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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신위 1권(21화)
第七章 동정혈전(洞庭血戰) - 저분이 바로 우리들의 조장님이시다!(4)
그사이에도 척사대 무사들이 조심스럽게 움직여 거리를 좁혀 왔고, 진호방 등은 각자 무기를 뽑아 들며 곧 있을 전투에 방비했다.
팽배한 긴장감이 대청 안을 잠식해 버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주운이 한 발 나섰다.
“투항하겠습니다.”
“하, 하지만!”
진호방의 볼멘 음성에 주운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개죽음당할 바엔 훗날을 도모하자는 의미였다.
진호방과 두호, 그리고 사씨 형제가 그 뜻을 알아들었음인지 못내 답답한 가슴을 다독이며 입을 다물었다. 주운의 결정이 얼마나 많은 고민 속에서 도출된 것인지 듣지 않고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주운과 진호방 등이 포박되어 척사대 무사들의 손에 바깥으로 끌려 나갔다.
대청 안에는 조아봉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시체 네 구와 함께였다.
조아봉이 그 시체 중 하나의 가슴에 박혀 있는 비수를 쑥 뽑아 들더니 손가락을 놀렸다.
비수가 검지에서 중지로, 중지에서 약지로 구렁이 담 넘는 양 오가는 곡예를 보였다.
그것은 오랜 시간 비수를 다루지 않는 자가 보일 만한 재주는 아니었다. 하지만 조아봉은 수월히 해내고 있었다.
마치 비수를 오래 다뤄 본 사람처럼…….
第八章 암도무종(暗道無終) - 너를 그렇게 만든 놈을 찾겠다(1)
제왕성 지하.
그 깊은 곳에는 뇌옥이 있었다.
지반을 통짜로 깎아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는 뇌옥은 십여 개의 내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방마다 만년한철로 주조한 철문이 우두커니 서 있어 한 번 들어서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었다.
십여 개의 방들은 겨우 네 사람이 간신히 발 뻗고 누울 만큼 좁디좁았는데, 그 한가운데엔 전신을 결박할 수 있도록 가죽으로 된 끈이 대여섯 개쯤 달린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의자 뒤쪽 벽에 고정된 두 가닥의 짧은 쇠사슬 끝에는 쇠고랑이 달려 있었다. 정확하게 사람 한 명이 매달릴 만한 높이였다.
사방의 벽면은 검붉은 무늬로 얼룩덜룩했다.
아마도 이곳을 거쳐 간 이들이 흘린 선혈일 것이다.
온갖 끔찍한 고문의 흔적이 생생하게 남겨진 공간.
이곳이 바로 제왕성의 죄인들을 가둬 놓고 심문과 고문을 가하는 공간이었다.
한 번 들어간 자는 절대 살아서 되돌아올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이 음부뇌옥(陰府牢獄)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여태껏 그 불문율은 깨지지 않는 공포로 제왕성의 한쪽을 잠식해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이곳에 한 사내가 갇혔다.
근 십여 년 만에 음부뇌옥의 지옥문을 열게 한 사내.
그의 이름은 바로 주운이었다.
그곳은 밀실이었다.
빛 한 점 새어 들지 않는 밀실 한쪽에 달린 횃불이 조용히 타올랐다. 노을빛으로 물든 밀실은 검붉은 선혈 무늬와 함께 섬뜩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 가운데에 한 사내가 길게 음영을 드리우며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다.
어찌나 피를 많이 흘렸던지 혈색은 이미 시퍼렇게 죽어 있었고,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흉한 입을 쩍 벌리고 울컥울컥 피를 게워 냈다.
죽어도 골백번은 죽었을 법한 몰골.
그처럼 모골을 송연케 하는 몰골임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짧고 빠르게 숨을 들이켜고 내쉬길 반복했다.
그 앞에 선 장년인의 얼굴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핼쑥해져 있었다.
장년인은 나지막이 말했다.
“이제 그만 자백해라.”
그러자 사내의 고개가 천천히 치켜졌다.
머리카락에 반쯤 가려진 눈빛.
무섭도록 서늘한 그 눈빛이 장년인의 두 눈을 쏘아보았다.
“……!”
장년인은 하마터면 신음을 흘릴 뻔했다.
거의 다 죽어 가는 사람의 눈빛이 저리도 무서울 줄이야. 상상도 못했었다.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사내의 갈라진 입술이 달싹였다.
잔뜩 쉬어 버린 음성이 새어 나왔다.
“나는…… 마교의 끄나풀이 아니다. 아니, 애당초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건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사내가 씹어뱉듯 말했다.
“아니 그러한가? 반가원(潘加遠)!”
반가원.
그 이름을 들은 장년인의 표정이 굳었다.
장년인은 바로 무영십익 중 오익(五翼)인 반가원이었다.
반가원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보게, 주운. 이미 나온 물증만으로도 자네는 충분히 사형감이네. 하지만 나는 자네가 이렇게 덧없이 죽는 걸 바라지 않아. 그러니 나에게 모든 사실을 말해 주게, 응?”
마치 고집쟁이 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말투였다.
피투성이 사내, 주운이 말했다.
“왜 그리되었나?”
“……?”
주운의 눈에 연민의 빛이 어렸다.
“어쩌다 그렇게 변했나?”
“변하다니? 난 변한 게 없어. 변한 건 내가 아니라 바로 자네야!”
“무엇이 자네를 그렇게 만든 것인가? 대체 무엇이?”
반가원이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주운의 말에 흠칫했다.
반가원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래, 변했다. 아니, 변할 수밖에 없었다.
“난 변하지 않았어!”
그러나 나오는 말은 그 생각과는 달랐다.
반가원은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난 변하지 않았어…….”
주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가원의 덜덜 떨리는 손. 그 손만 봐도 그가 속마음과 다른 말을 내뱉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신 의문이 뇌리에 똬리를 틀었다.
‘어째서 반가원이 저토록 고통스러워하는 것일까?’
과거엔 무영십익 중에서도 물불 가리지 않고 겁 없이 달려들어 철석간담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던 이가 바로 반가원이다.
한데 그런 반가원이 무엇인가를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는 것이다.
‘무언가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
주운은 내심 그렇게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말에 대꾸하는 반가원의 눈빛과 표정, 그리고 몸짓만 봐도 그게 느껴졌다. 자신이 아는 반가원은 꾸밈없는, 거짓말이라곤 일절 못하는 이였으니까.
그런 반가원이 거짓을 말할 때가 바로 저러했다.
반가원도 그걸 알아차렸다.
“오늘은 이만 하지.”
그래서 도망치듯이 밀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쾅!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주운의 눈빛이 침잠하게 가라앉았다.
주운에게는 그 소리가 마치 반가원의 마음의 문이 닫히는 것처럼 들렸던 것이다.
반가원이 나가고 난 후, 밀실 안에는 적막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화르르.
횃불이 마지막 발악을 하듯 세차게 타올랐다.
그 흔들거리는 불빛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같이 몸을 떨었다.
밀실에 혼자 남겨진 주운이 고개를 떨구었다.
오늘은 무사히 버텼지만 내일은 장담할 수 없었다.
‘아직은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곧 마음을 굳게 먹었다.
주운의 눈빛이 심유하게 가라앉았다.
‘이 정도로 포기하기엔 이르지.’
만약 지옥에도 층(層)이 존재한다면, 음부뇌옥은 잘 쳐 줘야 중층이다.
그 지옥의 최상층.
불귀곡이라 불리는 곳.
그곳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나온 사람이 바로 주운이었다.
주운의 눈빛엔 생기가 가득했다.
***
얼마나 지났을까?
낮과 밤도 알 수 없는 밀실 안에선 해가 뜨고 날이 저문 것은 물론 하루가 지났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어느 날인가부터는 횃불마저 없어졌다.
철저하게 암흑만이 존재했다.
그것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숨 막히는 어둠 속에서 느끼는 고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더구나 어느 순간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릴라 치면 여지없이 찾아드는 끔찍한 고문.
평범한 사람이었더라면 벌써 미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주운은 용케도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곳을 먼저 경험치 않았더라면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미치지 않곤 못 배겼겠군. 그 녀석들의 죄가 단지 하극상뿐이라 다행이로군. 아니었더라면 아주 색다른 경험을 했을 테지. 큭큭큭.’
불귀곡에서의 처절했던 나날들이 우습게도 주운에게 맑은 정신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더구나 하극상의 죄만 묻고 풀려난 조원들에 대한 생각까지 할 여력마저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쿵, 쿵!
무엇인가 쇠로 만들어진 물건이 바닥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왔군.’
철컹.
철문이 열리며 반가원이 들어왔다.
반가원의 오른손에는 철지팡이가 쥐어져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오 년 전에는 멀쩡했던 다리가 한쪽밖에 성하지 않았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어쨌건 지금의 반가원은 절름발이가 되었다.
“지독하군.”
반가원이 고개를 내젓고는 탄식했다.
“자넨 역시 고집불통일세.”
“자네가 내게 그런 말을 할 만한 사람은 아니지.”
주운은 피식 웃었다. 고집으로는 만만찮게 그와 쌍벽을 이루는 반가원이었으니까. 그 쇠심줄을 자를 사람은 오직 전대 성주뿐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내게 가정이 있다는 건 잊지 않았겠지?”
잠시 말이 없던 반가원이 불쑥 말했다.
“오 년 전, 그러니까 제이차 정마대전이 발발하기 몇 개월 전이었지, 나에게 가정이란 것이 생긴 것은. 자네가 그때 내게 정력에 좋다는 보약재를 사다 주었던 일은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네.”
어찌 잊겠는가?
“그리고 그 처절했던 싸움이 끝난 후…… 자네는 돌아오지 않았어. 우리들 중 가장 강하고, 제일 명줄이 질길 것 같았던 자네는 오 년이나 지난 지금에야 돌아왔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네는 짐작할 수 있겠는가?”
주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실은…….”
반가원은 무어라 말하려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아무것도 아니야.”
“대체 내가 없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어째서 함구하고 알려 주지 않는 거지? 혹 자네 가족에게 해가 될 일이라도 된단 말인가?”
주운의 물음에 반가원이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알려고 하지 말게. 알아서는 아니 되네. 아니, 어쩌면 곧 알게 될지도 모르겠군.”
주운이 미간을 좁혔다.
“그게 무슨 소리지?”
“이곳이 어딘지 아는가?”
반가원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밀실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이곳은 바로 제왕성의 지하라네. 자네도 이미 짐작하고 있을 걸세. 음부뇌옥, 그것이 이 저주받을 곳의 이름이지. 한 번 발을 들이면 절대로 살아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인세의 지옥이라 불리는 곳이지.”
주운이 말없이 반가원을 응시했다.
“그런데 오늘에야 그 피로 얼룩진 불문율이 깨졌네. 바로 자네로 말미암아 말일세.”
반가원이 희미하게 웃었다.
“축하하네. 자네는 이제 석방일세.”
석방?
주운은 납득할 수 없었다.
음부뇌옥에 들어선 자는 반드시 죽어 시체로만 출옥이 가능했다. 아무리 지은 죄가 없더라도 일단 갇히면 죽음을 면키 어렵다. 그것이 바로 여태껏 음부뇌옥의 악명을 유지케 한 것인데, 느닷없이 석방이라니?
이는 앞으로 음부뇌옥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심을 반감시키는 초석이 될 것이 분명했다.
누군들 풀려나는 것이 싫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것에 대한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주운 역시 그러했다.
반가원은 주운의 복잡한 눈빛을 통해 그 생각을 읽었음인지 입을 열었다.
“나도 자네의 석방에 대한 연유는 알 도리가 없네. 그저 상부에서 명하는 대로 따를 뿐, 아무것도…….”
반가원의 말은 왠지 진한 여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덫에라도 걸린 것처럼 궁금증을 유발하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주운은 침묵했다.
‘일단 나가서 몸을 회복시키자.’
그러고 나서 배후를 캐내도 늦진 않을 것이다.
아니, 늦지 않도록 해야만 했다.
주운의 눈빛이 침잠하게 가라앉았다.
‘누구냐? 누가 그 뒤에 있는 것이냐?’
호위무사로서의 자신의 삶을 방해하는 것이.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누구라도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자는 철저히 무너뜨려 놓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설혹 그가 제왕성주라 할지라도…….
그의 검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필코 진상을 밝혀내고야 말겠다.’
음부뇌옥.
검붉은 피로 얼룩진 밀실 안.
이곳에서 주운은 새로운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