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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지금이라도 마법을 써서 도망쳐야 할까 오즈가 고민하는 사이 차는 경찰서에 도착했다. 엔리케는 나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오즈를 다시 끄집어내서 경찰서로 데려갔다. 그는 불안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노숙자를 의자에 앉혔다. 금방이라도 달아날 것처럼 보이기에 안심시키려고 일단 초코바를 하나 쥐여 주었다. 순한 눈매가 동그랗게 변하더니 안심한 듯 초코바를 꾹 쥐었다.
“이름이 뭡니까?”
큰 기대는 하지 않으며 엔리케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노숙자 중에는 신원 미상인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범죄자나 정신병자, 마약 중독자들도 허다했다.
“이름이 뭐예요?”
젊은 노숙자가 초코바만 소중히 바스락거리고 있자 엔리케가 다시 물었다.
엄격한 말투에 그제야 오즈가 초코바에서 시선을 떼어 냈다. 귀동냥으로 몇 단어들을 습득하기만 했을 뿐이라 오즈는 질문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난민이나 이민자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한 엔리케가 기초적인 바디랭귀지를 시도했다.
“이름. 엔리케. 엔리케.”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며 이름을 번갈아 말하고는 오즈의 가슴을 짚어 주며 다시 물었다.
“이름이 뭡니까?”
그제야 오즈는 경찰의 질문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가 동전과 초코바를 꾹 쥐며 성실하게 대답했다.
“오즈 뤼제슐락.”
“오즈 리……. 뭐요?”
“오즈 뤼제슐락.”
“리제……. 리제슈라?”
“뤼제슐락! 뤼제슐락! 뤼, 제, 슐, 락.”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했지만 엔리케는 알아듣지 못했다. 역시나 난민인가 싶어 이마를 긁다가 그가 대강 리제슈라라고 적어 놓고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여러 질문을 거듭한 끝에 엔리케는 오즈가 어디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언어가 통하지 않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름 정도만 알아낸 엔리케가 회전의자를 반쯤 돌려 뒤로 젖히며 동료에게 물었다.
“이봐, 폴. 이 근처 노숙자 센터에 어디 빈 곳 없어?”
“없을 텐데. 요즘 하도 민원이 잦아서 인계 건수가 많았거든.”
“복지관도?”
“복지관이라…… 아, 그렇지! 거긴 어때? 얼마 전에 로즈쿼츠에서 복지관을 새로 열었다고 하던데.”
“로즈쿼츠 복지관? 아, 그 로제 프라이스의? 한번 연락해 볼게.”
두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주위를 살피던 오즈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멈췄다. 이 도시에서 지내는 내내 수도 없이 본 그 아름다운 남자가 그려진 얇은 책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사실처럼 섬세하게 그려 낼 수가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오즈가 물었다.
“엔리케. 이거…… 이름?”
“응?”
임시 신분증 신청 보고서를 작성하던 엔리케가 고개를 돌렸다. 젊은 노숙자, 오즈가 간절하게 궁금해하는 얼굴로 잡지 표지의 인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 누군지 궁금해요? 이 사람은 로제 프라이스예요. 로제 프라이스.”
로제 프라이스! 이름이 로제 프라이스였구나. 얼굴만큼 잘 어울리는 좋은 이름이었다. 오즈는 잊지 않기 위해 입 안으로 그 이름을 몇 번이나 둥글려 보았다.
보고서를 작성한 뒤 엔리케는 임시 신분증을 발급받아 오즈에게 내밀었다. 오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오즈 리제슈라’라고 적힌 플라스틱 카드를 받았다. 로즈쿼츠 복지관에 전화를 해 보니 다행히 일단 데리고 와 보라는 연락이 왔다.
오즈는 다시 엔리케를 따라 기이한 강철 마차를 탔다. 자신이 있던 자리에 되돌아가는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들은 곧 어느 건물 앞에 내렸다. 파스텔 톤의 3층 건물, 로즈쿼츠 복지관이었다.
오즈가 어리둥절해하는 동안 엔리케는 센터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은 자리가 없으나 식사나 교육 등은 지원해 줄 수 있다는 대화였다. 고개를 끄덕인 엔리케가 돌아서며 오즈에게 미소 지었다. 그는 그럭저럭 훌륭한 경찰의 책임을 다한 셈이었다.
“잘 지내요, 오즈 리제슈라 씨.”
“뤼제슐락!”
“그래요, 리제슈라 씨.”
끝까지 엔리케는 오즈의 성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 채 강철 마차를 타고 다시 떠났다. 오즈가 어리둥절해하는 동안 센터 직원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안내했다.
“로즈쿼츠 복지관에 어서 와요, 오즈 씨. 자, 이쪽으로.”
어쩐지 수상쩍은 남자라고 생각하며 오즈는 센터 직원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알아들을 수 없는 설명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오즈는 로즈쿼츠, 하고 또 중얼거렸다. 어쩐지 느낌이 좋은 단어였다.
어쩌면 이세계에서 좋은 시작점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지?’
험악한 사내들 앞, 차가운 바닥에 무릎 꿇려진 채 오즈가 생각했다.
로즈쿼츠 복지관에 간 뒤 오즈는 언어부터 배웠다. 심비오스에서 오즈가 괜히 모든 언어에 통달한 마법사로 불린 게 아니었다. 언어는 오즈가 터득한 이치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이는 분야였다. 겨우 일주일 만에 오즈는 큰 어려움 없이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 말을 배우는 것은 그에게 있어 가장 쉬운 일이었다.
배운 것은 언어뿐만이 아니었다. 오즈는 그 외에도 핸드폰이나 컴퓨터, 자동차, TV 따위의 생소한 사물들의 개념을 터득해 냈다. 아직도 이 신기한 물건들의 작동 원리는 알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이곳은 놀라운 것투성이였다.
특히나 로즈쿼츠 복지관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로제 프라이스란 사내에 대한 것이었다. 로즈쿼츠에서 가장 흔한 문구가 바로 다음과 같았다.
<로즈쿼츠 복지관, 로제 프라이스가 당신의 새로운 시작을 지원합니다!>
도시에서도 그랬지만 로즈쿼츠 복지관에서는 특히나 로제 프라이스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자주 트는 홍보 영상도, 전단지도, 하다못해 구비된 잡지에도 로제 프라이스가 있었다. 그가 로즈쿼츠 복지 재단의 후원자이자 이 도시의 유명인인 탓이었다.
로제 프라이스는 로즈쿼츠 에이전시란 곳의 사장이자 배우라고 했다. 배우로 활동한 시기는 겨우 1여 년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름다운 외모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배우 활동을 접은 뒤에도 자주 로즈쿼츠 에이전시의 간판 모델로 활동한다고 했다.
그토록 아름다운 외모에 더불어 로제 프라이스는 인성조차 훌륭했다. 상냥하고 다정한 말투와 이처럼 노숙자 지원 센터 등 기부 활동도 활발하여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오즈 또한 이처럼 도움을 받고 있으니 그도 자연스럽게 로제 프라이스에 대한 호감이 커졌다. 복지관에서 로제 프라이스의 홍보 전단지도 몇 장 슬쩍했을 정도였다.
그는 복지관 실장의 소개를 받아 공장에서 일을 했다. 간단한 조립 공정이었다. 오즈는 그곳에서 반나절 동안 내내 무언지 모를 플라스틱 부품을 조립하고 35유로(*약 45,000원)를 벌 수 있었다.
오즈는 열심히 돈을 모았다. 성실하게도 매일매일 공장에 나가 일당을 받아 왔다. 300유로나 모을 수 있었다. 그는 가장 먼저 그 300유로로 핸드폰을 사고자 했다. 이곳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어디서 사는지,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수 없어서 이리저리 수소문하는 와중에 복지관의 아롤도라는 사내가 접근했다. 좋은 일거리가 있다고, 사진만 좀 찍고 이름 두어 자 쓰고 손도장을 찍기만 하면 핸드폰에 천 유로를 더 받을 수 있다고 했었는데…….
그다음 날부터 복지관에서 아롤도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문제는 그 뒤에 터졌다. 공장 조립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오즈는 두 명의 험상궂은 사내들과 마주쳤다.
“오즈 리제슈라?”
“뤼제슐락이다.”
반사적으로 대꾸하자마자 오즈는 자신이 잘못 답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사내들에게 붙들려 차 안에 밀어 넣어졌다. 바로 옆구리를 뾰족한 칼날이 쿡 찌르고 있어 반항도 용이치 않았다. 마법사의 천적은 기사다. 이들이 기사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으므로 오즈는 긴장한 채 끌려갔다.
차는 어느 건물 앞에 멈췄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외관에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네온사인 간판이 달려 있었다. <클럽 도밍고>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었다. 오즈는 휘청거리며 건물 뒷문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차가운 바닥에 무릎 꿇려진 채 누군가 얻어맞는 소리를 듣는 중이었다. 누군가 신음하고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소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새끼, 이 멍청한, 새끼. 너 정신 나갔어? 어? 돈 빌려줄 놈 말아야 할 놈 구별도 못 해? 그딴 놈도 친구라고 돈을 빌려줘? 노숙자잖아! 이 얼빠진 새끼야! 노숙자가 돈을 내면 얼마나 낼 수 있겠냐고!”
“자, 잘못했습니다! 악! 워, 워렌 씨!”
“입 닥쳐! 보스 돌아오면 넌 죽은 목숨인 줄 알아!”
워렌이라 불린 남자는 누군가에게 몇 번이고 발길질을 하다가 오즈가 끌려 들어오자 그제야 멈췄다. 그가 인상부터 썼다.
“아, 냄새 진짜.”
안 그래도 요즘 일하고 자는 곳 구하기에 바빠 씻는 걸 게을리 했던 오즈가 뜨끔했다. 그래도 그렇게 심하게 냄새나진 않을 텐데…….
“저놈 몸 좀 뒤져 봐.”
남자들은 오즈의 몸을 뒤져 가지고 있는 소지품을 모두 꺼냈다. 신분증과 최근 산 핸드폰, 그리고 400유로의 돈과 젤리 조금이었다. 그걸 보자 워렌은 깊은 한숨을 쉬면서 담배를 뻑뻑 피웠다. 로제 프라이스의 전단지가 여러 장 나왔을 때는 어처구니없어하며 웃었다.
“아니, 이 새끼 이거 변태 아냐? 프라이스 씨 전단지를 품에 넣고 다녀?”
“오다가다 몇 장 떨어져 있기에 주웠을 뿐이야.”
부끄러움을 알고는 있었던 오즈가 우겨 보았으나 아무도 듣는 척도 안 했다. 실제로 한 장은 바닥에 떨어져 있기에 주운 것이기도 했다.
“하, 진짜……. 이놈으로 4만 유로를 어떻게 메꾸지.”
그는 연달아 담배 두 개를 피우더니 멀뚱거리며 서 있는 오즈에게 물었다.
“네놈은 이 상황이 파악도 안 되냐? 네 친구가 너 팔아먹은 거야. 응? 네 이름으로 4만 유로나 빌려서 튀었다고!”
“아, 그런 거였나?”
오즈는 그제야 모든 정황을 알 수 있었다. 뒤늦게 깨달은 소리를 내자 어이가 없었는지 워렌이 허, 하면서 담배를 하나 더 피웠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믿는 구석이 있는 위대한 마법사 오즈만 태연했다. 마침내 워렌이 인상을 쓰며 바닥에 담배를 던졌다.
“야, 가르자. 보아하니 약 빠는 놈은 아닌 거 같고. 요즘 각막 시세가 어떻게 되지? 신장이 3천 유로쯤 하던가?”
“각막, 신장, 그 외에 팔 수 있는 거 다 합쳐도 4만은 안 됩니다. 지난달에 에비츠 씨가 수술받다 죽은 뒤로 영 별로 수요도 없어요. 그리고 보스도 그런 거 싫어하잖아요.”
장기 이야기가 나오자 오즈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곧장 떠오른 건 이적 마법사였다.
핸드폰을 사자마자 오즈가 첫 번째로 한 일은 마법에 대해 찾아보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대체로 마법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좋은 것 같았다. 그런데 선하고 좋은 마법사가 있는 한편으로는 악한 마법사들도 제법 있는 듯했다. 사람을 제물로 사용하는 이적 마법사들처럼, 이곳도 온갖 사악하고 악독한 마법사들이 있었다.
여기서는 그런 마법사들을 마녀나 혹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들과 대적했다. 그에 관련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었다. 공주를 죽이려고 한 마녀 왕비, 선한 사자와 옷장이 나오는 신화, 심지어 선택받은 아이와 함부로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어떤 자까지…….
이적 마법사 비슷한 존재와도 대면하고 싶지 않았던 오즈가 당장 자신의 정체와 능력을 밝혔다.
“난 마법을 할 수 있다.”
“뭐?”
오즈의 처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워렌이 되물었다. 오즈가 다시 말했다.
“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
지금이라도 마법을 써서 도망쳐야 할까 오즈가 고민하는 사이 차는 경찰서에 도착했다. 엔리케는 나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오즈를 다시 끄집어내서 경찰서로 데려갔다. 그는 불안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노숙자를 의자에 앉혔다. 금방이라도 달아날 것처럼 보이기에 안심시키려고 일단 초코바를 하나 쥐여 주었다. 순한 눈매가 동그랗게 변하더니 안심한 듯 초코바를 꾹 쥐었다.
“이름이 뭡니까?”
큰 기대는 하지 않으며 엔리케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노숙자 중에는 신원 미상인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범죄자나 정신병자, 마약 중독자들도 허다했다.
“이름이 뭐예요?”
젊은 노숙자가 초코바만 소중히 바스락거리고 있자 엔리케가 다시 물었다.
엄격한 말투에 그제야 오즈가 초코바에서 시선을 떼어 냈다. 귀동냥으로 몇 단어들을 습득하기만 했을 뿐이라 오즈는 질문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난민이나 이민자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한 엔리케가 기초적인 바디랭귀지를 시도했다.
“이름. 엔리케. 엔리케.”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며 이름을 번갈아 말하고는 오즈의 가슴을 짚어 주며 다시 물었다.
“이름이 뭡니까?”
그제야 오즈는 경찰의 질문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가 동전과 초코바를 꾹 쥐며 성실하게 대답했다.
“오즈 뤼제슐락.”
“오즈 리……. 뭐요?”
“오즈 뤼제슐락.”
“리제……. 리제슈라?”
“뤼제슐락! 뤼제슐락! 뤼, 제, 슐, 락.”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했지만 엔리케는 알아듣지 못했다. 역시나 난민인가 싶어 이마를 긁다가 그가 대강 리제슈라라고 적어 놓고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여러 질문을 거듭한 끝에 엔리케는 오즈가 어디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언어가 통하지 않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름 정도만 알아낸 엔리케가 회전의자를 반쯤 돌려 뒤로 젖히며 동료에게 물었다.
“이봐, 폴. 이 근처 노숙자 센터에 어디 빈 곳 없어?”
“없을 텐데. 요즘 하도 민원이 잦아서 인계 건수가 많았거든.”
“복지관도?”
“복지관이라…… 아, 그렇지! 거긴 어때? 얼마 전에 로즈쿼츠에서 복지관을 새로 열었다고 하던데.”
“로즈쿼츠 복지관? 아, 그 로제 프라이스의? 한번 연락해 볼게.”
두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주위를 살피던 오즈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멈췄다. 이 도시에서 지내는 내내 수도 없이 본 그 아름다운 남자가 그려진 얇은 책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사실처럼 섬세하게 그려 낼 수가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오즈가 물었다.
“엔리케. 이거…… 이름?”
“응?”
임시 신분증 신청 보고서를 작성하던 엔리케가 고개를 돌렸다. 젊은 노숙자, 오즈가 간절하게 궁금해하는 얼굴로 잡지 표지의 인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 누군지 궁금해요? 이 사람은 로제 프라이스예요. 로제 프라이스.”
로제 프라이스! 이름이 로제 프라이스였구나. 얼굴만큼 잘 어울리는 좋은 이름이었다. 오즈는 잊지 않기 위해 입 안으로 그 이름을 몇 번이나 둥글려 보았다.
보고서를 작성한 뒤 엔리케는 임시 신분증을 발급받아 오즈에게 내밀었다. 오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오즈 리제슈라’라고 적힌 플라스틱 카드를 받았다. 로즈쿼츠 복지관에 전화를 해 보니 다행히 일단 데리고 와 보라는 연락이 왔다.
오즈는 다시 엔리케를 따라 기이한 강철 마차를 탔다. 자신이 있던 자리에 되돌아가는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들은 곧 어느 건물 앞에 내렸다. 파스텔 톤의 3층 건물, 로즈쿼츠 복지관이었다.
오즈가 어리둥절해하는 동안 엔리케는 센터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은 자리가 없으나 식사나 교육 등은 지원해 줄 수 있다는 대화였다. 고개를 끄덕인 엔리케가 돌아서며 오즈에게 미소 지었다. 그는 그럭저럭 훌륭한 경찰의 책임을 다한 셈이었다.
“잘 지내요, 오즈 리제슈라 씨.”
“뤼제슐락!”
“그래요, 리제슈라 씨.”
끝까지 엔리케는 오즈의 성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 채 강철 마차를 타고 다시 떠났다. 오즈가 어리둥절해하는 동안 센터 직원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안내했다.
“로즈쿼츠 복지관에 어서 와요, 오즈 씨. 자, 이쪽으로.”
어쩐지 수상쩍은 남자라고 생각하며 오즈는 센터 직원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알아들을 수 없는 설명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오즈는 로즈쿼츠, 하고 또 중얼거렸다. 어쩐지 느낌이 좋은 단어였다.
어쩌면 이세계에서 좋은 시작점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지?’
험악한 사내들 앞, 차가운 바닥에 무릎 꿇려진 채 오즈가 생각했다.
로즈쿼츠 복지관에 간 뒤 오즈는 언어부터 배웠다. 심비오스에서 오즈가 괜히 모든 언어에 통달한 마법사로 불린 게 아니었다. 언어는 오즈가 터득한 이치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이는 분야였다. 겨우 일주일 만에 오즈는 큰 어려움 없이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 말을 배우는 것은 그에게 있어 가장 쉬운 일이었다.
배운 것은 언어뿐만이 아니었다. 오즈는 그 외에도 핸드폰이나 컴퓨터, 자동차, TV 따위의 생소한 사물들의 개념을 터득해 냈다. 아직도 이 신기한 물건들의 작동 원리는 알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이곳은 놀라운 것투성이였다.
특히나 로즈쿼츠 복지관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로제 프라이스란 사내에 대한 것이었다. 로즈쿼츠에서 가장 흔한 문구가 바로 다음과 같았다.
<로즈쿼츠 복지관, 로제 프라이스가 당신의 새로운 시작을 지원합니다!>
도시에서도 그랬지만 로즈쿼츠 복지관에서는 특히나 로제 프라이스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자주 트는 홍보 영상도, 전단지도, 하다못해 구비된 잡지에도 로제 프라이스가 있었다. 그가 로즈쿼츠 복지 재단의 후원자이자 이 도시의 유명인인 탓이었다.
로제 프라이스는 로즈쿼츠 에이전시란 곳의 사장이자 배우라고 했다. 배우로 활동한 시기는 겨우 1여 년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름다운 외모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배우 활동을 접은 뒤에도 자주 로즈쿼츠 에이전시의 간판 모델로 활동한다고 했다.
그토록 아름다운 외모에 더불어 로제 프라이스는 인성조차 훌륭했다. 상냥하고 다정한 말투와 이처럼 노숙자 지원 센터 등 기부 활동도 활발하여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오즈 또한 이처럼 도움을 받고 있으니 그도 자연스럽게 로제 프라이스에 대한 호감이 커졌다. 복지관에서 로제 프라이스의 홍보 전단지도 몇 장 슬쩍했을 정도였다.
그는 복지관 실장의 소개를 받아 공장에서 일을 했다. 간단한 조립 공정이었다. 오즈는 그곳에서 반나절 동안 내내 무언지 모를 플라스틱 부품을 조립하고 35유로(*약 45,000원)를 벌 수 있었다.
오즈는 열심히 돈을 모았다. 성실하게도 매일매일 공장에 나가 일당을 받아 왔다. 300유로나 모을 수 있었다. 그는 가장 먼저 그 300유로로 핸드폰을 사고자 했다. 이곳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어디서 사는지,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수 없어서 이리저리 수소문하는 와중에 복지관의 아롤도라는 사내가 접근했다. 좋은 일거리가 있다고, 사진만 좀 찍고 이름 두어 자 쓰고 손도장을 찍기만 하면 핸드폰에 천 유로를 더 받을 수 있다고 했었는데…….
그다음 날부터 복지관에서 아롤도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문제는 그 뒤에 터졌다. 공장 조립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오즈는 두 명의 험상궂은 사내들과 마주쳤다.
“오즈 리제슈라?”
“뤼제슐락이다.”
반사적으로 대꾸하자마자 오즈는 자신이 잘못 답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사내들에게 붙들려 차 안에 밀어 넣어졌다. 바로 옆구리를 뾰족한 칼날이 쿡 찌르고 있어 반항도 용이치 않았다. 마법사의 천적은 기사다. 이들이 기사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으므로 오즈는 긴장한 채 끌려갔다.
차는 어느 건물 앞에 멈췄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외관에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네온사인 간판이 달려 있었다. <클럽 도밍고>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었다. 오즈는 휘청거리며 건물 뒷문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차가운 바닥에 무릎 꿇려진 채 누군가 얻어맞는 소리를 듣는 중이었다. 누군가 신음하고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소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새끼, 이 멍청한, 새끼. 너 정신 나갔어? 어? 돈 빌려줄 놈 말아야 할 놈 구별도 못 해? 그딴 놈도 친구라고 돈을 빌려줘? 노숙자잖아! 이 얼빠진 새끼야! 노숙자가 돈을 내면 얼마나 낼 수 있겠냐고!”
“자, 잘못했습니다! 악! 워, 워렌 씨!”
“입 닥쳐! 보스 돌아오면 넌 죽은 목숨인 줄 알아!”
워렌이라 불린 남자는 누군가에게 몇 번이고 발길질을 하다가 오즈가 끌려 들어오자 그제야 멈췄다. 그가 인상부터 썼다.
“아, 냄새 진짜.”
안 그래도 요즘 일하고 자는 곳 구하기에 바빠 씻는 걸 게을리 했던 오즈가 뜨끔했다. 그래도 그렇게 심하게 냄새나진 않을 텐데…….
“저놈 몸 좀 뒤져 봐.”
남자들은 오즈의 몸을 뒤져 가지고 있는 소지품을 모두 꺼냈다. 신분증과 최근 산 핸드폰, 그리고 400유로의 돈과 젤리 조금이었다. 그걸 보자 워렌은 깊은 한숨을 쉬면서 담배를 뻑뻑 피웠다. 로제 프라이스의 전단지가 여러 장 나왔을 때는 어처구니없어하며 웃었다.
“아니, 이 새끼 이거 변태 아냐? 프라이스 씨 전단지를 품에 넣고 다녀?”
“오다가다 몇 장 떨어져 있기에 주웠을 뿐이야.”
부끄러움을 알고는 있었던 오즈가 우겨 보았으나 아무도 듣는 척도 안 했다. 실제로 한 장은 바닥에 떨어져 있기에 주운 것이기도 했다.
“하, 진짜……. 이놈으로 4만 유로를 어떻게 메꾸지.”
그는 연달아 담배 두 개를 피우더니 멀뚱거리며 서 있는 오즈에게 물었다.
“네놈은 이 상황이 파악도 안 되냐? 네 친구가 너 팔아먹은 거야. 응? 네 이름으로 4만 유로나 빌려서 튀었다고!”
“아, 그런 거였나?”
오즈는 그제야 모든 정황을 알 수 있었다. 뒤늦게 깨달은 소리를 내자 어이가 없었는지 워렌이 허, 하면서 담배를 하나 더 피웠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믿는 구석이 있는 위대한 마법사 오즈만 태연했다. 마침내 워렌이 인상을 쓰며 바닥에 담배를 던졌다.
“야, 가르자. 보아하니 약 빠는 놈은 아닌 거 같고. 요즘 각막 시세가 어떻게 되지? 신장이 3천 유로쯤 하던가?”
“각막, 신장, 그 외에 팔 수 있는 거 다 합쳐도 4만은 안 됩니다. 지난달에 에비츠 씨가 수술받다 죽은 뒤로 영 별로 수요도 없어요. 그리고 보스도 그런 거 싫어하잖아요.”
장기 이야기가 나오자 오즈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곧장 떠오른 건 이적 마법사였다.
핸드폰을 사자마자 오즈가 첫 번째로 한 일은 마법에 대해 찾아보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대체로 마법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좋은 것 같았다. 그런데 선하고 좋은 마법사가 있는 한편으로는 악한 마법사들도 제법 있는 듯했다. 사람을 제물로 사용하는 이적 마법사들처럼, 이곳도 온갖 사악하고 악독한 마법사들이 있었다.
여기서는 그런 마법사들을 마녀나 혹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들과 대적했다. 그에 관련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었다. 공주를 죽이려고 한 마녀 왕비, 선한 사자와 옷장이 나오는 신화, 심지어 선택받은 아이와 함부로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어떤 자까지…….
이적 마법사 비슷한 존재와도 대면하고 싶지 않았던 오즈가 당장 자신의 정체와 능력을 밝혔다.
“난 마법을 할 수 있다.”
“뭐?”
오즈의 처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워렌이 되물었다. 오즈가 다시 말했다.
“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