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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신위 1권(25화)
第十章 쌍익비상(雙翼飛上) - 나쁜 놈에겐 매가 약이지!(2)
그 뒤로 즐비하게 쓰러진 무사들의 몸은 미동도 없었다.
지나치고, 쓰러지고…….
그저 지루하도록 반복될 뿐이었다.
그걸 뒤에서 보고 크게 놀란 일조장이 물었다.
“대주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나도 모른다. 하나 눈이 달려 있고, 머리가 달려 있어 왜 저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는 알겠다.”
“그게 무엇입니까?”
막도길이 씹어뱉듯 말했다.
“저놈은 나를 노리고 다가오고 있다. 그 앞길을 막는 자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리고 있는 것이다.”
“하면 어서 놈을 쳐 죽여야지 않겠습니까? 이러다간 본대의 무사들이 남아나질 않겠습니다!”
“너는 보이느냐?”
“예?”
막도길이 버럭 소리쳤다.
“저놈이 무슨 수로 무사들을 쓰러뜨리고 있는지 보이느냔 말이다!”
그에 일조장이 움찔했다. 미처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 그것까진 모르고 있었다.
한데 다시 보니 과연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지나쳤을 뿐인데 무사들이 알아서 쓰러지는 광경만 볼 수 있었을 따름이다.
“이, 이게 대체?”
“이제 알겠느냐?”
일조장이 화급히 말했다.
“대주님! 어서 피신하십시오! 여기는 제가 막겠습니다. 그러니 어서…….”
평소 대주에 대한 충성심이 깊었던 일조장이었다.
막도길은 그의 충정이 담긴 눈을 응시하며 인상을 썼다.
막도길이 버럭 소리쳤다.
“나는 질풍청룡대의 대주다! 대주로서 수하를 죽음으로 내몰 수는 없다. 일조장은 가서 내 도를 가지고 와라!”
일조장은 이 쇠고집 대주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하는 수 없이 탁자 한쪽에 기대어진 커다란 도를 가지고 왔다.
막도길은 거도(巨刀)를 뽑아 들고는 도초(刀?, 도집)를 휙― 바닥에 내던졌다.
손아귀 가득 묵직함이 느껴졌다.
“후웁!”
호흡을 깊게 들이마신 막도길이 그대로 창문턱에 박차고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칼끝이 수직으로 치켜지며 살을 엘 듯한 도기(刀氣)가 폭풍처럼 일어났다.
콰아아아아!
꽈아아앙!
우레가 치는 듯이 굉음이 터지고 지축이 뒤흔들렸다.
흙먼지가 미친 듯이 피어올라 시야를 가렸다.
막도길은 낭패한 기색으로 재빨리 뒷걸음질을 쳤다. 전각에서 뛰어내리면서 휘두른 일도가 상대를 가르지 못한 것이다.
찰나지간 그 같은 일도를 피한 것이다. 이는 자신이 뛰어내림을 미리 알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막도길은 왼손을 앞으로 내저었다.
휘아아악―
그러자 한 줄기 강풍이 뿌연 흙먼지를 일시에 걷어 버렸다.
이윽고 드러난 연무장의 바닥은 방사형으로 굵직한 금이 퍼져 있었다.
그 앞에 선 젊은 청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히 막도길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 가공할 검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먹빛 검은 허리춤에서 달랑거렸다.
막도길이 사납게 울부짖으며 평생토록 연마한 거령벽도(巨靈劈刀)의 초식 중 절초인 거령파산(巨靈破山)을 펼치며 달려들었다.
“이노오오옴!”
젊은 청년은 태연히 뒷짐까지 지고 있었다.
언뜻 드러난 두 눈에는 서늘한 빛이 반짝였다.
쾅!
벼락 치는 폭음이 터졌다.
스스스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흙먼지 속에서 막도길이 눈을 부릅뜬 채 이를 갈아붙였다.
“대체 나와 무슨 원한이 있다고 이런 짓을 했느냐?”
젊은 청년이 히죽 웃었다.
“그건 당신이 더 잘 알 텐데?”
젊은 청년이 웃을 때마다 어깨가 들썩이자, 그의 하얀 손가락 사이에 잡힌 거도도 그 말이 옳다는 듯 위아래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방금 전의 일도를 단지 공수입백인의 수법으로 낚아챈 것이다.
“왜 죽였지?”
“……!”
막도길은 할 말을 잃었다.
젊은 청년이 다시 물었다.
“뭣 때문에 죽였지? 왜 그가 죽어야만 했지?”
막도길이 짐짓 시치미를 뚝 뗐다.
“누굴 말이냐? 내가 누굴 죽였다고 그러는 것이냐?”
젊은 청년의 눈빛이 한층 싸늘해졌다.
“금강백호대 대주 강만석.”
젊은 청년은 바로 주운이었다.
주운이 강만석의 복수를 하고자 이곳에 방문한 것이다.
“당신이 죽이라고 지시했다던데?”
“나는 그런 적 없다. 나는 분명 그 사실을 비밀로……!”
발작적으로 외치던 막도길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자신도 모르게 주운이 유도한 바대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이익! 이렇게 된 이상 네놈이 죽어 줘야겠구나!”
막도길이 한 모금 진기를 마시며 거도를 크게 휘둘렀다.
주운은 해일인 양 덮쳐 오는 부챗살 모양의 강기를 보면서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강기의 해일이 코앞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주운이 검지와 중지로 검결을 지어서 앞으로 천천히 내질러 갔다.
부우우우욱―
그러자 비단폭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부챗살 모양의 강기가 양쪽으로 쭉 갈라지며, 그대로 주운의 곁을 스치고 지나가 버렸다.
막도길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딪친 것도 받아넘긴 것도 아니었다.
찢었다. 강기를 찢어 버린 것이다. 이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찌 강기를 찢는단 말인가!
“대체 무슨 사술을 부린 것이냐?”
주운이 히죽 웃었다.
“저번에도 비슷한 걸 물어본 사람이 있었는데, 그때도 이렇게 말했었지. 사술은 무슨, 순수 실력이야.”
그에 막도길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막도길의 상식선에선 납득도, 이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걸 저토록 쉽게 지껄이는 데 대한 일종의 허탈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주운이 그를 쳐다보다가 한 발 다가섰다.
검결이 가볍게 허공을 가로지르는 순간,
푹!
막도길은 명치 어림이 따끔한 것을 느끼며 흠칫했다.
눈에 훤히 보이도록 직선으로 뻗어 왔고, 그다지 빠른 것 같지도 않았다.
한데 찔리는 순간 온몸이 마비되고 시야가 흐릿해졌으며 다리에 힘이 풀려 한쪽 무릎을 쿵! 하고 꿇고 말았다.
주운이 말없이 뒷짐을 진 채 내려다보았다.
대단한 덩치임에도 불구하고 한쪽 무릎을 꿇자 막도길이 주운 앞에 부복하고 고개를 쳐들고 있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막도길이 멍한 눈으로 도리질했다.
“이, 이럴 수가! 이럴 리가 없어!”
뇌에 자극을 줘 마비를 풀려는 심산이었다.
주운은 냉소하며 다리를 들었다.
뻐억!
막도길의 몸이 주운의 발길질에 이 장여 밖으로 훌훌 날아 땅바닥을 뒹굴었다.
발딱 일어선 막도길이 명치를 쓰다듬었다. 이제 마비가 풀린 모양이었다.
막도길이 이를 갈아붙이며 달려들었다.
“이 새끼!”
퍽!
막도길의 고개가 뒤로 홱 젖혀졌다.
막도길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다급히 뒷걸음질 쳤다. 코뼈가 으스러진 듯 납작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금세 그 주위가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주운은 태연히 주먹을 털고 있었다.
그에 분노한 막도길이 다시 한 번 거령파산의 도초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부우우욱―
하지만 강기는 여지없이 반쪽으로 갈라져 버렸다.
투캉!
반 토막 난 칼날이 허공에 떠오르더니 저만치 땅바닥 깊숙이 박혀 버렸고, 이번엔 찢어진 오른 손아귀를 왼손으로 부여잡은 채 막도길이 몸을 휘청거렸다.
“끄우으으으!”
마치 상처 입은 맹수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신음 소리가 악문 잇새로 흘러나왔다.
도저히 참기 어려웠다.
그저 주먹으로 맞았을 뿐인데, 아파도 너무 아팠다.
숫제 만년한철로 된 쇠주먹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만큼 단단했고, 거기서 전해지는 충격은 뼛속까지 스며들어 내부를 진탕시켰다.
주운이 턱을 쓰다듬었다.
“물어볼 게 좀 있어서 일부러 마비를 풀어 준 건데 잘도 알아서 덤비는군.”
마비가 된 상태에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주운은 가까이 다가서서 말했다.
“왜 죽였어?”
“주, 죽이는 데 딱히 이유가 필요한가? 그냥 죽였다.”
퍽!
“크으윽!”
복부에 발길질을 얻어맞은 막도길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다시 묻겠어. 왜 죽였어?”
“끄, 끈질긴 놈.”
뻐억!
“아아악!”
창자가 가닥가닥 조각나는 고통에 막도길이 새된 비명을 터뜨렸다.
“말해! 왜 죽였어?”
“마, 말하겠다. 하지만 그전에 조, 조건이 있다.”
주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봐.”
“기실 강만석과 나는 의견 차가 있어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나는 거병해 천사련을 치자는 강경파 중 한 명이었고, 강만석은 그에 반대하는 세력에 속해 있었지. 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고, 수하를 시켜 죽일 수 있었다. 나, 나는 그저 천사련을 소탕하고 제왕성을 더욱 부강하게 할 생각으로…….”
“그래서?”
“뭐?”
“그래서 사람을 죽인 건가? 단지 자신과 반대되는 이념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주운의 눈빛에 한기가 서렸다.
주운이 일어서며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자신의 뜻을 앞세워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갈 테지. 수십, 수백 아니, 수천 명이라 할지라도 그 뜻과 부합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베어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야.”
“소, 손속에 자비를 두시게. 이제야 내 잘못을 깨달았네. 내가 잘못 생각했어! 남은 인생을 속세를 등지고 중이 되어 속죄하며 살겠네.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게……. 약속하지 않았나?”
주운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언제?”
막도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고 보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마음이 조급해 조건을 말하지 못한 것이다.
주운이 한 발 다가섰다.
“히, 히익!”
주운은 냉소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피는 피로, 목숨은 목숨으로.
키이이이잉―
주운의 묵궁이 허공을 가르며 울부짖었다.
먹빛 검강이 막도길의 몸을 집어삼켰다.
콰그작!
***
주운은 종전에 막도길이 술을 마셨던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는 조아봉과 일, 삼, 육조 조장들이 있었는데, 묘하게도 조아봉이 그들을 제압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일조장이 분개해 외쳤다.
“조아봉! 네놈이 우리를 배신하다니!”
믿어 의심치 않았던 조아봉의 배신에 치를 떨었다.
조아봉이 실소를 흘렸다.
“이보게, 운. 이놈들은 아직도 내가 조아봉인지 뭔지 하는 놈으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야.”
주운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자네 실력이 어디 가겠나? 천면유객으로 명성이 자자한 자네의 역용술은 십년지기인 나조차 식별하기 어렵다구.”
“하하하!”
조아봉이 큰소리로 웃더니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스윽―
그러자 그의 얼굴이 흐물흐물 흘러내리는가 싶더니 이내 전혀 다른 얼굴로 변했다.
흉측한 흉터가 가로지르는 험악한 사내가 서글서글한 눈매에 뽀얀 피부의 준미하기 이를 데 없는 청년으로 변한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천면유객이자 무영십익 중 구익인 소천절(蕭千絶)의 원래 얼굴이었다.
“오랜만에 역용을 했더니 근육이 다 얼얼하네.”
“바쁠 텐데 이리 급히 불러 미안하다.”
소천절이 그게 무슨 소리냐며 정색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만석이가 살해당했다는데 당연히 만사 다 제치고 와야지. 그게 동료고, 친우잖아? 설마 만에 하나라도 내가 그런 일을 당했으면 모른 척할 셈이었어?”
“그래, 미안하다. 내가 실언을 했어.”
“알았으면 됐다. 참, 그리고 이거.”
소천절이 품속에서 서찰 하나를 꺼내 건네자, 주운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서찰을 뜯어보았다.
“이건?”
주운의 낯빛이 굳었다.
소천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래도 이것으로 끝이 아닌 것 같다.”
주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간을 좁혔다.
서찰의 내용은 대단히 놀라운 것이었다.
어쩌면 강만석의 죽음에는 수많은 실들이 얽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거 골치 아프군.’
하나를 풀자 이번엔 열 개가 한꺼번에 몰려 들어온 것만 같았다.
얽히고설킨 실타래의 끝과 끝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마치 구절양장을 크게 확대한 미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이 개자식들!”
삼조장이 두 팔을 묶었던 밧줄을 풀어냈는지 벌떡 일어나 달려들었다.
퍽!
동시에 삼조장의 턱이 돌아갔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휘두른 소천절의 주먹에 얻어맞은 것이다.
소천절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직 그럴 힘이 남아 있었나?”
소천절이 말했다.
“얘네, 어떻게 할까?”
그에 일, 삼, 육조 조장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소천절의 스산한 눈길에 자신도 모르게 압도당한 것이다.
주운이 천천히 묵궁을 검초째로 뽑아 들었다.
묵궁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나쁜 놈들에겐 매가 약이지!”
바로 그 순간,
“멈춰라!”
일단의 무리가 방 안으로 날아들었다.
소천절이 놀란 듯 중얼거렸다.
“흑밀부?”
그에 흑색 피풍의를 걸친 복면인들 중 가운데 서 있는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음산한 눈빛을 발하며 말했다.
“그렇다. 순순히 따라오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
주운이 대뜸 물었다.
“이번엔 또 누구야?”
흑밀부 수장이 한 발 다가서며 말했다.
“백리소 군사의 명이다!”
<『무영신위』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