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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조금만 걸으니 고풍스런 돌담이 나왔다. 한자로 적혀서 간판은 못 읽고 있는데 옆에 한글,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이곳의 이름과 역사가 대략적으로 쓰여 있었다. ‘수연산방’, 근대 소설가의 집이었던 장소구나. 상체를 많이 숙여야 하는 나무 대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봄에 왔다면 더 좋았을 거예요. 사철나무만으로 싱그러운데 북카페 앞 하얀 라일락이 만발하거든요.”
부인의 말을 듣고 안뜰 깊숙이까지 가지를 뻗은 라일락 나무로 시선을 옮겼다. 북카페의 붉은 벽돌담을 덮은 아이비가 싱그럽다. 흰 기운이 도는 노랑으로 단풍 든 라일락 잎을 건드리면서 남자가 말을 보탰다.
“봄이면 어딘들 안 좋겠어? 길상사에서 내려다보면 이 일대가 벚꽃 천지야. 희끗희끗해.”
“희끗희끗하다고 하면 이 사람이 알아듣겠어요?”
“그러니까 서리 내린 노인들 머리 같다고.”
“잘도 알아먹겠네.”
오랜 시간을 함께한 부부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는 건 한국인의 성격인가. ‘미국인이 혼자 거길 왜 가?’ 하며 툴툴거리던 택시 기사와 어딘가 닮아 있었다.
돈가스 가게가 중년들의 장소였다면 이 옛 소설가의 집은 젊은 사람들도 많았다. 평평한 돌 위에 젊은이들의 신발이 빼꼭히, 그러면서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감각적인 남자 구두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던 니나의 현관이 머리를 스쳤고 후회되는 기억 속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정신을 붙잡았다.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한쪽 창문을 가리고 있는 봄빛 조각보에 시선을 줬다가 방 전체를 둘러보고 있는 내게 남자는 과거엔 이렇게 좁은 곳에서 역사가 이루어졌다고 말하며 좌식 테이블 앞에 앉았다.
“우리가 아는 사람과 너무 닮아서 계속 쳐다봤어. 무례했다면 미안해.”
“아닙니다.”
“그래, 어학원에 나가고 있나? 아니면 영어 유치원? 요즘은 시골 학교에도 미국인 선생 한두 명은 두던데…….”
“여행 중입니다.”
“이렇게 훤칠하니 잘생겼는데 어학원 선생 하면 아깝잖아요.”
“잘생겨도 어학원 선생 할 수 있지. 얼굴이 밥 먹여 줘? 하여튼 여자들은 젊으나 늙으나…….”
“얼굴 따지는 건 남자가 더하지! 다 늙어 빠진 주제에 젊으면 환장을 해요.”
“당신은 30년 동안 국어 선생이었던 사람이 말이 그게 뭐야? 말에 인품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법이거늘.”
부부가 말다툼하는 중에 내게 필요한 말을 건졌다. 여긴 니나의 엄마이자 아빠의 마지막 사랑인 혜원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곳이니까 이 근방에서 근무했다면 혜원을 알지도 모른다.
“이 근처에서 근무하시나요?”
“이 동네 학교에서 11년을 근무했어요. 한국어 실력이 대단한데요?”
개인적인 질문은 묻어 두고 혜원을 떠올리면서 자동적으로 아빠를 생각했다. 지금쯤이면 뉴스를 안 보는 아빠에게도 니나가 한국인 피아니스트로부터 청혼받은 소식이 전해졌을 거다. 니나에 한해선 한없이 물러지는 사람이라 어쩌면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번도 다정하게 굴지 못했던 아빠에게 전화할 핑계를 만들어 볼까 마음먹고 있는데 주위가 시끌시끌했다. 창문 밖에서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몇몇이 소리를 질렀다.
아빠가 혜원과 재혼한 2000년대 초 한국에서 제프 하든 열풍이 불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아빠의 요리책 역시 동북아시아에서 꾸준히 인기 있어서 최근 세 번째 개정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아들인 나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혜원이 떠난 지 10년도 더 흘렀지만 재혼하지 않고 오히려 그 여자가 남겨 놓은 피붙이를 친자식보다 귀하게 키우고 있는 아빠의 모습은 정과 의리를 중요시하는 한국인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고 한국인 친구에게 들었다.
혜원의 끔찍한 사고 후 차를 타지 못했던 니나의 손을 잡고 매일 한 시간씩 걸어서 학교에 데려다주는 아빠의 모습이라든가 둘이 길에서 군것질하는 모습을 온갖 매체에서 찍어 갔다.
결혼 당시 인터뷰 기회를 잡기 위해 미국 현지와 영국은 물론이고 한국의 기자들과 파파라치까지 집 주변에 진을 치고 있어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데일 부인을 따라 니나와 나는 뉴욕 집에 가 있어야 했다.
베데스다 분수, 램블, 보트하우스, 스트로베리 필즈……. 지독히 외로웠던 장소에 니나가 더해짐으로써 반짝반짝 빛났던 꿈같은 열흘 동안의 센트럴 파크에서의 기억.
바로 곁에서 부부가 한참을 떠들었는데 아무것도 못 들었다. 시끄러운 와중에도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 있는 내게 남자는 자신이 쓰고 있던 헌팅캡을 벗어 건넸다. 하얗게 센 백발은 그를 갑자기 스무 살은 더 많아 보이게 했다.
“이건 왜…….”
“써. 작년에 샀지만 오늘 개시한 건데 선물로 줄게. 좀 그래 보여도 메이드 인 아일랜드야. 울 100%. 영국 옆에 있는 조그만 나라 알지?”
“할머니가 아일랜드 사람입니다.”
“아, 어쩌면 그래서 더 끌리는 뭔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군. 일단 써. 지금보단 덜 주목받을 거야. ……한국인을 ‘아시아의 아일랜드인’이라고 부른다는 얘기 들어 봤나?”
“수난의 역사가 비슷해서일까요?”
“그게 다가 아니야. 버스 한번 타 봐. 지금은 내 걸음걸이가 많이 좋아져서 당장 증명해 보일 수는 없지만 작년에 아일랜드로 여행을 갔었어. 피부는 이렇게 팽팽한데 머리는 희고 어눌한 걸음걸이로 버스에 오르니 젊은이들이 셋이나 자리에서 일어났어.”
“Cerebral infarction(뇌경색)……이었나요?”
“잘 봤군. 오른쪽으로 마비가 왔어. 수술은 잘됐는데 오른손은 여전히 둔해. 요점은 다혈질에 흥 많고 술 좋아하는 민족이란 걸 떠나서 그쪽도 어른을 공경하더라고. 아까부터 날 관찰하고 있었지?”
“…….”
“이 양반은 신경외과 닥터였는데 지금은 살림해요. 하우스와이프가 아니라 하우스허즈번드.”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함께 찻집으로 걸어올 때의 어눌한 걸음, 찻잔을 쥔 손의 움직임을 보고 습관적으로 진단 내리고 있었다. 집도가 불가능해서 은퇴했겠지. 처음 만난 내게 완전히 마음을 열어 준 이들에게 신경외과에서 펠로우를 하고 있다고 대답할 수도 있었지만 제동이 걸렸다.
최대한 나를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십수 년이 한국 땅을 밟았다고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남자가 떨리는 손으로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헌팅캡을 들어서 내게 씌워 줬다.
“한국에선 지하철 타면 너 나 할 것 없이 죄다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어. 몸이 편해질수록 정신은 삭막해져. 아무튼 누가 봐도 잘생긴 자네 덕에 오늘 우리 부부 매스컴 타겠네. 다른 건 몰라도 SNS 파급력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야.”
“어딜 가도 마찬가집니다.”
“아름다운 허무주의자로군. 니힐리스트께선 한국에 왜 왔나?”
“한국인의 정체성이 궁금했습니다.”
“여기서 조금만 걸으면 되는데 우리 집에 갈래? 작년 봄에 담근 아주 귀한 술이 있는데 그것도 오늘 개시하지.”
한국인의 아이덴티티가 궁금했던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충동적으로 왔다고 솔직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일단 이곳에 오면 뭔가 답을 얻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뒤늦게 나를 알아보기 시작한 사람들까지 합세해서 조용한 대화가 불가능할 만큼 인파가 몰렸다. 익숙하고 불편한 시선을 받으며 신발을 신고 있을 때 같이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젊은 여자 둘이 말을 걸어왔다. 누구처럼 인기 관리를 해야 할 그 무엇도 아니기에 확실하게 싫다고 말했다.
친모 사벨라는 자신의 쇼와 매스컴의 주목을 받을 장소엔 나를 데리고 등장해 카메라 앞에서 아이를 낳고도 여전히 아름다운 엄마를 연기했다. 상류층의 삶을 동경하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파파라치를 역이용하는 여자였다.
반면, 자신을 좇는 시선은 어느새 생활의 일부가 되어 파파라치가 원인이었던 혜원의 사고가 있기 훨씬 전부터 소년은 남의 사진을 몰래 찍어 돈벌이로 이용하는 자를 경멸했다.
다행히 보스턴은 보수적인 걸 떠나서 나르시시즘으로 가득 찬 너드들의 도시라 뉴욕이나 필라델피아에서만큼 관심을 받지 않았다. 가끔 노아 하든의 현재를 찍기 위해 파파라치가 따라붙긴 했지만 도서관과 아파트만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 한창때의 남자는 그들이 원하는 뉴스거리가 되지 못했다.
수연산방을 나와서 내게 뭔가를 만들어 주기 위해 부인은 우리와는 반대 방향으로 장을 보러 가고 남자의 페이스에 맞춰 천천히 조용한 동네를 걸었다.
“워낙 조용한 동네긴 하지만 이 위쪽으로는 떠돌이 개조차 보기 힘들어. 우린 지금 사람 만나기 귀한 시대를 살고 있어.”
“만남이 귀한 시대…….”
“운동했나?”
그와 적당히 간격을 두고 걷고 있었는데 남자가 불쑥 내 왼팔의 삼두근을 누르며 물었다. 반사적으로 밀쳐 낼 뻔했다. 서양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열에 아홉은 개체 공간을 침범당하는 걸 싫어한다. 살면서 내 공간 안에 들인 사람은 니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에 잠깐 했습니다.”
“비밀이 많군. 근육은 몇 달만 쉬어도 죽어. 아니, 쓰러지고 일주일도 안 돼서 근육이 다 빠졌어. 등산이며 테니스며 운동은 닥치는 대로 했던 몸인데도 말이야.”
월반을 한 탓에 적게는 세 살, 많게는 다섯 살 위의 상급생들에게 매일 얻어터지면서도 풋볼을 그만두지 않았다. 적성에 맞지도 않는 살인적인 공부를 해낸 건 그렇게 맷집을 키워 놓은 체력 덕분이었다.
남자는 화제를 테니스로 바꿨고 우린 오래된 듯하지만 깨끗한 5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 앞에 다다랐다.
“30년째 여기 살고 있어. 우리 부부가 살기엔 딱이지만 자네한텐 불편할지도 모르겠네.”
남자를 따라 건물의 1층으로 들어갔다. 그는 좁은 공간을 적극 활용해서 식물을 잘 가꾼 베란다를 구경시켜 주었다. 신경외과 의사와 교사 커플로 살았다면 충분히 재산을 모을 수 있었을 텐데 집 안의 가구며 그들의 입성이며 모든 것이 검소했다.
그가 좁은 부엌에서 길쭉한 술병을 들고 나왔다. 전갈이나 아가베에 사는 나방의 애벌레가 들어간 증류주, 메스깔을 연상시키는 술병 안에 식물의 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작년에 산에 갔다가 심 봤어.”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산삼보다 더 좋은 거라며 자기를 따라 해 보라고 했다.
“산.도.라.지.”
그리고 핸드폰에서 노래를 한 곡 찾아 재생시켰다.
“이 노래에 자네가 궁금해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있어. 이걸 이해하면 70%는 왔다고 보면 돼. 옛날식 다방에서 팔았던 도라지 위스키는 이제 구할 수 없지만 특제 산도라지주가 있지.”
“……재발률 높다는 거 아시죠?”
“속정이 있군. 아가씨들 애간장 좀 태우겠는데? 사연 있는 여자는 히스테리컬하지만 사연 있는 남자는 매력적이지. 여자를 홀리거든.”
“맞을 소리만 골라서 한다니깐. 요즘 애들은 똑똑해서 돈이라도 많으면 모를까 과거 있는 남잔 줘도 안 가져.”
문소리도 없이 들어온 부인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말다툼의 방관자가 되어 거실 깊숙이까지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다육식물 화분을 빼곡히 올려놓은 선반을 구경했다. 살벌한 대화를 듣고 있는데도 나른했다.
오전에 호텔을 나선 게 벌써 오후 4시를 지나고 있었다. 서울은 계획에도 없었고 돈가스집에 가 본 걸로 충분했기에 슬슬 호텔로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은 현관에서 첫 번째. 아까 돈가스 많이 남기던데 저녁 먹고 가.”
내가 돌아가려 한다는 걸 눈치챈 남자가 선수 쳤다. 부인은 식탁 의자를 빼서 나를 앉혔다. 요리하는 걸 구경하면 배가 고파질 거라고 한다. 여성이 요리를 하는데 멍청하게 앉아만 있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 싱크대 앞에 나란히 섰다가 조명을 가려 어둡다며 다시 의자로 내몰렸다.
“저 사람은 나랑 키가 비슷해서 옆에 서 있어도 그늘질 일은 절대로 없는데 커다란 아들이 있으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네요.”
불편한 마음으로 식탁 앞에 앉은 내게 남자는 부부의 결혼식 사진으로 시작되는 오래된 앨범을 보여 줬다. 여자중학교 정문 앞에서 찍은 지금보다 훨씬 젊은 그들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다. 혜원이 다녔던 걸로 아는 학교 이름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곱창전골은 기가 막히게 끓여요. 한국인의 정체성이 궁금하다고 했죠? 한국인의 소울 푸드라고 하면 흥미가 생기려나? 요즘 많이 각박해졌다고는 해도 우리는 집에 온 손님을 그냥 보내지 않거든요.”
“손님도 손님 나름이지. 낯익은 자네 외모가 한몫했을 거야. 한국은 예전 같지 않아.”
남편의 말에 부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침착해진 분위기에서 조심스럽게 혜원의 이야기를 꺼내 봤다.
“혹시 30년 전에 가르친 학생도 기억하시나요?”
“처음 가르쳤던 아이들은 전부 기억해요.”
“서울에 소문여중이 여러 개 있나요?”
“하나뿐이에요.”
“정혜원…… 아십니까?”
“…….”

* * *

여자의 육감이란 실로 놀라웠다. 혜원은 처음부터 니나를 향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빠를 거부하지 않았던 그녀를 오래도록 미워했다.
수년이 흘러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응급실에서 갑작스런 죽음을 일상처럼 마주하며 깨달았다. 비록 불순한 마음을 품고 있는 오빠라 해도 니나에게 가족을 만들어 주고 떠난 건 엄마로서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걸.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식에서 그렇게 많이 우는 신부는 처음 봤다. 아빠는 바보처럼 웃고 있었고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는 제임스의 눈물도 봤다.
니나와 혜원이 우리 집으로 들어오고 한동안은 패션 위크의 쇼장 주변만큼 수많은 기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덕분에 학교에 가려면 여명이 트지도 않은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야 했다.
다들 잠들어 있는 시각에 혜원은 매일 배웅을 나왔다. 끔찍한 사고가 있었던 그날도 그녀는 나를 따라 나와 반듯하게 다린 손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신사는 늘 손수건을 가지고 다녀야 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숙녀를 위해서. 노아, 미안해…….」

그게 그녀의 마지막 말이 될 줄은 몰랐다. 대꾸 없이 차에 올라탔다. 기사가 혜원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계속 이쪽을 향해 서 있다며 다정하게 손이라도 흔들어 주라고 말했지만 그냥 출발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