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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폭풍전야 (2)
질겅질겅.
껌을 참 찰 지게도 잘 씹는다.
거기다 기분 더럽게 만드는 ‘딱딱딱’ 소리가 반복적으로 튀어 나왔다.
“태수 오빠 이년 손 좀 봐줘. 이게 아주 예쁘다, 예쁘다 하니까 아주 머리꼭대기로 기어 올라온다니까. 내가 예약 받고 손님한테 보냈는데 도망친 거 있지.”
사실 해미는 이들과 별로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너무 집요하게 끌고 다녀서 어쩔 수가 없었다.
학교 선생님께 알려 도움을 구했지만, 반성문 수준으로 그쳤고, 이후는 더한 괴롭힘이 따라왔다.
해미의 아빠는 외항선을 타고 1년에 한두 달 밖에 얼굴을 보지 못했고, 엄마는 어릴 때 집을 나가 소식조차 없었다.
일가친척도 거의 없어 주변에 도움을 줄 사람이 없었다.
오늘은 자신들의 친목 모임에 가입하라며, 가입 신고식을 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 본 사람 담뱃불 빌려오기, 술 사오기, 심지어 원조교제까지.
미치도록 도망가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었고, 하물며 도망가더라도 학교서 또 보게 될 터였다.
헤어날 수 없는 모래 지옥 같은 상황이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이들의 손에 이끌려 거리를 배회했다.
그러다 어떤 아저씨가 눈에 뛰었다.
훤칠한 키에 잘생겼다기보다 남자답고 호감 가는 인상의 아저씨였다.
차라리 이 사람 이라면, 이라는 생각을 하고 말을 걸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에도 없는 막말을 마구 했는데도 화를 내기는커녕 먹을 걸 사주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러다 그 아저씨와 헤어지고 틈을 봐서 도망치다 잡혔고, 지금은 이 꼴이 되었다.
“존만 한 년이 뒤지려고! 우리 예쁜 지나야-. 오빠가 어떻게 만들어 줄까? 크큭.”
한쪽 머리에 스크래치 3줄이 있는 남자가 여자애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지난번 초희 년 하고 똑같이 만들어줘. 그년 전학 가긴 했지만 그전까지 고분고분했었거든. 손님도 잘 받았다니까.”
“그래? 그럼 오빠가 맘대로 한다? 딴말하기 없기다.”
“아 몰라 맘대로 해.”
“시형아 이년 좀 끌고 가자.”
태수가 모자를 뒤집어쓴 친구를 불렀다.
“야. 어디로 데려가려고? 와! 시바 존예네. 야. 옆에 공원으로 그냥 가자.”
“야 시발! 이번엔 내가 먼저야.”
“뭐래? 등신아! 너 지금 병 걸렸잖아 나대지 말고 짜져라.”
시형과 함께 다가온 4명의 남자가 모두 한마디씩 했다.
바들바들.
해미는 너무도 무섭고 두려웠다.
지금 이들이 하는 말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너무 큰 공포심에 짓눌려 목소리조차 쉬이 나오지 않고, 잠겨 들었다.
거친 남자들의 손에 이끌려 놀이터에서 공원까지 끌려온 해미는, 혹 지나는 경찰차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을까 했지만 운도 좋지 않았다.
너무 외진 곳이었고, 시간도 늦어 지나는 행인 하나 없었다.
공원이라 이름 붙었지만, 실상은 가로등도 하나 없는 변두리의 야트막한 야산이었다.
관리가 되는 곳이 아니었다.
“제, 제발요. 제발······.”
“얌전히 있어라 존나 쳐 맞고 당하기 싫으면.”
“부, 부탁드려요. 제 제발 보내주세요.”
해미의 얼굴은 눈물 콧물이 범벅이다. 거기다 입술 한쪽이 터져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태수는 비열한 웃음을 입에 머금고, 서슴없이 자신의 바지를 벗어 내렸다.
번쩍. 번쩍.
“아, 아 거기까지. 이야 자세 좋고, 표정 봐라. 어디를 봐도 3류 양아치들의 범죄 현장 아니냐. 성폭행 미수에 강제 성매매, 폭행, 유인 납치까지 이야, 죄목만 보면 아주 악질 중의 최악질이야. 아무리 비싼 변호사를 구해도 열 바퀴는 나오겠다. 하하.”
오피스텔 근처 놀이터를 지날 때 설마 했다.
다수의 남녀가 있는데 그사이 쪼그려 앉은 해미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구타를 당한 듯 멀리서도 입가의 핏자국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 이들의 말을 들어보니 정상적인 청소년들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녹취와 동시에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강제 성매매는 물론이고 갈취에 폭행도 서슴지 않는 범죄자들이다.
그리고 해미는 피해자였고.
성현은 충분한 증거 수집이 위해 이들을 뒤따랐다.
“이 시발 미친놈이 뒤지려고, 야! 시발 저 새끼 잡아. 폰 뺏어와!”
무리 중 대장 격인 듯, 태수란 놈이 소리치자 두 놈이 성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휘리릭.
성현은 뻗어 오는 주먹을 왼손으로 가볍게 흘러내고 오른 팔꿈치로 덤벼드는 놈의 턱을 올려쳤다.
빠각.
뼈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한껏 재낀 놈은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뻣뻣이 선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개새끼야!”
친구가 쓰러지자 뒤따라온 놈이 날라 차기를 했다.
‘헐. 저런 걸 누가 맞는다고 쯧.’
제법 태권도를 했는지 자세는 좋지만, 무슨 격파 시범도 아니고 저런 걸 성현이 맞을 턱이 없었다.
자세를 낮춤과 동시에 빠른 보폭으로 한 발 옆으로 비켜섰다.
“어이, 발은 이렇게 쓰는 거야.”
퍼어억!하며, 묵직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발등에 걸리는 느낌이 연한 각목을 부슬때의 느낌이다. 최소 골절은 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끄아아악.”
다리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에 남자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이후 연속기가 동시에 들어갔다.
울대에 토끼 주먹인 검지와 중지를 앞세운 주먹이 한 방.
명치에 깊게 또 한 방.
벼락같은 훅으로 마무리.
짧은 등장을 마치고 남자2는 눈을 뒤집고 정신을 잃었다.
“자, 다음.”
최근은 운동과 담쌓고 게임만 했지만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군 동기가 하는 체육관에 일주일에 세 번은 꼭 가서 운동을 했다.
사실 운동이라기보다 격렬한 격투에 가까웠지만.
군 시절에는 못 미치지만 그 실력이 어디 간 건 아니었다.
특전부사관으로 복무 때 부대 내에서 맨손 격투로 자신을 상대할만한 이가 없다시피 했다.
그리고 외부에는 알려지면 안 되는 한 작전을 통해 전설로 회자되는 성현이었다.
하물며 덩치만 컸지. 물 근육인 이들에게 당할 성현이 아니었다.
“뭐, 뭐야? 시바알! 뭐냐고!”
친구 두 명이 순식간에 당하자 태수가 두려움과 흥분에 휩싸여 소리쳤다.
“야. 귀청 떨어지겠다. 개새끼야!!”
성현의 짜증 담긴 욕설이 튀어 나왔다.
“야야. 시간 없어. 빨랑 덤벼.”
성현의 말에 남은 남자 셋이 서로 눈치를 본다.
주춤주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다구리나 놓을지 알았지 제대로 된 싸움다운 싸움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근데 눈앞에 있는 성현은 진짜배기였다.
“안 오면 내가 간다. 나한테 사람 취급 받을 생각은 말아라.”
타타타탓.
인간에게는 인간적인 대접을 해줘야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것들은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미쳐 날뛰는 개에게는 된장을 발라주고 인간 아닌 것들에게는 인간 아닌 취급을 합당하게 해줘야 한다가 성현의 신조였다.
“이얏!”
성현이 달려들자 한 놈이 주먹만 한 돌멩이를 던졌다.
그리고는 냅다 튄다.
성현은 날아오는 돌멩이를 한 손으로 잡고 '휙익'하며 크게 원을 그렸다.
자칫하면 자신의 손이 크게 다칠 위험이 있어 충격을 완화했다.
훼엑! 퍼걱!
“아아악.”
되받아 던진 돌멩이가 도망가던 놈의 뒤통수에 작렬했다. 노리고 던지지는 않았지만 운이 좋았다.
“씨-발! 가, 가까이 오지 마.”
눈치 보던 한 놈이 조금 굵은 나뭇가지를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소리쳤다.
하지만, 크게 휘두르면 그만큼 틈이 많다.
순간적으로 파고들어, 가슴과 배를 연타했다.
얇은 옷을 뚫고 가죽 북 터지는 소리가 '버버벅'하며, 시원스럽게 들린다.
“끄어어억.”
아마 한참 숨쉬기가 힘들 것이다.
“이히히익.”
엉거주춤 서 있던 태수란 놈이 성현과 눈이 마주치자 희한한 소리를 낸다.
덤벼들 배짱도 없고 도망갈 용기조차 없는 놈이었다.
친구들과 여럿이 떼 지어 다니며, 폼만 잡는 놈들의 특징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
“꿇어.”
태수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사, 살려주세요.”
“하. 이 새끼 봐라.”
성현은 고개를 모로 꼬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죽고 싶냐? 고개 들어.”
성현의 스산한 목소리에 태수가 덜덜 떨면서 억지로 고개를 들어 성현을 봤다.
“흐이익.”
성현과 눈이 마주치자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달달달’ 소리가 날 정도로 떨어댄다.
성현의 시퍼런 안광에서 살기를 읽은 것이다.
줄줄줄.
하다 하다 오줌까지 지리는 태수였다.
“어라. 잠깐만.”
성현은 스마트 폰을 꺼내 카메라 기능을 활성화했다.
“따라 해. 나는 오줌싸갭니다. 어쭈 안 해?”
“하. 할게요.”
성현이 한걸음 크게 다가서자 태수가 두 손바닥을 앞으로 뻗어 급히 말했다.
“나는 오줌싸갭니다. 흐극흐극.”
태수가 성현의 말을 따라 하며 어깨를 크게 들썩이며 운다.
성현의 눈에는 그저 악어의 눈물로만 보인다.
만족한 얼굴로 성현은 스마트 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자 시간관계상 하나만 골라 팔 아님 다리?”
“으그헝. 형님. 사 살려주세요.”
“누가, 네 형님이야?”
침까지 질질 흘리며 말하는 태수를 성현이 머리채를 꼬아 잡고 눈을 맞추었다.
“어이. 내 말 잘 들어··· 죽을래? 아니면 팔다리 중에 하나 고를래?”
이런 놈들의 특징이 있다.
지금 당장이야 개과천선한 듯 말하지만 이 위협에서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같은 짓을 반복한다.
제대로 공포를 각인시키지 않으면 해미와 같이 고통받는 아이들이 또다시 생길 것이다.
“셋 샌다. 하나. 둘······.”
“다, 다리 아니. 파, 파, 팔요 팔.”
태수는 다리라고 하다가 팔로 급선회했다.
팔은 다쳐도 조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다리에 비할 수는 없었다.
“오케이.”
성현은 놈의 팔을 붙잡고, 팔꿈치 관절을 자신의 무릎으로 걸어 역으로 꺾었다.
뿌드득. 털컥.
“으어어, 끄아악······.”
팔이 기이한 방향으로 꺾였다. 지금 성현은 적당히는 잊고 조금 과하게 손을 보고 있다.
어차피 증거로 찍은 영상은 애초부터 쓸 생각이 없었다.
놈들이 신고 안 하게끔 일종의 안전장치였고, 협박용으로 찍어놓았다.
“끄억, 파, 팔만이라고 했잖아······.”
성현의 손은 태수 놈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생각해 봤는데 넌 그 정도로는 안 되겠다.”
까드득. 발목의 각도가 100도 이상 돌아갔다.
“끄르륵.”
태수가 입에 거품을 물고 늘어졌다. 극심한 고통에 정신을 잃은 것이다.
“어라, 할 말이 있는데. 흠······.”
성현은 쓰러져 있는 놈들 중 가장 덜한 놈을 찾았다.
태수 놈을 처리하기 전에 가슴과 배를 맞은 놈에게 다가갔다.
“깨어 있는 거 아니까 눈떠라. 진짜 영영 못 뜨게 만들기 전에!”
벌떡.
“아. 아닙니다. 죄, 죄, 죄송합니다.”
기절한 척하던 놈은 성현의 말에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나 자연스레 무릎부터 꿇었다.
“내 말 잘 들어. 내가 동영상 찍은 거 봤지?”
“네? 넵. 잘 알고 있습니다.”
“니들이 경찰에 신고해도 좋아 헌데 난 무죄 방면될 거야. 왜냐? 니들을 이리 만든 증거가 없거든. 난 풀려나면서 니들이 하려 한 짓들을 녹화한 영상을 제출할 거야. 그럼 니들이 곤란하겠지?”
공원은 한적함을 넘어 음산할 정도다.
CCTV는커녕, 주택이나 주차된 차량하나 없는 은밀한 곳임을 주지시켜줬다. 그리고 반대로 성현에게는 놈들의 행위를 입증할 증거가 있다.
“예? 넵. 말씀이 맞습니다. 헤헤. 절대 경찰에 신고하면 안 되죠.”
성현은 말귀를 잘 알아듣는 놈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말이야. 두 번 다시 내 눈에 띄면 그땐 쥐도 새도 모르게 알지?”
꿀꺽.
“다시는 두, 두 번 다시는 이쪽으로 쳐다보지도 아, 않겠습니다.”
“그래. 그래. 알아들었다니 댔고, 우리 해미를 또 건들면....에이 설마 안 그러겠지. 평생 숟가락도 못 들고 똥오줌도 못 가리고 살면 안 되잖아. 그렇지?”
은연중에 우리 해미라고 했으니 눈치 빠른 놈이라면 알아들었으리라.
우연히 지나다 영웅심에 이런 게 아니라 해미 때문에 이리된 일이란 걸 눈치챘을 거다.
해미를 건드는 건 아마 상상도 못하게 될 것이고, 해미를 넘긴 년들을 작살낼게 뻔했다.
최소한 분풀이할 구석은 성현이 만들어 준 샘이다.
“아 참. 저놈 돌아간 발에 신은 신발 하고, 저기 도망가다 돌 맞은 놈 돌멩이 가져와.”
성현은 최소한 증거가 될 만한 물건은 남겨두지 않았다.
직접증거만 없으면 간접 증거는 충분히 변호할만한 일이다.
어차피 신고는 안 한다 생각하지만, 세상사 제 마음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음을 잘 알았다.
“여, 여기 있습니다.”
잽사게 피묻은 돌맹이와 친구놈의 돌아간 발목에 신겨 있던 신발을 가져왔다.
“넌 친구들 깨면 같이 가라. 애들 조금 다쳤으니 보살펴주고, 될 수 있음 한참 있다 구급차라도 부르고. 찬데 자다 입 돌아간다. 형이 오늘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살살 만졌으니 괜찮을 거야.”
성현이 또 한 번 어깨를 두드려주고 뒤돌아 가자 그제야 살았다는 듯 깊은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린다.
“괜찮니? 일어설 수 있겠어?”
“네에? 네.”
해미는 채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 꿈만 같았다.
정말 이대로 끝이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이대로 일을 당하면 살 생각이 없었다.
그런 순간, 짠!! 하고 나타난 아저씨.
그리고 순식간에 5명을 때려눕혔다.
자신을 구해준 수호천사 아저씨.
해미는 말없이, 천천히 성현의 옆에서 걷고 있다.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다는 게 성현도 느껴지지만 말없이 걸었다.
“저 해미에요. 이해미··· 그리고 열여덟 살이고, 저어기 사거리 길 건너 아파트 108동 405호에 살아요. 해송여고 다니고요.”
어느덧 공원을 한참 벗어난 대로까지 나오자 그제야 해미가 입을 열었다.
“으응? 그, 그래?”
정확히 자신이 아까 편의점 앞에서 물어본 내용의 답을 알려줬다.
“저··· 아까는 죄송했어요. 그게 사실······.”
해미는 처음에 왜 말을 걸고 담배 불을 달라고 했는지 술을 사달라고 했는지, 또 원조교제 이야기를 했는지 사연을 털어놨다.
그만큼 성현을 믿고 따른다는 방증이었다.
‘아놔! 그년들도 손봐야 했는데.’
듣는 내내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당장 찾을 길도 없어, 그 몫을 할 애들은 따로 있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달랬다.
“저 아저씨는 혼자 살아요?”
“응. 근데 왜?”
대답을 해주고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드는 성현이었다.
“그래요? 음···. 그럼 혹시 오늘 아저씨 집에서 하루만 재워 주시면 안 돼요? 집에 가기 너무 무서워요.”
“당연히 안······.”
“제발요······.”
성현이 안 된다고 말하려는데 해미가 토끼 같은 눈망울을 들고, 성현을 바라본다.
‘하-. 이거 꼬이네······.’
해미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성현도 마음이 안 좋다.
매몰차게 보내기가 힘들었다.
“가자. 뭐 구해주기도 했는데 하루 밤 못 재워 주겠냐. 가자.”
“네에!”
언제 울었냐는 듯 폴짝폴짝 뛴다.
‘이거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성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앞서 걷자 해미가 바짝 붙어 성현의 팔꿈치의 옷자락을 살포시 잡고 따른다.
어미오리를 따르는 새끼오리 같은 모습이었다.
질겅질겅.
껌을 참 찰 지게도 잘 씹는다.
거기다 기분 더럽게 만드는 ‘딱딱딱’ 소리가 반복적으로 튀어 나왔다.
“태수 오빠 이년 손 좀 봐줘. 이게 아주 예쁘다, 예쁘다 하니까 아주 머리꼭대기로 기어 올라온다니까. 내가 예약 받고 손님한테 보냈는데 도망친 거 있지.”
사실 해미는 이들과 별로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너무 집요하게 끌고 다녀서 어쩔 수가 없었다.
학교 선생님께 알려 도움을 구했지만, 반성문 수준으로 그쳤고, 이후는 더한 괴롭힘이 따라왔다.
해미의 아빠는 외항선을 타고 1년에 한두 달 밖에 얼굴을 보지 못했고, 엄마는 어릴 때 집을 나가 소식조차 없었다.
일가친척도 거의 없어 주변에 도움을 줄 사람이 없었다.
오늘은 자신들의 친목 모임에 가입하라며, 가입 신고식을 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 본 사람 담뱃불 빌려오기, 술 사오기, 심지어 원조교제까지.
미치도록 도망가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었고, 하물며 도망가더라도 학교서 또 보게 될 터였다.
헤어날 수 없는 모래 지옥 같은 상황이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이들의 손에 이끌려 거리를 배회했다.
그러다 어떤 아저씨가 눈에 뛰었다.
훤칠한 키에 잘생겼다기보다 남자답고 호감 가는 인상의 아저씨였다.
차라리 이 사람 이라면, 이라는 생각을 하고 말을 걸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에도 없는 막말을 마구 했는데도 화를 내기는커녕 먹을 걸 사주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러다 그 아저씨와 헤어지고 틈을 봐서 도망치다 잡혔고, 지금은 이 꼴이 되었다.
“존만 한 년이 뒤지려고! 우리 예쁜 지나야-. 오빠가 어떻게 만들어 줄까? 크큭.”
한쪽 머리에 스크래치 3줄이 있는 남자가 여자애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지난번 초희 년 하고 똑같이 만들어줘. 그년 전학 가긴 했지만 그전까지 고분고분했었거든. 손님도 잘 받았다니까.”
“그래? 그럼 오빠가 맘대로 한다? 딴말하기 없기다.”
“아 몰라 맘대로 해.”
“시형아 이년 좀 끌고 가자.”
태수가 모자를 뒤집어쓴 친구를 불렀다.
“야. 어디로 데려가려고? 와! 시바 존예네. 야. 옆에 공원으로 그냥 가자.”
“야 시발! 이번엔 내가 먼저야.”
“뭐래? 등신아! 너 지금 병 걸렸잖아 나대지 말고 짜져라.”
시형과 함께 다가온 4명의 남자가 모두 한마디씩 했다.
바들바들.
해미는 너무도 무섭고 두려웠다.
지금 이들이 하는 말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너무 큰 공포심에 짓눌려 목소리조차 쉬이 나오지 않고, 잠겨 들었다.
거친 남자들의 손에 이끌려 놀이터에서 공원까지 끌려온 해미는, 혹 지나는 경찰차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을까 했지만 운도 좋지 않았다.
너무 외진 곳이었고, 시간도 늦어 지나는 행인 하나 없었다.
공원이라 이름 붙었지만, 실상은 가로등도 하나 없는 변두리의 야트막한 야산이었다.
관리가 되는 곳이 아니었다.
“제, 제발요. 제발······.”
“얌전히 있어라 존나 쳐 맞고 당하기 싫으면.”
“부, 부탁드려요. 제 제발 보내주세요.”
해미의 얼굴은 눈물 콧물이 범벅이다. 거기다 입술 한쪽이 터져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태수는 비열한 웃음을 입에 머금고, 서슴없이 자신의 바지를 벗어 내렸다.
번쩍. 번쩍.
“아, 아 거기까지. 이야 자세 좋고, 표정 봐라. 어디를 봐도 3류 양아치들의 범죄 현장 아니냐. 성폭행 미수에 강제 성매매, 폭행, 유인 납치까지 이야, 죄목만 보면 아주 악질 중의 최악질이야. 아무리 비싼 변호사를 구해도 열 바퀴는 나오겠다. 하하.”
오피스텔 근처 놀이터를 지날 때 설마 했다.
다수의 남녀가 있는데 그사이 쪼그려 앉은 해미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구타를 당한 듯 멀리서도 입가의 핏자국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 이들의 말을 들어보니 정상적인 청소년들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녹취와 동시에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강제 성매매는 물론이고 갈취에 폭행도 서슴지 않는 범죄자들이다.
그리고 해미는 피해자였고.
성현은 충분한 증거 수집이 위해 이들을 뒤따랐다.
“이 시발 미친놈이 뒤지려고, 야! 시발 저 새끼 잡아. 폰 뺏어와!”
무리 중 대장 격인 듯, 태수란 놈이 소리치자 두 놈이 성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휘리릭.
성현은 뻗어 오는 주먹을 왼손으로 가볍게 흘러내고 오른 팔꿈치로 덤벼드는 놈의 턱을 올려쳤다.
빠각.
뼈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한껏 재낀 놈은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뻣뻣이 선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개새끼야!”
친구가 쓰러지자 뒤따라온 놈이 날라 차기를 했다.
‘헐. 저런 걸 누가 맞는다고 쯧.’
제법 태권도를 했는지 자세는 좋지만, 무슨 격파 시범도 아니고 저런 걸 성현이 맞을 턱이 없었다.
자세를 낮춤과 동시에 빠른 보폭으로 한 발 옆으로 비켜섰다.
“어이, 발은 이렇게 쓰는 거야.”
퍼어억!하며, 묵직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발등에 걸리는 느낌이 연한 각목을 부슬때의 느낌이다. 최소 골절은 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끄아아악.”
다리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에 남자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이후 연속기가 동시에 들어갔다.
울대에 토끼 주먹인 검지와 중지를 앞세운 주먹이 한 방.
명치에 깊게 또 한 방.
벼락같은 훅으로 마무리.
짧은 등장을 마치고 남자2는 눈을 뒤집고 정신을 잃었다.
“자, 다음.”
최근은 운동과 담쌓고 게임만 했지만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군 동기가 하는 체육관에 일주일에 세 번은 꼭 가서 운동을 했다.
사실 운동이라기보다 격렬한 격투에 가까웠지만.
군 시절에는 못 미치지만 그 실력이 어디 간 건 아니었다.
특전부사관으로 복무 때 부대 내에서 맨손 격투로 자신을 상대할만한 이가 없다시피 했다.
그리고 외부에는 알려지면 안 되는 한 작전을 통해 전설로 회자되는 성현이었다.
하물며 덩치만 컸지. 물 근육인 이들에게 당할 성현이 아니었다.
“뭐, 뭐야? 시바알! 뭐냐고!”
친구 두 명이 순식간에 당하자 태수가 두려움과 흥분에 휩싸여 소리쳤다.
“야. 귀청 떨어지겠다. 개새끼야!!”
성현의 짜증 담긴 욕설이 튀어 나왔다.
“야야. 시간 없어. 빨랑 덤벼.”
성현의 말에 남은 남자 셋이 서로 눈치를 본다.
주춤주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다구리나 놓을지 알았지 제대로 된 싸움다운 싸움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근데 눈앞에 있는 성현은 진짜배기였다.
“안 오면 내가 간다. 나한테 사람 취급 받을 생각은 말아라.”
타타타탓.
인간에게는 인간적인 대접을 해줘야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것들은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미쳐 날뛰는 개에게는 된장을 발라주고 인간 아닌 것들에게는 인간 아닌 취급을 합당하게 해줘야 한다가 성현의 신조였다.
“이얏!”
성현이 달려들자 한 놈이 주먹만 한 돌멩이를 던졌다.
그리고는 냅다 튄다.
성현은 날아오는 돌멩이를 한 손으로 잡고 '휙익'하며 크게 원을 그렸다.
자칫하면 자신의 손이 크게 다칠 위험이 있어 충격을 완화했다.
훼엑! 퍼걱!
“아아악.”
되받아 던진 돌멩이가 도망가던 놈의 뒤통수에 작렬했다. 노리고 던지지는 않았지만 운이 좋았다.
“씨-발! 가, 가까이 오지 마.”
눈치 보던 한 놈이 조금 굵은 나뭇가지를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소리쳤다.
하지만, 크게 휘두르면 그만큼 틈이 많다.
순간적으로 파고들어, 가슴과 배를 연타했다.
얇은 옷을 뚫고 가죽 북 터지는 소리가 '버버벅'하며, 시원스럽게 들린다.
“끄어어억.”
아마 한참 숨쉬기가 힘들 것이다.
“이히히익.”
엉거주춤 서 있던 태수란 놈이 성현과 눈이 마주치자 희한한 소리를 낸다.
덤벼들 배짱도 없고 도망갈 용기조차 없는 놈이었다.
친구들과 여럿이 떼 지어 다니며, 폼만 잡는 놈들의 특징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
“꿇어.”
태수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사, 살려주세요.”
“하. 이 새끼 봐라.”
성현은 고개를 모로 꼬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죽고 싶냐? 고개 들어.”
성현의 스산한 목소리에 태수가 덜덜 떨면서 억지로 고개를 들어 성현을 봤다.
“흐이익.”
성현과 눈이 마주치자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달달달’ 소리가 날 정도로 떨어댄다.
성현의 시퍼런 안광에서 살기를 읽은 것이다.
줄줄줄.
하다 하다 오줌까지 지리는 태수였다.
“어라. 잠깐만.”
성현은 스마트 폰을 꺼내 카메라 기능을 활성화했다.
“따라 해. 나는 오줌싸갭니다. 어쭈 안 해?”
“하. 할게요.”
성현이 한걸음 크게 다가서자 태수가 두 손바닥을 앞으로 뻗어 급히 말했다.
“나는 오줌싸갭니다. 흐극흐극.”
태수가 성현의 말을 따라 하며 어깨를 크게 들썩이며 운다.
성현의 눈에는 그저 악어의 눈물로만 보인다.
만족한 얼굴로 성현은 스마트 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자 시간관계상 하나만 골라 팔 아님 다리?”
“으그헝. 형님. 사 살려주세요.”
“누가, 네 형님이야?”
침까지 질질 흘리며 말하는 태수를 성현이 머리채를 꼬아 잡고 눈을 맞추었다.
“어이. 내 말 잘 들어··· 죽을래? 아니면 팔다리 중에 하나 고를래?”
이런 놈들의 특징이 있다.
지금 당장이야 개과천선한 듯 말하지만 이 위협에서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같은 짓을 반복한다.
제대로 공포를 각인시키지 않으면 해미와 같이 고통받는 아이들이 또다시 생길 것이다.
“셋 샌다. 하나. 둘······.”
“다, 다리 아니. 파, 파, 팔요 팔.”
태수는 다리라고 하다가 팔로 급선회했다.
팔은 다쳐도 조금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다리에 비할 수는 없었다.
“오케이.”
성현은 놈의 팔을 붙잡고, 팔꿈치 관절을 자신의 무릎으로 걸어 역으로 꺾었다.
뿌드득. 털컥.
“으어어, 끄아악······.”
팔이 기이한 방향으로 꺾였다. 지금 성현은 적당히는 잊고 조금 과하게 손을 보고 있다.
어차피 증거로 찍은 영상은 애초부터 쓸 생각이 없었다.
놈들이 신고 안 하게끔 일종의 안전장치였고, 협박용으로 찍어놓았다.
“끄억, 파, 팔만이라고 했잖아······.”
성현의 손은 태수 놈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생각해 봤는데 넌 그 정도로는 안 되겠다.”
까드득. 발목의 각도가 100도 이상 돌아갔다.
“끄르륵.”
태수가 입에 거품을 물고 늘어졌다. 극심한 고통에 정신을 잃은 것이다.
“어라, 할 말이 있는데. 흠······.”
성현은 쓰러져 있는 놈들 중 가장 덜한 놈을 찾았다.
태수 놈을 처리하기 전에 가슴과 배를 맞은 놈에게 다가갔다.
“깨어 있는 거 아니까 눈떠라. 진짜 영영 못 뜨게 만들기 전에!”
벌떡.
“아. 아닙니다. 죄, 죄, 죄송합니다.”
기절한 척하던 놈은 성현의 말에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나 자연스레 무릎부터 꿇었다.
“내 말 잘 들어. 내가 동영상 찍은 거 봤지?”
“네? 넵. 잘 알고 있습니다.”
“니들이 경찰에 신고해도 좋아 헌데 난 무죄 방면될 거야. 왜냐? 니들을 이리 만든 증거가 없거든. 난 풀려나면서 니들이 하려 한 짓들을 녹화한 영상을 제출할 거야. 그럼 니들이 곤란하겠지?”
공원은 한적함을 넘어 음산할 정도다.
CCTV는커녕, 주택이나 주차된 차량하나 없는 은밀한 곳임을 주지시켜줬다. 그리고 반대로 성현에게는 놈들의 행위를 입증할 증거가 있다.
“예? 넵. 말씀이 맞습니다. 헤헤. 절대 경찰에 신고하면 안 되죠.”
성현은 말귀를 잘 알아듣는 놈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말이야. 두 번 다시 내 눈에 띄면 그땐 쥐도 새도 모르게 알지?”
꿀꺽.
“다시는 두, 두 번 다시는 이쪽으로 쳐다보지도 아, 않겠습니다.”
“그래. 그래. 알아들었다니 댔고, 우리 해미를 또 건들면....에이 설마 안 그러겠지. 평생 숟가락도 못 들고 똥오줌도 못 가리고 살면 안 되잖아. 그렇지?”
은연중에 우리 해미라고 했으니 눈치 빠른 놈이라면 알아들었으리라.
우연히 지나다 영웅심에 이런 게 아니라 해미 때문에 이리된 일이란 걸 눈치챘을 거다.
해미를 건드는 건 아마 상상도 못하게 될 것이고, 해미를 넘긴 년들을 작살낼게 뻔했다.
최소한 분풀이할 구석은 성현이 만들어 준 샘이다.
“아 참. 저놈 돌아간 발에 신은 신발 하고, 저기 도망가다 돌 맞은 놈 돌멩이 가져와.”
성현은 최소한 증거가 될 만한 물건은 남겨두지 않았다.
직접증거만 없으면 간접 증거는 충분히 변호할만한 일이다.
어차피 신고는 안 한다 생각하지만, 세상사 제 마음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음을 잘 알았다.
“여, 여기 있습니다.”
잽사게 피묻은 돌맹이와 친구놈의 돌아간 발목에 신겨 있던 신발을 가져왔다.
“넌 친구들 깨면 같이 가라. 애들 조금 다쳤으니 보살펴주고, 될 수 있음 한참 있다 구급차라도 부르고. 찬데 자다 입 돌아간다. 형이 오늘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살살 만졌으니 괜찮을 거야.”
성현이 또 한 번 어깨를 두드려주고 뒤돌아 가자 그제야 살았다는 듯 깊은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린다.
“괜찮니? 일어설 수 있겠어?”
“네에? 네.”
해미는 채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 꿈만 같았다.
정말 이대로 끝이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이대로 일을 당하면 살 생각이 없었다.
그런 순간, 짠!! 하고 나타난 아저씨.
그리고 순식간에 5명을 때려눕혔다.
자신을 구해준 수호천사 아저씨.
해미는 말없이, 천천히 성현의 옆에서 걷고 있다.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다는 게 성현도 느껴지지만 말없이 걸었다.
“저 해미에요. 이해미··· 그리고 열여덟 살이고, 저어기 사거리 길 건너 아파트 108동 405호에 살아요. 해송여고 다니고요.”
어느덧 공원을 한참 벗어난 대로까지 나오자 그제야 해미가 입을 열었다.
“으응? 그, 그래?”
정확히 자신이 아까 편의점 앞에서 물어본 내용의 답을 알려줬다.
“저··· 아까는 죄송했어요. 그게 사실······.”
해미는 처음에 왜 말을 걸고 담배 불을 달라고 했는지 술을 사달라고 했는지, 또 원조교제 이야기를 했는지 사연을 털어놨다.
그만큼 성현을 믿고 따른다는 방증이었다.
‘아놔! 그년들도 손봐야 했는데.’
듣는 내내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당장 찾을 길도 없어, 그 몫을 할 애들은 따로 있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달랬다.
“저 아저씨는 혼자 살아요?”
“응. 근데 왜?”
대답을 해주고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드는 성현이었다.
“그래요? 음···. 그럼 혹시 오늘 아저씨 집에서 하루만 재워 주시면 안 돼요? 집에 가기 너무 무서워요.”
“당연히 안······.”
“제발요······.”
성현이 안 된다고 말하려는데 해미가 토끼 같은 눈망울을 들고, 성현을 바라본다.
‘하-. 이거 꼬이네······.’
해미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성현도 마음이 안 좋다.
매몰차게 보내기가 힘들었다.
“가자. 뭐 구해주기도 했는데 하루 밤 못 재워 주겠냐. 가자.”
“네에!”
언제 울었냐는 듯 폴짝폴짝 뛴다.
‘이거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성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앞서 걷자 해미가 바짝 붙어 성현의 팔꿈치의 옷자락을 살포시 잡고 따른다.
어미오리를 따르는 새끼오리 같은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