음 마기가 흘러나오며 광부의 목을 옥죄었다.
광부는 갑자기 목이 막히자 숨을 헐떡이며 발버둥을 쳤다.
“켁, 케케켁! 사, 살려 주십시… 켁!”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이 남작이 급히 나섰다.
“그, 그만하십시오. 정녕 모르는 것 같습니다.”
로이 남작의 말에 라예키르의 손에 서서히 내려갔다. 그러자 광부의 목을 옥죄던 기운도 사라졌다. 광부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헥, 헥, 헥.”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라예키르가 물었다.
“정녕 네가 본 것이 그것이 다인가?”
“헥, 네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광부는 자신의 목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울먹였다. 라예키르를 잠시 그를 쳐다보더니 이내 몸을 돌렸다.
“꺼져라!”
“가, 감사합니다.”
광부는 재빨리 인사를 하고는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가 나가고 이제 방에는 채플 백작, 로이 남작, 흑마법사 라예키르 세 사람뿐이었다.
라예키르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채플 백작을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또 다른 자가 끼어든 것 같소.”
“에엥? 다, 다른 자라고 했소?”
채플 백작이 깜짝 놀라며 묻자, 라예키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자라니? 도대체 어떤 놈이란 말이오.”
“아마도 다른 흑마법사인 것 같소.”
“헉! 흑마법사라니.”
채플 백작과 로이 남작의 눈동자가 커졌다. 채플 백작이 라예키르를 보며 말했다.
“다, 당신 말고 또 다른 흑마법사가 있단 말이오?”
“아직 확실치는 않소. 다만 광부는 이미 마기에 감염된 것 같소. 그리고 무엇보다 광부가 말했던 그 녀석들이 마음에 걸린단 말이오.”
“그렇다면 그 두 녀석이 흑마법사?”
채플 백작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러자 라예키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오. 그보다 다른 흑마법사가 조정하는 그 무엇인 것 같은데…….”
라예키르도 확실치가 않는지 확실한 답변을 해 주지 않았다. 그러자 채플 백작이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소?”
“우선 내가 그리로 가야겠소. 직접 확인을 해야 확실할 것 같소.”
“그, 그렇게 하시오.”
“걱정 마시오. 이 일은 내게 맡겨 두시오. 누가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으니까 말이오.”
라예키르의 말에 채플 백작의 얼굴이 풀어졌다.
“부탁하오. 다시 광산을 찾게 도와주시오.”
“내게 맡기시오.”
라예키르는 대답을 마치고는 다시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사라지고 채플 백작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이제 됐어. 라예키르가 나서 준다고 했으니 말이야.”
“네, 정말 다행입니다.”
로이 남작도 동조를 했다. 채플 백작의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가져올 좋은 소식만 기다리며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