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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실제 인물·단체·사건·기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1화
모두가 잠이 든 고즈넉한 새벽.
불 하나 켜져 있지 않은 자신의 어두운 큰 자택을 올려다보며 우준은 여전히 놀란 얼굴을 짓고 있었다.
“아, 나 진짜 돌아 버리겠네?”
우준은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머리를 손으로 마구 헝클어뜨렸다. 잠옷 차림에 맨발 그리고 하얗게 질린 얼굴.
이사를 오고 나서부터 한 달 동안 새벽마다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우준은 두려움이 스며든 눈으로 자택의 동태를 살폈다.
“아이씨…….”
2층 창문 쪽에서 움직임이 포착되자 그는 온몸에 스며드는 소름에 몸을 부르르 떨며 두 눈을 찔끔 감았다.
우준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이렇게 반쯤 혼이 나가 집에서부터 도망쳐 나오는 이유는 바로 귀신 때문이었다.
서른 살이 넘은 남자가 고작, 귀신 때문에 잠도 이루지 못하고 맨발로 도망 나온다고 한껏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혼자 있는 집 안에서 느껴지는 그것이 무서웠다.
평생 미신이나 신적인 존재 같은 것을 불신해왔다.
하지만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부터 그런 생각들이 바뀌었다.
비서인 연규를 시켜 유명한 무당을 불러 굿도 해 보았지만, 귀신은 마치 두려움에 떠는 그를 비웃 듯 틈만 나면 우준의 앞에 나타났다.
굿을 했던 무당이 했던 말이 우준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착한 애야, 착한 애. 에잇, 쯧. 쫓아낼 수가 없구만. 시간만 버렸어.”
그러니까 웃는 낯짝에 침 못 뱉듯, 현재 우준의 집에서 살고 있는 귀신은 스스로 나가기만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이다.
“거기다가 아주 젊고 잘생긴 선량한 소년 귀신이야.”
새벽마다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해 심장을 졸아 버리게 만들어 놓고도 태평하게 저렇게 집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귀신은 절대 ‘선량’하다 말할 수 없다.
세상에 선량한 귀신이 어디 있어?
우준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혹시 몰라 잠그지 않았던 차 문을 열고 안에 있는 업무용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직속 비서인 연규의 번호를 눌렀다.
귀신은 언제 보아도 적응이 되지 않아 밤만 되면 팔다리가 후들거려서 운전도 제대로 하지 못할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서 비서.”
-이놈의 잡귀를 내가 직접 잡아 버리든지 해야지, 원.
아주 낮게 중얼거리는 바람에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 뉘앙스가 썩 좋지 않다고 느낀 우준은 제 귀를 의심하며 미간을 구겼다.
“뭐라고?”
-지금 바로 댁으로 가겠습니다, 대표님.
우준은 차에 올라타 연규를 기다렸다.
이렇게 매일 밤, 귀신으로 하여금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하면서도 이 집을 팔 수 없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이 집은 보면 볼수록 예쁘고 정이 가서 좋아. 언제쯤이면 엄마도 우리 우준이랑 이런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지금은 병실에 누워 있는 엄마가 유난히도 좋아하고 살고 싶어 했던 집. 바로 그 집이었다.
몇 번이고 급매로 나왔지만 타이밍을 놓쳐 이제야 겨우 얻을 수 있었다.
서울의 노른자라고 할 수 있는 동네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고 집 외부와 내부가 모두 고풍스러움을 과시하고 있어 돈 좀 있다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탐내었다.
1년에도 몇 차례나 나오는 매물 때문에 이런 집을 왜 내놓는지 의아해 했는데,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집엔 귀신이 산다!
아니, 우리 집에 귀신이 산다!
하지만 우준은 이 집을 팔 생각이 전혀 없다. 귀신이 아니라 귀신 할아버지가 나온다고 해도 말이다.
자신이 이곳에 있으면 이 집에서 살고 싶던 엄마가 혼수상태에서 하루라도 빨리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기분 탓이겠지만 집 안 사진을 찍어 보여 주니, 눈도 못 뜨는 엄마의 얼굴 혈색이 좋아진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우준은 더 포기할 수 없었다.
얼마 뒤, 연규가 도착했고 그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조수석에 올라탄 우준이 조용한 집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오늘 따라 병실에 혼자 있을 엄마의 생각이 유난히도 많이 나 겨우 용기를 내보았다.
흐릿하지만 창문에 앞에 어떤 형체가 서서는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거 봐!”
우준이 흥분한 목소리로 연규의 팔을 잡고 창문 쪽을 손짓했다. 그는 굉장히 성가시다는 얼굴로 우준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뭘 보라는 거예요?”
“저기, 저거 안 보여?”
흐릿한 형체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는데,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연규 때문에 우준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무술인의 말마따나, 귀신의 형태는 자신이 여태 생각해 왔던 어마 무시한 외모를 가지고 있진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왔다.
“지금 제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거라곤 대표님의 바짝 깎으신 손톱뿐이에요. 그러니 좀 그만하세요.”
일어나자마자 달려온 건지, 눈곱이 붙은 눈으로 작작 좀 하라고 듯이 쏘아붙이고 있었다.
우준은 귀신을 보고 놀라서 뛰쳐나온 겁쟁이 같은 모습이 아닌 금세 차가운 얼굴로 돌아와 정색을 하며 연규를 바라보았다.
“아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를 하시니까…….”
자신을 차갑게 노려보는 상사의 눈빛에 연규는 귀신보다 더 무섭다고 생각하며 억울하다는 듯이 말을 흐렸다.
우준도 매일 새벽마다 귀신 타령을 하며 자신을 데리러 오게 하는 부분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함께 일한 지 벌써 5년이었다. 매일 밤 귀신에게 시달리는 자신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투덜거리는 그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부터는 택시 불러서 혼자 갈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게 쉽지 않다. 알 수 없는 형체를 보고 놀라면 제일 가깝게 느끼는 이가 떠올랐다.
“…….”
예의상이라도 ‘아닙니다, 대표님. 저를 부르세요’라는 말이 나와야 하는데, 연규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던 우준이 그에게로 못마땅한 시선을 던졌다.
연규는 매우 난감한 얼굴이었지만 끝까지 자신을 부르라는 말은 하지 않고 차를 출발시켰다.
이렇게 귀신에게 쫓기는 날이면 늘 가던 서울 시내의 호텔로 차를 몰며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갑자기 입술을 떼어 냈다.
“혹시 말입니다. 대표님.”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났다는 듯이 연규의 목소리는 살짝 들떠 있었다.
피로가 겹겹으로 쌓인 우준은 그를 쳐다도 보지 않고 의자에 몸을 편안하게 기대며 눈을 감았다.
“응.”
아마 시답지 않은 말이 흘러나올 것이라 예상을 했기 때문에 반응도 미적지근했다.
“그 귀신이 대표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계속 나타나는 건 아닐까요?”
“귀신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가 있겠어, 살다가 인연이 닿았던 적도 없을 텐데.”
“혹시 모르는 일이죠. 대표님과 인연이 닿았던 사람이 죽었을지도.”
설마, 하는 마음에 눈을 번쩍 든 우준은 곧 그 생각을 지웠다.
“그 집, 계속 귀신이 나와서 경매로 나왔던 집이야. 그 귀신은 그냥…….”
“대표님! 혹시 그거 아닐까요?”
말을 끊은 것이 우준의 심기를 건드렸지만 새벽에 부른 것이 미안해서 그냥 내버려 뒀다.
“뭐?”
“그 집에서 살았던 사람! 그 귀신은 그 집에서 살았던 사람이었나 봐요.”
이 말은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수긍하듯, 반문을 하지 않는 우준의 모습에 탄력을 받은 연규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생각은 해 봤지만, 설마 하고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것뿐이야.”
“아, 예.”
“그 반응은 뭐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바로 말을 돌리는 그를 본 우준도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시트에 몸을 파묻고 피로함에 무거워진 눈을 감았다.
차가 호텔 앞에 멈춰 섰고 연규는 뒷좌석에서 우준이 늘 여비로 두는 정장을 들고 프런트로 가 체크인을 하고 방 키를 들고 돌아왔다.
“수고했어. 이제부터 혼자 올라갈 테니, 가 봐.”
“아닙니다. 옷도 가져다 드리고 방까지 들어가는 거 보고 가야 제 마음이 편합니다.”
새벽에 불렀다고 투덜거리던 그는 괜찮다는 상사를 억지로 밀며 승강기에 몸을 실었다.
띵, 하는 소리가 들리고 객실이 있는 층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내렸다.
객실을 향해 걷던 연규가 멈춰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옷을 걸어 놓았다.
우준 역시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방 안으로 들어섰다. 포근함을 느껴 바로 잠이 쏟아졌다. 그는 바로 침대를 찾아 드러누웠다.
“쉬세요.”
“조심히 들어가.”
“네. 아침에 뵙겠습니다.”
연규가 가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던 우준은 옆 테이블 위에 있는 리모콘을 집어 들어 ‘open’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이 천천히 거두어지면서 고즈넉하지만 여전히 불빛이 반짝이는 서울의 새벽 야경이 그대로 드러났다.
우준은 팔을 베고 그 야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귀신은 그 집에서 살았던 사람인가 봅니다.”
연규의 말대로 그 집에서 살았던 사람이 죽어서 다음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제 집에서 전부 다 쫒아낼 생각인 건가?
우준은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은 절대 쫓겨날 마음이 없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새벽의 소란스러움이 지나가고 몸의 긴장이 천천히 풀리자 노곤함이 몰려왔다.
우준은 길게 하품을 하고서는 몸을 돌아눕고선 그대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렇게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우준의 새벽이 아침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 *
다사로운 햇살이 눈 위로 쏟아졌다.
서서히 잠에서 깨어난 지윤은 순간 귓가로 띠링, 하고 울리는 문자 메시지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머리 위에 올려놓았던 휴대폰을 들어 문자를 확인했다.
<미안해요, 지윤 씨. 아무래도 같이 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요. 더 좋은 회사 찾길 바랄게요.>
혹시나 했던 기대감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해한다. 전부.
어느 회사든 첫 이미지가 중요했다. 그러니 그들을 원망할 이유도, 자격도 없었다.
그건 회사뿐만이 아니라, 작은 극단에서조차도 쉬쉬하는 문제였다.
불합격이라는 통보가 담겨져 있는 휴대폰을 붙잡은 지윤은 다시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후우…….”
심란한 마음과는 달리, 밖의 날씨는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로 좋았다.
하지만 마땅히 갈 곳도, 그곳에 가서 즐거움을 누릴 돈도 없는 그녀는 그저 먹먹한 마음으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Rrrrrr.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보미였다.
“보미.”
-목소리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스캔들이 터지고 나서부터 보미는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해 지윤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다 우울함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걱정부터 하는 습관이 생겼다.
친구에게 짐이 된 것만 같아 지윤은 늘 미안했다.
“아니, 뭐 별일은……. 그냥 늘 똑같은 일이지, 뭐.”
-또 떨어진 거야?
“응.”
-생각할수록 열불이 나서 못 살겠어. 내가. 아무래도 안 되겠어. 그 새끼 조지러 가자. 그러지 않으면 죽어서도 눈을 못 감을 것 같아, 내가.
흥분을 해서 길길이 날뛰던 보미는 지윤에게서 아무 말이 나오지 않자 금세 축 처졌다.
-그래서 아침은 먹었고?
“아니, 아직.”
-우리 가게로 올래?
“사장님 안 계셔?”
-응. 안 계셔. 가게로 와. 샌드위치랑 커피 만들어 줄게.
“알았어. 금방 갈게.”
전화를 끊은 지윤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입술 사이에선 짙은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자꾸만 깊어지려는 우울함을 떨어트리기 위해서 이불을 거두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와서 머리를 대충 말리고 모자를 푹 눌러썼다.
“마스크가…….”
향긋한 섬유 유연제 향이 나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집을 나섰다.
15분 정도를 걸어서 도착한 카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윤!”
카운터에 있던 보미가 지윤을 발견하고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친구의 곁으로 다가갔다.
“얼굴 야윈 것 좀 봐.”
보미는 손을 뻗어 지윤의 뺨을 감싸며 안쓰럽다는 듯이 말했다.
“앉아 있어. 내가 얼른 샌드위치랑 커피 가져다줄게.”
“고마워.”
원두가 로스팅되는 소리가 들리고 곧 이어, 코끝으로 향긋한 커피 향이 스쳐 지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미가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고 구석에 앉아 있는 지윤에게로 다가왔다.
“먹어. 원두 오늘 볶은 거라서 진짜 맛있을 거야.”
“응. 잘 먹을게.”
마스크를 턱에 걸고 샌드위치를 들어 막 한입 먹으려는데, 카페 안으로 40대 중반의 아주머니들이 들어왔다.
“맛있게 먹고 있어. 금방 올게.”
보미가 가볍게 등을 다독여 주고는 손님들을 맞이하러 카운터로 향했다.
아주머니들은 주문을 하고 곧,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그게 하필이면 지윤과 가까운 자리였다.
지윤은 최대한 신경을 쓰지 않고 샌드위치를 먹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 노력은 언제나 말짱 도루묵이 되곤 했다.
옹기종기 모여 있던 아주머니 중에 한 사람이 자꾸만 제 쪽을 힐끔거리는 것이 느껴져 지윤은 결국 들고 있던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얼른 마스크를 썼다.
1화
모두가 잠이 든 고즈넉한 새벽.
불 하나 켜져 있지 않은 자신의 어두운 큰 자택을 올려다보며 우준은 여전히 놀란 얼굴을 짓고 있었다.
“아, 나 진짜 돌아 버리겠네?”
우준은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머리를 손으로 마구 헝클어뜨렸다. 잠옷 차림에 맨발 그리고 하얗게 질린 얼굴.
이사를 오고 나서부터 한 달 동안 새벽마다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우준은 두려움이 스며든 눈으로 자택의 동태를 살폈다.
“아이씨…….”
2층 창문 쪽에서 움직임이 포착되자 그는 온몸에 스며드는 소름에 몸을 부르르 떨며 두 눈을 찔끔 감았다.
우준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이렇게 반쯤 혼이 나가 집에서부터 도망쳐 나오는 이유는 바로 귀신 때문이었다.
서른 살이 넘은 남자가 고작, 귀신 때문에 잠도 이루지 못하고 맨발로 도망 나온다고 한껏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혼자 있는 집 안에서 느껴지는 그것이 무서웠다.
평생 미신이나 신적인 존재 같은 것을 불신해왔다.
하지만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부터 그런 생각들이 바뀌었다.
비서인 연규를 시켜 유명한 무당을 불러 굿도 해 보았지만, 귀신은 마치 두려움에 떠는 그를 비웃 듯 틈만 나면 우준의 앞에 나타났다.
굿을 했던 무당이 했던 말이 우준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착한 애야, 착한 애. 에잇, 쯧. 쫓아낼 수가 없구만. 시간만 버렸어.”
그러니까 웃는 낯짝에 침 못 뱉듯, 현재 우준의 집에서 살고 있는 귀신은 스스로 나가기만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이다.
“거기다가 아주 젊고 잘생긴 선량한 소년 귀신이야.”
새벽마다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해 심장을 졸아 버리게 만들어 놓고도 태평하게 저렇게 집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귀신은 절대 ‘선량’하다 말할 수 없다.
세상에 선량한 귀신이 어디 있어?
우준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혹시 몰라 잠그지 않았던 차 문을 열고 안에 있는 업무용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직속 비서인 연규의 번호를 눌렀다.
귀신은 언제 보아도 적응이 되지 않아 밤만 되면 팔다리가 후들거려서 운전도 제대로 하지 못할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서 비서.”
-이놈의 잡귀를 내가 직접 잡아 버리든지 해야지, 원.
아주 낮게 중얼거리는 바람에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 뉘앙스가 썩 좋지 않다고 느낀 우준은 제 귀를 의심하며 미간을 구겼다.
“뭐라고?”
-지금 바로 댁으로 가겠습니다, 대표님.
우준은 차에 올라타 연규를 기다렸다.
이렇게 매일 밤, 귀신으로 하여금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하면서도 이 집을 팔 수 없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이 집은 보면 볼수록 예쁘고 정이 가서 좋아. 언제쯤이면 엄마도 우리 우준이랑 이런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지금은 병실에 누워 있는 엄마가 유난히도 좋아하고 살고 싶어 했던 집. 바로 그 집이었다.
몇 번이고 급매로 나왔지만 타이밍을 놓쳐 이제야 겨우 얻을 수 있었다.
서울의 노른자라고 할 수 있는 동네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고 집 외부와 내부가 모두 고풍스러움을 과시하고 있어 돈 좀 있다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탐내었다.
1년에도 몇 차례나 나오는 매물 때문에 이런 집을 왜 내놓는지 의아해 했는데,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집엔 귀신이 산다!
아니, 우리 집에 귀신이 산다!
하지만 우준은 이 집을 팔 생각이 전혀 없다. 귀신이 아니라 귀신 할아버지가 나온다고 해도 말이다.
자신이 이곳에 있으면 이 집에서 살고 싶던 엄마가 혼수상태에서 하루라도 빨리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기분 탓이겠지만 집 안 사진을 찍어 보여 주니, 눈도 못 뜨는 엄마의 얼굴 혈색이 좋아진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우준은 더 포기할 수 없었다.
얼마 뒤, 연규가 도착했고 그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조수석에 올라탄 우준이 조용한 집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오늘 따라 병실에 혼자 있을 엄마의 생각이 유난히도 많이 나 겨우 용기를 내보았다.
흐릿하지만 창문에 앞에 어떤 형체가 서서는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거 봐!”
우준이 흥분한 목소리로 연규의 팔을 잡고 창문 쪽을 손짓했다. 그는 굉장히 성가시다는 얼굴로 우준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뭘 보라는 거예요?”
“저기, 저거 안 보여?”
흐릿한 형체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는데,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연규 때문에 우준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무술인의 말마따나, 귀신의 형태는 자신이 여태 생각해 왔던 어마 무시한 외모를 가지고 있진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왔다.
“지금 제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거라곤 대표님의 바짝 깎으신 손톱뿐이에요. 그러니 좀 그만하세요.”
일어나자마자 달려온 건지, 눈곱이 붙은 눈으로 작작 좀 하라고 듯이 쏘아붙이고 있었다.
우준은 귀신을 보고 놀라서 뛰쳐나온 겁쟁이 같은 모습이 아닌 금세 차가운 얼굴로 돌아와 정색을 하며 연규를 바라보았다.
“아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를 하시니까…….”
자신을 차갑게 노려보는 상사의 눈빛에 연규는 귀신보다 더 무섭다고 생각하며 억울하다는 듯이 말을 흐렸다.
우준도 매일 새벽마다 귀신 타령을 하며 자신을 데리러 오게 하는 부분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함께 일한 지 벌써 5년이었다. 매일 밤 귀신에게 시달리는 자신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투덜거리는 그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부터는 택시 불러서 혼자 갈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게 쉽지 않다. 알 수 없는 형체를 보고 놀라면 제일 가깝게 느끼는 이가 떠올랐다.
“…….”
예의상이라도 ‘아닙니다, 대표님. 저를 부르세요’라는 말이 나와야 하는데, 연규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던 우준이 그에게로 못마땅한 시선을 던졌다.
연규는 매우 난감한 얼굴이었지만 끝까지 자신을 부르라는 말은 하지 않고 차를 출발시켰다.
이렇게 귀신에게 쫓기는 날이면 늘 가던 서울 시내의 호텔로 차를 몰며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갑자기 입술을 떼어 냈다.
“혹시 말입니다. 대표님.”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났다는 듯이 연규의 목소리는 살짝 들떠 있었다.
피로가 겹겹으로 쌓인 우준은 그를 쳐다도 보지 않고 의자에 몸을 편안하게 기대며 눈을 감았다.
“응.”
아마 시답지 않은 말이 흘러나올 것이라 예상을 했기 때문에 반응도 미적지근했다.
“그 귀신이 대표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계속 나타나는 건 아닐까요?”
“귀신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가 있겠어, 살다가 인연이 닿았던 적도 없을 텐데.”
“혹시 모르는 일이죠. 대표님과 인연이 닿았던 사람이 죽었을지도.”
설마, 하는 마음에 눈을 번쩍 든 우준은 곧 그 생각을 지웠다.
“그 집, 계속 귀신이 나와서 경매로 나왔던 집이야. 그 귀신은 그냥…….”
“대표님! 혹시 그거 아닐까요?”
말을 끊은 것이 우준의 심기를 건드렸지만 새벽에 부른 것이 미안해서 그냥 내버려 뒀다.
“뭐?”
“그 집에서 살았던 사람! 그 귀신은 그 집에서 살았던 사람이었나 봐요.”
이 말은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수긍하듯, 반문을 하지 않는 우준의 모습에 탄력을 받은 연규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생각은 해 봤지만, 설마 하고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것뿐이야.”
“아, 예.”
“그 반응은 뭐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바로 말을 돌리는 그를 본 우준도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시트에 몸을 파묻고 피로함에 무거워진 눈을 감았다.
차가 호텔 앞에 멈춰 섰고 연규는 뒷좌석에서 우준이 늘 여비로 두는 정장을 들고 프런트로 가 체크인을 하고 방 키를 들고 돌아왔다.
“수고했어. 이제부터 혼자 올라갈 테니, 가 봐.”
“아닙니다. 옷도 가져다 드리고 방까지 들어가는 거 보고 가야 제 마음이 편합니다.”
새벽에 불렀다고 투덜거리던 그는 괜찮다는 상사를 억지로 밀며 승강기에 몸을 실었다.
띵, 하는 소리가 들리고 객실이 있는 층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내렸다.
객실을 향해 걷던 연규가 멈춰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옷을 걸어 놓았다.
우준 역시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방 안으로 들어섰다. 포근함을 느껴 바로 잠이 쏟아졌다. 그는 바로 침대를 찾아 드러누웠다.
“쉬세요.”
“조심히 들어가.”
“네. 아침에 뵙겠습니다.”
연규가 가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던 우준은 옆 테이블 위에 있는 리모콘을 집어 들어 ‘open’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이 천천히 거두어지면서 고즈넉하지만 여전히 불빛이 반짝이는 서울의 새벽 야경이 그대로 드러났다.
우준은 팔을 베고 그 야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귀신은 그 집에서 살았던 사람인가 봅니다.”
연규의 말대로 그 집에서 살았던 사람이 죽어서 다음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제 집에서 전부 다 쫒아낼 생각인 건가?
우준은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은 절대 쫓겨날 마음이 없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새벽의 소란스러움이 지나가고 몸의 긴장이 천천히 풀리자 노곤함이 몰려왔다.
우준은 길게 하품을 하고서는 몸을 돌아눕고선 그대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렇게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우준의 새벽이 아침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 *
다사로운 햇살이 눈 위로 쏟아졌다.
서서히 잠에서 깨어난 지윤은 순간 귓가로 띠링, 하고 울리는 문자 메시지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머리 위에 올려놓았던 휴대폰을 들어 문자를 확인했다.
<미안해요, 지윤 씨. 아무래도 같이 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요. 더 좋은 회사 찾길 바랄게요.>
혹시나 했던 기대감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해한다. 전부.
어느 회사든 첫 이미지가 중요했다. 그러니 그들을 원망할 이유도, 자격도 없었다.
그건 회사뿐만이 아니라, 작은 극단에서조차도 쉬쉬하는 문제였다.
불합격이라는 통보가 담겨져 있는 휴대폰을 붙잡은 지윤은 다시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후우…….”
심란한 마음과는 달리, 밖의 날씨는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로 좋았다.
하지만 마땅히 갈 곳도, 그곳에 가서 즐거움을 누릴 돈도 없는 그녀는 그저 먹먹한 마음으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Rrrrrr.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보미였다.
“보미.”
-목소리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스캔들이 터지고 나서부터 보미는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해 지윤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다 우울함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걱정부터 하는 습관이 생겼다.
친구에게 짐이 된 것만 같아 지윤은 늘 미안했다.
“아니, 뭐 별일은……. 그냥 늘 똑같은 일이지, 뭐.”
-또 떨어진 거야?
“응.”
-생각할수록 열불이 나서 못 살겠어. 내가. 아무래도 안 되겠어. 그 새끼 조지러 가자. 그러지 않으면 죽어서도 눈을 못 감을 것 같아, 내가.
흥분을 해서 길길이 날뛰던 보미는 지윤에게서 아무 말이 나오지 않자 금세 축 처졌다.
-그래서 아침은 먹었고?
“아니, 아직.”
-우리 가게로 올래?
“사장님 안 계셔?”
-응. 안 계셔. 가게로 와. 샌드위치랑 커피 만들어 줄게.
“알았어. 금방 갈게.”
전화를 끊은 지윤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입술 사이에선 짙은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자꾸만 깊어지려는 우울함을 떨어트리기 위해서 이불을 거두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와서 머리를 대충 말리고 모자를 푹 눌러썼다.
“마스크가…….”
향긋한 섬유 유연제 향이 나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집을 나섰다.
15분 정도를 걸어서 도착한 카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윤!”
카운터에 있던 보미가 지윤을 발견하고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친구의 곁으로 다가갔다.
“얼굴 야윈 것 좀 봐.”
보미는 손을 뻗어 지윤의 뺨을 감싸며 안쓰럽다는 듯이 말했다.
“앉아 있어. 내가 얼른 샌드위치랑 커피 가져다줄게.”
“고마워.”
원두가 로스팅되는 소리가 들리고 곧 이어, 코끝으로 향긋한 커피 향이 스쳐 지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미가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고 구석에 앉아 있는 지윤에게로 다가왔다.
“먹어. 원두 오늘 볶은 거라서 진짜 맛있을 거야.”
“응. 잘 먹을게.”
마스크를 턱에 걸고 샌드위치를 들어 막 한입 먹으려는데, 카페 안으로 40대 중반의 아주머니들이 들어왔다.
“맛있게 먹고 있어. 금방 올게.”
보미가 가볍게 등을 다독여 주고는 손님들을 맞이하러 카운터로 향했다.
아주머니들은 주문을 하고 곧,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그게 하필이면 지윤과 가까운 자리였다.
지윤은 최대한 신경을 쓰지 않고 샌드위치를 먹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 노력은 언제나 말짱 도루묵이 되곤 했다.
옹기종기 모여 있던 아주머니 중에 한 사람이 자꾸만 제 쪽을 힐끔거리는 것이 느껴져 지윤은 결국 들고 있던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얼른 마스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