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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신위 1권(19화)
第七章 동정혈전(洞庭血戰) - 저분이 바로 우리들의 조장님이시다!(2)


그 순간,
씨이이잉―
한 줄기 백광이 폭사되었다. 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민 손에 여지없이 맥도 못 추리고 붙잡혀 버렸다.
주운이 고개를 돌렸다.
저만치 천사혈명대 무사들의 맨 끝에 젊은 청년이 서 있었는데, 자신이 쏜 화살이 주운의 손에 맥없이 잡혀 버린 데 대한 놀라움과 당혹감이 뒤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쏴, 쏴라! 이 새끼들, 멍청히 뭣들 하고 있는 거야!”
그러더니 주운을 가리키며 화살을 쏘라고 삿대질했다.
천사혈명대의 무사들이 재빨리 앉아 시위에 화살을 쟀다. 끼리릭, 활이 허리를 젖혔다.
탁!
시위를 당겼던 손가락이 좌우로 떨어졌다.
쒸쒸쒸쒸이이이―
화살비가 포물선을 그리며 빠르게 날아왔다.
주운이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걸음을 떼었다.
주운이 한 발 다가가는 순간,
덥석!
멀찍이 떨어져 있던 젊은 청년의 몸이 불쑥 떠올랐다.
“소주(少主)!”
천사혈명대의 무사들이 눈을 부릅떴다. 십여 장 거리를 반으로 접기라도 한 것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주운의 몸이 자신들의 소주 뒤에서 나타났던 것이다. 전설상의 축지성촌(縮地成寸)과 비길 만큼 쾌속한 신법이었다.
마치 유령같이 솟아오른 주운의 손이 소주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위로 들어 올린 것을 보았으니 경악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물론 진짜 축지성촌은 아니었다.
주운은 히죽 웃었다.
“지긋지긋하게 내 뒤꽁무니를 쫓아다녀서 골치깨나 썩혔던 공야(公冶) 늙은이의 공절신행(空切神行)은 역시 이럴 때 제격이란 말씀이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소주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고, 공절신행? 설마, 네놈이 마도제일신(魔道第一迅)의 제자라도 된단 말인가?”
마도제일신 신뢰신행(迅雷神行) 공야독보(公冶獨步)의 독문신법이 바로 공절신행이었다. 소주는 그런 공절신행을 언급하는 주운이 그와 깊이 연관된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의 제자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제이차 정마대전 이후로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던 공야독보가 오 년 동안 제자를 키우느라 은거하고 있었다는 가설을 세우면 모든 것이 명확했다.
주운은 손가락을 흔들었다.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 그럼……?”
“내가 고작 그 늙은이의 제자라고 생각하면 몹시 섭섭해 할 사람들이 너무 많거든. 당장에라도 살기를 줄줄 흘리면서 네 육신을 갈가리 찢으려 들걸?”
“이, 이 새끼!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협박을 하는 거냐?”
“누군데?”
주운의 심드렁한 반응에 소주가 눈에 핏발을 세우며 버럭버럭 고함을 질렀다.
“내가 바로 그 위대한 대(大) 천사련의 련주이신 구화명(求禍銘)을 아비로 둔 구해주(求解註)다!”
“구해…… 뭐?”
“구해주다!”
“그래서?”
“뭐?”
주운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네가 누군지가 그렇게 중요해? 천사련주의 위명에 기대어 형편없는 실력으로 호가호위하는 게 그렇게 자랑스럽나?”
구해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강호는 말이야…….”
퍽!
구해주의 몸이 들썩였다.
구해주는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에 입을 떡 벌렸다. 너무도 고통스러워 꺽꺽, 하는 소리만 토했다.
주운이 싸늘히 말을 이었다. 어느새 꺼내 든 술병이 그의 손아귀에 움켜져 있었다.
“자기 실력으로 말하는 세상이야.”
빠악!
구해주가 눈을 부릅떴다. 이번엔 위쪽이 아니었다. 아래쪽, 단전 아래…….
“끄아아아아!”
하초였다.
주운이 구해주를 내던졌다.
구해주의 몸이 땅바닥을 연방 뒹굴었다.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좀 전의 그것과는 비할 수 없이 지독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무엇인가 깨진 듯한 섬뜩한 감촉은 구해주를 더더욱 절망의 나락으로 처넣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럴 줄 알았더라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위명 아래 자신의 말 한마디에 복종하는 자들만 봐 왔다. 자연스레 자만에 빠져 그깟 척사대쯤 자신이 깨부술 거라고 우기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구해주는 자신의 자만심과 아비의 명성에 눈이 멀어 일생일대의 실수를 한 것이다.
“소, 소주!”
구해주는 어렴풋이 자신을 부르는 음성이 들렸고, 곧이어 누군가 자신의 몸을 잡아 일으키는 것을 알았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구해주가 입술을 짓깨물어 그것을 참으며 말했다.
“가, 가자……. 후퇴한다.”
“잠깐.”
“뭐, 뭐냐?”
주운이 심유한 눈으로 구해주를 응시했다.
“구태여 후회하는 걸 막을 생각은 없어. 더 시간을 끌었다간 우리 쪽이 불리한 싸움이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해 줘야겠어.”
“어, 어떻게 네놈들의 매복을 알고 있었는지를 묻고 싶은 거냐?”
주운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구해주가 딱히 밝혀도 상관없다는 눈으로 말했다.
“전서구가 왔었다. 네놈들이 이곳에서 매복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전서가 들어 있었지. 이제 의문이 풀렸나?”
“아니, 아직 덜 풀렸어.”
구해주가 입술을 깨물며 머뭇거리다가 체념했다.
“기실 그전에 한 번 더 왔었다. 수색조가 철수되었으니 맘대로 설쳐 보라고.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을 해 봤더니 정말이더군.”
주운이 말했다.
“그 전서구, 누가 보냈지?”
구해주는 그것까지는 몰랐다.
“나도 모른다. 그저 그런 내용만 적혀 있었어. 정말이야.”
주운도 혹시 하는 생각에 물어봤던 것이다. 모르고 있을 거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기에 믿어 주었다.
천사혈명대의 무사들이 구해주를 데리고 조용히 뒷걸음질 치면서 주운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주운이 막아설 뜻이 없어 보이자, 그때서야 전력으로 경공을 전개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휘이이이익―
구해주를 들쳐 업은 무사가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우측 절벽에 있던 무사들이 망설이지 않고 신형을 날렸다.
순식간에 썰물처럼 천사혈명대의 무사들이 멀어져 갔다.
주운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차 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있던 놈들의 수가 너무 적었다.’
주운이 장원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거진 나무 사이를 비집고 피어오르는 연기.
불? 아니면 기관이 파괴당한 것인가?
‘빌어먹을, 성동격서!’
주운은 다급히 지면을 박찼다.
주운의 신형이 한 줄기 회영으로 화해 쏘아졌다.

쪹 쪹 쪹

초토가 되어 버린 장원.
파괴된 기관의 흔적인지 장원 주위엔 움푹 꺼지고 무엇인가 폭발한 자국들로 가득했다.
가볍게 내려선 주운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동에서 이목을 끌고 서를 쳤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구해주에게 들은 바로는 내부에 배신자가 있을 것이다. 그게 꼭 한 명일 리가 없었다. 둘, 혹은 더 많을는지도 몰랐기에 신중의 신중을 기했다.
아니나 다를까.
“척운수?”
대청 문 앞에 부대주 청천비검 척운수가 서 있었다. 그는 두 눈을 치켜뜬 채 주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허리는 꼿꼿이 세우고 있었는데, 그 가슴팍에 혈명이란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상한 것은 그 위로 웃옷을 걸치고 있었고, 앞섶이 예리한 무엇인가에 베여 그 옷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운이 주목한 것은 일단 눈에 보이는 진실이었다.
청천비검 척운수.
그가 바로 천사련의 세작이었다.
주운은 눈빛을 빛냈다.
“설마 내 이목까지 피할 만큼 주도면밀한 자인 줄 미처 몰라봐서 조금 미안한데? 척운수, 당신이 천사련에 전서구를 보낸 장본인인가?”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보았을 때부터 척운수의 자세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심지어 시선조차 흐트러짐이 없었다. 응당 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듣고도 같은 눈동자와 자세를 유지할 수 없을뿐더러 감정을 극도로 억제해도 기복은 느낄 수 있었다.
주운의 표정이 굳었다.
척운수 앞으로 다가간 주운이 살며시 손가락을 그의 코에 가져다 대었다.
주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죽었군.”
감정의 기복이 없던 게 아니었다. 눈동자와 자세를 흩트리지 않을 만큼 정신수양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이미 척운수의 숨이 끊겨 있었던 것이다. 죽은 사람은 감정이 없다.
그래서 주운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너무나 신중을 기한 나머지 어이없게도 한발 늦게 알아차렸다. 조금 허탈했다.
그리고 다시금 의문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럼 척운수는 왜 죽은 거지?’
천사련의 세작이 이런 데서 저런 식으로 죽어 있다는 것을 쉬이 납득하기 힘들었다. 하등 죽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죽어 버렸다.
‘설마 무엇인가가 더 있단 말인가?’
스스로 생각하고도 황당무계했다. 하지만 주운은 그럴 가능성을 굳이 배제하진 않았다. 강호란 곳은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 해괴한 곳이었으니까.
대청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애당초 빈집 같았다.
그럴 리 만무했다. 정확하게 사흘 전 척사대가 이곳에 당도해 여태껏 생활한 공간 중 하나였는데, 쥐새끼 한 마리 없는 것처럼 깨끗할 리가 없었다.
그때였다.
이―히히히히히!
귀곡성이 들려왔다.
귀곡성은 어느 특정 방향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메아리치며 그 방향을 짐작할 수 없도록 했다.
이히히―히히히히!
이번엔 웃음 속에 은은한 살기까지 배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주운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옥죄어 왔다.
주운의 안색이 침잠하게 가라앉았다.
문득 무언가가 벼락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주운은 히죽 웃었다.
“그랬군.”
그러면서 주운이 손가락으로 대청 밖에 우두커니 서 있는 척운수를 가리키는 순간,
찌이이익!
비단폭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한 줄기 지풍이 허공을 가르고 척운수의 뒤통수를 관통하는 순간,
화아아아악!
주변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점차 굴곡지고 왜곡되더니 소용돌이 모양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다 어느 순간 시야가 밝아졌다. 강렬한 섬광이 터진 것이다.
주운은 미리 짐작하고 감았던 눈을 떴다.
네 명의 복면인이 주운의 사방을 점하고 있었다.
그중 정면에 선 복면인이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알고 싶어?”
“…….”
“그거 알아?”
주운이 씨익 웃었다.
“내가 이것과 아주 흡사한 것에 된통 당했었지. 그에 비해 방금 것은 어린애 장난 수준에 불과해. 너무나 비슷해서 잠시 넋이 나갔던 것뿐이야.”
복면인들의 눈빛이 사나운 빛을 발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한 것도 자주 대한 주운이 눈썹 하나 까딱할 리 없었다. 오히려 더욱 무서운 눈빛으로 맞받아쳤다.
“우윽!”
정면에 선 복면인은 갑자기 목구멍을 비집고 나온 무엇인가 비릿한 것을 입가로 흘렸다. 단지 눈빛만 마주친 것뿐인데, 작지 않은 내상을 입은 것이다.
나머지 복면인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은 것은 정면으로 눈빛을 받은 복면인뿐이었다.
주운이 말했다.
“악독하네. 굳이 자기네 편까지 희생시킬 생각도 하고. 진짜 냉혈동물이라 해도 믿겠다.”
방금 주운이 겪은 것은 일종의 진(陳)이었다. 상대가 들어선 순간 그것과 똑같은 공간을 보여 주는 환영진. 조금 특별하게 섭혼의 묘리가 담긴 이명을 들려주고 사방에서 살기를 내쏘아 서서히 피를 말려 죽이는 음독무비한 진이었다.
물론 주운의 말마따나 완벽하진 않았다.
그래서 척운수라는 매개체를 통해 진을 발동시킨 것이다. 때문에 주운의 지풍이 척운수의 자세를 무너뜨리자 곧바로 진세가 깨져 버린 것이다.
주운은 복면인들에게서 듣고 싶은 말이 많았다.
주운이 심유한 눈으로 말했다.
“같은 편이니까 너희들도 알고 있겠지. 척운수가 천사련에 전서구를 보낸 장본인이 맞나?”
복면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냉랭한 눈빛이었다. 결코 곤란하거나 난처한 물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너희들, 천사련에서 나온 게 아니구나?”
흠칫.
그제야 복면인들의 눈빛이 약간 떨렸다.