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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지상으로 (1)
성현은 해미가 넣은 탄창들을 모아 한발씩은 빼내었다.
혹여 사용할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사용해야만 할 상황일 때 송탄 문제가 안 생기게 만전을 기했다.
“박스 단위로는 안 되는데 총알이 삽탄된 탄창은 또 겹쳐지네. 이거 참.”
지레짐작으로 10개의 탄창을 준비했지만, 총알이 삽탄된 상태로 탄창은 창고에 중복해서 수납이 되었다.
알다가도 모를 창고의 기능에 머리가 복잡했다.
“차차 알아가야지.”
부담이 없어지자 성현은 좀 더 많은 탄창에 총알을 삽탄하고, 목표로 했던 200개 탄창에 삽탄을 마무리했다.
남은 탄약과 탄창은 모조리 창고에 넣고, 창고를 바라봤다.
캐릭터 창고는 의지만으로 불러올 수 있는데 시야의 3분의 1정도를 차지하는 반투명한 모습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소리 내어 ‘캐릭터 창고’ ‘창고’ 등으로 불러내었지만, 입으로 소리는 내는 건 큰 의미가 없음을 알고 이제는 익숙하게 창고를 생각과 의지만으로 불러내고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하네.”
1개 대대 수준의 보병들을 완전 무장시킬 수 있는 무기들이 성현의 창고에 들어있다.
탄약만 5.56mm 보통탄 12만 발이 넘게 있다. 9,999 표기된 칸이 12칸이나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탄환의 끝이 뾰족하고 검게 칠해진 철갑탄이 1만 발에서 1발이 빠진 9,999발이나 되었다.
거기다 12.7mm 기관총 탄약은 5만 발에서 5발이 모자란 수가 창고에 들어있다.
창고는 10칸을 남긴 90칸이 빽빽이 들어찼다.
“늦었는데 잠시라도 눈 좀 붙이자.”
이미 시간은 새벽 2시를 지나고 있었다.
할 일을 모두 끝내고 간이침대에 몸을 누인 성현은 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다.
삐빅, 삐빅
스마트 폰에서 시작된 작은 알람 소리가 공동 안에 울려 퍼졌다.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지 않은 지하. 천장에 고정된 등이 홀로 고고하게 빛나고 있다.
“으차.”
성현은 알람을 끄고 크게 스트레칭해서 굳은 몸을 풀었다.
“일어나셨어요.”
“응. 해미 너도 잘 잤니?”
“네. 중간에 한 번 깨긴 했지만··· 헙, 아니 그냥 잘 잤어요.”
알고 있다.
해미가 중간에 깨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봤다.
아직 어린 해미가 수치심을 느끼지는 않을까 싶어 그냥 모른 척 계속 자는척했다.
공동 구석에 조립식 판넬을 하나 뜯어 가려놓았지만, 큰일은 보기 좀 민망했었나 보다.
“아침은 간단히 먹고 나가보도록 하자.”
“네에-!”
나가자는 성현의 말에 유달리 힘을 주어 대답한 해미는 자신의 창고를 열어 필요한 식재료를 꺼내어 준비를 했다.
어떻게 물품을 나누어서 담자고 성현이 말한 건 아니지만, 해미가 먼저 나서서 식품이며 이것저것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모두 챙겨 담았었다.
식사를 끝내고 드디어 2박 3일 동안의 지하 생활을 끝낼 때가 왔다.
“준비 다 했니?”
“자, 잠깐만요.”
해미의 의복이 순간순간 바뀌면서 체인지 되는 걸 지켜본 성현은 몇 번을 보고 자신도 해봤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기만 하다.
“자, 다 됐어요.”
손에는 자신의 키만 한 지팡이를 쥐고, 전신은 굴곡이 완연한 화이트색 전신아머를 입었다.
“아, 아 참.”
해미는 바닥에 떨어진 아웃도어를 급히 아머 위에 걸쳤다.
아이템을 교체하게 되면 속옷을 제외한 겉옷들은 모두 벗겨져 바닥에 떨어졌다.
찢어지거나 하진 않아 다시 입으면 그만이지만, 귀찮은 일이었다.
“끝-.”
해미가 준비를 마치고 말했다.
성현은 이미 준비 완료 된 상태다. 군복 안에는 블랙 톤의 라이트 아머를 입고, 바늘구멍만큼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헬멧은 아직은 익숙지 않아 쓰고 있지 않았다.
마치 전문 보디빌더처럼 덩치가 우람해 보였다.
공동과 연결된 통로에 선 성현은 뒤를 한번 돌아봤다.
아쉬움이 남는 장소는 아니지만, 새롭게 태어난 장소였다.
기분이 묘했다.
“아저씨, 안 가요?”
“그래. 가자!”
성현은 미련 없이 복도 안으로 들어섰다.
“일단 여기 발전기는 내리고 나갈 거야. 전등이 꺼질 테니 미리 준비해둬.”
해미는 성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후레쉬를 꺼내 켰다. 성현도 건빵주머니에 손을 넣고, 불을 밝힐 준비를 했다.
위우우웅.
성현이 발전기 온오프 스위치를 내리자 발전기의 소음이 점차 줄어들더니 금세 멈추어 섰다.
천장의 전등도 서서히 광량이 줄더니 이내 완전히 점멸했다.
띠리릭.
성현이 불을 비추어 전자도어의 개폐 버튼을 누르자 육중한 강철문의 락이 풀렸다.
뒤를 보고 눈짓하자 해미가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성현의 뒤에 바짝 붙었다. 양손에는 자신의 키만 한 지팡이를 꼭 부여잡고.
“후우.”
성현은 육중한 철제문을 나서자 왠지 모를 긴장감에 숨을 크게 한번 내쉬었다.
저벅저벅.
조용한 통로에 발소리만 메아리치듯 울린다.
해미는 성현의 등 뒤 옷깃을 잡고 천천히 뒤를 따랐다.
“쉿!”
이제 지하철 역사로 통하는 하나의 문만 남기고 있었다. 성현이 바람 빠지는 작은 소리로 해미에게 조용히 할 것을 알렸다.
성현은 문에 귀를 붙이고 밖의 동태를 살폈다.
‘너무 조용한데······.’
약 1분 정도를 더 탐색하듯 귀에 집중했지만, 작은 기척조차 잡아내지 못했다.
철제문이기는 하나 그리 두텁지 않아서 충분히 밖의 상황을 알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이렇게 되면.’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모두 죽었든지 아니면 생존자들은 여기에 없던지.
“해미야 내 말 잘 들어. 절대 놀라거나 하면 안 된다. 마음 굳게 먹고, 네 옆에는 항상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알겠지?”
성현은 한 손을 해미의 어깨 위에 올리고 두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했다.
시체를 저 나이에 봤을 리도 없고, 만약 모두 죽은 것이라면 시체 길을 헤치고 가야 할 것이다.
어지간히 담이 크지 않으면, 정신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할 일이었다.
다만.
『 특성 』
★게이머
-게임 속 캐릭터를 현실에 투영
-상태이상 및 정신 공격에 저항
게이머의 각성 능력을 믿었다.
극심한 혼란도 상태이상의 하나라 생각한 성현이었다.
해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성현의 눈을 보며 알겠다는 무언의 말을 전했다.
문의 잠금 레버를 돌리자 작은 소음이 나왔지만 손잡이는 부드럽게 돌아갔다.
끼이이익.
멈칫.
문의 경첩이 좀 낡은 듯 고음의 소리를 지른다.
아주 살짝 열다 멈추었지만, 별다른 기척이 없자 활짝 열어젖혔다.
역사는 어두웠다.
멀리 비상구를 알리는 녹색 유도등만이 유일하게 켜져 있었다.
휘익. 휘익.
바람소리가 날정도로 전후 사방으로 라이트를 비추며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분명 사람들이 있었던 흔적은 남아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증명하듯 주변에는 많은 가방이며, 벗겨진 신발과 옷가지가 한 가득이었다.
그리고 드문드문 말라붙은 핏자국 등이 성현의 눈에 들어왔다.
핏자국이 길게 늘어져 있어 바닥에 쓸린 흔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일부러 깼다?’
천정의 조명은 꺼진 게 아니라 모두 깨어져 조명이 있었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사람이 밝은 것을 싫어할 리가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성현은 지하철 탑승 플랫폼에서 얻은 몇 가지의 정보들을 가지고 생각했지만 답을 찾을 길이 없었다.
“해미야. 보다시피 무슨 문제가 있는 거 같다. 정상적이지는 않아. 위급하면 스킬이든 뭐든 능력이 닿는 데까지 쓰면서 간다. 알겠지?”
성현도 결심이 섰다.
처척!
창고를 열고 K2c1 한 자루를 꺼내고, 적외선 스코프를 총의 상단 레일마운트에 부착했다.
끼릭 끼릭, 꽈악.
소음기와 핸드가드(수직손잡이)를 끼우고.
탈칵.
마지막으로 탄창을 꺼내 결속했다.
그리고 스킬을 확인했다.
*패시브*
[특수]무기 전문화
-모든 무기 사용가능 및 공격력 50% 증가(활성화)
성현은 전용 패시브 스킬이 활성화되어 있음을 재확인했다.
“출발한다.”
* * *
지하철 플랫폼을 벗어나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끼익. 끼익.
흠칫.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멈추어 서서 주의를 기울였다.
적외선 스코프에 눈을 붙이고 한시도 때지 않았다.
이미 라이트는 모두 끈 상태다.
해미에게도 2배율 적외선 스코프를 하나 내어주고 그걸로 보게 했다. 주변 모습이 목불인견인 탓에 있는 그대로 보고 오게 할 수는 없었다.
지나온 길은 처참했다.
벽은 온통 피칠갑을 하고 있었고, 떨어진 신체의 일부마저 발견했다.
무언가에 찢겨진 듯 단면이 거칠고 울퉁불퉁했다.
지하상가의 초입부터는 주변 경계에 더욱 신경을 쓰며 걸었다.
화재가 있었는지 불이 붙은 흔적들과 검게 그을린 천장으로부터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복도 바닥을 이루던 타일들이 깨어져 있고, 상가의 유리창은 온전한 것을 찾는 게 더 힘들었다.
‘이곳도 마찬가지야. 사람들의 흔적은 분명 있어.’
찰박찰박.
어디 소화전이 터졌는지 복도 전체에 물이 고여 발끝에 채인다.
그때.
쿵! 후다다닥.
“누구냐!”
성현이 급히 총구를 왼쪽으로 돌렸다.
“후회할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온몸이 벌집이 되기 싫다면!”
철컥. 딸깍.
성현은 개머리판의 견착을 더욱 견고하게 하고, 장전 손잡이를 후퇴고정 시켜 장전을 완료했다.
그리고 조정간 안전에서 단발로 돌렸다.
소총에 부착한 후레쉬를 켜고 자신이 총을 들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최소한 겁을 집어먹고 반응을 할 것이다.
그르르릉.
“······.”
짐승의 성대에서나 들릴법한 낮은 울림이 들렸다.
모습은 숨겼지만,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려는 습성은 짐승에게나 볼 수 있다.
‘인간의 소리는 아니다. 야생동물? 혹시, 개?’
도심의 한중간에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 야생동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 성현은 혹 대형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 지하 중심상가에서 갈림길에 위치해있다. 1, 2, 3, 4번 출구 모두와 연결된 통로였다.
정부에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진행한 청계산을 목표로 잡은 상태에서는 3번 아니면 4번 출구로 가야는 맞았다.
소리가 들린 방향은 3번 출구 방향. 거리는 대략 30여 미터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
4번 출구로 그냥 가느냐. 아니면 확인하고 3번 출구로 진행하느냐 선택지가 있었다.
‘직진한다.’
결정은 빠르고 행동은 민첩했다.
차창-. 쨍그랑.
성현은 창고에서 꺼낸 빈 탄창을 하나 던졌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그 무엇이든 반응할 것이라 본 것이다.
크아앙!
커다란 덩치를 가진 물체가 상가의 뚫린 창에서 뛰쳐나와 가공할 속도로 덮쳐왔다.
라이트에 비친 것은 언뜻 사람 형상이지만, 절대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다.
몸에 걸친 것은 터져나간 반바지가 전부였다. 그것도 원래는 긴 바지였음을 짐작케 하는 실타래가 종아리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
회백색의 반죽으로 만든 것 같은 피부와 과하게 돌출된 광대뼈, 온몸의 힘줄은 ‘툭툭’ 불거져 보기만 해도 상당한 위압감을 전달했다.
벌어진 입 주위에는 벌건 핏자국과 번뜩이는 날카로운 이빨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성현은 해미가 넣은 탄창들을 모아 한발씩은 빼내었다.
혹여 사용할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사용해야만 할 상황일 때 송탄 문제가 안 생기게 만전을 기했다.
“박스 단위로는 안 되는데 총알이 삽탄된 탄창은 또 겹쳐지네. 이거 참.”
지레짐작으로 10개의 탄창을 준비했지만, 총알이 삽탄된 상태로 탄창은 창고에 중복해서 수납이 되었다.
알다가도 모를 창고의 기능에 머리가 복잡했다.
“차차 알아가야지.”
부담이 없어지자 성현은 좀 더 많은 탄창에 총알을 삽탄하고, 목표로 했던 200개 탄창에 삽탄을 마무리했다.
남은 탄약과 탄창은 모조리 창고에 넣고, 창고를 바라봤다.
캐릭터 창고는 의지만으로 불러올 수 있는데 시야의 3분의 1정도를 차지하는 반투명한 모습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소리 내어 ‘캐릭터 창고’ ‘창고’ 등으로 불러내었지만, 입으로 소리는 내는 건 큰 의미가 없음을 알고 이제는 익숙하게 창고를 생각과 의지만으로 불러내고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하네.”
1개 대대 수준의 보병들을 완전 무장시킬 수 있는 무기들이 성현의 창고에 들어있다.
탄약만 5.56mm 보통탄 12만 발이 넘게 있다. 9,999 표기된 칸이 12칸이나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탄환의 끝이 뾰족하고 검게 칠해진 철갑탄이 1만 발에서 1발이 빠진 9,999발이나 되었다.
거기다 12.7mm 기관총 탄약은 5만 발에서 5발이 모자란 수가 창고에 들어있다.
창고는 10칸을 남긴 90칸이 빽빽이 들어찼다.
“늦었는데 잠시라도 눈 좀 붙이자.”
이미 시간은 새벽 2시를 지나고 있었다.
할 일을 모두 끝내고 간이침대에 몸을 누인 성현은 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다.
삐빅, 삐빅
스마트 폰에서 시작된 작은 알람 소리가 공동 안에 울려 퍼졌다.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지 않은 지하. 천장에 고정된 등이 홀로 고고하게 빛나고 있다.
“으차.”
성현은 알람을 끄고 크게 스트레칭해서 굳은 몸을 풀었다.
“일어나셨어요.”
“응. 해미 너도 잘 잤니?”
“네. 중간에 한 번 깨긴 했지만··· 헙, 아니 그냥 잘 잤어요.”
알고 있다.
해미가 중간에 깨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봤다.
아직 어린 해미가 수치심을 느끼지는 않을까 싶어 그냥 모른 척 계속 자는척했다.
공동 구석에 조립식 판넬을 하나 뜯어 가려놓았지만, 큰일은 보기 좀 민망했었나 보다.
“아침은 간단히 먹고 나가보도록 하자.”
“네에-!”
나가자는 성현의 말에 유달리 힘을 주어 대답한 해미는 자신의 창고를 열어 필요한 식재료를 꺼내어 준비를 했다.
어떻게 물품을 나누어서 담자고 성현이 말한 건 아니지만, 해미가 먼저 나서서 식품이며 이것저것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모두 챙겨 담았었다.
식사를 끝내고 드디어 2박 3일 동안의 지하 생활을 끝낼 때가 왔다.
“준비 다 했니?”
“자, 잠깐만요.”
해미의 의복이 순간순간 바뀌면서 체인지 되는 걸 지켜본 성현은 몇 번을 보고 자신도 해봤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기만 하다.
“자, 다 됐어요.”
손에는 자신의 키만 한 지팡이를 쥐고, 전신은 굴곡이 완연한 화이트색 전신아머를 입었다.
“아, 아 참.”
해미는 바닥에 떨어진 아웃도어를 급히 아머 위에 걸쳤다.
아이템을 교체하게 되면 속옷을 제외한 겉옷들은 모두 벗겨져 바닥에 떨어졌다.
찢어지거나 하진 않아 다시 입으면 그만이지만, 귀찮은 일이었다.
“끝-.”
해미가 준비를 마치고 말했다.
성현은 이미 준비 완료 된 상태다. 군복 안에는 블랙 톤의 라이트 아머를 입고, 바늘구멍만큼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헬멧은 아직은 익숙지 않아 쓰고 있지 않았다.
마치 전문 보디빌더처럼 덩치가 우람해 보였다.
공동과 연결된 통로에 선 성현은 뒤를 한번 돌아봤다.
아쉬움이 남는 장소는 아니지만, 새롭게 태어난 장소였다.
기분이 묘했다.
“아저씨, 안 가요?”
“그래. 가자!”
성현은 미련 없이 복도 안으로 들어섰다.
“일단 여기 발전기는 내리고 나갈 거야. 전등이 꺼질 테니 미리 준비해둬.”
해미는 성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후레쉬를 꺼내 켰다. 성현도 건빵주머니에 손을 넣고, 불을 밝힐 준비를 했다.
위우우웅.
성현이 발전기 온오프 스위치를 내리자 발전기의 소음이 점차 줄어들더니 금세 멈추어 섰다.
천장의 전등도 서서히 광량이 줄더니 이내 완전히 점멸했다.
띠리릭.
성현이 불을 비추어 전자도어의 개폐 버튼을 누르자 육중한 강철문의 락이 풀렸다.
뒤를 보고 눈짓하자 해미가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성현의 뒤에 바짝 붙었다. 양손에는 자신의 키만 한 지팡이를 꼭 부여잡고.
“후우.”
성현은 육중한 철제문을 나서자 왠지 모를 긴장감에 숨을 크게 한번 내쉬었다.
저벅저벅.
조용한 통로에 발소리만 메아리치듯 울린다.
해미는 성현의 등 뒤 옷깃을 잡고 천천히 뒤를 따랐다.
“쉿!”
이제 지하철 역사로 통하는 하나의 문만 남기고 있었다. 성현이 바람 빠지는 작은 소리로 해미에게 조용히 할 것을 알렸다.
성현은 문에 귀를 붙이고 밖의 동태를 살폈다.
‘너무 조용한데······.’
약 1분 정도를 더 탐색하듯 귀에 집중했지만, 작은 기척조차 잡아내지 못했다.
철제문이기는 하나 그리 두텁지 않아서 충분히 밖의 상황을 알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이렇게 되면.’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모두 죽었든지 아니면 생존자들은 여기에 없던지.
“해미야 내 말 잘 들어. 절대 놀라거나 하면 안 된다. 마음 굳게 먹고, 네 옆에는 항상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알겠지?”
성현은 한 손을 해미의 어깨 위에 올리고 두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했다.
시체를 저 나이에 봤을 리도 없고, 만약 모두 죽은 것이라면 시체 길을 헤치고 가야 할 것이다.
어지간히 담이 크지 않으면, 정신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할 일이었다.
다만.
『 특성 』
★게이머
-게임 속 캐릭터를 현실에 투영
-상태이상 및 정신 공격에 저항
게이머의 각성 능력을 믿었다.
극심한 혼란도 상태이상의 하나라 생각한 성현이었다.
해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성현의 눈을 보며 알겠다는 무언의 말을 전했다.
문의 잠금 레버를 돌리자 작은 소음이 나왔지만 손잡이는 부드럽게 돌아갔다.
끼이이익.
멈칫.
문의 경첩이 좀 낡은 듯 고음의 소리를 지른다.
아주 살짝 열다 멈추었지만, 별다른 기척이 없자 활짝 열어젖혔다.
역사는 어두웠다.
멀리 비상구를 알리는 녹색 유도등만이 유일하게 켜져 있었다.
휘익. 휘익.
바람소리가 날정도로 전후 사방으로 라이트를 비추며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분명 사람들이 있었던 흔적은 남아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증명하듯 주변에는 많은 가방이며, 벗겨진 신발과 옷가지가 한 가득이었다.
그리고 드문드문 말라붙은 핏자국 등이 성현의 눈에 들어왔다.
핏자국이 길게 늘어져 있어 바닥에 쓸린 흔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일부러 깼다?’
천정의 조명은 꺼진 게 아니라 모두 깨어져 조명이 있었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사람이 밝은 것을 싫어할 리가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성현은 지하철 탑승 플랫폼에서 얻은 몇 가지의 정보들을 가지고 생각했지만 답을 찾을 길이 없었다.
“해미야. 보다시피 무슨 문제가 있는 거 같다. 정상적이지는 않아. 위급하면 스킬이든 뭐든 능력이 닿는 데까지 쓰면서 간다. 알겠지?”
성현도 결심이 섰다.
처척!
창고를 열고 K2c1 한 자루를 꺼내고, 적외선 스코프를 총의 상단 레일마운트에 부착했다.
끼릭 끼릭, 꽈악.
소음기와 핸드가드(수직손잡이)를 끼우고.
탈칵.
마지막으로 탄창을 꺼내 결속했다.
그리고 스킬을 확인했다.
*패시브*
[특수]무기 전문화
-모든 무기 사용가능 및 공격력 50% 증가(활성화)
성현은 전용 패시브 스킬이 활성화되어 있음을 재확인했다.
“출발한다.”
* * *
지하철 플랫폼을 벗어나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끼익. 끼익.
흠칫.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멈추어 서서 주의를 기울였다.
적외선 스코프에 눈을 붙이고 한시도 때지 않았다.
이미 라이트는 모두 끈 상태다.
해미에게도 2배율 적외선 스코프를 하나 내어주고 그걸로 보게 했다. 주변 모습이 목불인견인 탓에 있는 그대로 보고 오게 할 수는 없었다.
지나온 길은 처참했다.
벽은 온통 피칠갑을 하고 있었고, 떨어진 신체의 일부마저 발견했다.
무언가에 찢겨진 듯 단면이 거칠고 울퉁불퉁했다.
지하상가의 초입부터는 주변 경계에 더욱 신경을 쓰며 걸었다.
화재가 있었는지 불이 붙은 흔적들과 검게 그을린 천장으로부터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복도 바닥을 이루던 타일들이 깨어져 있고, 상가의 유리창은 온전한 것을 찾는 게 더 힘들었다.
‘이곳도 마찬가지야. 사람들의 흔적은 분명 있어.’
찰박찰박.
어디 소화전이 터졌는지 복도 전체에 물이 고여 발끝에 채인다.
그때.
쿵! 후다다닥.
“누구냐!”
성현이 급히 총구를 왼쪽으로 돌렸다.
“후회할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온몸이 벌집이 되기 싫다면!”
철컥. 딸깍.
성현은 개머리판의 견착을 더욱 견고하게 하고, 장전 손잡이를 후퇴고정 시켜 장전을 완료했다.
그리고 조정간 안전에서 단발로 돌렸다.
소총에 부착한 후레쉬를 켜고 자신이 총을 들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최소한 겁을 집어먹고 반응을 할 것이다.
그르르릉.
“······.”
짐승의 성대에서나 들릴법한 낮은 울림이 들렸다.
모습은 숨겼지만,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려는 습성은 짐승에게나 볼 수 있다.
‘인간의 소리는 아니다. 야생동물? 혹시, 개?’
도심의 한중간에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 야생동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 성현은 혹 대형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 지하 중심상가에서 갈림길에 위치해있다. 1, 2, 3, 4번 출구 모두와 연결된 통로였다.
정부에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진행한 청계산을 목표로 잡은 상태에서는 3번 아니면 4번 출구로 가야는 맞았다.
소리가 들린 방향은 3번 출구 방향. 거리는 대략 30여 미터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
4번 출구로 그냥 가느냐. 아니면 확인하고 3번 출구로 진행하느냐 선택지가 있었다.
‘직진한다.’
결정은 빠르고 행동은 민첩했다.
차창-. 쨍그랑.
성현은 창고에서 꺼낸 빈 탄창을 하나 던졌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그 무엇이든 반응할 것이라 본 것이다.
크아앙!
커다란 덩치를 가진 물체가 상가의 뚫린 창에서 뛰쳐나와 가공할 속도로 덮쳐왔다.
라이트에 비친 것은 언뜻 사람 형상이지만, 절대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다.
몸에 걸친 것은 터져나간 반바지가 전부였다. 그것도 원래는 긴 바지였음을 짐작케 하는 실타래가 종아리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
회백색의 반죽으로 만든 것 같은 피부와 과하게 돌출된 광대뼈, 온몸의 힘줄은 ‘툭툭’ 불거져 보기만 해도 상당한 위압감을 전달했다.
벌어진 입 주위에는 벌건 핏자국과 번뜩이는 날카로운 이빨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