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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룡전 1권 (11화)
4장 신위를 드러내다 (1)
다음 날 아침 초가장은 발칵 뒤집어졌다.
밤새 자객이 들어 호위대의 대주 진화와, 부 대주 왕호가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장주를 지키던 비밀 호위 네 명 역시 자객에게 제압당했다는 것이다.
그 말은 곧 자객이 금원각 장주 집무실까지 왔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자객의 침입을 눈치챈 사람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자객이 마음만 먹었다면 초진도는 진화나 왕호처럼 목숨을 잃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초진도로서는 등골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네놈들은 뭐하는 놈들이냐! 어찌 이 많은 놈들 중에 단 한 놈도 자객의 침입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단 말이야! 그러고도 네놈들이 밥을 처먹을 자격이 있다고 보느냐!”
장원의 무사들을 금원각 앞에 모아 놓고 초진도가 언성을 높였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금원각이 뚫렸음에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곧 자객이 아무 때나 자신의 목숨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무사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으니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장주님, 하오문에서 무림맹 조사단을 만나겠다고 왔습니다!”
그때 초가장의 총관인 공탁이 허겁지겁 달려 들어왔다.
“그럼 안내해 주면 될 일이지 뭘 이리 호들갑이야?!”
짜증 어린 표정으로 초진도가 말했다.
어차피 하오문은 화재 사건 때문에 무림맹 조사단을 돕고 있었다. 그들이 찾아오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은 없는 것이다.
“하, 한데…….”
망설이던 공탁이 초진도의 귀에다 대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부, 분타주의 딸년도 함께 있습니다.”
초진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분명 그년은 혈귀곡에 들어갔다고 했는데……. 대체 어떻게…….’
진화와 수하들이 소은설이 혈귀곡으로 들어가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다고 했다.
한데, 어떻게 이곳에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설마…….’
초진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혈귀곡을 빠져나오다니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오늘 모습을 드러낸 것이란 말인가.
“잘못 본 것은 아니더냐?”
“분명합니다! 현재 분타주 대행을 맡고 있는 그년의 숙부와 함께 왔습니다!”
초진도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진화 놈이 거짓말을 한 것이 분명하군!’
계집을 놓쳤다는 사실을 추궁당할까 봐 혈귀곡에 들어갔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초진도가 알기 전에 계집을 잡아 처리하려고 했을 것이다.
‘죽일 놈!’
초진도의 눈에 살기가 일었다.
이미 죽어 버린 진화의 일이야 어찌 되었든 우선은 당장에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소은설이 나타났고, 무림맹 조사단을 만나려 한다는 것은 시체들에 대해 목격한 것을 증언하려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물론, 이미 시체들은 배를 이용해 호수 한가운데에 모두 가라앉힌 상태여서 부인하면 그만이었지만, 혹시라도 고지식한 홍천상이 사실을 확인하겠다며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게 되면 골치 아파질 가능성이 있었다.
게다가 어젯밤에 일어난 사건도 있어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총관 공탁도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하오문도들을 저지한 것이리라.
“일단 이리로 데리고 오라!”
아무래도 어젯밤 사건이 자꾸 걸렸다.
별 볼 일 없는 무공을 가진 하오문도들이 어제 사건에 관련이 있을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게다가 혹시라도 분타주 소진태가 이곳에 잡혀 오기 전에 문도들에게 정보를 흘렸다면, 시체를 목격한 것 외에 다른 증거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우선은 소은설과 하오문도들이 무림맹 조사단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아야 했다.
그래야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명을 받은 공탁이 빠르게 금원각을 빠져나갔다.
* * *
잠시 후 공탁이 소은설 일행을 데리고 왔다.
그들 중에는 진운룡도 자리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일행을 훑어보던 초진도의 시선이 소은설에게서 멈췄다.
초진도의 시선을 받는 순간 소은설은 마치 온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더러운 돼지 놈!’
백 명이 넘는 이들의 심장을 뽑아내고 아버지를 납치한 장본인이 바로 초진도였다.
소은설은 끌어 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며 초진도를 노려봤다.
“그래, 무슨 일로 조사단을 만나려는 것인가?”
그때 초진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주께서 왜 그것을 묻는 것이오? 우리가 공식적으로 조사대의 일을 돕고 있다는 것은 장주께서도 잘 알고 있을 터. 조사대와 하는 일에 대해서 장주께 보고해야 할 의무는 없소이다.”
날이 선 목소리로 소진혁이 말했다.
그 역시 이미 초진도의 악행에 대해 알고 있는 상태였기에 결코 좋은 말이 나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조사단 분들은 오늘 다른 바쁜 업무가 있어 자네들을 만날 수 없으니, 용건이 있다면 나에게 말하도록 하게. 내가 꼭 전해 주도록 하지.”
초진도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워낙 중요한 사안이라 임 공자나 홍 부대주를 만나 직접 전해 드려야 하오!”
소진혁은 물러서지 않았다.
어차피 단단히 마음먹고 온 상태였다.
반드시 조사단에게 사실을 알려야 했다.
“그렇다면 안타깝지만 오늘은 안 되겠군. 조사단 분들은 지금 장원에 없네.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게나.”
초진도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이대로 소은설 일행을 돌려보낸 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알아내려는 속셈이었다.
만일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분타주였던 소진태처럼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그럼 조사단 숙소에서 올 때까지 기다리겠소!”
“어허. 주인도 없는 숙소에 다른 사람을 들여보낼 수는 없지. 게다가 자네들 출신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지 않은가.”
소진혁의 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하오문은 본디 도둑과 소매치기, 기녀, 점소이 등 가장 밑바닥 인생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그로 인해 항상 강호 무인들에게 멸시를 받았다.
초진도가 그것을 끄집어낸 것이다.
“흥! 나는 당신 말대로 진짜 조사단이 숙소에 없는지 반드시 확인해야겠소! 만일 그들이 없다면 초 장주께 백 배 사죄드리겠소!”
문도들을 시켜 새벽부터 초가장을 감시하도록 명을 내린 상태였다.
그들로부터 조사단이 초가장을 빠져나갔다는 보고는 없었다. 그렇다면 숙소에 있는 것이 거의 확실했다.
소진혁이 물러서지 않자 초진도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호오……. 하오문이 무림맹 조사단을 돕는다 하여 이젠 이 초진도 마저 우습게 보는 것인가? 이 제녕 땅에서 나 초진도를 무시하고도 그대들이 맘 편하게 살 수 있다 보는가?”
초진도가 노골적으로 위협을 했다.
“흥!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요. 우리도 아버지처럼 입을 막겠다는 것인가요?”
소은설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초진도의 늘어진 두 볼이 꿈틀했다.
“천한 것들이 오냐 오냐 해 줬더니 제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구나! 여봐라 뭣들 하느냐! 저놈들을 당장 장원에서 쫓아내거라!”
초진도의 명에 따라 금원각 앞에 모여 있던 무사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소은설 일행을 내치겠다는 뜻이었다.
소진혁과 소은설은 이를 악물고 초가장의 무사들을 노려봤고, 용태는 덩치에 맞지 않게 얼른 진운룡의 뒤로 숨었다.
“예가 감히 어디라고 행패야 행패가!”
독이 오른 초가장의 무사들이 막 일행에게 달려들려는 순간이었다.
“무슨 일인데 아침부터 이리 시끄러운 것입니까?”
소란을 듣고 임덕화와 홍천상이 금원각에 모습을 드러냈다. 제검대 무사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초진도가 공탁을 노려봤다.
조사단이 이곳에 오지 못하도록 미리 손을 쓰지 않았음을 탓하는 것이다.
“분타주 대행 아니시오? 어인 일이십니까?”
홍천상이 소진혁을 발견하고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임 공자, 홍 부대주 마침 잘 오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가 있어서 찾아뵈려던 참입니다! 한데 초 장주가 제멋대로 두 분을 뵙지 못하도록 막는군요. 어찌 된 것이오? 초 장주 두 분께서 이렇듯 장원에 계심에도 왜 거짓말을 한 것이오? 혹시 일부러 조사를 방해하려는 심사는 아니오?”
두 사람이 등장하자 이때다 싶었던 소진혁이 목소리를 높였다.
초진도의 얼굴에 잠깐 동안 살기가 일었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초 장주! 대체 이게 무슨 말이오? 우리가 없다고 거짓말을 해서 만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것이 사실이오?”
홍천상이 굳은 얼굴로 묻자 초진도가 재빨리 표정을 부드럽게 바꿨다.
그는 속으로 앞으로 벌어질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상 더는 하오문도들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제 침착하게 대응해 그들의 말을 거짓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우선 하오문의 신뢰를 떨어뜨려야 했다.
“하하하, 오해하지 마시오. 홍 부대주. 내가 어찌 무림맹의 행사를 막겠소? 단지 나는 이자들이 아침 일찍부터 소란을 떠는 바람에 두 분의 청정을 방해하지 않을까 염려해서 대신 전해 주겠다 제안한 것뿐이오. 한데 저들이 괜히 흥분해서 숙소로 난입하겠다 하여 그것을 막다가 이런 소란이 일어난 것이라오. 본래가 출신이 미천한 자들이다 보니 행동이 무도하기 그지없습니다.”
초진도가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는 출신을 언급하며 하오문을 깎아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소은설과 소진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들의 출신이 미천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하하하, 그렇군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기야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무작정 쳐들어온 저들이 예를 모르는 것이지요.”
임덕화가 초진도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렇지 않아도 임덕화는 하오문과 함께 일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차였다. 게다가 그동안 초가장으로부터 물심양면으로 아낌없는 지원을 받은지라 아무래도 초진도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공자님 우리가 청해서 도움을 주고 있는 이들입니다. 이토록 급히 찾아왔다면 그만큼 중요한 용건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단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때, 홍천상이 나섰다.
임덕화가 눈살을 찌푸린 채 홍천상을 바라봤다.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는 홍천상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사건 조사와 관계된 일입니다. 이번 조사의 성공 여부에 따라 공자님뿐 아니라 제검문의 미래도 걸려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홍천상이 다시 한 번 이야기하자 임덕화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흠,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홍 부대주의 말대로 이들의 용건을 들어 봐야 할 듯합니다.”
마치 웃어른에게 양해를 구하듯 임덕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홍천상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임덕화는 현재 제검문의 이름을 대표하고 있는 이였다.
한데 이토록 함부로 고개를 숙이다니, 한 가문의 수장이 될 이의 자세는 절대 아니었다.
“아, 당연히 그리하시도록 해야지요. 그렇다면 굳이 숙소까지 들이실 것 없이 여기서 저들의 말을 들으시지요. 확실치도 않은 일로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오문이야 원래 경망스러운 자들이 모인 곳이니 괜한 호들갑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초진도의 말에 임덕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군요. 홍 부대주의 생각은 어떻소? 어차피 초 장주님이야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분이 아니오? 이 자리에서 저들의 보고를 듣는다 하여 문제가 될 것은 없지 않겠소?”
홍천상으로서는 내키지 않는 이야기였으나, 계속해서 임덕화의 의견을 걸고 넘어질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홍천상은 그 자리에서 하오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중요한 일인 듯싶은데, 말해 보시오.”
소진혁과 소은설은 어차피 잘됐다고 생각했다.
초진도가 보는 앞에서 모든 것을 까발린다면, 더욱 통쾌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밝혀지게 되면 놈의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흥! 좋소이다, 그럼 저희가 알아낸 사실을 말하겠소이다!”
소진혁은 차가운 눈으로 초진도를 노려봤다.
“이번 황보의원 화재사건의 원흉은 바로 초가장입니다!”
4장 신위를 드러내다 (1)
다음 날 아침 초가장은 발칵 뒤집어졌다.
밤새 자객이 들어 호위대의 대주 진화와, 부 대주 왕호가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장주를 지키던 비밀 호위 네 명 역시 자객에게 제압당했다는 것이다.
그 말은 곧 자객이 금원각 장주 집무실까지 왔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자객의 침입을 눈치챈 사람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자객이 마음만 먹었다면 초진도는 진화나 왕호처럼 목숨을 잃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초진도로서는 등골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네놈들은 뭐하는 놈들이냐! 어찌 이 많은 놈들 중에 단 한 놈도 자객의 침입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단 말이야! 그러고도 네놈들이 밥을 처먹을 자격이 있다고 보느냐!”
장원의 무사들을 금원각 앞에 모아 놓고 초진도가 언성을 높였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금원각이 뚫렸음에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곧 자객이 아무 때나 자신의 목숨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무사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으니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장주님, 하오문에서 무림맹 조사단을 만나겠다고 왔습니다!”
그때 초가장의 총관인 공탁이 허겁지겁 달려 들어왔다.
“그럼 안내해 주면 될 일이지 뭘 이리 호들갑이야?!”
짜증 어린 표정으로 초진도가 말했다.
어차피 하오문은 화재 사건 때문에 무림맹 조사단을 돕고 있었다. 그들이 찾아오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은 없는 것이다.
“하, 한데…….”
망설이던 공탁이 초진도의 귀에다 대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부, 분타주의 딸년도 함께 있습니다.”
초진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분명 그년은 혈귀곡에 들어갔다고 했는데……. 대체 어떻게…….’
진화와 수하들이 소은설이 혈귀곡으로 들어가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다고 했다.
한데, 어떻게 이곳에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설마…….’
초진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혈귀곡을 빠져나오다니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오늘 모습을 드러낸 것이란 말인가.
“잘못 본 것은 아니더냐?”
“분명합니다! 현재 분타주 대행을 맡고 있는 그년의 숙부와 함께 왔습니다!”
초진도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진화 놈이 거짓말을 한 것이 분명하군!’
계집을 놓쳤다는 사실을 추궁당할까 봐 혈귀곡에 들어갔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초진도가 알기 전에 계집을 잡아 처리하려고 했을 것이다.
‘죽일 놈!’
초진도의 눈에 살기가 일었다.
이미 죽어 버린 진화의 일이야 어찌 되었든 우선은 당장에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소은설이 나타났고, 무림맹 조사단을 만나려 한다는 것은 시체들에 대해 목격한 것을 증언하려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물론, 이미 시체들은 배를 이용해 호수 한가운데에 모두 가라앉힌 상태여서 부인하면 그만이었지만, 혹시라도 고지식한 홍천상이 사실을 확인하겠다며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게 되면 골치 아파질 가능성이 있었다.
게다가 어젯밤에 일어난 사건도 있어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총관 공탁도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하오문도들을 저지한 것이리라.
“일단 이리로 데리고 오라!”
아무래도 어젯밤 사건이 자꾸 걸렸다.
별 볼 일 없는 무공을 가진 하오문도들이 어제 사건에 관련이 있을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게다가 혹시라도 분타주 소진태가 이곳에 잡혀 오기 전에 문도들에게 정보를 흘렸다면, 시체를 목격한 것 외에 다른 증거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우선은 소은설과 하오문도들이 무림맹 조사단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아야 했다.
그래야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명을 받은 공탁이 빠르게 금원각을 빠져나갔다.
* * *
잠시 후 공탁이 소은설 일행을 데리고 왔다.
그들 중에는 진운룡도 자리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일행을 훑어보던 초진도의 시선이 소은설에게서 멈췄다.
초진도의 시선을 받는 순간 소은설은 마치 온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더러운 돼지 놈!’
백 명이 넘는 이들의 심장을 뽑아내고 아버지를 납치한 장본인이 바로 초진도였다.
소은설은 끌어 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며 초진도를 노려봤다.
“그래, 무슨 일로 조사단을 만나려는 것인가?”
그때 초진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주께서 왜 그것을 묻는 것이오? 우리가 공식적으로 조사대의 일을 돕고 있다는 것은 장주께서도 잘 알고 있을 터. 조사대와 하는 일에 대해서 장주께 보고해야 할 의무는 없소이다.”
날이 선 목소리로 소진혁이 말했다.
그 역시 이미 초진도의 악행에 대해 알고 있는 상태였기에 결코 좋은 말이 나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조사단 분들은 오늘 다른 바쁜 업무가 있어 자네들을 만날 수 없으니, 용건이 있다면 나에게 말하도록 하게. 내가 꼭 전해 주도록 하지.”
초진도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워낙 중요한 사안이라 임 공자나 홍 부대주를 만나 직접 전해 드려야 하오!”
소진혁은 물러서지 않았다.
어차피 단단히 마음먹고 온 상태였다.
반드시 조사단에게 사실을 알려야 했다.
“그렇다면 안타깝지만 오늘은 안 되겠군. 조사단 분들은 지금 장원에 없네.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게나.”
초진도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이대로 소은설 일행을 돌려보낸 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알아내려는 속셈이었다.
만일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분타주였던 소진태처럼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그럼 조사단 숙소에서 올 때까지 기다리겠소!”
“어허. 주인도 없는 숙소에 다른 사람을 들여보낼 수는 없지. 게다가 자네들 출신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지 않은가.”
소진혁의 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하오문은 본디 도둑과 소매치기, 기녀, 점소이 등 가장 밑바닥 인생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그로 인해 항상 강호 무인들에게 멸시를 받았다.
초진도가 그것을 끄집어낸 것이다.
“흥! 나는 당신 말대로 진짜 조사단이 숙소에 없는지 반드시 확인해야겠소! 만일 그들이 없다면 초 장주께 백 배 사죄드리겠소!”
문도들을 시켜 새벽부터 초가장을 감시하도록 명을 내린 상태였다.
그들로부터 조사단이 초가장을 빠져나갔다는 보고는 없었다. 그렇다면 숙소에 있는 것이 거의 확실했다.
소진혁이 물러서지 않자 초진도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호오……. 하오문이 무림맹 조사단을 돕는다 하여 이젠 이 초진도 마저 우습게 보는 것인가? 이 제녕 땅에서 나 초진도를 무시하고도 그대들이 맘 편하게 살 수 있다 보는가?”
초진도가 노골적으로 위협을 했다.
“흥!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요. 우리도 아버지처럼 입을 막겠다는 것인가요?”
소은설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초진도의 늘어진 두 볼이 꿈틀했다.
“천한 것들이 오냐 오냐 해 줬더니 제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구나! 여봐라 뭣들 하느냐! 저놈들을 당장 장원에서 쫓아내거라!”
초진도의 명에 따라 금원각 앞에 모여 있던 무사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소은설 일행을 내치겠다는 뜻이었다.
소진혁과 소은설은 이를 악물고 초가장의 무사들을 노려봤고, 용태는 덩치에 맞지 않게 얼른 진운룡의 뒤로 숨었다.
“예가 감히 어디라고 행패야 행패가!”
독이 오른 초가장의 무사들이 막 일행에게 달려들려는 순간이었다.
“무슨 일인데 아침부터 이리 시끄러운 것입니까?”
소란을 듣고 임덕화와 홍천상이 금원각에 모습을 드러냈다. 제검대 무사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초진도가 공탁을 노려봤다.
조사단이 이곳에 오지 못하도록 미리 손을 쓰지 않았음을 탓하는 것이다.
“분타주 대행 아니시오? 어인 일이십니까?”
홍천상이 소진혁을 발견하고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임 공자, 홍 부대주 마침 잘 오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가 있어서 찾아뵈려던 참입니다! 한데 초 장주가 제멋대로 두 분을 뵙지 못하도록 막는군요. 어찌 된 것이오? 초 장주 두 분께서 이렇듯 장원에 계심에도 왜 거짓말을 한 것이오? 혹시 일부러 조사를 방해하려는 심사는 아니오?”
두 사람이 등장하자 이때다 싶었던 소진혁이 목소리를 높였다.
초진도의 얼굴에 잠깐 동안 살기가 일었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초 장주! 대체 이게 무슨 말이오? 우리가 없다고 거짓말을 해서 만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것이 사실이오?”
홍천상이 굳은 얼굴로 묻자 초진도가 재빨리 표정을 부드럽게 바꿨다.
그는 속으로 앞으로 벌어질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상 더는 하오문도들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제 침착하게 대응해 그들의 말을 거짓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우선 하오문의 신뢰를 떨어뜨려야 했다.
“하하하, 오해하지 마시오. 홍 부대주. 내가 어찌 무림맹의 행사를 막겠소? 단지 나는 이자들이 아침 일찍부터 소란을 떠는 바람에 두 분의 청정을 방해하지 않을까 염려해서 대신 전해 주겠다 제안한 것뿐이오. 한데 저들이 괜히 흥분해서 숙소로 난입하겠다 하여 그것을 막다가 이런 소란이 일어난 것이라오. 본래가 출신이 미천한 자들이다 보니 행동이 무도하기 그지없습니다.”
초진도가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는 출신을 언급하며 하오문을 깎아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소은설과 소진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들의 출신이 미천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하하하, 그렇군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기야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무작정 쳐들어온 저들이 예를 모르는 것이지요.”
임덕화가 초진도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렇지 않아도 임덕화는 하오문과 함께 일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차였다. 게다가 그동안 초가장으로부터 물심양면으로 아낌없는 지원을 받은지라 아무래도 초진도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공자님 우리가 청해서 도움을 주고 있는 이들입니다. 이토록 급히 찾아왔다면 그만큼 중요한 용건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단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때, 홍천상이 나섰다.
임덕화가 눈살을 찌푸린 채 홍천상을 바라봤다.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는 홍천상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말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사건 조사와 관계된 일입니다. 이번 조사의 성공 여부에 따라 공자님뿐 아니라 제검문의 미래도 걸려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홍천상이 다시 한 번 이야기하자 임덕화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흠,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홍 부대주의 말대로 이들의 용건을 들어 봐야 할 듯합니다.”
마치 웃어른에게 양해를 구하듯 임덕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홍천상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임덕화는 현재 제검문의 이름을 대표하고 있는 이였다.
한데 이토록 함부로 고개를 숙이다니, 한 가문의 수장이 될 이의 자세는 절대 아니었다.
“아, 당연히 그리하시도록 해야지요. 그렇다면 굳이 숙소까지 들이실 것 없이 여기서 저들의 말을 들으시지요. 확실치도 않은 일로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오문이야 원래 경망스러운 자들이 모인 곳이니 괜한 호들갑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초진도의 말에 임덕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군요. 홍 부대주의 생각은 어떻소? 어차피 초 장주님이야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분이 아니오? 이 자리에서 저들의 보고를 듣는다 하여 문제가 될 것은 없지 않겠소?”
홍천상으로서는 내키지 않는 이야기였으나, 계속해서 임덕화의 의견을 걸고 넘어질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홍천상은 그 자리에서 하오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중요한 일인 듯싶은데, 말해 보시오.”
소진혁과 소은설은 어차피 잘됐다고 생각했다.
초진도가 보는 앞에서 모든 것을 까발린다면, 더욱 통쾌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밝혀지게 되면 놈의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흥! 좋소이다, 그럼 저희가 알아낸 사실을 말하겠소이다!”
소진혁은 차가운 눈으로 초진도를 노려봤다.
“이번 황보의원 화재사건의 원흉은 바로 초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