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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어머, 저 여자 강지윤 아니야?”

한 아주머니의 말에 다른 일행들까지 죄다 시선을 지윤에게로 돌렸다. 

카페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 시선을 주고 있는 이는 음료를 준비하고 있는 보미뿐인 상황이었다.

“어디 어디, 정말이네? 강지윤잖아.”

“어머머머.”

자신을 알아보고 다가오려는 모습에 당황한 지윤은 벌떡 일어났다. 

몸을 일으키는 중 테이블 위에 있던 쟁반을 쳐 담겨 있던 커피와 샌드위치가 허벅지 위로 그대로 쏟아지고 말았다.

“아…… 뜨!”

지윤이 뜨겁게 젖어 버려 살에 달라붙은 옷을 털며 아픔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녀의 상태를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잘됐다는 얼굴로 지윤을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남의 남자 뺏어서 애먼 여자 눈에 피눈물 나게 하고서는 지는 배고프다고 처먹으러 왔구나.”

“으휴!”

“아직도 한국 땅에서 살고 있는 거 자체가 의문이네. 의문이야.”

절대 속닥이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똑똑히 듣고 상처를 받으라는 듯이 번갈아 가며 지윤을 향해 쏘아 붙였다. 

어느새 음료를 다 만들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한 보미가 곁으로 다가오려 했지만, 지윤이 애써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괜히 자신 때문에 보미마저 욕을 먹을 것 같아 두려워서였다.

나 갈게. 입 모양으로 겨우 말하고서는 급하게 카페를 빠져나왔다. 그때까지도 제게 매섭게 꽂힌 눈빛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모자를 더욱 푹 눌러쓰고는 달리고 또 달려 그곳으로부터 멀어졌다.

허벅지는 여전히 뜨거웠지만 치료할 생각도 하지 않고 골목길 귀퉁이로 몸을 숨겼다.

“후우…….”

서러움에 눈물이 왈칵 터져 버리고 말았다. 이 넓고 험난한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만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지윤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그 와중에도 누군가의 눈이 자신에게 향할까 싶어 소리도 내지 못한 채로.

이런 날에는 유난히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바론아, 바론아…….”

동생이 속이 뭉개질 정도로 그립고 보고 싶었다.



*    *    *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명단과 사진입니다.”

연규가 내민 서류를 받은 우준은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60대 노부부들을 시작으로 대가족, 신혼부부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렇게 봐서는 전혀 모르겠군.”



“아주 젊고 잘생긴 소년 귀신이야.” 



무속인이 말했던 것을 떠올리며 우준은 다시 사진을 살폈다. 

그러다 교복을 입고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한 남학생의 사진에서 손을 멈췄다. 사진 속의 남학생은 무속인이 말한 것처럼 잘생긴 ‘소년’이었다.

만약 그의 말대로 그곳에서 살다가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어 눌러 앉은 것이라면 적합한 이는 이 소년뿐이다.

“얘에 대해서 좀 알아봐.”

“네. 지금 살아 있는지 아닌지가 궁금하신 거죠?”

우준은 마음이 편하지 않아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대표님 그런데 그 소년의 가족이 조금 특이합니다.”

“가족?”

“네. 재혼한 부모님과 의붓누나가 있는데, 그 누나가 배우 ‘강지윤’이더라고요.”

“강지윤?”

분명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선뜻 얼굴이 떠오르질 않았다.

“기억 안 나세요? 유부남이랑 불륜 저질렀던 신인 배우 있잖아요.”

연규의 말에 우준은 미간을 구겨 가며 기억을 해냈다.

“아…….”

화려한 이목구비 같은 외모가 아니었나? 

우준은 아직도 열변을 토해 내려 자세를 취하는 그의 노력에도 여자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했다.

“나중에 자신은 유부남인 거 전혀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배우 말입니다. 완전 팬이었는데, 연기도 잘하고 드라마도 진짜 재미있었거든요. 왜 다들 믿어 주지 않았던 걸까요?”

우준은 감정이입이 심해져 언성이 살짝 높아지는 그를 어이없게 바라보았다. 

고작 연예인 때문에 저렇게 감정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사실 전 그렇게 말간 눈을 하고 거짓말을 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듭니다.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걱정돼?”

“네. 진짜 제 이상형이었단 말이에요.”

“그래? 근데, 내가 볼 때는 그 여자 말고 네 사원증이나 더 걱정해야 할 거 같은데.”

“제 사원증이요? 왜요?”

“하라는 업무는 안 하고 우두커니 서서 연예인 걱정이나 하고 있는 비서를 내가 계속 써도 될까, 고민이 몰려오고 있는 중이거든. 지금.”

연규는 얼른 입술을 닫고 서는 재빠르게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고등학교 때 육상 선수 출신이라더니, 도망가는 건 정말 기똥차게 빠른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우준은 아직도 자신이 쥐고 있던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엔 여전히 해맑게 미소 짓고 있는 소년이 있었다. 종이 한 장을 넘기자, 뒤태를 자랑하고 있는 부담스러운 여자의 프로필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흠칫, 하고 놀랐다.

“이 여자가 강지윤인가 보네.” 

하지만 곧 흥미가 떨어진 우준은 넘겼던 종이를 다시 가져와 살폈다. 

기분 탓인가. 소년의 미소가 어쩐지 슬퍼 보였다.



*    *    *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동네와 저녁.

지윤은 보미의 카페에서부터 사람들의 눈을 피해 네 시간 남짓을 걸어왔다. 

걷다 보니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한때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을 올려다보던 지윤의 눈은 이곳에 오는 동안, 말라 있던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엄마, 아빠…… 바론아…….”

왜 자신만 두고 다 가 버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운 마음은 이제 원망으로 바뀌고 있었다. 뭉개지는 것 같은 심장 때문에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나도 차라리 따라갈까? 나, 나 정말 힘들어서 더는 못 버티겠어…….”

아무리 진실이 아니라고 울부짖어도 믿어 주지 않는 세상, 자신을 경멸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 속에서 자신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무서운 속도로 몰려오는 그리움에 고통이 몸을 짓눌렀고 그곳에서 혼자 발버둥을 치고 있는 순간, 어디선가 센 바람이 불어왔다. 

분명 콱 눌러썼던 모자가 그대로 벗겨지면서 바닥으로 굴러갔다. 모자 속에 감추고 있던 지윤의 길고 윤기 있는 머리카락이 부는 바람에 화려하게 날렸다. 

“어……!”

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떨어진 모자를 향해 눈길을 돌리던 지윤은 모자가 멈춘 곳에 한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남자는 제 신발 앞까지 굴러온 모자를 집어 들고서는 지윤에게로 다가왔다. 

커다란 그림자가 생길 정도로 남자의 체격은 컸다. 날카로운 눈매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높은 코, 굴곡 하나 없는 매끄러운 턱 선에 적당한 색을 두르고 있는 입술까지. 잘난 외모를 소유한 남자였다.

“확실했어. 확실히 그 얼굴이야.”

모자를 들고서는 남자는 지윤의 앞에서 낮게 중얼거렸다. 지윤은 자신을 들켜 또 상처를 받을까 싶어 남자의 손에 들린 모자를 휙 뺏어 쓰고는 얼른 덧붙였다.

“아니에요.”

지윤의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우준은 그제야 시선을 옮겼다. 여태, 있는지도 몰랐던 지윤의 존재를 이제야 파악한 거였다. 

“이봐요.”

우준이 낮게 부르자 지윤은 두 팔로 제 얼굴을 필사적으로 가렸다.

“아니라고요.”

뭐야, 이 여자.

“아닌 건, 당신 행동이 더 아닌 거 같은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남의 집을 가로 막고 있는 겁니까?” 

필사적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지윤은 팔을 내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대문을 떡하니 가로 막고 있는 것을 발견한 그녀는 창피함에 붉어진 얼굴로 얼른 몸을 피했다.

“죄송합니다.”

가볍게 허리를 굽히는 지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우준은 대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왔다. 

우준은 분명 방금 전 봤다. 대문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슬픈 눈으로 위를 바라보던 사진 속의 그 소년을. 

무속인의 말대로 잘생기고 소년이 귀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 우준은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심지어는 자신보다 어렸다. 

어린 귀신에게 농락당해서 새벽마다 집을 나오는 수고를 했다고 생각하니, 그는 차오르는 억울함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나와, 너 다 봤어.”

우준은 아무것도 없는 정원에 대고 꽤나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경고 어린 목소리에도 귀신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고 주변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재밌냐? 귀신이 돼서 살아 있는 사람 놀리고 사는 게?”

여전히 정적.

“야, 나 너 이제 하나도 안 무서워. 그러니까, 나오라고, 이제 어쩌냐? 나 도망 같은 것도 안 갈 만큼 네 존재가 우스워졌는데, 너도 재미 다 봤겠다?”

아직도 정적.

“이 어린놈의 자식이 어른을……악!”

갑자기 귀에서만 느껴지는 서늘한 입김 같은 느낌에 우준이 고함을 내지르며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심장이 다 부셔지는 것 같았다.

“재미 다 본 거 같진 않은데?”

위에서 들려오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 우준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사진 속의 소년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역시, 자신이 생각했던 무섭고 해괴망측하게 생긴 귀신의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진으로 접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생긴 외모를 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자, 우준은 열불이 났다.

“야, 너 이제 재미 다 봤으니까, 내 집에서 나가.”

“이게 왜 아저씨 집이야?”

“아, 아, 아저씨?”

멱살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그대로 통과가 되면서 하마터면 앞으로 몸이 꼬꾸라져 그대로 맨 바닥에 코를 박을 뻔했다.

“아저씨 생긴 거랑은 다르게 좀 멍청하네. 나 귀신인 거 몰라?”

소년은 여유 있게 팔짱까지 끼고서는 우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멍청? 근데 이게!”

귀신이라서 당연히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을 하지 않으면 분이 안 풀릴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감정을 느끼는 듯한 귀신이니 기분이라도 나쁘라고 다시 멱살을 잡으려 시도했다. 

하지만 그대로 통과가 되었고 화가 난 우준은 허공에 마구 발길질을 했다. 그런데 옆에서 툭 하고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류가 들어 있는 가방을 전해 주려고 왔던 연규가 허공에 대고 혼자 발길질을 하고 있는 우준을 보고 놀라 가방을 떨어트린 것이다.

“대표님?”

“서 비서 마침 잘 왔어. 이 뻔뻔한 귀신 낯짝 좀 봐.”

우준은 아직까지도 저를 비웃고 있는 소년을 가리켰지만, 그럴수록 연규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가고 있었다.

“대표님……!”

연규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우준의 옷을 지려 밟으면서까지 달려와 상사를 와락 끌어안았다.

“왜 이래, 징…….”

“안 되겠어요. 여태 참고 또 참고 그래도 설마, 우리 대표님이 설마, 그런 생각했는데, 전부 다 안일한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무슨 헛소…….”

저를 와락 끌어안은 연를 밀쳐내려고 했지만, 그가 다시 한번 힘을 주어 우준을 품에 끌어안았다. 이미 목소리는 안타까움으로 잔뜩 서려 있었다. 

앞에서 귀신이 팔짱을 끼고 강아지들 재롱을 보듯 보고 있었다. 

창피했다.

“저희 병원 가 봐요. 대표님.”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거야? 너도 그때 무술인 말 들었잖아! 여기에 젊고 잘생…… 아니, 소년 귀신이 살고 있다고!”

옆에서 귀신이 듣고 있었기 때문에 ‘잘생긴’은 뺐다. 가뜩이나 건방진 놈이 그 말을 듣고 더 건방져 질 것만 같았다.

“대표님.”

안고 있던 그가 몸을 떼어 내고서는 우준의 손을 붙잡았다.

“언제까지 이러실 거예요. 지금 여기엔 아무도 없어요!”

옆에서 잠자코 보고 있던 귀신이 손가락을 뻗어 연규의 볼을 콕, 찔렀다. 

물론 그냥 통과가 되었지만 그 행동에 우준이 미간을 구겼다.

“뭐 하는 짓이야, 감히 내 비서에게?”

우준은 귀신을 향해 말했지만, 연규는 입을 쩍 벌리며 놀라워했다.

“내일 당장 병원 예약하겠습니다. 늦지 않았어요.”

“놀라지 말고 들어. 방금 귀신이 서 비서 볼을 찔렀어.”

“대표님. 제발, 제발……!”

귀신을 보지 못해서 자꾸만 저를 정신병자 취급하는 그의 손을 놓은 우준이 골치가 아파 이마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헛소리 그만하고 돌아가.”

“대표님!”

하지만 연규는 다시 우준의 손을 콱 움켜잡았다.

“대표님. 늦지 않았다고요!”

“너도 늦지 않았어. 그러니까, 뒤도 돌아보지 말고 꺼지라고!”

버럭 고함을 내지르는 우준에 연규가 움찔했다. 

한마디만 더 하면 정말 사원증이 두 조각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연규는 얼른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혹시 오늘 새벽에 또 악몽 꾸시면 전화하세요.”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얼른 나가는 그를 향해 우준이 외쳤다.

“악몽 아니라고! 헛소리가 아니라고! 여기, 지금, 이 집, 내 옆에 귀신이 있다고!”

아무도 들어 주지 않는 그의 외로운 외침이 넓은 정원을 가득 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