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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나는 그 후로 미친 듯이 철창을 물어뜯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매우 시끄러웠고 주인장은 곧바로 나를 들어 어딘가에 놓았다. 내 직감이지만 아마 소리가 잘 안 들리는 구석에 박아 놓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새는 참지 않는다구.
스트레스도 풀 겸 오랜 시간 철창을 물어뜯은 끝에 마차가 멈춰 섰다. 어딘가에 도착한 듯했다. 그제서야 사나운 행동을 멈추고 얌전히 앉아 기다리니 내 철창이 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동물들의 소리도 약간씩 들리는 것을 보아 함께 옮겨 가고 있는 듯했다.
천이 덮여 있어 주변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어디기에 이렇게 분주해?
“뺙?”
내가 들어 있는 새장도 들어 올려지며 좌우로 흔들렸다. 거 소중하게 다뤄 주쇼! 멀미가 날 지경에 언짢음을 숨길 수 없었다. 삐약삐약 소리를 내며 새장을 들고 있는 사람이 부디 내 마음을 눈치채 주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이 많은 동물을 데리고 어디로 가는 걸까. 다들 무거운 것들을 옮기느라 그런 건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비록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두리번두리번 바쁘게 고개를 돌렸다.
마음 같아선 철창문을 열어 천을 치워 버리고 싶었다. 아, 그래. 내가 문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어렸을 적 키웠던 새가 철창문을 열고 나온 적이 있었다. 고모에게 얹혀 사는 입장이었어서 새를 작정하고 키웠던 것은 아니고 잠깐 돌봐 줬던 거였다.
그때 그 새는 어떻게 나왔더라. 곰곰이 생각하며 부리를 벌려 입구를 잘근잘근 물었다. 위로 들어 올리며 머리를 집어넣으려 노력했지만, 자꾸만 타이밍을 놓쳐 실패했다.
정신없이 머리를 디미는 사이 흔들리던 철창이 서서히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곤 턱, 하고 어디 평평한 땅에 놓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우, 살았다. 새장 문을 물던 것을 멈추고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근데 공작님이 갑자기 동물을 왜 키우시겠대요?”
“글쎄…… 요새 귀족들 사이에서 동물 자랑하는 게 유행이잖아. 공작님도 그럴지 모르지.”
동물 자랑?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동물 매장의 주인과 알바생이 하는 말에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에이, 바르테스 공작가 소문이 어떤지 아시면서.”
“하하. 나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귀족들의 사정을 우리 같은 평민이 어찌 알겠냐.”
주인장과 알바생은 하하,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둘의 대화만 들었을 때 지금 귀족들에게는 동물들을 자랑하는게 유행이고, 그것 때문에 귀하신 공작님 댁에 나를 포함한 수많은 동물들이 배송 왔다는 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물들은 자랑하려고 키워지는 생명이 아니었다. 이기적인 사람 녀석들!
또 감정을 조절 못 하고 쒸익, 숨을 크게 내쉬었다. 혼자 그렇게 분노에 차 있을 때,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달칵, 문손잡이가 부드럽게 돌아가는 순간 옷감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군데군데에서 들렸다. 대번에 조용해진 걸 보면 아무래도 이 방에 있는 사람들이 서둘러 바른 자세를 취하는 모양이었다.
천으로 덮여 있어서 눈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그 공작이라는 작자가 문 너머에 있다는 것을. 곧 쥐 죽은 듯 조용한 공간에 딱딱한 구두 굽과 바닥이 마찰하는 정갈한 소리가 울렸다.
“생각보다 많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바짝 세웠다. 분위기를 압도할 만큼 낮게 깔린 목소리였다. 이 사람이 공작인 게 틀림없다. 인성은 몰라도 목소리는 인정하지.
“제가 공작 저하께 어울릴 만한 동물들을 생각하지 못해서 여러 마리 데려왔습니다.”
주인장에게서 처음 듣는 공손한 목소리가 들렸다. 짜식, 내숭은.
멀리서부터 이어져 온 발걸음 소리는 내 건너편 앞까지 도달했다. 이어서 털썩하며 의자에 앉는 소리가 들렸다. 귀족이라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무척 건방진 자세로 앉아 있을 것만 같았다. 천에 가려 보이진 않지만, 눈앞에 웬 느끼하게 생긴 놈이 서양화에서나 본 이상한 옷을 입고 재수 없게 앉아 있는 꼴이 그려졌다.
“그럼 우선 이쪽부터 보시지요.”
주인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가까운 곳에서 천이 촤락, 걷히는 소리가 들렸다.
크릉, 하고 짐승이 위협을 가하는 소리가 들렸다. 워메, 쟤 목소리 봐. 단단히 화난 거 같은데. 이빨도 드러내고 있겠는걸. 어떤 동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덩치가 클 맹수가 콧등을 씰룩이며 천적을 위협하는 소리가 들렸다.
쫄았을까? 기대는 순식간에 깨져 버렸다.
“교육이 덜 되었나 보군.”
공작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린 그 순간, 사방이 막혀 있는 방일 텐데도 불구하고 거센 바람이 불었다. 새장을 덮은 붉은 천이 흔들려 그 사이로 슬쩍 방 안이 보였다.
매서운 소리로 사람을 위협하던 동물의 으르렁 소리가 멈추고 끼잉, 가냘픈 울음이 흘러나왔다. 누가 들어도 잔뜩 겁먹은 소리였다.
“뺙.”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살짝 바람이 불었을 때를 제외하곤 천이 잘 덮여 있어 밖의 상황을 살펴볼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점은 아주 짧은 시간 사이에 위협하던 동물이 겁을 먹었다는 사실이었다.
설마 이상한 무기로 위협하고 있는 거 아니야? 동물을 자랑거리로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못된 사람들. 저 애처롭게 끼잉거리는 목소리를 들어 보라고! 하지만 무섭다며 몸을 잔뜩 낮추는 소리를 내는 녀석이 불쌍하지도 않은지 공작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이런 짐승은 키우지 않는 게 좋지. 다음.”
이 녀석 말하는 본새가 왜 그래! 나 때는 말이야! 동물들을 한없이 소중하게 대해 줬다고!
철창 안에서 혼자 푸드덕거리고 있을 때도 계속해서 천을 걷어 내며 동물들을 보여 주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물이 공작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낮게 깔린 차가운 말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탈락당했다.
매정하게 동물들의 가치를 매기는 공작의 태도는 동물을 사랑해서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정말 누군가에게 자랑하려고 살피는 것 같았다. 이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생명을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해 키운다니. 저런 목적으로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진실한 마음으로 동물을 돌봐 줄 것 같지 않았다.
거슬린다. 이 붉은 천 건너에 있을 귀족이.
나의 작은 새가슴이 분노로 인해 활활 타올랐다.
“삐약.”
저런 못된 녀석은 참을 수 없다. 나의 광란의 철창 부수기를 보여 주지. 각오하거라.
*
공작은 하루가 바쁘게 문제를 일으키는 어린 동생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골머리가 썩을 지경이었다. 두통이 밀려와 손을 올려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지끈거리며 아파 왔다. 그런 공작을 보며 집사가 물었다.
“공작 저하. 아무래도 오늘 일정은 내일로 미루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시종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공작은 눈을 꾹 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예. 그렇긴 합니다만…….”
“약속을 어길 순 없지.”
공작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속으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번에 동물 매매상을 부른 것은 다 자신의 나이 차이 크게 나는 동생 때문이었다.
최근 귀족들에게 동물에 관한 얘기가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처음 시작은 한 귀족가에서 시작되었으나 그게 점차 유행으로 번져 귀족들이 무분별하게 많은 동물을 사고 모으기 시작했다.
그 유행은 나이 많은 귀족들에게서 어린 귀족 자제들에게까지 퍼졌다. 며칠 전, 학교에 가 있는 동생이 자신의 라이벌 격 되는 귀족가의 자제가 아주 잘생긴 매 한 마리를 데려왔다고 자신도 멋진 동물이 갖고 싶다며 편지를 보냈다.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으나 동생이 원하니 어쩔 수 없이 한 마리 구매하려고 자신의 영지에서 제일 잘나가는 동물 매매상을 불렀다.
아직 생각이 어린 사춘기 동생에게 동물을 사 준다는 것은 상당히 걱정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원하는데 안 사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매일같이 두통을 안겨 주는 동생이었지만 자신이 데려온, 책임져야 할 가족이었다.
대신 동물은 자신이 고르기로 결정했다. 동생이 골랐다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으니.
그렇게 매매상이 가져온 동물들을 살펴보는데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에게 길들여지지 않을 동물들도 많았으며 길들여진다 해도 약점을 보이면 언제든 물어뜯을 것 같은 녀석들도 보였다. 사춘기 동생의 손에 들어갔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동물들을 넘기고 나니 볼품없는 녀석들만 남았다.
다른 동물 매매상을 알아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철창이 격하게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덜컹, 덜컹.
귀를 간지럽히는 곳에 고개를 돌려 시선을 두었다. 붉은색 천이 덮여 있는 무언가가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귀를 기울여 들어 보면 바박, 하고 무언가 발을 박차는 소리도 들렸다. 모양새를 봐서는 동물 매매상이 가져온 우리 같은데, 어째 다른 것들보다 크기가 현저히 작았다.
“저건 뭐지?”
공작은 고갯짓으로 당장이라도 엎어질 듯이 흔들리는 우리를 지목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불안정한 눈빛으로 눈치를 보던 매매상이 큼흠, 헛기침하며 대답을 망설였다.
뭔가 있는 건가? 공작은 손을 까딱 움직였다. 뒤에서 보고 있던 시종이 그 철창을 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철창은 잠시 조용해졌다가 다시 덜컹거리며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가 들어 있는 거지? 공작은 호기심이 생겨 관심 있게 그 철창을 바라보았다. 그런 공작의 마음을 눈치챈 매매상은 머뭇거리다 입을 뗐다.
“조금 작은 새인데, 아마…… 공작님 마음엔 들지 않을 겁니다.”
매매상은 멋진 외형을 가진 동물들이 기각당하고 나머지 남은 것들에게 관심이 떨어진 공작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다. 그래서 지금 이 철창 안에 있는 새 또한 공작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을 예측했다.
저 작은 철창 안에 있는 새는 현재 귀족들에게 유행하는 종류와는 많이 동떨어졌다. 주먹 크기만큼 작고 새하얗다. 다리도 짧아 손가락으로 콕 찌르면 옆으로 굴러갈 것만 같이 동그랬다.
결정적으로 성격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작은 주제에 무척 사나웠다.
나는 그 후로 미친 듯이 철창을 물어뜯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매우 시끄러웠고 주인장은 곧바로 나를 들어 어딘가에 놓았다. 내 직감이지만 아마 소리가 잘 안 들리는 구석에 박아 놓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새는 참지 않는다구.
스트레스도 풀 겸 오랜 시간 철창을 물어뜯은 끝에 마차가 멈춰 섰다. 어딘가에 도착한 듯했다. 그제서야 사나운 행동을 멈추고 얌전히 앉아 기다리니 내 철창이 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동물들의 소리도 약간씩 들리는 것을 보아 함께 옮겨 가고 있는 듯했다.
천이 덮여 있어 주변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어디기에 이렇게 분주해?
“뺙?”
내가 들어 있는 새장도 들어 올려지며 좌우로 흔들렸다. 거 소중하게 다뤄 주쇼! 멀미가 날 지경에 언짢음을 숨길 수 없었다. 삐약삐약 소리를 내며 새장을 들고 있는 사람이 부디 내 마음을 눈치채 주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이 많은 동물을 데리고 어디로 가는 걸까. 다들 무거운 것들을 옮기느라 그런 건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비록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두리번두리번 바쁘게 고개를 돌렸다.
마음 같아선 철창문을 열어 천을 치워 버리고 싶었다. 아, 그래. 내가 문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어렸을 적 키웠던 새가 철창문을 열고 나온 적이 있었다. 고모에게 얹혀 사는 입장이었어서 새를 작정하고 키웠던 것은 아니고 잠깐 돌봐 줬던 거였다.
그때 그 새는 어떻게 나왔더라. 곰곰이 생각하며 부리를 벌려 입구를 잘근잘근 물었다. 위로 들어 올리며 머리를 집어넣으려 노력했지만, 자꾸만 타이밍을 놓쳐 실패했다.
정신없이 머리를 디미는 사이 흔들리던 철창이 서서히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곤 턱, 하고 어디 평평한 땅에 놓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우, 살았다. 새장 문을 물던 것을 멈추고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근데 공작님이 갑자기 동물을 왜 키우시겠대요?”
“글쎄…… 요새 귀족들 사이에서 동물 자랑하는 게 유행이잖아. 공작님도 그럴지 모르지.”
동물 자랑?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동물 매장의 주인과 알바생이 하는 말에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에이, 바르테스 공작가 소문이 어떤지 아시면서.”
“하하. 나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귀족들의 사정을 우리 같은 평민이 어찌 알겠냐.”
주인장과 알바생은 하하,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둘의 대화만 들었을 때 지금 귀족들에게는 동물들을 자랑하는게 유행이고, 그것 때문에 귀하신 공작님 댁에 나를 포함한 수많은 동물들이 배송 왔다는 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물들은 자랑하려고 키워지는 생명이 아니었다. 이기적인 사람 녀석들!
또 감정을 조절 못 하고 쒸익, 숨을 크게 내쉬었다. 혼자 그렇게 분노에 차 있을 때,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달칵, 문손잡이가 부드럽게 돌아가는 순간 옷감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군데군데에서 들렸다. 대번에 조용해진 걸 보면 아무래도 이 방에 있는 사람들이 서둘러 바른 자세를 취하는 모양이었다.
천으로 덮여 있어서 눈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그 공작이라는 작자가 문 너머에 있다는 것을. 곧 쥐 죽은 듯 조용한 공간에 딱딱한 구두 굽과 바닥이 마찰하는 정갈한 소리가 울렸다.
“생각보다 많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바짝 세웠다. 분위기를 압도할 만큼 낮게 깔린 목소리였다. 이 사람이 공작인 게 틀림없다. 인성은 몰라도 목소리는 인정하지.
“제가 공작 저하께 어울릴 만한 동물들을 생각하지 못해서 여러 마리 데려왔습니다.”
주인장에게서 처음 듣는 공손한 목소리가 들렸다. 짜식, 내숭은.
멀리서부터 이어져 온 발걸음 소리는 내 건너편 앞까지 도달했다. 이어서 털썩하며 의자에 앉는 소리가 들렸다. 귀족이라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무척 건방진 자세로 앉아 있을 것만 같았다. 천에 가려 보이진 않지만, 눈앞에 웬 느끼하게 생긴 놈이 서양화에서나 본 이상한 옷을 입고 재수 없게 앉아 있는 꼴이 그려졌다.
“그럼 우선 이쪽부터 보시지요.”
주인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가까운 곳에서 천이 촤락, 걷히는 소리가 들렸다.
크릉, 하고 짐승이 위협을 가하는 소리가 들렸다. 워메, 쟤 목소리 봐. 단단히 화난 거 같은데. 이빨도 드러내고 있겠는걸. 어떤 동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덩치가 클 맹수가 콧등을 씰룩이며 천적을 위협하는 소리가 들렸다.
쫄았을까? 기대는 순식간에 깨져 버렸다.
“교육이 덜 되었나 보군.”
공작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린 그 순간, 사방이 막혀 있는 방일 텐데도 불구하고 거센 바람이 불었다. 새장을 덮은 붉은 천이 흔들려 그 사이로 슬쩍 방 안이 보였다.
매서운 소리로 사람을 위협하던 동물의 으르렁 소리가 멈추고 끼잉, 가냘픈 울음이 흘러나왔다. 누가 들어도 잔뜩 겁먹은 소리였다.
“뺙.”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살짝 바람이 불었을 때를 제외하곤 천이 잘 덮여 있어 밖의 상황을 살펴볼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점은 아주 짧은 시간 사이에 위협하던 동물이 겁을 먹었다는 사실이었다.
설마 이상한 무기로 위협하고 있는 거 아니야? 동물을 자랑거리로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못된 사람들. 저 애처롭게 끼잉거리는 목소리를 들어 보라고! 하지만 무섭다며 몸을 잔뜩 낮추는 소리를 내는 녀석이 불쌍하지도 않은지 공작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이런 짐승은 키우지 않는 게 좋지. 다음.”
이 녀석 말하는 본새가 왜 그래! 나 때는 말이야! 동물들을 한없이 소중하게 대해 줬다고!
철창 안에서 혼자 푸드덕거리고 있을 때도 계속해서 천을 걷어 내며 동물들을 보여 주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물이 공작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낮게 깔린 차가운 말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탈락당했다.
매정하게 동물들의 가치를 매기는 공작의 태도는 동물을 사랑해서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정말 누군가에게 자랑하려고 살피는 것 같았다. 이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생명을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해 키운다니. 저런 목적으로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진실한 마음으로 동물을 돌봐 줄 것 같지 않았다.
거슬린다. 이 붉은 천 건너에 있을 귀족이.
나의 작은 새가슴이 분노로 인해 활활 타올랐다.
“삐약.”
저런 못된 녀석은 참을 수 없다. 나의 광란의 철창 부수기를 보여 주지. 각오하거라.
*
공작은 하루가 바쁘게 문제를 일으키는 어린 동생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골머리가 썩을 지경이었다. 두통이 밀려와 손을 올려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지끈거리며 아파 왔다. 그런 공작을 보며 집사가 물었다.
“공작 저하. 아무래도 오늘 일정은 내일로 미루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시종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공작은 눈을 꾹 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예. 그렇긴 합니다만…….”
“약속을 어길 순 없지.”
공작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속으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번에 동물 매매상을 부른 것은 다 자신의 나이 차이 크게 나는 동생 때문이었다.
최근 귀족들에게 동물에 관한 얘기가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처음 시작은 한 귀족가에서 시작되었으나 그게 점차 유행으로 번져 귀족들이 무분별하게 많은 동물을 사고 모으기 시작했다.
그 유행은 나이 많은 귀족들에게서 어린 귀족 자제들에게까지 퍼졌다. 며칠 전, 학교에 가 있는 동생이 자신의 라이벌 격 되는 귀족가의 자제가 아주 잘생긴 매 한 마리를 데려왔다고 자신도 멋진 동물이 갖고 싶다며 편지를 보냈다.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으나 동생이 원하니 어쩔 수 없이 한 마리 구매하려고 자신의 영지에서 제일 잘나가는 동물 매매상을 불렀다.
아직 생각이 어린 사춘기 동생에게 동물을 사 준다는 것은 상당히 걱정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원하는데 안 사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매일같이 두통을 안겨 주는 동생이었지만 자신이 데려온, 책임져야 할 가족이었다.
대신 동물은 자신이 고르기로 결정했다. 동생이 골랐다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으니.
그렇게 매매상이 가져온 동물들을 살펴보는데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에게 길들여지지 않을 동물들도 많았으며 길들여진다 해도 약점을 보이면 언제든 물어뜯을 것 같은 녀석들도 보였다. 사춘기 동생의 손에 들어갔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동물들을 넘기고 나니 볼품없는 녀석들만 남았다.
다른 동물 매매상을 알아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철창이 격하게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덜컹, 덜컹.
귀를 간지럽히는 곳에 고개를 돌려 시선을 두었다. 붉은색 천이 덮여 있는 무언가가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귀를 기울여 들어 보면 바박, 하고 무언가 발을 박차는 소리도 들렸다. 모양새를 봐서는 동물 매매상이 가져온 우리 같은데, 어째 다른 것들보다 크기가 현저히 작았다.
“저건 뭐지?”
공작은 고갯짓으로 당장이라도 엎어질 듯이 흔들리는 우리를 지목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불안정한 눈빛으로 눈치를 보던 매매상이 큼흠, 헛기침하며 대답을 망설였다.
뭔가 있는 건가? 공작은 손을 까딱 움직였다. 뒤에서 보고 있던 시종이 그 철창을 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철창은 잠시 조용해졌다가 다시 덜컹거리며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가 들어 있는 거지? 공작은 호기심이 생겨 관심 있게 그 철창을 바라보았다. 그런 공작의 마음을 눈치챈 매매상은 머뭇거리다 입을 뗐다.
“조금 작은 새인데, 아마…… 공작님 마음엔 들지 않을 겁니다.”
매매상은 멋진 외형을 가진 동물들이 기각당하고 나머지 남은 것들에게 관심이 떨어진 공작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다. 그래서 지금 이 철창 안에 있는 새 또한 공작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을 예측했다.
저 작은 철창 안에 있는 새는 현재 귀족들에게 유행하는 종류와는 많이 동떨어졌다. 주먹 크기만큼 작고 새하얗다. 다리도 짧아 손가락으로 콕 찌르면 옆으로 굴러갈 것만 같이 동그랬다.
결정적으로 성격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작은 주제에 무척 사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