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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기대도 하지 않은 답변이었다. 아니, 예상을 하지 못한 답이라고 해야 하나. 그야 팀원 중에서 그녀에게 ‘괜찮다.’라고 평했던 사람이 전무하니 말이다. 다들 얼떨떨하게 굳어 있던 중에서 윤 과장이 제일 먼저 호쾌하게 웃으며 바로 옆에 앉은 경도의 어깨를 툭, 툭 리드미컬하게 두드렸다.
“이야, 백 대리. 백 대리는 입사 때부터 그랬어. 지 팀장 하나도 안 무서워하고. 남들은 죄 깨갱 기는데.”
“일을 잘하잖아요, 경도 씨는. 아까도 말했지만 깨갱 길 만한 일이 뭐 있었나요?”
과장님 옛적 가져다 붙이면 못 써요.
분위기는 아까처럼 다시금 화기애애해졌다. 지 팀장 이야기로 경도까지 가세하니 마치 대동단결이라도 한 느낌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경도의 말에 웃음은 한 번 더 뚝, 하고 끊겼다.
“그리고 지 팀장. 생긴 것도 호감이잖아요. 어디 가서 서른셋으로 보겠어요. 액면으로는 저보다 세 살 많다기보다 그냥 세 살 어려 보이는데.”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경도 씨?”
“새, 생긴 게 호감이라뇨. 살벌하면 또 몰라도.”
“하하, 이야. 백 대리 농담 좀 하네? 푸하하하하.”
“왜요, 귀엽잖아요.”
“……뭐?”
“경도 씨 얼굴만 잘생긴 줄 알았더니 마음씨도 잘생겼다. 아주 후한데?”
“까놓고 말해서 별로인 건 아닌데 그렇다고 귀여운 것도 아니야. 지 팀장한테 귀엽다는 게 가당찮은 수식이야? 키 좀 작다고 다 귀여워? 에이, 아니지. 절대 아니지.”
“게다가 스타일도 매일 똑같잖아요. 꾸미는 것도 아닌 칙칙한 스타일.”
아, 스타일. 그렇지, 지 팀장이 고수하는 스타일이 있긴 하다.
갑갑하지도 않은지 늘 윗단추까지 꼼꼼히 채워서 입는 셔츠, 치마 한 번 입지 않고 색이나 폼만 조금씩 바뀌는 정장 바지. 높지도 낮지도 않은 미들힐의 구두. 특색 하나 없는 차림이 주는 분위기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평범함을 넘어서 지루할 법했지만 경도에게는 그게 오히려 더 묘했다. 차림은 그렇다 한들 얼굴이 주는 느낌은 다르기 때문이었다.
여느 직원 할 것 없이 똑같이 대하는 사무적이고 딱딱한 말투는 동그랗고 귀여운 얼굴과는 쉽게 매치가 되지 않았다. 연한 립색만 선호하는 입술을 강렬한 레드빛이 도는 색으로 가득 채우면 어떨까 싶을 만큼 도톰하고, 유독 댕그란 눈은 사탕 가게에서 사탕을 사 달라고 조르는 어린아이처럼 초롱초롱했다. 게다가 길이를 항상 다듬는 건지 언제나 어깨에 닿을 만한 기장을 유지하고 있는 단발은 시크하고 차갑기보다는 안 그래도 어려 보이는 얼굴을 한껏 더 어려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이 꽤 흥미롭고 어쩌면 자극적이랄까. 이것이 입사 때부터 지 팀장에게서 가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드러난 새하얀 목선 아래의 쇄골은 어떤 모습일지, 속살도 목처럼 뽀얄지 상상을 하게 만드니까.
“참, 요 앞 사거리에 새로 생긴 펍 가 봤어요? SNS에서도 완전 핫하던데.”
“아, 진짜? 이름이 뭐야?”
하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 동의할 가치도 못 느끼겠다는 듯 대화의 주제는 금세 다른 걸로 넘어갔다. 하하, 호호 떠드는 틈에서 유일하게 경도만 의뭉스럽게 미소를 그렸다. 세상 서럽게 울고 있던 그 모습을 하필 제가 봤다는 사실이 너무나 다행이다. 지영주의 숨겨진 구석을 오로지 저만 하나 알아낸 기분이라서.
그렇다면 뭐가 더 있을까. 드러내지 않는 본모습이 얼마나 더 있을까.
“또 이러시네, 손님. 신발 좀 벗어 놓지 마시라니까.”
“왜요, 이거 깨끗해요. 난 발에 땀 없어서 냄새도 안 나.”
영주는 굳이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 구두를 들어 보라는 듯이 코를 킁킁거렸다. 그럼에 편의점 알바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아, 가게 미관상 그렇잖아요.”
“이렇게 밑에 내려다 두는데 누가 굳이 허리까지 숙여 가며 봐요? 걱정 마요. 아무도 몰라.”
“아, 내가 알잖아요, 내가.”
“하이참, 까다롭게 구네, 증말.”
식사를 하는 내내 잔소리를 할까 싶어 영주는 하는 수 없이 가지런하게 벗어 놓았던 구두를 다시금 신었다. 그래 봐야 온전히 신는 게 아니라 발가락만 신발 위에 대충 걸쳐 놓은 형색이었지만 말이다.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왜 항상 이리로 와요? 스타기획이면 여기서 한참 아니에요?”
진열장에 과자를 하나, 둘 올리며 알바는 턱 끝으로 영주의 목에 걸려 있는 사원증을 가리켰다.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본 게 아니라 계산을 할 때마다 그냥 자연스레 시선이 가서 기억해 둔 것이었다.
“운전해서 왔죠, 뭘.”
영주는 알바를 향해 차 키를 짤랑짤랑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여기 편의점이 점심시간에도 제일 한가하잖아요.”
“아. 그렇긴 하죠. 회사 모여 있는 곳에서는 거리가 좀 있으니. 그런데 항상 혼자네요?”
“혼자 먹는 게 편해요. 불편한 사람들이랑 밥 먹으면 항상 체하거든.”
“아.”
그런가 보다, 고개를 끄덕인 알바는 제 할 일에 마저 열중했다. 영주 또한 마침 알맞게 익은 우동을 후후 불어 후루룩, 후루룩 해치우기 시작했다.
본래부터 사람들을 싫어한다거나 굳이 가리진 않았는데 사회초년생 때 영업부에서 일을 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조용하고 필요 이상으로 말을 하지 않는 성격으로 바뀌어 버렸다. 물론 일을 할 때야 180도 다른 모습으로 잘 웃으며 기호를 맞추고 분위기도 띄우곤 했지만 그렇게 에너지를 가식적으로 쏟고 나니 정말 제 생활에서는 구태여 연기를 하며 웃거나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영업부에서 기를 쓰고 부서 이전을 한 이후로 제일 편한 게 이거였다. 필요한 일을 제외하고 굳이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어도 되지 않는 거. 이렇게 멀찍이 나와서 혼자 먹는 것만큼 마음 편한 게 없다. 눈치 안 봐도 되고, 시끌벅적하게 안 섞여 있어도 되고. 안면만 트고 저에 대해선 자세히 모르는 알바생과 몇 마디 나누는 것 또한 나쁘지 않고 말이다. 게다가 새로운 도시락 메뉴가 나오면 묻지 않아도 추천해 주곤 하니 단골 편의점으로 이만한 곳이 없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와는 다른 일상이었다. 아니, 이제부터는 달라질 일상의 연속이다. 의무적으로라도 왔던 점심 맛있게 먹으라는 메시지는 어느새 시간이 끝나가는데도 오질 않았고, 회사로 복귀하는 길에 걸었던 전화번호도 이제는 지워야 마땅했다. 그런 버릇이자 습관 같은 건 최대한 빨리 지워야 정신 건강에 좋았다.
‘후우, 이쯤하면 오래했어. 그만하자, 이제.’
고작 1년 반. 2년도 다 채우지 못한 1년 반이 뭐가 오래라고 그렇게 쉽게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건지, 대체.
‘하, 역시. 넌 진짜…… 끝을 내도 이렇게. 후우…… 그래, 알아서 해. 난 필요 없으니까 어디 팔아 버리든, 내다 버리든 네 마음대로 하라고.’
그럼 뭘 어떻게 내야 하는 건데. 헤어지자고 말을 하는데 그러면 더 이상 이쪽에서 뭐라고 끝을 내야 하는 거냐고.
나쁜 놈.
다 쏟아 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 억울해서 결국 눈물이 나왔다. 입 안에 면발을 넣고 궁상맞게 눈물이나 흘리고 있는 꼴이라니. 아침에는 팀원 하나를 울려 놓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잘만 있었으면서.
“아, 맵네. 맵다, 매워.”
얼큰한 맛이라더니 얼큰하지 않고 맵잖아. 매워. 매운 것 때문에 눈물이 나는 거야.
괜찮을 거라고 최면을 걸 듯 수도 없이 스스로 말을 했건만 정말 괜찮아지는 게 하나도 없는 오후다.
다시금 후루룩, 후루룩 면을 씹지도 않고 삼켰다. 배가 주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허한 속을 그렇게라도 달래듯 억지로, 억지로.
점심식사 후에 카페인으로 입가심을 해 줘도 눈꺼풀에 유독 심하게 적용되는 중력의 법칙에 다들 나른하게 눈을 감았다 뜨는 중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식곤증을 이기지 못해 아예 고개를 뒤로 꺾는다거나 저도 모르게 괸 팔에 볼을 기대어 잠에 빠지기도 했다. 늘어지려는 하품을 참으며 오후 업무에 집중 아닌 집중을 할 즈음 경도의 시선은 조용히 영주에게로 향했다.
답답하게 채운 셔츠의 깃은 반듯하다 못해 빳빳해 보이기도 했다. 오전과 별다를 것 없이 바쁘게 서류며 모니터 화면으로 굴러가는 눈, 마우스로 갔다가 펜으로 갔다가를 반복하는 손, 구겨지지 않고 바로 세우고 있는 허리. 한마디로 흐트러짐이랄 게 없었다. 아무렇게나 주저앉아서 울어 대던 모습은 지금 저 얼굴에서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백 대리, 나 부탁 하나만.]
이만 지 팀장에게서 시선을 거둬 내고 저 또한 남은 업무에 집중을 하던 중 메신저가 깜빡였다. ‘부탁’이라고 썼지만 은근 ‘강요’와도 같은 지시 사항을 내릴 윤 과장이었다. 일단 낮은 한숨과 함께 답을 했다.
[네, 말씀하세요.]
[자료실 좀 갔다 와 줘. 참고할 게 좀 필요해서. 목록은 문자로 보내 놓을게.]
절대 직접 자료실을 왔다, 갔다 하는 법이 없는 그다. 층을 벗어난 업무 자체를 거의 하지 않을 만큼 게으르다고 해야 하나. 본래 부려 먹던 막내 사원이 외근으로 잠시 자리를 비우고 있자 그 불똥이 제게로 떨어졌다. 경도는 하는 수 없이 문자를 확인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흠, 2012년 A지점 통계 인쇄본이…….”
아주 줄줄이 많이도 부탁했네. 이건 분명 일을 몰아 두었다가 이제야 서둘러 처리하려는 게 분명했다.
고개를 가로로 절레절레 저으며 찾으려던 자료에 가까워지던 순간이었다. 점점 구석으로 걸음을 옮기니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머리를 뚝 떨어뜨리고 눈을 꼭 감고 있는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칼은 죄 앞으로 쏠려 있고 손에 안고 있는 파일들은 곧장 미끄러질 태세로.
“…….”
이렇게 되면 차라리 윤 과장이 저에게 심부름을 보낸 게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의외의 곳에서 의외인 모습으로 있는 지영주를 발견하는 기쁨을 줬으니 말이다.
‘지 팀장이 어디 조는 거 봤어? 하품조차도 안 해.’
‘카페인을 얼마나 들이부으면 그렇게 말짱할까요?’
‘대단하지, 정말.’
언젠가 졸음을 쫓기 위해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며 한 대화가 떠올랐다. 책상 위에 있는 영주의 텀블러엔 커피가 아니라 엄청난 에너지 드링크가 들어 있을 거라고 농담 삼아 떠들기도 했던 팀원들이다.
손끝에서 미끄러지려는 영주의 자료들을 한데 모아 올려 두고 경도는 아예 자리를 잡고 무릎을 세워 앉았다. 혹여 목이 아플까 봐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올려 뒤편에 기대게 하고 살짝 손바닥으로 받쳐 주었다. 하얀 얼굴에 곱게 감긴 눈 그리고 도톰한 입술이 그제야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찼다. 머리칼로 죄 가리고 있기에는 역시 아까운 얼굴이다. 특히나 이렇게 잠에 빠져 있는 모습으로 있을 땐.
“졸기도 하네.”
남들 볼까 봐 이렇게 구석에 숨어 가지고, 침까지 좀 흘리면서.
“뭐가 더 있을까요, 팀장님.”
사람들은 잘 모르는 지영주의 모습, 얼마나 더 있을까요. 그거 내가 좀 알아 가고 싶어졌는데.
오늘은 라면으로도 모자라 빵이며 김밥까지 한 줄 야무지게 먹었다. 시간에 쫓기지도 않았으면서 어디 쫓기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거의 씹지도 않고 삼켜 버린 수준이었다. 아주 빠르고, 급하게. 폭식 수준은 아닌지라 그나마 다행이랄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꾸역꾸역 뭘 먹게 된다. 고로 이별을 겪었으니 저는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계속 정량을 초과해서 와구와구 먹어 댔다. 허전함을 감내하는 최선의 방법이랄까. 그랬더니 속에서 탈이 났나 보다. 명치까지 차오르는 더부룩함에 가슴을 툭, 툭 두드려 보기도 하고 등 쪽을 탁, 탁 쳐 보기도 했지만 영 나아질 게 없었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정리한 자료를 가지고 영주의 자리 곁에 서 있던 경도가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손가락으로 도표 수치를 체크하면서도 툭, 툭. 종이를 넘기면서도 탁, 탁. 중간중간 절로 찌푸려지는 미간은 또 어떻고. 누가 봐도 속이 불편한 모양새였지만 영주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아닙니다. 이 통계 자료는 최근 건가요?”
“네.”
“그럼 이렇게 피티 준비 하세요. 피티 보고 회의해서 최종 결정하는 걸로 합시다.”
“알겠습니다.”
자료 검토를 마치고 경도가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자 영주는 조금 머뭇거리나 싶더니 이내 지갑을 챙겨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가만히 버티기가 힘들어 소화제라도 하나 사서 먹어야겠단 생각에서였다.
기대도 하지 않은 답변이었다. 아니, 예상을 하지 못한 답이라고 해야 하나. 그야 팀원 중에서 그녀에게 ‘괜찮다.’라고 평했던 사람이 전무하니 말이다. 다들 얼떨떨하게 굳어 있던 중에서 윤 과장이 제일 먼저 호쾌하게 웃으며 바로 옆에 앉은 경도의 어깨를 툭, 툭 리드미컬하게 두드렸다.
“이야, 백 대리. 백 대리는 입사 때부터 그랬어. 지 팀장 하나도 안 무서워하고. 남들은 죄 깨갱 기는데.”
“일을 잘하잖아요, 경도 씨는. 아까도 말했지만 깨갱 길 만한 일이 뭐 있었나요?”
과장님 옛적 가져다 붙이면 못 써요.
분위기는 아까처럼 다시금 화기애애해졌다. 지 팀장 이야기로 경도까지 가세하니 마치 대동단결이라도 한 느낌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경도의 말에 웃음은 한 번 더 뚝, 하고 끊겼다.
“그리고 지 팀장. 생긴 것도 호감이잖아요. 어디 가서 서른셋으로 보겠어요. 액면으로는 저보다 세 살 많다기보다 그냥 세 살 어려 보이는데.”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경도 씨?”
“새, 생긴 게 호감이라뇨. 살벌하면 또 몰라도.”
“하하, 이야. 백 대리 농담 좀 하네? 푸하하하하.”
“왜요, 귀엽잖아요.”
“……뭐?”
“경도 씨 얼굴만 잘생긴 줄 알았더니 마음씨도 잘생겼다. 아주 후한데?”
“까놓고 말해서 별로인 건 아닌데 그렇다고 귀여운 것도 아니야. 지 팀장한테 귀엽다는 게 가당찮은 수식이야? 키 좀 작다고 다 귀여워? 에이, 아니지. 절대 아니지.”
“게다가 스타일도 매일 똑같잖아요. 꾸미는 것도 아닌 칙칙한 스타일.”
아, 스타일. 그렇지, 지 팀장이 고수하는 스타일이 있긴 하다.
갑갑하지도 않은지 늘 윗단추까지 꼼꼼히 채워서 입는 셔츠, 치마 한 번 입지 않고 색이나 폼만 조금씩 바뀌는 정장 바지. 높지도 낮지도 않은 미들힐의 구두. 특색 하나 없는 차림이 주는 분위기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평범함을 넘어서 지루할 법했지만 경도에게는 그게 오히려 더 묘했다. 차림은 그렇다 한들 얼굴이 주는 느낌은 다르기 때문이었다.
여느 직원 할 것 없이 똑같이 대하는 사무적이고 딱딱한 말투는 동그랗고 귀여운 얼굴과는 쉽게 매치가 되지 않았다. 연한 립색만 선호하는 입술을 강렬한 레드빛이 도는 색으로 가득 채우면 어떨까 싶을 만큼 도톰하고, 유독 댕그란 눈은 사탕 가게에서 사탕을 사 달라고 조르는 어린아이처럼 초롱초롱했다. 게다가 길이를 항상 다듬는 건지 언제나 어깨에 닿을 만한 기장을 유지하고 있는 단발은 시크하고 차갑기보다는 안 그래도 어려 보이는 얼굴을 한껏 더 어려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이 꽤 흥미롭고 어쩌면 자극적이랄까. 이것이 입사 때부터 지 팀장에게서 가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드러난 새하얀 목선 아래의 쇄골은 어떤 모습일지, 속살도 목처럼 뽀얄지 상상을 하게 만드니까.
“참, 요 앞 사거리에 새로 생긴 펍 가 봤어요? SNS에서도 완전 핫하던데.”
“아, 진짜? 이름이 뭐야?”
하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 동의할 가치도 못 느끼겠다는 듯 대화의 주제는 금세 다른 걸로 넘어갔다. 하하, 호호 떠드는 틈에서 유일하게 경도만 의뭉스럽게 미소를 그렸다. 세상 서럽게 울고 있던 그 모습을 하필 제가 봤다는 사실이 너무나 다행이다. 지영주의 숨겨진 구석을 오로지 저만 하나 알아낸 기분이라서.
그렇다면 뭐가 더 있을까. 드러내지 않는 본모습이 얼마나 더 있을까.
“또 이러시네, 손님. 신발 좀 벗어 놓지 마시라니까.”
“왜요, 이거 깨끗해요. 난 발에 땀 없어서 냄새도 안 나.”
영주는 굳이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 구두를 들어 보라는 듯이 코를 킁킁거렸다. 그럼에 편의점 알바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아, 가게 미관상 그렇잖아요.”
“이렇게 밑에 내려다 두는데 누가 굳이 허리까지 숙여 가며 봐요? 걱정 마요. 아무도 몰라.”
“아, 내가 알잖아요, 내가.”
“하이참, 까다롭게 구네, 증말.”
식사를 하는 내내 잔소리를 할까 싶어 영주는 하는 수 없이 가지런하게 벗어 놓았던 구두를 다시금 신었다. 그래 봐야 온전히 신는 게 아니라 발가락만 신발 위에 대충 걸쳐 놓은 형색이었지만 말이다.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왜 항상 이리로 와요? 스타기획이면 여기서 한참 아니에요?”
진열장에 과자를 하나, 둘 올리며 알바는 턱 끝으로 영주의 목에 걸려 있는 사원증을 가리켰다.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본 게 아니라 계산을 할 때마다 그냥 자연스레 시선이 가서 기억해 둔 것이었다.
“운전해서 왔죠, 뭘.”
영주는 알바를 향해 차 키를 짤랑짤랑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여기 편의점이 점심시간에도 제일 한가하잖아요.”
“아. 그렇긴 하죠. 회사 모여 있는 곳에서는 거리가 좀 있으니. 그런데 항상 혼자네요?”
“혼자 먹는 게 편해요. 불편한 사람들이랑 밥 먹으면 항상 체하거든.”
“아.”
그런가 보다, 고개를 끄덕인 알바는 제 할 일에 마저 열중했다. 영주 또한 마침 알맞게 익은 우동을 후후 불어 후루룩, 후루룩 해치우기 시작했다.
본래부터 사람들을 싫어한다거나 굳이 가리진 않았는데 사회초년생 때 영업부에서 일을 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조용하고 필요 이상으로 말을 하지 않는 성격으로 바뀌어 버렸다. 물론 일을 할 때야 180도 다른 모습으로 잘 웃으며 기호를 맞추고 분위기도 띄우곤 했지만 그렇게 에너지를 가식적으로 쏟고 나니 정말 제 생활에서는 구태여 연기를 하며 웃거나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영업부에서 기를 쓰고 부서 이전을 한 이후로 제일 편한 게 이거였다. 필요한 일을 제외하고 굳이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어도 되지 않는 거. 이렇게 멀찍이 나와서 혼자 먹는 것만큼 마음 편한 게 없다. 눈치 안 봐도 되고, 시끌벅적하게 안 섞여 있어도 되고. 안면만 트고 저에 대해선 자세히 모르는 알바생과 몇 마디 나누는 것 또한 나쁘지 않고 말이다. 게다가 새로운 도시락 메뉴가 나오면 묻지 않아도 추천해 주곤 하니 단골 편의점으로 이만한 곳이 없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와는 다른 일상이었다. 아니, 이제부터는 달라질 일상의 연속이다. 의무적으로라도 왔던 점심 맛있게 먹으라는 메시지는 어느새 시간이 끝나가는데도 오질 않았고, 회사로 복귀하는 길에 걸었던 전화번호도 이제는 지워야 마땅했다. 그런 버릇이자 습관 같은 건 최대한 빨리 지워야 정신 건강에 좋았다.
‘후우, 이쯤하면 오래했어. 그만하자, 이제.’
고작 1년 반. 2년도 다 채우지 못한 1년 반이 뭐가 오래라고 그렇게 쉽게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건지, 대체.
‘하, 역시. 넌 진짜…… 끝을 내도 이렇게. 후우…… 그래, 알아서 해. 난 필요 없으니까 어디 팔아 버리든, 내다 버리든 네 마음대로 하라고.’
그럼 뭘 어떻게 내야 하는 건데. 헤어지자고 말을 하는데 그러면 더 이상 이쪽에서 뭐라고 끝을 내야 하는 거냐고.
나쁜 놈.
다 쏟아 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 억울해서 결국 눈물이 나왔다. 입 안에 면발을 넣고 궁상맞게 눈물이나 흘리고 있는 꼴이라니. 아침에는 팀원 하나를 울려 놓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잘만 있었으면서.
“아, 맵네. 맵다, 매워.”
얼큰한 맛이라더니 얼큰하지 않고 맵잖아. 매워. 매운 것 때문에 눈물이 나는 거야.
괜찮을 거라고 최면을 걸 듯 수도 없이 스스로 말을 했건만 정말 괜찮아지는 게 하나도 없는 오후다.
다시금 후루룩, 후루룩 면을 씹지도 않고 삼켰다. 배가 주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허한 속을 그렇게라도 달래듯 억지로, 억지로.
점심식사 후에 카페인으로 입가심을 해 줘도 눈꺼풀에 유독 심하게 적용되는 중력의 법칙에 다들 나른하게 눈을 감았다 뜨는 중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식곤증을 이기지 못해 아예 고개를 뒤로 꺾는다거나 저도 모르게 괸 팔에 볼을 기대어 잠에 빠지기도 했다. 늘어지려는 하품을 참으며 오후 업무에 집중 아닌 집중을 할 즈음 경도의 시선은 조용히 영주에게로 향했다.
답답하게 채운 셔츠의 깃은 반듯하다 못해 빳빳해 보이기도 했다. 오전과 별다를 것 없이 바쁘게 서류며 모니터 화면으로 굴러가는 눈, 마우스로 갔다가 펜으로 갔다가를 반복하는 손, 구겨지지 않고 바로 세우고 있는 허리. 한마디로 흐트러짐이랄 게 없었다. 아무렇게나 주저앉아서 울어 대던 모습은 지금 저 얼굴에서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백 대리, 나 부탁 하나만.]
이만 지 팀장에게서 시선을 거둬 내고 저 또한 남은 업무에 집중을 하던 중 메신저가 깜빡였다. ‘부탁’이라고 썼지만 은근 ‘강요’와도 같은 지시 사항을 내릴 윤 과장이었다. 일단 낮은 한숨과 함께 답을 했다.
[네, 말씀하세요.]
[자료실 좀 갔다 와 줘. 참고할 게 좀 필요해서. 목록은 문자로 보내 놓을게.]
절대 직접 자료실을 왔다, 갔다 하는 법이 없는 그다. 층을 벗어난 업무 자체를 거의 하지 않을 만큼 게으르다고 해야 하나. 본래 부려 먹던 막내 사원이 외근으로 잠시 자리를 비우고 있자 그 불똥이 제게로 떨어졌다. 경도는 하는 수 없이 문자를 확인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흠, 2012년 A지점 통계 인쇄본이…….”
아주 줄줄이 많이도 부탁했네. 이건 분명 일을 몰아 두었다가 이제야 서둘러 처리하려는 게 분명했다.
고개를 가로로 절레절레 저으며 찾으려던 자료에 가까워지던 순간이었다. 점점 구석으로 걸음을 옮기니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머리를 뚝 떨어뜨리고 눈을 꼭 감고 있는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칼은 죄 앞으로 쏠려 있고 손에 안고 있는 파일들은 곧장 미끄러질 태세로.
“…….”
이렇게 되면 차라리 윤 과장이 저에게 심부름을 보낸 게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의외의 곳에서 의외인 모습으로 있는 지영주를 발견하는 기쁨을 줬으니 말이다.
‘지 팀장이 어디 조는 거 봤어? 하품조차도 안 해.’
‘카페인을 얼마나 들이부으면 그렇게 말짱할까요?’
‘대단하지, 정말.’
언젠가 졸음을 쫓기 위해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며 한 대화가 떠올랐다. 책상 위에 있는 영주의 텀블러엔 커피가 아니라 엄청난 에너지 드링크가 들어 있을 거라고 농담 삼아 떠들기도 했던 팀원들이다.
손끝에서 미끄러지려는 영주의 자료들을 한데 모아 올려 두고 경도는 아예 자리를 잡고 무릎을 세워 앉았다. 혹여 목이 아플까 봐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올려 뒤편에 기대게 하고 살짝 손바닥으로 받쳐 주었다. 하얀 얼굴에 곱게 감긴 눈 그리고 도톰한 입술이 그제야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찼다. 머리칼로 죄 가리고 있기에는 역시 아까운 얼굴이다. 특히나 이렇게 잠에 빠져 있는 모습으로 있을 땐.
“졸기도 하네.”
남들 볼까 봐 이렇게 구석에 숨어 가지고, 침까지 좀 흘리면서.
“뭐가 더 있을까요, 팀장님.”
사람들은 잘 모르는 지영주의 모습, 얼마나 더 있을까요. 그거 내가 좀 알아 가고 싶어졌는데.
오늘은 라면으로도 모자라 빵이며 김밥까지 한 줄 야무지게 먹었다. 시간에 쫓기지도 않았으면서 어디 쫓기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거의 씹지도 않고 삼켜 버린 수준이었다. 아주 빠르고, 급하게. 폭식 수준은 아닌지라 그나마 다행이랄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꾸역꾸역 뭘 먹게 된다. 고로 이별을 겪었으니 저는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계속 정량을 초과해서 와구와구 먹어 댔다. 허전함을 감내하는 최선의 방법이랄까. 그랬더니 속에서 탈이 났나 보다. 명치까지 차오르는 더부룩함에 가슴을 툭, 툭 두드려 보기도 하고 등 쪽을 탁, 탁 쳐 보기도 했지만 영 나아질 게 없었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정리한 자료를 가지고 영주의 자리 곁에 서 있던 경도가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손가락으로 도표 수치를 체크하면서도 툭, 툭. 종이를 넘기면서도 탁, 탁. 중간중간 절로 찌푸려지는 미간은 또 어떻고. 누가 봐도 속이 불편한 모양새였지만 영주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아닙니다. 이 통계 자료는 최근 건가요?”
“네.”
“그럼 이렇게 피티 준비 하세요. 피티 보고 회의해서 최종 결정하는 걸로 합시다.”
“알겠습니다.”
자료 검토를 마치고 경도가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자 영주는 조금 머뭇거리나 싶더니 이내 지갑을 챙겨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가만히 버티기가 힘들어 소화제라도 하나 사서 먹어야겠단 생각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