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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간 보기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는 1월의 어느 날.
흩날리는 눈발이 창가에 소복이 쌓여 갔고 성에가 생길 만큼 집 안의 온도는 뜨거웠다. 트레이닝복 차림에 긴 머리를 질끈 묶고 안경을 쓴 전형적인 집순이의 모습을 한 여자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통화를 하며 씩씩거리기 바빴다.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는 거예요!”
─박 작가더러 어떻게 하라는 게 아니라…….
“지금 그 얘기는 나보고 이강현 포기하라는 말이잖아요!”
─5월에 촬영 들어가려면 이강현을 캐스팅하는 건 무리야. 박 작가도 알잖아. 이강현 2년 전부터 작품 하나도 안 하고 있는 거. 영화까지 전부 고사하고 있어. 시나리오를 보내도 소속사에서 바로 킬이라고.
“안 돼요. 이강현 아니면.”
─박 작가, 제발!
“최 감독님은 뭐래요? 감독님도 다른 사람으로 가재요?”
─일단 박 작가부터…….
“절대 안 돼요. 무슨 수를 쓰든 이강현이어야만 해요.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기획할 때부터 이강현 염두에 두고 쓴 거. 이번 캐릭터는 무조건 이강현이어야 한다고요!”
벌써 한 시간째 전화를 붙잡고 입씨름 중이었다. 긴 통화로 인해 액정이 뜨겁다 못해 볼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그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재영은 SBC 방송국에서 10월 편성을 받은 드라마 작가였다. 촬영이 들어가는 5월까지 고작 4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아직도 남자 주인공이 캐스팅되지 않아 제작사 대표는 물론 방송국에서도 난색을 표하는 중이었다.
편성까지 순전히 그녀의 이름 하나로 이뤄진 결과였다. 그동안 세 편의 드라마로 공전에 히트를 기록해 최연소 스타 작가 반열에 올랐고, 재영에 대한 관심은 고스란히 차기작으로 쏠렸다. 제작사에서는 그만큼 기대를 거는 관계자들의 눈치를 살펴 남자 주인공 캐스팅은 쉽게 갔으면 했지만 그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강현, 그를 꼭 잡아야 했다. 이번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선 멀리서도 후광이 비친다는 잘난 얼굴 말고도 그의 출중한 연기력이 필요했다. 숱한 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수차례 받음으로써 이미 검증됐지만 2년 전 돌연 활동을 멈추고 그 흔한 CF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TV 속에서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 이강현을 두고 호사가들은 입방아를 찧었지만 그녀는 아랑곳없었다. 38선만 넘지 않았다면 반드시 찾아내 캐스팅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이강현 아니면 안 돼요. 절대!”
─바, 박 작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대표의 음성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바깥 날씨는 영하를 기록 중인데 온몸에서 열이 뿜어져 나와 미칠 지경이었다. 재영은 손부채질을 해 가며 롱 패딩을 걸쳐 입고 칼바람 속으로 뛰어들었다.
맨발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아파트를 나온 그녀는 단지 밖에 위치한 편의점으로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잔뜩 골랐다. 한겨울임을 생각하면 조금 아이러니한 선택이었지만 속에서 천불이 나 냉수를 들이켜도 시원치 않을 판이었다.
검은 봉지에 아이스크림을 가득 담아 편의점을 나온 그녀는 한 손에 꽈배기 모양의 아이스크림을 든 채였다. 어느새 입술은 붉어졌고 답답했던 체기가 조금은 내려가는 듯했다.
이번 드라마는 판타지 요소가 많은 사극이라 반 사전 제작이 불가피했으며 5월 촬영 전에 대본을 8회까진 뽑아야 했다. 사전 제작으로 손해를 본 드라마가 많았기에 그 점도 염두에 둬야 했다. 세트까지 지으려면 시일이 촉박한데 캐스팅 문제로 여기저기서 압박을 해 오니 대본도 통 쓰질 못하고 먹는 것도 시원치 않았다. 한숨을 쉬며 엘리베이터에 오른 그녀는 29층 버튼을 눌렀다.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작년 연말에 마련한 강남의 타워팰리스로 재영의 드림 하우스였다. 지난 6년 동안 제작사에서 마련해 준 작업실에서 먹고 자면서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집을 장만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집에서 우아한 클래식을 들으며 고상하게 대본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2주 전에 이사를 했는데 이 집이 문제일까. 하루가 멀다고 방송국과 제작사 대표에게 오는 전화 때문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이강현, 그자가 문제였다.
─29층입니다.
나긋한 안내양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녀는 앞집 현관문 앞에 쭈그려 앉아 있는 작은 아이를 보고는 멈칫했다.
빨간 구두를 신은 아이는 붉은 망토를 두른 채 노란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앞집 사람을 본 적 없었던 재영은 아이에게 슬쩍 다가갔다.
“여기에 사니?”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다가간 그녀는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허리를 굽혀 아이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무릎에 파묻고 있던 아이는 낯선 손길에 살며시 얼굴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아이의 맑은 목소리에 그녀는 순간 귀가 정화됨을 느꼈다. 몇십 분 전까지만 해도 방송국 관계자와 제작사 대표에게 되도 않는 소리를 들어서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는데 아이의 목소리는 아이스크림보다 더 달콤했다.
“나는 여기 앞집에 살아.”
뽀얀 얼굴에 쌍꺼풀이 진 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아이는 천사 같은 목소리를 뱉어 냈다.
“안녕하세요. 여섯 살 이하린입니다.”
아이가 손을 내밀자 놀란 것도 잠시뿐이었다. 그녀는 아이와 악수를 했다. 하린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보들보들했다. 이래서 젊음이 좋은 건가 싶은 찰나의 멍청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차, 싶어 고개를 내저은 그녀는 아이를 향해 입을 뗐다.
“반가워. 언니는 박재영이라고 해. 음, 스물아홉 살이야.”
참 귀엽고 예쁜 아이였다. 추위에 두 볼이 빨개진 아이는 양쪽 귀도 얼어붙은 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혼자 왜 나와 있어?”
재영은 아이를 좋아했다. 길을 걷다가 지나가는 아이에게 인사를 할 정도로. 아마 조카가 있었더라면 물고 빨고 했을지 모른다. 안타깝게도 외동딸인 그녀는 친조카가 없었다. 사촌 언니와 오빠가 낳은 조카들이 있긴 했지만 자주 볼 일이 없었던 탓에 철마다 옷가지들을 보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녀가 저 초롱초롱한 아이의 눈빛을 무시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엄마는 원래 없고 아빠는 일하러 갔어요. 그래서 아줌마가 집에 있는데 오늘은 아줌마도 없어요.”
엄마가 원래 없다는 말에 흠칫 놀란 그녀는 멋쩍은 듯 웃으며 아이스크림 하나를 아이에게 건넸다.
“이, 이거 먹을래?”
멜론 맛 아이스크림을 한참 바라보던 아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빠가 먹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교육을 제대로 받았네. 어릴 때부터 이런 거 먹으면 안 좋지.
재영은 아이스크림을 다시 봉지에 넣곤 얼음장처럼 차가운 아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던 하린은 그녀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 추우니까 아줌마 올 때까지만 언니 집에 가 있자.”
아빠가 재혼해서 새엄마가 있는 거 같았다. 그녀는 나름대로 가계도를 머릿속에 그리며 아이를 집으로 이끌었다. 하린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그녀의 집으로 들어왔다.
바깥 날씨와 달리 훈훈한 온기가 가득한 집 안은 아직 정리하지 못한 이삿짐이 곳곳에 있어 난잡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여기 잠시 앉아 있어.”
재영은 소파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옷가지를 한쪽으로 밀어 놓고 검은 봉지를 냉동실에 쑤셔 넣었다. 그리곤 냉장고에 있던 우유와 오렌지 주스를 컵에 따랐다. 뭘 좋아할지 몰라 두 개 다 가져와 하린에게 내밀자 아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우유가 든 곰돌이 모양의 컵을 집어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아이는 예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잊지 않았다. 인사성이 밝은 듯했다.
“유치원 다니는 거야?”
“네에, 오늘 빨리 집에 가는 날인데 집에 아무도 없었어요.”
어린아이를 혼자 두고 새엄마라는 사람은 어딜 간 걸까. 혹시 신데렐라에 나오는 못된 계모일까.
순간 스치는 생각에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해피엔딩만 추구하는 드라마 작가라는 사람이 이런 몹쓸 생각을 하다니. 아주 별로였다.
“언니는 혼자 살아요?”
우유 한 컵을 금세 비워 낸 하린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입가에 하얀 우유가 묻은 모습이 귀여워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는 티슈를 꺼내 아이의 입가를 닦아 주었다.
“혼자 살아. 언니 부모님은 전부 외국에 계시거든.”
“아, 그렇구나.”
“하린이는 언니나 오빠, 동생 없어?”
“아무도 없어요. 아빠만 있어요.”
아이의 얼굴에 잠시 처연한 빛이 보였다.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 믿고 싶었던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하린의 보드라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곱고 예쁜 아이가 계모에게 괴롭힘을 당할 리 없었다. 아이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탓일 거라 믿으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띠리링─ 찰칵, 쾅─
순간 미세했지만 앞집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재영보다 아이가 먼저 벌떡 일어났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잘 가라는 인사를 채 하기도 전에 하린은 고개를 숙인 뒤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마치 신기루였던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쟁반 위에 있는 곰돌이 컵만이 아이가 이 집에 잠시 머물렀었다는 걸 증명했다.
“되게 예쁘네.”
소중한 인형을 빼앗긴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그녀는 작업실로 쓰는 서재로 들어갔다.
데스크톱과 노트북이 나란히 놓인 널따란 책상 위에는 온갖 자료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한쪽 벽면엔 또 다른 자료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드라마 작가로 데뷔한 후 줄곧 보조 작가 없이 홀로 작업을 해 온 그녀는 3백억 원이 투입되는 이번 작품의 자료 조사도 혼자 시작했다.
며칠 동안 한 글자도 쓰지 못해 겨우 4회 대본까지 완고한 상태였다. 서둘러야 했다. 제주도 로케이션 촬영까지 고려되고 있어 재영은 속이 타들어 갔다.
노트북 전원을 켜고 의자에 앉은 그녀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주인공의 대사도 아니고 지문도 아닌 앞집 아이의 동그란 두 눈이었다.
“아악!”
천사에게 홀린 것일까. 그녀는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절규했다. 남자 주인공 캐스팅으로도 모자라 앞집 아이에게까지 발목을 잡혀 버렸다. 이래서 대본 작업을 할 땐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바깥은 온통 자극적이고 유혹적인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이게 다 이강현 때문이다. 그 망할 놈의 자식만 아니었으면 속에서 천불이 날 일은 없었을 테고 아이스크림이 생각나지도 않았을 텐데. 망할.

아침이 밝았다. 대본을 쓰기 위해 밤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지만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해가 떴다. 정말 최악이었다.
재영은 퀭한 얼굴로 작업실에서 나와 갈아 놓은 원두를 커피 메이커에 넣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 진한 원두커피가 가득 내려졌다. 머그잔에 담아 거실로 나온 재영이 소파에 앉아 안경을 벗어 내려두고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원고를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상태가 일주일째 지속되었다. 원인은 이강현. 그 문제를 없애지 않는 한 대본에 지문 하나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지난 드라마들은 진행하는 데 막힘이 없었다. 4부작 극본에 당선된 초짜 작가의 첫 미니시리즈 대본에도 톱스타들이 캐스팅됐었다. 그 드라마를 필두로 차기작으로 선보인 두 작품 역시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이 함께해 시청률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해 연기대상에서 작가상과 작품상은 물론 주·조연들이 모두 상을 휩쓸었었다. 캐스팅 문제에 난항을 겪은 적이 없었기에 재영은 지금 그로기 상태였다.
그녀는 소파에 던져두었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가 재영을 반겼다. 역시나 드라마국 국장과 제작사 대표, 그리고 이번 드라마를 총괄하는 최우식 감독의 전화가 대부분이었다.
제작사 대표나 드라마국 국장한테 전화해 봤자 똑같은 소리만 할 테니 같은 편이라 자부하는 최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윽고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격양된 음성에 재영은 잠이 다 깨는 듯했다.
─박 작가,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밤샘하느라고요. 그런데 감독님, 하나도 못 썼어요. 나 지금 미쳐 버릴 거 같아요.”
─일단 제작사로 와.
“갑자기 왜…….”
─이강현 매니저랑 미팅하기로 했어!
“진짜요? 매니저랑 연락 안 되는 거 아니었어요? 전부 잠수 탔다면서요!”
─나도 몰라. 갑자기 먼저 연락이 왔어! 나 지금 제작사로 가는 중이니까 박 작가도 빨리 와!
“네, 네!”
전화를 끊자마자 재영은 허겁지겁 욕실로 달려 들어갔다. 며칠 동안 씻지 않은 탓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대본을 쓸 때엔 시간이 아까워서 잘 씻지도 않았다. 이번엔 원치 않았던 스트레스로 인해 의욕을 상실했던 터라 씻는 것도 귀찮았다. 그런데 이강현이라니! 그의 이름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모든 힘이 솟아나는 듯했다.
샤워를 마친 재영은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 빠르게 외출 준비를 했다. 옷걸이에 걸려 있던 목도리와 코트를 챙긴 뒤 가방을 들었다.
“아, 대본!”
현관 앞에서 그녀의 발걸음을 붙잡은 건 4회까지 완고된 대본이었다. 제작사에도 있겠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에 대본까지 챙긴 뒤 부츠를 신고 집을 나섰다.
이사한 뒤로 2주 동안 타지 않았던 차를 몰고 가기 위해 재영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냉골이 따로 없는 차에 올라탄 그녀는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와 10분 거리에 있는 제작사 사무실로 향했다.

“감독님, 헉…… 제가 좀 늦었죠.”
허겁지겁 도착한 재영은 미처 말리지 못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최 감독의 옆자리에 앉아 냉수를 들이켰다.
“저도 조금 전에 도착했습니다.”
부드러운 음성이 회의실 안에 울려 퍼졌다. 냉수를 마시던 재영의 시선이 맞은편에 앉은 이강현의 매니저에게로 향했다. 배우를 해도 될 정도의 외모였다. 저 얼굴로 매니저를 한다니. 안타까운 마음에 재영은 매니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현이 담당 실장 윤동찬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박재영입니다.”
“박 작가님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습니다. 하성이도 저희 소속사 식굽니다.”
“아, 맞다. 그랬죠.”
지난해 10월에 종영한 ‘그대가 가르쳐 준 이별’의 남자 주인공이었던 류하성은 이강현과 같은 소속사의 배우였다. 생각해 보면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은 죄다 더블에이치 소속이었다. 아쉬운 쪽이 먼저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 그녀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작가님과 감독님이 강현이를 원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저희도 정신이 없어서 미처 연락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매니저가 민망할 정도로 고개 숙이며 사과하자 덩달아 최 감독도 고개를 숙였다. 재영은 최 감독의 허리를 손으로 쿡쿡 찔렀다. 이강현의 캐스팅이 절실하긴 했지만 감독의 위신을 떨어트리면서까지 굽실거리는 행동은 옳지 않았다. 그녀가 눈치를 주자 최 감독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문을 열었다.
“5월부터 촬영 들어가야 해서 캐스팅이 빨리 끝나야 합니다. 남자 주인공이 안 정해져서 주·조연 캐스팅도 마무리가 안 됐습니다. 저희는 이강현 씨를 1순위로 생각하고 있고, 그 외에 다른 인물은 생각하지도 않은 상태라 조급한 건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