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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루 1권 8화
第二章 북해제일고수 북궁설(4)
어스레한 밤 대략 술시(20시~22시)경 황궁.
황제의 집무실로 검은색 인영이 날아들었다.
“신 비좌이옵니다.”
“들라.”
스스슥.
황제는 붓을 들어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비좌가 들어왔어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다섯째는 잘 있는가?”
“황자님께서 오늘 피습을 당하셨습니다.”
황제는 많이 놀란 듯 고개를 번쩍 치켜들며 눈을 크게 떴다.
“뭣이? 그래서 어찌되었느냐?”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나섰느냐?”
“아니옵니다.”
“그렇다면 동동 그놈이?”
비좌는 낮에 벌어진 일을 상세히 황제에게 알려주었다.
“허허, 그놈이 친구 사귀는 재주는 있구만. 그런 고수를 곁에 두다니, 허허허.”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황자님 곁에는 그와 비견되는 초절정고수가 두 명이나 더 있습니다.”
“허허허허!”
황제는 다소 안심이 되는 듯 다시 붓을 들었다.
“분명 배후 세력이 있을 터인데 그것까지는 조사 하지 말고 그냥 넌 동동이 그놈 곁에서 이전에 해왔던 대로 하거라.”
“존명(尊命)!”
스스스슥.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비좌는 귀신처럼 신형을 감추었다.
붓을 들고 뭔가 적고 있는 황제의 얼굴은 은은한 미소가 감돌았다.
‘녀석은 사람을 사귐에서 있어서 다른 형제들보다 발군이지. 하나 마음이 너무 연약하여 정(情)에 잘 휩쓸리지. 그것이 문제야. 만인지상의 자리에 앉기엔 마땅히 버려야 할 마음가짐이지. 동동을 노리는 배후가 누구든 그것을 이겨내야만 비로소 자격이 있다고 봐야지.’
황제가 비좌에게 배후를 알아보게 할 수도 있었으나 그리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뜻 때문이었다.
* * *
낙화루에 돌아온 주동동은 북궁설에게 강호에 대한 설명을 찬찬히 듣고서야 마음을 추스릴 수가 있었다.
“그래도 사람 목숨을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요?”
“주숙수님,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강호라는 것이 손속에 사정을 두면 언젠가는 반드시 해를 입게 마련인 것입니다. 제가 낮에 보인 살수가 과하였다 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주동동은 못마땅한지 투덜거렸다.
“강호는 참으로 매정하네요.”
“네, 그렇습니다.”
第三章 거지촌의 황보현중(1)
산적 같은 덩치에 쫘악 째진 눈, 까칠한 수염, 이것은 바로 낙화루의 점소이 유장팔의 인상착의였다.
그는 요즘 하루하루가 매우 즐거웠는데 주문을 받으면 큰소리로 대답을 하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음식을 나르곤 하였다.
그와 언제나 함께했던 노득출은 유장팔이 이상하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 차렸다.
‘저놈이 무엇을 잘못 먹었나, 미친놈처럼 헤헤거리고 다니네.’
그러던 어느 날 노득출은 녀석이 왜 그렇게 유쾌하게 일을 하였는지 알 수가 있었다.
세 번째 방의 투숙객, 일명 식신 소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조그마한 입에 엄청난 양의 음식을 쓸어 넣고 있었다.
우걱우걱.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숙박계에 적힌 이름 석 자인 유화영, 이것이 전부였다. 다른 것은 모르지만 이거 하나만 확실하였다.
‘항주 제일 대식가!’
며칠 전 그녀의 소문을 듣고 낙화루를 찾은 대식가 한 명이 있었다. 그는 다짜고짜 그녀에게 결투를 신청하였다.
그 남자는 자기가 항주에 있는 모든 대식가를 꺾고 마지막으로 찾아온 것이라고 말을 하였다.
낙화루에 들어오자마자 대번에 유화영을 알아본 그는 대뜸 외쳤다.
“당신이 그 유명한 식신(食神)이오?”
식신 소녀 유화영은 남자의 말에 대꾸할 가치도 없는지 그냥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도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 하였다.
“항주 제일을 놓고 당신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바요!”
그때서야 유화영은 먹던 찐빵을 내려놓고 말을 하였다.
“내가 식신인지는 모르지만 먹는 걸로 대결을 벌이겠다면 받아 주겠다.”
“좋소!”
“단, 음식은 내가 정한다.”
“아무거나 다 좋소!”
유화영은 담담히 말했다.
“음식은 단 한 가지, 바로 이 찐빵이다.”
와아아아아.
주위에 구경하던 사람들은 열렬한 환호를 하는 동시에 서로 내기 걸기에 바빴다.
“자자, 거세요 걸어. 배당은 칠 대 일입니다. 한 방을 노리세요, 한 방을 노려요. 저 남자 대식가에게 걸면 일확천금을 꿈꿀 수 있습니다.”
“식신! 식신!”
남자의 덩치가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식신 소녀에게 걸었다. 그렇다.
낙화루에 오는 사람이라면 아니, 이 근처 사람이라면 그녀가 얼마나 먹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대결은 일곱 접시를 비울 때쯤 남자가 우엑거리며 뛰쳐나가 버리면서 결판나 버렸다.
그 자리에 구경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쳤다.
우아아아아아.
“식신! 식신!”
식신 소녀는 사람들의 환호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더니 일어나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 가 버렸었다.
그런 식신 소녀가 언제나 음식을 시키면 유장팔은 조금 더 가져다 주곤 하였는데 갖다주고는 옆 탁자에 앉아 먹는 모습을 뚫어 져라 쳐다보았다.
보고 있는 유장팔의 표정은 뭔가에 홀린 듯 몽롱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천태성과 노득출 그리고 장태봉이었다.
셋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말을 내뱉었다.
“호오. 그런 거였군.”
동시에 눈맞은 세 명은 이상한 눈빛을 교환하더니 슬금슬금 낙화루 입구에 모였다. 그리고는 뭔가를 의논하는지 쑥덕거렸다.
이윽고 식신 소녀가 다 먹었음을 알리는 일명 ‘배치는 동작’을 하자, 유장팔은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차를 끓여 와 그녀의 탁자에 놓았다.
탁.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차가 나오자 식신 소녀는 유장팔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유장팔은 얼굴을 확 붉히더니 더듬거리며 말을 하였다.
“저, 저기…… 저는…… 에잇!”
갑자기 주방으로 뛰어들어 가는 유장팔.
그것을 본 세 명은 또다시 같은 동작으로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쉬었다.
“에휴.”
세 명 다 뭔가 안타까워하는 표정이었다.
다음날, 점심 먹을 무렵 낙화루는 한 사람이 찾아오는데, 그는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피부는 뽀얗고 얼굴은 정말 잘생긴 소년이었다.
소년은 이상한 억양으로 말을 하였다.
“여기 구운 닭고기 두 마리 주세요.”
짧게 깍은 머리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한쪽 귀에 귀고리 하고 있는 것이 보통 사람의 행색은 아니었다.
이윽고 음식이 나오자 소년은 꼭 누구처럼 걸신 들린 듯 닭고기를 먹어 치웠다.
우걱우걱.
“워, 꺼억. 정말 맛있네. 자알 먹었다.”
두 마리를 뚝딱 해치운 소년은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다 천태성이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냅다 밖으로 뛰었다. 그러나 소년이 낙화루를 벗어나 채 이십 보도 되지 않아 뒷덜미를 붙들리고 말았다.
“허억!”
소년은 이렇게 빨리 잡힐 줄 몰랐는지 굉장히 놀라는 눈치였다.
천태성은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소년을 질질 끌고 낙화루 입구로 걸어갔다. 그러자 소년은 큰 목소리로 놔달라고 하였다.
“아 이거 놔주세요! 갈 테니까 놔주세요!”
천태성은 두말없이 놓아주었다.
“엥?”
보통 어림없다며 대부분 끌고 가야 하지만 순순히 놓아주자 소년은 적잖이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천태성을 바라보았다.
천태성은 아무 말 없이 웃고만 있었다. 그러자 소년은 갑자기 손가락으로 어디를 가리켰다.
“어? 저기!”
그러면서 소년이 냅다 몸을 돌리는 찰나 또다시 잡혀버렸다.
“허억!”
천태성은 애초에 눈도 돌리지 않았다.
“…….”
소년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고 질질 끌려갔다.
천태성은 장태봉에게 잠시 자리를 맡기고 본격적으로 소년과 대담에 들어갔다.
“너 거지냐?”
좀 전에 자기가 무전취식(無錢取食)했다는 것도 잊은 채 소년은 거지라는 말에 발끈했다.
“뭐요! 거지 아니에요!”
“그럼 왜 도망갔어?”
“…….”
“돈 있냐?”
“없어요.”
소년의 목소리는 천태성의 질문이 늘어감에 따라 점점 작아졌다.
“집은 있냐?”
“없어요.”
“거지 맞네, 뭘.”
“…….”
소년은 자기가 거지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었지만 앞서 대답한 바와 같이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소년의 기를 한껏 죽인 천태성은 팔짱을 끼면서 허리를 폈다.
“그럼 어떻게 배상할래?”
“일해서 갚을게요.”
천태성은 소년을 요모조모 뜯어보더니 씨익 웃으면서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일을 한다라……. 물론 우리 낙화루에서 일을 하면 돈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잠도 재워 준다.”
천태성의 말에 소년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정말요?”
“단, 조건이 있다.”
“무슨 조건이요?”
“내가 내는 일종의 시험을 통과해야 너는 비로소 낙화루에서 일을 할 수 있다.”
그냥 일 시키면 되지, 뭐 하러 시험을 내는지 소년은 도무지 천태성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천태성은 그런 뾰로통한 소년의 표정을 무시한 채 시험을 냈다.
“시험이라는 것은 낙화루로 손님 열 명을 끌고 와라. 시간은 이각(30분)을 주겠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순 억지네 억지.”
“그럼 봐줘서 한 시진 주마.”
소년은 뭔가 골똘히 고민하듯 엄지와 검지로 자신의 턱을 받쳤다.
‘내가 시험을 핑계 삼아 도망가는 것도 필시 저 인간의 계산에 있을 터, 어쩐다. 어떻게 한 시진 만에 열 명을 모아오지.’
자신의 옷차림으로 보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 할 듯싶었다. 이윽고 소년은 뭔가 생각난 듯 천태성에게 물었다.
“시험에 실패하면요?”
“몸으로 때워야지.”
천태성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주먹을 들어 보였다. 그런 후 냅다 지면에다가 주먹을 날렸다.
콰앙.
지면은 폭약을 터뜨린 듯 움푹 패여 버렸다.
“허억!”
소년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몇 번이고 비비며 움푹 패인 땅을 바라보았다.
‘시험에 통과 못하면 죽는다!’
“알았어요, 해볼게요.”
“좋다. 난 객잔에 있을 테니 정확히 한 시진 후에 보자.”
한껏 풀이 죽은 소년.
“네…….”
천태성은 낙화루 쪽으로 걸어가면서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아참, 근데 네 이름이 뭐냐?”
“황보현중이오.”
“황보현중?”
천태성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뒤로 돌아보며 물었다.
“너 황보세가 사람이냐?”
황보세가는 무림에서 쟁쟁한 오대세가 중 하나로써 구파일방과 더불어 정파 쪽 중심 세력이었다.
“아니요.”
“알았다. 가봐라.”
“네.”
처량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황보현중.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비장미가 느껴졌다.
‘내 나이 십칠 세. 여기 와서 뭔 고생이냐, 이 꽃다운 나이에 죽게 생겼구나.’
황보현중은 터덜터덜 걸으며 할 수 없다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황보현중의 머릿속에 스치는 것이 있으니 예전에 어디서 주워들은 남아일언 중천금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남아일언 중천금, 분명 손님을 열 명 데리고 오라고 했지 그 이상 어떠한 조건도 달지 않았다!”
뭔가 생각난 듯 표정이 급 밝아지는 황보현중이 음침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흐흐흐.”
第二章 북해제일고수 북궁설(4)
어스레한 밤 대략 술시(20시~22시)경 황궁.
황제의 집무실로 검은색 인영이 날아들었다.
“신 비좌이옵니다.”
“들라.”
스스슥.
황제는 붓을 들어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비좌가 들어왔어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다섯째는 잘 있는가?”
“황자님께서 오늘 피습을 당하셨습니다.”
황제는 많이 놀란 듯 고개를 번쩍 치켜들며 눈을 크게 떴다.
“뭣이? 그래서 어찌되었느냐?”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나섰느냐?”
“아니옵니다.”
“그렇다면 동동 그놈이?”
비좌는 낮에 벌어진 일을 상세히 황제에게 알려주었다.
“허허, 그놈이 친구 사귀는 재주는 있구만. 그런 고수를 곁에 두다니, 허허허.”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황자님 곁에는 그와 비견되는 초절정고수가 두 명이나 더 있습니다.”
“허허허허!”
황제는 다소 안심이 되는 듯 다시 붓을 들었다.
“분명 배후 세력이 있을 터인데 그것까지는 조사 하지 말고 그냥 넌 동동이 그놈 곁에서 이전에 해왔던 대로 하거라.”
“존명(尊命)!”
스스스슥.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비좌는 귀신처럼 신형을 감추었다.
붓을 들고 뭔가 적고 있는 황제의 얼굴은 은은한 미소가 감돌았다.
‘녀석은 사람을 사귐에서 있어서 다른 형제들보다 발군이지. 하나 마음이 너무 연약하여 정(情)에 잘 휩쓸리지. 그것이 문제야. 만인지상의 자리에 앉기엔 마땅히 버려야 할 마음가짐이지. 동동을 노리는 배후가 누구든 그것을 이겨내야만 비로소 자격이 있다고 봐야지.’
황제가 비좌에게 배후를 알아보게 할 수도 있었으나 그리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뜻 때문이었다.
* * *
낙화루에 돌아온 주동동은 북궁설에게 강호에 대한 설명을 찬찬히 듣고서야 마음을 추스릴 수가 있었다.
“그래도 사람 목숨을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요?”
“주숙수님,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강호라는 것이 손속에 사정을 두면 언젠가는 반드시 해를 입게 마련인 것입니다. 제가 낮에 보인 살수가 과하였다 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주동동은 못마땅한지 투덜거렸다.
“강호는 참으로 매정하네요.”
“네, 그렇습니다.”
第三章 거지촌의 황보현중(1)
산적 같은 덩치에 쫘악 째진 눈, 까칠한 수염, 이것은 바로 낙화루의 점소이 유장팔의 인상착의였다.
그는 요즘 하루하루가 매우 즐거웠는데 주문을 받으면 큰소리로 대답을 하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음식을 나르곤 하였다.
그와 언제나 함께했던 노득출은 유장팔이 이상하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 차렸다.
‘저놈이 무엇을 잘못 먹었나, 미친놈처럼 헤헤거리고 다니네.’
그러던 어느 날 노득출은 녀석이 왜 그렇게 유쾌하게 일을 하였는지 알 수가 있었다.
세 번째 방의 투숙객, 일명 식신 소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조그마한 입에 엄청난 양의 음식을 쓸어 넣고 있었다.
우걱우걱.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숙박계에 적힌 이름 석 자인 유화영, 이것이 전부였다. 다른 것은 모르지만 이거 하나만 확실하였다.
‘항주 제일 대식가!’
며칠 전 그녀의 소문을 듣고 낙화루를 찾은 대식가 한 명이 있었다. 그는 다짜고짜 그녀에게 결투를 신청하였다.
그 남자는 자기가 항주에 있는 모든 대식가를 꺾고 마지막으로 찾아온 것이라고 말을 하였다.
낙화루에 들어오자마자 대번에 유화영을 알아본 그는 대뜸 외쳤다.
“당신이 그 유명한 식신(食神)이오?”
식신 소녀 유화영은 남자의 말에 대꾸할 가치도 없는지 그냥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도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 하였다.
“항주 제일을 놓고 당신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바요!”
그때서야 유화영은 먹던 찐빵을 내려놓고 말을 하였다.
“내가 식신인지는 모르지만 먹는 걸로 대결을 벌이겠다면 받아 주겠다.”
“좋소!”
“단, 음식은 내가 정한다.”
“아무거나 다 좋소!”
유화영은 담담히 말했다.
“음식은 단 한 가지, 바로 이 찐빵이다.”
와아아아아.
주위에 구경하던 사람들은 열렬한 환호를 하는 동시에 서로 내기 걸기에 바빴다.
“자자, 거세요 걸어. 배당은 칠 대 일입니다. 한 방을 노리세요, 한 방을 노려요. 저 남자 대식가에게 걸면 일확천금을 꿈꿀 수 있습니다.”
“식신! 식신!”
남자의 덩치가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식신 소녀에게 걸었다. 그렇다.
낙화루에 오는 사람이라면 아니, 이 근처 사람이라면 그녀가 얼마나 먹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대결은 일곱 접시를 비울 때쯤 남자가 우엑거리며 뛰쳐나가 버리면서 결판나 버렸다.
그 자리에 구경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쳤다.
우아아아아아.
“식신! 식신!”
식신 소녀는 사람들의 환호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더니 일어나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 가 버렸었다.
그런 식신 소녀가 언제나 음식을 시키면 유장팔은 조금 더 가져다 주곤 하였는데 갖다주고는 옆 탁자에 앉아 먹는 모습을 뚫어 져라 쳐다보았다.
보고 있는 유장팔의 표정은 뭔가에 홀린 듯 몽롱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천태성과 노득출 그리고 장태봉이었다.
셋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말을 내뱉었다.
“호오. 그런 거였군.”
동시에 눈맞은 세 명은 이상한 눈빛을 교환하더니 슬금슬금 낙화루 입구에 모였다. 그리고는 뭔가를 의논하는지 쑥덕거렸다.
이윽고 식신 소녀가 다 먹었음을 알리는 일명 ‘배치는 동작’을 하자, 유장팔은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차를 끓여 와 그녀의 탁자에 놓았다.
탁.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차가 나오자 식신 소녀는 유장팔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유장팔은 얼굴을 확 붉히더니 더듬거리며 말을 하였다.
“저, 저기…… 저는…… 에잇!”
갑자기 주방으로 뛰어들어 가는 유장팔.
그것을 본 세 명은 또다시 같은 동작으로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쉬었다.
“에휴.”
세 명 다 뭔가 안타까워하는 표정이었다.
다음날, 점심 먹을 무렵 낙화루는 한 사람이 찾아오는데, 그는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피부는 뽀얗고 얼굴은 정말 잘생긴 소년이었다.
소년은 이상한 억양으로 말을 하였다.
“여기 구운 닭고기 두 마리 주세요.”
짧게 깍은 머리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한쪽 귀에 귀고리 하고 있는 것이 보통 사람의 행색은 아니었다.
이윽고 음식이 나오자 소년은 꼭 누구처럼 걸신 들린 듯 닭고기를 먹어 치웠다.
우걱우걱.
“워, 꺼억. 정말 맛있네. 자알 먹었다.”
두 마리를 뚝딱 해치운 소년은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다 천태성이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냅다 밖으로 뛰었다. 그러나 소년이 낙화루를 벗어나 채 이십 보도 되지 않아 뒷덜미를 붙들리고 말았다.
“허억!”
소년은 이렇게 빨리 잡힐 줄 몰랐는지 굉장히 놀라는 눈치였다.
천태성은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소년을 질질 끌고 낙화루 입구로 걸어갔다. 그러자 소년은 큰 목소리로 놔달라고 하였다.
“아 이거 놔주세요! 갈 테니까 놔주세요!”
천태성은 두말없이 놓아주었다.
“엥?”
보통 어림없다며 대부분 끌고 가야 하지만 순순히 놓아주자 소년은 적잖이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천태성을 바라보았다.
천태성은 아무 말 없이 웃고만 있었다. 그러자 소년은 갑자기 손가락으로 어디를 가리켰다.
“어? 저기!”
그러면서 소년이 냅다 몸을 돌리는 찰나 또다시 잡혀버렸다.
“허억!”
천태성은 애초에 눈도 돌리지 않았다.
“…….”
소년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고 질질 끌려갔다.
천태성은 장태봉에게 잠시 자리를 맡기고 본격적으로 소년과 대담에 들어갔다.
“너 거지냐?”
좀 전에 자기가 무전취식(無錢取食)했다는 것도 잊은 채 소년은 거지라는 말에 발끈했다.
“뭐요! 거지 아니에요!”
“그럼 왜 도망갔어?”
“…….”
“돈 있냐?”
“없어요.”
소년의 목소리는 천태성의 질문이 늘어감에 따라 점점 작아졌다.
“집은 있냐?”
“없어요.”
“거지 맞네, 뭘.”
“…….”
소년은 자기가 거지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었지만 앞서 대답한 바와 같이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소년의 기를 한껏 죽인 천태성은 팔짱을 끼면서 허리를 폈다.
“그럼 어떻게 배상할래?”
“일해서 갚을게요.”
천태성은 소년을 요모조모 뜯어보더니 씨익 웃으면서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일을 한다라……. 물론 우리 낙화루에서 일을 하면 돈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잠도 재워 준다.”
천태성의 말에 소년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정말요?”
“단, 조건이 있다.”
“무슨 조건이요?”
“내가 내는 일종의 시험을 통과해야 너는 비로소 낙화루에서 일을 할 수 있다.”
그냥 일 시키면 되지, 뭐 하러 시험을 내는지 소년은 도무지 천태성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천태성은 그런 뾰로통한 소년의 표정을 무시한 채 시험을 냈다.
“시험이라는 것은 낙화루로 손님 열 명을 끌고 와라. 시간은 이각(30분)을 주겠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순 억지네 억지.”
“그럼 봐줘서 한 시진 주마.”
소년은 뭔가 골똘히 고민하듯 엄지와 검지로 자신의 턱을 받쳤다.
‘내가 시험을 핑계 삼아 도망가는 것도 필시 저 인간의 계산에 있을 터, 어쩐다. 어떻게 한 시진 만에 열 명을 모아오지.’
자신의 옷차림으로 보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 할 듯싶었다. 이윽고 소년은 뭔가 생각난 듯 천태성에게 물었다.
“시험에 실패하면요?”
“몸으로 때워야지.”
천태성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주먹을 들어 보였다. 그런 후 냅다 지면에다가 주먹을 날렸다.
콰앙.
지면은 폭약을 터뜨린 듯 움푹 패여 버렸다.
“허억!”
소년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몇 번이고 비비며 움푹 패인 땅을 바라보았다.
‘시험에 통과 못하면 죽는다!’
“알았어요, 해볼게요.”
“좋다. 난 객잔에 있을 테니 정확히 한 시진 후에 보자.”
한껏 풀이 죽은 소년.
“네…….”
천태성은 낙화루 쪽으로 걸어가면서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아참, 근데 네 이름이 뭐냐?”
“황보현중이오.”
“황보현중?”
천태성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뒤로 돌아보며 물었다.
“너 황보세가 사람이냐?”
황보세가는 무림에서 쟁쟁한 오대세가 중 하나로써 구파일방과 더불어 정파 쪽 중심 세력이었다.
“아니요.”
“알았다. 가봐라.”
“네.”
처량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황보현중.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비장미가 느껴졌다.
‘내 나이 십칠 세. 여기 와서 뭔 고생이냐, 이 꽃다운 나이에 죽게 생겼구나.’
황보현중은 터덜터덜 걸으며 할 수 없다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황보현중의 머릿속에 스치는 것이 있으니 예전에 어디서 주워들은 남아일언 중천금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남아일언 중천금, 분명 손님을 열 명 데리고 오라고 했지 그 이상 어떠한 조건도 달지 않았다!”
뭔가 생각난 듯 표정이 급 밝아지는 황보현중이 음침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