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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적인 사랑(1화)
‧ 일러두기
본문 중에 한국어 대화는 “ ”로 영어 대화는 「 」로 표기했습니다.
프롤로그
아아악!
염병할 년 같으니라고, 차라리 죽어 이년아!
퍼퍽. 퍼억. 퍽. 퍽.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귀를 찢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다시 들려오는 지저분한 욕설들.
이 잡년, 미친년,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육시랄 년…….
시궁창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만큼이나 지저분한 냄새가 나는 욕설들이다.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늘 그런 썩은 냄새가 나는 더러운 말들뿐이었다. 미움과 증오만이 가득한 악에 받친 날카로운 폭력적인 말들.
더러운 욕설들을 퍼붓고 있는 남자의 두 눈엔 광기가 가득했다. 붉게 핏발 선 두 눈은 폭력과 증오로 물들어 있었다. 악마의 눈빛이었다. 영혼이 없는.
‘대체 어딜 싸돌아 다닌거야?’
‘어떤 놈팡이 같은 새끼들이랑 붙어먹으려고?’
‘아니, 아니. 이미 붙어먹은 거지.’
‘이 찢어 죽일 년! 오늘은 어떤 놈하고 붙어먹은 거야!’
퍽. 퍽. 퍽. 퍼억.
아악!
광기에 찬 눈을 한 채로 남자는 주먹을 내질렀다. 그의 주먹이 아래로 향할 때마다 방 안에선 새된 비명이 울렸다.
남자의 주먹은 비명을 내지르는 여자에게 끔찍한 상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미 부을 대로 부어오른 여자의 얼굴엔 붉은 핏물이 가득했다. 입가와 코, 그리고 눈가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처참했다.
여자의 육신도 마찬가지였다. 여자는 엉망으로 찢겨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걸레보다 못한 상태였고 핏물이 여기저기 튀어 있었다. 찢긴 옷 사이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몸은 온통 검붉었다. 새로 시작된 폭력으로 인해 생겨난 상처와 오랫동안 폭력에 시달려 왔음을 증명해 주는 지난 폭력의 상흔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이 미친년! 나쁜 년!
퍽.
죽어! 죽어! 차라리 나랑 죽자!
퍽. 퍽. 퍽.
여자의 입에선 더 이상 비명이 나오지 않았다. 나약한 흐느낌 소리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오래된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부터 오는 고통스러움에 내는 울음소리였다.
“흐흐흑.”
흡사 동물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였다. 아니, 여자는 짐승이었다. 남자에 의해 사육되는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된 짐승의 신세와도 같았다. 남자의 거친 주먹을 막아 내려는 여자의 연약한 움직임마저 멈추자 남자는 그제야 마구잡이로 내지르던 주먹질을 멈췄다.
여자의 눈에 한 줄기 안도감이 퍼졌다. 그러나 그 빛은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남자의 손이 바지 벨트로 향하자 다시 공포에 허덕였다.
철컥.
벨트를 푸는 그 서늘한 소리에 여자가 널브러진 몸을 일으키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마치 바닥의 중력이 여자의 몸을 강하게 빨아 당기고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바닥 깊은 곳으로 쓰러지길 반복할 뿐이었다.
바지를 내린 남자의 손이 검붉은 멍이 든 여자의 허벅지를 거칠게 붙잡았다. 여자는 저항했지만 돌아오는 건 폭력이었다. 남자의 거센 주먹질에 여자는 절망과 고통이 점철된 비명을 내질렀고 다시 흐느꼈다.
얼마의 시간이 더 흘러갔을까?
상처로 가득한 여자의 몸을 짓누르고 있던 남자가 잠이 들었다. 그제야 남자의 몸 아래 짓눌려 있던 여자가 정신없이 코를 골아 대는 남자의 육중한 몸을 밀쳐 내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여자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멍해 보였다.
여자는 찢겨 나간 옷을 부여잡고 어떻게 해서든 벌거벗은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몸을 가려 보려 애를 쓰더니 이내 그것이 소용없음을 깨달았는지 비틀거리는 다리로 방구석에 놓인 서랍장으로 걸어갔다. 여기저기 해지고 낡은 옷을 꺼내 만신창이가 된 몸을 가린 여자가 다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몸을 옆으로 돌려 걸었다.
툭. 툭. 툭.
여자의 비척거리는 걸음이 지나간 자리엔 붉은 핏방울이 떨어졌다. 허벅지를 지나 종아리 사이로 붉은 선혈이 흘러내리며 방금 갈아입은 옷을 다시 물들이고 있었다.
“아가…… 진아…….”
핏기라고는 전혀 없는 창백한 여자의 희미한 음성이 들려오자 장롱 속에 숨어 있던 아이가 움찔했다. 작은 몸을 둥글게 말며 좁고 어두운 장롱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려 하다가 멈추었다.
평소와 다르게 숨을 죽이고 여자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무릎 사이로 파묻은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잠이 든 것처럼 보이도록 가만히 있었다.
여자는 한참 동안 고개 숙인 아이를 바라보았다.
“…… 미안해…… 미안해…….”
아이는 눈치챘다. 오늘에야말로 여자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떠나갈 것이란 걸.
여자는 너무나 오랜 세월 고통받았고 이곳에 붙잡혀 있었다. 여자의 아이 때문이었다. 아이는 자신이 여자를 붙잡아 두기 위한 악마의 도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악마가 늘 그렇게 소리쳤기 때문에.
‘아이가 내 손에 있는 한 네년은 절대 못 떠나. 아이는 절대 안 놔줄 거니까. 아이를 두고 도망치진 못하겠지. 아이는 널 옭아맬 수 있는 아주 좋은 족쇄야.’
‘아이를 데리고 도망쳐 봤자 네년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전처럼 넌 결국 나한테 돌아오게 되어 있어. 족쇄를 차고 네년이 뭘 할 수 있겠어. 흐흐.’
그렇게 말하며 악마는 비릿한 웃음을 길게 흘렸다. 그때마다 아이는 여자의 얼굴에, 눈에 떠오르는 절망감을 숱하게 봐야만 했다. 그리고 갈등하는 눈빛도.
하지만 여자는 주저했다. 아주 오랫동안 망설였다.
주저하고 갈등하는 동안 여자는 죽어 가고 있었다. 악마에 의해 파괴되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의 갈등과 주저하는 마음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아이는 자신을 부르는 여자의 간절한 음성에서, 붉은 핏물이 가득 고인 두 눈에서 결국 때가 왔음을 어렴풋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여자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여자의 부름에 고개를 들고 대답을 하면 여자는 오늘도 이 집을 떠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미안…… 더, 더는…… 못 견뎌…… 주, 죽을 거…… 이곳은…… 지옥이야.”
여자의 말은 옳았다. 아이도 알고 있었다. 이곳은 여자를 병들게 하고, 서서히 말라 죽게 하는 살인의 공간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도망쳐야 했다. 멀리멀리 떠나야 한다. 악마가 찾을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상처투성이인 여자의 얼굴에선 여전히 붉은 핏물이 흘렀다. 여자는 한계에 달해 있었다. 여자의 영혼은 아주 오래전에 악마에 의해 파괴되었다. 악마에게 먹혀 버렸다. 악마는 여자를 영혼이 빠져나간 살아 있는 시체로 만들었다.
아이는 무릎에 파묻은 얼굴을 들지 않았다.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여자의 상처로 가득한 얼굴이 주는 공포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시 눈을 뜨면 이 끔찍한 악몽이 끝나기를 바랐다.
그리고 여자를 해방시켜 주고도 싶었다. 떠나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악마의 도구인 자신에게서. 여자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아이는 악마가 두려웠다. 그래서 잔인하게 여자를 때리는 악마에게 대들지 못했다. 여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용기가 자신에겐 없었다.
다시 비척비척하는 여자의 힘없는 걸음 소리가 작게 울렸다.
끼익. 탁.
문이 열렸다가 이내 닫혔다. 닫힌 문은 한참의 시간이 흘러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이제 방 안에는 코를 골아 대는 남자의 거친 숨소리만이 시끄럽게 울렸다. 아이는 무릎에 파묻은 얼굴을 들지 않고 작은 몸이 더욱 작아지도록 둥글게 말았다. 습한 장판 밑을 기어 다니는 공벌레처럼.
남자의 코에서,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더러운 숨소리를 피하려는 듯 작게, 더 작게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작은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 고사리처럼 작은 두 손을 펼쳐 자신의 입을 막은 채 아이는 숨죽여 흐느꼈다. 가늘게 떨리는 아이의 작은 어깨가 진한 슬픔을 표현하고 있었다.
결국, 여자가 떠났다. 자신을 남겨 두고. 여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여자가 떠났다는 사실이 두렵고 슬프면서도 한편으론 기쁘기도 했다. 이제 여자는 자유였으니까. 저 악마로부터. 악마의 끔찍한 폭력으로부터 마침내 자유로워진 것이다. 여자는 살아남기 위해서 도망쳤다. 악마에게서. 그리고…….
이젠 아이만이 혼자 남았다. 홀로 남아 악마와 대면해야 했다. 아이는 무서웠다. 그 끔찍한 현실이 주는 숨 막힐 듯한 두려움에 아이는 숨죽여 울었다.
“…… 엄……마…… 엄마…….”
아이는 떠나 버린 엄마를 부르며 작게 흐느꼈다. 잠들어 있는 악마가 깨어날까 두려워 숨을 죽인 채.
‧ 일러두기
본문 중에 한국어 대화는 “ ”로 영어 대화는 「 」로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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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악!
염병할 년 같으니라고, 차라리 죽어 이년아!
퍼퍽. 퍼억. 퍽. 퍽.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귀를 찢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다시 들려오는 지저분한 욕설들.
이 잡년, 미친년,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육시랄 년…….
시궁창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만큼이나 지저분한 냄새가 나는 욕설들이다.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늘 그런 썩은 냄새가 나는 더러운 말들뿐이었다. 미움과 증오만이 가득한 악에 받친 날카로운 폭력적인 말들.
더러운 욕설들을 퍼붓고 있는 남자의 두 눈엔 광기가 가득했다. 붉게 핏발 선 두 눈은 폭력과 증오로 물들어 있었다. 악마의 눈빛이었다. 영혼이 없는.
‘대체 어딜 싸돌아 다닌거야?’
‘어떤 놈팡이 같은 새끼들이랑 붙어먹으려고?’
‘아니, 아니. 이미 붙어먹은 거지.’
‘이 찢어 죽일 년! 오늘은 어떤 놈하고 붙어먹은 거야!’
퍽. 퍽. 퍽. 퍼억.
아악!
광기에 찬 눈을 한 채로 남자는 주먹을 내질렀다. 그의 주먹이 아래로 향할 때마다 방 안에선 새된 비명이 울렸다.
남자의 주먹은 비명을 내지르는 여자에게 끔찍한 상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미 부을 대로 부어오른 여자의 얼굴엔 붉은 핏물이 가득했다. 입가와 코, 그리고 눈가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처참했다.
여자의 육신도 마찬가지였다. 여자는 엉망으로 찢겨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걸레보다 못한 상태였고 핏물이 여기저기 튀어 있었다. 찢긴 옷 사이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몸은 온통 검붉었다. 새로 시작된 폭력으로 인해 생겨난 상처와 오랫동안 폭력에 시달려 왔음을 증명해 주는 지난 폭력의 상흔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이 미친년! 나쁜 년!
퍽.
죽어! 죽어! 차라리 나랑 죽자!
퍽. 퍽. 퍽.
여자의 입에선 더 이상 비명이 나오지 않았다. 나약한 흐느낌 소리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오래된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부터 오는 고통스러움에 내는 울음소리였다.
“흐흐흑.”
흡사 동물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였다. 아니, 여자는 짐승이었다. 남자에 의해 사육되는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된 짐승의 신세와도 같았다. 남자의 거친 주먹을 막아 내려는 여자의 연약한 움직임마저 멈추자 남자는 그제야 마구잡이로 내지르던 주먹질을 멈췄다.
여자의 눈에 한 줄기 안도감이 퍼졌다. 그러나 그 빛은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남자의 손이 바지 벨트로 향하자 다시 공포에 허덕였다.
철컥.
벨트를 푸는 그 서늘한 소리에 여자가 널브러진 몸을 일으키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마치 바닥의 중력이 여자의 몸을 강하게 빨아 당기고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바닥 깊은 곳으로 쓰러지길 반복할 뿐이었다.
바지를 내린 남자의 손이 검붉은 멍이 든 여자의 허벅지를 거칠게 붙잡았다. 여자는 저항했지만 돌아오는 건 폭력이었다. 남자의 거센 주먹질에 여자는 절망과 고통이 점철된 비명을 내질렀고 다시 흐느꼈다.
얼마의 시간이 더 흘러갔을까?
상처로 가득한 여자의 몸을 짓누르고 있던 남자가 잠이 들었다. 그제야 남자의 몸 아래 짓눌려 있던 여자가 정신없이 코를 골아 대는 남자의 육중한 몸을 밀쳐 내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여자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멍해 보였다.
여자는 찢겨 나간 옷을 부여잡고 어떻게 해서든 벌거벗은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몸을 가려 보려 애를 쓰더니 이내 그것이 소용없음을 깨달았는지 비틀거리는 다리로 방구석에 놓인 서랍장으로 걸어갔다. 여기저기 해지고 낡은 옷을 꺼내 만신창이가 된 몸을 가린 여자가 다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몸을 옆으로 돌려 걸었다.
툭. 툭. 툭.
여자의 비척거리는 걸음이 지나간 자리엔 붉은 핏방울이 떨어졌다. 허벅지를 지나 종아리 사이로 붉은 선혈이 흘러내리며 방금 갈아입은 옷을 다시 물들이고 있었다.
“아가…… 진아…….”
핏기라고는 전혀 없는 창백한 여자의 희미한 음성이 들려오자 장롱 속에 숨어 있던 아이가 움찔했다. 작은 몸을 둥글게 말며 좁고 어두운 장롱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려 하다가 멈추었다.
평소와 다르게 숨을 죽이고 여자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무릎 사이로 파묻은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잠이 든 것처럼 보이도록 가만히 있었다.
여자는 한참 동안 고개 숙인 아이를 바라보았다.
“…… 미안해…… 미안해…….”
아이는 눈치챘다. 오늘에야말로 여자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떠나갈 것이란 걸.
여자는 너무나 오랜 세월 고통받았고 이곳에 붙잡혀 있었다. 여자의 아이 때문이었다. 아이는 자신이 여자를 붙잡아 두기 위한 악마의 도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악마가 늘 그렇게 소리쳤기 때문에.
‘아이가 내 손에 있는 한 네년은 절대 못 떠나. 아이는 절대 안 놔줄 거니까. 아이를 두고 도망치진 못하겠지. 아이는 널 옭아맬 수 있는 아주 좋은 족쇄야.’
‘아이를 데리고 도망쳐 봤자 네년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전처럼 넌 결국 나한테 돌아오게 되어 있어. 족쇄를 차고 네년이 뭘 할 수 있겠어. 흐흐.’
그렇게 말하며 악마는 비릿한 웃음을 길게 흘렸다. 그때마다 아이는 여자의 얼굴에, 눈에 떠오르는 절망감을 숱하게 봐야만 했다. 그리고 갈등하는 눈빛도.
하지만 여자는 주저했다. 아주 오랫동안 망설였다.
주저하고 갈등하는 동안 여자는 죽어 가고 있었다. 악마에 의해 파괴되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의 갈등과 주저하는 마음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아이는 자신을 부르는 여자의 간절한 음성에서, 붉은 핏물이 가득 고인 두 눈에서 결국 때가 왔음을 어렴풋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여자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여자의 부름에 고개를 들고 대답을 하면 여자는 오늘도 이 집을 떠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미안…… 더, 더는…… 못 견뎌…… 주, 죽을 거…… 이곳은…… 지옥이야.”
여자의 말은 옳았다. 아이도 알고 있었다. 이곳은 여자를 병들게 하고, 서서히 말라 죽게 하는 살인의 공간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도망쳐야 했다. 멀리멀리 떠나야 한다. 악마가 찾을 수 없는 아주 먼 곳으로.
상처투성이인 여자의 얼굴에선 여전히 붉은 핏물이 흘렀다. 여자는 한계에 달해 있었다. 여자의 영혼은 아주 오래전에 악마에 의해 파괴되었다. 악마에게 먹혀 버렸다. 악마는 여자를 영혼이 빠져나간 살아 있는 시체로 만들었다.
아이는 무릎에 파묻은 얼굴을 들지 않았다.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여자의 상처로 가득한 얼굴이 주는 공포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시 눈을 뜨면 이 끔찍한 악몽이 끝나기를 바랐다.
그리고 여자를 해방시켜 주고도 싶었다. 떠나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악마의 도구인 자신에게서. 여자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아이는 악마가 두려웠다. 그래서 잔인하게 여자를 때리는 악마에게 대들지 못했다. 여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용기가 자신에겐 없었다.
다시 비척비척하는 여자의 힘없는 걸음 소리가 작게 울렸다.
끼익. 탁.
문이 열렸다가 이내 닫혔다. 닫힌 문은 한참의 시간이 흘러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이제 방 안에는 코를 골아 대는 남자의 거친 숨소리만이 시끄럽게 울렸다. 아이는 무릎에 파묻은 얼굴을 들지 않고 작은 몸이 더욱 작아지도록 둥글게 말았다. 습한 장판 밑을 기어 다니는 공벌레처럼.
남자의 코에서,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더러운 숨소리를 피하려는 듯 작게, 더 작게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작은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 고사리처럼 작은 두 손을 펼쳐 자신의 입을 막은 채 아이는 숨죽여 흐느꼈다. 가늘게 떨리는 아이의 작은 어깨가 진한 슬픔을 표현하고 있었다.
결국, 여자가 떠났다. 자신을 남겨 두고. 여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여자가 떠났다는 사실이 두렵고 슬프면서도 한편으론 기쁘기도 했다. 이제 여자는 자유였으니까. 저 악마로부터. 악마의 끔찍한 폭력으로부터 마침내 자유로워진 것이다. 여자는 살아남기 위해서 도망쳤다. 악마에게서. 그리고…….
이젠 아이만이 혼자 남았다. 홀로 남아 악마와 대면해야 했다. 아이는 무서웠다. 그 끔찍한 현실이 주는 숨 막힐 듯한 두려움에 아이는 숨죽여 울었다.
“…… 엄……마…… 엄마…….”
아이는 떠나 버린 엄마를 부르며 작게 흐느꼈다. 잠들어 있는 악마가 깨어날까 두려워 숨을 죽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