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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오늘은 내게 있어서 꽤 괜찮은 날이었다.
여러 번 떨어졌던 자격증도 따고, 괜찮은 조건의 회사 면접 결과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구나. 문득 저번 면접에서 면접관이 긍정적인 미소를 짓던 것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졌다.
취업해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어디일까. 그동안 학교를 다니며 온갖 노력을 해 왔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모처럼 기분도 좋겠다, 나는 그동안 수고한 나에게 주는 보상으로 서점에 들러서 식물에 대한 책과 종이책으로 출간된 로맨스 판타지 <그 황녀님의 대공>을 구입했다.
“곧 있으면 결과가 나올 테니까 기다리면서 읽어야지. 그나저나 과연 결과가 어떻게 나오려나. 잘되겠지? 그래야 할 텐데…….”
나는 콧노래를 불렀다. 슬슬 결과가 나올 시간대였다. 그렇게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켜고 걷는데…….
빠르게 달려오는 트럭에 치이고 말았다.
<귀하는 ○○회사에 최종 합격 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흐려지는 시야로 켜진 휴대폰에 온 문자 메시지가 보였다.
저 망할 트럭은 왜 초록 불인데 달리고 난리야. 기껏 회사에 붙었는데.
차라리 문자를 못 봤다면 억울하지나 않지. 정말 얄궂은 일이었다.
모처럼 새로 사 온 책들이 너덜너덜하게 찢기는 모습도 흐릿하게 보였다. 망할, 아직 펼쳐 보지도 못한 새 책이란 말이야.
속으로 온갖 욕을 다 하던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정신이 드나요?]
은은하고 청아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드는 소리였다.
나는 눈을 떴다. 사방이 온통 새하얀 곳이었다.
“뭐야, 여기는 도대체…….”
답답할 정도로 하얗기만 한 공간을 둘러보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딘가에서 갑자기 한 소녀가 나타났다. 눈이 휘둥그렇게 변할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였다.
소녀는 붉은 튤립을 뒤집은 것 같은 모양의 드레스를 입고, 땋아서 올려 묶은 초록색 머리카락에는 붉은 장미 장식을 꽂고 있었다.
호박처럼 영롱한 금안에 호선을 그리고 있는 연분홍빛 입술이 돋보였고, 몸 주변에는 은빛 가루가 조금씩 떠다녔다.
비현실적인 모습에 나는 그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당신은 누구죠? 아니, 나는 방금 분명히 사고를…….”
물에 잠긴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일 수 없었다. 소녀는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꽃 정령이랍니다. 그리고 당신은 사고를 당한 것이 맞아요.]
“꽃 정령? 그게 뭔데요? 나 죽은 거 아니에요?”
[네, 맞아요. 당신은 죽었어요.]
“그럼 여긴…… 천국인가? 아니면 지옥?”
[둘 다 아니에요. 전 당신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찾아왔어요.]
기회라니? 무슨 기회?
분명 제대로 듣고 있는데도 말이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을 꽃 정령이라 칭한 소녀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풍성한 속눈썹이 팔랑였다.
[제 말을 믿고 말고는 당신의 자유예요. 그렇지만 사고 이후의 일, 궁금하지 않아요?]
“당연히 궁금하죠!”
그녀가 속삭이는 말은 유혹적으로 들렸다. 나도 모르게 절박하게 외쳤다.
꽃 정령이 손가락을 튕기자 눈앞에 거대한 거울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에 비친 것은 다름 아닌 내 장례식장의 모습이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너 취업 성공하면 나랑 같이 여행 다녀오기로 했잖아! 근데 왜 이런 모습으로 돌아온 건데…….
―그 트럭이 치고 도망갔다고? 이 천하의 나쁜!
―아이고, 우리 딸…….
―너 곧 있으면 취업할 거라고 좋아했잖아. 이런 식으로 가도 되는 거야?
―하늘도 참 무심하지. 하필이면 왜 열심히 살던 애를 데리고 간 거야?
―참으로 성실한 학생이었는데…….
시야가 흐릿해졌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통곡하는 엄마와 친구들, 지인들, 안타까워하는 교수님까지. 그 모습을 보는 나도 온몸을 휘감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는 정말로 끝난 거구나. 다들 보고 싶다…….”
[제가 이런 말을 한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도 않고,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기운 내세요.]
거울이 사라지고,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은 꽃 정령이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내가 지금 환상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여기가 사후세계 같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가요? 원래의 세계로, 사고가 발생하기 전의 시간으로요.]
“그런 일이 가능해요?”
평소라면 그런 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코웃음을 쳤을 텐데도 반사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몸을 움직일 수만 있었다면 꽃 정령을 덥석 붙잡았을지도 모른다.
꽃 정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충분히 할 수 있어요. 당신의 의지에 달린 일이에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후후, 간단해요. 그저 한 사람의 삶을 바꿔 주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주변 상황을 변하게 해 줘도 좋고요. 핵심은 ‘변화’예요.]
“한 사람의 삶…….”
[네. 가능하시겠어요?]
꽃 정령이 눈웃음을 치며 나긋나긋하게 물었다.
그래, 목숨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데 무슨 일인들 못 할까. 마치 달콤한 덫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나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올라 물었다.
“그런데 삶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꿔야 하는 거예요?”
[음, 그 답은 당신이 찾아야겠죠. 행운을 빌어요.]
“네? 저기요?”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도 전에 다시 시야가 암전되었다.
오늘은 내게 있어서 꽤 괜찮은 날이었다.
여러 번 떨어졌던 자격증도 따고, 괜찮은 조건의 회사 면접 결과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구나. 문득 저번 면접에서 면접관이 긍정적인 미소를 짓던 것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졌다.
취업해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어디일까. 그동안 학교를 다니며 온갖 노력을 해 왔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모처럼 기분도 좋겠다, 나는 그동안 수고한 나에게 주는 보상으로 서점에 들러서 식물에 대한 책과 종이책으로 출간된 로맨스 판타지 <그 황녀님의 대공>을 구입했다.
“곧 있으면 결과가 나올 테니까 기다리면서 읽어야지. 그나저나 과연 결과가 어떻게 나오려나. 잘되겠지? 그래야 할 텐데…….”
나는 콧노래를 불렀다. 슬슬 결과가 나올 시간대였다. 그렇게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켜고 걷는데…….
빠르게 달려오는 트럭에 치이고 말았다.
<귀하는 ○○회사에 최종 합격 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흐려지는 시야로 켜진 휴대폰에 온 문자 메시지가 보였다.
저 망할 트럭은 왜 초록 불인데 달리고 난리야. 기껏 회사에 붙었는데.
차라리 문자를 못 봤다면 억울하지나 않지. 정말 얄궂은 일이었다.
모처럼 새로 사 온 책들이 너덜너덜하게 찢기는 모습도 흐릿하게 보였다. 망할, 아직 펼쳐 보지도 못한 새 책이란 말이야.
속으로 온갖 욕을 다 하던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정신이 드나요?]
은은하고 청아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드는 소리였다.
나는 눈을 떴다. 사방이 온통 새하얀 곳이었다.
“뭐야, 여기는 도대체…….”
답답할 정도로 하얗기만 한 공간을 둘러보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딘가에서 갑자기 한 소녀가 나타났다. 눈이 휘둥그렇게 변할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였다.
소녀는 붉은 튤립을 뒤집은 것 같은 모양의 드레스를 입고, 땋아서 올려 묶은 초록색 머리카락에는 붉은 장미 장식을 꽂고 있었다.
호박처럼 영롱한 금안에 호선을 그리고 있는 연분홍빛 입술이 돋보였고, 몸 주변에는 은빛 가루가 조금씩 떠다녔다.
비현실적인 모습에 나는 그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당신은 누구죠? 아니, 나는 방금 분명히 사고를…….”
물에 잠긴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일 수 없었다. 소녀는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꽃 정령이랍니다. 그리고 당신은 사고를 당한 것이 맞아요.]
“꽃 정령? 그게 뭔데요? 나 죽은 거 아니에요?”
[네, 맞아요. 당신은 죽었어요.]
“그럼 여긴…… 천국인가? 아니면 지옥?”
[둘 다 아니에요. 전 당신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찾아왔어요.]
기회라니? 무슨 기회?
분명 제대로 듣고 있는데도 말이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을 꽃 정령이라 칭한 소녀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풍성한 속눈썹이 팔랑였다.
[제 말을 믿고 말고는 당신의 자유예요. 그렇지만 사고 이후의 일, 궁금하지 않아요?]
“당연히 궁금하죠!”
그녀가 속삭이는 말은 유혹적으로 들렸다. 나도 모르게 절박하게 외쳤다.
꽃 정령이 손가락을 튕기자 눈앞에 거대한 거울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에 비친 것은 다름 아닌 내 장례식장의 모습이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너 취업 성공하면 나랑 같이 여행 다녀오기로 했잖아! 근데 왜 이런 모습으로 돌아온 건데…….
―그 트럭이 치고 도망갔다고? 이 천하의 나쁜!
―아이고, 우리 딸…….
―너 곧 있으면 취업할 거라고 좋아했잖아. 이런 식으로 가도 되는 거야?
―하늘도 참 무심하지. 하필이면 왜 열심히 살던 애를 데리고 간 거야?
―참으로 성실한 학생이었는데…….
시야가 흐릿해졌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통곡하는 엄마와 친구들, 지인들, 안타까워하는 교수님까지. 그 모습을 보는 나도 온몸을 휘감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는 정말로 끝난 거구나. 다들 보고 싶다…….”
[제가 이런 말을 한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도 않고,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기운 내세요.]
거울이 사라지고,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은 꽃 정령이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내가 지금 환상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여기가 사후세계 같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가요? 원래의 세계로, 사고가 발생하기 전의 시간으로요.]
“그런 일이 가능해요?”
평소라면 그런 건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코웃음을 쳤을 텐데도 반사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몸을 움직일 수만 있었다면 꽃 정령을 덥석 붙잡았을지도 모른다.
꽃 정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충분히 할 수 있어요. 당신의 의지에 달린 일이에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후후, 간단해요. 그저 한 사람의 삶을 바꿔 주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주변 상황을 변하게 해 줘도 좋고요. 핵심은 ‘변화’예요.]
“한 사람의 삶…….”
[네. 가능하시겠어요?]
꽃 정령이 눈웃음을 치며 나긋나긋하게 물었다.
그래, 목숨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데 무슨 일인들 못 할까. 마치 달콤한 덫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나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올라 물었다.
“그런데 삶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꿔야 하는 거예요?”
[음, 그 답은 당신이 찾아야겠죠. 행운을 빌어요.]
“네? 저기요?”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도 전에 다시 시야가 암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