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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1. 외국 인명, 지명, 작품명 및 독음은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되 관용적 표기와 동떨어진 경우 절충하여 실용적 표기에 따랐습니다.
2. 곡명은 〈 〉로, 앨범명은 『 』로, 책과 미술 작품, 오페라는 《 》로 표기했습니다.
3. 본문 중에 한국어 대화는 “ ”로 외국어 대화는 「 」로 표기했습니다.


1화
00. 비행에 앞서


2011년 겨울, 뉴욕

슬프거나 화난 얼굴로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번쯤은 이기고 싶을 만도 한데 니나는 주먹밖에 안 냈다. 주먹밖에 못 내는 바보라고 놀리면서도 아빠는 늘 져 준다.
일부러 지는 게임을 하는 니나 덕분에 모두들 순수하게 행복한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한쪽 얼굴에 깊은 보조개를 만들면서 환하게 웃는 니나를 보고 싶은 나는 한 번도 져 주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2주 앞으로 다가왔고 모처럼 만에 주어진 하루를 둘만의 추억이 가득한 장소에서 보내고 싶어 니나에게 뉴욕으로 와 달라는 전화를 했다. 비단 가위바위보뿐만 아니라 뭐든지 상대에게 맞춰 주던 니나가 처음으로 ‘안 돼.’라고 대답했다.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이제는 자신도 보스턴에서 마주쳤던 반짝이는 사람들처럼 힘차게 목적성 있는 걸음을 내딛고 있다고 말했다.
봄에 내게 다녀간 후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오랜 시간을 웅크리고 있었던 니나는 거인의 발걸음으로 내가 높이 쌓아 놓은 담을 가뿐히 넘어 버렸다. 추억하는 건 혼자서도 가능하다고 자위하며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륙하고 좌석벨트 사인이 꺼지기 무섭게 의사를 찾는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레지던트 1년 차 시절,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두고 잠깐 니나를 보러 가던 런던행 비행기 안에서도 같은 상황이 발생했었다. 다급하게 달려갔더니 단순한 멀미 환자였다. 다행인 일이었지만 다소 허무한 마음으로 기내에 구비된 약을 처방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그것도 일등석까지 만석인 채 날아가면서 전문의 한 명 탑승하지 않았을 리 없을 텐데 방송이 한 번 더 나왔다.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내가 메디컬 스쿨에 진학한 것이 가십지가 아닌 전통 있는 일간지 일 면에 실렸던 탓에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이번엔 나서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밤낮 없는 공부에 로테이션하고 숙소에 돌아오면 기절하듯 쓰러졌다. 두 시간 이상 자는 것도 사치였을 만큼 삭막한 일상을 용케도 버텨 냈지만 나란 놈은 좋은 의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던 때도 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천진한 동기는 없었다. 다들 정말로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 그만큼 덜 소중한 뭔가를 포기하면서 어른이 되니까 우주로 뻗어 나가고 싶었던 유년기의 꿈을 접는다고 해서 억울하지는 않았다.
3분이 흘렀을까? 다급하고도 무거운 구둣발 소리와 함께 체격이 좋은 중년의 승무원이 내 곁에 와 섰다. 비장하게 “당신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하버드 메디컬 스쿨에 갔나 봅니다.”라고 하며 어깨에 손을 올렸다. 분위기에 제압당해 자리에서 일어나 승무원을 따라 뛰었다.
뒤쪽엔 젊은 여성 승객이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을 호소하며 누워 있었다. 환자에게 나이와 병력, 이런저런 증상에 대해 질문했다. 심장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말을 겨우 뱉어 내던 여성의 호흡이 멎어 버렸다.
최대한 빨리 비상 착륙 해야 한다고 알린 후 상의를 벗기고 승무원 두 명의 보조를 받아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부사무장이 가져다준 자동제세동기의 패드를 여자의 몸에 부착하고 매뉴얼대로 약액을 주사했다. 잠시 뒤 환자의 호흡이 돌아옴과 동시에 비행기는 무사히 로건 공항으로 회항했다.
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구급대원에게 환자를 인계하고 셔츠 차림으로 다시 비행기에 올랐을 때, 생명의 존엄성 앞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려 준 멋진 승객들로부터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마지막까지 연주를 훌륭히 해낸 연주자에게 쏟아지는 갈채 같았다. 멋쩍은 표정을 숨기고 자리에 앉았다.
「연주가가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지 않는다고, 화가가 멋진 그림을 그려 내지 않는다고 해서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사람은 없겠지. 당신은 분명 좋은 의사가 될 거요.」
승무원이 데리러 왔을 때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던 옆자리 남자가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자는 척하고 있었지만 끌려가다시피 한 것 알고 있어.’라고 훈계하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로건에서 라구아디아 공항까지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한 비행은 세 시간 연착되었다. 공항을 빠져나오며 뉴욕에 왔으니 인사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작년 겨울 오페라 관람 후 대화도 없는 식사를 하고 급하게 헤어진 게 마지막 만남이었다.
엄마는 다음 주 중에 《헨젤과 그레텔》을 함께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재작년에도, 5년 전에도 어린이를 대동한 관람객이나 보는 오페라를 다 큰 아들과 관람한 사실을 그녀는 잊은 게 분명하다.
기대치가 바닥인 사람에겐 실망할 것도 없었다. 바쁘다는 대답에 엄마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무뚝뚝하게 전화를 끊었다.
혹독한 영하의 바람은 정신을 예리하게 깨워 준다.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 아침 라디오에선 오후부터 많은 눈이 예상되니 내일은 윈터 원더랜드가 된 센트럴 파크로 산책을 나가 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일기예보와는 완전히 엇나간 겨울 하늘은 티 없이 맑고 투명하기만 하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소년이 닿을 수 없어 더욱 열망했던 하늘, 특히 어두워야 제 모습을 드러내는 별을 통해 우주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밤하늘을 좋아했다. 지금 저 위에서 반짝이고 있는 빛의 고향은 어쩌면 소멸했을지도 모른다.
과연 시간에 맞설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산 것과 죽은 것이 공존하는 병원에서 청춘을 보내며 인류에게 가장 위협적인 에너지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더 뚜렷해졌다. 오늘만 해도 몇 초만 지체됐다면 한 여성은 유명을 달리했을지도 모른다.
의사의 윤리를 저버린 자신을 책망하던 그때, 적막을 깨고 이메일 알람이 울렸다. 그쪽은 새벽 2시, 일정대로라면 오늘은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에서 공연을 했겠구나.
피아니스트는 하루에도 몇 번씩, 혹은 바쁠 땐 며칠 치를 몰아서 내가 가르쳐 준 가짜 이메일 주소로 성실하게 편지했다. 무려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답장 한 번 받지 못해도 그는 의심하지 않았다.
편지를 받은 지 삼천 일이 지나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편지의 원동력은 관성이 아닌 사랑이라는 것. 고작 몇 주의 짧았던 만남에 8년이라는 시간 에너지가 더해져 신화가 되려 한다.
한 부모에게서 나진 않았지만 생각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꿈에서조차 자신을 감시해야 했던 나보다 한 여성을 노골적으로 그리워하며 쓴 피아니스트의 새벽 편지가 더 순수했다.
내가 둘에게 한 짓은 용서받을 수 없겠지…….

유명한 부모를 둔 탓에 출생의 순간부터 과도한 관심을 받아야 했고 평범한 일상조차 특별하게 해석되기 일쑤여서 어린 시절엔 할아버지 제임스나 그의 친구들처럼 오래 산 사람들과 담백하게 어울렸다. 덕분에 그들의 무한한 사랑 안에서 인간관계로 고민하지 않고 사회 속의 내 위치보다는 드넓은 우주에 속한 나의 좌표를 생각할 수 있었다.
반면 니나는 광활한 밤하늘을 보며 돌아가신 친아버지의 얼굴을 찾았다. 먼저 간 이를 그리워하면서 흘린 수많은 눈물이 별이 되어 저렇게 반짝이는 거라고 니나는 진지하게 믿었다.
우주라는 자극이 없었다면 인류가 가질 수 있는 상상력이란 보잘것없었겠지.
목성 탐사를 목적으로 외계 지성체에게 전하는 인류의 메시지를 새긴 금속판을 장착하고 지구를 떠난 지 39년, 지금은 교신이 끊어져 태양계 외곽을 떠돌고 있는 파이어니어 10호.
우리가 지구를 떠나고 없는 먼 미래에 인류의 후손이 받아 볼 답장을 상상하면서 두근거렸던 소년은 어디로 간 걸까?
익숙한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자 길이 막히는 걸 핑계 삼아 택시에서 내렸다. 극적인 변화를 주지 않고 그 거리의 색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가끔 견딜 수 없게 그리워하게 만드는 뉴욕의 매력은 바로 이런 꾸준함이다.
기다란 빛의 꼬리를 달고 지나가는 노란 택시에 빠르게는 몇 주 만에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빌딩의 대형 광고판까지 합세해 평소에도 활기 넘치는 도시지만 이맘때는 곳곳에 크리스마스의 색채까지 덧입혀져 모두를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화려한 일루미네이션 앞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사진 좀 찍어 주시지 않겠어요?」
더플코트 차림의 남자는 어딘지 상기되어 있었다. 그의 곁엔 바짝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리를 둔 것도 아닌, 미묘하게 떨어져 있는 아담한 키의 여자 동행이 있다. 그녀 역시 장밋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쩌면 행복이 이런 표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카메라를 받아 들고 한 프레임 안에 안 들어간다는 핑계로 좀 더 붙어 서라고 했다. 머뭇머뭇하던 커플은 거리를 바짝 좁히며 조금은 연인다운 모습이 된다.
“쓰리 투 원, 치―즈!” 하는 순간, 모니터에 비친 두 사람의 얼굴은 샹들리에의 스위치가 켜진 듯 환하게 밝아져 크리스마스 일루미네이션이 일순 빛을 잃었다. 감사의 인사 후 발길을 돌리는 그들은 자연스럽게 손깍지를 끼고 있었다.
감히 나로 인해 두 개의 인생이 서로에게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을까?

매일매일 누군가는 누군가의 산타클로스.
다만 요즘은 그런 일이 조금 빈번하게 언급되는 계절.



01. 무거운 것들이 날아오르려면


같은 해, 홍콩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데도 없는 사람 취급을 했다. 차라리 무시당하는 게 낫다고 느낄 정도로 멸시당했다. 신의 존재는 안 믿는 주제에 제발 누군가 불쌍한 나를 찾아서 악의 무리에서 구원해 주기를 바랐다.
내일모레면 스물아홉인 내게 제대로 된 직장은 잡았느냐, 만나는 사람은 있느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관심은 없지만 집안의 어른임을 생색내면서 괴롭힐 수 있는 가족 모임용 질문이 많은데도 투명 인간 취급이었다.
불쌍한 처지는 아홉 살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아서 외할아버지 팔순 잔치에서 인간 병풍 노릇을 하고 부산 할매한테로 왔다.
전생의 원수가 친척으로 만난다고 참기름집 할매가 중얼거린 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외갓집에서 인간 취급도 못 받고 온 줄 빤히 알면서 할매는 누구도 미워해서는 안 된다, 원망해서도 안 된다고만 한다.
우리는 사랑하면서도 늘 티격태격하는 모녀 사이 같다. 바리바리 챙겨 주시는 밑반찬을 받아서 헤어질 때는 할매를 큰 집에 혼자 남겨 두고 오는 게 속상하지만 울지 않았다. 어릴 적 오지도 않을 엄마를 기다리면서 평생에 흘릴 눈물을 다 흘렸는지 나는 눈물이 없는 괴물이 되었다.
눈 속을 달려간다.
리무진버스엔 나를 포함해 세 명뿐이다. 내게 목례를 한 남자는 방글라데시에서 왔단다. 그의 손에 들린 버터 크림빵이 쓰다.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절반을 떼어 내게 건넸지만 사양했다.
멋쩍어서 자는 척하다가 눈을 떴는데 고작 30분이 흘러 있었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앉은 그를 슬쩍 쳐다봤다. 잠들었구나. 입가에 묻은 하얀 크림이 어두운 피부에서 도드라져 보였다.
집세를 내고 나면 이번 달은 적자. 8만 원을 아끼겠다고 김해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포기하고 인천으로 간다. 집에서 나올 때 할매가 청바지 주머니에 찔러 준 봉투가 생각나 조심스럽게 꺼냈다.
할매는 고모와 삼촌들한테서 용돈을 받으면 하나도 안 쓰고 모아 놨다가 내게 주곤 했다. 나는 사촌들 중에서 할매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둘째 아들의 늦둥이. 할매 눈엔 여덟 명의 손주들 중에서 제일 한심하게 보이는구나 생각하면 자존심에 타격을 입지만 자존심이 밥 먹여 주진 않지.
할매의 용돈은 집세에 보태든 책을 사 보든 요긴하게 쓰였다. 봉투가 얇아서 이번에도 수표인가 생각했는데 철자법을 무시한 편지가 나왔다. 싸 주신 콩잎장아찌와 무말랭이 걱정으로 시작한 편지는 아빠, 엄마 이야기로 이어진다.

니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겠나?
아빠 때문에 남자를 미워하고 살면 니만 손해다.
사랑은 좋은 기다.
애인 생기면 할매한테 델꼬 온나.
새알 잔뜩 넣은 수제비 끓여 주꾸마.
그리고 엄마한테도 잘해라.
별이는 하늘이 주신 느그 엄마 섬물 아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