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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누구보고 아저씨래?







“하!”

태성의 코웃음이 점차 커다란 웃음으로 바뀌어 갔다.

“쟤가, 쟤가 미쳤나 봐.”

덕순이 급하게 나와 정연과 봄을 지나 계단 위의 태성을 꼬집었다.

“왜 웃어, 갑자기! 미친 거야? 응? 미안해, 봄이 엄마. 아들놈이라고 하나 있는 게 이러네.”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봄이 엄마는 아들 오냐오냐 키우지 말어. 얘가 망나니는 아닌데 가끔 이렇게 빙충이같이 군다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 응?”

“네. 괜찮아요.”

정연이 봄의 어깨를 잡고는 계단을 오르며 덕순에게 인사했다.

“그거, 이리 주세요.”

태성을 막아선 정연이 생수를 가리켰다. 하지만 태성은 여전히 입꼬리를 올린 채 정연을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달라니까요?”

정연이 손을 뻗으려 하자 태성이 재빠르게 생수를 들어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정연이 그의 뒤통수를 쏘아보았지만, 태성은 그러거나 말거나 실실 웃으며 앞서 걸었다.



태성이 정연의 집에 생수를 날라 주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덕순이 허리에 손을 짚고 그 앞을 막아섰다.

“아까는 왜 웃었는데? 응? 나 무안해서 혼났네. 도대체 왜 그래?”

덕순의 타박에도 태성은 방으로 들어가서 누웠다.

“아, 안 들려?”

“몰라. 그냥 웃음이 났어.”

“아들, 왜 그러니 진짜. 하필이면 그 순간에 웃을 게 뭐야. 꼭 애 아빠 없다고 웃은 꼴이 됐잖아.”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마.”

봄에게 아빠가 없어서 웃은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정연에게 남편이 없다는 게 태성을 웃게 했다. 왜 웃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웃는 자신을 쏘아보는 정연의 시선이 좋았다.

“나중에 마주치면 꼭 미안하다고 해라, 응?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는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너 어릴 때 학교 애들이 아빠 없는 거 가지고 놀려서 싸운 거, 기억 안 나?”

“그 얘기가 왜 나와?”

“아무튼. 너도 오며 가며 보거든 잘해 줘. 뭐 무거운 거 들고 있으면 좀 날라다 주고. 애랑 둘이서만 산다더라. 애 아빠는 없대. 죽었는지, 이혼했는지, 그것도 아니면 혼자 낳아 키우는지 내가 알 게 뭐냐. 이유가 어떻게 됐든 같은 처지에 딱한 거지.”

태성은 눈을 감았다. 자꾸만 아까 저를 쏘아보던 커다란 눈이 생각났다. 이상하게 짜릿했다.



* * *



정연은 아까부터 꽃집 앞을 기웃거리는 태성이 신경 쓰였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나 보다 했는데, 30분도 넘게 가게 앞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벌써 며칠째 저 상태였다.

“할 일이 저렇게나 없을까. 나이도 젊어 보이는데.”

정연은 고개를 저으며 문화센터 수업에 가져갈 꽃을 살폈다.

봄에게 듣자니 아랫집 아저씨는 직업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학생도 아닌 것 같았다.

“주인아주머니 걱정이 크시겠네. 다 큰 아들이 저러고 있으니…….”

정연은 혀를 차고는 확인한 꽃을 쇼케이스 안에 넣었다. 그러다 문득, 오늘따라 이상하게 꽃집에 손님이 없다는 생각에 다시 고개 들었다.

“저러니 손님이 안 오지.”

가게 유리문에 붙어서 꽃집 안을 들여다보던 태성이 흠칫 놀라 뒷걸음쳤다. 정연이 빠르게 가게 유리문을 열고는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저기요.”

어느새 저만큼 멀어진 태성이 뒤를 돌아봤다.

“그쪽 말이에요.”

태성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 정연이 고개를 끄덕이니 태성이 피식 웃으며 정연에게 가까이 왔다.

“왜? 아줌마.”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

정연의 미간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태성은 뭐가 그리 좋은지 그저 실실 웃기만 했다.

“왜 그래요?”

“내가 뭘?”

“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남의 가게 앞을 왔다 갔다 하냐구요.”

수많은 말을 두고 자신을 똥 마려운 강아지에 비유하다니. 태성은 짙은 눈썹을 찡그렸다.

“왔다 갔다 하면 안 돼?”

“하려거든 딴 데 가서 해요.”

“여기, 이 길이 아줌마 거야?”

“뭐라구요?”

“아줌마 거냐고.”

“기가 막혀서 정말…….”

정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앞의 뻔뻔한 남자를 쏘아보았지만, 태성은 싱긋이 웃으며 정연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내가 왔다 갔다 하고 싶어서 왔다 갔다 하는데. 대한민국에는 그런 자유도 없나?”

“지나가려면 지나가든가. 신경 쓰이게 왜 자꾸 남의 가게 앞에서 그러냐구요.”

“아줌마.”

아줌마라고 부르기에는 아까웠다. 하지만 다른 마땅한 호칭이 없었다.

“왜요.”

“내가 신경 쓰여?”

“하!”

정연이 코웃음 치며 태성을 노려보았다.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정연은 단단해졌다. 여자를 우습게 아는 세상 남자들에게 쉽게 보이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깡은 세졌고, 여간해서는 기죽지 않았다.

“또라이야, 뭐야.”

“어, 나 또라이 맞는데.”

“별, 미친…….”

“어! 그것도 맞는데. 아줌마, 나에 대해서 잘 아네?”

정연은 자신이 또라이에 미친놈이 맞다며 수긍하는 태성의 정강이를 한 대 차올리고 싶었다.

웃는 모습만 놓고 본다면 밉지 않은 얼굴이었다. 밉다기보다는 오히려 보기 좋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연에게는 백수 또라이의 미소에 감탄할 여유 따윈 없었다.

“왔다 갔다 하려거든 저쪽에 가서 해요.”

“싫은데.”

“장난해요? 커다란 남자가 시커멓게 하고 꽃집 앞에서 그러고 있으니까 손님이 안 들어오잖아요.”

“아줌마.”

“왜 자꾸 불러요!”

“호떡 줄까?”

“뭐……?”

늘 입고 다니는 카키색 야상 점퍼 안으로 손을 집어넣은 태성이 불쑥, 정연의 코앞으로 호떡이 담긴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오래도록 품었는지 눅눅해진 종이봉투에서는 아직도 뜨끈한 기운이 느껴졌다.

호떡의 달콤한 향이 코를 찔렀다. 태성이 재촉하듯 미소 짓자 그것마저도 조금은 달콤하게 느껴졌다. 정연은 당황해서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됐어요. 안 먹으니까 아저씨나 먹어요. 그리고 저리로 좀 가요. 나는 아저씨랑 호떡 나눠 먹으면서 시답지 않은 얘기할 만큼 한가하지 않아요.”

“아저씨……?”

뒤로 물러난 정연을 보는 태성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정연은 살짝 밀고 있던 유리문에서 손을 떼었다. 닫히려는 그 문을 태성이 재빨리 잡았다.

“하! 아저씨이?”

정연이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태성을 똑바로 보는 눈빛에는 물러섬이 없었다.

“아줌마, 내가 어딜 봐서 아저씨야?”

“남자 군대 다녀오면 아저씨인 거, 몰라요? 군인 아저씨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거든요?”

“나 군대 아직 안 갔는데?”

“안 갔으니 그 모양이지.”

“뭐?”

한쪽 눈썹을 찌푸린 태성이 정연을 쏘아보았다.

“아저씨랑 말 길게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 호떡, 저쪽에 가서 아저씨나 먹어요. 오전 내내 손님이 없다 했더니. 양아치야, 뭐야. 남의 가게 장사도 못 하게.”

“누구 보고 아저씨래?”

“아저씨를 아저씨라고 부르지.”

“아저씨 아니거든? 아줌마, 호칭 정하고 가!”

정연은 유리문을 억지로 밀고는 돌아섰다. 양아치 같은 주인집 아들이 쫓아 들어와서 행패라도 부릴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태연한 척하며 티 내지 않았다.

“에이, 씨.”

태성의 투덜거리는 소리에 정연은 흘끔, 뒤를 돌아보았다. 호떡이 든 봉투를 구겨 쥔 태성이 성큼성큼 걸어 멀어지고 있었다.

“왜 저래, 진짜.”

정연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또라이, 미친놈, 그리고 양아치. 저런 아들을 둔 주인아주머니 속이 시커멀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태성이 피식 웃었다.

“새끼들, 잘 걸렸다.”

동네 고등학생 녀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태성이 다가가니 눈치챘는지 짜증을 내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아, 재수가 없으려니까.”

“그러게 내가 이쪽에는 오지 말자고 그랬잖아.”

태성은 전봇대 밑에 찌그러져 있던 고물 장우산을 집어 들었다.

“이 새끼들아, 바닥 더럽게 침은 왜 뱉어? 다 핥아 먹을래?”

“아, 왜요 또. 그냥 좀 지나가요.”

“나 심심하다. 좀 끼자.”

“아저씨, 진짜 우리 좀 가만히 둬요.”

그 순간, 태성의 얼굴이 사납게 변했다.

“하, 아저씨? 이것들이, 야! 내가 왜 아저씨야. 어?”

남학생들은 당황했다. 태성을 가리켜 아저씨라고 부른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아니,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렇게 불렀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저씨라 부른 것을 트집 잡아 성질을 내니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왜 아저씨냐고. 어? 너네랑 나랑 몇 살 차이 안 나거든?”

“그, 그럼 뭐라고 불러요.”

“형이지! 이렇게 젊은 아저씨가 어디에 있냐? 어?”

태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 정연이 자신을 가리켜 아저씨라고 부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또 저래…….”

“뭐?”

“아저, 아니. 형은…… 군대도 안 가요?”

용기 많은 한 남학생의 말에 태성은 코웃음을 쳤다.

한때는 국가대표 선수를 목표로 운동했다. 그러다가 2년 전, 사고를 당해 너덜너덜하게 파열된 어깨 인대를 수술했지만 선수 생활은 끝이었다.

실의에 빠져 있던 그때, 입대 문제가 현실이 되었다. 태성은 수술한 어깨에도 불구하고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다행이다, 응?”

“갈 거면 현역으로 가야지, 쪽팔리게 공익이 뭐야?”

“너 어깨가 그 모양인데 현역 가서 무슨 고생을 하려고.”

“에이, 나 재검 받아서 현역 갈 거야.”

“엄마가 네 걱정하다 죽는 꼴 볼래? 그 어깨로 현역 입대해서 힘든 훈련을 어떻게 다 견디려고!”




남들 보기에 멀쩡했지만 더는 검을 제대로 휘두를 수 없는 어깨. 태성은 수술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자신의 어깨를 보는 것이 싫었다. 여섯 살부터 검을 휘두르고 자란 태성에게는 검도가 전부였기에 몸에도, 마음에도 깊게 남은 그 상처는 컸다. 그 후 치료를 핑계로 입대를 미루고 있었지만 그 시한도 몇 년 남지 않았다.

“내가 군대 가든 말든. 너네한테는 군대가 먼 얘기 같지? 너네도 1, 2년 있으면 영장 나오거든?”

“에이, 진짜.”

“잔말 말고 내놔.”

“아, 이건 진짜 어렵게 산 거란 말이에요. 아저씨는 그냥 가서 사면 되잖아요.”

담뱃갑을 뒤로 감추며 저항하던 남학생들은 태성이 장우산을 잡은 손에 힘을 주는 것을 보았다.

“야. 줘.”

대장 격인 녀석의 말에 대들던 녀석이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갑째 내밀었다. 그러자 그 뒤의 녀석들도 입을 삐죽이며 하나둘 담뱃갑을 내밀었다.

“여기요.”

“그래. 서로 힘 빼지 말자. 너네도 삥 뜯어 봐서 알잖아. 어차피 뜯길 거 왜 저항하냐? 그러면 한 대 맞을 거 세 대 맞아요.”

“아, 그냥 지나가는 애들한테 삥 뜯어요! 왜 맨날 우리한테 이래요?”

“그건 또 재미가 없지. 그리고 너네 삥 뜯는 게 제일 쏠쏠하거든.”

태성이 히죽거리며 담뱃갑 속 담배 개수를 확인하는 동안, 무리의 남학생들은 투덜거리며 태성을 피해 골목을 빠져나갔다.

“에이, 진짜. 이 동네를 뜨든 해야지. 지가 홍길동이야, 뭐야. 왜 맨날 여기저기서 나타나?”

“말이 짧다? 나 다 듣고 있는데?”

“아, 혼잣말한 거예요!”

“다 들리는데 그게 혼잣말이냐?”

“야! 튀어!”

태성이 장우산 든 손을 높이 들어 올리기 무섭게 무리의 남학생들이 빠르게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