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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프롤로그
나는 책상에 앉아 SNS, 일명 ‘시간 낭비 서비스’를 즐겼다. 시간 낭비 서비스답게 정말 쓸모없는 게시물이 많았지만, 그 쓸모없는 게시물이 시험 기간만 되면 왜 이렇게 즐거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타임라인을 내리던 중이었다. 문득 시선을 끄는 게시물 하나를 발견했다.
『이 버튼을 누르면 내가 파는 장르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야기를 끝마치면 나올 수 있음. 단 완결 안 났으면 모름)』
공유하기=누른다 / 좋아요=안 누른다
빨간색 버튼 사진이 올라왔고 거기에 누를지 말지 정하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빨간색 버튼을 누르면 내가 파는 장르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게시물이었다. 하지만 시험 기간인 지금 이런 현실 도피성 게시물은 정말 재미있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이 게시물을 보여 주기 위해서 공유하기를 눌러 놓고 댓글을 달았다.
댓글: 야야. 나 버튼 누를까 고민 중임ㅋㅋㅋㅋ 시험 공부 개시름
➥너 이미 공유하기 눌렀잖아. 버튼 눌렀네 멀ㅋㅋ
➥➥이건 그냥 보여 주려고 공유하기 누른 거고. 아직 내 마음은 안 눌렀어 ㅋㅋㅋ
버튼을 누르네 마네 낄낄 웃으며 열심히 타자를 쳤지만 결국 끝에 가서는 시험에 관한 주제로 돌아왔다. 나와 친구들은 메시지를 몇 번 주고받다 아직 끝나지도 않은 시험 기간을 상상하며 노래방 가자, 술 마시자 등의 얘기를 하게 되었다.
한참을 SNS로 놀다 핸드폰을 손에 쥔 채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책상에는 아직 다 끝내지 못한 공부가 잔뜩 있었지만, 오늘 하루 밤새운다고 될 것 같지 않음을 느끼고 잽싸게 이불 위로 점프했다. 부드럽고 푹신한 이불이 피곤한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아, 세상 편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누운 나는 몸과 마음이 모두 편안해졌다. 시험 공부? 그게 뭔데! 포근한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 올렸다.
사람은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학교 선생님이고 주변 어른들에게 자주 들었고, 나는 착한 어른이(어린이+어른)로서 그 말을 착실하게 따랐다.
내일이면 시험이고 뭐고 다 끝나니까 친구들이랑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가서 스트레스도 잔뜩 풀어내야겠다는 달콤한 상상을 하며 눈을 감았다. 깜깜한 어둠이 찾아오자 풀숲을 거니는 작은 곤충들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내 자취방은 도시 한복판에 있는데.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무거운 잠을 이길 수 없었다. 자연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빠져들 때, 작게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버튼 눌렀다! 당첨!’
‘얘 목록에 있나?’
‘응응! 근데 이렇게 바로 보내도 돼?’
‘별로 상관없을걸.’
‘……얘 파는 장르가 딱히 없는 거 같은데.’
아 엄청 시끄럽네. 잘 거야! 조용히 해!
아, 깨겠다. 그냥 거기 최근에 본 책 아무 곳이나 보내자. 거기서 해피 엔딩을 이루면 되지!’
‘그래.’
‘잘 가…….’
가위라도 눌린 것일까, 나는 귓속이 아닌 머릿속에서 웅얼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쓰여 몸을 뒤척였다. 그러자 서로 대화를 나누며 시끄럽게 떠들던 소리가 금방 사라졌다. 그제야 나는 다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야 했는데…….
으, 추워. 분명 사방이 막힌 집에서 자고 있는데 서늘한 바람이 몸을 훑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창문 열어 놓고 잤나? 한창 단잠에 빠져들 때라 다시 일어나 창문을 닫는 것이 너무나도 귀찮았다. 비록 좁은 단칸방이었지만 일어나서 원인을 제거하는 것보다 도톰한 이불을 머끝까지 끌어 올리는 것을 선택했다.
손에 푹신한 이불만 잡혔다면, 그랬을 것이다.
눈을 감은 채 손을 더듬거리며 이불을 찾아봤지만 잡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내 몸 주변을 휘적거리며 이불을 찾는 내 손의 감각조차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제서야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눈을 떴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내 삭막한 자취방이 아니라 푸른 하늘이었다. ……푸른 하늘?
잠자는 사이에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눈앞에 하늘이 보이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해 멍하니 여유적적하게 흘러가는 하얀 구름을 바라봤다. 입을 살짝 벌린 채 푸른 하늘을 구경하니 저 멀리 날아간 넋이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집 나간 넋이 되돌아와도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넋이 제집으로 돌아와 봤자 내 몸은 집 나간 상태 그대로이기 때문이었다.
뭐야.
“뺙”
뭐야!!
“삐약!!”
뭐야!!!
“삐약!!!”
1장
“삐이이…….”
잠자는 사이에 모르는 장소에 덩그러니 놓인 나는 좌절감을 느꼈다. 영문 모를 이 상황에 불만이 가득 차 발로 땅바닥을 쿵쿵 내리쳤다.
뽀쟉뽀쟉.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아니 잠을 자긴 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익숙한 방이 아니라 청량한 하늘과 싱그러운 초록빛이 가득한 숲속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쭉 걸어갔다.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내 몸이 좌우로 갸우뚱 기울었다. 몸이 갑자기 왜 이러지? 나 어디 아픈가?
누워 있던 몸을 막 일으켰을 때도 몸이 이상하게 뻣뻣해 하마터면 옆으로 넘어질 뻔했었다. 그때는 자다 일어나 평형 감각이 떨어진 줄로만 알았는데, 어째 손이고 발이고 온몸이 내 육체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머리를 굴려 생각을 정리해 보려 노력했지만, 집중하려 하면 갑자기 몸에서 기운이 쭉 빠졌다. 마치 차단이라도 된 듯, 내 머릿속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언가에 의해 막힌 것처럼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간단한 사고밖에 할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상황 탓에 그런 것인가 싶어 일단은 생각을 멈추고 앞으로 걸어갔다.
이곳은 너무나도 신기했다. 땅에 자라 있는 초록색 풀들이 내 몸통만 했고 주변에 있는 나무들은 내 눈높이보다 몇백 배는 더 높아 보였다. 그 때문에 앞으로 걸어갈 때마다 거대한 풀들이 내 몸에 부딪쳤고 자칫 잘못하면 눈알을 찌를 것만 같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것투성이다.
혹시 난 아직도 꿈속인가?
“삐익?”
그래! 생각해 보니 말도 안 되잖아? 어떻게 풀들이 내 몸만큼이나 크고 나무들이 저렇게 하늘을 찌를 듯이 커?
그러고 보니 원래 꿈에선 몸이 내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법이다. 꿈에 관한 주제로 친구들과 한 번씩 얘기해 보면 다들 물속에 갇힌 것처럼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을 때가 있다고 했다. 나도 몇 번 경험해 보았고. 물론 이렇게 의식이 뚜렷한 적은 처음이지만…….
“삑삑.”
아까부터 내 귀에 삑삑 소리도 들리고. 꿈속의 숲속이라 새들이 참 많은가 보다. 자꾸 삑삑 소리가 들리니 귀를 후비고 싶어진다.
나는 뻣뻣한 내 몸을 이끌고 앞으로 쭉 걸어 나갔다. 하지만 이 세계가 너무 넓은 건지 아니면 꿈속이라 그런 것인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헥헥, 지친 숨을 내쉬며 도도도도 빠르게 다리를 굴려 달려 나갔다. 이 미친 꿈! 숨이 왜 이렇게 차.
헉헉대며 달린 끝에 내 체력이 다 떨어지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을 즘,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삑!”
이것밖에 못 달렸어?! 뭐 이래!
나는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아까부터 눈여겨봤던 나무는 내 뒤에 조금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되어 먹은 세상이야. 에휴. 아무리 걸어도 거리가 멀어지지 않자 힘이 빠져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물론 꿈이라 그런지 어깨가 없는 느낌이었지만.
그렇게 쉬지 않고 멍하니 걸어가던 중이었다. 불현듯 내 몸속에서 거대한 반응이 느껴졌다.
큰일이다.
“삐.”
배가 고프다.
“삐이…….”
너무 걸었는지 다리에 힘도 없어 결국 털썩, 주저앉았다. 마침, 내 뒤에 큰 바윗덩이가 하나 있어 등을 기대 쉴 수 있었다.
꿈인데 이렇게 배가 고프다니. 정말로 현실성 있는 꿈속이었다.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게 자각몽이라는 거겠지? 언제 꿈속에서 깰 수 있을까.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느긋하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드넓은 푸른 하늘에 솜사탕 같은 구름. 그리고 마름모 형태의 그물이…….
그물?
“삑?”
그렇게 나는 동물 매매상에게 잡혔다. 커다란 그물에 잡히고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으로 철창에 넣어진 뒤에야 깨달았다.
내가 새였다니, 미친 세상아.
*
그럴싸한 반항 한번 못 해 보고 착실하게 동물 매장으로 이송됐다. 가게는 크진 않았지만 난생처음 보는 많은 동물이 갇혀 있었다. 다들 나와 같은 신세인지 좁은 철창 안에서 얌전히 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이 상황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가만있을 수 없었다.
가게 밖에 전시된 나는 빠르게 고개를 휙휙 돌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런 나를 보고 다가와 빤히 구경하다가 홀린 듯 가게에 들어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들은 이 가게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얘기를 나누다 떠났다. 그동안 나는 눈만 끔뻑끔뻑 뜨며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꿈인가?
그렇게 멍을 때리며 며칠이 지났다. 내내 깊은 수모를 견뎌 온 나는 이제 이성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푸드닥푸드닥! 철컹철컹.
동물 매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열정적으로 철창을 물어뜯는 나를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철창에 갇힌 나는 극도의 분노에 휩싸여 머리를 식힐 수 없었다. 몸을 이리저리 씰룩거리며 이곳저곳 노려보았다.
뭘 봐! 뭘 봐!
“삑! 삐약!”
보지 마! 물어뜯을 거야!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사납게 짖었다.
내가 새라니! 내가 새라니! 나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이 거대한 화를 참을 곳이 없어 철창만 열심히 물어뜯었다. 하지만 시끄러운 소리만 가득할 뿐 달리 변하는 것은 없었다.
한참을 혼자 철창을 물어뜯다 제풀에 지쳐 주저앉았다. 털썩 주저앉고 힘겹게 고개를 숙여 아래를 바라보자 짧고 가는 새다리가 보였다.
“삐약…….”
나는 막 이곳에 잡혀 왔을 때만 해도 꿈속이라 생각했다. 해서 한숨 깊게 잠을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좁은 철창에 잡힌 지 며칠이 지나도 상황은 바뀌는 것이 없었다. 꿈에서 깨지 않았다. 밤낮이 몇 번 바뀌고 나서야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