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25화] 연구소 구출작전 (2)
‘대원들도 위험해.’
성현은 아직 별 이상을 못 느끼지만, 비상구 계단보다 산소가 적은 연구소는 대원들에게까지 위험했다.
띠릭.
“1팀 현 위치 고수. 별도의 지시 있을 때까지 대기한다.”
성현이 귀 뒤쪽에 부착된 기기의 버튼을 누르고 명령했다.
이 기기는 트랜스듀서 골전도 신호 변환 장치로 애프터샥에서 군용으로 특별 제작한 물건이었다. 무전 기능과 군 주파수를 이용한 통신 기능이 내장되어있다.
반경 500m라는 제한이 있지만 그 편의성으로 인해,전투부대 부대원들에게 특별히 지급된 물품으로 팀별 작전시에 주로 사용된다.
“으으윽.”
무전을 끝내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살필 때 끊길 듯 작은 신음성이 들렸다.
구석진 자리에 어린 여자아이를 안고 있는 한 남자가 숨을 낮게 헐떡거리며 벽에 기대앉아있었다.
부녀사이임을 알 수 있었다. 가슴이 아프다. 이들 모두를 살리고 싶었다.
“괜찮습니까?”
“하아. 하-아··· 누, 누구······.”
성현은 한시가 급한데 긴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 지금 대화하는 이도 언제 의식을 잃을지 몰랐다.
“급합니다. 여기 비상 발전기가 있는 곳이 어딥니까?”
“하아······ B4 거··· 거깁니다. 흐 윽.”
성현은 전력을 다해 달렸다.
‘어디냐!!’
A5 지역을 지나자 B2 구역이 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찾던 B4 구역을 가리키는 화살표와 이를 막고 있는 문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다!”
성현은 달리던 그대로 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쾅!
쿠구궁.
당겨야 열리는 문이 강제로 구겨지며, 문을 지탱하던 경첩이 통째 뜯겨나갔다. 문짝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발전기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세로 2m 가로 4m 정도의 설비가 시야에 들어왔다.
‘발전기다!’
연료 주입구를 찾아 뚜껑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창고!’
성현은 창고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20L짜리 말 통 하나를 연료주입구에 쏟아부었다.
콸콸콸.
중유가 꿀렁꿀렁하며 연료탱크로 쏟아졌다.
성현은 어느 정도 연료를 주입하고 설비 앞에 섰다.
“작동은! 작동을 시켜야.”
발전기에 부착된 기판의 버튼을 이것저것 눌렀다.
리셋버튼이고 스타트 버튼 그 어떤 것을 눌러도 발전기는 돌아가지 않았다.
“제기랄!!”
그러다 문뜩 핸들 손잡이와 비슷한 모양이 장치가 눈에 띄었다.
어차피 이판사판인 형국이다.
무작정 핸들의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윙윙.
우-웅.
발전기에 반응이 있었다.
우우웅웅.
더욱 빠르게 핸들을 돌리자 발전기 전체가 가벼운 진동을 하기 시작했고, 이내 완전 가동을 뜻하는 묵직한 소리를 냈다.
“됐다!”
깜빡깜빡.
발전기가 켜지면서 나갔던 전기가 들어오는 듯 전등들이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다 결국 밝게 빛을 낸다.
후웅후웅.
그리고 환풍기의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탁한 공기를 빨아들임과 동시에 신선한 공기를 뱉어내고 있었다.
띠릭.
“1팀 연구소 진입해서 생존자들을 찾고 한곳으로 모은다. 의식이 대부분 없으니 이동 간 유의해라.”
자신이 확인한 이들 중 사망자는 그나마 없었으나 산소결핍에 장시간 노출되었다면 살아나기 힘들 수도 있었다.
-네. 대령님 확인했습니다.
성현의 무전을 받은 전투대대 부대장이자 1팀장인 최동원 중령이 답했다.
띠릭.
“4팀 이상 없나?”
-외각 이상 무.
-1층 로비 소규모 적 소탕하고 위치 사수 중입니다.
“알겠다. 지금 올라간다. 여기에 해미가 필요하다.”
-네. 아저씨~. 빨리 데리러 와요.
* * *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연구소 소장인 정우현 소장이 성현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지만, 성현의 얼굴은 그리 좋지 못했다.
“우선 최대한 사람들을 회복하고, 출발하겠습니다.”
시각은 5시 5 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산속인 탓에 해가 일찍 저문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대한 빨리 서둘러야했다.
잠시 연구소에서 남아 밤을 지새고 아침에 출발할까도 생각했지만, 영문도 모른체 고속도로에 남은 대원들과 대피소에서는 터널 입구를 개방하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간은 충분할거 같다. 출발하는게 맞다.'
빠듯하긴 할 테지만 큰 무리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생각을 정리한 성현은 결정을 내리고 서둘렀다.
연구소 내의 생존자들은 산소공급이 원활히 되자 일부는 깨어났지만, 절반 이상이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해미는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힐을 넣어주고, 쿨이 돌아올 때마다 반복해서 사람들을 치유했다.
그 시간만 무려 50여분 이상이 걸렸었다.
아직 두통이나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이동하면서 치료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발전기가 돌아가고 엘리베이터가 정상 작동해 이동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밖은 좀비라는 괴물들이 돌아다닙니다. 이놈들은 햇볕을 무서워하고 낮에는 돌아다니지 않지만, 해가 지면 활동을 시작합니다. 지금 시각 6시 10분!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힘들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이동할 테니 따라주십시오.”
사태 발생 후 지상에 문제가 있음을 알지만, 정확한 상황을 알지는 못하는 이들이었다.
최소한의 설명만 하고 서둘렀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어린아이들 6명, 채 10살이 되지 못한 아이들을 성현은 대원들 6명에게 업도록 했다.
아이들이 산행을 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고, 좀비들이 나타나는 순간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몰랐다.
아이를 업은 대원들은 전투에서 열외해서 생존자들과 같이 다른 대원들의 보호를 받게 했다.
“전 대원 모두 전투에 대비한다. 3분 뒤 출발.”
성현의 지시가 떨어지자 대원들은 총기를 점검하고, 개개인별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모두 출발!”
3분의 시간이 지나고 성현의 출발신호가 떨어졌다.
어느덧 서쪽 주차장에도 땅거미가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주차장을 벗어나자 마자 전방에 한 무리의 좀비들이 나타났다.
타타타탕!
“꺄아악.”
생존자중 여성 몇 명이 좀비에 놀란 것인지 총성 때문인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모두 정신 차려!"
생존자들을 일일이 챙겨줄 여유따윈 없었다. 강하게 소리치고 좀비들을 제거하는데 정신을 집중했다.
최대한 빠르게 제거하고, 발길을 제촉해야만 했다.
성현은 견착 자세를 굳건히 하고 정 조준해 착실히 하나 하나 잡아나갔다
퍼펑!
선두의 좀비가 두 팔을 벌린 특유의 몸짓으로 달려들다 가슴 부위에 큰 구멍이 뚫리고, 연이어 머리통을 잃고 쓰러진다.
구어어어-!
고통에 찬 좀비의 비명이 난무하고, 다시금 좀비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상처입은 좀비는 동족들을 끌어모은다.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고 간다."
머리 몸통에 서너 발의 총탄을 훑고 지나가면, 어김없이 ‘뻥’하는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피비를 뿌리고 폭발했다.
“8시 사공 여섯!”
투캉 투캉.
대원중 하나가 근접한 좀비를 보고, 주 무기를 교체했다. SPAS-15 12게이지 탄약을 사용하는 산탄총을 들었다.
6발들이 박스탄을 사용하는 반자동 산탄총이다.
퍼펑! 펑!
근접한 좀비의 몸통을 지우개로 지우듯 했다.
단 두발에 몸통의 절반을 날려버리는 가공한 파괴력을 보였다.
“7시 칠공 열! 아니 스물! 계속 늘어납니다!”
산 아래 번화가 방향에서 대규모 좀비 때가 나타났다.
따당다다당.
경기관총을 든 대원이 슬라이딩하듯 뛰어와 지원사격을 시작했다.
다가오던 좀비들이 몇 걸음을 못 옮기고 쓰러진다. 하지만 워낙 수가 많아 조금씩 전진하는 상황이었다.
성현은 전방을 정리하고 주변 전체를 눈에 담았다.
그리고 창고를 열고 수류탄을 꺼내어 빠르게 안전핀을 뽑고,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몰려오는 좀비들에게 투척했다. 그리고 또 꺼내서 던지고 연속해서 열 개를 순식간에 던져냈다.
꽈과과과광!
귀청을 찢는 굉음이 연속되어 터져 나왔다. 대원들을 제외한 생존자 대부분이 바닥에 넙죽 엎드리고 귀를 틀어막았다.
후드드득. 쿠쿵.
주인을 잃은 육편이 비산하고 이름 모를 아름드리나무들이 쓰려졌다.
총뿐만 아니라 수류탄에도 성현의 능력은 가감 없이 통용되어 일반적인 수류탄의 화력을 뛰어넘었다.
측면에 대규모로 몰려들던 좀비 때가 몰살당하고 나자 짧은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모두 살고 싶으면 힘들 내야 합니다. 어서!”
성현은 생존자들이 주춤하며, 제대로 발을 떼지 못하자 크게 소리쳤다.
* * *
“대령님, 상당수의 좀비가 몰리고 있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알겠다. 거의 다 왔다. 최대한 주변 정리하고 대기해.
“네. 알겠습니다. 단결!”
투투퉁.
꽈광. 쾅. 쾅
“아, 저 새끼 탄 아끼라니까.”
후열에 위치한 바라쿠다의 포탑에서 공중폭발탄(HEAB)이 발사되자. 팀장인 김영기 중위가 짜증 섞인 말로 중얼댔다.
자신도 쏘고 싶지만 탄약 재고가 많지 않아 아끼는 데 물 쓰듯 써대니 한소리 안할 수가 없었다.
띠릭.
“야 이 새끼야. 내가 탄 아끼라고 했어 안 했어. 미니건도 아까워서 안 쓰는데 이게 빠져갖고.”
-에이 팀장님. 꼴랑 3발 쏴본 거 가지고.
“이게 뒤질라고. 세 발이고 한 발이고, 너 한번만 더 쏘면 다음 재편 때 경비조로 빼버린다. 알아서 해.”
-아, 안 쏜다고요. 뭔 말씀만 하시면 경비, 경비 하시네.
직속후임이었고, 부 팀장인 녀석이었다.
같은 고등학교 동문이기도 했고, 휴가 나가면 형 동생 하는 사이다 보니 너무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김영기 중위였다.
타탕. 타-앙.
150m 떨어진 곳에서부터 슬금슬금 나오던 좀비가 뛴다.
이를 놓치지 않고 정확히 머리를 맞추어 내는 김영기 중위였다.
“이러다 해가 완전히 지겠는데.”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산 넘어 노을이 짙게 번지고 있었다.
이 시간이면 이미 대피소에 들어가고도 남은 시간이었다.
그늘이 진 것과 완전히 해가 기운 것과는 천지 차이임을 안다.
지금은 드문드문 나오지만 곧 대규모 좀비 때가 나타날 것이었다.
* * *
성현은 상당한 수의 좀비들을 뚫고 고신 터널이 있는 산 능선을 넘었다.
그나마 능선 넘어 내리막은 양지라 할 수 있어 수풀이 우거졌지만 드문드문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이후는 큰 고비 없이 고속도로까지 진출했고, 차량 위를 건너며 5팀이 대기 중인 합류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다들 속도를 올린다.”
해가 먼 산 넘어 턱을 걸치고 있었고, 곧 사위가 어둠에 잠기기 직전이었다.
“모두 힘들 내세요. 합류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불과 4백여 미터만 가면 대기 중인 5팀과 수송 차량들이 있었다.
타타타탕.
성현이 좀비 발견과 동시에 총구에서 불을 뿜어냈다. 간헐적으로 보이던 놈들이 이제는 전 방위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 쉴 틈이 없었다.
“아앗!”
뒤따르던 생존자가 차량 사이에 발이 끼어 넘어지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리고 홀연히 나타난 빛이 상처 입은 생존자에게 깃든다.
‘기다리고 있었나 보네.’
뒤를 돌아보니 해미가 저 잘했죠? 하듯 한쪽 팔을 번쩍 들고 흔든다.
훗 하고 한번 웃고는 다시 전방을 보고 성현이 선두로 나섰다.
‘보인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차량 인근에는 좀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띠릭.
“주변 확실하게 정리해라 지금 진입한다. 생존자들 태울 수 있게 수송 차량 둘 다 앞 열로 보내!”
-네. 대령님. 여기서도 보입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김영기 중위의 대답이 있고, 곧바로 차량들이 시동을 걸고 움직이는 모습이 성현의 눈에도 보인다.
후방과 측면의 해치를 모두 열어 빠른 게 탑승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후-아."
드디어 아스팔트 위에 올라섰다.
사위는 이미 어두컴컴해지는 중이다. 성현은 제자리에서 뛰어올라 장갑차의 지붕에 섰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성현의 뒤로 생존자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했고, 대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차량에 탑승했다.
정원을 훨씬 초과하겠지만 상관없었다. 먼 거리도 아니었고, 완전 군장 한 군인들 10명을 태우는 기준이었기에 그보다 많은 인원이 탄다 해도 문제는 없었다.
더군다나 생존자 중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고, 6명은 아이였다. 충분히 탈 공간은 되었다.
“많이 비좁더라도 참고 타세요. 금방입니다.”
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생존자들이 차량으로 지체 없이 들어갔다.
“9시 일사공 열 이상.”
고속도로 건너 마을에서부터 좀비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드르르르륵.
험비에 거치된 미니건에서 포효하듯 탄환들을 쏟아냈다.
1미터가 넘는 기다란 불꽃이 수 초간 지속되자 달려오던 좀비들은 단 하나도 제대로 서 있는 놈들이 없었다.
굵직한 탄환들이 땅을 긁어내며, 좀비들을 덮쳤고, 믹서로 갈아버리듯 모조리 해체되어버렸다.
텅텅.
차량 탑승이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해치를 닫는 소리가 났다.
대원들도 빠르게 각자 차량에 탑승했다.
“고고고!”
성현의 굵직한 목소리가 주변에 울렸다.
‘대원들도 위험해.’
성현은 아직 별 이상을 못 느끼지만, 비상구 계단보다 산소가 적은 연구소는 대원들에게까지 위험했다.
띠릭.
“1팀 현 위치 고수. 별도의 지시 있을 때까지 대기한다.”
성현이 귀 뒤쪽에 부착된 기기의 버튼을 누르고 명령했다.
이 기기는 트랜스듀서 골전도 신호 변환 장치로 애프터샥에서 군용으로 특별 제작한 물건이었다. 무전 기능과 군 주파수를 이용한 통신 기능이 내장되어있다.
반경 500m라는 제한이 있지만 그 편의성으로 인해,전투부대 부대원들에게 특별히 지급된 물품으로 팀별 작전시에 주로 사용된다.
“으으윽.”
무전을 끝내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살필 때 끊길 듯 작은 신음성이 들렸다.
구석진 자리에 어린 여자아이를 안고 있는 한 남자가 숨을 낮게 헐떡거리며 벽에 기대앉아있었다.
부녀사이임을 알 수 있었다. 가슴이 아프다. 이들 모두를 살리고 싶었다.
“괜찮습니까?”
“하아. 하-아··· 누, 누구······.”
성현은 한시가 급한데 긴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 지금 대화하는 이도 언제 의식을 잃을지 몰랐다.
“급합니다. 여기 비상 발전기가 있는 곳이 어딥니까?”
“하아······ B4 거··· 거깁니다. 흐 윽.”
성현은 전력을 다해 달렸다.
‘어디냐!!’
A5 지역을 지나자 B2 구역이 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찾던 B4 구역을 가리키는 화살표와 이를 막고 있는 문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다!”
성현은 달리던 그대로 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쾅!
쿠구궁.
당겨야 열리는 문이 강제로 구겨지며, 문을 지탱하던 경첩이 통째 뜯겨나갔다. 문짝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발전기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세로 2m 가로 4m 정도의 설비가 시야에 들어왔다.
‘발전기다!’
연료 주입구를 찾아 뚜껑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창고!’
성현은 창고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20L짜리 말 통 하나를 연료주입구에 쏟아부었다.
콸콸콸.
중유가 꿀렁꿀렁하며 연료탱크로 쏟아졌다.
성현은 어느 정도 연료를 주입하고 설비 앞에 섰다.
“작동은! 작동을 시켜야.”
발전기에 부착된 기판의 버튼을 이것저것 눌렀다.
리셋버튼이고 스타트 버튼 그 어떤 것을 눌러도 발전기는 돌아가지 않았다.
“제기랄!!”
그러다 문뜩 핸들 손잡이와 비슷한 모양이 장치가 눈에 띄었다.
어차피 이판사판인 형국이다.
무작정 핸들의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윙윙.
우-웅.
발전기에 반응이 있었다.
우우웅웅.
더욱 빠르게 핸들을 돌리자 발전기 전체가 가벼운 진동을 하기 시작했고, 이내 완전 가동을 뜻하는 묵직한 소리를 냈다.
“됐다!”
깜빡깜빡.
발전기가 켜지면서 나갔던 전기가 들어오는 듯 전등들이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다 결국 밝게 빛을 낸다.
후웅후웅.
그리고 환풍기의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탁한 공기를 빨아들임과 동시에 신선한 공기를 뱉어내고 있었다.
띠릭.
“1팀 연구소 진입해서 생존자들을 찾고 한곳으로 모은다. 의식이 대부분 없으니 이동 간 유의해라.”
자신이 확인한 이들 중 사망자는 그나마 없었으나 산소결핍에 장시간 노출되었다면 살아나기 힘들 수도 있었다.
-네. 대령님 확인했습니다.
성현의 무전을 받은 전투대대 부대장이자 1팀장인 최동원 중령이 답했다.
띠릭.
“4팀 이상 없나?”
-외각 이상 무.
-1층 로비 소규모 적 소탕하고 위치 사수 중입니다.
“알겠다. 지금 올라간다. 여기에 해미가 필요하다.”
-네. 아저씨~. 빨리 데리러 와요.
* * *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연구소 소장인 정우현 소장이 성현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지만, 성현의 얼굴은 그리 좋지 못했다.
“우선 최대한 사람들을 회복하고, 출발하겠습니다.”
시각은 5시 5 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산속인 탓에 해가 일찍 저문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대한 빨리 서둘러야했다.
잠시 연구소에서 남아 밤을 지새고 아침에 출발할까도 생각했지만, 영문도 모른체 고속도로에 남은 대원들과 대피소에서는 터널 입구를 개방하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간은 충분할거 같다. 출발하는게 맞다.'
빠듯하긴 할 테지만 큰 무리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생각을 정리한 성현은 결정을 내리고 서둘렀다.
연구소 내의 생존자들은 산소공급이 원활히 되자 일부는 깨어났지만, 절반 이상이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해미는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힐을 넣어주고, 쿨이 돌아올 때마다 반복해서 사람들을 치유했다.
그 시간만 무려 50여분 이상이 걸렸었다.
아직 두통이나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이동하면서 치료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발전기가 돌아가고 엘리베이터가 정상 작동해 이동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밖은 좀비라는 괴물들이 돌아다닙니다. 이놈들은 햇볕을 무서워하고 낮에는 돌아다니지 않지만, 해가 지면 활동을 시작합니다. 지금 시각 6시 10분!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힘들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이동할 테니 따라주십시오.”
사태 발생 후 지상에 문제가 있음을 알지만, 정확한 상황을 알지는 못하는 이들이었다.
최소한의 설명만 하고 서둘렀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어린아이들 6명, 채 10살이 되지 못한 아이들을 성현은 대원들 6명에게 업도록 했다.
아이들이 산행을 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고, 좀비들이 나타나는 순간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몰랐다.
아이를 업은 대원들은 전투에서 열외해서 생존자들과 같이 다른 대원들의 보호를 받게 했다.
“전 대원 모두 전투에 대비한다. 3분 뒤 출발.”
성현의 지시가 떨어지자 대원들은 총기를 점검하고, 개개인별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모두 출발!”
3분의 시간이 지나고 성현의 출발신호가 떨어졌다.
어느덧 서쪽 주차장에도 땅거미가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주차장을 벗어나자 마자 전방에 한 무리의 좀비들이 나타났다.
타타타탕!
“꺄아악.”
생존자중 여성 몇 명이 좀비에 놀란 것인지 총성 때문인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모두 정신 차려!"
생존자들을 일일이 챙겨줄 여유따윈 없었다. 강하게 소리치고 좀비들을 제거하는데 정신을 집중했다.
최대한 빠르게 제거하고, 발길을 제촉해야만 했다.
성현은 견착 자세를 굳건히 하고 정 조준해 착실히 하나 하나 잡아나갔다
퍼펑!
선두의 좀비가 두 팔을 벌린 특유의 몸짓으로 달려들다 가슴 부위에 큰 구멍이 뚫리고, 연이어 머리통을 잃고 쓰러진다.
구어어어-!
고통에 찬 좀비의 비명이 난무하고, 다시금 좀비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상처입은 좀비는 동족들을 끌어모은다.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고 간다."
머리 몸통에 서너 발의 총탄을 훑고 지나가면, 어김없이 ‘뻥’하는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피비를 뿌리고 폭발했다.
“8시 사공 여섯!”
투캉 투캉.
대원중 하나가 근접한 좀비를 보고, 주 무기를 교체했다. SPAS-15 12게이지 탄약을 사용하는 산탄총을 들었다.
6발들이 박스탄을 사용하는 반자동 산탄총이다.
퍼펑! 펑!
근접한 좀비의 몸통을 지우개로 지우듯 했다.
단 두발에 몸통의 절반을 날려버리는 가공한 파괴력을 보였다.
“7시 칠공 열! 아니 스물! 계속 늘어납니다!”
산 아래 번화가 방향에서 대규모 좀비 때가 나타났다.
따당다다당.
경기관총을 든 대원이 슬라이딩하듯 뛰어와 지원사격을 시작했다.
다가오던 좀비들이 몇 걸음을 못 옮기고 쓰러진다. 하지만 워낙 수가 많아 조금씩 전진하는 상황이었다.
성현은 전방을 정리하고 주변 전체를 눈에 담았다.
그리고 창고를 열고 수류탄을 꺼내어 빠르게 안전핀을 뽑고,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몰려오는 좀비들에게 투척했다. 그리고 또 꺼내서 던지고 연속해서 열 개를 순식간에 던져냈다.
꽈과과과광!
귀청을 찢는 굉음이 연속되어 터져 나왔다. 대원들을 제외한 생존자 대부분이 바닥에 넙죽 엎드리고 귀를 틀어막았다.
후드드득. 쿠쿵.
주인을 잃은 육편이 비산하고 이름 모를 아름드리나무들이 쓰려졌다.
총뿐만 아니라 수류탄에도 성현의 능력은 가감 없이 통용되어 일반적인 수류탄의 화력을 뛰어넘었다.
측면에 대규모로 몰려들던 좀비 때가 몰살당하고 나자 짧은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모두 살고 싶으면 힘들 내야 합니다. 어서!”
성현은 생존자들이 주춤하며, 제대로 발을 떼지 못하자 크게 소리쳤다.
* * *
“대령님, 상당수의 좀비가 몰리고 있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알겠다. 거의 다 왔다. 최대한 주변 정리하고 대기해.
“네. 알겠습니다. 단결!”
투투퉁.
꽈광. 쾅. 쾅
“아, 저 새끼 탄 아끼라니까.”
후열에 위치한 바라쿠다의 포탑에서 공중폭발탄(HEAB)이 발사되자. 팀장인 김영기 중위가 짜증 섞인 말로 중얼댔다.
자신도 쏘고 싶지만 탄약 재고가 많지 않아 아끼는 데 물 쓰듯 써대니 한소리 안할 수가 없었다.
띠릭.
“야 이 새끼야. 내가 탄 아끼라고 했어 안 했어. 미니건도 아까워서 안 쓰는데 이게 빠져갖고.”
-에이 팀장님. 꼴랑 3발 쏴본 거 가지고.
“이게 뒤질라고. 세 발이고 한 발이고, 너 한번만 더 쏘면 다음 재편 때 경비조로 빼버린다. 알아서 해.”
-아, 안 쏜다고요. 뭔 말씀만 하시면 경비, 경비 하시네.
직속후임이었고, 부 팀장인 녀석이었다.
같은 고등학교 동문이기도 했고, 휴가 나가면 형 동생 하는 사이다 보니 너무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김영기 중위였다.
타탕. 타-앙.
150m 떨어진 곳에서부터 슬금슬금 나오던 좀비가 뛴다.
이를 놓치지 않고 정확히 머리를 맞추어 내는 김영기 중위였다.
“이러다 해가 완전히 지겠는데.”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산 넘어 노을이 짙게 번지고 있었다.
이 시간이면 이미 대피소에 들어가고도 남은 시간이었다.
그늘이 진 것과 완전히 해가 기운 것과는 천지 차이임을 안다.
지금은 드문드문 나오지만 곧 대규모 좀비 때가 나타날 것이었다.
* * *
성현은 상당한 수의 좀비들을 뚫고 고신 터널이 있는 산 능선을 넘었다.
그나마 능선 넘어 내리막은 양지라 할 수 있어 수풀이 우거졌지만 드문드문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이후는 큰 고비 없이 고속도로까지 진출했고, 차량 위를 건너며 5팀이 대기 중인 합류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다들 속도를 올린다.”
해가 먼 산 넘어 턱을 걸치고 있었고, 곧 사위가 어둠에 잠기기 직전이었다.
“모두 힘들 내세요. 합류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불과 4백여 미터만 가면 대기 중인 5팀과 수송 차량들이 있었다.
타타타탕.
성현이 좀비 발견과 동시에 총구에서 불을 뿜어냈다. 간헐적으로 보이던 놈들이 이제는 전 방위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 쉴 틈이 없었다.
“아앗!”
뒤따르던 생존자가 차량 사이에 발이 끼어 넘어지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리고 홀연히 나타난 빛이 상처 입은 생존자에게 깃든다.
‘기다리고 있었나 보네.’
뒤를 돌아보니 해미가 저 잘했죠? 하듯 한쪽 팔을 번쩍 들고 흔든다.
훗 하고 한번 웃고는 다시 전방을 보고 성현이 선두로 나섰다.
‘보인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차량 인근에는 좀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띠릭.
“주변 확실하게 정리해라 지금 진입한다. 생존자들 태울 수 있게 수송 차량 둘 다 앞 열로 보내!”
-네. 대령님. 여기서도 보입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김영기 중위의 대답이 있고, 곧바로 차량들이 시동을 걸고 움직이는 모습이 성현의 눈에도 보인다.
후방과 측면의 해치를 모두 열어 빠른 게 탑승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후-아."
드디어 아스팔트 위에 올라섰다.
사위는 이미 어두컴컴해지는 중이다. 성현은 제자리에서 뛰어올라 장갑차의 지붕에 섰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성현의 뒤로 생존자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했고, 대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차량에 탑승했다.
정원을 훨씬 초과하겠지만 상관없었다. 먼 거리도 아니었고, 완전 군장 한 군인들 10명을 태우는 기준이었기에 그보다 많은 인원이 탄다 해도 문제는 없었다.
더군다나 생존자 중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고, 6명은 아이였다. 충분히 탈 공간은 되었다.
“많이 비좁더라도 참고 타세요. 금방입니다.”
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생존자들이 차량으로 지체 없이 들어갔다.
“9시 일사공 열 이상.”
고속도로 건너 마을에서부터 좀비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드르르르륵.
험비에 거치된 미니건에서 포효하듯 탄환들을 쏟아냈다.
1미터가 넘는 기다란 불꽃이 수 초간 지속되자 달려오던 좀비들은 단 하나도 제대로 서 있는 놈들이 없었다.
굵직한 탄환들이 땅을 긁어내며, 좀비들을 덮쳤고, 믹서로 갈아버리듯 모조리 해체되어버렸다.
텅텅.
차량 탑승이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해치를 닫는 소리가 났다.
대원들도 빠르게 각자 차량에 탑승했다.
“고고고!”
성현의 굵직한 목소리가 주변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