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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신위 1권(24화)
第九章 통천문(通天門) - 여기서 깔끔하게 청산하자(3)


복면 장한은 상대가 누군지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무엇인가 원하는 게 있을 거라고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나는 분명 내 처소에서 자고 있었는데…… 대체 뭐 하는 놈이냐? 어떻게 날 이런 곳으로 납치할 수 있었지?’
복면 장한이 대강이나마 머리를 굴린 뒤 화급히 물었다.
“워,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 말만 하시오. 내 돈을 요구하면 원하는 만큼 다 드리겠소. 그러니 제발…….”
하나 돌아오는 것은 벌겋게 달아오른 쇠꼬챙이뿐이었다.
“크어어어억!”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던 복면 장한의 복면 너머로 두 눈이 까뒤집혔다.
축 늘어진 복면 장한을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던 주운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양동이를 들었다.
촤아아악!
난데없는 물세례에 복면 장한은 다시금 정신을 차렸다가 이내 헛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웨엑! 우웨에엑!”
주운이 끼얹은 물.
그것은 뒷간에서 퍼 올린 오물이었던 것이다.
복면 장한의 몸은 오물로 목욕을 한 채 경련을 일으켰다. 오물의 역한 냄새와 모멸감에 넋이 쏙 빠진 것도 그러거니와 쇠꼬챙이에 지져진 부위에 오물이 닿자 이루 형용키 어려운 통증에 몸이 제멋대로 반응하는 것이다.
“이, 이제 그만…… 살려 줘…….”
그러나 복면 장한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다시 쇠꼬챙이를 집어 든 주운의 손이 앞으로 내뻗어졌다.
그와 동시에 복면 장한의 입에서는 다시 째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악!”
석실 안을 메아리치는 소름 끼치는 비명.
한 시진이나 끊이질 않던 비명이 마침내 잦아들었다.
덜컹.
주운은 말없이 쇠꼬챙이를 내팽개치고는 석실을 벗어났다.
주운이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에 서서히 구름이 모이더니 이내 태양을 가렸다.
구름은 물끄러미 주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돌아…….’
마치 강만석의 험상궂은 얼굴과 같은 구름이었다.
주운은 그 구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려라. 곧…….’
너의 한을 돌려주겠다.

***

고문 사흘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장장 네 시진 동안 계속되는 고문에 복면 장한의 몸은 벌집이 되었다. 지져지고, 고름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선혈이 전신을 검붉게 칠했다.
검붉은 피딱지가 붙은 흉하기 짝이 없는 몰골이었다.
아무리 살려 달라 애원해 봤자 소용없었다. 무어라 한마디 할라 치면 여지없이 몸을 지지는 쇠꼬챙이에 의해 이젠 비명을 지를 여력조차 없었다.
진력을 소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운은 멈추지 않았다. 일전에 음부뇌옥에서 반가원에게 당했던 고문을 그대로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마저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인세의 지옥이란 별칭을 가진 음부뇌옥의 고문답게 그 효과는 놀라울 만큼 대단했다.
“저, 저는 파렴치한 놈입니다! 남의 여자를 겁탈하고, 남의 것을 뺏고, 울며불며 매달리는 그들을 죽였습니다! 저는 나쁜 놈입니다! 아니, 천하의 개새낍니다! 왈왈! 왈왈! 으흐흑…….”
이젠 여태껏 자행했던 죄상을 낱낱이 불었다. 주운이 원하는 대답을 몰랐고, 주운은 묻지도 않았다. 하기에 생각나는 대로 자기가 한 악행들을 내뱉었다. 그중 상대가 원하는 것이 있길 바라면서.
한데도 주운이 묵묵부답, 사정없이 쇠꼬챙이를 종아리에 쑤셔 박자, 복면 장한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흘렸다.
“꺽, 꺼허억!”
그러다가 불현듯 무엇인가 떠올랐다.
“그, 그리고…… 그리고 최근 한 사람을 주, 죽였습니다. 그건 제가 원해서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코 제가 죽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쇠꼬챙이가 스윽 거두어졌다.
주운이 스산한 음성을 내뱉었다.
“누구지?”
“가, 강만석…… 금강백호대(金剛白虎隊)의 대주 강만석을 죽이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누구지?”
“예?”
“누구냐고 묻잖아!”
“지, 질풍청룡대 대주의 명령이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주운의 눈빛이 침잠하게 가라앉았다.
‘의외로 큰 놈이 걸려들었군.’
주운이 다시 물었다.
“뭣 때문이지?”
“모, 모릅니다.”
“그새 쇠꼬챙이 맛이 그리워졌나?”
복면 장한이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저는 단지 강만석을 죽이란 명령을 받았을 뿐, 그 외엔 아는 게 없습니다!”
“가담자는?”
“저, 저와 같은 질풍청룡대 소속 일, 삼, 육조 조장입니다.”
“그게 전분가?”
그러자 복면 장한이 다시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 뜻이었다.
스윽―
갑자기 복면 장한의 눈앞이 환해졌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눈이 등불에 적응하지 못해 잠시간 시력을 잃은 것이다.
이윽고 눈을 뜬 장한이 입을 쩍 벌렸다.
“너, 너는……?”
“오랜만이지?”
주운이 히죽 웃었다.
“이렇게 만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지. 우린 정말 악연인가 봐.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조아봉.”
조아봉.
그 이름을 들은 장한이 몸서리쳤다.
“네, 네놈…… 주운!”
장한, 조아봉이 고함을 질렀다.
“이런, 아직도 소리 지를 목청은 남아 있었나 보군. 이럴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진을 빼놓았을 텐데.”
돌연 조아봉이 음소를 터뜨렸다.
“흐흐, 으흐흐흐.”
“왜 웃지?”
“이제 넌 죽은 목숨이다. 내가 바로 질풍청룡대의 부대주 조아봉이다! 감히 나를 납치하고도 무사할 성싶으냐? 지금쯤 나를 찾으려 조원들이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벌써 근처까지 와 있을는지도 모르지!”
주운이 그 말에 실소를 흘렸다.
“우습군. 정말 우스워.”
“뭐, 뭐냐? 뭐가 우습다는 거지?”
“내가 그런 것 하나 예측하지 못했을 것 같나?”
“서, 설마?”
“널 납치하고 그곳에 너를 대신할 사람을 심어 두었다. 그는 아주 유능한 인물이지. 강호에서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자, 천면유객(千面遊客)이라 불릴 만큼.”
“뭐?”
조아봉이 경악했다.
천면유객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천사련의 사도제일색마(邪道第一色魔), 마교의 파면편마(破面鞭魔)와 더불어 역용술의 달인이라 정평이 난 인물이었다.
천면유객이 강호에 이름을 알린 것은 팔 년 남짓이었다.
어느 누구든 한 번 보기만 하면 똑같이 역용한다. 고절한 축골공을 익혀 성별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그의 진면목을 봤다는 사람이 있었지만, 거짓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자이니만큼 그마저도 누군가의 얼굴로 역용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말은 진실이었다.
천면유객은 무영십익 중 구익(九翼)이 대외적으로 활동하면서 얻은 별호였고, 떠들기 좋아하는 강만석이 그의 진짜 얼굴을 보았다고 한 것이었다.
어쨌든 바로 그 천면유객, 즉 구익이 납치된 조아봉을 대신해 그로 분해 연기를 하고 있었다. 천면유객이란 별호의 명성대로 전혀 들키지 않았음은 당연했다.
“네, 네놈과 천면유객이 아는 사이란 말이냐?”
주운이 말없이 피식 웃었다.
“어,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냐? 천면유객은 결코 남과 대화하지 않는다던 풍문이 거짓이었단 말이냐?”
“그건 맞아.”
“뭐?”
“하지만 나와 그가 만난 건 칠 년도 전이었지. 그가 천면유객이 되기 이전에 이미 그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이, 이럴 수가!”
조아봉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조아봉의 심경은 그야말로 참담무비했다. 그러한 경우의 수를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밀려왔다.
주운이 스윽 다가왔다.
“자, 이제 그만 갈 시간이야.”
“뭐, 뭐냐? 야, 약속이 다르지 않느냐?”
“약속? 무슨 약속?”
조아봉이 눈알을 굴렸다.
“사, 살려 준다고…….”
“하지 않았지. 네 스스로 모든 것을 털어 놨고, 나는 그저 너의 복면을 벗겨 주었을 뿐이야. 마지막으로 세상 구경 한 번 해 보라는 뜻에서.”
“히, 히익!”
조아봉이 새된 비명을 흘렸다. 돌연 엄습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안색이 푸르뎅뎅하게 질려 버렸다.
“사, 살려 줘! 제발, 제발 살려 줘! 부탁할게, 아니, 부탁드립니다! 제발!”
주운이 딱 잘라 말했다.
“불가. 방금 전에 네 스스로 말했잖아? 나쁜 놈이라고, 개새끼라고.”
주운이 쇠꼬챙이를 치켜세웠다.
“비록 이 세상이 더럽긴 하지만 그래도 나에겐 소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야. 잠시나마 더럽힌 죄, 여기서 깔끔하게 청산하자.”
조아봉이 공포로 물든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아, 안 돼! 안 돼!”
쇠꼬챙이가 크게 벌려진 입속으로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콰아악!



第十章 쌍익비상(雙翼飛上) - 나쁜 놈에겐 매가 약이지!(1)


막도길(莫道佶)은 요즘 몹시 기분이 좋았다.
아침부터 술을 마셨다. 목재 탁자를 가운데 두고 조아봉과 일, 삼, 육조 조장들과 같이 마시니 다섯 말이 금방 동이 나 버렸다.
막도길은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으하하하! 그 눈엣가시 같던 강만석을 없애고 나니 내 십 년 묵은 체증이 싹 가시는 듯하구나!”
홍소를 터뜨렸다.
그에 조아봉과 세 명의 조장들도 따라 웃었다.
“이게 다 그간 대주님이 쌓은 덕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고말고요.”
“하하하하!”
막도길이 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 창가로 다가섰다. 창문 너머로 널따란 연무장이 보였다.
육칠백에 육박하는 질풍청룡대 무사들을 수용할 만큼 널따란 연무장이었다.
이백여 명의 무사들이 그곳에서 연무를 하고 있었다.
검, 도, 창, 봉 등 각양각색의 무기가 햇살을 받아 번쩍이자 거대한 군무(群舞)를 보듯 일대 장관이 따로 없었다.
다치지 않도록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십여 대열로 무기를 휘두르는데, 연무장 입구까지 줄이 이어질 정도였다.
막도길은 그 입구로 다가오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는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는데, 허리춤에는 먹빛 검이 달랑거렸고 회의경장을 걸쳤으며, 풀어헤친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언뜻 바람결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잠깐 얼굴이 드러났다.
젊은 청년이었다.
청년은 나이에 맞지 않게 아주 차분하게 걷고 있었다.
막도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본대에 저런 놈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을 굴려도 떠오르지 않았다.
자연 경계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본대의 무사가 아니면 누군가 전령으로 보낸 자일 터였다.
젊은 청년은 큰 보폭임에도 불구하고 자로 잰 것처럼 일정한 걸음걸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보신경 하나는 제대로 배운 듯싶군.’
약간 호기심이 일었다. 저 같은 자를 길러 낸 인물이 누굴까, 하는 것이었다.
그때 젊은 청년이 막 질풍청룡대의 무사 하나를 지나치는 것이 보였다.
막도길의 눈이 부릅떠졌다.
“……!”
놀람의 빛이 역력한 망막에 짚단처럼 고꾸라지는 무사의 모습이 맺혀 있었다.
젊은 청년이 언제 출수했는지 보지 못했다.
한데 젊은 청년이 그 무사를 지나치는 순간, 무엇에라도 호되게 얻어맞은 양 무사가 픽 나동그라진 것이다.
파악!
술잔이 산산조각 났다.
무의식적으로 힘주어 움켜쥔 막도길의 아귀힘을 견디지 못하고 박살이 난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젊은 청년의 발길은 서서히 안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팟!
막도길은 한 줄기 묵선(墨線)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젊은 청년의 허리춤에서 폭사된 것임에 틀림없었다.
무섭도록 빠른 발검!
막도길은 그제야 젊은 청년이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님을 깨달았다. 저토록 빠른 검을 막아 낼 자신이 서지 않았다.
저벅저벅.
젊은 청년은 여전히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며 무사들 사이를 지나치고 있었다.
그때마다 그 주위의 무사들은 어김없이 픽픽 쓰러졌다.
마치 그들 사이에 암묵적인 약속이라도 한 것 같았다. 내가 옆을 지나가면 쓰러지라고.
핏빛 석양을 어깨에 걸치고 다가오는 젊은 청년.
그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왠지 가슴이 묵직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