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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잔재(1화)
chapter 0. 프롤로그
놈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
180이 넘는 길쭉한 신장에 연예인처럼 잘난 얼굴, 무뚝뚝한 성격까지.
외양만 본다면 제법 인기 있을 법하지만, 소문이 좋지 않았다. 몸에 상처가 끊이질 않아 매일 싸움만 하고 다닌다든지, 자주 여자를 갈아 치워 유산한 애도 있다든지 하는 질 낮은 소문이 많았다. 그래서 놈은 고등학교 3년 내내 혼자였다.
나는 그 3년 동안 놈을 짝사랑했다. 그리고 열렬히 들이댔다가 까였다. 장렬하게.
쪽팔린 기억이다.
chapter 1. 그놈과의 재회
청년실업 백만 시대.
시급 센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학자금 대출은 쌓이는데, 다음 학기에 복학해서 공부하려니 머리가 텅 비었다. 이놈의 군대는 멀쩡한 청년들 데려다가 바보로 만드는 데 도가 텄다. 아무리 잘난 놈도 그곳만 들어가면 머리 빈 마초로 재탄생한다.
이라준도 마찬가지였다.
“으으으, 죽겠네.”
라준의 입에서 한숨이 푹 터졌다.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농땡이 치면서 피우니 담배 맛이 꿀맛이다. 일이 힘들다 보니 더 달콤했다.
라준은 필터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막노동이 아니란 말에 속아 넘어가는 게 아니었다. 오늘 일은 막노동까진 아니라도 중노동에 가까웠다.
터미널 증축 공사 현장에서 소소한 심부름만 하면 된다더니 무거운 자재를 옮기는 것도 모자라 전등까지 갈아 끼워야 했다. 한두 개도 아니고 수십 개나 되는 걸 고치다 보니, 빠질 듯한 허리는 제외하더라도 목이 부러질 것 같았다. 절로 욕 나오는 상황이었다.
“개철이, 이 새끼.”
술만 먹으면 제정신이 아닌 승철이 놈을 믿은 대가가 꽤 혹독했다. 일당이 고액이라며 큰소리 떵떵 치던 놈은 진작 도망갔다. 씨발 새끼.
강원도 철원에서 죽도록 삽질하던 기억 때문에 라준은 제대 이후 막노동이라면 학을 뗐다. 그런 라준을 남겨 두고 승철은 저만 쏙 달아난 것이다. 잡히면 입을 찢어 버려야겠다고 다짐하며 라준은 이를 갈았다.
“라준이! 라준이 청년 어디 갔어?”
“예! 갑니다!”
라준은 반사적으로 답하고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젠장. 돈이 원수다, 돈이. 군대에서 받은 돈은 알차게 PX에 처박아서 생활비가 모자랐다. 몸이 힘들긴 해도 어쨌든 시급은 셌다. 일도 삽질보단 수월하지 않느냐며 스스로 세뇌했다.
남은 꽁초가 아쉽긴 했지만 라준은 미련 없이 담배를 바닥에 버렸다. 대답을 들었음에도 마뜩지 않은지 다시 라준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나가기 싫었다. 미적미적 주차장 구석에서 나온 라준은 우락부락한 작업반장을 보니 또다시 가슴이 울컥했다. 배승철 개새끼.
“아, 젊은 사람이 벌써 지친겨? 퍼뜩퍼뜩 따라온나!”
“예!”
작업반장의 성질에 라준은 사근사근 웃으며 비위를 맞췄다. 아무리 힘이 좋아도 몇십 년을 이 바닥에서 구른 베테랑과는 요령부터가 달랐다. 그런 말을 해 봐야 몸으로 때우는 것도 못하냐고 타박이나 듣겠지만, 라준으로선 속으로라도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라준은 공구를 들고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2층 전구는 모두 끝냈고, 1층 전구만 갈면 오늘 일은 끝이었다. 평일인 데다 심야라 그런지 인적이 드물었다. 24시 편의점을 제외한 가게는 모두 문을 닫았다. 내부를 순찰하는 경비원도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으으, 죽겠네.”
팔만 뻗어도 어깨와 목이 뻐근했다. 할 일이라곤 LED 전등을 가는 것뿐이지만, 문제는 터미널 천장이 꽤 높은 데다 전등 또한 수십 개가 넘는다. 단순 노동에 반복 노동이라 더 힘들었다.
사건은 라준이 다섯 번째 전구를 교체할 때 일어났다.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밤 10시만 되면 귀신같이 졸음이 쏟아졌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뻑뻑한 눈을 박박 문지르면서 작업했지만, 피로한 몸에 든 잠귀신은 달아날 줄 몰랐다. 기어코 고개를 꾸벅 숙였고, 찰나의 순간 상체가 넘어갔다. 라준은 아차 하며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으악!”
턱!
털썩!
몸이 한 번 들썩하더니 축 늘어졌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치곤 충격이 작았다. 라준은 무섭도록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씨발. 죽는 줄 알았네. 바닥이 푹신해서 살았……. 푹신?”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뻣뻣한 얼굴로 고개 내린 라준은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누군가가 바닥에 쓰러진 채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까?”
라준은 뒤늦게 상황 파악했다. 기겁한 얼굴로 상대를 부축하려 했지만, 뻗은 손은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단번에 내쳐졌다. 라준은 머쓱한 얼굴로 얼얼한 손을 쓱쓱 문질렀다.
손을 뿌리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례식에라도 다녀왔는지 검은 상복 차림이었다. 어깨에 찬 두 줄 완장이 직계 가족이 죽었다는 걸 나타냈다.
상복 곳곳에 덕지덕지 붙은 하얀 먼지에 라준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도움의 손길은 남자가 몸을 트는 것으로 거부당했다. 그 와중에도 머리를 잡는 게 고통이 큰 것 같았다.
“머리 크게 다친 거 아닙니까? 119 부를까요?”
“…….”
“저기요!”
병원비는 차치하고라도 머리를 다쳤으면 큰일이었다. 초조해하는 라준을 무시한 채 남자는 제 갈 길을 가려 했다. 라준은 기겁하며 그 앞을 막아섰다. 남자의 이마 쪽으로 얼굴을 불쑥 들이밀고 자세히 살피려 했다.
“…어?”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라준이 눈을 크게 떴다. 어버버, 소리 내며 손가락질하기까지 했다. 라준이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몸을 빼려 했다. 돌아가려는 남자의 팔을 라준은 무심코 잡아챘다. 옆으로 휘청한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팔을 털었다. 그러나 이번엔 쉽게 떨쳐 내지 못했다.
“차문호?”
“…….”
“나야, 나. 기억 안 나? 동창인 이라준.”
“……놔.”
기어코 남자의 입에서 서늘한 말이 튀어나왔다. 라준은 얼떨결에 팔을 놓았다.
“오랜만이다. 나, 기억……하지?”
라준은 애매하게 웃었다. 3년 전이지만 장렬하게 까인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졸업식 날 고백했고, 친구들이 밀가루 폭탄을 맞으며 해맑게 웃을 때 라준은 실연당해 꺽꺽 울었다. 눈물 콧물 흘리는 그를 보고 가장 친한 친구라는 새끼들은 낄낄대며 비웃었다.
“몰라.”
“…….”
단호한 부정에 말문이 막혔다. 목석처럼 굳은 라준을 무시한 채 남자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이번엔 라준도 막지 못했다. 그는 맥없이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자신을 잊을 수 있을까. 라준은 이해할 수 없었다. 틈만 나면 얼쩡거리고 마지막엔 고백까지 했었다. 동성의 고백은 쉽게 잊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라준은 ‘꺼져, 호모 새끼.’라고 폭언했던 남자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했다. 심정적으론 이해한다. 일반인과 게이가 잘될 가능성은 적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잘 알고 있다.
라준은 천천히 멀어지는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커다란 키도, 잘생긴 얼굴도, 타인에게 무심한 성격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내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가 좋아했던 차문호였다.
“새끼. 아직도 멋있네.”
라준은 머쓱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땅덩어리가 좁아서 혹시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이런 데서 볼 줄은 몰랐다. 차문호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라준은 1층으로 내려온 작업반장의 잔소리를 듣고서야 다시 작업을 재개했다.
어느새 라준의 입에선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첫사랑과의 재회에 정신이 팔려 차문호가 무시했던 건 생각나지도 않았다. 이런 우연이 흔한 건 아닐 테니, 오늘의 행운을 만끽하기로 했다. 혼자만의 재회로도 충분히 기분 좋았다.
*
“야, 이 개새끼야―!”
쩌렁쩌렁한 고함에 배승철이 기겁하며 납작 엎드렸다. 앉아 있던 금원보와 박고니도 탁자에서 분분히 흩어졌다. 그 위로 라준의 이단 옆차기가 날아들었다. 쾅! 소리와 함께 탁자가 튕겨 나갔다.
“크악!”
숨어 있던 승철의 등으로 매섭게 발이 꽂혔다. 퍽퍽, 소리와 함께 살벌한 구타가 이어졌다. 졸지에 매장 테이블이 박살 나고 폭력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 점원이 덜덜 떨며 휴대폰을 들었다. 원보가 잽싸게 점원의 팔목을 잡고 빙그르르 웃었다. 그의 손엔 테이블값 플러스 주문할 음식값이 들려 있었다.
“불고기 버거 세트 하나, 와퍼 세트 하나, 갈릭스테이크 버거 세트 하나, 통치킨 버거 세트 하나 주문이요.”
“저기. 저, 저분은…….”
“아, 늘 있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소란 피워서 죄송합니다. 밑에 깔린 놈이 죽으면 끝날 거예요.”
“네?”
“곧 끝날 거라고요.”
원보는 흘러내린 안경을 추켜세우며 어서 주문받지 않고 뭐하냐는 듯 채근했다. 점원은 떨떠름한 얼굴로 현금을 받았다. 조조로 본 영화표를 제시해 할인을 챙긴 원보는 현금 영수증까지 끊고서야 만족했다.
그 와중에도 승철을 향한 라준의 분풀이는 끝나지 않았다. 고니야 쪼그려 앉아 구경하면서 낄낄대기에 바빴다.
“불고기 버거 세트, 와퍼 세트, 갈릭스테이크 버거 세트, 통치킨 버거 세트 하나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빨대는 셀프입니다.”
“야, 고니! 와서 들어.”
“엉!”
트레이가 네 개라 손이 부족했다. 고니가 냉큼 두 개를 들었다. 둘은 멀쩡한 테이블로 옮겨서 자기 몫의 햄버거 포장지를 뜯었다. 라준과 승철을 기다리지도 않고 먹기 시작했다.
분풀이가 끝났는지 라준이 씩씩대며 두 사람의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마른 목을 콜라로 축였다.
“크!”
라준이 따끔한 목을 부여잡고 있으려니 포장지 벗겨진 햄버거가 불쑥 내밀어졌다. 고니였다. 라준은 손으로 받는 대신 입으로 먼저 베어 물었다. 우걱우걱 먹는 게 게걸스럽기까지 했다.
“크크크큭, 일이 그렇게 힘들었냐?”
“씨발, 장장 열흘이다. 터미널에 버스만 잘 다니면 되지. 뭘 그렇게 뜯어고친다고 난린지 모르겠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개지랄을 떨면서 부려 먹는데. 아, 삭신이야.”
“너도 승철이 새끼처럼 튀지 그랬냐.”
“저 새끼와 달리 라준이는 책임감 있거든. 돈은 두둑이 받았지?”
원보는 은근 라준을 치켜세워 주면서 금전에 관심을 보였다. 평소에도 돈에 환장하는 원보인지라 금세 라준의 눈이 가자미처럼 죽 찢어졌다. 그래도 말없이 엄지를 척 세웠다.
“꽤 짭짤했어.”
막노동에 가까운 일이었던 만큼 값은 두둑이 받았다. 원보가 더 캐묻기도 전에 고니가 쑥 끼어들었다.
“야, 나한테 투자할래? 두 배로 돌려줄게……. 악!”
고니의 유혹은 라준의 폭력으로 끝났다. 손날에 이마를 얻어맞은 고니는 얌전히 물러났다. 탐심의 대가였다.
라준은 혀를 차며 악우들을 쳐다봤다. 어떻게 친구를 사귀어도 이런 놈들과 엮였는지 모르겠다. 여자 밝히는 배승철과 돈 밝히는 금원보, 도박 밝히는 박고니까지. 라준은 통칭 삼레기―세 명의 쓰레기라 불린다―3인방과 엮인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탓했다. 끼리끼리 논다고 수도승―일명 고자―이라 불리는 제 별명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라준은 겉보기엔 훈내가 풀풀 풍기는 남자다. 잘생기진 않았지만, 훈남 정도는 되는 외모에 여자에 대한 매너가 좋았다. 웬만한 성질은 다 받아 주니 오해하는 여자들도 많았다.
그런데 실상은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들이대는 여자들에겐 철통같이 철벽 쳤다. 자연스럽게 수도승이란 별명이 붙었다. 좋게 말해 수도승이지, ‘고자 새끼’라고 까인 여자들이 흉보고 다녔다. 간만 보고 사귀지도 않는다고. 게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기도 뭐했다.
라준은 남은 햄버거를 다시 크게 베어 물었다. 불맛 나는 패티가 식욕을 자극했다. 한 입이 두 입 되고, 세 입 된 후에 포장지엔 마요네즈 소스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 와중에도 바닥에 앉은 승철을 발끝으로 툭툭 차는 건 잊지 않았다.
승철은 몰래 빼돌린 햄버거를 먹으며 카톡으로 여자들과 끊임없이 시시덕거렸다. 좀 전의 폭력은 금세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시퍼렇게 물든 눈두덩이가 불쌍하기보단 꼴사나웠다.
빈 포장지가 트레이 위에서 나뒹굴었다. 라준은 휴지로 소스 묻은 손을 쓱쓱 닦았다.
“생활비는 대충 해결됐고. 이제 또 뭘 하냐.”
“또 알바하려고? 이번 학기는 집에서 대 준다며.”
“그래도 학자금 대출은 많이 남았잖냐. 미리 돈 모아서 졸업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청산해야지. 어디 시급 센 아르바이트 없나?”
“공장 들어가.”
“막노동보다 단순 노동이 더 싫어.”
“그럼 나하고 한탕 뛰―!”
두 번째 고니의 유혹은 또다시 라준의 폭력으로 끝났다. 두 번이나 얻어맞은 탓에 고니의 이마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라준은 정학 징계를 받고도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친구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고니의 도박질은 선천적이라고 오해할 만큼 역사가 오래됐다. 라준과는 고등학생 때 친구가 됐는데, 그때도 이미 카드 도박으로 학우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원보에게 듣기론 중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고니가 정학을 맞은 건 얼마 안 됐다. 그 버릇 어디 안 가는지 고니는 대학에 들어가서도 만원도박단을 꾸려 인근 대학가를 휩쓸었다. 다섯 명으로 구성된 멤버로 화투를 들고 원정 도박을 다니다 교수에게 딱 걸려서 징계를 먹은 것이다. 판돈이 만 원 정도로 미묘하게 쪼잔한 액수라 법의 심판까진 받지 않았다.
웃긴 건 함께 도박단을 차린 놈들이 모두 엘리트였다는 거다. 한때의 유희인지 뭔지 몰라도, 고니 따라 도박 다니면서 놀러 다니던 그들은 징계 먹은 날 부모에게 귓불을 잡혀 질질 끌려갔다. 듣기로는 집에 감금당했다고 들었다.
그 소식을 라준은 군대에서 들었다. 원보와 승철의 편지에 적힌 사연을 읽고 라준은 후임들에게 보여 주며 친구의 불행을 한껏 비웃었다.
고니를 보며 다시 한 대 때려서 정신 차리게 할까, 고민하는 라준에게 원보가 달콤한 제안을 했다.
“라준아, 내가 소개해 줄까?”
“네가? 뭐 좋은 일 있냐?”
“남자가 하기엔 좀 껄끄럽긴 한데. 겨우 두 달이고 시급이 세.”
“해. 한다. 막노동은 아니지?”
“막노동에 가까운데 몸 망치는 일은 아니지.”
라준이 덥석 원보의 손을 잡았다. 이미 눈은 허락으로 넘실거렸다.
“뭔데?”
“가정부.”
삽시간에 손가락이 떨어졌다가 빨판처럼 달라붙었다. 라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일단 들어 볼 필요는 있었다. 원보는 배승철 같은 놈이 아니었다.
“아는 놈인데, 잘나가는 작가야. 웹 연재하던 게 대박 터져서 영화화까지 되고. 암튼, 딱 두 달만 집안일 해 줄 사람을 구하거든.”
“한 달에 얼마?”
“하루 6시간,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 한 달 120. 식사는 저녁만 차리면 되고.”
“콜.”
이게 웬 횡재냐. 라준은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나와 살았기에 집안일은 자신 있었다. 음식은 간단한 거밖에 할 줄 모르지만, 밥과 국, 반찬만 할 줄 알면 되는 거 아닌가. 일단 지르고 봤다.
“조건이 있어. 쥐 죽은 듯이 조용히 다닐 것.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 것.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외부에 흘리지 말 것. 이거 어겨서 계약 해지된 고용인이 꽤 많아.”
“무슨 재벌가라도 되냐. 좀 껄끄럽다?”
“그것만 지키면 돼. 쉽지?”
“어, 뭐.”
쉬운데 이상하기도 했다. 그래도 놓치기 쉽지 않은 자리다. 남자로서의 체면이야 누구에게 말하지 않으면 깎이지도 않을 테고, 솔직히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라서 이 일을 거절하면 막노동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아, 너도 알고 있는 놈이야. 차문호라고.”
“뭐!”
“뭐? 악!”
라준의 경악성과 동시에 쿵, 하고 테이블이 들썩였다. 밑에 앉아 있던 승철이 놀라서 일어나려다 테이블에 머리를 부딪친 모양이었다. 승철은 아린 머리를 붙잡고 끙끙거렸다. 이때만큼은 라준도 타박하지 않았다. 덜걱덜걱 움직이는 심장을 다독이느라 정신없었다.
격하게 동요한 둘과 달리 원보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한 입 정도 남은 햄버거로 포장지에 묻은 마요네즈 소스까지 삭삭 긁어 먹었다.
“아는 사이라 좀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해.”
“한다고?”
“어, 한다고. 반드시 내가 해.”
거절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놓치기 싫었다. 생각하기도 전에 답이 튀어나왔다. 원보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금세 관심을 끈 고니와 달리 승철은 입을 떡 벌리고 라준을 쳐다봤다. 따가운 시선에 라준은 눈을 슬그머니 피했다. 상황이 역전됐다.
원보와 고니는 라준이 차문호에게 고백한 줄 모른다. 그냥 실연당해서 운 줄만 알지, 그 대상이 차문호인 줄은 몰랐다. 라준이 게이인 걸 아는 건 배승철뿐이었다.
고등학생 때 친구가 된 둘과 달리 승철은 산부인과 동기였다. 원래 눈치가 비상한 놈이라 애초에 숨기는 게 불가능했다. 라준이 게이라는 걸 본인보다 먼저 알아챌 정도였다. 철은 없지만, 여러모로 무서운 놈이었다. 그런 그가 라준이 애타게 보는 대상이 누군지 모를 리가 없었다. 바로 지금처럼.
“그럼 연락해 놓는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시작하면 되고, 개강하고 일주일만 더 고생하면 끝날 거야. 어차피 야간 수업 없을 테니 시간 조율만 잘하면 돼.”
“그때 봐서.”
“뭐, 네가 알아서 해.”
목적을 이룬 원보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딴생각에 빠진 라준은 모르겠지만, 고개를 돌린 원보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라준는 눈치챘어야 했다. 돈 귀신인 원보가 공짜로 일을 소개해 줄 리 없었다. 원보는 문호 쪽에서 소개료를 알차게 챙겼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 몇 가지 빼먹은 사실이 있다는 것도 물론 함구했다.
초인종을 누르려던 손이 다시 내려갔다. 라준은 긴장으로 굳은 손을 꾹 쥐었다가 풀었다.
“흠흠, 어흠.”
약속 시각까진 아직 삼십 분이나 남았다. 첫인상을 좋게 보이고 싶어 일찍 나온 게 실수였다. 한 시간이나 일찍 나와서 삼십 분째 벨과 씨름하고 있었다. 이렇게 망설이다간 오히려 지각할 수도 있었다. 소개비로 금원보한테 5만 원―기어코 받아 갔다―이나 뜯겼는데 여기서 나가떨어질 순 없었다.
딩동―
드디어 라준은 벨을 꾹 눌렀다. 대문에 바짝 붙어 안의 동태를 살폈다. 고급 주택이라 그런지 무성한 정원 때문에 현관문은 안 보였다. 높은 나무 때문에 외부에서 보이는 거라곤 2층 옥상뿐이었다.
지잉―
미묘한 기계음이 들렸다. 움찔한 라준이 주위를 둘러봤다. 굳이 찾을 것도 없이 대문에 붙은 CCTV처럼 생긴 하얀색의 기계가 라준 쪽으로 고개를 고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덜컹, 하고 대문이 열렸다.
“실례합니다.”
아무도 없었지만 괜히 인사말이 나왔다. 라준은 어색한 얼굴로 정원을 가로질렀다. 징검다리처럼 동그랗고 평평한 돌다리를 띄엄띄엄 밟았다. 정원은 누군가가 관리하는지 모난 곳 없이 깔끔했다.
현관문에 도착한 라준이 소리 내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안녕하…….”
“그럼, 선생님. 잘 부탁합니다.”
낯선 목소리였다. 인사하려던 라준은 의아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했다. 차문호가 아니었다. 문을 연 채 비스듬하게 서 있던 남자가 뒤늦게 라준의 존재를 눈치챘다.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인사 후엔 침묵이 흘렀다. 자기소개라도 해야 하나 난감해하는 라준과 달리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남자는 별말 없이 그를 지나쳤다. 멀뚱히 남자를 보낸 라준이 퍼뜩 정신 차렸다. 좀 전부터 목석처럼 버티고 선 차문호를 그제야 발견했다.
“…….”
“…….”
서로 간에 침묵만 흘렀다. 문호는 새까만 눈으로 라준을 지그시 응시했다. 얼굴에 닿는 시선이 따가울 정도였다.
아, 뭐라고 하지. 라준은 난감했다. 오랜만이다, 하고 친근하게 굴기엔 상대의 태도가 무척 냉랭했다. 무엇보다 상대는 라준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존대하기엔 동창이어서 껄끄러웠다. 한참을 고심하던 라준은 단순하게 결론 내렸다.
상대방은 고용주다.
고민을 끝내니 자연스럽게 인사가 나왔다. 라준은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이라준입니다.”
깔끔하게 무시당했지만.
문호는 문을 열어 둔 채 몸을 돌렸다. 먼저 들어가는 그를 뒤따르며 라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내부는 한낮임에도 무척 어두웠다. 열려 있는 현관문을 닫으면 암막에라도 갇힌 듯 깜깜할 게 뻔했다. 어색해하는 라준과 달리 문호는 어둠에 익숙한 듯 자유롭게 움직였다.
“저기…….”
“할 일 찾아서 하세요.”
용기 있게 건넨 말은 칼날처럼 잘렸다. 별다른 지시도 없이 문호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닫았다. 지시라도 있을까 싶어 라준이 한참 기다렸지만, 문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라준은 기막혔다. 가정부라고 고용해 놓고 할 일도 안 가르쳐 주는 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하마터면 울컥해서 방문을 걷어찰 뻔했다.
“……그러니까 할 일이 뭐냐고.”
라준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내부를 훑었다. 암막 커튼으로 거실 창을 가렸지만 강렬한 태양을 다 막기엔 부족했다. 희미한 빛에 의지해 내부 파악에 들어갔다.
1층에 있는 방은 총 세 개였다. 현관문과 가장 가까운 문을 열었더니 욕실이 나왔다. 나지막이 감탄사가 터졌다. 제 자취방만큼이나 널찍한 화장실이었다. 헤엄쳐도 될 만큼 넓은 욕조도 그렇고, 호텔에서나 볼 법한 세면대가 호사스럽기까지 했다. 다음 방문을 열려던 라준은 멈칫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히 다닐 것.
갑자기 원보의 경고가 떠올랐다. 문호 쪽에서 제시한 세 가지 조건 중 하나였다. 괜히 들쑤셨다가 첫날에 쫓겨나는 건 사양이었다. 라준은 얌전히 방문에서 손을 뗐다.
“저녁이나 만들자.”
할 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밥하고, 청소하는 건 알겠다. 얼추 저녁 식사 시각이었다. 라준은 주방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향했다. 거실과 분리하기 위함인지 유리 폴딩 도어가 막고 있었다.
라준은 가볍게 폴딩 도어를 접고 안으로 들어갔다.
탁.
chapter 0. 프롤로그
놈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
180이 넘는 길쭉한 신장에 연예인처럼 잘난 얼굴, 무뚝뚝한 성격까지.
외양만 본다면 제법 인기 있을 법하지만, 소문이 좋지 않았다. 몸에 상처가 끊이질 않아 매일 싸움만 하고 다닌다든지, 자주 여자를 갈아 치워 유산한 애도 있다든지 하는 질 낮은 소문이 많았다. 그래서 놈은 고등학교 3년 내내 혼자였다.
나는 그 3년 동안 놈을 짝사랑했다. 그리고 열렬히 들이댔다가 까였다. 장렬하게.
쪽팔린 기억이다.
chapter 1. 그놈과의 재회
청년실업 백만 시대.
시급 센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다. 학자금 대출은 쌓이는데, 다음 학기에 복학해서 공부하려니 머리가 텅 비었다. 이놈의 군대는 멀쩡한 청년들 데려다가 바보로 만드는 데 도가 텄다. 아무리 잘난 놈도 그곳만 들어가면 머리 빈 마초로 재탄생한다.
이라준도 마찬가지였다.
“으으으, 죽겠네.”
라준의 입에서 한숨이 푹 터졌다.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농땡이 치면서 피우니 담배 맛이 꿀맛이다. 일이 힘들다 보니 더 달콤했다.
라준은 필터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막노동이 아니란 말에 속아 넘어가는 게 아니었다. 오늘 일은 막노동까진 아니라도 중노동에 가까웠다.
터미널 증축 공사 현장에서 소소한 심부름만 하면 된다더니 무거운 자재를 옮기는 것도 모자라 전등까지 갈아 끼워야 했다. 한두 개도 아니고 수십 개나 되는 걸 고치다 보니, 빠질 듯한 허리는 제외하더라도 목이 부러질 것 같았다. 절로 욕 나오는 상황이었다.
“개철이, 이 새끼.”
술만 먹으면 제정신이 아닌 승철이 놈을 믿은 대가가 꽤 혹독했다. 일당이 고액이라며 큰소리 떵떵 치던 놈은 진작 도망갔다. 씨발 새끼.
강원도 철원에서 죽도록 삽질하던 기억 때문에 라준은 제대 이후 막노동이라면 학을 뗐다. 그런 라준을 남겨 두고 승철은 저만 쏙 달아난 것이다. 잡히면 입을 찢어 버려야겠다고 다짐하며 라준은 이를 갈았다.
“라준이! 라준이 청년 어디 갔어?”
“예! 갑니다!”
라준은 반사적으로 답하고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젠장. 돈이 원수다, 돈이. 군대에서 받은 돈은 알차게 PX에 처박아서 생활비가 모자랐다. 몸이 힘들긴 해도 어쨌든 시급은 셌다. 일도 삽질보단 수월하지 않느냐며 스스로 세뇌했다.
남은 꽁초가 아쉽긴 했지만 라준은 미련 없이 담배를 바닥에 버렸다. 대답을 들었음에도 마뜩지 않은지 다시 라준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나가기 싫었다. 미적미적 주차장 구석에서 나온 라준은 우락부락한 작업반장을 보니 또다시 가슴이 울컥했다. 배승철 개새끼.
“아, 젊은 사람이 벌써 지친겨? 퍼뜩퍼뜩 따라온나!”
“예!”
작업반장의 성질에 라준은 사근사근 웃으며 비위를 맞췄다. 아무리 힘이 좋아도 몇십 년을 이 바닥에서 구른 베테랑과는 요령부터가 달랐다. 그런 말을 해 봐야 몸으로 때우는 것도 못하냐고 타박이나 듣겠지만, 라준으로선 속으로라도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라준은 공구를 들고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2층 전구는 모두 끝냈고, 1층 전구만 갈면 오늘 일은 끝이었다. 평일인 데다 심야라 그런지 인적이 드물었다. 24시 편의점을 제외한 가게는 모두 문을 닫았다. 내부를 순찰하는 경비원도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으으, 죽겠네.”
팔만 뻗어도 어깨와 목이 뻐근했다. 할 일이라곤 LED 전등을 가는 것뿐이지만, 문제는 터미널 천장이 꽤 높은 데다 전등 또한 수십 개가 넘는다. 단순 노동에 반복 노동이라 더 힘들었다.
사건은 라준이 다섯 번째 전구를 교체할 때 일어났다.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밤 10시만 되면 귀신같이 졸음이 쏟아졌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뻑뻑한 눈을 박박 문지르면서 작업했지만, 피로한 몸에 든 잠귀신은 달아날 줄 몰랐다. 기어코 고개를 꾸벅 숙였고, 찰나의 순간 상체가 넘어갔다. 라준은 아차 하며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으악!”
턱!
털썩!
몸이 한 번 들썩하더니 축 늘어졌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치곤 충격이 작았다. 라준은 무섭도록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씨발. 죽는 줄 알았네. 바닥이 푹신해서 살았……. 푹신?”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뻣뻣한 얼굴로 고개 내린 라준은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누군가가 바닥에 쓰러진 채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까?”
라준은 뒤늦게 상황 파악했다. 기겁한 얼굴로 상대를 부축하려 했지만, 뻗은 손은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단번에 내쳐졌다. 라준은 머쓱한 얼굴로 얼얼한 손을 쓱쓱 문질렀다.
손을 뿌리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례식에라도 다녀왔는지 검은 상복 차림이었다. 어깨에 찬 두 줄 완장이 직계 가족이 죽었다는 걸 나타냈다.
상복 곳곳에 덕지덕지 붙은 하얀 먼지에 라준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도움의 손길은 남자가 몸을 트는 것으로 거부당했다. 그 와중에도 머리를 잡는 게 고통이 큰 것 같았다.
“머리 크게 다친 거 아닙니까? 119 부를까요?”
“…….”
“저기요!”
병원비는 차치하고라도 머리를 다쳤으면 큰일이었다. 초조해하는 라준을 무시한 채 남자는 제 갈 길을 가려 했다. 라준은 기겁하며 그 앞을 막아섰다. 남자의 이마 쪽으로 얼굴을 불쑥 들이밀고 자세히 살피려 했다.
“…어?”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라준이 눈을 크게 떴다. 어버버, 소리 내며 손가락질하기까지 했다. 라준이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몸을 빼려 했다. 돌아가려는 남자의 팔을 라준은 무심코 잡아챘다. 옆으로 휘청한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팔을 털었다. 그러나 이번엔 쉽게 떨쳐 내지 못했다.
“차문호?”
“…….”
“나야, 나. 기억 안 나? 동창인 이라준.”
“……놔.”
기어코 남자의 입에서 서늘한 말이 튀어나왔다. 라준은 얼떨결에 팔을 놓았다.
“오랜만이다. 나, 기억……하지?”
라준은 애매하게 웃었다. 3년 전이지만 장렬하게 까인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졸업식 날 고백했고, 친구들이 밀가루 폭탄을 맞으며 해맑게 웃을 때 라준은 실연당해 꺽꺽 울었다. 눈물 콧물 흘리는 그를 보고 가장 친한 친구라는 새끼들은 낄낄대며 비웃었다.
“몰라.”
“…….”
단호한 부정에 말문이 막혔다. 목석처럼 굳은 라준을 무시한 채 남자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이번엔 라준도 막지 못했다. 그는 맥없이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자신을 잊을 수 있을까. 라준은 이해할 수 없었다. 틈만 나면 얼쩡거리고 마지막엔 고백까지 했었다. 동성의 고백은 쉽게 잊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라준은 ‘꺼져, 호모 새끼.’라고 폭언했던 남자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했다. 심정적으론 이해한다. 일반인과 게이가 잘될 가능성은 적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잘 알고 있다.
라준은 천천히 멀어지는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커다란 키도, 잘생긴 얼굴도, 타인에게 무심한 성격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내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가 좋아했던 차문호였다.
“새끼. 아직도 멋있네.”
라준은 머쓱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땅덩어리가 좁아서 혹시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이런 데서 볼 줄은 몰랐다. 차문호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라준은 1층으로 내려온 작업반장의 잔소리를 듣고서야 다시 작업을 재개했다.
어느새 라준의 입에선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첫사랑과의 재회에 정신이 팔려 차문호가 무시했던 건 생각나지도 않았다. 이런 우연이 흔한 건 아닐 테니, 오늘의 행운을 만끽하기로 했다. 혼자만의 재회로도 충분히 기분 좋았다.
*
“야, 이 개새끼야―!”
쩌렁쩌렁한 고함에 배승철이 기겁하며 납작 엎드렸다. 앉아 있던 금원보와 박고니도 탁자에서 분분히 흩어졌다. 그 위로 라준의 이단 옆차기가 날아들었다. 쾅! 소리와 함께 탁자가 튕겨 나갔다.
“크악!”
숨어 있던 승철의 등으로 매섭게 발이 꽂혔다. 퍽퍽, 소리와 함께 살벌한 구타가 이어졌다. 졸지에 매장 테이블이 박살 나고 폭력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 점원이 덜덜 떨며 휴대폰을 들었다. 원보가 잽싸게 점원의 팔목을 잡고 빙그르르 웃었다. 그의 손엔 테이블값 플러스 주문할 음식값이 들려 있었다.
“불고기 버거 세트 하나, 와퍼 세트 하나, 갈릭스테이크 버거 세트 하나, 통치킨 버거 세트 하나 주문이요.”
“저기. 저, 저분은…….”
“아, 늘 있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소란 피워서 죄송합니다. 밑에 깔린 놈이 죽으면 끝날 거예요.”
“네?”
“곧 끝날 거라고요.”
원보는 흘러내린 안경을 추켜세우며 어서 주문받지 않고 뭐하냐는 듯 채근했다. 점원은 떨떠름한 얼굴로 현금을 받았다. 조조로 본 영화표를 제시해 할인을 챙긴 원보는 현금 영수증까지 끊고서야 만족했다.
그 와중에도 승철을 향한 라준의 분풀이는 끝나지 않았다. 고니야 쪼그려 앉아 구경하면서 낄낄대기에 바빴다.
“불고기 버거 세트, 와퍼 세트, 갈릭스테이크 버거 세트, 통치킨 버거 세트 하나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빨대는 셀프입니다.”
“야, 고니! 와서 들어.”
“엉!”
트레이가 네 개라 손이 부족했다. 고니가 냉큼 두 개를 들었다. 둘은 멀쩡한 테이블로 옮겨서 자기 몫의 햄버거 포장지를 뜯었다. 라준과 승철을 기다리지도 않고 먹기 시작했다.
분풀이가 끝났는지 라준이 씩씩대며 두 사람의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마른 목을 콜라로 축였다.
“크!”
라준이 따끔한 목을 부여잡고 있으려니 포장지 벗겨진 햄버거가 불쑥 내밀어졌다. 고니였다. 라준은 손으로 받는 대신 입으로 먼저 베어 물었다. 우걱우걱 먹는 게 게걸스럽기까지 했다.
“크크크큭, 일이 그렇게 힘들었냐?”
“씨발, 장장 열흘이다. 터미널에 버스만 잘 다니면 되지. 뭘 그렇게 뜯어고친다고 난린지 모르겠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개지랄을 떨면서 부려 먹는데. 아, 삭신이야.”
“너도 승철이 새끼처럼 튀지 그랬냐.”
“저 새끼와 달리 라준이는 책임감 있거든. 돈은 두둑이 받았지?”
원보는 은근 라준을 치켜세워 주면서 금전에 관심을 보였다. 평소에도 돈에 환장하는 원보인지라 금세 라준의 눈이 가자미처럼 죽 찢어졌다. 그래도 말없이 엄지를 척 세웠다.
“꽤 짭짤했어.”
막노동에 가까운 일이었던 만큼 값은 두둑이 받았다. 원보가 더 캐묻기도 전에 고니가 쑥 끼어들었다.
“야, 나한테 투자할래? 두 배로 돌려줄게……. 악!”
고니의 유혹은 라준의 폭력으로 끝났다. 손날에 이마를 얻어맞은 고니는 얌전히 물러났다. 탐심의 대가였다.
라준은 혀를 차며 악우들을 쳐다봤다. 어떻게 친구를 사귀어도 이런 놈들과 엮였는지 모르겠다. 여자 밝히는 배승철과 돈 밝히는 금원보, 도박 밝히는 박고니까지. 라준은 통칭 삼레기―세 명의 쓰레기라 불린다―3인방과 엮인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탓했다. 끼리끼리 논다고 수도승―일명 고자―이라 불리는 제 별명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라준은 겉보기엔 훈내가 풀풀 풍기는 남자다. 잘생기진 않았지만, 훈남 정도는 되는 외모에 여자에 대한 매너가 좋았다. 웬만한 성질은 다 받아 주니 오해하는 여자들도 많았다.
그런데 실상은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들이대는 여자들에겐 철통같이 철벽 쳤다. 자연스럽게 수도승이란 별명이 붙었다. 좋게 말해 수도승이지, ‘고자 새끼’라고 까인 여자들이 흉보고 다녔다. 간만 보고 사귀지도 않는다고. 게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기도 뭐했다.
라준은 남은 햄버거를 다시 크게 베어 물었다. 불맛 나는 패티가 식욕을 자극했다. 한 입이 두 입 되고, 세 입 된 후에 포장지엔 마요네즈 소스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 와중에도 바닥에 앉은 승철을 발끝으로 툭툭 차는 건 잊지 않았다.
승철은 몰래 빼돌린 햄버거를 먹으며 카톡으로 여자들과 끊임없이 시시덕거렸다. 좀 전의 폭력은 금세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시퍼렇게 물든 눈두덩이가 불쌍하기보단 꼴사나웠다.
빈 포장지가 트레이 위에서 나뒹굴었다. 라준은 휴지로 소스 묻은 손을 쓱쓱 닦았다.
“생활비는 대충 해결됐고. 이제 또 뭘 하냐.”
“또 알바하려고? 이번 학기는 집에서 대 준다며.”
“그래도 학자금 대출은 많이 남았잖냐. 미리 돈 모아서 졸업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청산해야지. 어디 시급 센 아르바이트 없나?”
“공장 들어가.”
“막노동보다 단순 노동이 더 싫어.”
“그럼 나하고 한탕 뛰―!”
두 번째 고니의 유혹은 또다시 라준의 폭력으로 끝났다. 두 번이나 얻어맞은 탓에 고니의 이마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라준은 정학 징계를 받고도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친구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고니의 도박질은 선천적이라고 오해할 만큼 역사가 오래됐다. 라준과는 고등학생 때 친구가 됐는데, 그때도 이미 카드 도박으로 학우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원보에게 듣기론 중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고니가 정학을 맞은 건 얼마 안 됐다. 그 버릇 어디 안 가는지 고니는 대학에 들어가서도 만원도박단을 꾸려 인근 대학가를 휩쓸었다. 다섯 명으로 구성된 멤버로 화투를 들고 원정 도박을 다니다 교수에게 딱 걸려서 징계를 먹은 것이다. 판돈이 만 원 정도로 미묘하게 쪼잔한 액수라 법의 심판까진 받지 않았다.
웃긴 건 함께 도박단을 차린 놈들이 모두 엘리트였다는 거다. 한때의 유희인지 뭔지 몰라도, 고니 따라 도박 다니면서 놀러 다니던 그들은 징계 먹은 날 부모에게 귓불을 잡혀 질질 끌려갔다. 듣기로는 집에 감금당했다고 들었다.
그 소식을 라준은 군대에서 들었다. 원보와 승철의 편지에 적힌 사연을 읽고 라준은 후임들에게 보여 주며 친구의 불행을 한껏 비웃었다.
고니를 보며 다시 한 대 때려서 정신 차리게 할까, 고민하는 라준에게 원보가 달콤한 제안을 했다.
“라준아, 내가 소개해 줄까?”
“네가? 뭐 좋은 일 있냐?”
“남자가 하기엔 좀 껄끄럽긴 한데. 겨우 두 달이고 시급이 세.”
“해. 한다. 막노동은 아니지?”
“막노동에 가까운데 몸 망치는 일은 아니지.”
라준이 덥석 원보의 손을 잡았다. 이미 눈은 허락으로 넘실거렸다.
“뭔데?”
“가정부.”
삽시간에 손가락이 떨어졌다가 빨판처럼 달라붙었다. 라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일단 들어 볼 필요는 있었다. 원보는 배승철 같은 놈이 아니었다.
“아는 놈인데, 잘나가는 작가야. 웹 연재하던 게 대박 터져서 영화화까지 되고. 암튼, 딱 두 달만 집안일 해 줄 사람을 구하거든.”
“한 달에 얼마?”
“하루 6시간,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 한 달 120. 식사는 저녁만 차리면 되고.”
“콜.”
이게 웬 횡재냐. 라준은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나와 살았기에 집안일은 자신 있었다. 음식은 간단한 거밖에 할 줄 모르지만, 밥과 국, 반찬만 할 줄 알면 되는 거 아닌가. 일단 지르고 봤다.
“조건이 있어. 쥐 죽은 듯이 조용히 다닐 것.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 것.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외부에 흘리지 말 것. 이거 어겨서 계약 해지된 고용인이 꽤 많아.”
“무슨 재벌가라도 되냐. 좀 껄끄럽다?”
“그것만 지키면 돼. 쉽지?”
“어, 뭐.”
쉬운데 이상하기도 했다. 그래도 놓치기 쉽지 않은 자리다. 남자로서의 체면이야 누구에게 말하지 않으면 깎이지도 않을 테고, 솔직히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라서 이 일을 거절하면 막노동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아, 너도 알고 있는 놈이야. 차문호라고.”
“뭐!”
“뭐? 악!”
라준의 경악성과 동시에 쿵, 하고 테이블이 들썩였다. 밑에 앉아 있던 승철이 놀라서 일어나려다 테이블에 머리를 부딪친 모양이었다. 승철은 아린 머리를 붙잡고 끙끙거렸다. 이때만큼은 라준도 타박하지 않았다. 덜걱덜걱 움직이는 심장을 다독이느라 정신없었다.
격하게 동요한 둘과 달리 원보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한 입 정도 남은 햄버거로 포장지에 묻은 마요네즈 소스까지 삭삭 긁어 먹었다.
“아는 사이라 좀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해.”
“한다고?”
“어, 한다고. 반드시 내가 해.”
거절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놓치기 싫었다. 생각하기도 전에 답이 튀어나왔다. 원보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금세 관심을 끈 고니와 달리 승철은 입을 떡 벌리고 라준을 쳐다봤다. 따가운 시선에 라준은 눈을 슬그머니 피했다. 상황이 역전됐다.
원보와 고니는 라준이 차문호에게 고백한 줄 모른다. 그냥 실연당해서 운 줄만 알지, 그 대상이 차문호인 줄은 몰랐다. 라준이 게이인 걸 아는 건 배승철뿐이었다.
고등학생 때 친구가 된 둘과 달리 승철은 산부인과 동기였다. 원래 눈치가 비상한 놈이라 애초에 숨기는 게 불가능했다. 라준이 게이라는 걸 본인보다 먼저 알아챌 정도였다. 철은 없지만, 여러모로 무서운 놈이었다. 그런 그가 라준이 애타게 보는 대상이 누군지 모를 리가 없었다. 바로 지금처럼.
“그럼 연락해 놓는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시작하면 되고, 개강하고 일주일만 더 고생하면 끝날 거야. 어차피 야간 수업 없을 테니 시간 조율만 잘하면 돼.”
“그때 봐서.”
“뭐, 네가 알아서 해.”
목적을 이룬 원보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딴생각에 빠진 라준은 모르겠지만, 고개를 돌린 원보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라준는 눈치챘어야 했다. 돈 귀신인 원보가 공짜로 일을 소개해 줄 리 없었다. 원보는 문호 쪽에서 소개료를 알차게 챙겼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 몇 가지 빼먹은 사실이 있다는 것도 물론 함구했다.
초인종을 누르려던 손이 다시 내려갔다. 라준은 긴장으로 굳은 손을 꾹 쥐었다가 풀었다.
“흠흠, 어흠.”
약속 시각까진 아직 삼십 분이나 남았다. 첫인상을 좋게 보이고 싶어 일찍 나온 게 실수였다. 한 시간이나 일찍 나와서 삼십 분째 벨과 씨름하고 있었다. 이렇게 망설이다간 오히려 지각할 수도 있었다. 소개비로 금원보한테 5만 원―기어코 받아 갔다―이나 뜯겼는데 여기서 나가떨어질 순 없었다.
딩동―
드디어 라준은 벨을 꾹 눌렀다. 대문에 바짝 붙어 안의 동태를 살폈다. 고급 주택이라 그런지 무성한 정원 때문에 현관문은 안 보였다. 높은 나무 때문에 외부에서 보이는 거라곤 2층 옥상뿐이었다.
지잉―
미묘한 기계음이 들렸다. 움찔한 라준이 주위를 둘러봤다. 굳이 찾을 것도 없이 대문에 붙은 CCTV처럼 생긴 하얀색의 기계가 라준 쪽으로 고개를 고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덜컹, 하고 대문이 열렸다.
“실례합니다.”
아무도 없었지만 괜히 인사말이 나왔다. 라준은 어색한 얼굴로 정원을 가로질렀다. 징검다리처럼 동그랗고 평평한 돌다리를 띄엄띄엄 밟았다. 정원은 누군가가 관리하는지 모난 곳 없이 깔끔했다.
현관문에 도착한 라준이 소리 내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안녕하…….”
“그럼, 선생님. 잘 부탁합니다.”
낯선 목소리였다. 인사하려던 라준은 의아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했다. 차문호가 아니었다. 문을 연 채 비스듬하게 서 있던 남자가 뒤늦게 라준의 존재를 눈치챘다.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인사 후엔 침묵이 흘렀다. 자기소개라도 해야 하나 난감해하는 라준과 달리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남자는 별말 없이 그를 지나쳤다. 멀뚱히 남자를 보낸 라준이 퍼뜩 정신 차렸다. 좀 전부터 목석처럼 버티고 선 차문호를 그제야 발견했다.
“…….”
“…….”
서로 간에 침묵만 흘렀다. 문호는 새까만 눈으로 라준을 지그시 응시했다. 얼굴에 닿는 시선이 따가울 정도였다.
아, 뭐라고 하지. 라준은 난감했다. 오랜만이다, 하고 친근하게 굴기엔 상대의 태도가 무척 냉랭했다. 무엇보다 상대는 라준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존대하기엔 동창이어서 껄끄러웠다. 한참을 고심하던 라준은 단순하게 결론 내렸다.
상대방은 고용주다.
고민을 끝내니 자연스럽게 인사가 나왔다. 라준은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이라준입니다.”
깔끔하게 무시당했지만.
문호는 문을 열어 둔 채 몸을 돌렸다. 먼저 들어가는 그를 뒤따르며 라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내부는 한낮임에도 무척 어두웠다. 열려 있는 현관문을 닫으면 암막에라도 갇힌 듯 깜깜할 게 뻔했다. 어색해하는 라준과 달리 문호는 어둠에 익숙한 듯 자유롭게 움직였다.
“저기…….”
“할 일 찾아서 하세요.”
용기 있게 건넨 말은 칼날처럼 잘렸다. 별다른 지시도 없이 문호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닫았다. 지시라도 있을까 싶어 라준이 한참 기다렸지만, 문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라준은 기막혔다. 가정부라고 고용해 놓고 할 일도 안 가르쳐 주는 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하마터면 울컥해서 방문을 걷어찰 뻔했다.
“……그러니까 할 일이 뭐냐고.”
라준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내부를 훑었다. 암막 커튼으로 거실 창을 가렸지만 강렬한 태양을 다 막기엔 부족했다. 희미한 빛에 의지해 내부 파악에 들어갔다.
1층에 있는 방은 총 세 개였다. 현관문과 가장 가까운 문을 열었더니 욕실이 나왔다. 나지막이 감탄사가 터졌다. 제 자취방만큼이나 널찍한 화장실이었다. 헤엄쳐도 될 만큼 넓은 욕조도 그렇고, 호텔에서나 볼 법한 세면대가 호사스럽기까지 했다. 다음 방문을 열려던 라준은 멈칫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히 다닐 것.
갑자기 원보의 경고가 떠올랐다. 문호 쪽에서 제시한 세 가지 조건 중 하나였다. 괜히 들쑤셨다가 첫날에 쫓겨나는 건 사양이었다. 라준은 얌전히 방문에서 손을 뗐다.
“저녁이나 만들자.”
할 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밥하고, 청소하는 건 알겠다. 얼추 저녁 식사 시각이었다. 라준은 주방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향했다. 거실과 분리하기 위함인지 유리 폴딩 도어가 막고 있었다.
라준은 가볍게 폴딩 도어를 접고 안으로 들어갔다.
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