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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분을 못 이긴 나는 부들부들 떨며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그걸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주인장에게 물었다.
“저 새 거품 무는데요?”
“성격이 좀 나쁩니다. 하하.”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괜찮나요?”
“하하. 분노에 차 있어서 그렇습니다.”
누가 성격이 나빠!
“삑! 삐야악!”
나는 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눈을 뒤집고 철창을 물어뜯었다. 손님은 눈썹을 이상하게 휘며 잠시 쳐다보다 슬금슬금 멀어졌다. 주인장이 떠나가는 손님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선 나의 앞에 다가왔다. 허리를 숙여 철창 안에 있는 나를 관찰하는데, 그 시선이 몹시 불손했다.
뭘 봐!
나는 분노에 찬 눈으로 주인장을 노려보았다. 사납게 치켜뜬 눈으로 쏘아보자 주인장은 흠, 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런 새는 처음 본다니까. 생긴 건 귀여운데 까다로운 건 세계 제일이야.”
이걸 어디다 팔지. 작게 중얼거린 그가 엄지와 검지로 턱을 쓸었다.
나는 주인장이 하는 말을 듣고서 보란 듯이 고개를 픽 돌렸다. 그러자 주인장은 큭큭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겨우 되찾은 조용한 분위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밥통 앞으로 통통 뛰어갔다. 배고프니 밥이라도 먹어야지. 이대로 죽으면 뭣도 안 되니까.
밥통 안에 수북이 쌓여 있는 작은 사료를 입에 넣었다. 바삭바삭, 건조한 사료는 내 입 안에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무척 맛없는 비스킷 같은 식감이었다.
맛이라도 있으면 주인장의 엥겔 지수를 높일 각오로 잔뜩 먹을 텐데 사람이었던 나한테는 무(無)맛에다가 오래 씹으면 쓰기까지 했다. 이런 쓰레기 같은 것을 먹다니. 배를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눈물을 쥐어짜며 입에 넣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다 지나가고 어둠이 찾아왔다. 내 주변에 있는 동물들은 다들 잠에 빠져들어 고운 숨소리를 내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멍하니 앉아 천장을 바라보았다.
“삐약.”
언제 집에 가냐.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나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걸까.
요새 밤만 되면 내 마음속에는 어지러운 상념들이 가득했다. 이곳에 오기 전, 하루만 지나면 시험 기간이 끝나는 날이었고 바로 그날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래방 가서 미친듯이 노래를 부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왜 하루아침에 새의 몸이 되었을까?
낮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복장도 무슨 헐리웃 영화에나 나오는 옛날 것 같았다. 게다가 내가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옷감을 쓰는 것 같았다.
이 세상에 한국은 존재하긴 할까? 이 상황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타파해야 할지 깊게 고민하고 싶었지만 여기 온 첫날부터 내 막힌 사고는 원활하게 뚫리지 않았다. 조금만 머리를 써도 집중력이 떨어지고 피곤해진다. 머리가 작아져서 그런가…….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시험 첫날이어도 좋았다. 그냥 적당히 밤새워서 시험 공부 하고, 집중 안 되면 SNS 하면서 친구들과 수다 떨고 노는 건데. 그러다가 피곤해지면 침대에 누워 SNS 즐기다 쥐도 새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 것이다.
하아. 한숨을 깊게 내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많은 친구가 있던 건 아니었지만 참으로 그리웠다.
나 실종된 거 알고 있겠지? 포털 사이트에도 내 얘기 올라가고 SNS에도 내 전단지 돌고 있겠지?
……SNS?
그러고 보니,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무언가…… 뭔가 한 거 같은데…….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열심히 생각했다. 지금 당장 떠올리지 않으면 영원히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뭐지. 뭐였지. 친구들과 같이 얘기하면서…….
그 순간, 한 게시물이 머릿속에서 번쩍하고 스쳤다.
『이 버튼을 누르면 내가 파는 장르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야기를 끝마치면 나올 수 있음. 단 완결 안 났으면 모름)』
공유하기=누른다 / 좋아요=안 누른다.
설마…… 정말로……? 하지만 말도 안 되는걸. 아니, 지금 와서 말도 안 될 게 뭐가 있어.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말도 안 되는걸.
나는 힘없이 눈만 끔뻑끔뻑 떴다. 새 머리라 그런지 돌아가지 않는 두뇌를 최대한 풀가동해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그제야 겨우 무언가가 연결되기 시작했다. 평상시 같았으면 웃고 넘어갔을 가정이었지만 현실이 되자 가볍게 넘길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과부하가 걸린 머리를 부여잡고 뒤로 발라당 누워 뒹굴뒹굴 몸부림을 쳤다.
“삐이이익! 삐약!”
아이고! 아이고오! 억울해 죽겠네!
푸드덕푸드덕, 철창 안에서 내가 나뒹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작은 공간에서 정신없이 이리저리 부딪치느라 가게 위층에서 누가 내려오는지도 눈치챌 수 없었다.
*
물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온 주인장은 시끄러운 새장 소리에 고개를 돌려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주먹만 하게 작은 새 한 마리가 새장 안에서 정신없이 나뒹굴고 있었다. 또 그 새다.
‘미친 조류 녀석…….’
처음 데려왔을 때는 곱게 잡히기에 성질이 더러운 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새의 성격은 까칠의 극을 찍고 있었다. 이제는 어디까지 더러워지려나 궁금해질 정도였다.
가게 구석에 있는 물동이에서 물을 뜨자 그 소리를 들었는지 뒹굴던 새가 움직임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봤다. 순간 뒷목이 서늘했다. 저 작은 새가 뭐라고. 머쓱해지는 동시에 또 한바탕 난리를 쳐 댈까 걱정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새는 그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눈도 깜빡이지 않는 것이 이제는 거의 다 사장된 마법이라도 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난리를 피우는 녀석이 조용하니 괜히 안쓰러워 보여 컵을 내려놓고 새에게 다가갔다. 새의 시선이 자신을 따라 움직였다. 새장 앞에 서서 손가락을 내밀어 자그마한 새를 찔러 보았다.
“괜찮냐? 왜 이러고 있어. 아까처럼 난리라도 피우지.”
“뺙.”
새는 소통이라도 하는 것처럼 대답했다. 손가락을 살살 움직여 문질문질 건드려 봤지만 새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답이라도 하니 괜찮은 거겠지. 혀를 작게 차고 다시 잠을 청하러 가게 위로 올라갔다.
“삐약…….”
등돌려 가는 가게 주인의 뒤에선 울먹이는 새의 목소리가 안타깝게 울려 퍼졌다.
*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철창을 물어뜯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주 재밌구먼. 가녀리게 비명을 지르는 철창을 무시하고 딱딱한 부리로 매섭게 공격했다. 정신없이 혼자 난리를 피우는데 어쩐지 오늘따라 다른 가게 분위기에 천천히 행동을 멈추었다.
뭐지. 오늘은 더 어수선하네.
고개를 갸웃 기울이고 눈을 깜박이다가 반대편으로 총총 뛰었다. 철창 사이로 밖을 보니 매장 주인도 그렇고 알바생으로 보이는 친구도 이것저것 짐을 싸고 있었다. 뭔가 어디로 가는 듯한…….
어디 가나?
눈을 깜빡이며 멍하니 짐을 서둘러 싸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자 알바생이 웬일로 조용한 나를 보고 의아했는지 성큼성큼 다가와 살며시 눈을 마주쳤다. 이어서 철창 사이로 손가락 하나가 쑥 들어왔다. 이때다! 나는 냉큼 부리로 찍어 내렸다.
“아얏!”
“삑!”
나는 의기양양하게 짧은 날개를 휙휙 흔들었다. 쪼인 손가락이 따가운지 알바생이 다른 손가락으로 열심히 문지르는 게 보인다. 재밌다! 재밌다! 까르륵, 어린아이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삑삑! 삐이익!”
승리의 몸짓으로 몸을 씰룩쌜룩 흔들었다. 알바생은 그런 나를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다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웃어?
몸을 흔들던 걸 멈추고 고개를 갸웃 기울인 채 알바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잠시 큼흠흠! 하며 웃음을 가다듬고는 뒤에서 무언가 정리를 하는 주인장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둘이 속닥속닥 조용히 얘기를 나누더니 주인장이 내 앞으로 다가온다.
뭐야? 고개를 반대쪽으로 갸웃하는 순간, 그가 옆에 놓여 있던 천 하나를 높이 들어다 내 새장을 그대로 덮었다.
“삐익?”
순식간에 주변이 캄캄해졌다. 내 철창을 덮은 천 때문에 빛이 다 차단됐다. 뭐지? 왜 천을 덮지? 평소 주인장이 하던 행동이 아니어서 불안감이 찾아왔다. 어쩔 줄 모르고 제자리에 서서 총총총 뛰어다녔다. 뭘 하려고 이러는 걸까?
아무래도 뛰어다니는 걸로는 불안감을 잠재울 수 없어 철창을 물어뜯었다.
끼끽. 끼긱.
천 치워 봐! 치워 봐!
하지만 아무리 시끄럽게 굴어도 천은 치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야가 차단되어 주변에 주인장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바쁜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만 가득했다.
털썩.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뭐지. 너무 까불어서 날 어딘가에 버릴 속셈인가. 그렇게 망연자실한 채 바닥에 누워 어두컴컴한 공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버릴 거면 방생해 줘…….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내가 어딘가에 들려 가고 있단 것을 깨달았다. 철창이 좌우로 흔들려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삐익! 삐이익!”
멀미 나!
작은 항의를 하자 흔들리던 것이 멈췄다. 어딘가에 내려놓는 느낌이 났다. 가만히 앉아 고개만 뻣뻣이 치켜들고 있자 천이 슬쩍 걷어졌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커다란 주인장의 얼굴과 바깥의 풍경이었다. 조금 더 앞으로 가 살펴보니 짐을 실을 수 있는 마차가 그의 등 뒤로 엿보였다.
“뺙! 뺙뺙!”
어디 가는 거야?
다리를 들어 사납게 탕탕 내려치니 그의 한쪽 눈썹이 찌푸려졌다. 뭐라 작게 중얼거렸지만 거의 옹알이 수준이라 잘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한 거야? 나 어디 가? 알아들을 리 없겠지만 삐약삐약 물음을 던졌다.
“얌전히 있어라~”
역시 그는 내 물음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곧바로 다시 천을 덮었다.
“삐약…….”
또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분노가 차올랐다.
보여 주겠다. 작은 새가 분노하면 어떻게 되는지.
분을 못 이긴 나는 부들부들 떨며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그걸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주인장에게 물었다.
“저 새 거품 무는데요?”
“성격이 좀 나쁩니다. 하하.”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괜찮나요?”
“하하. 분노에 차 있어서 그렇습니다.”
누가 성격이 나빠!
“삑! 삐야악!”
나는 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눈을 뒤집고 철창을 물어뜯었다. 손님은 눈썹을 이상하게 휘며 잠시 쳐다보다 슬금슬금 멀어졌다. 주인장이 떠나가는 손님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선 나의 앞에 다가왔다. 허리를 숙여 철창 안에 있는 나를 관찰하는데, 그 시선이 몹시 불손했다.
뭘 봐!
나는 분노에 찬 눈으로 주인장을 노려보았다. 사납게 치켜뜬 눈으로 쏘아보자 주인장은 흠, 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런 새는 처음 본다니까. 생긴 건 귀여운데 까다로운 건 세계 제일이야.”
이걸 어디다 팔지. 작게 중얼거린 그가 엄지와 검지로 턱을 쓸었다.
나는 주인장이 하는 말을 듣고서 보란 듯이 고개를 픽 돌렸다. 그러자 주인장은 큭큭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겨우 되찾은 조용한 분위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밥통 앞으로 통통 뛰어갔다. 배고프니 밥이라도 먹어야지. 이대로 죽으면 뭣도 안 되니까.
밥통 안에 수북이 쌓여 있는 작은 사료를 입에 넣었다. 바삭바삭, 건조한 사료는 내 입 안에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무척 맛없는 비스킷 같은 식감이었다.
맛이라도 있으면 주인장의 엥겔 지수를 높일 각오로 잔뜩 먹을 텐데 사람이었던 나한테는 무(無)맛에다가 오래 씹으면 쓰기까지 했다. 이런 쓰레기 같은 것을 먹다니. 배를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눈물을 쥐어짜며 입에 넣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다 지나가고 어둠이 찾아왔다. 내 주변에 있는 동물들은 다들 잠에 빠져들어 고운 숨소리를 내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멍하니 앉아 천장을 바라보았다.
“삐약.”
언제 집에 가냐.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나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걸까.
요새 밤만 되면 내 마음속에는 어지러운 상념들이 가득했다. 이곳에 오기 전, 하루만 지나면 시험 기간이 끝나는 날이었고 바로 그날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래방 가서 미친듯이 노래를 부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왜 하루아침에 새의 몸이 되었을까?
낮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복장도 무슨 헐리웃 영화에나 나오는 옛날 것 같았다. 게다가 내가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옷감을 쓰는 것 같았다.
이 세상에 한국은 존재하긴 할까? 이 상황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타파해야 할지 깊게 고민하고 싶었지만 여기 온 첫날부터 내 막힌 사고는 원활하게 뚫리지 않았다. 조금만 머리를 써도 집중력이 떨어지고 피곤해진다. 머리가 작아져서 그런가…….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시험 첫날이어도 좋았다. 그냥 적당히 밤새워서 시험 공부 하고, 집중 안 되면 SNS 하면서 친구들과 수다 떨고 노는 건데. 그러다가 피곤해지면 침대에 누워 SNS 즐기다 쥐도 새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 것이다.
하아. 한숨을 깊게 내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많은 친구가 있던 건 아니었지만 참으로 그리웠다.
나 실종된 거 알고 있겠지? 포털 사이트에도 내 얘기 올라가고 SNS에도 내 전단지 돌고 있겠지?
……SNS?
그러고 보니,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무언가…… 뭔가 한 거 같은데…….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열심히 생각했다. 지금 당장 떠올리지 않으면 영원히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뭐지. 뭐였지. 친구들과 같이 얘기하면서…….
그 순간, 한 게시물이 머릿속에서 번쩍하고 스쳤다.
『이 버튼을 누르면 내가 파는 장르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야기를 끝마치면 나올 수 있음. 단 완결 안 났으면 모름)』
공유하기=누른다 / 좋아요=안 누른다.
설마…… 정말로……? 하지만 말도 안 되는걸. 아니, 지금 와서 말도 안 될 게 뭐가 있어.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말도 안 되는걸.
나는 힘없이 눈만 끔뻑끔뻑 떴다. 새 머리라 그런지 돌아가지 않는 두뇌를 최대한 풀가동해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그제야 겨우 무언가가 연결되기 시작했다. 평상시 같았으면 웃고 넘어갔을 가정이었지만 현실이 되자 가볍게 넘길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과부하가 걸린 머리를 부여잡고 뒤로 발라당 누워 뒹굴뒹굴 몸부림을 쳤다.
“삐이이익! 삐약!”
아이고! 아이고오! 억울해 죽겠네!
푸드덕푸드덕, 철창 안에서 내가 나뒹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작은 공간에서 정신없이 이리저리 부딪치느라 가게 위층에서 누가 내려오는지도 눈치챌 수 없었다.
*
물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온 주인장은 시끄러운 새장 소리에 고개를 돌려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주먹만 하게 작은 새 한 마리가 새장 안에서 정신없이 나뒹굴고 있었다. 또 그 새다.
‘미친 조류 녀석…….’
처음 데려왔을 때는 곱게 잡히기에 성질이 더러운 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새의 성격은 까칠의 극을 찍고 있었다. 이제는 어디까지 더러워지려나 궁금해질 정도였다.
가게 구석에 있는 물동이에서 물을 뜨자 그 소리를 들었는지 뒹굴던 새가 움직임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봤다. 순간 뒷목이 서늘했다. 저 작은 새가 뭐라고. 머쓱해지는 동시에 또 한바탕 난리를 쳐 댈까 걱정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새는 그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눈도 깜빡이지 않는 것이 이제는 거의 다 사장된 마법이라도 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난리를 피우는 녀석이 조용하니 괜히 안쓰러워 보여 컵을 내려놓고 새에게 다가갔다. 새의 시선이 자신을 따라 움직였다. 새장 앞에 서서 손가락을 내밀어 자그마한 새를 찔러 보았다.
“괜찮냐? 왜 이러고 있어. 아까처럼 난리라도 피우지.”
“뺙.”
새는 소통이라도 하는 것처럼 대답했다. 손가락을 살살 움직여 문질문질 건드려 봤지만 새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답이라도 하니 괜찮은 거겠지. 혀를 작게 차고 다시 잠을 청하러 가게 위로 올라갔다.
“삐약…….”
등돌려 가는 가게 주인의 뒤에선 울먹이는 새의 목소리가 안타깝게 울려 퍼졌다.
*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철창을 물어뜯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주 재밌구먼. 가녀리게 비명을 지르는 철창을 무시하고 딱딱한 부리로 매섭게 공격했다. 정신없이 혼자 난리를 피우는데 어쩐지 오늘따라 다른 가게 분위기에 천천히 행동을 멈추었다.
뭐지. 오늘은 더 어수선하네.
고개를 갸웃 기울이고 눈을 깜박이다가 반대편으로 총총 뛰었다. 철창 사이로 밖을 보니 매장 주인도 그렇고 알바생으로 보이는 친구도 이것저것 짐을 싸고 있었다. 뭔가 어디로 가는 듯한…….
어디 가나?
눈을 깜빡이며 멍하니 짐을 서둘러 싸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자 알바생이 웬일로 조용한 나를 보고 의아했는지 성큼성큼 다가와 살며시 눈을 마주쳤다. 이어서 철창 사이로 손가락 하나가 쑥 들어왔다. 이때다! 나는 냉큼 부리로 찍어 내렸다.
“아얏!”
“삑!”
나는 의기양양하게 짧은 날개를 휙휙 흔들었다. 쪼인 손가락이 따가운지 알바생이 다른 손가락으로 열심히 문지르는 게 보인다. 재밌다! 재밌다! 까르륵, 어린아이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삑삑! 삐이익!”
승리의 몸짓으로 몸을 씰룩쌜룩 흔들었다. 알바생은 그런 나를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다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웃어?
몸을 흔들던 걸 멈추고 고개를 갸웃 기울인 채 알바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잠시 큼흠흠! 하며 웃음을 가다듬고는 뒤에서 무언가 정리를 하는 주인장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둘이 속닥속닥 조용히 얘기를 나누더니 주인장이 내 앞으로 다가온다.
뭐야? 고개를 반대쪽으로 갸웃하는 순간, 그가 옆에 놓여 있던 천 하나를 높이 들어다 내 새장을 그대로 덮었다.
“삐익?”
순식간에 주변이 캄캄해졌다. 내 철창을 덮은 천 때문에 빛이 다 차단됐다. 뭐지? 왜 천을 덮지? 평소 주인장이 하던 행동이 아니어서 불안감이 찾아왔다. 어쩔 줄 모르고 제자리에 서서 총총총 뛰어다녔다. 뭘 하려고 이러는 걸까?
아무래도 뛰어다니는 걸로는 불안감을 잠재울 수 없어 철창을 물어뜯었다.
끼끽. 끼긱.
천 치워 봐! 치워 봐!
하지만 아무리 시끄럽게 굴어도 천은 치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야가 차단되어 주변에 주인장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바쁜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만 가득했다.
털썩.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뭐지. 너무 까불어서 날 어딘가에 버릴 속셈인가. 그렇게 망연자실한 채 바닥에 누워 어두컴컴한 공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버릴 거면 방생해 줘…….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내가 어딘가에 들려 가고 있단 것을 깨달았다. 철창이 좌우로 흔들려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삐익! 삐이익!”
멀미 나!
작은 항의를 하자 흔들리던 것이 멈췄다. 어딘가에 내려놓는 느낌이 났다. 가만히 앉아 고개만 뻣뻣이 치켜들고 있자 천이 슬쩍 걷어졌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커다란 주인장의 얼굴과 바깥의 풍경이었다. 조금 더 앞으로 가 살펴보니 짐을 실을 수 있는 마차가 그의 등 뒤로 엿보였다.
“뺙! 뺙뺙!”
어디 가는 거야?
다리를 들어 사납게 탕탕 내려치니 그의 한쪽 눈썹이 찌푸려졌다. 뭐라 작게 중얼거렸지만 거의 옹알이 수준이라 잘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한 거야? 나 어디 가? 알아들을 리 없겠지만 삐약삐약 물음을 던졌다.
“얌전히 있어라~”
역시 그는 내 물음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곧바로 다시 천을 덮었다.
“삐약…….”
또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분노가 차올랐다.
보여 주겠다. 작은 새가 분노하면 어떻게 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