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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외전 2. 관계자 외 출입금지
“그러니까 그게 아보카도라는 거지?”
뒤에서 다가온 민권이 세연의 어깨에 턱을 올리고 허리를 껴안았다. 새벽녘, 그와 현이 깨지 않도록 주의한다고 했는데 민권은 아무래도 잠귀가 밝은 듯했다. 세연이 아보카도를 썰다 말고 고개를 뒤쪽으로 틀었다.
“응. 처음엔 입맛에 맞지 않을 텐데 자꾸 먹다 보면 먹을 만 할 거예요. 나도 처음엔 뱉어냈다니까.”
“어디 한 번.”
민권의 기다란 손이 뒤에서 쭉 뻗어 나와 잘라둔 아보카도 조각 하나를 덥석 집었다. 그러곤 입속으로 날름 넣더니 오물오물 씹어대었다. 그의 미간이 수려하게 일그러지자, 세연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으음.”
“어때요?”
“으음.”
“많이 느끼해요?”
“으음.”
“그러지만 말고 대답을 좀 하시죠?”
“영 아닌데.”
민권이 입속에 든 아보카도를 모두 손바닥에 뱉어내고 그걸 음식물 통에 버렸다. 금세 난감해진 세연은 머리를 긁적이며 도마 위에서 열심히 만들어지고 있는 샌드위치를 내려다봤다.
“어떡하지? 그럼 아보카도는 빼야 하나.”
“당신 좋으면 넣어. 내가 먹을 건 내가 만들 테니까.”
“그런 게 어딨어. 오늘 샌드위치는 내가 만든다니까요.”
세연은 소매를 걷어붙이려는 민권을 극구 말렸다. 이 샌드위치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손에서 탄생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만에 두 사람이 함께 쉬는 날이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을을 벗 삼아, 야외에 나가기로 한 것이다.
요 며칠 현은 온전히 민권의 손에 의해 돌봐졌다. 퇴근을 해도 콜이 오면 늘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는 세연은 항상 대기상태였다. 낮엔 육아도우미가 오긴 하지만 새벽과 밤 시간은 민권이 꽤 힘들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민권은 프로그램 하나를 6개월 후로 제작연기를 한 상태고, 퇴근 이후의 시간에 있어 자유란 없었다.
가끔 생각한다.
이 남자가 내 남자가 아니었다면.
다른 어떤 여자가 이런 호사와 행복을 누리고 있었겠지.
세연은 수건에 손을 닦은 후 홱 돌아섰다. 그때까지도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민권이 갑작스러운 세연의 행동에 미간을 모았다.
“샌드위치 만드신다며?”
실긋 입술 끝에 미소를 묻히고 물은 민권을, 세연이 새침한 표정을 짓고 응시했다.
“당신 얼굴 한 번 보고 싶어서요. 그러고 보니 요 며칠 당신 얼굴도 제대로 못 본 것 같아.”
“자, 잘생긴 남편 얼굴 마음껏 봐.”
민권이 턱을 치켜들고 세연의 허리를 좀 더 끌어당겼다. 그녀의 손이 뻗어와 턱이며 볼이며 이마를 어루만졌다. 마지막으로 가볍게 입술에 입을 맞추니 그가 콧소리를 내며 웃는다.
“이러기야?”
입술을 맞댄 채 짓궂게 물어오는 민권에게, 세연이 대답했다.
“이러는 게 뭐 어때서요. 내 남편인데.”
“음. 그럼 우리 며칠 동안 못 나눈 회포를 지금, 어때?”
“아…….”
세연은 그에게서 입술을 떼고 민권의 입술에 묻은 물기를 손가락으로 스윽 닦아주었다.
“그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지금 난 샌드위치를 싸는 중이고, 현이가 언제 깰지 모르고. 또…… 우유배달 아주머니가 오실…….”
“푯말을 하나 세워놔야겠어. 관계자 외 출입금지.”
그녀의 말이 민권의 입술에 의해 막혀버렸다. 그는 손을 세연의 등 뒤로 돌려 앞치마 끈을 풀었다. 사각사각, 앞치마가 벗겨져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소리가 은밀했다. 민권은 세연의 입술 깊숙이 혀를 밀어 넣는 것과 동시에 주춤주춤 걸음을 옮겨, 그녀의 등을 벽에 붙였다.
“여, 여기서요?”
급박한 전개에 당황한 세연이 서둘러 입술을 떼고 물었다. 민권의 야릇한 눈빛이 금세 다가왔다.
“급해. 당신은?”
“흐음.”
세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민권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것이 신호가 되어 민권의 거친 애무가 시작되었다. 목덜미를 따라 혀를 굴렸다. 손으로는 연신 젖가슴을 지분거렸고, 그것도 모자라 복부를 타고 내려가 사타구니 사이를 손바닥으로 문지른다.
세연의 다리가 절로 벌어졌다. 뜨거워진 체온이 하체를 연신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잡힌 젖가슴에선 쾌감과도 같은 통증이 느껴졌고 유두 끝으로 파생된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의 손바닥이 바지 안으로 쑥 들어오더니 이내 팬티 속을 달구었다. 부스스한 음모를 헤치고 은밀하게 숨어 있는 여린 살갗을 쓰다듬는다. 세연은 민권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신음을 쏟아냈다.
터져 나오는 숨결마저 떨렸다.
어서 그가 제 안을 뚫고 들어와 주기를 몸 안의 모든 감각이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터질 듯 부풀어 있는 남근이 아랫배를 스칠 때마다 짜릿한 전율이 등골을 타고 내달렸다.
“하아…… 민권 씨…… 어서…….”
보채는 아이처럼, 세연은 민권의 진입을 애원했다. 그러자 잔뜩 흐려진 눈빛의 그가 씩 웃는다. 이 여자의 살결은 현을 낳고난 후부터 더욱 부드러워졌다. 손가락 끝으로 만질 때마다 비단 같은 감촉에 본능이 꿈틀대곤 했다.
어서 바지를 벗고 이 여자의 깊고 촉촉한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어 민권은 서둘러 파자마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그 순간에, 적요를 뚫고 들려온 소리가 있었다.
“으앙! 앵앵! 으아앙!”
“하아…….”
“으음…….”
현의 울음소리가 집 안을 가득 울렸다. 잔뜩 달아올라 있던 육체는 그 순간부터 급속도로 체온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세연은 민권의 어깨에 기댄 후 아쉬움의 한숨을 쉬었고, 민권은 내리려던 파자마 바지를 주춤주춤 다시 끌어올렸다.
“당신이 갈래요?”
그의 어깨에 이마를 묻은 채 세연이 중얼거렸다. 민권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당신은 샌드위치 작업을 계속 해.”
“후우. 알았어요.”
세연은 흐트러진 옷깃을 여미곤 앞치마를 다시 둘렀다. 조금은 착잡해진 표정으로 현의 방에 들어간 민권은 현을 번쩍 안아 올렸다.
“너 이 녀석, 엄마 아빠의 좋은 금슬을 이렇게 끊어도 되는 거야? 응?”
민권이 한쪽 볼을 현의 얼굴에 비벼대며 방을 나섰다. 주방에 들어서자 아까의 흐트러진 차림새는 어디로 갔는지 다시 완벽한 아내의 모습으로 돌아온 세연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우리 현이, 일어나쪄요?”
눈에 눈물까지 맺힌 현을 보면서 세연이 까르르 웃자, 현도 그제야 입술을 늘린다. 민권은 아기 의자를 가져와 현을 앉힌 후 소독한 젖병에 물을 담았다.
“이 녀석이 아무래도 당신과 나 사이를 방해하는 게 틀림없어.”
단정 짓듯 민권이 읊조리자 세연이 그를 돌아보았다.
“방해라뇨?”
“아기라고 아무것도 모를 줄 알지? 사실은 다 알아. 무의식 속에서 아는 거지. 왜 갓 태어난 아이들은 물속에서 수영도 한다잖아.”
“그래서요?”
“당신과 나 사이를 질투하는 게 틀림없어.”
“방해는 뭐고 질투는 또 뭐예요. 어서 우유 만들어요.”
“우리 딸 하나 낳자.”
“……으, 응?”
세연은 잘 못 들었다는 듯 귀를 후벼 파고 다시 물었다.
“방금 뭐라 그랬어요?”
“딸 하나 더 낳자고. 아무래도 현이 녀석 사사건건 당신 편을 들게 될 게 뻔해. 그러니까 내 편도 한 명 있어야지. 딸이면 확실하게 내편으로 만들 수 있어.”
“이 남자 좀 봐. 지금 가족끼리 편 가르기 하는 거예요?”
“편을 가르자는 게 아니라 균형을 위해서지. 2:2로 축구도 할 수 있어.”
남자들은 왜 나이를 먹어도 철이 없는 걸까.
세연은 한숨과 함께 샌드위치 하나를 뚝딱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어쩌면 편 가르기는 핑계일 뿐, 정말로 그가 딸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민권 씨. 솔직하게 말해 봐요. 둘째를 원해요?”
더운 물을 부은 젖병을 후후 불어가며 식히던 민권이 고개를 돌린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를, 민권도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둘째는 향후 3년 후에 의논해 봐요. 지금 당장은 안 돼.”
단호하게 선을 그은 세연이 눈을 부릅뜨자 민권은 최대한 양보하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3년 정도는 참을 수 있어. 하지만 그 전에, 그러니까 뜻하지 않게 아이를 가지게 되면 그땐 어쩔 수 없는 거지.”
“아아, 현일 보면 정말 예쁜데 키우는 과정이 힘드니까 아무 생각이 없어요.”
“내가 함께 하잖아. 우유 먹이면 현이는 다시 잘 텐데, 어때? 이번엔 방에서. 관계자 외 출입금지. 붙여 놓을 테니까.”
그가 느물거리는 미소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입술을 내밀어 세연의 볼에 가볍게 뽀뽀를 한다. 유혹의 몸짓이라는 걸 알았지만 세연은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그의 뽀뽀가 키스가 되어가도록, 세연은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그러다 민권의 입술이 다시금 목덜미로 더듬더듬 내려갈 무렵, 세연은 몸을 확 뒤로 내뺐다.
“어림없어요. 3년 후예요!”
냉정하게 대답한 세연은 아예 민권의 접근을 차단하며 멀찍이서 칼질을 시작했다. 이번엔 샐러드를 만들 차례였다. 길게 한숨을 내쉰 민권은 분유를 타서 현의 입에 가져갔다.
“현아. 아빠한테 힘을 줘. 알았지? 이거 다 먹고 잘 자는 거다. 안 도와주면 우유 뺏는다?”
현의 귀에 속삭인 민권은 빙긋이 웃었다. 잠이 들려하는지 눈을 껌뻑거리는 현을, 매우 만족스러운 얼굴로 쳐다보았다. 잠 들어라, 잠 들어라. 주문을 외는 속내가 검고 음흉하다.
뒤로 칼질에 바쁜 세연의 기척 소리가 들려왔지만 민권은 오로지 현을 재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멀리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오랜만의 외출로 들뜬 마음에, 밝은 가을 햇살까지 더해져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 한 그런 아침이었다.
#외전 2. 관계자 외 출입금지
“그러니까 그게 아보카도라는 거지?”
뒤에서 다가온 민권이 세연의 어깨에 턱을 올리고 허리를 껴안았다. 새벽녘, 그와 현이 깨지 않도록 주의한다고 했는데 민권은 아무래도 잠귀가 밝은 듯했다. 세연이 아보카도를 썰다 말고 고개를 뒤쪽으로 틀었다.
“응. 처음엔 입맛에 맞지 않을 텐데 자꾸 먹다 보면 먹을 만 할 거예요. 나도 처음엔 뱉어냈다니까.”
“어디 한 번.”
민권의 기다란 손이 뒤에서 쭉 뻗어 나와 잘라둔 아보카도 조각 하나를 덥석 집었다. 그러곤 입속으로 날름 넣더니 오물오물 씹어대었다. 그의 미간이 수려하게 일그러지자, 세연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으음.”
“어때요?”
“으음.”
“많이 느끼해요?”
“으음.”
“그러지만 말고 대답을 좀 하시죠?”
“영 아닌데.”
민권이 입속에 든 아보카도를 모두 손바닥에 뱉어내고 그걸 음식물 통에 버렸다. 금세 난감해진 세연은 머리를 긁적이며 도마 위에서 열심히 만들어지고 있는 샌드위치를 내려다봤다.
“어떡하지? 그럼 아보카도는 빼야 하나.”
“당신 좋으면 넣어. 내가 먹을 건 내가 만들 테니까.”
“그런 게 어딨어. 오늘 샌드위치는 내가 만든다니까요.”
세연은 소매를 걷어붙이려는 민권을 극구 말렸다. 이 샌드위치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손에서 탄생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만에 두 사람이 함께 쉬는 날이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을을 벗 삼아, 야외에 나가기로 한 것이다.
요 며칠 현은 온전히 민권의 손에 의해 돌봐졌다. 퇴근을 해도 콜이 오면 늘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는 세연은 항상 대기상태였다. 낮엔 육아도우미가 오긴 하지만 새벽과 밤 시간은 민권이 꽤 힘들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민권은 프로그램 하나를 6개월 후로 제작연기를 한 상태고, 퇴근 이후의 시간에 있어 자유란 없었다.
가끔 생각한다.
이 남자가 내 남자가 아니었다면.
다른 어떤 여자가 이런 호사와 행복을 누리고 있었겠지.
세연은 수건에 손을 닦은 후 홱 돌아섰다. 그때까지도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민권이 갑작스러운 세연의 행동에 미간을 모았다.
“샌드위치 만드신다며?”
실긋 입술 끝에 미소를 묻히고 물은 민권을, 세연이 새침한 표정을 짓고 응시했다.
“당신 얼굴 한 번 보고 싶어서요. 그러고 보니 요 며칠 당신 얼굴도 제대로 못 본 것 같아.”
“자, 잘생긴 남편 얼굴 마음껏 봐.”
민권이 턱을 치켜들고 세연의 허리를 좀 더 끌어당겼다. 그녀의 손이 뻗어와 턱이며 볼이며 이마를 어루만졌다. 마지막으로 가볍게 입술에 입을 맞추니 그가 콧소리를 내며 웃는다.
“이러기야?”
입술을 맞댄 채 짓궂게 물어오는 민권에게, 세연이 대답했다.
“이러는 게 뭐 어때서요. 내 남편인데.”
“음. 그럼 우리 며칠 동안 못 나눈 회포를 지금, 어때?”
“아…….”
세연은 그에게서 입술을 떼고 민권의 입술에 묻은 물기를 손가락으로 스윽 닦아주었다.
“그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지금 난 샌드위치를 싸는 중이고, 현이가 언제 깰지 모르고. 또…… 우유배달 아주머니가 오실…….”
“푯말을 하나 세워놔야겠어. 관계자 외 출입금지.”
그녀의 말이 민권의 입술에 의해 막혀버렸다. 그는 손을 세연의 등 뒤로 돌려 앞치마 끈을 풀었다. 사각사각, 앞치마가 벗겨져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소리가 은밀했다. 민권은 세연의 입술 깊숙이 혀를 밀어 넣는 것과 동시에 주춤주춤 걸음을 옮겨, 그녀의 등을 벽에 붙였다.
“여, 여기서요?”
급박한 전개에 당황한 세연이 서둘러 입술을 떼고 물었다. 민권의 야릇한 눈빛이 금세 다가왔다.
“급해. 당신은?”
“흐음.”
세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민권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것이 신호가 되어 민권의 거친 애무가 시작되었다. 목덜미를 따라 혀를 굴렸다. 손으로는 연신 젖가슴을 지분거렸고, 그것도 모자라 복부를 타고 내려가 사타구니 사이를 손바닥으로 문지른다.
세연의 다리가 절로 벌어졌다. 뜨거워진 체온이 하체를 연신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잡힌 젖가슴에선 쾌감과도 같은 통증이 느껴졌고 유두 끝으로 파생된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의 손바닥이 바지 안으로 쑥 들어오더니 이내 팬티 속을 달구었다. 부스스한 음모를 헤치고 은밀하게 숨어 있는 여린 살갗을 쓰다듬는다. 세연은 민권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신음을 쏟아냈다.
터져 나오는 숨결마저 떨렸다.
어서 그가 제 안을 뚫고 들어와 주기를 몸 안의 모든 감각이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터질 듯 부풀어 있는 남근이 아랫배를 스칠 때마다 짜릿한 전율이 등골을 타고 내달렸다.
“하아…… 민권 씨…… 어서…….”
보채는 아이처럼, 세연은 민권의 진입을 애원했다. 그러자 잔뜩 흐려진 눈빛의 그가 씩 웃는다. 이 여자의 살결은 현을 낳고난 후부터 더욱 부드러워졌다. 손가락 끝으로 만질 때마다 비단 같은 감촉에 본능이 꿈틀대곤 했다.
어서 바지를 벗고 이 여자의 깊고 촉촉한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어 민권은 서둘러 파자마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그 순간에, 적요를 뚫고 들려온 소리가 있었다.
“으앙! 앵앵! 으아앙!”
“하아…….”
“으음…….”
현의 울음소리가 집 안을 가득 울렸다. 잔뜩 달아올라 있던 육체는 그 순간부터 급속도로 체온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세연은 민권의 어깨에 기댄 후 아쉬움의 한숨을 쉬었고, 민권은 내리려던 파자마 바지를 주춤주춤 다시 끌어올렸다.
“당신이 갈래요?”
그의 어깨에 이마를 묻은 채 세연이 중얼거렸다. 민권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당신은 샌드위치 작업을 계속 해.”
“후우. 알았어요.”
세연은 흐트러진 옷깃을 여미곤 앞치마를 다시 둘렀다. 조금은 착잡해진 표정으로 현의 방에 들어간 민권은 현을 번쩍 안아 올렸다.
“너 이 녀석, 엄마 아빠의 좋은 금슬을 이렇게 끊어도 되는 거야? 응?”
민권이 한쪽 볼을 현의 얼굴에 비벼대며 방을 나섰다. 주방에 들어서자 아까의 흐트러진 차림새는 어디로 갔는지 다시 완벽한 아내의 모습으로 돌아온 세연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우리 현이, 일어나쪄요?”
눈에 눈물까지 맺힌 현을 보면서 세연이 까르르 웃자, 현도 그제야 입술을 늘린다. 민권은 아기 의자를 가져와 현을 앉힌 후 소독한 젖병에 물을 담았다.
“이 녀석이 아무래도 당신과 나 사이를 방해하는 게 틀림없어.”
단정 짓듯 민권이 읊조리자 세연이 그를 돌아보았다.
“방해라뇨?”
“아기라고 아무것도 모를 줄 알지? 사실은 다 알아. 무의식 속에서 아는 거지. 왜 갓 태어난 아이들은 물속에서 수영도 한다잖아.”
“그래서요?”
“당신과 나 사이를 질투하는 게 틀림없어.”
“방해는 뭐고 질투는 또 뭐예요. 어서 우유 만들어요.”
“우리 딸 하나 낳자.”
“……으, 응?”
세연은 잘 못 들었다는 듯 귀를 후벼 파고 다시 물었다.
“방금 뭐라 그랬어요?”
“딸 하나 더 낳자고. 아무래도 현이 녀석 사사건건 당신 편을 들게 될 게 뻔해. 그러니까 내 편도 한 명 있어야지. 딸이면 확실하게 내편으로 만들 수 있어.”
“이 남자 좀 봐. 지금 가족끼리 편 가르기 하는 거예요?”
“편을 가르자는 게 아니라 균형을 위해서지. 2:2로 축구도 할 수 있어.”
남자들은 왜 나이를 먹어도 철이 없는 걸까.
세연은 한숨과 함께 샌드위치 하나를 뚝딱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어쩌면 편 가르기는 핑계일 뿐, 정말로 그가 딸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민권 씨. 솔직하게 말해 봐요. 둘째를 원해요?”
더운 물을 부은 젖병을 후후 불어가며 식히던 민권이 고개를 돌린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를, 민권도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둘째는 향후 3년 후에 의논해 봐요. 지금 당장은 안 돼.”
단호하게 선을 그은 세연이 눈을 부릅뜨자 민권은 최대한 양보하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3년 정도는 참을 수 있어. 하지만 그 전에, 그러니까 뜻하지 않게 아이를 가지게 되면 그땐 어쩔 수 없는 거지.”
“아아, 현일 보면 정말 예쁜데 키우는 과정이 힘드니까 아무 생각이 없어요.”
“내가 함께 하잖아. 우유 먹이면 현이는 다시 잘 텐데, 어때? 이번엔 방에서. 관계자 외 출입금지. 붙여 놓을 테니까.”
그가 느물거리는 미소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입술을 내밀어 세연의 볼에 가볍게 뽀뽀를 한다. 유혹의 몸짓이라는 걸 알았지만 세연은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그의 뽀뽀가 키스가 되어가도록, 세연은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그러다 민권의 입술이 다시금 목덜미로 더듬더듬 내려갈 무렵, 세연은 몸을 확 뒤로 내뺐다.
“어림없어요. 3년 후예요!”
냉정하게 대답한 세연은 아예 민권의 접근을 차단하며 멀찍이서 칼질을 시작했다. 이번엔 샐러드를 만들 차례였다. 길게 한숨을 내쉰 민권은 분유를 타서 현의 입에 가져갔다.
“현아. 아빠한테 힘을 줘. 알았지? 이거 다 먹고 잘 자는 거다. 안 도와주면 우유 뺏는다?”
현의 귀에 속삭인 민권은 빙긋이 웃었다. 잠이 들려하는지 눈을 껌뻑거리는 현을, 매우 만족스러운 얼굴로 쳐다보았다. 잠 들어라, 잠 들어라. 주문을 외는 속내가 검고 음흉하다.
뒤로 칼질에 바쁜 세연의 기척 소리가 들려왔지만 민권은 오로지 현을 재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멀리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오랜만의 외출로 들뜬 마음에, 밝은 가을 햇살까지 더해져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 한 그런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