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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생전의 요한은 머리를 자르는 것 빼고는 한 번도 손을 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머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군대 갔을 때 깔끔하게 전부 밀어 버린 것을 제외하면 평생 덥수룩한 앞머리만 간신히 처리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길을 다니면서 요즘 유행하는 탈색이니 화려한 염색이니 하고 다니는 걸 봐도 저 귀찮은 짓을 굳이 왜 하냐 하면서 넘어가고는 했다.
어지간한 것에는 놀라지 않는 요한이지만 이 머리를 하라고 하면 약간 당황스러울 것 같았다. 물론 지금 제 얼굴이라면 충분히 어울리겠지만…….
척 보기에도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머리의 사진을 뚫어져라 보고 있자니 매니저가 웃으며 요한의 어깨를 쳤다.
“오, 어떻게 알았지? 그게 네가 할 머리인데. 촉 좋다?”
매니저의 말에 태평하던 요한의 눈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아이돌이 되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난해한 길일지도 모른다는 걸 처음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 머리를요? 제가요? 누가요, 제가?”
요한이 어이없다는 듯이 반복해서 물었지만 매니저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네 머리야. 다른 애들에 비해 컬러가 좀 세지?”
“좀 센 게 아니라 머리통에서 빔 나올 것 같은데요.”
한숨을 내쉬며 스크랩북을 뒤적이던 요한은 자신의 머리색이 가장 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우는 검은 머리 그대로였고, 재민은 갈색, 쌍둥이는 애시그레이였다. 원래 튀기 싫어하는 요한의 성정대로라면 애시그레이도 기겁을 했겠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쌍둥이의 애시그레이가 미칠 듯이 부러웠다.
“이번 의상이 블랙이랑 화이트가 기본이라 머리를 좀 화려하게 잡았나 봐.”
“……정해진 거니 어쩔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튀지 않는 쪽으로 부탁드립니다.”
“이미 색깔부터 엄청 튀는데 무슨 소리야∼”
윤이 깔깔거리며 뒤로 넘어갈 듯 웃었다. 팔다리를 저어 가며 비글같이 웃어 대던 윤은 요한에게 뒤통수 한 대를 맞고 나서야 얌전해졌다. 윤이 훌쩍훌쩍 우는 척을 하면서 매니저에게 설명을 듣고 있던 현에게 달려갔다.
“이거 봐, 형이 때렸어!”
“좀 과하게 나댄다 싶었음.”
“야, 넌 누구 편이야?”
“네 편은 아닐걸.”
활짝 웃으며 윤을 끊어 내는 현의 말을 기점으로 이번에는 윤과 현이 싸우기 시작했다. 쌍둥이가 다투는 건 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매니저는 저리 가라는 듯이 손으로 훠이훠이 쌍둥이들을 밀어낸 후 재민의 옆에 앉아서 설명을 계속했다.
“아, 맞다. 까먹을 뻔했네.”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요한이 무언가 생각난 듯 보고 있던 창을 껐다. 그리고 메신저로 들어가 친구목록을 쭉 훑었다. 스크롤을 내리는 게 무색할 정도로 짧게 끝나는 친구목록을 보며 요한은 가볍게 혀를 찼다. 자신이 뭐라 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역시나 이 핸드폰도 전 주인의 지랄 맞은 성미답게 좁디좁은 인간관계를 자랑하고 있었다.
얼마 안 되는 목록에서 ‘최신우’를 찾아낸 요한은 대화방을 열고 아까 찍은 사진을 찾았다. 셀카라는 이름의 협정서였다. 원래 이런 건 상호 보관하는 게 상식이지.
“오케이, 전송.”
사진이 성공적으로 전송되고, 건너편에서 물을 마시고 있던 신우가 알림 소리에 핸드폰을 꺼냈다. 요한의 이름에 질색하며 대화방에 떠 있는 사진을 보는 순간 신우는 마시던 물을 뿜을 뻔했다.
“야, 미쳤어? 갑자기 이딴 걸 보내고 난리야!”
콜록거리며 핸드폰을 흔들어 대는 그를 보며 요한은 고개를 까딱였다. 왜 그런 걸로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실제로 사진을 보내면서도 요한은 별생각이 없었다. 단지 무심코 보게 된 갤러리에 전 주인의 셀카들이 많으니 전부 지워 버려야지, 같은 시답잖은 생각을 했을 뿐이다.
“원래 이런 건 서로 보관해 둬야 하는 거야.”
“내가 지우라고 했지.”
“싫은데?”
“아씨, 아오, 또라이 저거……. 와 진짜…….”
신우는 짜증 섞인 얼굴로 창을 꺼 버렸다. 그런 신우의 뒤로 쌍둥이가 언제 다퉜느냐는 듯 그에게 다가와 좋은 건 같이 보자며 기웃거렸다. 꺼지라는 신우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웃거리던 쌍둥이는 뒤통수를 한 대씩 맞고 나서야 울상을 지으며 물러섰다.
“나 아까 맞은 데 또 맞았어!”
윤의 억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뮤직비디오 촬영은 총 세 군데에서 이루어졌다. 수상한 분위기의 지하클럽 같은 곳과 하얀 배경의 스튜디오,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였다. 주가 되는 의상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제복 형태의 코트였고, 다른 하나는 가죽으로 된 장식이나 소품으로 포인트를 준 정장이었다.
정장은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타이가 한 세트로 요한의 옷은 검은 넥타이, 가죽으로 된 검은 멜빵이었다. 쌍둥이는 검은 나비넥타이에 일명 개목걸이라고 불리는 가죽 초커를 하고 있었고, 재민은 길게 올라오는 가죽 부츠, 신우는 래퍼답게 뾰족한 징이 박힌 가죽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이번 콘셉트가 섹시하고 어른스러운지라 항상 귀엽게 꾸미던 쌍둥이도 제법 어른스러운 느낌을 풍겼다. 사납게 생긴 요한이나, 항상 모델 포스를 풍기고 다니던 신우와 재민은 말할 것도 없었다.
스타일링이 전부 끝난 플루토 멤버들을 보면서 매니저와 프로듀서는 서로 얼싸안았다. 두 사람은 하늘이 내린 콘셉트구나, 대박이다를 외치며 이리저리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윽고 촬영이 시작되고 멤버들은 미리 숙지한 콘셉트와 동선에 따라 움직였다. 카메라를 보고 혼자 연기하려니 손발이 오글거렸지만, 요한은 돈을 생각하며 꾹 참았다.
‘이것도 일이다. 쪽팔리지만 일이니까 해야 한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섹시하다.’
속으로 주문을 거는 듯 반복해서 외치자 뒤에 가서는 감독이 시키지 않아도 술술 메소드 연기가 나왔다. 돈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요한은 안락한 은퇴 생활을 위해 온몸을 바쳤다.
촬영 내내 멤버들은 걷고, 뛰고, 눕고, 춤추고 정신없이 움직였다. 아이돌들 뮤직비디오가 대체로 그렇듯 스토리보다는 앵글이나 멋진 얼굴을 담는 데에 주력한 촬영이었다. 미성년자인 쌍둥이를 배려한답시고 여자 모델 없이 멤버들끼리만 촬영이 이루어졌지만, 실질적으로 남자들끼리 붙어서인지 더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요한이 전지적 게이 시점에서 봐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뭐 나쁘지 않았다. 스스로 유혹하는 듯한 동작을 한다거나 섹시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 건 심하게 오글거렸지만, 다른 멤버들의 촬영을 지켜보는 건 나쁘지 않았다.
“여기서는 턱을 내리는 게 좋겠다. 아래에서 위로 앵글을 잡아서.”
“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배경이 어두워서 그런지 머리색이 확 사네?”
“하하하…… 하하하하…….”
감독의 말에 요한은 영혼 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화면 속에 비치는 자신의 화려한 머리는 이제 어느 정도 적응한 상태여서 더 이상 거울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거나 하지 않았다. 밖에 나가면 아무리 꽁꽁 싸매도 사람들이 쳐다본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이런 머리인들 어떻고, 저런 머리인들 어떠리. 이쯤 되니 전부 해탈해서 삭발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잠깐 요한이 앉아서 쉬는 사이 신우와 재민의 촬영이 이어졌다. 신우가 앞으로 나와 랩을 하고, 뒤에서 재민이 코러스를 넣는 부분이었다. 둘 다 카메라 앞에 선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상당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장난치듯 경쟁하듯 서로 붙었다 멀어졌다 하면서 둘의 촬영은 끝이 났다. 재민은 메이크업을 수정하기 위해 안쪽으로 사라졌고, 신우는 다음 촬영을 위해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단독 촬영이 이어졌다. 카메라가 가까이에서 신우를 잡았고, 그는 나른한 눈으로 카메라를 내려다보며 몸을 움직였다.
“최신우 대박이다 진짜…….”
“저 키에 저 분위기는 완전 사기 아니야?”
요한은 주스를 홀짝거리며 스태프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명이 닿지 않는 곳에서 신우의 촬영을 지켜보던 여자 스태프들은 연신 꺅꺅거리며 소리를 질러 댔다. 인터넷에서 패왕색이니 뭐니 하는 게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래도 잘빠지긴 했네. 역시 아이돌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빈 병을 쓰레기 봉지에 투척하며 요한이 작게 감탄했다. 손으로 턱을 괸 채 신우의 촬영을 바라보고 있던 요한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메이크업을 고친 재민이 코디와 이야기하며 요한의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재민은 눈을 접어 예쁘게 웃더니 요한의 옆에 앉았다. ‘힘들지?’ 하면서 요한의 앞머리를 쓸어 넘기는 재민의 태도가 퍽 다정하다. 요한이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자 재민이 역시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요한은 이 사람은 덩치는 큰데 묘하게 아이 같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가끔 쌍둥이와 노는 걸 보면 나이 차가 무색할 정도로 해맑아 보이기도 했고.
“촬영하는 거 잘 봤어요. 멋있더라고요.”
“그래? 다행이네. 신우가 중간에 째려보는데 좀 무서웠어.”
“걔 생긴 게 원래 좀 그렇잖아요. 눈알로 사람 죽일 수 있는 놈이라서.”
중간에 신우와 재민이 서로 눈을 맞춘 상태로 탐색하듯 빙글빙글 도는 안무가 있는데 그때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물어뜯기는 줄 알았다는 재민의 말에 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염색 엄청 잘됐다. 원래 이런 색인 것 같아.”
“뭐, 그냥 신기하죠. 저도 가끔 거울 보고 놀라요. 저게 누군가 싶어서.”
“잘 어울리는데 왜. 영양 많이 해 줬나 보다 부들부들하네.”
재민은 밑으로 갈수록 분홍빛이 선명해지는 요한의 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머리끝을 잡고 이리저리 잡아당겼다. 겨우 머리 하나 만지는 걸로 생색내는 것도 이상해 요한은 가만히 재민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요한의 얼굴을 힐끔 본 재민은 그가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자 마음껏 손을 움직였다. 이리저리 쓰다듬고 잡아당기며 혼자 놀고 있는데 잠깐 무언가를 가지러 갔던 코디가 돌아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재민아, 요한이 머리 흐트러뜨리면 어떡해.”
“아, 정말이네. 누나 미안, 미안.”
신기한 듯 요한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던 재민이 항복하듯이 손을 들어 올렸다. 요한은 대체 어느 정도길래 그러나 싶어서 근처에 있던 거울을 잡아 들었다. 왼쪽,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가며 살펴보니 잘 세팅되어 있던 머리가 재민의 손에 닿아 여기저기 뻗쳐 있었다.
“하여튼 잠시도 한눈을 못 팔게 한다니까. 요한아, 머리 다시 만져야겠다.”
“네, 네. 제가 안쪽으로 갈까요?”
“아니, 그냥 여기 있어. 간단하게 손만 보면 될 것 같네.”
긴 머리를 높게 올려 묶은 플루토의 코디는 소속사와 전속 계약이 되어 있는 솜씨 좋은 여자였다. 그녀는 이제 입사 10년 차의 고참으로 걸걸한 입담과 호쾌한 성격으로 모두의 누님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플루토의 매니저가 꼼짝 못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내가 너 잘생겨서 봐준다. 수정아! 여기 빗 좀 가져다줄래!”
“네, 금방 가요!”
안쪽에서 작은 체구의 조수가 쪼르르 뛰어나왔다. 빗이라는 말에 상황 파악을 빠르게 끝냈는지 손에는 빗이며 스프레이며 잔뜩 들어 있는 통이 들려 있었다. 새로 들어온 조수인데 눈치가 빨라서 좋아, 하며 코디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어머, 내가 못 살아. 손 안 뗄래? 쌍둥이들이랑 놀더니 못된 것만 배웠어.”
그 찰나에 다시금 요한의 머리에 손을 대는 재민을 본 코디가 잔소리를 해 댔다. 어차피 다시 고칠 거 조금 더 만져도 되지 않느냐면서 재민은 요한의 머리를 손가락에 감으며 넉살좋게 웃었다.
다른 사람이 봐도 신기한 머리이기는 하나 보네. 이미 해탈한 요한은 쓰게 웃으며 재민에게 머리통을 맡겼다.
“요한아, 너도 신선놀음하듯이 그대로 맡겨 두지 말고 뭐라고 좀 해.”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럼 안 할래?”
“누가 머리 만져 주는 건 처음인데 생각보다 기분 좋아서요.”
아무 생각 없이 느낀 대로 내뱉은 요한의 말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코디와 조수가 동시에 묘한 표정을 지으며 요한을 바라봤다.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알 수 없는 말 그대로 묘한 표정이었다. 생각보다 긴 정적이 흐른 후, 먼저 정신을 차린 코디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쟤 계단에서 자빠지고 나서 철만 든 게 아니라 나사도 왕창 빠졌나 보네. 요한이가 저런 소리를 하는 애였니?”
재민은 고개를 돌린 채 작게 큭큭거리고 있었다. 손으로 입을 가리며 간신히 웃음을 참는 모습이었다. 한참을 웃던 재민이 요한의 머리를 끌어안고 기특하다며 몇 번 토닥여 주었다. 코디의 입에서 다시금 분노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놈의 자식,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요한이 말하는 게 귀엽잖아요.”
못 들은 척, 옷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재민이다. 그러고는 강아지를 어루만지듯 요한의 머리를 쓱 쓰다듬었다.
“진짜 철이 들긴 들었나 보네.”
“네?”
“사고 치지 말고 개인 촬영 잘하고 와.”
인상을 찌푸리는 요한의 뒤로 보조가 머리를 만져 주겠다며 다가왔다. 재민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코디가 휘두르는 빗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가는 중이었다. 뛰지도 않고 사뿐사뿐 빠른 걸음으로 걸어갈 뿐인데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코디는 쉽게 재민을 잡지 못했다.
“어어, 재민이 형이랑 누나랑 뭐해?”
“재밌겠다, 나도 잡을래.”
“잡으면 뭐 주는 거야?”
요한은 쯧, 하고 혀를 찼다. 그 뒤로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쌍둥이도 재민을 잡기 위해 같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찍기 위해 제작 현장을 촬영 중이던 기사도 같이 뛰었다. 언젠가 보았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떠올리며 요한은 고개를 돌렸다. 어깨 위로 미묘한 진동이 느껴졌다.
‘……?’
이상함을 느낀 요한이 뒤를 바라보자 조수가 입을 가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몸을 숙이고 있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디가 아픈 것 같지는 않아 요한은 무덤덤한 눈길로 대충 보고 넘어갔다. 아마 저 꼴이 웃겨서 웃는 걸 참는 모양이었다.
간신히 웃음을 진정시킨 조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요한의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요한은 핸드폰으로 인터넷 기사들을 보며 얌전히 머리를 맡겼다.
조수는 요한의 뒤에서 흐트러진 머리를 매만지며 앉아 있는 요한과 도망 중인 재민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머물렀다 스치듯 사라졌다.
[새틀라이트 자유게시판]
위성들아 나 스태프1인데 뮤비촬영 후기썰 몰래 푼다ㅋㅋㅋ아나ㅋㅋㅋ일단 심장 좀 진정시키고ㅋㅋㅋㅋㅋ악ㅋㅋㅋㅋ
안녕 위성들아 뮤직비디오 촬영현장에서 작업한 스태프1인데ㅋㅋㅋㅋ도저히 이건 혼자만 두고 볼 수 없어서 다 같이 나누려고 간단하게 썰품 ㅇㅇ
사실 나는 이쪽 세계 오기 전부터 수니 중의 수니였고 쌍둥이들 개인팬이었음. 오구오구 우리 애기들ㅠㅠ 스태프로 현장 들어왔을 때 진짜 숨멎하는 줄 아랐음ㅋㅋㅋㅋㅋ우리 애기들이ㅋㅋㅋ눈앞에ㅠㅠㅠ쌍둥이들 온리후기는 앞에 글쓴 거 있으니까 그거 참고!
성덕이 된 기분을 누리며 촬영현장을 누비고 다녔음. 플루토 애들 비주얼 쩌는 건 이미 유명하자나여??
가까이서 보는데 손이 덜덜덜...큰오빠는 TV에서 볼 때도 키가 크더니 실제로 보니 진심 ㅎㄷㄷ;;
최신우랑 같이 찍는 씬 있었는데 둘 다 존멋이라 드러누워서 기어다님;; 쌍둥이 개인팬인데 오늘 애들 비주얼 보고ㅋㅋㅋ 그냥 플루토맘 됨ㅋㅋㅋㅋㅋㅋㅋㅋㅋ존나 잘생겼어 미친ㅋㅋㅋ큰오빠 비주얼이야 말할 것도 없고 최신우는 존나 분위기bbbb
아니 이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내가 이 생각하면 지금도 잠을 못 이루겠다...
솔까말 플루토 팬덤 춘추전국시대 된 건 예또 덕이 크잖아요?? 예쁜 또라이새끼가 깽판치고 다녀서 다 작살났잖아요???그래서 내가 이 또라이 얼굴이라도 보고 오려고 완전 맘먹고 갔단 말이야??? 근데 미친 머리 염색하고 찐하게 화장했는데 개잘생긴거야 도르신;;
개섹시해;;; 소름;; 코피 터질 뻔;; 팬들이나 스태프들한테 개같이 구는 인간이라 그래서 멘탈 가드 올리고 갔는데 ??? ???? 존나 착해 미친? 지랄하는 거 하나도 없던데??
이게 뭐임???? 분명히 내가 알기론 플루토 애들끼리 사이 개나쁜 걸로 알고 있는데 완전 친하던데?
이건 내 신상이 털릴까 봐 자세히는 못 풀겠지만 큰오빠가 예또 쓰담쓰담 해 줌;;; 그리고 쌍둥이 애기들이 예또한테 놀자고 달려들고 난리 남;;
이건 진짜 대박사건인데ㅋㅋㅋㅋㅋㅋㅋ최신우가ㅋㅋㅋㅋㅋㅋㅋ예또 옆에 얌전히 앉아 있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위성들아 이게 상상이 가??? 최신우랑 예또 투 샷???? 헐??? 그리고 예또가 진짜 미치긴 했나 봐. 나한테 수고했다고 고개 숙여서 인사하고 가더라?? 뭐야 내가 모르는 사이에 뭐 있었어?? 왜 갑자기 상냥하게 굴고 난리ㅠㅠ또라이야 왜그래ㅠㅠㅠㅠ
요약하자면 예또 실제로 봤더니 심장에 안 좋다..... 애기들아 미안해...근데 예또는 진짜... 하... 멘탈이 아니라 심장에 가드 올리고 갔어야 했었나 봄
―댓글(139)
-와 미친 이 위성 존나 성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부럽다 진짜ㅋㅋㅋㅋㅋㅋㅋ그럼 오빠들 만나 보고 만지고 핥고 왔을거 아니야ㅠㅠ하루만 나랑 몸바꾸자ㅠㅠㅠ
└개부러뷰ㅠㅠㅠㅠㅠ
└이 위성 다음에 몸바꾸는거 줄선다. 하루만 바꿔줘라. 아니 한 시간만...
└다음으로 제가 줄섭니다33333333
└그다음은 접니다444444
4444
└다 비켜 이 위성은 내가 납치해간다... 기다려 오빠들...
-예또가 인사를 했다고?
└네?
└??
└?
-예또 입원했다더니 그때 뇌 갈아끼고 온 거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가능성 있음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지금 큰오빠 기럭지를 가까이서 봤단 소리입니까. 나 지금 개진지하다.
└다른 건 몰라도 신우랑 투 샷이면 개쩔었을 듯
└2222 존나 화보컷 예상해봅니다.... 워어....
-저번에 게시판에 어떤 위성이가 자기랑 같은 병원에 예또 입원해 있는데 애들이 와서 놀다가고 먹을 거 사다준다 그랬었음. 근데 구라치지 말라면서 자게란에서 팬픽 쓰지 말라고 극딜당함ㅋㅋㅋㅋ
└헐 나 그 글 기억남
└그 위성이가 애들끼리 친해 보였다고 자기 눈이 이상한 거 같다고 그랬는데 다들 댓글로 눈 내구도가 다한 것 같으니 바꾸라 그랬음 ㅇㅅㅇ
└ㅋㅋㅋㅋㅋㅋㅋㅋㅋ와 대박 그럼 진짜야?? 진심????
└ㅇㄱㄹㅇ
-호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여기에 제 남편을 보셨다는 분이 계셔서 찾아왔습니다. 보신 남정네들 중에 섹시하고 빠른말을 잘하는 게 제 남편님이라지요^^^ 신우야 네 마눌님이 데리러왔어!
└F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단호하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댓 단호박인 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신우(32, 무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우마눌님 남편 찾으러 왔다가 낙제당함ㅋㅋㅋㅋ
-신우랑 예또랑 둘이 같이 있었다고? 선생님 그게 말이 됩니까?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놉
└바다가 갈라지고 하늘이 진노할 일입니다
└글쓴 위성이 꿈꾼 듯 ㅇㅇ
└걔네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것도 싫어한다던데
└서로 산소 낭비한다고 생각할 듯 예또 비주얼은 원래 유명했어. 또라이라서 그렇지.
└ㅇㄱㄹㅇ
└ㅇㄱㄹㅇ
└ㅇㄱㄹㅇ
-지금 후기들 읽고 있는데 이번 컴백 기대된다... 원래 같았으면 덜덜 떨고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기대됨ㅋㅋㅋㅋㅋㅋㅋ나만 그래??ㅋㅋㅋㅋㅋ
└222 나도 기대됨
└3333 설레이는 이 마음은 뭘까 왠지 잠을 이룰 수가 없어
└444 이러다 또 뒤통수 맞으면 자게에서 같이 울자
Chapter 2. Mr.Diabolik
컴백 전에 잡힌 공식 일정은 다름 아닌 사인회였다. 이번 앨범에 유난히 신경을 쓰는 소속사 측에서 특별히 준비한 것으로, 앨범이 나오기 전에 플루토 멤버들의 사진이 담긴 한정판 포토 카드와 클리어파일을 준비해 팬들에게 증정하는 이벤트였다.
매니저는 오늘의 이벤트에 대해 설명하면서 오늘 증정하는 것과 비슷한 트레이딩 카드들이 나중에 앨범에 랜덤으로 들어갈 거라고 했다. 요한은 소속사의 상술에 감탄했다.
안 그래도 개인팬의 비중이 높기로 유명한 플루토다. 그런데 안에 트레이딩 카드가 랜덤이라면 분명히 자기가 원하는 카드가 나올 때까지 앨범을 사 댈 게 분명했다. 원래 이런 건 뻔히 보이는 상술을 욕하면서도 사게 되곤 하니까.
“사인은 클리어파일 안에 있는 사인지에 해 주면 돼. 만약 포토 카드나 클리어파일 내밀면 거기다 해 줘도 되고. 질문하는 포스트잇 같은 게 오면 알아서 스루할 건 하고, 대답해 줄 건 해 주고……. 사인회 한두 번 하는 거 아니니까 말 안 해도 알지?”
네, 네 하면서 대충 흘려듣는 다른 멤버들과 다르게 요한은 좋은 정보라며 티 나지 않게 조용히 속으로 새겨들었다. 이 머릿속에는 사인회에서 깽판 친 기억밖에 없어서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팬한테 욕을 하면 어쩌자는 건지.’
이쯤 되면 팬들한테도 또라이 소리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요한은 전 주인이 그동안 저지른 행적들을 떠올리며 최대한 상냥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친절하게 대해 주자고 마음먹었다. 물론 그것도 팬들이 요한에게 관심을 줬을 때의 일이지만.
만약 요한이 팬의 입장이라면 자신의 관심이나 사인이 그리 달갑지 않을 듯했다. 팬덤 붕괴부터 시작해 온갖 사건의 주범인 그에게 미운 털이 박혀도 단단히 박혀 있을 터였다.
“하하하…….”
결국 요한은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중간만 하자, 중간만. 주문처럼 스스로에게 되새기고는 매니저를 따라 밴에서 내렸다.
임시로 마련된 대기실에서 머리와 메이크업을 간단하게 다시 손보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이미 행사장 안은 팬들과 경호요원, 스태프들로 만원이었다.
“꺄아아아아악―!!”
“오빠, 오빠 여기 좀 봐 주세요!!!”
“쌍둥아!! 쌍둥아 누나 왔어!!”
“대박, 오빠들 완전 멋있어요!! 멋있다! 잘생겼다!!!”
귀가 찢어질 듯한 함성과 함께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가득해 요한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앞에 걸어가는 멤버들은 익숙한 듯 팬들에게 손을 흔들거나 웃어 보였다.
잠깐 고민하던 요한은 멤버들이 하는 것처럼 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요한과 눈이 마주친 팬들이 당황하면서 그대로 굳는 게 보였다. 중간에 요한이 지나쳐 간 자리에 기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팬들 반응 보니 이 새끼 진짜 장난 아니었구나.’
어색한 얼굴로 손을 흔들던 요한은 그동안의 쓰레기 같던 이미지를 생각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쏟아지는 시선과 함성 소리에 말 그대로 몸이 꿰뚫리는 것 같았다. 천천히 무대 앞으로 걸어가던 중 요한의 발 앞으로 무언가가 굴러 왔다.
“……?”
카드 지갑이었다. 아마 열광적으로 몸을 흔들다가 목에 걸려 있던 게 날아온 모양이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놀란 얼굴로 손만 움찔거리는 여자 하나가 보였다.
‘저 사람이 주인인가.’
빤히 그쪽을 응시하던 중, 요한과 여자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요한의 손에 들린 자신의 카드 지갑을 보는 순간, 여자의 눈이 어마어마한 경악으로 물들었다.
반쯤 얼이 나간 표정으로 눈만 이리저리 굴리는 폼이 웃겼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결국 요한은 가던 몸을 틀어 팬들 쪽으로 가까이 걸어갔다.
소리 지르며 좋아하는 멤버의 이름을 외치던 팬들은 갑자기 요한이 다가오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모세가 된 기분을 느끼며 그가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팬들이 전부 무슨 일이냐며 웅성거리는데, 요한이 손가락으로 한 여자를 가리켰다. 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고개를 돌려 요한이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다. 수많이 시선들이 집중되자 여자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여기 카드 지갑.”
손에 들린 카드 지갑을 흔들어 보이던 요한은 받으라고 외치면서 지갑을 던졌다. 지갑은 포물선을 그리며 정확하게 여자의 손에 떨어졌다.
“다음부터는 조심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는 데도 여자는 반응이 없었다. 넋이 나간 듯한 얼굴로 요한과 제 손에 들린 카드 지갑만 번갈아 볼 뿐이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앞에서 걸어가던 재민이 요한의 쪽으로 걸어왔다. 팬들과 요한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눈치챈 그는 혹시 무슨 사고라도 쳤나 걱정했지만, 팬들의 얼굴을 보니 다행히 그런 건 아닌 듯했다.
“별거 아니에요. 잔소리 듣기 전에 얼른 올라가죠.”
요한의 말대로 아까부터 매니저가 시퍼런 눈으로 어서 무대로 올라오라며 재촉하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은 자리에 앉아 사인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요한은 재민의 등을 밀며 빠르게 걸었다. 매니저의 잔소리가 무섭진 않지만 엄청나게 귀찮았다. 한 번 터지면 아라비안나이트처럼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생전의 요한은 머리를 자르는 것 빼고는 한 번도 손을 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머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군대 갔을 때 깔끔하게 전부 밀어 버린 것을 제외하면 평생 덥수룩한 앞머리만 간신히 처리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길을 다니면서 요즘 유행하는 탈색이니 화려한 염색이니 하고 다니는 걸 봐도 저 귀찮은 짓을 굳이 왜 하냐 하면서 넘어가고는 했다.
어지간한 것에는 놀라지 않는 요한이지만 이 머리를 하라고 하면 약간 당황스러울 것 같았다. 물론 지금 제 얼굴이라면 충분히 어울리겠지만…….
척 보기에도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머리의 사진을 뚫어져라 보고 있자니 매니저가 웃으며 요한의 어깨를 쳤다.
“오, 어떻게 알았지? 그게 네가 할 머리인데. 촉 좋다?”
매니저의 말에 태평하던 요한의 눈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아이돌이 되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난해한 길일지도 모른다는 걸 처음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 머리를요? 제가요? 누가요, 제가?”
요한이 어이없다는 듯이 반복해서 물었지만 매니저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네 머리야. 다른 애들에 비해 컬러가 좀 세지?”
“좀 센 게 아니라 머리통에서 빔 나올 것 같은데요.”
한숨을 내쉬며 스크랩북을 뒤적이던 요한은 자신의 머리색이 가장 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우는 검은 머리 그대로였고, 재민은 갈색, 쌍둥이는 애시그레이였다. 원래 튀기 싫어하는 요한의 성정대로라면 애시그레이도 기겁을 했겠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쌍둥이의 애시그레이가 미칠 듯이 부러웠다.
“이번 의상이 블랙이랑 화이트가 기본이라 머리를 좀 화려하게 잡았나 봐.”
“……정해진 거니 어쩔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튀지 않는 쪽으로 부탁드립니다.”
“이미 색깔부터 엄청 튀는데 무슨 소리야∼”
윤이 깔깔거리며 뒤로 넘어갈 듯 웃었다. 팔다리를 저어 가며 비글같이 웃어 대던 윤은 요한에게 뒤통수 한 대를 맞고 나서야 얌전해졌다. 윤이 훌쩍훌쩍 우는 척을 하면서 매니저에게 설명을 듣고 있던 현에게 달려갔다.
“이거 봐, 형이 때렸어!”
“좀 과하게 나댄다 싶었음.”
“야, 넌 누구 편이야?”
“네 편은 아닐걸.”
활짝 웃으며 윤을 끊어 내는 현의 말을 기점으로 이번에는 윤과 현이 싸우기 시작했다. 쌍둥이가 다투는 건 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매니저는 저리 가라는 듯이 손으로 훠이훠이 쌍둥이들을 밀어낸 후 재민의 옆에 앉아서 설명을 계속했다.
“아, 맞다. 까먹을 뻔했네.”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요한이 무언가 생각난 듯 보고 있던 창을 껐다. 그리고 메신저로 들어가 친구목록을 쭉 훑었다. 스크롤을 내리는 게 무색할 정도로 짧게 끝나는 친구목록을 보며 요한은 가볍게 혀를 찼다. 자신이 뭐라 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역시나 이 핸드폰도 전 주인의 지랄 맞은 성미답게 좁디좁은 인간관계를 자랑하고 있었다.
얼마 안 되는 목록에서 ‘최신우’를 찾아낸 요한은 대화방을 열고 아까 찍은 사진을 찾았다. 셀카라는 이름의 협정서였다. 원래 이런 건 상호 보관하는 게 상식이지.
“오케이, 전송.”
사진이 성공적으로 전송되고, 건너편에서 물을 마시고 있던 신우가 알림 소리에 핸드폰을 꺼냈다. 요한의 이름에 질색하며 대화방에 떠 있는 사진을 보는 순간 신우는 마시던 물을 뿜을 뻔했다.
“야, 미쳤어? 갑자기 이딴 걸 보내고 난리야!”
콜록거리며 핸드폰을 흔들어 대는 그를 보며 요한은 고개를 까딱였다. 왜 그런 걸로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실제로 사진을 보내면서도 요한은 별생각이 없었다. 단지 무심코 보게 된 갤러리에 전 주인의 셀카들이 많으니 전부 지워 버려야지, 같은 시답잖은 생각을 했을 뿐이다.
“원래 이런 건 서로 보관해 둬야 하는 거야.”
“내가 지우라고 했지.”
“싫은데?”
“아씨, 아오, 또라이 저거……. 와 진짜…….”
신우는 짜증 섞인 얼굴로 창을 꺼 버렸다. 그런 신우의 뒤로 쌍둥이가 언제 다퉜느냐는 듯 그에게 다가와 좋은 건 같이 보자며 기웃거렸다. 꺼지라는 신우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웃거리던 쌍둥이는 뒤통수를 한 대씩 맞고 나서야 울상을 지으며 물러섰다.
“나 아까 맞은 데 또 맞았어!”
윤의 억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뮤직비디오 촬영은 총 세 군데에서 이루어졌다. 수상한 분위기의 지하클럽 같은 곳과 하얀 배경의 스튜디오,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였다. 주가 되는 의상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제복 형태의 코트였고, 다른 하나는 가죽으로 된 장식이나 소품으로 포인트를 준 정장이었다.
정장은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타이가 한 세트로 요한의 옷은 검은 넥타이, 가죽으로 된 검은 멜빵이었다. 쌍둥이는 검은 나비넥타이에 일명 개목걸이라고 불리는 가죽 초커를 하고 있었고, 재민은 길게 올라오는 가죽 부츠, 신우는 래퍼답게 뾰족한 징이 박힌 가죽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이번 콘셉트가 섹시하고 어른스러운지라 항상 귀엽게 꾸미던 쌍둥이도 제법 어른스러운 느낌을 풍겼다. 사납게 생긴 요한이나, 항상 모델 포스를 풍기고 다니던 신우와 재민은 말할 것도 없었다.
스타일링이 전부 끝난 플루토 멤버들을 보면서 매니저와 프로듀서는 서로 얼싸안았다. 두 사람은 하늘이 내린 콘셉트구나, 대박이다를 외치며 이리저리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윽고 촬영이 시작되고 멤버들은 미리 숙지한 콘셉트와 동선에 따라 움직였다. 카메라를 보고 혼자 연기하려니 손발이 오글거렸지만, 요한은 돈을 생각하며 꾹 참았다.
‘이것도 일이다. 쪽팔리지만 일이니까 해야 한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섹시하다.’
속으로 주문을 거는 듯 반복해서 외치자 뒤에 가서는 감독이 시키지 않아도 술술 메소드 연기가 나왔다. 돈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요한은 안락한 은퇴 생활을 위해 온몸을 바쳤다.
촬영 내내 멤버들은 걷고, 뛰고, 눕고, 춤추고 정신없이 움직였다. 아이돌들 뮤직비디오가 대체로 그렇듯 스토리보다는 앵글이나 멋진 얼굴을 담는 데에 주력한 촬영이었다. 미성년자인 쌍둥이를 배려한답시고 여자 모델 없이 멤버들끼리만 촬영이 이루어졌지만, 실질적으로 남자들끼리 붙어서인지 더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요한이 전지적 게이 시점에서 봐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뭐 나쁘지 않았다. 스스로 유혹하는 듯한 동작을 한다거나 섹시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 건 심하게 오글거렸지만, 다른 멤버들의 촬영을 지켜보는 건 나쁘지 않았다.
“여기서는 턱을 내리는 게 좋겠다. 아래에서 위로 앵글을 잡아서.”
“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배경이 어두워서 그런지 머리색이 확 사네?”
“하하하…… 하하하하…….”
감독의 말에 요한은 영혼 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화면 속에 비치는 자신의 화려한 머리는 이제 어느 정도 적응한 상태여서 더 이상 거울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거나 하지 않았다. 밖에 나가면 아무리 꽁꽁 싸매도 사람들이 쳐다본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이런 머리인들 어떻고, 저런 머리인들 어떠리. 이쯤 되니 전부 해탈해서 삭발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잠깐 요한이 앉아서 쉬는 사이 신우와 재민의 촬영이 이어졌다. 신우가 앞으로 나와 랩을 하고, 뒤에서 재민이 코러스를 넣는 부분이었다. 둘 다 카메라 앞에 선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상당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장난치듯 경쟁하듯 서로 붙었다 멀어졌다 하면서 둘의 촬영은 끝이 났다. 재민은 메이크업을 수정하기 위해 안쪽으로 사라졌고, 신우는 다음 촬영을 위해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단독 촬영이 이어졌다. 카메라가 가까이에서 신우를 잡았고, 그는 나른한 눈으로 카메라를 내려다보며 몸을 움직였다.
“최신우 대박이다 진짜…….”
“저 키에 저 분위기는 완전 사기 아니야?”
요한은 주스를 홀짝거리며 스태프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명이 닿지 않는 곳에서 신우의 촬영을 지켜보던 여자 스태프들은 연신 꺅꺅거리며 소리를 질러 댔다. 인터넷에서 패왕색이니 뭐니 하는 게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래도 잘빠지긴 했네. 역시 아이돌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빈 병을 쓰레기 봉지에 투척하며 요한이 작게 감탄했다. 손으로 턱을 괸 채 신우의 촬영을 바라보고 있던 요한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메이크업을 고친 재민이 코디와 이야기하며 요한의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재민은 눈을 접어 예쁘게 웃더니 요한의 옆에 앉았다. ‘힘들지?’ 하면서 요한의 앞머리를 쓸어 넘기는 재민의 태도가 퍽 다정하다. 요한이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자 재민이 역시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요한은 이 사람은 덩치는 큰데 묘하게 아이 같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가끔 쌍둥이와 노는 걸 보면 나이 차가 무색할 정도로 해맑아 보이기도 했고.
“촬영하는 거 잘 봤어요. 멋있더라고요.”
“그래? 다행이네. 신우가 중간에 째려보는데 좀 무서웠어.”
“걔 생긴 게 원래 좀 그렇잖아요. 눈알로 사람 죽일 수 있는 놈이라서.”
중간에 신우와 재민이 서로 눈을 맞춘 상태로 탐색하듯 빙글빙글 도는 안무가 있는데 그때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물어뜯기는 줄 알았다는 재민의 말에 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염색 엄청 잘됐다. 원래 이런 색인 것 같아.”
“뭐, 그냥 신기하죠. 저도 가끔 거울 보고 놀라요. 저게 누군가 싶어서.”
“잘 어울리는데 왜. 영양 많이 해 줬나 보다 부들부들하네.”
재민은 밑으로 갈수록 분홍빛이 선명해지는 요한의 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머리끝을 잡고 이리저리 잡아당겼다. 겨우 머리 하나 만지는 걸로 생색내는 것도 이상해 요한은 가만히 재민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요한의 얼굴을 힐끔 본 재민은 그가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자 마음껏 손을 움직였다. 이리저리 쓰다듬고 잡아당기며 혼자 놀고 있는데 잠깐 무언가를 가지러 갔던 코디가 돌아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재민아, 요한이 머리 흐트러뜨리면 어떡해.”
“아, 정말이네. 누나 미안, 미안.”
신기한 듯 요한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던 재민이 항복하듯이 손을 들어 올렸다. 요한은 대체 어느 정도길래 그러나 싶어서 근처에 있던 거울을 잡아 들었다. 왼쪽,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가며 살펴보니 잘 세팅되어 있던 머리가 재민의 손에 닿아 여기저기 뻗쳐 있었다.
“하여튼 잠시도 한눈을 못 팔게 한다니까. 요한아, 머리 다시 만져야겠다.”
“네, 네. 제가 안쪽으로 갈까요?”
“아니, 그냥 여기 있어. 간단하게 손만 보면 될 것 같네.”
긴 머리를 높게 올려 묶은 플루토의 코디는 소속사와 전속 계약이 되어 있는 솜씨 좋은 여자였다. 그녀는 이제 입사 10년 차의 고참으로 걸걸한 입담과 호쾌한 성격으로 모두의 누님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플루토의 매니저가 꼼짝 못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내가 너 잘생겨서 봐준다. 수정아! 여기 빗 좀 가져다줄래!”
“네, 금방 가요!”
안쪽에서 작은 체구의 조수가 쪼르르 뛰어나왔다. 빗이라는 말에 상황 파악을 빠르게 끝냈는지 손에는 빗이며 스프레이며 잔뜩 들어 있는 통이 들려 있었다. 새로 들어온 조수인데 눈치가 빨라서 좋아, 하며 코디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어머, 내가 못 살아. 손 안 뗄래? 쌍둥이들이랑 놀더니 못된 것만 배웠어.”
그 찰나에 다시금 요한의 머리에 손을 대는 재민을 본 코디가 잔소리를 해 댔다. 어차피 다시 고칠 거 조금 더 만져도 되지 않느냐면서 재민은 요한의 머리를 손가락에 감으며 넉살좋게 웃었다.
다른 사람이 봐도 신기한 머리이기는 하나 보네. 이미 해탈한 요한은 쓰게 웃으며 재민에게 머리통을 맡겼다.
“요한아, 너도 신선놀음하듯이 그대로 맡겨 두지 말고 뭐라고 좀 해.”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럼 안 할래?”
“누가 머리 만져 주는 건 처음인데 생각보다 기분 좋아서요.”
아무 생각 없이 느낀 대로 내뱉은 요한의 말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코디와 조수가 동시에 묘한 표정을 지으며 요한을 바라봤다.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알 수 없는 말 그대로 묘한 표정이었다. 생각보다 긴 정적이 흐른 후, 먼저 정신을 차린 코디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쟤 계단에서 자빠지고 나서 철만 든 게 아니라 나사도 왕창 빠졌나 보네. 요한이가 저런 소리를 하는 애였니?”
재민은 고개를 돌린 채 작게 큭큭거리고 있었다. 손으로 입을 가리며 간신히 웃음을 참는 모습이었다. 한참을 웃던 재민이 요한의 머리를 끌어안고 기특하다며 몇 번 토닥여 주었다. 코디의 입에서 다시금 분노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놈의 자식,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요한이 말하는 게 귀엽잖아요.”
못 들은 척, 옷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재민이다. 그러고는 강아지를 어루만지듯 요한의 머리를 쓱 쓰다듬었다.
“진짜 철이 들긴 들었나 보네.”
“네?”
“사고 치지 말고 개인 촬영 잘하고 와.”
인상을 찌푸리는 요한의 뒤로 보조가 머리를 만져 주겠다며 다가왔다. 재민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코디가 휘두르는 빗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가는 중이었다. 뛰지도 않고 사뿐사뿐 빠른 걸음으로 걸어갈 뿐인데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코디는 쉽게 재민을 잡지 못했다.
“어어, 재민이 형이랑 누나랑 뭐해?”
“재밌겠다, 나도 잡을래.”
“잡으면 뭐 주는 거야?”
요한은 쯧, 하고 혀를 찼다. 그 뒤로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쌍둥이도 재민을 잡기 위해 같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찍기 위해 제작 현장을 촬영 중이던 기사도 같이 뛰었다. 언젠가 보았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떠올리며 요한은 고개를 돌렸다. 어깨 위로 미묘한 진동이 느껴졌다.
‘……?’
이상함을 느낀 요한이 뒤를 바라보자 조수가 입을 가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몸을 숙이고 있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디가 아픈 것 같지는 않아 요한은 무덤덤한 눈길로 대충 보고 넘어갔다. 아마 저 꼴이 웃겨서 웃는 걸 참는 모양이었다.
간신히 웃음을 진정시킨 조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요한의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요한은 핸드폰으로 인터넷 기사들을 보며 얌전히 머리를 맡겼다.
조수는 요한의 뒤에서 흐트러진 머리를 매만지며 앉아 있는 요한과 도망 중인 재민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머물렀다 스치듯 사라졌다.
[새틀라이트 자유게시판]
위성들아 나 스태프1인데 뮤비촬영 후기썰 몰래 푼다ㅋㅋㅋ아나ㅋㅋㅋ일단 심장 좀 진정시키고ㅋㅋㅋㅋㅋ악ㅋㅋㅋㅋ
안녕 위성들아 뮤직비디오 촬영현장에서 작업한 스태프1인데ㅋㅋㅋㅋ도저히 이건 혼자만 두고 볼 수 없어서 다 같이 나누려고 간단하게 썰품 ㅇㅇ
사실 나는 이쪽 세계 오기 전부터 수니 중의 수니였고 쌍둥이들 개인팬이었음. 오구오구 우리 애기들ㅠㅠ 스태프로 현장 들어왔을 때 진짜 숨멎하는 줄 아랐음ㅋㅋㅋㅋㅋ우리 애기들이ㅋㅋㅋ눈앞에ㅠㅠㅠ쌍둥이들 온리후기는 앞에 글쓴 거 있으니까 그거 참고!
성덕이 된 기분을 누리며 촬영현장을 누비고 다녔음. 플루토 애들 비주얼 쩌는 건 이미 유명하자나여??
가까이서 보는데 손이 덜덜덜...큰오빠는 TV에서 볼 때도 키가 크더니 실제로 보니 진심 ㅎㄷㄷ;;
최신우랑 같이 찍는 씬 있었는데 둘 다 존멋이라 드러누워서 기어다님;; 쌍둥이 개인팬인데 오늘 애들 비주얼 보고ㅋㅋㅋ 그냥 플루토맘 됨ㅋㅋㅋㅋㅋㅋㅋㅋㅋ존나 잘생겼어 미친ㅋㅋㅋ큰오빠 비주얼이야 말할 것도 없고 최신우는 존나 분위기bbbb
아니 이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내가 이 생각하면 지금도 잠을 못 이루겠다...
솔까말 플루토 팬덤 춘추전국시대 된 건 예또 덕이 크잖아요?? 예쁜 또라이새끼가 깽판치고 다녀서 다 작살났잖아요???그래서 내가 이 또라이 얼굴이라도 보고 오려고 완전 맘먹고 갔단 말이야??? 근데 미친 머리 염색하고 찐하게 화장했는데 개잘생긴거야 도르신;;
개섹시해;;; 소름;; 코피 터질 뻔;; 팬들이나 스태프들한테 개같이 구는 인간이라 그래서 멘탈 가드 올리고 갔는데 ??? ???? 존나 착해 미친? 지랄하는 거 하나도 없던데??
이게 뭐임???? 분명히 내가 알기론 플루토 애들끼리 사이 개나쁜 걸로 알고 있는데 완전 친하던데?
이건 내 신상이 털릴까 봐 자세히는 못 풀겠지만 큰오빠가 예또 쓰담쓰담 해 줌;;; 그리고 쌍둥이 애기들이 예또한테 놀자고 달려들고 난리 남;;
이건 진짜 대박사건인데ㅋㅋㅋㅋㅋㅋㅋ최신우가ㅋㅋㅋㅋㅋㅋㅋ예또 옆에 얌전히 앉아 있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위성들아 이게 상상이 가??? 최신우랑 예또 투 샷???? 헐??? 그리고 예또가 진짜 미치긴 했나 봐. 나한테 수고했다고 고개 숙여서 인사하고 가더라?? 뭐야 내가 모르는 사이에 뭐 있었어?? 왜 갑자기 상냥하게 굴고 난리ㅠㅠ또라이야 왜그래ㅠㅠㅠㅠ
요약하자면 예또 실제로 봤더니 심장에 안 좋다..... 애기들아 미안해...근데 예또는 진짜... 하... 멘탈이 아니라 심장에 가드 올리고 갔어야 했었나 봄
―댓글(139)
-와 미친 이 위성 존나 성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부럽다 진짜ㅋㅋㅋㅋㅋㅋㅋ그럼 오빠들 만나 보고 만지고 핥고 왔을거 아니야ㅠㅠ하루만 나랑 몸바꾸자ㅠㅠㅠ
└개부러뷰ㅠㅠㅠㅠㅠ
└이 위성 다음에 몸바꾸는거 줄선다. 하루만 바꿔줘라. 아니 한 시간만...
└다음으로 제가 줄섭니다33333333
└그다음은 접니다444444
4444
└다 비켜 이 위성은 내가 납치해간다... 기다려 오빠들...
-예또가 인사를 했다고?
└네?
└??
└?
-예또 입원했다더니 그때 뇌 갈아끼고 온 거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가능성 있음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지금 큰오빠 기럭지를 가까이서 봤단 소리입니까. 나 지금 개진지하다.
└다른 건 몰라도 신우랑 투 샷이면 개쩔었을 듯
└2222 존나 화보컷 예상해봅니다.... 워어....
-저번에 게시판에 어떤 위성이가 자기랑 같은 병원에 예또 입원해 있는데 애들이 와서 놀다가고 먹을 거 사다준다 그랬었음. 근데 구라치지 말라면서 자게란에서 팬픽 쓰지 말라고 극딜당함ㅋㅋㅋㅋ
└헐 나 그 글 기억남
└그 위성이가 애들끼리 친해 보였다고 자기 눈이 이상한 거 같다고 그랬는데 다들 댓글로 눈 내구도가 다한 것 같으니 바꾸라 그랬음 ㅇㅅㅇ
└ㅋㅋㅋㅋㅋㅋㅋㅋㅋ와 대박 그럼 진짜야?? 진심????
└ㅇㄱㄹㅇ
-호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여기에 제 남편을 보셨다는 분이 계셔서 찾아왔습니다. 보신 남정네들 중에 섹시하고 빠른말을 잘하는 게 제 남편님이라지요^^^ 신우야 네 마눌님이 데리러왔어!
└F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단호하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댓 단호박인 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신우(32, 무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우마눌님 남편 찾으러 왔다가 낙제당함ㅋㅋㅋㅋ
-신우랑 예또랑 둘이 같이 있었다고? 선생님 그게 말이 됩니까?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놉
└바다가 갈라지고 하늘이 진노할 일입니다
└글쓴 위성이 꿈꾼 듯 ㅇㅇ
└걔네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것도 싫어한다던데
└서로 산소 낭비한다고 생각할 듯 예또 비주얼은 원래 유명했어. 또라이라서 그렇지.
└ㅇㄱㄹㅇ
└ㅇㄱㄹㅇ
└ㅇㄱㄹㅇ
-지금 후기들 읽고 있는데 이번 컴백 기대된다... 원래 같았으면 덜덜 떨고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기대됨ㅋㅋㅋㅋㅋㅋㅋ나만 그래??ㅋㅋㅋㅋㅋ
└222 나도 기대됨
└3333 설레이는 이 마음은 뭘까 왠지 잠을 이룰 수가 없어
└444 이러다 또 뒤통수 맞으면 자게에서 같이 울자
Chapter 2. Mr.Diabolik
컴백 전에 잡힌 공식 일정은 다름 아닌 사인회였다. 이번 앨범에 유난히 신경을 쓰는 소속사 측에서 특별히 준비한 것으로, 앨범이 나오기 전에 플루토 멤버들의 사진이 담긴 한정판 포토 카드와 클리어파일을 준비해 팬들에게 증정하는 이벤트였다.
매니저는 오늘의 이벤트에 대해 설명하면서 오늘 증정하는 것과 비슷한 트레이딩 카드들이 나중에 앨범에 랜덤으로 들어갈 거라고 했다. 요한은 소속사의 상술에 감탄했다.
안 그래도 개인팬의 비중이 높기로 유명한 플루토다. 그런데 안에 트레이딩 카드가 랜덤이라면 분명히 자기가 원하는 카드가 나올 때까지 앨범을 사 댈 게 분명했다. 원래 이런 건 뻔히 보이는 상술을 욕하면서도 사게 되곤 하니까.
“사인은 클리어파일 안에 있는 사인지에 해 주면 돼. 만약 포토 카드나 클리어파일 내밀면 거기다 해 줘도 되고. 질문하는 포스트잇 같은 게 오면 알아서 스루할 건 하고, 대답해 줄 건 해 주고……. 사인회 한두 번 하는 거 아니니까 말 안 해도 알지?”
네, 네 하면서 대충 흘려듣는 다른 멤버들과 다르게 요한은 좋은 정보라며 티 나지 않게 조용히 속으로 새겨들었다. 이 머릿속에는 사인회에서 깽판 친 기억밖에 없어서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팬한테 욕을 하면 어쩌자는 건지.’
이쯤 되면 팬들한테도 또라이 소리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요한은 전 주인이 그동안 저지른 행적들을 떠올리며 최대한 상냥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친절하게 대해 주자고 마음먹었다. 물론 그것도 팬들이 요한에게 관심을 줬을 때의 일이지만.
만약 요한이 팬의 입장이라면 자신의 관심이나 사인이 그리 달갑지 않을 듯했다. 팬덤 붕괴부터 시작해 온갖 사건의 주범인 그에게 미운 털이 박혀도 단단히 박혀 있을 터였다.
“하하하…….”
결국 요한은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중간만 하자, 중간만. 주문처럼 스스로에게 되새기고는 매니저를 따라 밴에서 내렸다.
임시로 마련된 대기실에서 머리와 메이크업을 간단하게 다시 손보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이미 행사장 안은 팬들과 경호요원, 스태프들로 만원이었다.
“꺄아아아아악―!!”
“오빠, 오빠 여기 좀 봐 주세요!!!”
“쌍둥아!! 쌍둥아 누나 왔어!!”
“대박, 오빠들 완전 멋있어요!! 멋있다! 잘생겼다!!!”
귀가 찢어질 듯한 함성과 함께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가득해 요한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앞에 걸어가는 멤버들은 익숙한 듯 팬들에게 손을 흔들거나 웃어 보였다.
잠깐 고민하던 요한은 멤버들이 하는 것처럼 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요한과 눈이 마주친 팬들이 당황하면서 그대로 굳는 게 보였다. 중간에 요한이 지나쳐 간 자리에 기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팬들 반응 보니 이 새끼 진짜 장난 아니었구나.’
어색한 얼굴로 손을 흔들던 요한은 그동안의 쓰레기 같던 이미지를 생각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쏟아지는 시선과 함성 소리에 말 그대로 몸이 꿰뚫리는 것 같았다. 천천히 무대 앞으로 걸어가던 중 요한의 발 앞으로 무언가가 굴러 왔다.
“……?”
카드 지갑이었다. 아마 열광적으로 몸을 흔들다가 목에 걸려 있던 게 날아온 모양이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놀란 얼굴로 손만 움찔거리는 여자 하나가 보였다.
‘저 사람이 주인인가.’
빤히 그쪽을 응시하던 중, 요한과 여자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요한의 손에 들린 자신의 카드 지갑을 보는 순간, 여자의 눈이 어마어마한 경악으로 물들었다.
반쯤 얼이 나간 표정으로 눈만 이리저리 굴리는 폼이 웃겼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결국 요한은 가던 몸을 틀어 팬들 쪽으로 가까이 걸어갔다.
소리 지르며 좋아하는 멤버의 이름을 외치던 팬들은 갑자기 요한이 다가오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모세가 된 기분을 느끼며 그가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팬들이 전부 무슨 일이냐며 웅성거리는데, 요한이 손가락으로 한 여자를 가리켰다. 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고개를 돌려 요한이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다. 수많이 시선들이 집중되자 여자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여기 카드 지갑.”
손에 들린 카드 지갑을 흔들어 보이던 요한은 받으라고 외치면서 지갑을 던졌다. 지갑은 포물선을 그리며 정확하게 여자의 손에 떨어졌다.
“다음부터는 조심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는 데도 여자는 반응이 없었다. 넋이 나간 듯한 얼굴로 요한과 제 손에 들린 카드 지갑만 번갈아 볼 뿐이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앞에서 걸어가던 재민이 요한의 쪽으로 걸어왔다. 팬들과 요한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눈치챈 그는 혹시 무슨 사고라도 쳤나 걱정했지만, 팬들의 얼굴을 보니 다행히 그런 건 아닌 듯했다.
“별거 아니에요. 잔소리 듣기 전에 얼른 올라가죠.”
요한의 말대로 아까부터 매니저가 시퍼런 눈으로 어서 무대로 올라오라며 재촉하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은 자리에 앉아 사인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요한은 재민의 등을 밀며 빠르게 걸었다. 매니저의 잔소리가 무섭진 않지만 엄청나게 귀찮았다. 한 번 터지면 아라비안나이트처럼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