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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나이츠 1권 (25화)
Episode 10 헬 나이츠 (2)
2
한편 제이크는 아이린과 에페로 자작가의 기사단을 이끌고 보일란 성을 찾았다. 우선 보일란 성에 여장을 푼 그들은 곧바로 광산을 차지한 그곳으로 가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제이크가 먼저 폴과 필이 있는 쪽으로 가기 위해 보일란 성 뒤쪽의 산맥 입구로 향했다. 그때 아이린이 급히 달려왔다.
“같이 가요!”
그녀의 외침에 제이크가 몸을 돌렸다. 그녀는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제이크에게 달려왔다.
“하아, 무슨 걸음이 그리도 빨라요?”
아이린의 핀잔에 제이크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나중에 기사단장과 천천히 오지 그래.”
“아뇨, 저도 빨리 가서 확인하고 싶어요. 어차피 베일 기사단장님은 보일란 성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배치하느라 정신이 없을 거예요. 게다가 위험하면 제이크 님이 보호해 주시겠죠.”
아이린이 싱긋 웃으며 말하자 제이크가 고개를 홱 돌렸다. 왠지 모르게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뛰었다. 어쨌든 제이크는 무언의 승낙을 하며 앞장서서 걸어갔다.
아이린도 승낙을 한 것이라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제이크 뒤를 따랐다. 한참을 걸어 산맥의 입구에 도착을 한 제이크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입구에서부터 강한 마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으음.”
제이크는 낮은 신음을 흘리며 입구를 뚫어져라 응시를 했다. 뒤에서는 아이린이 숨을 헐떡이며 섰다. 그러고는 심각해진 제이크의 얼굴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앞에 뭔가가 있어요?”
아이린의 물음에 제이크가 황급히 인상을 풀었다. 애써 환한 얼굴이 되며 몸을 돌린 제이크가 아이린을 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갑자기 보일란 성에서 두고 온 것이 있네. 시간도 늦었으니 아무래도 광산은 내일 오전에 가는 것이 좋겠어.”
“네에?”
아이린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는 잔뜩 실망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곧바로 걸음을 옮겨 내려갔다. 산맥 입구까지 와서 돌아가야 하는 아이린은 아쉬움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제이크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서 내려와. 안 그러면 혼자 두고 간다.”
제이크의 말에 아이린은 급히 몸을 돌렸다.
“같이 가요.”
그녀는 몸을 돌려 내려가면서도 힐끔힐끔 숲속 입구를 쳐다봤다. 조금은 으스스해 보였다. 절대로 혼자서는 못 갈 것 같았다. 그래서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내일 오전에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빨리 광산에 가 보고 싶었는데.”
아이린은 내려가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밤늦은 시각.
저녁 보름달이 훤히 떠오르던 날이었다. 산맥 입구로 한 명의 검은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 어떻게 왔는지 알 수는 없다. 땅에서 솟았는지 갑자기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밝은 보름달빛에 얼굴이 드러났다. 바로 제이크였다. 그는 숲 입구에서 서서 심각한 얼굴로 숲 안을 쳐다봤다. 역시 여전히 탁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후에 느꼈던 것보다 더 강했다. 아마도 밤이고, 달의 힘을 받았기 때문에 더 강해졌을 것이다. 사실 오후에 혼자라면 그냥 뚫고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린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데리고 숲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마기에 그녀의 몸이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핑계를 대며 다시 성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늦은 밤 홀로 이곳에 다시 돌아왔다. 제이크도 이런 마기를 뿜어낸 자를 만나고 싶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폴과 필이 걱정되기도 했다.
물론 녀석들이라면 큰 위험을 없었을 것이라 확신을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 흐르는 마기는 일방적인 순수한 마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제이크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는 곧바로 숲 안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입구에 잔뜩 어려 있던 마기가 제이크의 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제이크는 그 마기를 천천히 몸으로 흡수를 하였다.
그 순간 제이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순수한 마기가 아닌 아주 탁한 마기인지 몸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주 독한 놈이군. 인위적인 마기야.”
제이크는 잔뜩 인상을 구기며 안으로 한참을 들어갔다. 숲은 정말로 조용했다. 그때 제이크의 기척에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제이크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의 손이 천천히 허리에 있는 검으로 향했다.
사사삭―
수풀들이 들썩였다. 제이크는 그 자리에 서서 앞만 쳐다보았다. 잠시 후 수풀이 더욱 요동을 치더니 괴성을 지르며 키메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아아앙!
“키메라?”
제이크도 키메라를 발견하고는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내 차가운 눈빛이 되며 키메라와 마주섰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
제이크가 나직이 속삭이며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 키메라가 덤벼들었다.
크앙!
제이크는 공중 높이 뛰어 오르는 키메라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리고 제이크의 머리를 노리며 두 발이 빠르게 날아왔다. 순간 제이크는 왼쪽으로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정확히 키메라의 배 부분을 갈랐다.
쿠에에엑!
털퍼덕!
키메라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제이크는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달려가 녀석이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푸욱!
쿠엑, 쿠에에엑!
괴성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제이크는 인정을 두지 않았다. 심장에 박힌 검을 통해 키메라의 몸속에 있던 마기가 쭈욱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생기를 뛰고 있던 키메라의 몸이 마치 수분을 쪽 빨린 듯, 부풀었던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이 쪼그라들었다.
제이크가 키메라의 심장에 꽂았던 검을 뽑아내자 이내 썩은 시체로 변하며 앙상한 뼈다귀만 남아 버렸다. 그것도 잠시 그 뼈다귀마저 검게 변하며 재가 되어 사라졌다.
“녀석들을 소환한 자를 찾아야겠군.”
제이크가 날카롭게 말했다. 사실 제이크는 키메라는 많이 상대해 왔다. 물론 그곳에서이지만 그래서 녀석들이 재생을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무엇보다 재생을 하지 못하게 마기를 뽑아야 한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래서 속전속결로 키메라를 넘어뜨리고 검으로 마기를 뽑아낸 것이다. 녀석들이 다시는 재생하지 못하게 아예 완벽한 죽음을 선사한 것이다.
그러면서 키메라를 소환한 자를 찾기 위해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얼마 가지 않아 또 다른 키메라가 제이크를 공격했다. 역시나 같은 방법으로 키메라를 쉽게 제압한 제이크는 더욱 앞으로 전진을 했다.
그렇게 약 열 마리의 키메라를 처리하고 어느 공터 앞에 멈춘 제이크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장난 그만 치고 나오는 게 좋지 않겠나?”
제이크의 말에 공터 반대편의 큰 나무에서 검은 로브와 후드를 쓴 라예키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보자 제이크는 바로 흑마법사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라예키르도 제이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있어서 지금 나타난 제이크가 이그나탈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키메라를 상대하는 것으로 보마 많이 죽여 본 솜씨라는 것을 알았다.
키메라의 존재는 마계의 생물이다. 그렇다면 혹시 마계에서 나온 인물? 라예키르는 거기까지 생각을 했지만 절대로 제이크를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도 허름하기 짝이 없는 누더기였다. 살짝 경계의 눈빛을 하며 라예키르가 말했다.
“네 녀석인가? 넌 누구냐?”
“나? 그전에 너부터 존재를 밝혀야 하는 것이 도리 아닐까?”
제이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라예키르도 지지 않는 듯 말을 받았다.
“알고 싶으면 직접 와서 확인해 보던지.”
“훗, 그거 괜찮은 생각이군.”
제이크가 순순히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는 한 걸은 내디뎠다. 라예키르의 눈이 바닥으로 향했다. 지금 제이크가 내딛는 땅은 라예키르가 그려 놓은 마법진이었다. 만약 그곳에 제이크가 들어간다면 꼼짝도 하지 못하고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초조한 눈빛으로 제이크를 응시했다. 제이크는 아무 의심 없이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공터 중앙에 막 도착을 했을 때 바닥에서 검은 육망성의 마법진이 생성되며 제이크를 감쌌다.
마법진을 확인한 제이크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멈춰 섰다. 그러자 라예키르가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크크크, 함정에 빠졌군. 이제 내 쪽이 더 유리하지. 내가 묻겠다. 넌 누구냐?”
반면 제이크는 함정에 빠졌어도 별로 대수롭지 않는 것 같았다.
“허, 웃기는군. 남의 땅에 와서 장난을 쳐 놓고 누구냐고 묻다니. 게다가 내가 직접 확인하겠다고 다가갔는데 함정까지 설치해 날 꼼짝 못하게 만들다니. 이 무슨 경우지?”
라예키르는 엉뚱하게 대답하는 제이크를 보며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넌 누구냐고 물었다!”
“흥! 궁금하면 네놈이 직접 알아보던가?”
제이크도 똑같이 맞받아졌다. 라예키르는 제이크의 도발에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그깟 허세에 속을 것 같으냐? 네놈의 이름 따위 몰라도 된다. 어차피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테니 말이야. 크크크.”
“하하핫, 이깟 마법진으로 날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아?”
제이크는 크게 웃음을 지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순간 라예키르가 움찔했다.
“무슨 소리지? 이깟 마법진이라니. 헛소리하지 마라. 이건 48개의 마정석으로 만든 블러드 헬이다!”
라예키르는 자신감에 찬 어투로 말했다.
“네 모든 마력은 물론 피까지 태워 버릴 것이다.”
라예키르가 이처럼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최강의 공격 마법인 블러드 헬 때문이다. 이는 6레벨의 고위 마법으로 어떤 것도 불태워 버리는 무시무시한 마법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마법진으로 펼치기 때문에 그 위력이 조금 반감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여전해서 걸려든 기사나 마법사는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
라예키르의 말을 듣고는 제이크가 마법진을 살폈다.
“호오, 이것이 블러드 헬을 불러내는 마법진이군. 직접 구현하면 더 강할 텐데 굳이 마법진을 그렸다는 것은 완전히 자기 것으로 하지 못한 것이군.”
제이크의 확실한 지적에 라예키르가 놀랐다. 블러드 헬을 알고 있을 뿐더러 정확한 문제점을 지적한 것까지 이는 분명 마계에 있는 자만이 알고 것이었다.
라예키르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호, 혹시 당신은 마계에서 온 것인가?”
“그렇다면?”
라예키르의 질문에 제이크가 확실한 답변을 피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제이크가 마계에서 온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편으로는 블러드 헬의 마법진에 갇혀 있으면서도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모습에 당황도 되었다.
‘어차피 일은 벌어졌다. 저 녀석이 마계에서 왔든 아니든 처리하면 끝이다.’
생각을 정리한 라예키르가 두 손을 올렸다.
반면 제이크는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신기하기만 했다.
“블러드 헬이라……. 이런 것이었군.”
그의 말에 라예키르가 말했다.
“왜 이제 후회되느냐?”
“훗, 후회라. 그렇지 않아도 몸이 찌뿌듯했는데 잘됐네. 아무래도 화끈한 밤이 되겠어.”
제이크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라예키르는 어이가 없었다.
“미, 미친놈 죽어라!”
라예키르가 큰 소리를 치며 들어 올린 두 손이 번쩍거리며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마법진이 발동하며 엄청난 화염이 치솟았다. 마법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릴 듯이 엄청난 열기를 동반했다.
그것도 붉은 화염이 아닌 푸른 화염이었다. 이것이 바로 마계에서 사용하는 블러드 헬이었다.
마법진 안에 있던 제이크는 비명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더욱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던 라예키르가 깜짝 놀랐다.
“어, 어떻게?”
그러는 사이에 제이크가 마법진 안에서 몸을 움직여 걸어 나왔다. 그리고 라예키르를 보며 섬뜩하게 말했다.
“이깟 불덩이로 날 녹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지? 아니면 날 새까맣게 태워 버릴 것이라 여겼나? 흥! 네 눈엔 이게 마계의 불꽃처럼 보이겠지만 헛소리! 이거 그저 흉내 내기에 지나지 않아.”
제이크의 말에 라예키르는 신음을 흘렸다.
“으으으.”
그러자 제이크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말했다.
“진짜 마계의 불꽃이 뭔지 가르쳐 줄까? 그 뜨거움을 느끼게 해 줘?”
제이크의 말에 더욱 더 신음을 흘리는 라예키르였다.
“으으으, 이, 이럴 수가!”
그로써는 지금 보고 있는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블러드 헬의 마법에서 살아남았고, 그 불꽃을 고스란히 몸으로 느끼고 있으면서도 태연스럽게 말을 하는지 이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온몸에 푸른 불꽃을 감싸며 말을 하는 제이크가 눈을 반짝였다.
“싫다고? 이런, 미안하군. 나도 이 정도에서 멈추고 싶지만 네 장난이 내 심장을 깨워 버렸다.”
그 순간 제이크의 눈이 점점 변하였다. 검은 눈동자에서 붉은 눈동자로 바뀌었다. 제이크의 온몸을 감싸고 있던 푸른 불꽃이 사그라졌다. 그때를 같이해 제이크의 이마에서 자주색 불꽃이 튀어 오르며 동시에 사라졌던 갑옷이 나타났다.
검은 바탕의 갑옷. 왼쪽 가슴에 선명하게 드러난 세 개의 불꽃. 바로 홍염의 불꽃이다. 그것을 확인한 라예키르가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것은……. 그렇다면 너, 너는!”
라예키르는 눈이 뒤집혔다. 믿기지 않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서 잊혀진 고대의 기록이 스쳐 지나간다.
마계의 열두 마왕을 보필하는 군단장.
그 용맹스러운 기사들을 가리켜 헬 나이츠라 부른다.
라고…….
<『헬 나이츠』 제2권에서 계속>
Episode 10 헬 나이츠 (2)
2
한편 제이크는 아이린과 에페로 자작가의 기사단을 이끌고 보일란 성을 찾았다. 우선 보일란 성에 여장을 푼 그들은 곧바로 광산을 차지한 그곳으로 가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제이크가 먼저 폴과 필이 있는 쪽으로 가기 위해 보일란 성 뒤쪽의 산맥 입구로 향했다. 그때 아이린이 급히 달려왔다.
“같이 가요!”
그녀의 외침에 제이크가 몸을 돌렸다. 그녀는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제이크에게 달려왔다.
“하아, 무슨 걸음이 그리도 빨라요?”
아이린의 핀잔에 제이크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나중에 기사단장과 천천히 오지 그래.”
“아뇨, 저도 빨리 가서 확인하고 싶어요. 어차피 베일 기사단장님은 보일란 성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배치하느라 정신이 없을 거예요. 게다가 위험하면 제이크 님이 보호해 주시겠죠.”
아이린이 싱긋 웃으며 말하자 제이크가 고개를 홱 돌렸다. 왠지 모르게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뛰었다. 어쨌든 제이크는 무언의 승낙을 하며 앞장서서 걸어갔다.
아이린도 승낙을 한 것이라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제이크 뒤를 따랐다. 한참을 걸어 산맥의 입구에 도착을 한 제이크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입구에서부터 강한 마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으음.”
제이크는 낮은 신음을 흘리며 입구를 뚫어져라 응시를 했다. 뒤에서는 아이린이 숨을 헐떡이며 섰다. 그러고는 심각해진 제이크의 얼굴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앞에 뭔가가 있어요?”
아이린의 물음에 제이크가 황급히 인상을 풀었다. 애써 환한 얼굴이 되며 몸을 돌린 제이크가 아이린을 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갑자기 보일란 성에서 두고 온 것이 있네. 시간도 늦었으니 아무래도 광산은 내일 오전에 가는 것이 좋겠어.”
“네에?”
아이린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는 잔뜩 실망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곧바로 걸음을 옮겨 내려갔다. 산맥 입구까지 와서 돌아가야 하는 아이린은 아쉬움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제이크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서 내려와. 안 그러면 혼자 두고 간다.”
제이크의 말에 아이린은 급히 몸을 돌렸다.
“같이 가요.”
그녀는 몸을 돌려 내려가면서도 힐끔힐끔 숲속 입구를 쳐다봤다. 조금은 으스스해 보였다. 절대로 혼자서는 못 갈 것 같았다. 그래서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내일 오전에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빨리 광산에 가 보고 싶었는데.”
아이린은 내려가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밤늦은 시각.
저녁 보름달이 훤히 떠오르던 날이었다. 산맥 입구로 한 명의 검은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 어떻게 왔는지 알 수는 없다. 땅에서 솟았는지 갑자기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밝은 보름달빛에 얼굴이 드러났다. 바로 제이크였다. 그는 숲 입구에서 서서 심각한 얼굴로 숲 안을 쳐다봤다. 역시 여전히 탁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후에 느꼈던 것보다 더 강했다. 아마도 밤이고, 달의 힘을 받았기 때문에 더 강해졌을 것이다. 사실 오후에 혼자라면 그냥 뚫고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린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데리고 숲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마기에 그녀의 몸이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핑계를 대며 다시 성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늦은 밤 홀로 이곳에 다시 돌아왔다. 제이크도 이런 마기를 뿜어낸 자를 만나고 싶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폴과 필이 걱정되기도 했다.
물론 녀석들이라면 큰 위험을 없었을 것이라 확신을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 흐르는 마기는 일방적인 순수한 마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제이크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는 곧바로 숲 안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입구에 잔뜩 어려 있던 마기가 제이크의 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제이크는 그 마기를 천천히 몸으로 흡수를 하였다.
그 순간 제이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순수한 마기가 아닌 아주 탁한 마기인지 몸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주 독한 놈이군. 인위적인 마기야.”
제이크는 잔뜩 인상을 구기며 안으로 한참을 들어갔다. 숲은 정말로 조용했다. 그때 제이크의 기척에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제이크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의 손이 천천히 허리에 있는 검으로 향했다.
사사삭―
수풀들이 들썩였다. 제이크는 그 자리에 서서 앞만 쳐다보았다. 잠시 후 수풀이 더욱 요동을 치더니 괴성을 지르며 키메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아아앙!
“키메라?”
제이크도 키메라를 발견하고는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내 차가운 눈빛이 되며 키메라와 마주섰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
제이크가 나직이 속삭이며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 키메라가 덤벼들었다.
크앙!
제이크는 공중 높이 뛰어 오르는 키메라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리고 제이크의 머리를 노리며 두 발이 빠르게 날아왔다. 순간 제이크는 왼쪽으로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정확히 키메라의 배 부분을 갈랐다.
쿠에에엑!
털퍼덕!
키메라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제이크는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달려가 녀석이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푸욱!
쿠엑, 쿠에에엑!
괴성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제이크는 인정을 두지 않았다. 심장에 박힌 검을 통해 키메라의 몸속에 있던 마기가 쭈욱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생기를 뛰고 있던 키메라의 몸이 마치 수분을 쪽 빨린 듯, 부풀었던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이 쪼그라들었다.
제이크가 키메라의 심장에 꽂았던 검을 뽑아내자 이내 썩은 시체로 변하며 앙상한 뼈다귀만 남아 버렸다. 그것도 잠시 그 뼈다귀마저 검게 변하며 재가 되어 사라졌다.
“녀석들을 소환한 자를 찾아야겠군.”
제이크가 날카롭게 말했다. 사실 제이크는 키메라는 많이 상대해 왔다. 물론 그곳에서이지만 그래서 녀석들이 재생을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무엇보다 재생을 하지 못하게 마기를 뽑아야 한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래서 속전속결로 키메라를 넘어뜨리고 검으로 마기를 뽑아낸 것이다. 녀석들이 다시는 재생하지 못하게 아예 완벽한 죽음을 선사한 것이다.
그러면서 키메라를 소환한 자를 찾기 위해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얼마 가지 않아 또 다른 키메라가 제이크를 공격했다. 역시나 같은 방법으로 키메라를 쉽게 제압한 제이크는 더욱 앞으로 전진을 했다.
그렇게 약 열 마리의 키메라를 처리하고 어느 공터 앞에 멈춘 제이크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장난 그만 치고 나오는 게 좋지 않겠나?”
제이크의 말에 공터 반대편의 큰 나무에서 검은 로브와 후드를 쓴 라예키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보자 제이크는 바로 흑마법사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라예키르도 제이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있어서 지금 나타난 제이크가 이그나탈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키메라를 상대하는 것으로 보마 많이 죽여 본 솜씨라는 것을 알았다.
키메라의 존재는 마계의 생물이다. 그렇다면 혹시 마계에서 나온 인물? 라예키르는 거기까지 생각을 했지만 절대로 제이크를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도 허름하기 짝이 없는 누더기였다. 살짝 경계의 눈빛을 하며 라예키르가 말했다.
“네 녀석인가? 넌 누구냐?”
“나? 그전에 너부터 존재를 밝혀야 하는 것이 도리 아닐까?”
제이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라예키르도 지지 않는 듯 말을 받았다.
“알고 싶으면 직접 와서 확인해 보던지.”
“훗, 그거 괜찮은 생각이군.”
제이크가 순순히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는 한 걸은 내디뎠다. 라예키르의 눈이 바닥으로 향했다. 지금 제이크가 내딛는 땅은 라예키르가 그려 놓은 마법진이었다. 만약 그곳에 제이크가 들어간다면 꼼짝도 하지 못하고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초조한 눈빛으로 제이크를 응시했다. 제이크는 아무 의심 없이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공터 중앙에 막 도착을 했을 때 바닥에서 검은 육망성의 마법진이 생성되며 제이크를 감쌌다.
마법진을 확인한 제이크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멈춰 섰다. 그러자 라예키르가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크크크, 함정에 빠졌군. 이제 내 쪽이 더 유리하지. 내가 묻겠다. 넌 누구냐?”
반면 제이크는 함정에 빠졌어도 별로 대수롭지 않는 것 같았다.
“허, 웃기는군. 남의 땅에 와서 장난을 쳐 놓고 누구냐고 묻다니. 게다가 내가 직접 확인하겠다고 다가갔는데 함정까지 설치해 날 꼼짝 못하게 만들다니. 이 무슨 경우지?”
라예키르는 엉뚱하게 대답하는 제이크를 보며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넌 누구냐고 물었다!”
“흥! 궁금하면 네놈이 직접 알아보던가?”
제이크도 똑같이 맞받아졌다. 라예키르는 제이크의 도발에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그깟 허세에 속을 것 같으냐? 네놈의 이름 따위 몰라도 된다. 어차피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테니 말이야. 크크크.”
“하하핫, 이깟 마법진으로 날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아?”
제이크는 크게 웃음을 지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순간 라예키르가 움찔했다.
“무슨 소리지? 이깟 마법진이라니. 헛소리하지 마라. 이건 48개의 마정석으로 만든 블러드 헬이다!”
라예키르는 자신감에 찬 어투로 말했다.
“네 모든 마력은 물론 피까지 태워 버릴 것이다.”
라예키르가 이처럼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최강의 공격 마법인 블러드 헬 때문이다. 이는 6레벨의 고위 마법으로 어떤 것도 불태워 버리는 무시무시한 마법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마법진으로 펼치기 때문에 그 위력이 조금 반감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여전해서 걸려든 기사나 마법사는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
라예키르의 말을 듣고는 제이크가 마법진을 살폈다.
“호오, 이것이 블러드 헬을 불러내는 마법진이군. 직접 구현하면 더 강할 텐데 굳이 마법진을 그렸다는 것은 완전히 자기 것으로 하지 못한 것이군.”
제이크의 확실한 지적에 라예키르가 놀랐다. 블러드 헬을 알고 있을 뿐더러 정확한 문제점을 지적한 것까지 이는 분명 마계에 있는 자만이 알고 것이었다.
라예키르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호, 혹시 당신은 마계에서 온 것인가?”
“그렇다면?”
라예키르의 질문에 제이크가 확실한 답변을 피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제이크가 마계에서 온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편으로는 블러드 헬의 마법진에 갇혀 있으면서도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모습에 당황도 되었다.
‘어차피 일은 벌어졌다. 저 녀석이 마계에서 왔든 아니든 처리하면 끝이다.’
생각을 정리한 라예키르가 두 손을 올렸다.
반면 제이크는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신기하기만 했다.
“블러드 헬이라……. 이런 것이었군.”
그의 말에 라예키르가 말했다.
“왜 이제 후회되느냐?”
“훗, 후회라. 그렇지 않아도 몸이 찌뿌듯했는데 잘됐네. 아무래도 화끈한 밤이 되겠어.”
제이크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라예키르는 어이가 없었다.
“미, 미친놈 죽어라!”
라예키르가 큰 소리를 치며 들어 올린 두 손이 번쩍거리며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마법진이 발동하며 엄청난 화염이 치솟았다. 마법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릴 듯이 엄청난 열기를 동반했다.
그것도 붉은 화염이 아닌 푸른 화염이었다. 이것이 바로 마계에서 사용하는 블러드 헬이었다.
마법진 안에 있던 제이크는 비명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더욱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던 라예키르가 깜짝 놀랐다.
“어, 어떻게?”
그러는 사이에 제이크가 마법진 안에서 몸을 움직여 걸어 나왔다. 그리고 라예키르를 보며 섬뜩하게 말했다.
“이깟 불덩이로 날 녹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지? 아니면 날 새까맣게 태워 버릴 것이라 여겼나? 흥! 네 눈엔 이게 마계의 불꽃처럼 보이겠지만 헛소리! 이거 그저 흉내 내기에 지나지 않아.”
제이크의 말에 라예키르는 신음을 흘렸다.
“으으으.”
그러자 제이크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말했다.
“진짜 마계의 불꽃이 뭔지 가르쳐 줄까? 그 뜨거움을 느끼게 해 줘?”
제이크의 말에 더욱 더 신음을 흘리는 라예키르였다.
“으으으, 이, 이럴 수가!”
그로써는 지금 보고 있는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블러드 헬의 마법에서 살아남았고, 그 불꽃을 고스란히 몸으로 느끼고 있으면서도 태연스럽게 말을 하는지 이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온몸에 푸른 불꽃을 감싸며 말을 하는 제이크가 눈을 반짝였다.
“싫다고? 이런, 미안하군. 나도 이 정도에서 멈추고 싶지만 네 장난이 내 심장을 깨워 버렸다.”
그 순간 제이크의 눈이 점점 변하였다. 검은 눈동자에서 붉은 눈동자로 바뀌었다. 제이크의 온몸을 감싸고 있던 푸른 불꽃이 사그라졌다. 그때를 같이해 제이크의 이마에서 자주색 불꽃이 튀어 오르며 동시에 사라졌던 갑옷이 나타났다.
검은 바탕의 갑옷. 왼쪽 가슴에 선명하게 드러난 세 개의 불꽃. 바로 홍염의 불꽃이다. 그것을 확인한 라예키르가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것은……. 그렇다면 너, 너는!”
라예키르는 눈이 뒤집혔다. 믿기지 않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서 잊혀진 고대의 기록이 스쳐 지나간다.
마계의 열두 마왕을 보필하는 군단장.
그 용맹스러운 기사들을 가리켜 헬 나이츠라 부른다.
라고…….
<『헬 나이츠』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