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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프롤로그





“박찬주.”

“…….”

“박찬주 없니?”

시우가 출석부를 내려놓고 교실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새 학교로 부임하자마자, 2학년 담임 교사를 맡게 되었다. 이제 막 2학년이 된 아이들 역시 새 담임이 낯선지 누구 하나 시원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창가에서 세 번째 책상이 비어 있는 걸 보면, 박찬주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은 새 학기 첫날부터 결석한 모양이다. 대학 수시의 비율이 높아진 탓에, 내신에 영향을 미치는 생활 기록부의 출결 관리는 학생들에게 무시 못 할 부분이 되었다. 지각도 아니고 무단결석이라니, 누군지 간도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우가 출석부를 다시 펴 들었을 때, 학생 가운데 한 명이 무슨 할 말이 있는지 손을 들었다.

“……저기.”

손을 든 건, 맨 뒷자리에 앉은 덩치 좋은 남학생이었다.

“왜, 무슨 할 말이 있니?”

“찬주가 몸이 약해서 병결일 수도 있어요. 일단 전화로 확인부터 해 보세요.”

“혹시 박찬주와 가까운 친구니?”

친구냐는 질문에 말을 꺼낸 남학생이 입을 다물었다. 아마도 가까운 친구는 아닌 모양이다.

“박찬주에 대해 아는 사람 또 없어?”

침묵만큼이나 무심한 얼굴들을 보고 있으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30여 명의 학생 가운데 박찬주의 친구가 한 사람도 없다니, 새삼 박찬주라는 학생이 궁금해졌다.

남녀 공학인 탓에 교실에는 남녀가 반반 섞여 있지만, 여학생 비율이 약간 더 높아 보였다. 담임을 맡았으니 미우나 고우나, 한 해를 함께 꾸려 갈 아이들이었다. 이곳은 학원가가 즐비하고 치맛바람으로 유명한 서울의 사립 고등학교로 전에 다니던 학교와는 교실 분위기부터 사뭇 달랐다. 기분 탓일까.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이 여간 새침하게 느껴지는 게 아니다.

시우가 그동안 근무했던 학교는 지방에 있는 남자 고등학교였다. 간혹 거친 아이들도 섞여 있었지만, 아이들 기질이 대부분 순박한 편이었다. 꽤 오랫동안 그곳에서 지내다가, 올해 들어 이곳 사립고로 자리를 옮겼다. 망설이던 시간이 무색하게, 지원에서 발령까지 일사불란하게 일이 이루어졌다. 선배 상원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요즘처럼 교사가 넘쳐나는 시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시우가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향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학생 생활 기록부를 꺼내서 박찬주라는 이름을 찾아보았다. 눈에 띌 정도로 이쁘장하고 새초롬하게 생긴 여학생의 사진을 보니, 상상한 이미지와 차이가 있어서 약간 놀라웠다. 출결 상태는 엉망인데,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덩치 큰 남학생의 말대로 병으로 인한 결석인 듯싶었다.

생기부를 훑던 시우의 시선이 가족 사항이 적힌 부문에서 멈추었다. 부모님은 안 계시고 대신해서 오빠가 보호자인데, 오빠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찬혁.’

순간, 생활 기록부를 든 시우의 손이 떨려 왔다. 돌이켜 보니, 박찬주라는 이름 역시 낯설지 않았다.

‘설마 아니겠지. 비슷한 이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설마 하는 마음은 보호자의 주민 등록 번호를 보는 순간, 깨끗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박찬주라는 여학생의 오빠는, 자신이 기억하는 박찬혁이 틀림없었다. 같은 생년월일과 같은 이름을 가진 여동생을 둔 박찬혁이 대한민국에 또 있지 않다면 말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마치 어제 일처럼 두 사람의 모습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방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제 오빠를 기다리던 여덟 살의 어린 소녀, 그리고 그런 여동생을 끔찍하게 아끼던 열여덟 살의 박찬혁까지.

가슴속에 각인된 기억은 감각마저 왜곡시킨다. 찬혁과 함께했던 여름이 그랬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턱 밑까지 숨이 차오르고 아득한 현기증이 몰려왔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기적처럼 다가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는 조각난 과거의 편린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존재였고, 동시에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아픈 존재이기도 했다.

결석한 찬주에게 전화하는 게 먼저였지만, 도무지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시우가 멍하니 앉아 있을 때, 교무실 한편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차를 마시던 교사 중 한 명이 시우를 불렀다.

“이 선생님. 이리 와서 차 한잔 하세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시우가 생기부에 있는 보호자 전화번호를 휴대 전화에 저장하고 동료 교사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학교 분위기가 좀 어때요? 처음이라 좀 낯설게 느껴지죠?”

인상 좋아 보이는 30대 중반의 여교사가 말을 붙여 왔다. 3학년 수학 담당 교사로, 부임 후 권 선생은 시우와도 인사를 나누었기에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곧 익숙해지겠죠.”

소소하고 허물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말없이 찻잔을 기울이는 시우를 내내 힐끔대던 미술 교사 희영이 그녀에게 넌지시 말을 붙였다.

“이 선생님은 정 이사님과 꽤 돈독한 사이인가 봐요?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좀처럼 들어오기 힘든 학교가 이곳인데.”

연예인 뺨칠 만큼 뛰어난 외모를 지닌 희영은 처음 인사할 때부터 시우에게 묘한 반감을 보였다. 지방의 이름 없는 일반 교사가 서울 유명 사립고에 채용되었다. 그것도 재단 이사장 아들의 추천으로. 어쩌면 실눈을 뜨고 보는 게 당연했다.

“정 이사님과는 대학 선후배 사이예요. 추천받기는 했지만, 제 실력이 부족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딱 부러지는 시우의 대답에 희영의 뺨이 약간 달아올랐다. 어색한 분위기에 곁에 선 교사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잠시 후, 수업 종이 울리고 모두 흩어지자, 시우가 권 선생을 뒤따라갔다. 찬주의 생기부를 보니, 1학년 담임이 권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권 선생님. 잠시 여쭈어 볼 게 있는데, 지금 수업 없으시죠?”



입춘이 한참 지났지만, 옷깃으로 스치는 바람이 여전히 차가웠다. 찬바람을 맞고 싶을 만큼 속이 시끄러웠던 탓일까, 건물 밖으로 나오니 그나마 숨통이 약간 트이는 기분이었다.

“찬주가 또 결석했어요? 한동안 괜찮더니, 또 시작인가…….”

찬주의 이야기를 꺼내자 권 선생의 얼굴에 근심이 서렸다. 시작이라는 말을 들으니, 시우 역시 까닭도 없이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찬주와 통화는 해 보셨어요?”

권 선생의 물음에 시우가 변명처럼 말했다.

“제가 새 담임이잖아요. 아이가 낯설어할까 봐, 일단 권 선생님과 상의하고 통화하려고요.”

사실 변명거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차마 손이 떨어지지 않아서 전화하지 못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무언가에 골몰하던 권 선생이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병력이라면 병력인데, 찬주가 우울증이 좀 있었어요. 다행히 공부를 잘해서 줄곧 내신 1, 2등급을 유지했었는데,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눈치여서 늘 지켜보기 불안했어요.”

“생기부에는 보호자가 오빠던데, 혹시 보호자와 상담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찬주 일로 가끔 통화했어요. 학교까지 찾아와서 상담하곤 했는데, 오빠가 여느 부모 못지않게 아이에게 열성이 있었어요.”

박찬혁이라면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부모 없이 홀로 여동생을 돌봤을 테니, 그 마음이 오죽이나 깊을까. 그를 떠올리니, 마음이 무거워지는 한편 당면한 문제가 막막하기만 했다. 지금 당장은 찬주의 일로 그와 통화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상담까지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무슨 얼굴로 다시 그를 볼 수 있을까. 과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심장이 죄어 오는데.

“찬주가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시우의 물음에 권 선생이 가볍게 웃었다.

“가정 형편이 어렵기는요. 우리 학교 학비가 비싸서 웬만큼 살지 않으면 입학할 엄두도 못 내는 곳이잖아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사는 집이며 찬주가 하고 다니는 걸 봐서는 집이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어요.”

듣고 보니 그랬다. 하지만 의아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남부럽지 않게 살던 찬혁의 가족이 몰락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의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난 후, 찬혁은 학교를 그만둬야 할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10년 사이에 크게 형편이 나아졌을 것 같지는 않았다.

시우가 딴생각에 잠겨 있을 때, 무언가 할 말이 남은 듯 권 선생이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어렵게 살진 않는데, 찬주 오빠가 하는 일이 명확하지 않아요. 소문으로는…….”

시우의 눈치를 보던 권 선생이 말끝을 흐렸다.

“아니에요. 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이죠.”

“괜찮으니까 말씀해 주세요.”

시우의 차분한 시선에 망설이던 권 선생이 다시 말을 이었다.

“사는 형편과 상관없이 찬주 주변 환경이 깨끗해 보이진 않았어요. 오빠가 질 나쁜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있고 술집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는 소문도 들리고…….”

비록 에둘러 말하고 있지만, 내용 자체는 시우가 기억하는 찬혁과 어딘가 동떨어져 보였다. 찬혁이 술집을 운영한다? 술집을 운영하며 만나는 질 나쁜 사람이라면 법이 아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밑바닥 인생들과 어울린다는 말인데.

“일단 연락부터 해 보세요. 찬주가 무단결석할 때마다 전화를 꺼 놓으니, 찬주 오빠에게 직접 연락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이런저런 충고를 잊지 않던 권 선생이 다시 교무실로 들어갔다. 한참이나 교정을 서성이던 시우가 휴대 전화를 꺼내 들었다.

권 선생의 말대로 찬주의 휴대 전화는 이미 꺼진 상태였다. 찬혁에게 연락해야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던 시우가 입력한 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연결음이 울린 후에야 나지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 네. 박찬혁입니다.

뛰는 심장 탓일까. 말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목이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는 찬주의 담임 교사인…….”

자신의 이름을 말하려던 시우가 말끝을 흐렸다. 용케도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가 깍듯하게 물었다.

― 혹시 찬주 담임 선생님 되십니까?

“네. 2학년 새 담임입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찬주 오빠인 박찬혁입니다.

지나칠 정도로 예의 바른 말투에 갑자기 목 안쪽에서 울컥하며 무언가가 올라왔다. 시우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그가 불쑥 물었다.

― 선생님. 혹시 찬주가 결석했습니까?

“네. 새 학기 첫날부터 결석했는데, 혹시 아시나 해서 연락드렸어요.”

꽉 잠긴 목소리가 제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전화선 너머에서 짧은 침묵이 흘렀다.

― 선생님께 면목이 없습니다. 우선, 제가 찬주를 찾아보고 연락드려도 될까요?

시간 앞에서 변치 않는 것은 없다지만, 자신이 알았던 박찬혁은 예전과 다름없어 보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는 차분한 말투와 사려 깊은 태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옛 기억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존재였기에,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만으로도 만감이 교차했다.

대답 없는 시우를 오해했는지, 찬혁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 찬주가 최근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쁜 아이는 아닙니다.

알고 있다. 자신이 기억하는 여덟 살의 찬주는 밝은 성격 못지않게 유난히 영민하고 사려 깊은 아이였다.

“네. 알고 있습니다.”

시우의 대답에 전화기 너머에서 짧은 침묵이 흘렀다. 갓 부임한 담임이 찬주를 잘 알고 있는 듯이 말하니 그가 이상하게 여기는 게 당연했다.

―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지막한 목소리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 우선 찬주를 찾아서 학교에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새 학기라 바쁘실 테니 당장은 좀 그렇고, 조만간 선생님을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아무리 교사와 학부모 사이라도, 그를 어찌 볼지 막막했다. 시우가 쥐어짜듯 어렵사리 대답했다.

“……그럼요. 오실 때 연락 주세요.”

죄송하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 그가 전화를 끊었다. 끊긴 전화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을 때, 뜨끈한 물기가 눈 안쪽으로 차올랐다.

어느덧 10여 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도 남은 눈물이 있는지, 어처구니가 없어서 더욱 눈물이 나왔다.

시우는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기를 손등으로 빠르게 훔쳐 냈다.

‘박찬혁’,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갖 생각이 뒤섞이게 하는 사람, 절망과 불행으로 얼룩진 삶에 활기를 더해 주고 죽는 거보다는 사는 게 낫다는 희망을 불어넣어 주곤 하던 사람.

시린 겨울 끝에서 봄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던 시절이 언제였더라.

성난 너울처럼 거세게, 그러나 까마득히 밀려드는 기억에 몸을 맡기며 그녀가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