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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신위 1권(23화)
第九章 통천문(通天門) - 여기서 깔끔하게 청산하자(2)


진호방은 잠시 가만히 있더니 몸을 일으켰다.
“어머니,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보중하시고, 나중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어어?”
그러고는 두호와 사씨 형제의 팔을 잡아끌었다.
우문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더 있지 않고?”
진호방이 급히 말을 얼버무렸다.
“갑자기 해결해야 할 일이 떠올라서요. 그럼.”
두호와 사씨 형제는 영문도 모르는 채 진호방의 손에 이끌려 방 밖으로 끌려 나왔다.
두호가 신경질적으로 손을 뿌리쳤다.
“대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사씨 형제도 비슷한 눈초리로 진호방을 쳐다보았다.
진호방이 무어라 입을 떼려는 순간,
“내가 나오라 그랬다.”
한 사람이 포목점 앞에 서 있었다.
주운이었다.
진호방은 먼저 은밀한 주운의 전음을 받았기에 놀라지 않았지만, 두호와 사씨 형제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두호가 어어? 하며 물었다.
“조장님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유?”
그도 그럴 것이 금방 풀려난 자신들과는 달리 주운은 어딘가로 끌려갔다고만 알고 있는 그들로서는 난데없는 주운의 등장에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그들이 주운의 집을 찾아온 것도 혹여 주운이 돌아왔거나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주운은 몹시도 궁금해 하는 진호방 등에게 저간의 사정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진호방 등의 눈에 놀람의 빛이 어렸다, 두호는 호들갑을 떨었고.
“허! 그럼 음부뇌옥에 갇혔었단 말이우?”
진호방은 염려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며,
“그 인세의 지옥이란 곳에서 어떻게 빠져나오신 겁니까?”
사씨 형제는 그저 침묵할 따름이었다.
“…….”
각자 개성 있는 모습으로 그렇게 묻자, 주운이 가볍게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나중에 자세히 말해 주마. 그보다 우선 너희들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
진호방 등이 진지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일평생 주운을 윗사람으로 모시기로 작정한 터였다.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의 명령을 받잡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주운이 부탁이라곤 했지만 진호방 등에게는 지상명령과도 같은 말로 인식이 되었다.
“한 사람을 찾아 줄 수 있겠느냐?”
주운의 말에 두호가 두 눈을 끔뻑였다.
“뭐요, 어디 숨겨 둔 정인이라도 되우?”
“내 정인은 이미 딴살림 차린 지 오래다. 두호, 나는 지금 진지하게 부탁하는 거다.”
두호가 입술을 삐죽이며 입을 다물었다.
진호방이 물었다.
“찾고자 하는 사람은 누굽니까?”
주운의 눈빛에 아련함이 어렸다.
“그는…….”
진호방 등은 주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주운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진호방 등의 표정이 마치 변검을 하는 사람인 양 시시각각 변했다.
그리고 일각여의 시간이 흐른 후, 진호방 등이 어둠을 뚫고 성을 빠져나갔다.
휘영청 밝은 달빛이 그들의 등을 쫓고 있었다.

날이 밝았다.
늘 그렇듯 태양은 다시 떠올랐고 사람들은 따사로운 햇살에 힘입어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 인파 속에 주운이 있었다.
주운은 젊은 청년의 인피면구를 쓴 채 거리를 걸었다.
주운이 도착한 곳은 운림객잔이 아니었다.
금래객잔(金來客棧)이란 현판을 잠시 쳐다보던 주운이 이내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옵셔!”
얼굴에 주근깨가 만연한 점소이가 주운을 맞이했다.
주운이 넌지시 물었다.
“이곳에 쥐와 새가 있나?”
그러자 점소이의 눈빛이 변했다.
“어떤 쥐와 새를 찾죠?”
“낮말과 밤말을 들을 줄 아는 쥐와 새를 찾고 있다.”
점소이의 눈빛에 기광이 어렸다.
“따라오세요.”
주운이 말없이 점소이의 뒤를 따라 객잔 주방으로 들어섰는데, 점소이가 주방의 한쪽 벽을 툭 건드리자 그르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벽면이 아래로 쑥 꺼졌다.
그 안에는 한 초로인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초로인이 주운을 주시하며 눈빛을 반짝였다.
“암어(暗語)는 어찌 알았는가?”
주운은 아무 대꾸도 없이 밀실 안을 스윽 훑어보았다.
‘과연.’
사방의 벽에는 책장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었는데, 어지간한 서고 못지않은 수많은 책자들이 즐비해 있었다.
책자들은 끄트머리에는 낡은 것이, 입구 쪽에는 새 것이 꽂혀 있어 구별하기도 쉬웠다. 그러나 일반 서고의 그것과는 내용면에서 그 가치가 차원이 달랐다.
초로인이 다시 물었다.
“암어는 극소수의 인물만이 알고 있네. 자네는 어찌 그 암어를 알았는가?”
그만큼 이곳의 존재 여부는 극비에 해당했다. 다시 말해, 만에 하나라도 암어가 유출된 것인지, 혹은 주운이 누군가의 심부름을 하고자 온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내포한 물음이었다.
물론 주운은 이곳을 아주 잘 아는 인물 중 하나였다. 무영십익으로 활동할 당시에 자주 애용하던 곳이었으니까.
주운이 히죽 웃었다.
“오랜만입니다, 정(鄭) 노야.”
초로인의 눈가에 파르르 경련이 일었다. 이곳을 찾는 이들 중 저처럼 젊은 사람은 없었다. 더구나 대외적으로 단 한 사람에게만 밝힌 자신의 성을 알고 있는 자는 더더욱.
“자네는 대체 누군가?”
“접니다.”
주운이 인피면구를 벗었다. 그러자 주운의 얼굴이 등불에 비쳐 환히 드러났다.
“자, 자네는?”
약간 초췌해 보이는 주운의 얼굴을 쳐다보던 정 노야의 안색이 눈에 띄게 변했다. 무영십익에 대한 정보는 빠삭하게 알고 있는 정 노야였다. 물론 주운의 신병도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최근 음부뇌옥에 갇혔다던 주운이 난데없이 나타난 것은 조금 의외였다.
게다가 그처럼 거리낌 없이 맨 얼굴을 드러내리라곤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무영십익으로 활동할 때와는 다른 면구를 하나 만들어 봤습니다. 그 얼굴로 돌아다니기엔 보는 이목이 너무 많아서 말입니다.”
정 노야가 그제야 납득했다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자네였어. 어찌 된 겐가? 음부뇌옥에 갇혔다는 정보가 들어와 영영 못 볼 줄 알았는데.”
“저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나 무엇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며칠이 지나자 저를 풀어 주더군요. 덕분에 조금 몸이 엉망이긴 했지만 죽진 않았습니다.”
“껄껄껄! 그놈의 망할 뇌옥이 이젠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가 되었구나.”
정 노야가 웃어 젖히더니 나직이 물었다.
“그래, 여긴 왜 왔는가?”
주운이 실소를 흘렸다.
“알고 계실 텐데요?”
정 노야의 낯빛이 굳었다.
“혹 그의 죽음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겐가?”
“당연한 걸 왜 물으십니까? 설마 제가 동료의 죽음을 보고도 묵인할 사람으로 보셨다면 저를 잘못 봐도 한참은 잘못 보셨습니다.”
“허, 예나 지금이나 어른에게 말하는 본새 하고는. 오 년 동안 불귀곡이란 데 갇혀 있었다고 해서 조금은 변했을 줄 알았건만 변한 게 하나도 없구만.”
“변한 건 없습니다만, 예전보다 좀 더 성격이 거칠어지긴 했습니다. 그러니 빙빙 둘러대지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여러모로 귀찮음을 피할 최선이실 겁니다.”
말이야 바른 말인데 왜 이리 건방지누, 라고 중얼거리며 정 노야가 말했다.
“기실 거기에 대해선 나도 아는 게 거의 없네.”
주운이 그 말을 비꼬았다.
“천하의 통천문(通天門)에서도 모르는 것이 있다니, 별일이군요.”
정 노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통천문에 대한 것은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 일문의 종주, 혹은 한 지역의 패자쯤 되는 이들만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왕성, 천사련, 그리고 일월신교(日月神敎), 즉 마교를 두고 천하를 삼분했다 하여 삼패(三覇)라 부른다. 하지만 통천문에 대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은 통천문이 겉으로 드러나기를 꺼려했던 까닭이다. 정보를 다루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하오문(下汚門) 같은 경우, 그런 탓에 손실이 적지 않았다. 때문에 통천문은 철저히 자신을 음지에 숨기고 중립을 지켜 명맥을 유지해 왔다.
힘을 기르기 전에는 스스로 양지로 나올 일은 없을 터였다.
“자네도 알다시피 본문은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라네. 하기에 노부가 자네에게 말해 줄 수 있는 내용은 극히 적지.”
주운의 눈빛이 반짝였다.
“제 동료의 죽음에 다른 세력이 연루되어 있단 말입니까?”
정 노야는 둔기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해졌다.
“허, 이거 당했군.”
너무 오랫동안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나, 하고 구시렁거리며 정 노야가 말했다.
“앞서 가지 말게. 그냥 말이 헛 나온 것이니.”
“말씀해 주십시오. 어딥니까?”
정 노야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말할 수 없네. 자네에게 말해 주었다간 자칫 본문이 위험에 처할지도 모를 일이네. 자네도 잘 알잖은가?”
주운은 말없이 정 노야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리 대답을 요구해도 절대 입 밖에 내뱉지 않겠다는 의지가 뚜렷해 보였다. 딱히 입을 열게 할 방도가 없었다.
‘이런 사람은 곧 죽어도 의지를 꺾지 않는 법인데. 이거 참, 하는 수 없구나.’
주운이 고개를 끄덕여 체념했다는 시늉을 했다.
“좋습니다. 거기에 대해선 묻지 않겠습니다.”
그제야 정 노야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잘 생각했네.”
“하나 제 동료를 누가 죽였는지에 대해서는 한 치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흠, 무영삼익을 죽인 자라…….”
정 노야가 종전에 작성하고 있던 서류를 찬찬히 훑어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흠, 미안하네. 아직 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못 얻은 듯싶으이. 그나마 누군가 연루되어 있다는 것만 있을 뿐, 결정적으로 그가 당사자이거나 혹은 다른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느냐는 불확실하군.”
“그거라도 일단 주십시오.”
“음? 이것 갖고 되겠나?”
주운이 히죽 웃었다.
“아시잖습니까. 때로는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단순하고도 확실한 방법이란 것을.”
순간 정 노야가 움찔했다.
입으로는 웃고 있으나 두 눈에는 무섭도록 소름 끼치는 한광이 번들거리고 있음을 보고 어느 누가 간담이 서늘하지 않을 수 있을는지.
‘거참, 저놈의 눈빛은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된단 말이지. 아니지, 이거 오히려 전보다 더 무시무시한걸?’
정 노야는 심유한 눈으로 주운을 응시했다.
주운은 그런 정 노야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서류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사륵, 사륵.
서류를 넘기던 손길이 멈췄다.
주운의 눈이 서류에 적힌 한 사람의 이름에 머물렀다.
주운이 냉소를 머금었다.
참으로 지독한 악연.
‘이제 종지부를 찍자고.’

***

창문조차 없는 어두운 석실.
석실은 방원 이 장의 정방형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사람의 키보다 두 자 정도 높은 천장과 바닥에는 동아줄 네 가닥이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묶어 놓는 데 쓰일 법했고, 석실 안을 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올바른 쓰임새임을 즉각 알아차릴 것이다. 네 가닥 동아줄에 묶여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한 장한을 볼 수 있었을 테니까.
장한은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여느 복면과 달리 눈구멍마저 없어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우람한 체구만이 그가 사내라는 것을 피력할 따름이었다.
“워, 원하는 게 뭐냐?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
앞을 볼 수 없는 장한은 지독한 두려움에 위아래 이빨을 딱딱딱! 맞부딪치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허벅지에 불로 지지는 것과 같은 끔찍한 통증이 가해졌다.
치이이익!
“끄아아아아!”
그것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다.
장한 앞에 선 회의경장을 걸친 사내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불에 달구어진 쇠꼬챙이를 장한의 허벅지에 대고 꾹 누르고 있었다.
주운이었다.
주운은 그것으로 부족했는지 두어 번 더 강하게 쇠꼬챙이를 내질렀다.
그때마다 복면 장한의 처절한 비명이 석실 안에 울려 퍼졌지만, 그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왕성에서 일 리쯤 떨어진 산 속에 위치한 석실에서 새어 나오는 비명이었다. 애당초 산세가 유달리 험한 산이었다. 이는 그야말로 산지기는커녕 사냥꾼조차 얼씬거리지 않는 산의 깊은 곳에 있는 석실이란 뜻이었다. 그저 주운이 놓아주기만을 바라야 할 뿐, 그 어떤 저항도 무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