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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룡전 1권 (24화)
7장 적산 (1)
황보세가로 돌아가기 위해 천미각을 나선 일행이 막 시내로 들어섰을 때였다.
갑자기 대로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며 사람들이 좌우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관복을 입은 다섯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대로 한가운데를 걸어오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알아서 길을 비켜났다.
“동창…….”
황보영천이 그들이 입고 있는 복장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림인들이 가장 꺼리는 관인들, 그중에서도 혐오에 가까울 정도로 싫어하는 자들이 바로 동창이었다.
“저자들이 무슨 일로 이곳까지 행차한 거지?”
황보영호가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그들이 가는 곳에는 항상 피와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황제는 정무를 내팽개친 채 간신들이 나라를 장악하고 있는 요즘은 그 위세가 더욱 살벌해서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역적으로 몰아 고문을 가한 후 추살했다.
“흥! 똥이 무서워서 피하겠소? 더러워서 피하지!”
제갈무진이 못 볼 것을 봤다는 얼굴로 콧방귀를 꼈다.
하지만 일행 중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은 의외로 적산이었다.
“이봐요? 싸움귀신 표정이 심상치 않은데요?”
소은설이 불안한 얼굴로 진운룡에게 말했다.
적산은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듯한 얼굴로 동창의 위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철천지원수라도 만난 듯 그의 두 눈과 온몸에서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적산의 살기를 느꼈음인지 동창 위사들의 시선이 일행을 향했다.
“개새끼들!”
순간,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적산이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이, 이런!”
“저런 멍청한!”
당황한 후기지수들이 욕지기를 쏟아 내며 적산을 막으려 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어느새 적산은 검을 뽑아 들고 동창 위사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감히! 나라의 녹을 먹는 관원을 공격하다니 역도의 무리가 틀림없구나! 뭣들 하느냐! 당장 놈을 잡아라!”
당두로 보이는 자가 명을 내리자 네 명의 위사가 적산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적산은 비호처럼 몸을 날려 가장 왼쪽에 위치한 위사의 머리를 내려쳤다.
쩌어엉!
위사가 급히 검을 뽑아 막아 내자 적산은 아직 허공에 몸을 띄운 채로 위사의 가슴을 걷어찼다.
퍼퍽!
“크윽!”
갑작스런 발길질을 미처 피해 내지 못한 위사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땅을 한 번 박찬 적산의 신형이 빠른 속도로 위사를 따라붙었다.
순간, 좌우 앞쪽에서 두 명의 위사가 적산의 옆구리를 향해 검을 찔러 들어왔다.
만일 적산이 그대로 돌진한다면 스스로 그들의 검을 향해 뛰어드는 꼴이었다.
하지만 적산은 신형을 멈추지 않았다.
스악! 푸욱!
두 위사의 검이 적산의 옆구리를 깊숙이 할퀴고 지나가며 피가 튀었다.
“엇!”
“이런!”
동시에 두 위사의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적산이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어 최소한의 피해로 두 사람을 지나쳐 간 것이다.
적산의 검은 어느새 뒤로 물러선 위사의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푸욱!
“크악!”
급히 몸을 낮춘 덕에 간신이 심장이 꿰뚫리는 것을 면한 위사가 비명을 토해 내며 쓰러졌다.
“이놈!”
순간 적산은 등에서 화끈한 통증을 느꼈다.
어느새 네 번째 위사의 검이 그의 등을 대각선으로 길게 베고 지나간 것이다.
“크윽!”
신음을 흘린 적산이 급히 몸을 낮추어 바닥을 구르자, 그 자리로 두 개의 검날이 스치고 지나갔다.
파팍!
“젠장!”
몇 바퀴를 굴러 몸을 일으킨 적산이 욕지기를 토해 냈다.
간발의 차로 위사 한 놈을 죽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이놈! 감히 관인을 상하게 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게로구나!”
세 명의 위사가 눈을 부라리며 적산을 노려봤다.
황보영천을 비롯해 일행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적산을 지켜봤다.
자칫 끼어들었다가 동창과 부딪히게 되면 그들도 역도로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그리 두렵지는 않았으나, 잘 알지도 못하는 적산을 위해 귀찮음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그물과 비도를 사용해라!”
당두가 명을 내리자 세 위사가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그물을 집어 던졌다.
휘리릭!
세 개의 그물이 넓게 펼쳐지며 적산의 신형을 덮쳤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그물을 보며 적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피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었다.
공력이 뛰어난 이였다면 검으로 잘랐겠으나, 적산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촤촤촹!
출렁!
검으로 쳐 내며 버티려 했으나, 결국 역부족이었다.
적산은 순식간에 그물에 잡히고 말았다.
쉬쉬쉭!
순간, 여섯 자루의 비도가 적산을 향해 날아왔다.
적산이 최대한 발버둥 쳐 봤으나 그물 때문에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푸욱! 푹!
결국, 그중 세 자루의 비도가 몸에 그대로 적중했다.
“쿨럭!”
적산이 입에서 피를 토해 낸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른쪽 가슴과 왼쪽 어깨, 그리고 복부에 비도가 박혀 있었다.
“이봐요! 보고만 있을 거예요?”
소은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진운룡에게 말했다.
이대로 동창에게 잡히면 죽게 될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얄미운 적산이었지만, 목숨을 잃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운룡은 묵묵부답이었다.
하기야 그녀가 알기로 진운룡은 이런 일에 신경을 쓸 만큼 다정하거나 남을 챙길 줄 아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소은설이 안타까운 얼굴로 적산을 바라봤다.
순간, 진운룡의 눈동자에 작은 빛줄기가 일었다 사라진 것을 소은설은 보지 못했다.
“이놈! 잡았다!”
“우선 팔다리의 힘줄을 잘라 움직이지 못하도록 해라.”
당두가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띠운 채 명했다.
위사들 역시 조소를 머금은 채 검을 들고 적산을 향해 다가갔다.
“크으으으으!”
적산이 핏발이 선 눈으로 발버둥 쳤다.
마치 우리에 갇힌 한 마리 야수를 보는 것만 같았다.
“어디 그 눈빛이 언제까지 가나 두고 보자!”
위사들이 살기 어린 얼굴로 검을 들어 올렸다.
바로 그때였다.
우우우우우웅!
갑자기 강력한 기파가 위사들을 덮쳤다.
“어엇!”
“헉!”
순간, 위사들은 갑자기 덮쳐 온 어마어마한 압력에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동시에 그물에 갇힌 적산이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 한쪽으로 주르륵 끌려갔다.
턱!
그 움직임은 적산이 진운룡 앞에 다다른 순간 멈추었다.
진운룡이 오른손으로 그물에 걸린 적산의 등덜미를 낚아챘다.
우우우웅!
파앗! 촤촤촤악!
진운룡의 손으로 부터 기의 파동이 퍼지는 순간 적산을 묶고 있던 세 개의 그물이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다.
순식간에 주변은 정적이 흘렀다.
동창의 위사들도 황보영천을 비롯한 후기지수들도, 길가에 몸을 숨기고 있던 백성들도, 심지어는 그물에 묶인 적산까지도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동창에 대든 것 자체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진운룡의 신기막측한 무공 실력이 그들의 말문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이, 이놈!”
진운룡의 신위에 놀란 동창의 위사들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후기지수들 역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진운룡과 그의 손에 붙잡힌 적산을 바라봤다.
사람을 상대로 허공섭물을 발휘하다니, 도무지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게다가 기를 주입하는 것만으로 적산이 기를 써도 끊지 못하던 그물들을 갈가리 찢어 버렸다.
그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진운룡의 눈치를 살폈다.
이런 고수에게 들이댔다는 것을 생각하니 순간 심장이 쫄깃해졌다.
특히 진운룡에 대한 모용주란의 눈빛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진한 호감과 경외심을 담고 있었다.
유일하게 소은설만이 이미 겪어 본 터라 비교적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진운룡이 적산을 도와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터라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
“감히! 네놈이 지금 역도를 옹호하는 것이냐?”
그나마 무공이 높은 당두가 정신을 차리고 진운룡에게 호통을 쳤다.
“크으으으! 놔! 내 저놈들을 가만두지…….”
퍽!
당두의 호통에 발광을 하는 적산을 한 방에 기절시킨 진운룡이 담담한 얼굴로 동창의 위사들을 바라봤다.
“내가 기르는 개인데, 아직 길을 덜 들여서 인간이 아닌 자들 중에도 물어서는 안 되는 이가 있다는 것을 잘 모르오. 내 앞으로 좀 더 교육에 신경 쓰도록 하겠소. 어쨌든 그쪽이 물린 것은 미안하게 됐지만, 내 개도 많이 다친 것 같으니, 이쯤에서 끝내도록 합시다.”
너무도 담담하게 말하는 진운룡의 모습에 당두는 잠시 동안 얼이 빠진 모습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후기지수들 역시 황당한 얼굴로 진운룡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산을 개라고 한 것도 그렇지만, 빌어도 모자랄 판에 동창 위사가 상처 입은 사건을 개가 다친 것과 퉁 치자는 진운룡의 이야기는 너무도 엽기적인 것이었다.
“이, 이자가 감히! 그대가 동창의 당두와 번역들을 건드리고도 이대로 무사할 성 싶은가! 뭣들 하느냐 당장 이놈을 포박하라!”
정신을 차린 당두가 얼굴이 벌게진 채로 수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후회할 텐데?”
진운룡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순간, 당두는 온몸에 서리가 내린 듯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으으으…….’
그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공포로 하얗게 물들었다.
‘어디서 이런 자가!’
진운룡은 이제껏 그가 겪어 보지 못했던 극강의 고수였다.
본디 무림인들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 동창이었으나, 진운룡은 그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다른 무인들은 동창을 피하고 꺼려했으나 진운룡에게서는 전혀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라면 지금 당장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과 수하들을 단숨에 죽여 버릴 것만 같았다.
“위, 위 당두님!”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당두가 이를 다닥거리며 그 자리에 석상처럼 굳어 버리자 수하들도 감히 움직이지를 못하고 진운룡의 눈치를 봤다.
“진 공자! 잠시만!”
그때, 황보영천이 다급히 앞으로 나섰다.
이대로 진운룡이 동창 당두와 번역들을 죽여 버리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무림과 관이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하나, 동창의 위사들을 죽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물론, 특별한 연고가 없는 진운룡이야 크게 개의치 않을 수도 있었으나, 황보세가 같은 대문파의 입장에선 관과의 관계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황보세가의 소가주인 황보영천이라 합니다.”
황보세가라는 말에 당두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제남에서는 황보세가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황보영천 역시 이를 노리고 자신이 황보세가의 소가주임을 밝힌 것이기도 했다.
“동창의 당두이신 것 같은데, 이거 정말 죄송하게 되었군요. 사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자는 산에서 무공만 익히다가 출도한 지 얼마 되지 않는지라 세상물정에 대해 전혀 모르는 자입니다. 동창이니 관부니 하는 것도 당연히 모르지요. 게다가 싸움을 좋아해서 무기를 든 사람만 보면 무조건 달려드는 바람에 저희도 골치가 이만저만 아픈 게 아닙니다.”
황보영천이 적산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어려운 부탁인 줄은 압니다만, 이번 사건을 조용히 눈감아 주신다면 반드시 황보세가에서 섭섭하지 않도록 보상을 해 드릴 것이니, 아량을 베푸시는 셈 치고 한 번만 용서를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런 무지렁이에게 동창의 당두께서 힘을 쓰시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 아닙니까?”
섭섭하지 않은 보상이라는 말에 잠시 당두의 눈이 반짝했다.
“흥! 지금 관원에게 뇌물을 바치겠다는 것인가?”
당두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조금 전보다는 태도가 다소 누그러져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동창이 위에서 아래까지 썩을 대로 썩었다는 사실은 백성들이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7장 적산 (1)
황보세가로 돌아가기 위해 천미각을 나선 일행이 막 시내로 들어섰을 때였다.
갑자기 대로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며 사람들이 좌우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관복을 입은 다섯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대로 한가운데를 걸어오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알아서 길을 비켜났다.
“동창…….”
황보영천이 그들이 입고 있는 복장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림인들이 가장 꺼리는 관인들, 그중에서도 혐오에 가까울 정도로 싫어하는 자들이 바로 동창이었다.
“저자들이 무슨 일로 이곳까지 행차한 거지?”
황보영호가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그들이 가는 곳에는 항상 피와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황제는 정무를 내팽개친 채 간신들이 나라를 장악하고 있는 요즘은 그 위세가 더욱 살벌해서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역적으로 몰아 고문을 가한 후 추살했다.
“흥! 똥이 무서워서 피하겠소? 더러워서 피하지!”
제갈무진이 못 볼 것을 봤다는 얼굴로 콧방귀를 꼈다.
하지만 일행 중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은 의외로 적산이었다.
“이봐요? 싸움귀신 표정이 심상치 않은데요?”
소은설이 불안한 얼굴로 진운룡에게 말했다.
적산은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듯한 얼굴로 동창의 위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철천지원수라도 만난 듯 그의 두 눈과 온몸에서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적산의 살기를 느꼈음인지 동창 위사들의 시선이 일행을 향했다.
“개새끼들!”
순간,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적산이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이, 이런!”
“저런 멍청한!”
당황한 후기지수들이 욕지기를 쏟아 내며 적산을 막으려 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어느새 적산은 검을 뽑아 들고 동창 위사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감히! 나라의 녹을 먹는 관원을 공격하다니 역도의 무리가 틀림없구나! 뭣들 하느냐! 당장 놈을 잡아라!”
당두로 보이는 자가 명을 내리자 네 명의 위사가 적산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적산은 비호처럼 몸을 날려 가장 왼쪽에 위치한 위사의 머리를 내려쳤다.
쩌어엉!
위사가 급히 검을 뽑아 막아 내자 적산은 아직 허공에 몸을 띄운 채로 위사의 가슴을 걷어찼다.
퍼퍽!
“크윽!”
갑작스런 발길질을 미처 피해 내지 못한 위사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땅을 한 번 박찬 적산의 신형이 빠른 속도로 위사를 따라붙었다.
순간, 좌우 앞쪽에서 두 명의 위사가 적산의 옆구리를 향해 검을 찔러 들어왔다.
만일 적산이 그대로 돌진한다면 스스로 그들의 검을 향해 뛰어드는 꼴이었다.
하지만 적산은 신형을 멈추지 않았다.
스악! 푸욱!
두 위사의 검이 적산의 옆구리를 깊숙이 할퀴고 지나가며 피가 튀었다.
“엇!”
“이런!”
동시에 두 위사의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적산이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어 최소한의 피해로 두 사람을 지나쳐 간 것이다.
적산의 검은 어느새 뒤로 물러선 위사의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푸욱!
“크악!”
급히 몸을 낮춘 덕에 간신이 심장이 꿰뚫리는 것을 면한 위사가 비명을 토해 내며 쓰러졌다.
“이놈!”
순간 적산은 등에서 화끈한 통증을 느꼈다.
어느새 네 번째 위사의 검이 그의 등을 대각선으로 길게 베고 지나간 것이다.
“크윽!”
신음을 흘린 적산이 급히 몸을 낮추어 바닥을 구르자, 그 자리로 두 개의 검날이 스치고 지나갔다.
파팍!
“젠장!”
몇 바퀴를 굴러 몸을 일으킨 적산이 욕지기를 토해 냈다.
간발의 차로 위사 한 놈을 죽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이놈! 감히 관인을 상하게 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게로구나!”
세 명의 위사가 눈을 부라리며 적산을 노려봤다.
황보영천을 비롯해 일행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적산을 지켜봤다.
자칫 끼어들었다가 동창과 부딪히게 되면 그들도 역도로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그리 두렵지는 않았으나, 잘 알지도 못하는 적산을 위해 귀찮음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그물과 비도를 사용해라!”
당두가 명을 내리자 세 위사가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그물을 집어 던졌다.
휘리릭!
세 개의 그물이 넓게 펼쳐지며 적산의 신형을 덮쳤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그물을 보며 적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피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었다.
공력이 뛰어난 이였다면 검으로 잘랐겠으나, 적산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촤촤촹!
출렁!
검으로 쳐 내며 버티려 했으나, 결국 역부족이었다.
적산은 순식간에 그물에 잡히고 말았다.
쉬쉬쉭!
순간, 여섯 자루의 비도가 적산을 향해 날아왔다.
적산이 최대한 발버둥 쳐 봤으나 그물 때문에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푸욱! 푹!
결국, 그중 세 자루의 비도가 몸에 그대로 적중했다.
“쿨럭!”
적산이 입에서 피를 토해 낸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른쪽 가슴과 왼쪽 어깨, 그리고 복부에 비도가 박혀 있었다.
“이봐요! 보고만 있을 거예요?”
소은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진운룡에게 말했다.
이대로 동창에게 잡히면 죽게 될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얄미운 적산이었지만, 목숨을 잃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운룡은 묵묵부답이었다.
하기야 그녀가 알기로 진운룡은 이런 일에 신경을 쓸 만큼 다정하거나 남을 챙길 줄 아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소은설이 안타까운 얼굴로 적산을 바라봤다.
순간, 진운룡의 눈동자에 작은 빛줄기가 일었다 사라진 것을 소은설은 보지 못했다.
“이놈! 잡았다!”
“우선 팔다리의 힘줄을 잘라 움직이지 못하도록 해라.”
당두가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띠운 채 명했다.
위사들 역시 조소를 머금은 채 검을 들고 적산을 향해 다가갔다.
“크으으으으!”
적산이 핏발이 선 눈으로 발버둥 쳤다.
마치 우리에 갇힌 한 마리 야수를 보는 것만 같았다.
“어디 그 눈빛이 언제까지 가나 두고 보자!”
위사들이 살기 어린 얼굴로 검을 들어 올렸다.
바로 그때였다.
우우우우우웅!
갑자기 강력한 기파가 위사들을 덮쳤다.
“어엇!”
“헉!”
순간, 위사들은 갑자기 덮쳐 온 어마어마한 압력에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동시에 그물에 갇힌 적산이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 한쪽으로 주르륵 끌려갔다.
턱!
그 움직임은 적산이 진운룡 앞에 다다른 순간 멈추었다.
진운룡이 오른손으로 그물에 걸린 적산의 등덜미를 낚아챘다.
우우우웅!
파앗! 촤촤촤악!
진운룡의 손으로 부터 기의 파동이 퍼지는 순간 적산을 묶고 있던 세 개의 그물이 산산조각이 나 흩어졌다.
순식간에 주변은 정적이 흘렀다.
동창의 위사들도 황보영천을 비롯한 후기지수들도, 길가에 몸을 숨기고 있던 백성들도, 심지어는 그물에 묶인 적산까지도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동창에 대든 것 자체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이제껏 듣도 보도 못한 진운룡의 신기막측한 무공 실력이 그들의 말문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이, 이놈!”
진운룡의 신위에 놀란 동창의 위사들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후기지수들 역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진운룡과 그의 손에 붙잡힌 적산을 바라봤다.
사람을 상대로 허공섭물을 발휘하다니, 도무지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게다가 기를 주입하는 것만으로 적산이 기를 써도 끊지 못하던 그물들을 갈가리 찢어 버렸다.
그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진운룡의 눈치를 살폈다.
이런 고수에게 들이댔다는 것을 생각하니 순간 심장이 쫄깃해졌다.
특히 진운룡에 대한 모용주란의 눈빛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진한 호감과 경외심을 담고 있었다.
유일하게 소은설만이 이미 겪어 본 터라 비교적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진운룡이 적산을 도와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터라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
“감히! 네놈이 지금 역도를 옹호하는 것이냐?”
그나마 무공이 높은 당두가 정신을 차리고 진운룡에게 호통을 쳤다.
“크으으으! 놔! 내 저놈들을 가만두지…….”
퍽!
당두의 호통에 발광을 하는 적산을 한 방에 기절시킨 진운룡이 담담한 얼굴로 동창의 위사들을 바라봤다.
“내가 기르는 개인데, 아직 길을 덜 들여서 인간이 아닌 자들 중에도 물어서는 안 되는 이가 있다는 것을 잘 모르오. 내 앞으로 좀 더 교육에 신경 쓰도록 하겠소. 어쨌든 그쪽이 물린 것은 미안하게 됐지만, 내 개도 많이 다친 것 같으니, 이쯤에서 끝내도록 합시다.”
너무도 담담하게 말하는 진운룡의 모습에 당두는 잠시 동안 얼이 빠진 모습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후기지수들 역시 황당한 얼굴로 진운룡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산을 개라고 한 것도 그렇지만, 빌어도 모자랄 판에 동창 위사가 상처 입은 사건을 개가 다친 것과 퉁 치자는 진운룡의 이야기는 너무도 엽기적인 것이었다.
“이, 이자가 감히! 그대가 동창의 당두와 번역들을 건드리고도 이대로 무사할 성 싶은가! 뭣들 하느냐 당장 이놈을 포박하라!”
정신을 차린 당두가 얼굴이 벌게진 채로 수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후회할 텐데?”
진운룡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순간, 당두는 온몸에 서리가 내린 듯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으으으…….’
그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공포로 하얗게 물들었다.
‘어디서 이런 자가!’
진운룡은 이제껏 그가 겪어 보지 못했던 극강의 고수였다.
본디 무림인들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 동창이었으나, 진운룡은 그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다른 무인들은 동창을 피하고 꺼려했으나 진운룡에게서는 전혀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라면 지금 당장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과 수하들을 단숨에 죽여 버릴 것만 같았다.
“위, 위 당두님!”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당두가 이를 다닥거리며 그 자리에 석상처럼 굳어 버리자 수하들도 감히 움직이지를 못하고 진운룡의 눈치를 봤다.
“진 공자! 잠시만!”
그때, 황보영천이 다급히 앞으로 나섰다.
이대로 진운룡이 동창 당두와 번역들을 죽여 버리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무림과 관이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하나, 동창의 위사들을 죽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물론, 특별한 연고가 없는 진운룡이야 크게 개의치 않을 수도 있었으나, 황보세가 같은 대문파의 입장에선 관과의 관계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황보세가의 소가주인 황보영천이라 합니다.”
황보세가라는 말에 당두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제남에서는 황보세가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황보영천 역시 이를 노리고 자신이 황보세가의 소가주임을 밝힌 것이기도 했다.
“동창의 당두이신 것 같은데, 이거 정말 죄송하게 되었군요. 사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자는 산에서 무공만 익히다가 출도한 지 얼마 되지 않는지라 세상물정에 대해 전혀 모르는 자입니다. 동창이니 관부니 하는 것도 당연히 모르지요. 게다가 싸움을 좋아해서 무기를 든 사람만 보면 무조건 달려드는 바람에 저희도 골치가 이만저만 아픈 게 아닙니다.”
황보영천이 적산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어려운 부탁인 줄은 압니다만, 이번 사건을 조용히 눈감아 주신다면 반드시 황보세가에서 섭섭하지 않도록 보상을 해 드릴 것이니, 아량을 베푸시는 셈 치고 한 번만 용서를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런 무지렁이에게 동창의 당두께서 힘을 쓰시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 아닙니까?”
섭섭하지 않은 보상이라는 말에 잠시 당두의 눈이 반짝했다.
“흥! 지금 관원에게 뇌물을 바치겠다는 것인가?”
당두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조금 전보다는 태도가 다소 누그러져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동창이 위에서 아래까지 썩을 대로 썩었다는 사실은 백성들이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