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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신위 1권(20화)
第七章 동정혈전(洞庭血戰) - 저분이 바로 우리들의 조장님이시다!(3)


복면인들은 더는 주운이 무엇인가 묻는 것을 용납지 않으려 했다. 이내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신형을 날렸다.
복면인들의 검이 사방을 점하고 난도질해 왔다.
쐐애애액!
그러자 주운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목표 잃은 네 개의 칼날이 주운이 사라진 공간에서 요란한 금속음을 내며 충돌했다. 차차차창, 하는 소리와 함께 복면인들의 몸이 뒷걸음질 쳤다.
“흐읍!”
단숨에 주운의 몸을 분시하려 전력을 다했는지 짤막한 신음을 내뱉었다.
주운은 몇 걸음 뒤에 서 있었다.
주운이 스윽 움직이는 순간,
쾅!
한 복면인의 몸이 허물어져 내렸다.
좌측 복면인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너도 한 방.”
퍼억!
달려들던 속도보다 배는 빠르게 벽면에 처박혀 버렸다.
주운은 지체하지 않고 한걸음에 미끄러지듯 정면으로 주르르 나아가더니 막 검을 치켜드는 복면인의 턱을 후려쳤다. 그리고 돌아보지도 않고 옆차기를 날렸다.
빠악!
틈을 타 기습하려던 우측 복면인이 자신의 복부에 깊숙이 틀어박힌 주운의 발을 내려다보다가 눈을 까뒤집었다. 단 한 번의 발길질에 혼절한 것이다.
그야말로 창졸지간에 네 명의 복면인이 쓰러져 버렸다.
주운은 그 앞에 선 채 고개를 갸우뚱했다.
굉장히 낯익은 합격술이었다.
언제더라…….
주운이 눈빛을 반짝였다.
“얘네, 그때 그 애들이잖아?”
자신이 호위했던 제왕성주 연궁천의 조건을 이루지 못하게 한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그때의 복면인들이었다. 그 복면인들이 뜻밖에도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비록 지금은 차디찬 바닥에 곱게 누워 있지만.
주운은 그들 중 한 복면인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복면을 벗기자 의외로 평범하게 생긴 장년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주운이 장년인의 뺨을 쳤다.
“으, 으윽!”
그러자 장년인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너, 넌?”
“너희들을 사주한 자가 누구지?”
“마, 말할 수 없다.”
“말 못한다고? 그럼 어쩔 수 없지.”
주운이 아쉽다는 눈으로 손을 치켜들었다.
손바닥 주위로 검붉은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간단히 진기를 끌어 올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주운에 의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장년인에게는 살짝 스치기만 해도 자신의 목숨 따윈 단번에 끊어 버릴 만큼 위협적이었다.
장년인이 급히 소리쳤다.
“아, 알았다! 말하겠다. 내가 아는 것을 다 말해 줄 테니 제발, 제발 목숨만은…….”
주운은 히죽 웃었다.
“부탁하는 사람의 말투가 심히 불량하군?”
장년인은 흠칫하며 애걸했다.
“죄, 죄송합니다. 소인이 실언을 했습니다. 그, 그렇지! 자, 물어보실 게 무엇입니까? 다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너희들은 누구지?”
“저, 저희들은 딱히 이름이 없습니다. 그저 저희들 넷의 실력 고하에 따라 순위를 매겨 부르는 게 답니다.”
“그럼 누가 첫째지?”
“제가 첫째인 일살(一殺)입니다.”
“그래, 일살. 너희들을 사주한 게 누구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러한 짓들을 시킨 거지?”
주운의 말에 일살이 우물쭈물했다. 예상은 했지만 그렇다고 쉽게 대답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와서 말하려 하니 그 뒷감당이 목구멍에 걸려 버린 것이다.
주운이 답변을 재촉했다.
“어서 말해. 그 시커먼 목이 달아나기 전에.”
“그, 그분은…….”
일살이 찬바람을 집어삼키며 입을 열어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와장창!
쒸이이익!
좌측 창문을 박살 내며 다섯 줄기의 빛살이 날아들었다.
주운이 급히 일살의 멱살을 잡았던 것을 놓고 상체를 약간 뒤로 젖히더니, 손을 뻗어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빛살을 잡아챘다.
그러고는 급히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네 줄기의 빛살이 일살과 복면인들의 심장을 꿰뚫어 버린 후였다.
“……!”
주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창문을 뚫고 날아든 물체는 바로 비수였다.
주운이 비수를 으스러지도록 힘주어 쥐었다.
미처 손쓸 틈도 없었다. 미리 자신이 어떻게 방비할는지 염두에 두고 있었던 듯 정확하게 그 예상 투로를 재어 비수를 던졌던 것이다.
스슥!
창문 밖으로 누군가 움직이는 기척이 들려왔다.
주운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지면을 박찼다.
“빌어먹을!”
주운의 신형이 창을 넘어 번개처럼 폭사했다.
그러나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누군가 숨어 있었던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주운은 허리까지 자라난 수풀 가운데 한 쌍의 발자국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그자는 만약을 대비해 이곳에서 대청 안쪽을 감시하고 있었을 터였다. 퇴로쯤은 미리 확보해 두었을 것이 분명했다.
주운이 술병을 내던졌다.
쨍그랑!
술병이 깨진 파편이 비산했다.
주운은 그것으로도 분이 안 풀리는지 씩씩거렸다.
“젠장, 빌어먹을! 대체 어떤 놈이야? 어떤 놈이 이딴 짓을…….”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

다급히 대청으로 돌아온 주운은 일살의 품을 뒤졌다. 혹여 무엇인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무언가 네모진 물건이 손에 잡혔다.
“이건?”
그것을 급히 꺼내 본 주운의 눈에 놀람의 빛이 떠올랐다. 철로 만들어진 명패였다. 하지만 그것을 주시하는 주운의 눈빛은 점차 침잠하게 가라앉았다.
“또 그들인가?”
주운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릴 때였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대청 안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척사대 열일곱 명의 조장들과 조원들이었다. 그중에는 진호방 등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맨 앞에는 조아봉이 정색을 하고 서 있었다.
조아봉은 주운을 보자마자 버럭 소리쳤다.
“네 이놈, 주운! 네놈이 바로 천사련의 세작이었구나!”
대청 밖에 있는 척운수의 시체를 보고 오해한 모양이었다. 만에 하나 이곳에 복면인들의 시체가 없었다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주운은 떳떳했다.
주운이 해명했다.
“잘못 짚으셨군요. 나는 천사련의 세작이 아닙니다. 천사련의 세작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부대주 척운수가 진짜 천사련의 세작입니다.”
그러나 조아봉은 되레 호통쳤다.
“이놈,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느냐! 뭐? 척운수가 천사련의 세작이라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네놈은 뻔뻔스럽게도 죽은 자까지 농락하려는 것이냐! 그 두꺼운 낯짝 속에 감춰진 시커먼 속내를 내 모를 줄 아는가!”
“척운수의 시체를 보셨다면, 그의 가슴팍에 새겨진 혈명이란 글자도 보셨을 것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천사련의 세작이라 몰아붙이시는 저의가 대체 뭡니까?”
주운이 싸늘히 쏘아붙이자 조아봉이 잠시 말문을 잃은 듯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다가 이내 눈빛을 반짝이며 주운의 손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그건 무엇이냐?”
주운이 흠칫했다. 선뜻 명패를 보여 주기엔 상황이 애매했기 때문이다.
“별거 아닙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아봉은 얼버무리는 주운의 행동에 더욱 의심스런 눈빛을 반짝이며 손을 내밀었다.
“어디, 별건지 아닌지 내 직접 판단하겠다. 이리 내놔라.”
“정말 별 볼일 없는 물건에 불과합니다. 대주님께서 굳이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조아봉이 짐짓 타이르듯 말했다.
“내 말이 말 같지 않은가? 주 조장, 나를 대주라 생각한다면 어서 이리 주게.”
주운은 어쩔 수 없이 명패를 넘겼다.
명패를 건네받은 조아봉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뜨였다.
“네놈, 알고 보니 천사련이 아니라 마교(魔敎)의 끄나풀이었구나! 이제야 그걸 알게 되다니, 참으로 마교는 무서운 곳이 아닐 수 없구나.”
마교라니?
모두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어렸다.
주운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꼬여도 무진 꼬여 버렸다. 하필이면 이때 저들이 나타날 것이 무어란 말인가. 이는 말 그대로 진퇴양난에 처한 것과 토씨 하나 다를 바 없었다.
주운이 조아봉에게 건넨 명패에는 틀림없는 마교의 표식이 새겨져 있었던 까닭이다.
조아봉이 말했다.
“척운수를 죽인 저의가 무엇이냐? 혹여 천사련의 세작인 척운수에게서 무엇인가 얻어 낼 것이라도 있었나?”
주운은 눈살을 찡그렸다.
“말도 안 됩니다. 나는 마교의 끄나풀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기 이 복면인들의 품속을 뒤져 찾아낸 것입니다. 다른 놈들도 하나씩 가지고 있을 테니 한 번 뒤져 보십시오.”
그러자 미심쩍은 얼굴로 잠시 생각하던 조아봉이 한쪽에 서 있는 일조장에게 눈짓했다. 일조장이 복면인들의 품속을 뒤지자 과연 세 개의 명패가 딸려 나왔다.
주운이 히죽 웃었다.
“거 보십시오. 내가 마교의 끄나풀이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이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내가 그딴 조잡한 수에 속을 줄 알고?”
주운은 어이가 없었다.
“허, 조잡? 도대체 뭐가 조잡이란 것입니까?”
주운의 대꾸에 조아봉이 조소를 머금었다.
“네놈이 미리 이놈들 품 안에 패를 넣어 놓고 우기는 게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느냐?”
“그런 억지가……!”
“여봐라, 어서 당장 이 마교의 끄나풀을 잡지 않고 뭐 하는 거냐!”
척사대원들이 머뭇거렸다. 그들이 보기에 주운은 정말 무고한 사람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상관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게 자신들이었다.
그때였다.
“우리 조장님께 손가락 하나 댔다간 가만두지 않겠다!”
“염병! 이거 듣자듣자 하니 순 개소리 아냐? 시끄러워서 계속 들어 줄 수가 없구만!”
두호가 사납게 쏘아보자 화들짝 놀란 척사대 사람들이 양옆으로 우르르 물러섰다. 두호의 두 눈에 요동치는 살기에 저도 모르게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마치 물살이 갈라지는 것처럼 길이 트였다.
두호가 건들면 단숨에 물어 죽일 듯 씨근덕거리며 그 길로 걸어갔다. 그 뒤를 따르는 진호방의 곱상한 얼굴은 생사대적을 앞에 둔 사람처럼 무섭게 굳어 있었고, 사씨 형제는 묵묵히 반걸음 뒤에서 양옆의 사람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이윽고 진호방 등이 주운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서더니 척사대와 조아봉을 노려보았다.
진호방이 고개만 살짝 돌리고 말했다.
“조장님, 그냥 확 뒤집어엎죠?”
두호도 옆에서 거들었다.
“바로 그거야! 딱 좋잖수? 저런 돌대가리 따위가 지껄이는 개소리에 일일이 아이고, 나 잘못 없어요! 하고 대꾸하는 것 안 힘드우? 보는 내가 다 복창이 터질 뻔했수다.”
“…….”
사씨 형제는 말없이 칼자루에 손을 얹는 것으로 동조의 뜻을 밝혔다.
주운은 진호방 등의 말과 행동에 내심 고마움을 느꼈으나 내비치진 않았다.
“저리 비켜라. 이건 너희들이 나설 일이 아니야. 그러다가 너희들까지 엮여서 모가지 날아가는 수가 있어.”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때 조아봉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더니, 네놈들은 대주인 내 명령을 듣지 않겠다는 것이냐?”
그에 진호방이 소리쳤다.
“우리들이 척사대의 일개 조원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분은 조장님뿐이시고, 우리가 모실 분 또한 대주가 아닌 조장님뿐이시다! 우리들은 애당초 대주를 위함이 아닌 조장님을 위해 있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저분이 바로 우리들의 조장님이시다!”
“이, 이놈들이……?”
조아봉이 흠칫하더니 이내 코웃음을 쳤다.
“좋다, 좋아! 그럼 너희들이 그리도 떠받들어 모시는 저놈과 함께하도록 해 주겠다. 여봐라, 뭣들 하느냐? 모조리 잡아들이지 않고!”
“……!”
주운의 얼굴이 싸늘히 굳었다.
주운은 조아봉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보나마나 앞으로 골치깨나 썩힐 것 같은 십팔조 조원들이 알아서 나서주니 옳다구나 싸잡아 처리할 셈인 게 분명했다.
‘빌어먹을, 이를 어쩐다?’
그렇다고 저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저항하는 순간 제왕성의 역도로 몰릴 테니까. 한시도 손에서 피가 마르지 않는 날이 없을진대 애당초 감당할 능력도 없는 진호방 등을 그렇게 만들 수는 없었다.
‘확 진짜 마교로 투신해 버려?’
잠시 그런 충동을 느꼈지만 이내 뇌리에서 지웠다. 제왕성에 있는 어머니의 모습과 제왕성 호위무사의 신분을 자랑스레 여기셨던 아버지의 음성이 떠올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