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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신위 1권(22화)
第八章 암도무종(暗道無終) - 너를 그렇게 만든 놈을 찾겠다(2)


주운은 대로를 걷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대번에 주운을 향해 쏠렸다. 그들의 눈에는 적잖은 놀람의 빛이 담겨 있었는데, 차마 오래 시선을 두지 못하고 눈을 돌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주운은 필설로 형용키 어려울 만큼 그 꼴이 말이 아니었다.
벌집처럼 온통 들쑤셔진 몸뚱어리 하며, 터지고 짓무른 고문의 흔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찬바람을 집어삼키게 했다. 더구나 그 상처에서 흘렀으리라 짐작되는 피가 딱지가 되어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아무리 담력에 자신 있는 사람이나 병자를 다루는 의원이라 할지라도 저도 모르게 외면할 판이었다.
그런 몰골로도 아직 죽지 않은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아니, 이미 죽은 시체가 살아서 걸어 다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주운은 사방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 속에서도 천천히 걸음을 놀리며 멍하니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저들은 내가 살아서 이 거리를 걷는 것이 믿기지 않는 것인가?’
그럴지도 몰랐다. 자신의 몸 상태는 아직 거동하기엔 여러모로 걸리는 점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주운은 그들의 그러한 시선을 받으면서도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난 살아 있다.’
주운은 피딱지가 앉은 너덜너덜한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것만으로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호흡이 가빠지며, 반쯤 쥐어진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우선 몸부터 돌봐야겠구나.’
주운이 좌측 샛길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주운이 원래 가려던 방향이 아니었다.
‘어머니께 이처럼 형편없는 몰골로 인사를 드릴 순 없지.’
주운은 묵묵히 걸음을 재촉했다.

운림객잔은 여전히 파리 한 마리도 보기 어려웠다.
장두는 식탁을 닦다 지루한 나머지 코를 박고 잠들어 있었다. 어차피 손님도 이틀에 한 번 올까 말까 하여 딱히 양심에 찔리지도 않았던 터라 코까지 골고 있었다.
장두의 코 고는 소리는 오후 무렵에도 한창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와당탕!
무엇인가 부서지는 소리가 청천벽력처럼 장두의 귀청을 두드렸다.
“뭐, 뭐야?”
장두가 깜짝 놀라 소리가 난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사, 사람?”
그곳에는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사람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주변에 부서진 식탁의 잔해가 보였다. 아마 이 사람이 넘어지면서 식탁을 잡아채려다가 같이 고꾸라진 모양이었다.
“이봐요?”
장두는 조심스레 다가가서 그의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하지만 그에게선 아무 반응도 없었다. 으레 사람이 넘어지고 고통을 호소하는 것과는 달리 숨소리마저 희미하게 들릴 뿐, 미동조차 없었다.
그에 장두가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
“이, 이봐요! 이봐요!”
장두가 그의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그러다 그 서슬에 떠밀리듯 그의 몸이 옆으로 넘어가며 얼굴이 드러났다.
“헉……!”
그의 얼굴을 본 장두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혀, 형!”
피딱지가 말라붙은 초췌한 얼굴.
그 얼굴은 장두가 익히 아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주운 형!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바로 주운이었다.
장두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소리치자, 주운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힘겹게 눈을 떴다.
주운이 갈라진 입술을 달싹였다.
“코, 콩알…… 술…….”
잔뜩 쉬어 터진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 알았어요! 잠깐만 기다려요!”
장두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방으로 달려갔다.
“하아, 하아…….”
주운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천하의 주운이 이게 다 무슨 꼴이냐…….”
피식.
자조적인 미소가 그려졌다.

벌컥벌컥!
주운은 술병 주둥이에 코를 박고 미친 듯이 화주를 들이켰다. 며칠 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목울대가 위아래로 춤을 추며 화끈한 기운이 폭포수처럼 위로 돌진했다.
그때마다 숨이 콱 막힐 듯한 통증이 목을 강타했지만, 그동안 화주 한 잔을 그리워 마지않았던지라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금세 화주 한 병이 동나 버렸다.
“하아, 하아.”
주운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술병을 식탁에 내려놓는 손이 간헐적으로 떨렸다.
정신이 몽롱하고 어질어질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팠으나 술기운이 돌아 알딸딸해지니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히죽.
주운이 저도 모르게 웃었다.
그를 옆에서 지켜보던 장두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형, 대체 어찌 된 일이에요?”
“일은 무슨. 그래, 그간 잘 지냈냐?”
“저야 늘 그렇죠, 뭐.”
“저번처럼 누가 또 해코지하지는 않고?”
장두가 고개를 끄덕여 그렇다고했다.
“그때 형이 그놈들 혼쭐낸 후로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런데 정말 별일 없으세요?”
주운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엄,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나에게 해코지할 멍청한 놈이 있을 리 없잖아?”
장두의 눈빛에 염려스러운 빛이 어렸다.
그 말은 꼭 주운이 자신에게 일이 생겼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오히려 큰소리로 아니라고 하는 행동이 너무도 과장되어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단순한 그의 착각일까?
주운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나저나 만돌이 녀석은 아직 안 왔나?”
“강 아저씨요?”
“그 녀석, 이 시간쯤이면 여기에 와서 술 한잔 거하게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장두가 그제야 두 눈을 크게 떠 자기도 궁금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강 아저씨 못 본 지 꽤 됐는데……. 형하고 연통 주고받던 것 아니었어요?”
“뭐?”
주운의 안색이 변했다.
“언제? 언제부터 못 봤냐?”
“한 열흘 넘었어요.”
이삼 일에 한 번 꼴로 꼭 이 객잔에 들르는 강만석이었다. 이 객잔의 술과 동파육이 가장 맛있다면서. 그런데 그런 강만석이 열흘씩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비록 천사련과 대립하고 있어 시국이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내원삼대 중 하나가 직접적으로 출정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주운은 생각을 정리하며 몸을 일으켰다.
“형, 어디 가세요? 지금 그 몸으론 무리예요. 일단 객방에서라도 좀 쉬고…….”
뒤에서 장두가 무어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주운의 걸음을 멈추게 하진 못했다.
주운이 문을 벌컥 열었다.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이 주운의 뇌리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고 있었다.
쾅!
거칠게 닫힌 문 너머로 장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평생을 호위무사로, 강호인으로 살아온 주운과는 달리 객잔 점소이로 평생을 일한 장두로서는 알 리가 없었다.
강호에서 소식이 끊긴다는 의미를…….

***

역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작은 모옥의 단칸방.
그 방 안은 온통 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시체 한 구가 앞쪽 벽면에 등을 기댄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수십 마리의 파리가 왱왱거리며 그 위를 맴돌았다. 눈알이 뽑혀 퀭한 두 눈구멍에는 구더기마저 꾸물거렸다.
처참한 몰골.
아주 잠깐이라도 쳐다보고 있기 힘들 정도였다.
“…….”
주운이 말없이 그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주운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만돌아…….”
탁한 음성이 방 안을 울렸다.
살아생전 그토록 듬직했던, 덩치가 곰만 하다며 놀리곤 했던 강만석의 몸은 구겨진 종이 쪼가리처럼 방구석에 그렇게 주저앉아 있었다.
시체가 되어서.
주운의 주먹이 꽉 말렸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후끈한 무엇인가가 치밀어 올랐다.
꽝!
폭음과 함께 한쪽 벽면이 와르르 허물어져 내렸다. 졸지에 출입구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벽면을 부숴 버린 주운의 주먹이 활짝 퍼졌다. 그 손아귀로 벽돌 조각이 빨려 들어왔다. 허공섭물(虛空攝物)의 기예였다.
주운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푸스스―
손가락 사이로 돌 부스러기가 흘러내렸다.
주운은 악문 잇새로 말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원통했을까?”
상처 입은 맹수의 나직한 울부짖음과 같은 음성.
“찾으마. 너를 그렇게 만든 놈을 찾겠다. 그래서 돌려주겠다. 네가 당한 것, 네가 겪은 것…… 그 모든 것을!”
주운이 방을 나섰다.
한 발, 두 발, 세 발…….
주운의 몸이 돌아섰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옥.
주운이 서서히 손을 내뻗었다.
콰앙!
와르르르―
강맹한 장력에 모옥이 허물어져 내렸다. 순식간에 작은 봉우리가 되어 버린 모옥은 마치 커다란 무덤 같았다.
바로 강만석의 무덤이었다.
그 무덤을 바라보는 주운의 눈가로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그토록 참으려 애썼건만…….
주운은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은 채 몸을 돌렸다.
어둠 속을 응시하는 주운의 눈빛.
그 눈에는 필설로 형용키 어려운 한광이 흐르고 있었다.
친우를 죽인 자에 대한 증오심을 담은…….



第九章 통천문(通天門) - 여기서 깔끔하게 청산하자(1)


주가포목점(周家布木店).
그리 크지 않은 포목점이었다. 뒤쪽에는 안채가 있어 그곳에서 생활이 가능했다.
휘영청 밝은 달이 뜬 야심한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안채에는 환한 등불이 켜져 있었다. 다섯 개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주운의 어머니의 것이었다.
우문영은 바싹 얼어붙어 있는 네 명의 젊은이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우리 운아의 아우들이라구요?”
“네, 어머님. 저는 진호방이라 하고, 제 옆으로 순서대로 두호, 사초, 사청이라 합니다. 비록 덩치는 크긴 하지만 이제 갓 약관의 나이입니다. 그러니 말씀 편히 하십시오.”
진호방의 차분한 말에 우문영이 가만히 미소 지었다. 내심 참으로 예의바른 청년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한데 우리 운아는 어찌 안 보이는 게냐?”
“그게…….”
진호방이 우물쭈물 대답을 늦추자, 두호가 끼어들었다.
“형님은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았다고 우선 저희들만 먼저 어머니께 안부 전해 드리라 했습니다.”
평소 두호의 말투가 아니었다. 비록 행동거지나 생각하는 바가 당돌하고 모난 구석이 있었으나 어른들에게 무례한 언사를 할 만큼 심기가 얕진 않았다.
사씨 형제는 구석에 얌전히 앉아 이들의 하는 양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진호방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편찮으시다고 들었는데 몸은 좀 어떠십니까?”
“운아가 그런 말도 하더냐?”
“네. 물론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으나 같이 일하는 시간이 워낙 많았다 보니 어쩌다 주워들었습니다.”
우문영이 빙그레 웃었다.
“네 눈에는 내가 아픈 사람처럼 보이느냐?”
그 말에 진호방의 입가에도 미소가 스쳤다.
“아닙니다. 아주 정정해 보이십니다. 하하하.”
두호도 한마디 거들었다.
“주 형님이 아무리 길고 난다 해도 어머니 앞에서는 아주 그냥 납작 쿵! 하고 설설 기어 다니지나 않을까 합니다. 아, 그만큼 건강해 보이신다는 말이니 곡해하진 마십시오.”
“그럴 리가 있겠느냐. 내 몸을 걱정하는 너희들의 마음 씀씀이가 매우 기특하구나. 예전에 우리 운아 점을 보았을 때 인복은 있는 편이라더니, 그게 사실인가 보구나.”
그러면서 우문영이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에 진호방 등도 멋쩍게 웃었다.
다섯 사람의 몸으로 꽉 찬 작은 방 안에 때아닌 훈훈한 기운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그때였다.
“……!”
진호방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두호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물었다.
“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