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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긴 여정의 시작 (1)



골목까지의 거리는 대략 70m.
철컥.
빗겨 맨 자동소총을 장전하고 조용히 기다렸다.
“잡고 가시게요?”
“이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꼬리 달고 가기보다 여기서 처리하고 가는 게 좋을 거 같다.”
“그럼 저는 조금 더 앞으로 가서 살짝 살펴보고 있을게요.”
“그럴래? 너무 멀리 가지 말고 무슨 일 있음 바로 이리로 와.”
“네에-.”
해미는 차량들을 훌쩍 뛰어넘으며 놀이라도 하듯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조금씩 멀어졌다.
구오오.
이제 지척인 듯 울음소리에 공기마저 쩌렁대게 울린다.
파바바밧.
‘발걸음 소리로 미루어 보아 많지는 않다.’
성현은 선 자세로 총구를 겨냥한 체 골목을 노려봤다.
“온다.”
다닷다다닷.
“사, 살려!”
기대했던 좀비가 아니라 두 명의 성인 남자가 튀어 나왔다.
“아저씨, 사람들이에요!”
해미가 저 멀리서 크게 외쳤다.
“생존자? 헌데······.”
생존자로 보이는 이들에게는 별도의 표식이 없었다.
좀비와 게이머인 자신과 해미만이 표식이 나타남을 이때 알았다.
이후 다른 생존자를 더 만나면 확실히 할 수 있을 터였다.
쿠어어.
두 사람의 뒤를 쫓아 3마리의 좀비가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까지 근접했다.
[좀비 Lv2]
성현은 입술을 짓씹었다.
‘너무 가까워.’
자칫하면 구해주려다 생존자들이 맞을 것만 같았다.
“쓰자!”

*액티브*
[특수]무기 기술자
-무기 공격력, 속도, 범위, 명중 50% 증가 (적용 시간 10분,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지금까지 크게 부담이 없어 스킬사용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명중력을 극대화해서 사람들을 구하고 봐야 했다.
탕. 탕. 타앙.
단발로 끊어서 쏜 탄환의 탄속은 1,435m/sec 음속의 4배에 달하는 속도록 날아갔다.
뻥. 뻐벙.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좀비들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머리 잃은 몸통은 관성 때문에 몇 걸음 더 나아가더니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 * *

‘특성 부여가 혹시 가능할까 했는데 이들에겐 어떤 징조도 없다. 해미만 특별한 경우인가?’
성현을 마주하고 있는 생존자 두 명을 유심히 바라보며, 자신의 시야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방법이 따로 있는 건가?’
특성 부여가 가능하다 해도 아무에게나 해줄 생각은 없었지만, 가능 여부조차 확인 못하고 있으니 답답했다.
‘어쩔 수 없지.’
뭔가 내 것 같지만 내 것이 아닌 느낌에 아쉬움이 남는다.
“우물우물. 꿀꺽! 크흠.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죠?”
“좀비가 태양 빛에 노출을 꺼린다고 했습니다. 그다음부터 음식에 집중한 거 같습니다만.”
“아아, 네. 이거 참 거의 하루를 굶다시피 해서··· 죄송합니다. 훤히 열린 가게가 있어도 무서워서 들어가질 못 하다 보니.”
제법 큰 덩치의 두식이 멋쩍은 웃음을 짓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용칠은 눈치가 없는지 여전히 해미가 준 음식을 허겁지겁 먹으며, 대화에는 참여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처음 성현과 해미의 헬멧을 쓴 복장을 두고 이상한 사람 보듯 했지만, 그것도 잠시. 제발 같이 데려가 달라 사정을 했다.
이미 성현의 무력을 확인해서인지 정말 간절하게 부탁했다.
생존자들을 처음 본 것도 있고 그다지 나쁜 사람들 같지는 않아 성현은 동행을 허락했다.
두고 가면 십중팔구 오늘을 넘기기 힘들어 보였다.
성현은 이들과 함께 신길역에서 올림픽대로를 탔다.
물론 걸어서 갔음이다.
어딜 가도 모든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있었고, 차량으로 이동은 불가능했다.
오늘 안에 한남대교까지는 갈 생각이었던 성현은 대방역 부근에 이르러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두식과 용칠은 오후 4시가 지나서부터는 안절부절못하더니 해가 지기 전에 안전지대를 찾아야 한다고, 이대로 계속 가서는 안 된다고 보챘다.
두식과 용칠이 하도 성화였던 탓에 근처에서 오늘 하루를 보낼 작정을 했고, 지금은 철길 부근 두 동의 아파트 중 하나를 골라 옥상으로 올라와 있었다.
아파트의 아무 집이나 사용하면 될 일을 굳이 두식 일행은 옥상으로 안내했다.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겠지, 하고 일단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두식은 31살이고, 용칠은 28살로 함께 청소 용역을 전문으로 하는 일을 같이했다고 한다.
어차피 낯선 이들이 무슨 말을 하던 성현이 곧이곧대로 모두 믿을 일은 없었다.
이들은 이필성 대통령의 대국민 발표를 듣고 사태 발생 당일에 목동역에 있었다고 말했다.
갑자기 정신을 잃고 일어나니 한 공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쓰러져있었고, 소수의 사람들만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역내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수천 명은 될법한 인원이 있었는데 깨어난 사람들은 기백 명 정도였다고 한다.
깨어난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시각에 일어났고, 의식이 없던 이들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의식이 없는 이들에게 이상 발작 같은 증상이 나타났고, 한두 시간 만에 그들은 좀비가 되었다며 치를 떨며 말했다.
성현은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일반인들인 두식과 용칠이 살아남았다는 게 어찌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원인이 뭐지···.’
그리고 성현은 깨어난 시간에 따라 그들이 좀비가 된 것인지, 좀비가 되어 늦게 깬 것인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봤지만, 답은 없었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와 같은 딜레마에 빠지는 문제였다.
고개를 주억거리고 말았다.
어차피 좀비일 뿐이다.
“좀비들은 태양 빛에 노출을 꺼립니다. 그게 아니었음 저희도 진즉에 죽었을 겁니다. 헌데, 싫어 할 뿐이지 한번 맞닥뜨려 싸운 놈들 죽기 살기로 따라오고 하물며 빛도 무시하고 따라옵니다. 그게 포인트죠.”
성현도 두식의 이야기가 모두가 진실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자신이 겪었고 본 것을 가지고 추론하니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빛에 대해 민감한 건 맞을 겁니다. 지하철 역사내의 전등이란 전등도 모두 부숴 놓았더군요.”
“예에? 아-. 태양뿐만이 아니라 빛 자체를 그랬군요. 아참. 그러고 보니 저희가 의식을 차린 첫날은 처음에는 전기가 일부 들어왔었습니다. 그것도 잠시였지만 말입니다.”
“흐음. 그랬군요.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그게 좀 아쉽군요.”
생존자 두 사람이 왜 그리 해가 지는 것에 과민 반응을 하고 집착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지만, 완전히 와 닿지는 않았다.
어차피 성현도 해가 지기 전에 쉴 곳을 마련할 생각이었다.
어디 야간침투를 위해 움직이는 것도 아닌 이상 좀비 같은 이 세상에 없던 놈들을 성현도 굳이 밤에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다.
밤은 위험요소만 있는 사지(死地)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둘은 미리 겁을 집어먹고, 일몰이 아직 한참 멀었건만 아이처럼 보챘다.
어쩔 수 없이 이른 시간에 안전지대를 찾은 거였다.
“근데 편안한 아파트 집을 놔두고 굳이 옥상을 가자고 한 이유가 뭡니까?”
“집에는 좀비가 간혹 있더라고요. 큰일 납니다.”
맞다. 그것은 성현이 간과한 부분이기도 하다.
성현이나 해미에게 집에 있을 좀비 몇 마리야 문제가 없지만, 이들에게는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너무 자신들의 기준으로 사고하다 보니 생긴 오류였다.
“저기··· 선생님은 군인이신 듯 합니다만······.”
“제 군복은 맞지만, 현역은 아닙니다.”
“아, 네···. 저 근데 선생님도 그렇고 저 애도 그렇고, 머리에 헬멧 같은 걸 쓰고 있는데 무겁거나 불편하지 않으신가요? 더군다나 여름인데 장갑까지 끼시고, 상당히 더우실 것 같은데 말이죠.”
팔짱을 끼고 옥상 난간에 살짝 기댄 해미를 힐끔 보며 두식이 말했다.
어쩌면 당연히 질문이었다.
성현이나 해미가 입고 있는 라이트아머의 일부를 보고 장갑이라 착각한 듯했다.
거기다 헬멧까지 쓰고 있으니 이상 할만도 하다.
“뭐··· 별로 불편할 건 없습니다.”
성현은 바이저를 올린 헬멧을 툭툭 치며 말했다. 저들은 모르지만, 어떤 기능성 옷보다도 편안하고 착용감이 좋았다.
그리고 게이머로 각성하고 성현은 더위를 거의 못 느끼고 있었다.
내성 스텟이 자신보다 높은 해미는 두말할 나위 없었고.
“저기요. 그걸로 좀비가 죽어요?”
이때 해미가 까칠하게 묻는다.
“그러엄. 내가 이걸로 너 댓 마리는 잡았는데. 어어, 거 조심해라 무거워.”
두식이 사태 이후 늘어난 근력을 자랑하듯 말했지만, 해미의 행동이 더 빨랐다.
윙! 윙! 부아앙.
해미가 육중한 오함마를 한 손으로 잡고 붕붕 휘두른다.
상당히 떨어진 성현의 군복 옷깃이 바람에 휘날릴 정도니 알고 보는 성현도 놀라운데 두식과 용칠은 벌린 입에서 침이 떨어질 지경이다.
‘해미도 참······.’
무언의 시위로 보였다. 귀찮은 질문은 좀 하지 말라는.
“크헙. 그, 그러니까 작은 체구 신데도 히, 힘이 엄청 좋으십니다. 아하하.”
은연중에 해미가 어려 보여 말을 놓았던 두식이 말을 높인다.
자기도 무안한지 뜬금없이 웃었다.
“근데 너무 가볍고 무른데··· 흠.”
그그그긍.
통짜 쇠로 된 손잡이가 눈에 띄게 휜다.
이쯤 되니 두식과 용칠은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뜨고 있었다.
“해미야 장난 그만하고 드려.”
“네에-! 아저씨.”
성현의 말에 상냥하게 웃으며, 답하는 해미였다.
그그그긍.
다시금 손잡이를 원상복구 해주는 해미였다. 하지만 이미 비틀린 자국은 역력히 남아있어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불현듯 성현은 자신의 볼을 만진다.
‘저런 손에 내가······.’
아무렇지도 않던 볼과 이가 시리게 느껴지는 성현이었다.
“저기요. 이거 살짝 비틀어졌는데.”
“아이고. 괘,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럴 수도 있죠. 아하하.”
해미는 오함마를 돌려주고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성현이 아닌 이들에게 거리를 두려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 * *

서쪽 하늘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한강변에 위치한 건물이라 뷰가 상당하다.
차량의 매연과 공해로 찌든 대기가 맑아졌음인지 주황빛 해질녘은 성현이 지금까지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있었다.
“우와-. 아저씨, 너무 예뻐요.”
어느덧 성현의 곁에 선 해미는 성현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어어. 쿠어어어.
지상에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밀려오자 좀비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성현이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지상을 내려다봤다.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한둘이 아니었다. 물밀 듯 밀려와 어느새 지상을 가득 메우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거야?’
숫자를 세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숫자였다.
“이제 놈들이 활동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부터는 최대한 조용히 해야 합니다. 저놈들 소리에 엄청 민감해요.”
귓속말에 가까운 두식의 말에 성현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두식은 미리 자리를 마련해 놓은 옥상 구석으로 고양이 걸음을 하고 멀어졌다.
쿠오오오.
그어그어어.
좀비들이 어떻게 서로 의사소통 하는 진 모르겠지만, 여기저기서 호응하듯 괴성을 지르고 있는 모습은 꽤 섬뜩했다.
한참을 그런 좀비들을 지켜보던 성현은 해미를 바라봤다.
“음··· 시험해볼 게 좀 있는데. 도와줄래?”
“네, 말씀하세요.”
반짝반짝 눈빛을 빛내며, 성현을 바라보는 눈매가 호선을 그렸다.
“그래. 뭘 좀 던지는 일인데, 할 수 있겠어?”
“앗! 저 중학교 때 소프트볼 했었어요.”
“오, 그래 잘 됐다. 내가 해도 되지만, 아무래도 스텟이 더 높은 해미 네가 하면 좀 더 좋을 거 같아서 말이야.”
성현은 두식과 용칠을 슬쩍 보니 계단 통로 옆에 붙은 벽에 있어선지 잘 보이지 않았다.
“최대한 멀리 던져주면 된다. 방향은 저기 보이는 도로 표지판 보이지? 그 방향으로.”
“근데 이건 왜 하시는 거예요?”
“우선은 좀비들이 소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려는 거뿐이야. 그리고 혹시 들킬 염려도 있으니 멀리 던지면 좀 더 안전할 테고.”
성현은 말 하면서 창고를 열어 수류탄 1개를 꺼냈다. 그리고 안전핀을 뽑고 안전 손잡이에 유리 테이프를 붙였다.
“해미야, 여기 이쪽 부분은 던질 때 만지지 말고 던져봐. 최대한 멀리 던지는 거 잊지 말고.”
“넵!”
해미는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어깨를 풀었다.
“저, 지금 던져도 돼요?”
충분히 몸이 풀린 해미가 성현을 바라봤다.
성현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해미가 무릎을 굽혀 왼 다리를 살짝 올리더니 앞으로 길게 뻗어 냈다.
동시에 상체가 숙여지면서 팔을 번개같이 휘둘렀다.
후아악.
해미의 팔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손에서 떠난 수류탄이 육안으로는 어디까지 날아가는지 궤적을 쫒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꽈광.
성현은 그 즉시 다목적 적외선 망원경[MIT]을 들고 상황을 살폈다.
화염이 일렁이는 곳을 거리측정기능으로 확인했다. 표기된 거리는 무려 557m 경이로운 숫자였다.
전문적인 훈련을 한 야구선수의 경우 100m를 넘는 경우가 있지만, 이 경우도 구속이 130㎞를 넘겨야 가능한 정도다.
건물의 높이가 있다고 해도 해미가 던진 실제 거리는 500m 이상으로 보는 게 맞았다.
‘지금 건물 아래의 놈들도 소리가 난 쪽을 쳐다봤지만 움직임은 없다. 소음을 듣고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는 놈들은 대략 200미터 안쪽이다. 우선 최대치는 이걸로 보면 되겠어.’
수류탄의 소음이 수 킬로 이상 퍼져 들리겠지만, 예상과 달리 일정 거리에 있는 좀비만 행동했다. 200미터 이상 떨어진 좀비들은 폭음이 들린 방향으로 고개는 돌렸지만, 금방 관심을 끊었다.
‘일단은 나쁘지는 않은 결과긴 한데.’
성현이 가지고 있는 무기들이 데시벨의 차이는 있지만, 수류탄보다 큰 것은 없다고 보면 되었다.
언제든 전투가 시작되면 때에 따라 200m 안쪽에 있는 좀비만 모두 상대하면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데 듣고도 반응 안 한 이유가 뭐야? 소리에 대한 원근감이라도 있는 건가.’
성현은 이번 결과를 두고 결코 좀비들이 단순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